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과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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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네수엘라의 정치인. 현직 국회의장이자 30대의 젊은 나이로 외세의 지원을 바탕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에 맞서 싸우는 젊은 야당 지도자. 가택연금형에 처해진 레오폴드 로페스 당 대표를 대신해, 중도 좌파 성향의 인민의지당의 실질적인 당수 역할을 맡고 있다.
2019년 1월 5일 국회의장으로 취임해 마두로 퇴진운동의 선봉에 서기 전까지는 무명의 정치인에 가까웠다.[6] 그랬던 그가 국회의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베네수엘라의 정치 시스템 때문인데, 우고 차베스 당시 대통령이 국회 의석을 580석에서 167석으로 대폭 축소하고 권한을 대거 박탈할 때, 의원 선출 방식을 아주 복잡하게 바꾸면서 여러 정당이 난립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가능하게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국회의장의 임기는 '''1년'''으로, 여러 정당이 합의하면 '''초선 국회의원도 국회의장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마두로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 및 여러 정치인들을 투옥시키다보니 의회에 남아있는 의원이 많이 없었던 것도 요인이다.
그리고 사태가 격화되자 야당 수반으로써 공개적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한 인물이다. 베네수엘라는 프랑스처럼 '''만 30세 미만이라 할지라도 미성년자만 아니라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7]
2. 생애
2.1. 유년기
과이도는 1983년 7월 28일 베네수엘라의 바르가스 주 작은 항구도시에서 태어났다. 비행기 파일럿인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8명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자랐다. 조부와 외조부가 각각 국가 헌병대 부사관과 해군 대령 출신으로, 이 덕에 비교적 엄격한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았다.
2.2. 청소년기
과이도가 16살이 되던 1999년, 인생을 바꿀 사건이 발생했다. 베네수엘라에 역대 최대 규모의 집중 호우가 내려 산사태가 발생한 것. 바르가스 주 전체가 3 m 높이의 흙더미 속에 파묻혀 과이도의 가족도 졸지에 집을 잃었다. 이른바 ‘바르가스의 비극’ 사건은 그에게도 큰 트라우마로 남았고, 후에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됐다. 과이도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 일화를 소개하며 "나는 희생자가 아닌 생존자"라고 자신을 표현하기도 했다.
과이도는 10대 때 노숙 생활을 하며 어렵게 보냈지만 악조건 속에서도 2000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곧이어 베네수엘라 가톨릭 안드레스 베요 대학(UCAB) 공대에 진학했다.
과이도는 2007년 대학을 졸업하며 산업공학 엔지니어 자격증을 취득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행정학 석사를 받았다. 그때도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2.3. 정계 입문
2007년 좌파 포퓰리즘 대통령이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방송국의 문을 강제로 닫았는데, 야권과 학생들은 이를 언론장악 시도라고 규탄했다. 그리고 대규모 학생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때 지도자로 나선 사람이 바로 후안 과이도이다. 2009년 과이도와 젊은 정치 지도자들은 중도 좌파 성향의 인민의지당(Voluntad Popular - VP)이라는 정당을 창당하고 정치활동을 본격화했다. 이들은 야당중에서도 강경파에 속하는 축으로, 빈곤 극복과 민주주의 보장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마두로 정권 퇴진을 위한 거리시위를 선호한다.[8]
2011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에 처음 입성한 과이도는 2016년 바르가스 주에서 9만 7492표(26%)를 얻어 정식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2017년에는 국회의원 감사위원장으로 임명됐으며 2018년엔 야당 대표로 승승장구하게 됐다.
2.4.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
계속되는 정치, 경제의 불안으로 베네수엘라가 흔들리자 야권의 주도하에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하고, 반정부 시위와 친정부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안 그래도 흔들리는 베네수엘라를 혼란에 빠트리는 와중에 현직 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가 대선에서 68%가 넘는 득표율로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월 10일자로 임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야권의 주요 지도자들은 선거기간 중 죄다 가택연금되어 후보로 출마하지도 못하는 등 심각한 부정선거의 모습을 보였고, 야권과 지지자들은 선거무효와 재선거, 마두로 퇴진을 외치며 다시 시위를 벌였다.
2019년 1월 23일 국회의장인 후안 과이도는 자신을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하고 대선무효와 과도정부 수립, 자유 민주선거를 약속하며 마두로 대통령을 '''정권 찬탈자'''로 규정했다. 이날 야권 지지자 수만 명은 베네수엘라 국기를 흔들며 '마두로 사퇴'와 '후안 과이도 대통령'을 외치며 행진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부를 대표하는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국방부장관이 베네수엘라군 고급 지휘관들을 대동하고 기자회견에서 군은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며, 과이도야말로 반역자라고 선언#하여, 무력을 갖지 못한 과이도 측이 결국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다만, 1월 26일(현지 시간) 대령 한 명이 마두로 지지를 철회하고 과이도 지지를 선언함으로 군부에서 첫 이탈자가 생겼다는 기사가 뜨기는 했다.#
자신이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국회의장이 아니라 치밀한 비밀외교와 야권 내부의 결속 덕분이었다.# 기존의 베네수엘라 야권은 수많은 정당과 무소속 정파로 쪼개져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 못해, 우고 차베스와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견제를 못하고 무력하게 당해 왔다. 그러나 후안 과이도는 이런 베네수엘라 야권을 빠른 시간 내에 총 결집시키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과이도가 35세로 젊고 정치 경력도 짧지만, 상당한 정치 능력이 있는 건 분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과이도를 임시 정부로 인정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과 단교하고 외교관을 추방하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마두로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라 외교관계를 단절할 권리가 없으며, 과이도 임시 대통령은 미국 외교관의 잔류를 요청했다"고 '''씹었다.'''
캐나다, 미국, EU를 비롯한 서방과 중남미의 우파정권 국가들[9] 은 과이도를 지지하며 그를 베네수엘라의 새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임시 내각이 없다보니 먼저 의회에 국영석유회사(PDVSA)와 그 계열사인 미국 정유업체 시트고 페트롤리엄의 새로운 이사진 구성에 착수할 것을 명령했다.# 이 때문에 지지를 얻기 위해 해외 대사직 임명과 자산 끌어오는 것으로 시작한 실정이다. 현재는 모두 임명된 상태이다.#
30일에 베네수엘라 센트럴 대학 캠퍼스에 깜짝 등장해 의사 가운을 입고 학생 시위대를 독려했다.#
베네수엘라 경찰이 자신의 집에 찾아와 가족들을 위협했다며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위협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인도주의 물자 거부를 비난하였으며, 많은 베네수엘라군이 마두로의 지지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상태이다.
한국 언론 중 KBS와의 단독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버진 그룹의 리차드 브랜슨 회장이 주최한 '베네수엘라 라이브 에이드'를 개최하였는데, 라이브 현장에 깜짝 방문했다.# 그러다가 리마 회의 참석 위해 콜롬비아 보고타로 가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도 만났다. 이미 베네수엘라 대법원의 출국금지 명령을 어긴 채 콜롬비아 국경을 넘은 상태라 마두르 정권이 체포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후에도 우파 정권인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정상들과 만나고 콜롬비아를 통해 귀국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콜롬비아를 갔을 때, 콜롬비아는 후안 과이도 임시 대통령에게 '''의전을 해 주었다.'''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에서 보듯, 콜롬비아는 후안 과이도를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의견을 보인 것뿐 아니라, 그 말을 실천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자세한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무사 귀국하였으며, 공항에 서방 국가들의 대사들이 마중 나왔다고 한다.#
3월에 있었던 대정전(블랙아웃) 인해 검찰이 선동죄로 고발한 상태이다.#
3월 16일에 마두로 정권축출을 위한 ‘새로운 단계’를 열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겠다고 밝혔다.#
3월 21일에 비서실장이 베네수엘라 정보기관 세빈(SEBIN)으로부터 체포되었다.#
3월 27일에 부인 파비아나 로살레스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을 가졌다.#
친마두로의 감사원이 부정회계 있다는 이유로 공직 출마를 15년간 금지할 수 있다고 한다.#
4월 30일에 군부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지만 쿠데타 정보가 마두로 정권 측에 미리 누설되고, 미국과 서방이 말로만 과이도를 지지하는 반면 러시아와 쿠바는 군사고문단을 파견하는 등 실질적으로 마두로를 지지하는데 힘입어 쿠데타는 실패하였다. 쿠데타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게 과이도가 고용했다는 용병들이 기습작전임에도 불구하고 작전을 여기저기 떠벌이고 다닌 게 문제였다.
쿠데타 실패 이후 야권의 넘버 2인 레오폴도 로페스는 스페인 대사관으로 도피한 반면 과이도는 위치가 안 알려진체 여전히 5월 1일, 차후에도 사상 최대의 반정부 시위를 보여줄 것이라며 대중보고 길거리로 나오라 호소하는 중이다.https://www.cnbc.com/2019/05/02/venezuela-crisis-guaido-defiant-after-failed-attempt-to-recruit-military.html 하지만 대세가 이미 마두로에게 기울어 조만간 해외 망명이나 체포 둘 중 하나의 결말을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니나다를까 예전부터 평범한 야권 정치인이 대통령 선언한 걸 인정하는 서방권의 외세 개입에 비판적이었던 여론들은 쿠바, 이란, 중국, 러시아 언론들을 필두로 겁쟁이, 비겁자, 꼭두각시라고 조롱하고 있는 중이다. 무책임한 자, 후안 과이도
5월 11일 행방이 묘연했던 과이도가 여전히 반 정부집회를 이끌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쿠데타가 실패한 후 힘을 잃은 과이도는 이날 집회에서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모색할 거라고 연설했다.#
쿠데타 실패 후 과이도는 마두로 정부에 체포되지 않기 위해 안전한 거처 여섯 곳을 전전하며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9월 6일에 마두로 대통령은 과이도가 가이아나와 분쟁중인 에세퀴보를 엑손모빌 등 다국적기업들에게 넘기려 한다며 검찰조사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 1월 5일 (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의회는 경찰의 통제아래 친정부의원만 참여해 정족수가 미달된 국회에서 부패혐의로 야당에서 출당된 루이스 파라를 새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같은 날 야당들은 베네수엘라 유일의 야당 언론 '엘나시오날' 본사에서 국회를 열어 압도적인 지지로 과이도 현 의장을 연임시켰다.# #2
또, 1월 중순에 다보스포럼 참석 등 다시 해외 순방에 나섰다. 3주만에 귀국했다.#3
3. 평가
뉴욕타임스의 평가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그동안 여권에 실망했으며, 마찬가지로 야권의 올드페이스들에게도 질렸다며 과이도 국회의장의 등장이 야권을 살릴 마지막 기회라고 역설했다.##
다만 수년간 분열상을 보여온 야권이 단결해 배출한 과이도 의장이라는 지명도 있는 인물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는 위험성도 상존한다.
인민의지당은 일단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도 가입된 중도좌파 정당이기는 하지만 과이도가 '좌파'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운 것이, 과이도 자체가 애초에 베네수엘라 국민들 본인들 다수는 심지어 반정부 성향 시위대도 1월의 소위 '대통령' 칭호 달기 전에는 대부분 모르는 무명의 인물이었다.#. 애초에 좌익이니 우익이니는 말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소리고, 보수우익으로 분류되는 인물들도 경제 정책 자체만 보면 종종 계획 경제를 선호하는 우리나라처럼 중남미 같은 곳에선 성향을 불문하고 미국식 시장 자유주의에 호응하는 대중적 정서가 없으며[10] , 친정부 좌익 성향 시민들도 갈라놓을 필요가 있으니 말로는 얼마든지 중도좌파다 주장할수 있지만 실제로 과이도와 야권이 대안 경제 정책이라고 내놓은 계획들은 전형적인 민영화, 탈규제, 민간 자본 육성 등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적 우파 아젠다에 기반해있다.# # 그리고 이러한 과이도 측의 신자유주의적 정치 성향은 4월 30일 과이도 쿠데타에 막상 베네수엘라 시민들의 호응이 없어 실패하게 된 원인이 된다.
멸망해가는 나라에서 30살을 갓 넘긴 젊은 나이에 혜성처럼 나타나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정치일선에 뛰어들어 임시 대통령을 했다는 점은 마다가스카르의 안드리 라조엘리나와 비슷하지만 그 결말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그러나 라조엘리나는 자국 내 반정부 민심을 업고 진짜로 자수성가한 인물이지, 과이도처럼 외부 열강들의 지지를 받은 인물이 아니다.
[1] Instituto Los Corales.[2] 다만 학사학위는 수료받지 못했다고 하는 곳도 있다.[3] 베네수엘라에 있는 일종의 경영대학원 및 행정학 연구소.[4] 2020년 1월 5일, 베네수엘라 국회는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여당의원만 참여한 국회의장 투표에서 무소속의 루이스 파라를 새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5] 같은 날 야당은 언론사 '엘나시오날' 본사에서 이뤄진 국회의장 선거에서 과이도를 연임시켰다.[논란중.] A B [6]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에선 6선 의원은 되어야 국회의장을 노려볼 만하다.[7]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민주주의 국가 치고 만 40세 이상으로 대통령의 나이를 제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미국은 대통령 만 35세, 부통령 만 32세면 출마 가능하고, 그나마도 독립 초기에는 나이 규정이 없었다가 1810년대에 생겼다.[8] 과이도의 정치멘토이자 VP의 창당 멤버 중 한 명인 레오폴도 로페스는 2014년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현재 가택연금 중이다.[9] 브라질, 페루,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콜롬비아, 칠레, 파나마, 과테말라 등[10] 실질적인 정책, 정부와는 별개로 중남미에서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톨릭교회만 하더라도 사회적 가르침은 미국식 자유주의적 가치관과 양립하기 힘들다. 애초에 이 동네 가톨릭 교회는 해방신학의 탄생지인 만큼 가톨릭 교회 내에서 경제적 좌파적인 성향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