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인

 

黃夫人
(? ~ ?)
1. 개요
2. 정사
3. 연의
4. 기타
5. 기타 창작물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촉한의 여성. 황승언의 딸, 제갈량의 아내, 제갈첨의 어머니. 이름은 불명인데, 민간 전승에서는 월영(月英)이라고 한다.

2. 정사


서주에서 형주로 이주해 온 제갈량의 가족은 형주의 토착민이 아니었음에도 혼인으로 맺어진 강력한 인맥빨을 갖추게 되었다. 우선 제갈량의 큰 누나괴기와 결혼했다.(출처: 양양기구기) 참고로 괴기의 집안은 괴월, 괴량의 집안으로 양양의 명문가였다. 또한 제갈량의 작은 누나는 양양의 명사 방덕공의 아들 방산민과 결혼했다.(출처: 양양기구기 방덕공전)
한편 채모의 집안은 형주의 유력 호족으로 무척이나 번성했다. 채모의 고모는 태위 장온과 결혼했고, 채모의 큰 누나는 황승언과 결혼했고, 채모의 작은 누나 채부인유표와 결혼했다.(출처: 양양기구기 채모전) 만약 제갈량이 황승언의 딸과 결혼한다면 명사 황승언의 집안, 형주의 유력 호족 채모의 집안과 동시에 인맥을 걸치게 된다.[1]
황승언의 딸 황부인은 부모님까지 인정한 추녀였다. 하지만 제갈량은 황부인의 외모에 상관하지 않고 그녀의 재능에 반해 결혼했다.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제갈량은 이 결혼을 통해 엄청난 인맥을 얻었다.

황승언은 고상(高爽)하고 개열(開列)하여 면남(沔南)의 명사였다. 제갈공명에게 말했다.

"그대가 부인을 고른다고 들었소. 내게 못난 딸이 있는데, 노란 머리에 얼굴이 검지만 그 재주가 서로 배필이 될 만하오."

공명이 허락하자 곧 그녀를 실어 보냈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웃음거리로 삼고 향리인들이 속어를 지어 말했다.

"공명이 부인 고르는 것은 배우지 마라. 아승(阿承)의 못난 딸을 얻으리라."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주석 양양기

계해우형지(桂海虞衡志)에 따르면 제갈량의 집에 갑자기 손님이 들이 닥쳐도 황부인은 초고속으로 요리를 준비해왔고, 제갈량이 이를 궁금해해서 주방을 들여다봤더니 황부인의 목각 자동인형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제갈량이 만든 목우유마는 황부인이 전수한 것이다.(출처: 제갈충무후문집 인용 계해우형지)

면남 사람이 대대로 전하길: 제갈공(제갈량)이 융중에 살 때, 손님의 도달이 있어 아내 황씨에게 국수를 갖추길 부탁하니 잠깐에 국수가 이르렀다. 무후(제갈량)가 그 속도를 괴이해하여 후에 몰래 그것을 엿보니, 몇 나무 인형들이 나는 듯이 보리를 자르고 맷돌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그 아내에게 절하며 이 재주를 전수하길 청하니, 후에 그 제조를 변경해 목우유마를 만들었다.

沔南人相傳:諸葛公居隆中時,有客至,屬妻黃氏具麵,頃之麵至。侯怪其速,後潛窺之,見數木人斫麥,運磨如飛。遂拜其妻,求傳是術,後變其制爲木牛流馬。

제갈충무후문집 인용 계해우형지

제갈량은 늦도록 아들이 없어서 형 제갈근의 아들 제갈교를 양자로 입양했지만 제갈교는 요절했다. 이후 황부인이 제갈첨을 낳았다.(출처: 학경 속후한서 제갈첨전)
중국 오장원에 있는 제갈량묘(諸葛亮廟)에는 황부인을 모시는 사당인 월영전(月英殿)도 있다.출처 사당의 명칭이 월영전(月英殿)인 이유는 중국의 민간 전승에서 황부인의 이름을 월영(月英)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살아있을 때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백성들이 황부인의 외모를 놀리는 노래에서 언급만 되다가, 최후반부에서야 제갈첨이 등장하면서 제갈첨의 어머니로 황부인이 소개된다.
황부인은 못생겼지만 천문, 지리, 병법에 능했고, 제갈량이 남양에 있을 때 황부인의 재능을 듣고 결혼했다. 제갈량의 학문을 도왔고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사망하자 그 뒤를 따르는 듯이 죽으면서 아들 제갈첨에게 오로지 충효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4. 기타


외모에 관한 논란이 가장 유명하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머리카락이 누렇고 피부가 검은 인물 이라고 했는데, 정말 이 묘사가 정확하다면 일반적인 순혈 중국인으로는 보긴 힘들고 인도아리아계 혼혈일 가능성이 높다. 군웅할거의 난세가 벌어지기 100년 전부터 한나라는 서역길을 개척해 실크로드를 통해서 외국과 교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국적 외모의 혼혈이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는 상황이다.[2] 다만 황승언의 정실은 채씨가 맞지만 이 채씨가 황부인의 생모라는 기록이나 형주 채씨가 외국계라는 기록은 없다. 즉 첩실이 낳았거나 입양한 딸일 가능성도 있다는 말.
당시 여성의 미적 기준은 '''희고 고운 피부'''에 머리가 검고, 발이 작고, 몸매는 마르고 가냘픈 전형적인 황인계 미인상이었다. 황월영이 정말로 금발에 피부가 검었다면 말할 것 없이 추녀로 평가됐을 것.[3] 그리고 현대의 미의 기준은 당시와는 다르기 때문에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아름다워 보이는 용모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해서, 삼국지를 주제로 하는 문화 매체에서는 인도계 또는 아랍계 미인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4] 대표적으로 액션 게임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 이쪽을 채택하는데, 매 시리즈마다 적갈색 머리+크고 또렷한 눈+이마의 빈디로 서양계의 느낌과 인도계의 느낌을 동시에 내고 있다.
또한 널리 퍼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원래는 전형적인 한족 미인이었는데, 딸이 권력자의 노리개로 끌려갈 것을 우려한 황승언이 일부러 딸을 추해 보이도록 꾸미게 했다'는 구전도 존재한다. 반삼국지가 이쪽을 채택했고, 진삼 시리즈와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시리즈도 오랫동안 이쪽을 택했다가 최근에는 전자의 '인도풍/아랍풍 미인설'에 맞춘 듯한 일러스트도 내놓았다.
예문류취(藝文類聚)에 기록된 제갈량이 이엄에게 보내는 답신에서 '나는 팔십만 곡(斛)의 녹을 받았으나, 지금 모아놓은 재산은 남은 것이 없고 첩은 여벌의 옷이 없소.(吾受賜八十萬斛,今蓄財無馀,妾無副服.)'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제갈량이 첩이 없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첩(妾)'은 말 그대로 첩실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본처를 겸손하게 부르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단 전승에는 제갈량이 황부인 외의 다른 여자를 두지 않았다고 한다.

5. 기타 창작물


황부인/기타 창작물 문서 참조.

[1] 곡량(谷亮), 진청(陳靑) 등의 역사학자들은 제갈량이 이 인맥을 얻기 위해 황부인과 결혼했다고 주장한다.출처[2] 오나라 황제인 손권도 푸른 눈에 붉은 수염이라는 묘사가 있고, 이 무렵 나타난 반고 설화도 북유럽 신화이미르와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단, 서역 교류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면 푸루샤와 비슷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3] 어떤 설에는 그녀가 매우 아름다워 보는 사람마다 반해 일부로 소문을 내거나 얼굴에 진흙을 묻히고 다니며 저녁에 제갈량에게만 얼굴을 보여주었다고 한다.[4] 황부인을 다룬 캐릭터는 아니지만 요리왕 비룡에 나오는 뒷요리계의 미라를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