호왈백만
1. 개요
백만을 부르짖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실상보다 수를 과장하여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허장성세, 뻥튀기.
2. 상세
상당수 역사서에 적힌 당시 군대의 숫자가 보급대 등 비전투 병력까지 포함시키거나 아님 애초에 뻥튀기한 것으로 의심받는 경우가 많다보니 주로 비꼬는 의미로 쓰인다. 다만 이렇게만 보면 부정적인 단어 같지만, 고대 전쟁에서 병력 수를 부풀려 말하는 것은 단순히 크고 아름다운 걸 좋아해서가 아니라 대병력이라는 위압감을 줘서 상대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전의를 떨어뜨리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무조건 백만으로만 부풀리는 것도 아니고, 실제 병력이 좀 적어서 척 봐도 백만이 아니다 싶을 땐 수십만 정도로 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정말 백만을 동원해냈다면 2백만, 3백만으로 뻥튀기해 불렀을 것이다. 정말 백만을 동원한 경우가 역사에 매우 흔치 않아서 그렇지.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근현대 이전의 역사를 보면 백만 혹은 그에 준하는 군세를 동원하면 패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전근대의 국력으로 백만대군을 유지하기에는 부담이 심한 것도 있고, 통신수단도 발달하지 않던 시절이라 대병력을 지휘하기 어려운 것도 있는듯. 군담소설 같은데서는 더더욱 패배 플래그에 가까운 취급이다. 아무래도 단순히 병력 우위를 앞세워 밀어버리기보단 뭔가 계략을 짜거나 장수가 활약해서 적의 대병력을 박살내는 게 전개상으로 더 재미있으니까 백만 혹은 그에 준하는 대군을 동원하는 쪽은 대개 승리보다는 패배하는 쪽이 되는 것이다.
보통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병력의 수를 "호왈(병력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중국 초한전쟁이나 삼국시대의 경우에도 50만이니, 100만이니 하는 수가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작았으며 고대~근세 중국사에서 말 그대로 100만 대군을 동원한 경우는 수양제의 고구려 침공때와 비수대전때 전진이 동원한 병력 정도가 되겠다. 수양제의 백만대군도 호왈백만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있고, 실제로 수양제도 자기 병력을 과장하긴 했다.[1]
호왈백만은 어디까지나 '참전 당사자가 뻥튀기했다'고 적는 것이지, 사서의 기록자까지 뻥튀기를 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 병력을 병기하는 일도 많았다. 예를 들어 사기의 홍문연 관련 기록에서 '항우는 40만의 병력을 100만이라 호하였고, 패공(유방)은 10만의 병력을 20만이라 호하였다'는 문구도 있다. 다른 교차검증 방식이 없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이세환 기자 : (별무반의 수가 17만이었는데, 고려는) 대외적으로는 20만이라고 이야기 했고, 원정 끝난 기념비에는 30만이라고 적었습니다. 계속 수가 늘어나죠?
허준 : 예전에 뭐 중국 원나라(의 병력)와 비교하면 ⅓에 육박하는 숫자가...
임용한 교수 : '''중국에 비하면 우리는 진짜 뻥이 작아. 중국이었으면 (17만을) 100만이라고 썼어.'''
이세환 기자 : '''제가 항상 말했죠. 중국 역사서에서 군사 수는 항상 0하나는 더 들어간다고.'''
흔히는 중국이 이 분야에서 유명하지만, 사실 인지도에 밀려서 그렇지 세계적으로 비교했을 때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이다. 가장 압권인 건 미얀마의 유리궁 연대기인데, 코끼리만 3,600만마리, 병력은 1의 뒤에 0이 42개 들어간 숫자라고...
3. 사례
-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저술한 고대 페르시아 역사에는 인도 원정에 300만 규모의 병력을 동원했다는 기록이 있고, 페르시아 전쟁에 대해서는 원정군을 아시아 일대에서 소집한 180만, 유럽 일대에서 추가적으로 합류한 30만, 하인과 수행원 및 여타 잡역부들이 260만으로 육군만 470만이며 해군은 갤리선 1207척과 수송선 및 보급선 3000여 척에 해군 인력은 25만이어서 총 규모 500만이었다고 주장한다.
-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는 제3차 십자군 원정에 10만 대군을 동원했다고 기록되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과장으로 보며 실제 병력은 12,000~15,000으로 보고 있다.
- 인도의 사서에서는 '16억의 전사자가 발생했다'고 기록한 것도 있다.
- 사실 위에서 언급한 별무반의 숫자도 수양제의 100만대군 이상으로 어처구니 없는 수치인데 당시 고려인구가 400만 남짓이었던걸 생각하면 17만이라하더라도 인구의 4퍼센트 이상을 동원하였다는 황당한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3]
- 2019년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서 주최 측이 집회에 참가한 인원을 처음에는 100만명, 종국에는 250만명이라 주장했으나, 여러 데이터를 수집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집회가 있었던 날의 해당 지역 대중교통 이용객수 증감과 생활인구 데이터에 의하면 실제 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10만여명에 불과했다. 자세한 내용은 검찰개혁 촛불문화제/비판과 논란#s-3 참조.
4. 기타
네이버 단어사전에 호왈백만의 예시로 원균을 언급한 글을 사용했다.(...) #
[1] 다만 이 부분은 113만을 과장해서 200만이라고 부르짖은 것이다. 그러나 전투 병력이 아닌 보급 병력으로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수서의 기록에는 보급 병력이 전투 병력의 '''2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의고 성향이 강한 현대 사학자들 중에는 113만에도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수나라 병제의 문제도 있고, 당나라 창업공신들이 주축이 돼서 편찬한 수서의 성격 문제도 있기 때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2] 카이사르 스스로는 43만이라고 기록했는데 아군은 전사자가 한 명도 없다고 적었다. 즉 이쪽도 뻥이긴 매한가지.[3] 수양제의 1차 고구려정벌당시 편성된 113만 대군은 수나라 인구의 2~2.5퍼센트정도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