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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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의 홍살문
1. 개요
2. 특징
3. 역사
4. 기타
5. 관련항목
6. 둘러보기


1. 개요


홍살문, 홍전문(紅箭門) 또는 홍문(紅門)은 한국의 전통 대문(大門)으로, 어떤 지역이 신성하거나 구격(具格[주])이 맞는 장소임을 나타내기 위한 표지로 세우던 문이다. 이름의 뜻은 직역하면 '붉은 화살 문(gate with red arrows)'이 된다.
주로 왕릉과 같은 묘지향교, 서원, 궁궐 및 관아 등의 정문으로 설치되었다[1].

2. 특징


그 형태를 보면 나무로 만든 기둥과 살에 붉은 색을 칠하고 문의 상단에도 붉은 화살(홍살)들이 붙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 태극 무늬를 새기거나 붙인다. 태극 무늬를 지나는 홍살들은 서로 꼬여 있어 삼지창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문이 붉은 이유는 동짓날과 같이 붉은 색이 양기를 띠어 귀신과 액운을 물리친다는 풍속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상단을 화살로 장식한 것은 잡귀를 화살로 쏴 없애버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 과 달리 문짝이 달려있지 않으며, '문 문(門)'자 모습을 하고 있다. 용도도 보통 문과는 다르게 장소의 안팎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명시하기 위한 것으로 쓰였다. 또 홍살문 옆에는 신성함을 위하여 '하마비(下馬碑)', 즉 통행인의 신분에 상관 없이 '타고 있던 말에서 내려 걸어 지나가라.'는 의미의 비석을 세우는 곳도 있다.

3. 역사


인도의 스투파 입구에 세우는 '토라나(torana)'에서 기원했으며, 이것이 주변 각국으로 퍼져 나가 각 지역별 고유의 양식으로 변형되었다. 중국에서는 폐방으로, 한국에서는 홍살문으로, 일본에서는 토리이로, 그리고 태국에서는 사오칭차로 변화하였다.
한국사에서는 삼국시대 신라에서 발생했다고 알려졌다.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발견된 칠갑산 암각화에는 약 1500년 전 마을 풍경을 묘사한 그림이 세선각 기법으로 새겨졌는데, 이 암각화에서도 현재와 같은 홍살문의 형태를 뚜렷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이미 홍살문 문화가 삼국시대 말 고구려백제 일대에까지 전파되었음을 의미한다. 경주 오릉 내 박혁거세 거서간의 제사를 모시는 숭덕전의 입구에도 홍살문이 있는데, 숭덕전은 팔전으로 조선시대에 건립한 것이다.
이후 불교를 따르던 고려시대에 본격 성행했고 유교를 권장하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성격이 유가적으로 변화하여, 충신, 효자, 열녀를 바람직한 인물로 추앙하여 이들의 집 앞에 표창을 내리는 의미로 홍살문을 세우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열녀문이 홍살문의 일종인데, 1972년작 신성일 주연 영화 '홍살문'도 이를 다루었다.
당대에 홍살문이 집이나 마을 앞에 있다는 것은 가문 및 지역에 큰 명예였다. 이 때문에 홍살문을 받기 위해 남편을 잃은 여성이 순사(殉死)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온 마을에 형성되기도 했다고.

4. 기타


일본 신사 입구에 있는 토리이(鳥居)와 비슷한데, 특히 지붕 없는 토리이는 홍살문과 그 인상이 매우 비슷하다. 앞서 설명했듯이, 홍살문과 토리이의 기원이 같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국인들도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토리이를 쉽게 접하는데, 오히려 홍살문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지 가끔씩 홍살문이 나오면 왜색 논란이 일어나곤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궁궐에 홍살문을 설치하지 않아 위엄스럽지 않다는 기록이 있다.


5.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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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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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격식이나 예절을 갖춤.[1] 드물게 용주사처럼 에 있는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