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빈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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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중종의 후궁. 중종반정의 정국공신 홍경주의 딸이다.
2. 생애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당시 사복시[1] 첨정(僉正)으로 있었던 홍경주는 신윤무, 박영문 등과 함께 군대를 동원의 책임을 맡아 거사를 성사시켰다.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국공신[2] 1등에 책록된다. 즉, 홍씨는 아버지 홍경주를 배경으로 두고 있었기에 중종의 후궁이 될 수 있었다.
장경왕후의 사후에 새 왕비를 세우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조정에서 오고 갈 때 경빈 박씨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도 아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어린 원자를 지키기 위한 안배로 왕비가 되지 못했다.
그녀의 삶은 여러 굵직한 사건에 연루되는데, 먼저 정국공신이자 훈구파인 홍경주의 딸로 사림파와 조광조를 탄핵하는 일에 앞장섰다. 당시 홍경주는 탄핵을 받은 일로 조광조 등의 무리를 원망했는데, 홍씨는 "조정의 권세와 백성들의 마음이 모두 조광조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을 밤낮으로 하면서 중종의 귀에 들어가도록 했다.[3] 또한, 나뭇잎에 주초위왕 네 글자를 꿀로 써서 벌레가 먹도록 하는 일을 꾸몄다.[4]
이 뿐만 아니라 작서의 변에도 홍씨의 이름이 나오는데, 당시 홍씨는 알리바이가 증명되면서 빠져나갔고 경빈 박씨가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천만다행으로 위기를 넘긴 셈. 이후 홍씨의 남동생 홍우룡이 궁중에서 일하는 계집종을 강간하려고 한 일로 탄핵을 받기도 하고[5] , 윤임과 얽혀 역모를 의심받고, 막내아들 봉성군이 을사사화로 평창에 유배되었다가 사사 당하는 일까지 겪는다.
이런 와중에도 문정왕후의 배려로 궁궐에서 살고 있었는데, 대간들이 홍씨를 궁궐에서 살게 하면 안된다고 계속 문제 제기를 했다. 다행히 명종이 "부왕의 후궁을 축출하는 것은 내 마음에만 미안할 뿐이 아니라 자전[6] 께서도 항상 후궁을 대함에 있어 정의(情意)가 매우 두터우셨다"면서 보호했다. 그래도 계속된 탄핵에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인지 홍씨는 어머니의 병환을 이유 삼아 궁궐 밖으로 나갔다.[7]
1581년(선조 14) 11월 6일에 8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이때는 이미 홍씨의 두 아들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난 뒤였다. 생몰년도가 전해지는 조선시대 후궁들 중 연산군의 후궁 숙의 윤씨와 더불어 가장 오래 살았다.
3. 자녀
중종의 후궁 중에서 가장 많은 자녀를 낳았으나 5명의 아들 중 2명만 생존했다.
4. 매체에서
여인천하에서는 김민희가 연기했다. 후궁 중에서 경빈 못지않은 야심가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홍경주 사후에는 비중이 없어지고 조잡한 음모나 꾸미다가 문정왕후나 경빈, 창빈에게 깨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가며 계락은 꾸미지만, 큰그림을 내다보지 못해 근시안적인 계책만을 꾸미고 경빈처럼 배짱이 두둑하지 못해 늘 문정왕후에게 혼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만 보인다.
그나마 문정왕후와 대등하게 겨루기라도 했던 경빈이나 최후의 승리자로 남은 창빈에 비하면 음흉하기만 할 뿐 실속은 전혀 없는 편. 덕분에 엄연히 빌런캐임에도 불구하고 개그캐(...)로 전락하고 말았다. 빌런이라기보다는 푼수끼 많은 권력가 딸내미가 궁궐로 들어와 앉아있는 듯한 모양새다보니.. 그래도 말년이 처참한 경빈보다는 이쪽이 낫기는 하다.
배우 김민희는 이전 드라마에서는 조신하고 여성스러운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여기서 맡은 희빈 홍씨는 야심가득한 푼수캐릭터를 맡았다.
자녀 중에서는 금원군만 아역 배우가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