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야구

 




1. 개요
3. 경기 내용


1. 개요


야구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대한민국, 일본, 대만등 일부 국가에서만 시행되어 저변이 넓지 않아 아시안 게임에서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다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개최를 확정 지으며 시범 종목으로 정식 채택 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OCA회장단회의에 참석하고 15일 하오 귀국한 김종하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상임고문 겸 OCA 부회장은 이번 회의에서는 오는 90년 9월 22일부터 10월 7일까지 북경 대회를 개최키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경기종목을 서울대회보다 2개 많은 27개 정식 종목과 2개 시범종목(야구·연식정구)으로 하고 세부종목을 3백 8개로 정해 금메달 수도 서울대회보다 38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亞州대회 메달전망 흐려##. 매일경제신문 1989년 5월 16일.

특이하게 북한에서도 야구 대표팀을 선발해 차출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고## 1990년 7월에는 북한아시아야구연맹에 정회원으로 가입[1]하며 남북한의 첫 공식 야구경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으나 이루어 지지 않았다.

2. 대한민국 대표팀


한편 이에 참가할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는 감독으로는 강문길 단국대학교 야구부 감독이 선임되었으나## 이틀 만에 장순조 경성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교체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은 교체라는 평가가 있었으나 정확한 내역은 밝혀지지 않았다. ##
해당 대표팀은 대표팀 선발을 완료한 이후 미국에서 열리는 4개국 친선야구 대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치르며 팀워크를 다진 후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 참가한다는 플랜을 구상했다.
주요 선수로는 이상훈과 좌완 투탑이라는 평가를 받던 김홍집(한양대학교)를 비롯해 박정태(경성대), 정민태(한양대), 김기태(인하대), 유지현(한양대), 이종범(건국대), 양준혁(영남대)등 KBO 리그 역사를 빛낸 선수들 부터 장광호(한국화장품), 손동일(원광대)등 아마야구 최강자였던 선수들이 대거 참가했다. 자세한 명단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역대 로스터 항목 참조.

3. 경기 내용



경기 내용에 대해서는 정확한 내용을 알수가 없다. 1999년에 KBO에서 편찬한 한국야구사에서 조차 아주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수준이며 대만이나 일본 웹상에서도 해당 내용을 찾기가 힘들다.
3개국 풀리그로 진행된 대회에서는 대만, 일본, 대한민국 모두 2승 1패[2]를 기록해 득실차를 따져 대만이 금메달, 대한민국이 은메달, 일본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1] 2020년 현재도 아시아야구연맹에 정회원으로 가입은 되어 있는 상태다. 활동이 전무해서 그렇지.[2] 대한민국은 첫경기인 일본에게 1승(4:1)을 거두었으나 대만에게 1패(3:6)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