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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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왕족. 조선 11대 임금 중종의 서자로, 전주 이씨 봉성군파의 파시조이다.
중종의 후궁인 희빈 홍씨의 소생이다. 이름이 비슷한 중종의 서자이자 경빈 박씨의 아들인 복성군과는 이복형제이다.
12대 임금 인종 재위 때 관료였던 윤원형과 이기에게 아부를 부렸다는 이유로 경기관찰사 김명윤의 무고에 따라 계림군과 함께 반역 미수 혐의로 울진군으로 유배되었다. 귀양 중 발병으로 강원도 평창군으로 유배지가 바뀌어져서 그 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13대 임금 명종 재위 때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위리안치된 후 자처하라는 명을 받고 죽었다.[3]
2. 사후
봉성군이 죽은 직후, 명종은 그의 작위를 회복하고 장례물품을 내리며 예법대로 장례를 지내게 했다.[4] 이러한 명종의 조처에 삼사가 모두 반발하여 취소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명종은 모두 불허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1570년 14대 선조 재위 때 영의정 이준경의 요청에 따라 을사사화 때 투옥자들과 함께 신원되었다. 1732년(영조 8년) 음력 윤5월 18일 영조가 '의민(懿慜)'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3. 여담
- 본래 명종은 봉성군이 벽서사건을 직접 모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처형하라는 신하들의 요청을 거절하였는데, 계속되는 상소에 못이겨 결국 봉성군의 자처를 명령하게 된다.
4. 가족과 후손
정랑을 지낸 동래 정씨 정유인의 딸과 혼인하여 슬하에 1녀를 두었다. 그러나 아들없이 죽었기 때문에 성종의 아들 경명군의 손자인 문성군 이건(文城君 李健)이 입양되어 대를 이었다.[5] 그래서 현재 전주 이씨 봉성군파는 실제로는 경명군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