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4

 



1. 제원
2. 개요
3. 실전
4. 파생형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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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의 반대방향으로 달린 의자의 용도는 두번째 사진처럼 야전에서 운용병을 눈먼 총알에게서 지켜줄 포방패 정도로 추정된다. 고각/편각을 핸들로 조작하는데 포수가 앉아서 돌리면 포신과 함께 돌아간다.

1. 제원


중량
전투중량 17.7 t, 기동중량 19 t
포신 길이
5.087 m
포탄 중량
'''100 kg'''
구경
'''203 mm''' (8인치)
부앙각
0°~60°
선회각

발사 속도
분당 1발
포구초속
607 m/s
최대사정거리
18 km (11 마일)

2. 개요


203 mm 곡사포 M1931 (B-4) (러시아어 : 203-мм гаубица обр. 1931 г. (Б-4))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에 의해 사용된 중곡사포이다. 전쟁 당시 소련군이 운용한 화포 중 ''''280mm''' 곡사포 M1939 (Br-5) (러시아어 : 280-мм мортира образца 1939 года (Бр-5)) 다음으로 두 번째로 가장 거대한 곡사포였다. Br-5는 워낙 커서 운용이 불편하고 숫자도 적은 탓에 실전 사례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실제로 전장에 투입되어 전과를 올린 곡사포 중에는 가장 크다고 할 수도 있겠다. 요새화 된 적 진지를 쳐부수는 목적으로 1931년에 니콜라이 니키티츠에 의해 개발이 시작되어 1932년에 생산이 개시되는 빠른 개발 과정을 거쳤다. 쓸만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인지 냉전 기간에도 사용되었으며 개량형들이 1990년까지 생산되었다. '''203 mm'''에 이르는 거대한 구경과 '''100 kg'''이라는 압도적인 포탄 중량을 바탕으로 스탈린의 오르간과는 차원이 다른 한방 위력을 자랑했으며 독일군에게는 '''스탈린의 오함마'''라는 별명을 얻어 공포의 대상으로서 군림했다. 총 871문이 생산되었고, B-4를 운용하는 포병대대들은 모두 스타프카(소련군 최고사령부) 직속으로 편성되어 오늘날의 탄도미사일과 유사한 전략 무기로써 운용되었다.
독특한 점은 최고 20t에 이르는 이 거대한 중곡사포가 지극히 미약하게나마 자주화되어있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무한궤도 트랙터 차체 위에 실려있었으며, 사륜 차량 차체에 장착한 B-4M이라는 파생형도 존재한다. 이는 당시 소련이 농업 집단화의 영향으로 과학적 사회주의에 따른 과학적 영농이라는 미명 아래 트랙터를 국가 주도로 대량 보급한 데에서 기인한다. 농업을 비롯하여 여기저기에 트랙터 차체를 마구 뿌렸는데, 곡사포도 견인포로만 운용하는 것은 불편할 테니 아예 트랙터 차체를 기본 장착하자는 발상 아래 개발이 진행된 것이다. 다만 무게가 무게인 데 비해 엔진 출력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하여 속력은 가장 이상적인 환경 하의 도로상에서 14 km/h에 불과했다. 때문에 보통은 견인포로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운용되었다. 하지만 자주화된 차체가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매우 느리지만 자체적으로 회전이 가능하여 일일이 삽질해가며 재방열할 필요가 없었고, 동력을 이용해 포신의 부앙각을 조정할 수도 있어 소비에트 인민의 힘과 결합되면 그 거대한 구경 치고는 빠른 속도로 조준이 가능했다. 그리고 차체에는 반동을 흡수하기 위한 설계도 반영되어 있는 등, 소련 화포 치고는 호화판 사양을 자랑한다.
아래에 나오듯이 이를 제대로 된 자주포로 개량하는 시도도 이뤄젔으나, 너무 큰 덩치와 무게, 그리고 비용 문제로 인해 신통치 않은 결과를 내고 실패했다. 무한궤도는 단순히 진지이동에서의 편의만 있었던 듯 하고 사진 상으로 볼 때 실제로는 견인포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일반적인 견인포와 마찬가지로 방열을 위한 가신이 있는 것이 확인된다. 방열할 때마다 발톱을 끼우는 게 아니라 자주포 운용을 어느정도 감안한 설계로 인해 마른방열을 자주할 것임을 전제로 한 일체형인 듯.

3. 실전


어느 소련군 무기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이 거대한 곡사포도 본격적인 전과를 올리기 전, 독소전쟁 초기에는 독일군에게 여럿 노획되어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특히나 너무나도 무거운 탓에 운용 인원들이 포를 그대로 내버려둔 채 달아나는 일이 많았다. 우크라이나 북서부 두브노(Dubno)에서는 스타프카 직속 포병사단을 후퇴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탈탈 털어버린 독일군이 단번에 27문을 온전히 노획하여 그 포구를 전 주인에게 향했다. 소련군 무기 노획하기를 좋아하는 독일군답게 B-4에도 20.3 cm H 503(r)라는 제식 명칭을 붙여 사용했다. 독일군이 이 곡사포를 어찌나 유용하게 써먹었는지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전 유럽을 횡단하여 정반대편인 이탈리아 전선에서도 연합군을 향해 불을 뿜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로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미군을 막기 위해 프랑스 지역에서도 사용되었다. 다만 급격하게 후퇴하는 전선과 노획 화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문제인 포탄 부족, 정비 능력 부족 등으로 인해 1944년 중후반 이후로는 대부분이 방치되었다.
소련군 소속으로도 독소전쟁 기간 내내 곳곳에서 등장한다. 주로 압도적인 위력으로 요새화된 진지와 벙커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벙커버스터'로서 사용되었다. 또한 소련 기갑사단이 종심돌파를 강행하기 전 사전 포격에도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1943년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는 제18돌파포병사단(18th Breakthrough Artillery Division) 소속으로 라도가 호수 테두리에서 독일군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이 화포는 특히 베를린 전투에서의 일화들이 유명하다. 이미 전쟁은 거의 끝나가고 건물 속에 파고든 잔존 독일군을 소탕하는 일만이 남은 이 시기, 스타프카는 B-4를 한두 문씩 잘게 나누어 시가전을 벌이는 보병 중대 내지는 보병 대대를 지원하도록 했다. 병력 차이가 워낙 압도적이기에 소련군은 곡사포의 생존성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고, 독일군이 농성하는 건물 앞에 대놓고 이 거대한 203 mm 포를 끌어다 놓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직사로 쏴버리는 일이 매우 잦았다. 시가전에서 건물 하나하나를 점령해나가려면 막대한 피를 흘릴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제3제국에 충성을 다하는 골치아픈 독일군들을 마음 편하게 건물과 함께 통째로 날려버린 것이다. 직사 포격의 임팩트가 워낙에 강렬한 탓인지 베를린에서의 직사 포격을 촬영한 많은 영상 자료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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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mm 포탄 한 방이면 우람한 포성과 함께 반동으로 B-4 차체가 밀려나고 전방의 거대하고 고색창연한 독일 건물들이 단번에 우르르 무너지는 것이 확실히 인상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3mm면 8인치로 해군 기준으로는 '''중순양함'''의 주포와 동일한 구경이다.

사실 시가전과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곡사포를 전진 배치해서 직접 사격으로 쏴버리는 전술이 특이한 발상은 아니다. 2차 대전 때는 매우 흔한 전술이었고 현대전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단지 203mm라는 대구경 화포를 그것도 중대 단위로 뿌려버리는 수준은 분명 비범하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다만 이 무시무시한 대포도 동물원 대공포탑에는 이빨도 안 들어갔다는 게 함정.

4. 파생형


  • 203 mm 곡사포 M1931 B-4M : 트랙터 차체가 아닌 사륜차량을 사용한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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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시에는 이렇게 보조바퀴까지 달아서 나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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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시에는 이렇게 쭈그려 앉는다.
  • 20.3 cm H 503/1 : 독일군이 B-4를 노획한 후 새로이 부여한 제식 명칭. 독일의 조준기로 개량한 경우도 있었다.
  • 20.3 cm H 503/2 : 독일군이 B-4M을 노획한 후 새로이 부여한 제식 명칭. 마찬가지로 독일의 조준기로 개량한 경우도 있었다.
  • SU-14 : 다포탑 전차로서 쓸데없이 커다란 크기를 자랑했던 T-28의 찌꺼기와 T-35의 차체를 유용하여 203 mm B-4를 올린 자주포. 1937년 프로토타입이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프로젝트 진행자가 숙청당해서 5대만이 생산되었다. 2대가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실전을 겪었고 2대가 종전 후까지 살아남았다. 1대는 1960년 폐기처분되었으며 최종적으로 1대만이 살아남아 러시아 쿠빙카 전차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 S-51 : 203 mm B-4를 본격적으로 자주화시킨 프로토타입 자주포. 1943년 가을 그라빈 중앙 야포 설계국에서 설계가 시작되었으며 KV-1S의 차체에 B-4를 장착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1944년에 이루어진 시험 운행의 결과, 차체가 203 mm의 반동을 이기지 못해 진동이 발생하여 명중률이 떨어지고, 자주화가 목적임에도 속력이 야지에서 15 km/h에 불과하여 시제차량 3대만이 생산되고 종결되었다.
  • SU-203 : 소련군이 S-51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SU-152에 B-4를 개량한 203 mm M-40을 직사포로 장착해보고자 했던 페이퍼플랜 자주포. 하지만 실제로 개발되었더라도 극단적으로 낮은 발사 속도와 휴행 탄수 등으로 실전에서의 운용에는 다종다양한 애로사항이 꽃피었을 것이다. 애초에 전제인 203 mm M-40 포부터가 경량화의 대가로 시험사격 시 머즐 브레이크와 유압장치가 박살이 난 탓에 취소되어 그저 구상만으로 끝났다.
  • Object 212 : 203 mm B-4를 자주화시키기 위한 소련의 끝없고 눈물겨운 노력의 마지막 시도. 1940년 8월에 이미 203 mm B-4의 자주화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나왔고 타당하다는 평가를 받아 개념 설계가 레닌그라드-키로프 공장 산하 제2번 특별설계국(The Special Design Bureau No.2 of Leningrad Kirov Plant)에서 시작되었다. 차체는 KV-220을 기반으로 했고 이미 1941년 2월 24일에 설계가 완료되었지만, 전황이 급박한 탓에 시제 차량이 생산되지는 못했다. 1941년 8월에 이르러 설계도면이 우랄바곤자보드에 넘어갔으나 마찬가지로 시제 차량은 생산되지 않았다. 이후 전쟁 기간 내내 설계가 계속되었지만 결국에는 지도부의 기억에서 조용히 잊혀져 갔다. 최종적인 도면에 따르면 S-51에 비해 개량된 차체에 의해 포의 가동 범위가 넓어져 조준과 장전이 쉬워졌으며, S-51이 단 12발, SU-14가 단 16발의 휴행탄만을 가지는 데 비해 최고 40발의 203 mm 포탄을 실을 수 있어 지속사격능력이 크게 증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제 차량은 생산되지 않았다.

5. 기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소련군 소속 반격 전술(Counterattack Tactics) 지휘관 전용 곡사포로 등장한다. 다른 곡사포를 압도하는 위력과 1발만을 쏘는 대가로 여타 곡사포의 2/3에 불과한 쿨타임, 정밀 사격이라는 사기 스킬의 조합으로 게임 내 최강의 곡사포 자리에 군림했으나 정밀 사격의 삭제라는 뼈아픈 너프로 인해 평범한 축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여전히 곡사포 중에선 상당히 쓸만한 편이다. 위에서 언급한 직사 포격도 구현되어있다. 다만 고정된 건물이 아닌 움직이는 차량만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괴악한 스킬.
2017년 2월 1일 현재는 인구수와 스캐터 명중률이 잠수함패치로 인해 사장되었다.
인천상륙작전(영화)에서 B-4M형이 등장한다. 영화상으로 인천주둔 북한군이 월미도에 건설한 포대에 토치카형식의 해안포로 사용하며 총 4문이 설치되었다. 유엔군의 함포사격이 멈춘 후에 상륙정들과 함선들을 향해 사격을 가한 이후 직접 지휘하는 림계진의 명령에 따라 맥아더가 탑승중인 함선을 향해 조준하고 발사하려 한다. 이에 장학수 대위는 노획한 자주포로 저지를 시도했고, 첫번째 발사된 탄은 빗나갔으나 바로 쏜 두번째 탄이 명중되면서 내부에 보관중이던 탄약이 유폭됨에 따라 포대가 파괴되고 내부의 인원들은 전멸하고 만다.
FPS 게임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의 게임 실행 시 20초 가량의 인트로 영상에 상단의 베를린 시가전 발포 영상이 삽입되어 있다. 발포 순간만 나오는 0.5초도 안되는 반짝 출연이지만 게임 분위기와 더불어 플레이어에게 엄청난 위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