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생

 

[image]
1. 개요
2. 줄거리
3. 한국판 성우진(KBS)
4. 여담

[clearfix]

1. 개요


Born On The Fourth Of July
올리버 스톤 감독의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 4일에 태어난 주인공 론 코빅의 이야기.[1]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았다.[2] 1990년 골든글로브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을 수상했고, 같은 해 아카데미상에서도 감독상, 편집상을 수상했다.[3]
론 코빅은 실존 인물로, 고등학생 때는 레슬링 선수로 활약하며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였다.[4]
1400만 달러로 만들어져 전세계에서 1억 61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을 거두었으며, 제6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편집상 수상작 /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촬영상, 음향상, 음악상 후보작에 올랐다. 그 뒤 플래툰(영화)에 이어 베트남 전쟁을 그린 올리버 스톤은 영화로 흥행과 호평을 이어갔지만 나중에 만든 베트남전 3부작 완결 격인 하늘과 땅은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참패했다.

2. 줄거리


위스콘신 주의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론 코빅은 어릴 적부터 군인과 전쟁영웅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굉장히 개독스러운 모습인데 젊은 시절 론이 플레이보이 잡지를 가지고 있던 걸 들키자 "그런 역겨운거 당장 우리집에서 치우고 다음날 교회 가서 고해성사 해", 2차세계대전 참전 용사인 아버지와는 달리 참전을 독려하며 "공산주의는 소멸해야 해"라는 말을 한다든지, 말 그대로 금욕주의와 반공주의가 겹쳐진 개독의 모습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레슬링으로 대학에 가려 했으나 실패하고, 학교에 온 모병관의 말을 듣고 미합중국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뒤,[5]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파병을 가게 된다.
코빅은 해병대 병장으로 베트남전 파병은 이번이 2번째이다. 허나 그가 겪은 전쟁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아이와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생지옥[6]이었음을 알게 되고, 전투 도중 오발 사고로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빌리라는 이름의 후임을 죽이고 만다.[7] 정직하게 사실대로 상부에 고백하나 상부에선(일이 커지기 싫으니까) 작전 도중 사망으로 덮어버렸고, 그 또한 척추에 총상을 입어 하반신마비 장애인이 되어 퇴역을 하게 된다.[8][9]
코빅은 장애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휠체어에 탄 상태에서도 자신은 참전용사로서 자랑스럽다고 연설까지 한다.[10] 그러나 고국은 반전 여론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 닉슨 행정부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연일 일어난다. 코빅은 처음에는 반전 시위대를 '베트콩 지지자'로 간주할 정도로 굉장히 경멸했으며, 동생에게 대마 피는 놈들이랑은 어울리지 말라고 화낸다. 그러나 결국 PTSD와 빌리를 죽였다는 죄책감, 장애에 대한 절망감[11]에 폐인이 되어 멕시코 등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술과 매춘으로 인생을 낭비하며 산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빌리의 고향에 방문하여 '귀하의 자녀는 용감히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정도로 알고 있는 부모와 과부가 된 빌리의 아내에게 자신이 실수로 살해했음을 눈물을 흘리며 고백한다.
코빅은 우연히 한 때 짝사랑했던 도나를 만나러 그녀가 다니는 뉴욕 시라큐스 대학을 방문했다가, 거기서 데모에 앞장서 뛰는 도나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가하는 경찰을 보고 그를 지탱해주던 기존의 가치관이 송두리채 흔들리고, 데모 학생들에 대한 발포 명령을 내리기를 서슴지 않는 위정자들의 도덕성에 회의를 느끼면서 그는 새로운 답을 찾지 못하며 괴로워하다, 반전 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하며 반전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결국 베트남전 참전자들과 함께 워싱턴까지 반전 시위대를 이끌고 전진하여 유명한 반전 운동가로 거듭난다.[12]
이후 코빅은 1972년 닉슨의 선거 캠프에 와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I'm here tonight to say that this war is wrong, that this society lied to me, lied to my brothers. They've deceived the people of this country, tricked them into going 13,000 miles to fight a war against a poor, peasant people who have a proud history of resistance, who have been struggling for their own independence for 1,000 years - the Vietnamese people. I can't find the words to express, and the leadership of this government sickens me. People say that if you don't love America, then get the hell out. Well, I love America. We love the people of America very much, but when it comes to the government, it stops right there. The government is a bunch of corrupt thieves, they are rapists and robbers. And we are here to say that we don't have to take it anymore. We are here to say that we are here to tell the truth; they are killing our brothers in Vietnam! We want them to hear the truth tonight!"

“제가 여기 온 건 이 전쟁이 잘못됐다는 걸 말하기 위해섭니다. 이 사회는 나와 내 형제들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나라가 국민들을 기만했습니다. 우린 그 거짓말에 속아 13000km나 떨어진 베트남까지 가서 가엾은 소작농들에 맞서 전쟁을 치렀습니다.[13]

당당한 저항의 역사를 가진 자신들의 독립을 위해 지난 천 년간 투쟁해온 베트남 사람들과 말입니다. 이 정부의 지도자라는 자가 얼마나 역겨운지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듭니다. 사람들은 미국이 맘에 들지 않으면 떠나라고 합니다. 전 미국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현 닉슨 정부에 대해서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정부는 부패하고 썩어빠진 도둑 집단입니다. 저들은 강간범이자 강도입니다. 이제는 묵인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 우린 여기까지 왔습니다. 진실을 말하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베트남에 있는 미군들을 살해하고 있는 저들에게 진실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물러나고, 민주당이 인기를 얻으면서 코빅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대회장에 연사로 초청된다. 연단을 향해 휠체어를 밀고 가는 코빅의 눈 앞에, 언젠가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TV로 들으며, "론 네가 대통령처럼 멋진 연설을 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14][15]

3. 한국판 성우진(KBS)



4. 여담


당시 할리우드의 젊은 청춘 스타로 떠오르던 톰 크루즈가 '''전쟁으로 폐인이 된 론 코빅을 실감나게 연기'''하며, 대중들에게 톰 크루즈는 결코 얼굴만 반반한 젊은 스타가 아닌,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연기자'''임을 각인 시켜준 작품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그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고 강력한 수상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하필이면 이때 함께 후보에 오른 인물이 전신마비를 겪었지만 화가로써 살다간 크리스 브라운의 실화를 영화화한 '나의 왼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였고 아쉽게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남우주연상을 넘겨주었다.[16] 다만, 크루즈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을 하였다.
감독 역시 반전(反戰)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올리버 스톤의 베트남전 3부작 중 2편에 해당하는 영화. 플래툰과 7월 4일생, 하늘과 땅으로 베트남전 3부작을 완성시킨다. 이후 올리버 스톤은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의식 있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다.
[image]
1989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직후 톰 크루즈(왼쪽. 남우주연상), 실제 주인공인 론 코빅(가운데. 각본상)[17], 올리버 스톤(오른쪽. 감독상)의 모습. 코빅은 이후 2003년 이라크전 등의 반전 운동에도 참가했다.
영화 속 일부 내용은 실제 사건이 아닌 극화된 것이다. 첫째, 코빅의 어린 시절 짝사랑이자 반전 운동에 적극 참여한 도나는 실존 인물이 아닌 극중에만 등장하는 캐릭터다. 둘째, 코빅은 그동안의 애국주의적 가치관에 회의를 품게 된 시라큐스 대학에서의 반전시위 과잉진압 현장에 없었다. 해당 사건이 그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TV로 지켜봤다. 그리고 셋째, 영화 후반부에 코빅이 베트남에서 자신의 오발탄으로 사망한 동료 병사의 유가족을 만나 사과하는 장면도 실제로는 없었다. 위키피디아의 해당 내용
2003년 3월 23일에 KBS 명화극장에서 방영했으며 2006년, 2010년, 2011년, 2014년, 2019년 EBS에서 세계의 명화로 통해서 방영된 적이 있다.

[1] 영화 제작 이전에 출간된 그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했다.[2] 톰 크루즈가 배우로써 얼굴도장 찍은 것이 영화 탑건이라면, 톰 크루즈가 연기파 배우로써 거듭난 영화는 7월 4일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탑건이 전쟁 영웅을 찬양하는 액션물인 반면, 본작은 반전 영화로서, 정치적으로 정 반대의 성격이다.[3] 참고로 그해 작품상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남우주연상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나의 왼발>로 수상)가 차지했다.[4] 배역을 맡은 톰 크루즈 역시 학생 시절에 레슬링 선수였다고 한다. 근데 특별하게 생각할 건 없는 게 미국 중고등학교에선 레슬링이 생활체육이다. 우리나라에서 태권도 유단자 학생과 비슷한 위치다. 다만, "선수"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에이스였다는 것이다. [5] 해병대 모병관 역으로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베트남전 첫 영화인 '플래툰'에서 냉혈한 번즈 상사로 열연했던 톰 베린저가 우정 출연했다.[6] 극중에선 미군의 총격에 의해서 학살당한 민간인들 사이에서 살아있었던 갓난아기마저도 죽는다. 전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생명을 앚아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이다.[7] 노을이 져 눈에 햇빛이 비치는 상태에서 빌리가 튀어나오니까 적군으로 알고 쏘아 버렸다.[8] 되는 과정이 상당히 불쌍하다. 일단 입원한 군병원 시설 자체가 열악했고, 예산 때문에 기구와 치료제가 부족했다.게다가 코빅이 불만을 토로하니까 수면제를 먹여 재우려는등 약물을 남용하는곳이다.[9] 다만 실제로는 베트남 파병 직후에 곧바로 부상을 당한 것은 아니었고, 군 생활 2년만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것도 원래는 1년을 채운 후 미 본토로 복귀했다가 본인의 지원으로 베트남에서 추가 복무하던 중에 사건이 발생했다. 만약 그가 베트남에 남지 않고 타 지역에서 계속 복무했다면, 이후 그의 인생은 전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위키피디아의 론 코빅[10] 하지만 이 연설도 도중에 베트남에서 겪었던 끔찍한 기억들의 후유증으로 인해 마치지 못했다.[11] 참전을 독려한 어머니에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은 기독교 윤리로 금지된 자위조차 장애 때문에 하지 못한다며, 마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소리치며 슬퍼한다.[12] 이 때,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외치는 '''"We don't like this FUCKING WAR!"'''가 명대사.[13] 미국에서 베트남의 거리를 측청해보면 13000km다.[14] 이 장면은 좀 역설적인데, 극중에서 코빅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면서 전쟁영웅의 이상을 부추겼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코빅이 베트남에 파병되기 직전에도 아버지는 걱정했던 반면, 어머니는 "공산당을 막아야지. 그건 신의 뜻이란다. 잘했다. 다만 몸조심 하렴."이라고 말할 정도고, 코빅이 베트남에서 돌아오고 난 뒤 반전운동에 휩싸였을 때도 끝까지 전쟁을 지지하던 모습을 보였다.[15] 여담으로 이때 아버지는 "웬만하면 안전한 지역으로 파병가는 게 낫지 않니? 유럽이나 한국처럼"이라고 말한다. 즉 코빅의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정치적으로 극보수에 가깝다.[16] 다니엘 데이 루이스메소드 연기 못지 않게, 톰 크루즈도 이 영화의 촬영 기간 동안 계속 휠체어만 타고 다니며 생활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임했다. 이에 감명받은 실제 주인공 코빅이 자신이 베트남전 참전 때 받은 무공훈장을 톰 크루즈에게 선물했다고 전해진다.[17] 영화 자체가 그의 자서전을 베이스로 각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