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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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이름
경주역사유적지구[1]
Gyeongju Historic Areas /
Zones historiques de Gyeongju
국가·위치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ii)[2], (iii)[3]
壺杅塚
1. 개요
2. 발굴 경위
3. 나무위키에 항목이 생성된 주요 출토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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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주시 노서동 고분군에 있는 대형 고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호우(그릇)[4]이 발견되어 호우총으로 이름 지었다.

2. 발굴 경위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을 맞이한 후 처음으로 일본인 고고학자들이 아닌 한국인들의 손으로 발굴한 신라 고분이다. 일제강점기 고고학은 철저하게 일본인 학자들 위주였기 때문에 광복 시점에서 한국인 중에는 전문가가 전무했다. 그래서 시범적으로 호우총을 발굴한 것이라 한국 고고학사에도 의미가 크다.
신라의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으로 금동관[5]과 금귀고리, 목걸이, 환두대도, 토기 등과 함께 청동제 호우(그릇)가 출토되었는데 밑바닥에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명칭이 새겨졌고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에 쓰인 정보와 일치해 당시 고구려신라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6] 또한 해당 호우명 그릇에는 연꽃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신라 쪽 유물 중 불교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유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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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새겨진 글자는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으로 '국강(國罡) 위에 있는 광개토대왕릉용 호우'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광개토대왕의 제사를 위해 만든 제기인데, 어째서 신라로 흘러들어갔는지는 불명. KBS 역사추적에서는 신라 내물 마립간의 아들 복호가 볼모로 잡혀있을 때 장수왕으로부터 하사받아 신라로 가져왔다고 추정했다
위에 적힌 #자를 두고 광개토대왕을 상징하는 심볼이라고 해석하는 주장도 있으나 아직까지는 밝혀진 것이 없다. 실제로는 백제등의 다른 국가 유물들[7]에서도 # 같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등장한다.

3. 나무위키에 항목이 생성된 주요 출토 유물


[1] 석굴암, 불국사, 양동마을 제외[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이라고 쓰였다. 을묘년(415), 3년 전 돌아가신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을 기념하여 장수왕 시대에 만든 그릇 이라는 의미이며 마지막 '十'자는 공백을 채우기 위한 의미 없는 글자로 본다. 참고로 광개토대왕의 시호가 있지만 '''장수왕 시대'''에 지어 올린 것이다. 시험에서 함정문제로 출제되기도 했다.[5] 순금 금관보다는 격이 약간 낮다.[6] 광개토대왕이 쓰였지만 이는 광개토대왕이 죽고 나서 장수왕이 선왕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즉 제작시기는 광개토대왕이 아니라 장수왕 때. 시험에 이 부분이 나오기도 한다.[7] 대표적으로 백제의 초기 수도인 위례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에도 #이 새겨진 토기들이 대량으로 발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