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ON M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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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리그 최초의 저저전 결승에서 목동, 마침내 거인이 되어 일어서다.

'''G~G!!! GG~!'''

'''조용호가!... 프로게이머 조용호가!... 자신의... 프로게이머 인생 최초의! 우승을 거두는 장면을 여러분께서는 지켜보고 계십니다!'''

- 결승전 4경기 종료 직후 캐스터 김철민의 우승콜

1. 개요
2. 리그 위신 정립
3. 리그 진행
4. 폭발해버린 MBC GAME의 인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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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대회 기간: 2005년 10월 6일 ~ 2006년 1월 14일
  • 사용 맵: 러시 아워 2(Rush Hour 2),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Ride of Valkyries), 알 포인트(R-Point), 다크 사우론 2(Dark Sauron 2)
  • 스폰서: LG전자
  • 스폰서 캐치프레이즈: 당신의 아이디어, 싸이언 MSL로 현실이 됩니다!
  • 조 편성[1]
  • 우승: 조용호, 준우승: 없음[2], 3위: 최연성, 4위: 성학승
  • 결승 장소: 광주 염주체육관
  • 리그 슬로건: FIGHT A REAL DUEL
  • 오프닝 BGM: Siam Shade - Fly High
  • 특이 사항
    • 서바이버 리그 최초로 야외투어 진행.(ATI배 6차 서바이버 리그 1라운드 6주차 - 부산 한국해양대학교 특설무대)
    • 16강 더블 엘리미네이션으로 진행된 마지막 MSL.
    • MSL 첫 번째이자 양대리그 최초 저저전 결승.
    • 리그 엠블렘 도입(방패문양). 고정 리그로고 도입.
    • 리그 트로피 조형이 원통형 유리 트로피로 고정.[3]
    • 역사상 첫 리그 스폰서 파행 사태.[4]
    • 테란, 역대 MSL 최소진출(최연성, 서지훈 ,임요환, 이병민)[5]
    • 조용호, 데뷔 5년만의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 눈물의 우승.
    • 최연성이 승자 4강에서 0:2, 패자조 결승에서 에게 0:3으로 참패[6]하면서 한 리그에서 한 선수에게만 5패를 기록함.
    • 8인 차기 시드자 중 4인이 프로토스.
    • MSL 초대 PD인 장재혁 PD의 MSL 복귀.
    • 리그 슬로건 재도입.
    • 우승 상금 : 2,500만원 , 준우승 상금 : 1,000만원
    • KTF 소속 첫 우승자 배출 옆동네 리그는 3년 뒤 이영호가 우승을 한다
CYON MSL 오프닝 링크[7]
CYON MSL 브릿지 오프닝 링크
자세한 대진표는 CYON MSL/대진표 참고.

2. 리그 위신 정립


초대 PD였던 장재혁 PD가 MSL로 복귀하면서 리그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일신했다. 중구난방이었던 트로피를 유리 트로피로 통일시켰고 결정적으로 고정 리그 로고를 도입하여 리그의 통일성을 이루었다. 매번 혹평을 듣던 오프닝도 드디어 제대로 돈을 쓰면서 퀄리티 있는 오프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이 때부터 화면 상단 전체에 통일된 그래픽 패키지를 도입하게 되고 이는 곰TV MSL 시즌1까지 유지된다.[8] 그런면에서 MSL의 터닝 포인트였던 리그.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막전까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3주차가 돼서야 LG전자와 스폰서 계약을 맺는 등 파행 사태가 벌어져 옥의 티로 남게 되었다.

3. 리그 진행


리그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조용호의 눈물의 콩라인 탈출기. 전 시즌인 우주닷컴 MSL 승자조 결승에서 에게 2:3으로 석패한 조용호는 그래도 당시 저그 중에서 을 다전제에서 유일하게 이길 수 있었던 저그라 평가받은 걸 증명하듯이, 이 대회에서 과의 두 차례 5전 3선승제에서 승리, 전 시즌의 패배를 완벽하게 갚아주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의 과 조용호의 저저전은 현대의 저저전 트렌드를 창조했다고 평가받는다. 보편화되지 않았던 9드론 레어 빌드, 이에 대처하는 몰래 멀티 등 상상하기 힘들었던 저저전의 양상이 속출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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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을 확정지은 후 조용호의 하늘로 뻗는 스트레이트는 이 대회 최고의 명장면이었다.[10]
은 이 대회에서 최연성과 두 번의 다전제를 치르고 두 번 다 셧아웃시켜 5:0이라는 희대의 스코어를 만들었다.[11] 이때 최연성은 저그전에서 거진 무적 포스를 보여주던 테란이라 그 충격은 더더욱 컸다. 그도 그럴것이 2005년 6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최연성 저그전이 '''25승 9패 74%''' 승률인데 이 중에서 '''7패'''가 전 이었다.[12]
하지만 은 이 대회 우승자인 조용호와도 두 번 만나 승자 결승에서 2:3, 최종결승에서 1:3 패배로 두 번 모두 제압당하면서 MSL 2연패에 실패했다. 결승전을 패배하고 눈물을 흘리는 등 순수한 승부근성을 보인 의 모습을 지금 시점에서 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 대회 결승은 피디팝 MSL 결승전 이전까지는 저저전 결승 중에서도 가장 시망인 대회로 통했지만, 사실은 의외로 관중이 꽤 있었고 시청률도 꽤 높았다. 다만 저저전이란 편견과 경기전 인터뷰조차 안한 진행덕분에 엠겜이 자기 스스로 무덤 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또한 주목할 만한 명경기는 김성제이병민의 패자 8강 1라운드 3전 2선승제 시리즈. R-Point에서의 2차전은 프로토스의 견제 능력의 극한을 보여 준 경기로, '''일꾼의 씨가 마른 덕에 기지가 안 밀리고도 유닛 숫자가 0이라 GG가 나온''' 유닛 엘리미네이션이 나온 경기였다.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에서의 3차전도 초반에 쿨하게 본진을 날려먹고 섬으로 이사가 역전한 보기 드문 경기.[13]
성학승은 이 리그에서 천적이었던 박정석을 2번이나 다전제에서 격파하고 개인리그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지만 패자조 준결승에서 만난 최연성에게 3:1[14][15]로 패배하면서 MSL 4위로 리그를 마무리했다. 그래도 성학승 개인 입장에서는 그동안 KPGA 월별리그 시절에만 잠깐 활약하고 이후 개인리그에서 부진했지만 이 대회 4위를 차지하면서 오랜만에 양대리그에서 자신의 이름을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4. 폭발해버린 MBC GAME의 인내심


기어코 결승전에서 저저전이 터지며 흥행에 실패하자, MBC GAME은 결국 차기 MSL이었던 프링글스 MSL 시즌1에서 대대적인 리그 시스템 개편을 감행한다. 그러나 흥행 실패는 좋은 구실이었을 뿐. 사실 그 전부터 더블 엘리미네이션 특성상[16] 리그의 직관성 부분에서 많은 비판[17]을 받았고, 프로게이머 협회[18] 역시 지나치게 많은 경기수[19]와 시드[20]를 이유로 내부적으로 MSL을 기피하는 등 리그 개편의 필요성은 이미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다.
[1] 조편성은 전 대회 시드권자 8명이 원하는 대진 상대를 지명하는 상당히 심플한 방식으로 지명되었다. 사실 풀 더블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인 만큼 조는 큰 의미가 없다.[2] 승부조작으로 인한 영구제명으로 기록 몰수[3] 이후 마지막 MSL까지 이 트로피의 형태를 유지했다.[4] 조지명식과 개막전을 스폰서 없이 치렀다가 후에 LG전자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결말은 다들 알다시피....[5] 이 멤버는 So1 스타리그 2005의 테란 진출 멤버와 동일하다.[6] 최연성의 커리어 사상 두 번뿐인 5전 3선승제 셧아웃 패배. 그 전 대회인 우주배에서도 박정석에게 0:3으로 패배한 적이 있다.[7] 김철민 캐스터가 제일 좋아하는 MSL BGM이라고 한다.[8] 사실 MBC게임의 통일된 그래픽 패키지는 스니커즈 올스타리그에서 처음 도입된 다음 차례대로 프로리그와 MSL에 도입되었다.[9] 여담으로 이때 결승에서 조용호는 경기 당일날까지도 연습보단 어떤빌드를 짤 지에 더 신경쓰고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당시 kt연습생이었던 이영호는 조용호가 저러는 것을 보고 마재윤한테 압도적으로 지겠구나 했는데 결승당일날 조용호가 마재윤을 3:1로 잡아버리면서 진짜 천재가 있구나하며 대꿀멍했다고 한다. 조용호는 원래 성실하지는 않은 선수로 유명하다[10] 그리고 이 장면은 그 다음주 esFORCE 잡지의 표지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다음 MSL인 프링글스 MSL 시즌1 오프닝에서도 차용되었다.[11] 특히 최연성과 라이드 오브 발키리즈에서 펼친 패자 결승 1경기MSL 100 명경기 중 10위에 선정되었다.[12] 그 이후에도 을 제외하면 최연성의 저그전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유달리 에게만 약했다.[13] 참고로 2경기는 MSL 100 명경기 중 12위를 기록하였고, 3경기는 MSL 100 명경기 중 15위를 기록하였다.[14] 스코어는 3:1이었으나, 사실상 4:0 관광 소리가 나온 경기였다. 최연성이 2:0으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3경기도 유리하게 운영하였으나 한방병력이 막히자 GG를 선언했는데, 해설진들은 성학승이 GG친 줄로 착각하고 "최연성이 3:0으로 결승진출했다"라고 진행했다가 뒤늦게 정정할 정도로 알 수 없는 GG 타이밍이었다. 물론 그 이후 4경기는... 하지만 그렇게 패자 결승에 올라간 최연성도 에게, 그리고 그 도 조용호에게...[15] 단 성학승이 4:0 관광 이야기가 나왔던 3경기는 해설진이 옵저버가 보여준 최연성이 밀어붙이는 장면만 보고 최연성의 5시 멀티가 뜬상태에서 오랫동안 방치되어 최연성의 자원줄이 말라가는 상황을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양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는것처럼 최연성이 져줬더거나 완전히 유리한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최연성은 자원이 마른상황에서 한방병력, 베슬이 모두 잡히고 성학승은 자원줄 3개가 돌아가니 '''최연성 입장에서는 GG를 칠 상황이 맞는 상황이었다.'''[16] 재적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직관성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같은 더블 엘리미네이션이지만 4명으로 구성된 온게임넷 듀얼토너먼트와 16명으로 구성된 개편 전 MSL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17] '''스타우트 MSL 개막일'''부터 듣던 소리였다.[18] 이름만 프로게이머 협회지 사실상 프로게이머 감독 협회였다.[19] 우승까지 적으면 11경기(1+2+2+3+3), 많으면 '''28경기(1+3+3+3+3+5+5+5)'''를 치러야 한다. 같은 시기에 열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는 우승까지 적으면 11경기(3+2+3+3)를 치러야 하는 건 MSL과 똑같고, 스타리그의 무제한 재경기 규칙 때문에 많으면 이론상 경기를 무한히 많이 치러야 하지만, 스타리그에서 28경기를 치르려면 재경기 횟수를 아무리 적게 잡아도 기본경기 최대 경기수인 16경기(3+3+5+5)에다 16강 3자 재경기를 '''6번 연속''' 해야 한다. 참고로 스타리그에서 치러진 가장 많은 재경기 횟수는 4번.[20] 16명이 참가하는 리그인데 시드만 무려 8명으로, 패자조 8강 1, 2라운드 탈락자들을 제외한 전원에게 시드가 주어졌다. 같은 시기에 열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는 전 리그 우승자, 준우승자, 3위, 듀얼토너먼트 1라운드 우승자까지 4명. 신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문턱도 낮은데다 하부리그 우승자 시드까지 있는 스타리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이 대회에서 하위 시드 네 자리는 강민, 박정석, 김성제, 박정길이 차지하여 '''전부 프로토스가 독점 차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본선에 어렵게 올라온 신인 테란 플레이어들은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