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훈(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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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력
1.1. 개인 리그
1.2. 팀 단위 리그
1.3. 전적
2.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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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세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팀 GO 시절부터 활동한 올드 게이머 중 한 명. 참고로 클랜 사이트답지 않은 광범위한 규모 확장을 통해 와이고수로까지 서비스를 확대한 YG클랜의 일원이기도 하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좋은 활약을 보였으며 당시 프로게이머였던 김정민과 강민의 추천으로 GO에 입단하였다.[8]
챌린지리그 1위를 통해 스타리그 시드를 얻은 최초의 게이머이기도 하다.[9] 그렇게 처음 진출한 파나소닉 스타리그에서는 8강에서 이윤열과 조용호에게 각각 패하여 총 1승 2패로 탈락하지만, 두 번째로 진출한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서 돌아온 황제 임요환을 4강에서 '''3: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 결승 상대인 홍진호를 상대로 3:2로 역전승하여 우승을 거뒀고, 동시에 홍진호의 준우승 경력을 늘리게 된다. 이 때 우승 소감으로 현장에 와 계시던 어머니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 많이 사랑해요!!"'''라고 외친 장면이 명장면. 또다시 맞이한 준우승에 상당히 짜증내던 홍진호의 팬들마저 뭉클하게 만들었다.[10] 더불어 그의 팬들은 이후 그가 그 어떤 삽질#s-1.1.1을 하더라도 그 장면을 돌려보며 그에 대한 빠심을 다시 불타게 했다고...
이 시절 보여줬던 레이스 산개는 게임의 백미. 그 후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둘다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특히 팀리그에서는 '''테란 최초 올킬러'''가 되었고 올킬은 2번씩이나 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당시 좋은 활약을 보였던 테란플레이어인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과 함께 4대 테란으로 불리우기도 했는데, 당시는 프로게이머들은 모든 면이 상향 평준화 된 요즘과는 달리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어 개개인의 특징이 있었는데, 마이크로 컨트롤과 전략으로 대표되는 임요환, 탄탄한 기본기와 운영에 강점이 있는 이윤열, 그리고 무시무시한 물량과 두뇌싸움에서 우세를 보인 최연성과는 다르게 서지훈은 바이오닉과 메카닉, 물량과 컨트롤, 운영, 전략에서 특별한 약점 없이 안정적인 기량을 보여주며 정석 플레이에 능한, 밸런스가 잘 잡힌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면에 평균적인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바꿔 말해 특이한 강점도 없단 말도 되듯 다른 선수들을 압도할 강점이 부족했으며, 비정석 플레이에 약한 점이 있었다. 다만 안정적인 스타일 덕에 좀 부족한 프로게이머들을 너무 당연하게 이기고 다녔기 때문에 양민학살자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 이미지는 공무원 수준으로 8강을 찍는 것도 한 몫 했는데, 서지훈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스타리그 승률 1위였다.[11]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서 우승한 뒤에도 8강은 기본으로 찍고 가끔 4강에도 올라가기도 했지만 그 8강, 4강에서 기세등등한 선수들과 만나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8강, 4강에서 서지훈을 꺾은 선수는 대부분 우승을 차지했으니 개인리그의 중간보스격 존재랄까.[12][13]
이는 같은 팀 소속이었던 정석테란 김정민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서지훈은 김정민의 탄탄한 정석플레이를 기초로 물량과 컨트롤을 강화한 '''업그레이드판 김정민'''이라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14] . 지금에 와서 보자면 '''나 할 거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테란의 마인드를 보여준 테란. 퍼펙트 테란이라는 별명 역시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본인은 양산형 테란이 아니지만, 양산형 테란의 롤모델이 된 테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꿔 말한다면 테란이라는 종족 자체의 강함을 가장 잘 보여준 선수. 타 종족으로 꼽자면 시기가 좀 많이 차이나긴 하지만 김준영 같은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사실 약점이 없다는 그가 정말 못하는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바이오닉 운용 시의 '''베슬 관리.'''[15] 기본적으로 마린이나 벌처, 레이스 컨트롤은 그렇게 안정적이고 때로는 임요환, 이윤열 못지않게 화려하고, 최연성보다 압도적이었지만 정작 베슬은 그 관리 잘한다는 임이최와는 다르게 스커지 쓰듯이 조공하는 장면을 잊을 만하면 노출했다. 올림푸스 스타리그 결승 홍진호와의 5전제는 전체적으로 명승부로 유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베슬을 잘 잃는 모습으로 팬들의 혈압을 올렸으며,[16] 전성기 끝물인 2005 시즌까지도 딱히 교정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는 SK 테란으로 하이브 저그를 상대하는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형화된 다수 탱크 한타만 고집하게 되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바이오닉 테란의 한방이 더 이상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마조작 시대에 들어서는 저그전의 몰락을 겪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저그전이 몰락하게 되면서 서지훈은 개인리그에서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경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를 마지막으로 박카스 스타리그 2008에 진출하기까지 5번의 대회에 나가지 못했었고, MSL의 경우 프링글스 MSL 시즌2부터 곰TV MSL 시즌4까지 꾸준히 8강 이상에 진출했지만 이마저도 사실 저그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은 16강 첫 경기에서 서경종을 꺾은 프링글스 MSL 시즌2가 유일하다.. 프로리그는 상대팀에서 저그가 많이 출전 하는 이상 말할 것도 없이 부진했었다.
이겨도 져도 변하지 않는 시크한 표정과 수려한 외모로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한때 디씨에 우후죽순 인물갤이 난립하기 전에도 이윤열, 박정석, 임요환, 홍진호와 더불어 개인 갤러리를 갖고 있던 몇 안되는 게이머.
당시 소속팀이였던 GO가 가진 커리어에 비해 창단 작업이 늦어지게 되어 강민, 박태민, 전상욱 등과 같은 주력 선수들이 하나 둘 팀을 떠나게 되나 서지훈만은 꿋꿋하게 떠나지 않는 대인배스런 행보에 팬들의 마음을 졸이게도 했다. 하지만 결국 2006년 4월, 팀이 CJ 엔투스로 창단되어 그간의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 시기, 조규남 감독은 '''팀 내 최다연봉''' 자리를 주며 서지훈의 기다림에 보답했다. 게다가 은퇴 후에는 CJ 정직원 채용까지 되었으니 잘 됐다.
이후 기량이 하락, 2009년 3월 9일 공군 ACE에 입대한다[17] . 그리고 2009년 5월 31일, 황혼의 그림자에서 펼쳐진 고강민과의 경기에서 승리해 입대 후 첫 승과 동시에 개인전 360일만에 승리를 거두는 쾌거를 이뤘다. 이 승리는 참고로, 한해 전 6월 3일에 한때 팀동료이기도 했던 이재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후 11개월만에 거둔 프로리그 승리였다. 쿨하게 GG를 치던 예전 모습과는 달리, 저그에게 3가스를 주고 시작하는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끈덕지게 버텨 승리를 따냈다. 다만, 경기 자체는 고강민의 삽질이 빚어낸 일이다. 대체로 서지훈은 열심히(...)는 했다는 평. 고강민의 체제 자체가 히럴(...)이라 경기 양상이 심히 올드스러운 점도 한몫했다. 그리고 6월 8일 eSTRO전에서 김성대를 상대로 승리를 하여 근 1년만에 연승을 이어갔으나, 6월 14일 神상문에게 패배하여 연승이 끊겼다. 그리고 이 경기 이후로는 거의 제대로 출전 기회도 잡지 못했다.
전역이 임박한 상황에서 팬들은 서지훈이 선수 생활을 지속할지 코치로 전향할지 아니면 해설로 전향할지 궁금해하며 서지훈의 진로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 2011년 4월 8일 자로 제대했으며, 10일날 팬미팅 자리에서 진로를 밝힐 것이라고 하였다.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서지훈은 자기 몫을 잘 해낼 거라고 믿는 팬들이 많았다. 서지훈이 입담이 좋은 게이머로 평가받았기에 해설자로 전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팬들도 있었다.
후에 알려진 바로는 공군 ACE 시절에 손목 부상 때문에 자주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2011년 4월 10일, 하이트 엔투스 팬미팅 현장에 나타나 '''친정 복귀'''를 선언하였다. 공군 ACE 복무 막판에 좋은 경기력을 보였던데다 선수생활의 의지도 강한 듯하니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의 선수생활 지속만으로도 올드팬들은 대환호를 하였다.
일단은 하이트 엔투스에 합류하였고, 일단 4월 프로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신상문 외에는 딱히 믿을만한 테란 카드가 없었던 하이트였던 만큼, 출전 기회를 은근 잡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심스레 할 수 있었다.
허나 이후 하이트 엔투스가 CJ 엔투스로 회귀하면서 플레잉 코치를 담당. 선수로서의 서지훈의 모습은 점점 멀어져 갔다.
2011년 9월 24일에 '''7년동안 사귄 여자친구#s-1'''와 결혼을 했다!
2011년 12월 23일 전격 은퇴하였다. 은퇴 후 팀내 코칭 스태프나 게임 해설가가 아닌 CJ 엔투스의 본사인 CJ에 스포츠 마케터로 입사하였다. e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모기업''' 정직원 취업 사례다.[18][19]
2012년 1월 3일, 프로리그 시작 직전에 은퇴식을 치뤘고 조규남 전 감독, 김동준, 강민 등 전 GO 출신 선수들과 지인들이 축하해 주었으며, GO 출신은 아니지만 한때 서지훈과 라이벌 구도였고 절친이었던 이윤열 역시 그에게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2012년 5월 11일 롤챔스 시드 결정전 인섹 사건으로 비탄에 빠진 리그 오브 레전드팀 거품게임단을 보고 GO시절이 생각났는지, CJ 엔투스 프론트에 거품게임단 영입을 직접 추진했다고 한다. 그리고 2주 뒤 거품게임단 멤버들은 KeSPA 소속 첫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팀으로 거듭났다. '''오오 서지훈 오오'''!
2012년 6월 15일에 소집해제된 강민과의 레전드매치가 2012년 6월 19일에 열렸다. 경기 자체는 깔끔하게 서지훈의 승리. 하지만 이날 나온 개드립들이 인상적이었다. 레전드 매치에 자리해준 박태민은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휴지와 깊은 연관을 가진 사람들"이라 일컬었고,[20] 강민이 경기 중 채팅으로 서지훈에게 휴지 줄까라고 물어보자, 서지훈이 '''이젠 유부남이라 (휴지가) 필요없다'''는 식으로 대답을 했고, 이에 강민은 서지훈에게 "(결혼하더니) 남자가 됐구나!"라고 했다.(…)
사대천왕이나 본좌, 준본좌 라인에 끼지 못했음에도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상당한 인생의 승리자.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모두 우승하고, 국제전에서 금메달 따고, 억대 연봉도 받아보고, 팬 많고, 게임단에서 군생활 해결하고, 은퇴하면서 결혼하고 대기업 입사까지 했으니 이만큼 잘 풀린 케이스도 보기 드물 것이다. 물론 개인의 피나는 노력과 오랜 기간 무스폰팀에서 고생한 것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지만.
은퇴 후 CJ 스포츠단 프런트에 합류하면서 3년 간 스포츠 마케터로서 일했다. 그러다 새로운 진로 모색을 위해 자진 퇴사를 결정했다.[21] 퇴사 이후에는 내년 1 ~ 2월을 목표로 영어권 대학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고... #
복면스타왕에 출연해 근황을 알렸는데,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차재욱의 아프리카TV에서 합방도 하였다.
2018년 시점에는 현역 시절 아이디에서 따온 제로스라는 화장품 판매업체를 차려서 운영 중이다. 아마존을 통해 한국산 화장품을 미국이나 유럽에 판매하는 업체로 수익이 꽤 잘 나온다고 한다.기사
2020년에는 이성은의 유튜브에 출연하였다.링크 여전히 위에서 언급된 사업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으며, 스타는 가끔 빠른무한만 하는 정도라고...
4. 프로게이머 활동
서지훈(프로게이머)/프로게이머 활동 문서 참조.
5. 기타
- 현역 시절엔 손이 대단히 빠른 게이머인걸로 유명했다. APM이 400대인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이는 당시 이윤열과 거의 비슷한 수준. 대신 서지훈의 경우 이윤열보다 헛손질이 많은 편이었다. 이윤열의 EAPM이 200대 초중반이었던 반면 서지훈은 180대였다.
- T1 소속 테란 유저들에게 유독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임요환과의 상대전적[22] 은 공식전에서만 7:1, 비공식전을 포함해도 7:2, 최연성과의 상대전적[23] 도 7:4로 상대전적에서 상당히 앞서고 있다. 사제 관계이자 후에 T1으로 이적했던 전상욱에게도 공식전 4:1, 비공식전 포함 7:5로 전적상 우위에 있으며 기량이 많이 하락한 공군 시절에도 T1의 테란 에이스인 정명훈을 마패관광을 보낸 적도 있다. [24] 단 고인규와는 상대전적 2:2로 호각세이다. 하지만 저 2승도 곰TV MSL 시즌3의 16강전 3전제에서 2:1의 스코어로 승리한 것이다. 그리고 고인규의 나머지 1승은 프로리그에서 승리한 것이다.
- 반대로 이윤열에게는 공식전 4:11, 비공식전 포함 6:15로 엄청나게 약한 모습을 보였으며[25] 자신처럼 기본기를 위주로 단단한 플레이에 능한 테란인 이병민에게도 공식전 4:7, 비공식전 포함 4:9로 열세.
- 그래서 한창 서지훈이 이윤열, 최연성 등과 4대 테란으로 불렸을때 서로 간에 물고 물리는 상성으로도 유명했다. 위의 전적에서도 알 수 있듯 서지훈>최연성>이윤열>서지훈>최연성>이윤열>서ㅈ[26] ..이다보니 이걸로도 팬들끼리 키배(...)도 많아 벌어졌었다.
- 최연성이 추후에 2013년 전역하고 OGN 스타행쇼에서 밝히기를 서지훈에게 유독 약했던 이유가 이윤열은 뭘 당하면 이렇게 반응하는 둥, 감정이 느껴졌다고 했으나 서지훈은 아무리 찌르고 들쑤셔도 무슨 쇠 때리는 등 벽돌을 가격하는 것처럼 파악이 안 되고 심리전 자체가 불가능했다며 빌드를 다 먹고 운영으로 이겨도 결국에는 뒤집혔다고 털어놨다. 또한 임요환도 포커 개인방송 도중에, 선수 시절에 유독 상대하기 골치아픈 상대로 서지훈을 꼽았으며 플레이를 할 때 감정이 없는 사람 같다며, 특유의 단단함과 무관심한 플레이가 주 원인으로 본인이 준비했던 전략이 다 통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역설적으로 예리한 타이밍 감각과 자유분방한 스타일로 무장한 이윤열과 자신 못지않은 탄탄한 플레이를 하는 이병민을 상대로는 약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2004년 스카이프로리그 오프닝에서 서지훈의 카메라를 발로 밟는 장면이 프로게이머가 뽑은 역대 프로리그 오프닝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혔다.# 참고로 2위는 박정석의 헤드셋 간지.[27]
- 2005년 8월 3째주에 발행한 세계 최초 e스포츠 주간지인《esForce》에 외모가 연예인 못지 않은 서지훈의 모습이 실려서 매진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서지훈을 촬영하러 왔는데 이 잡지에 실린 외모 때문에 촬영하러 왔다는 루머가 있다.
- 2005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서지훈을 소재로 하여 프로게이머에 대해 촬영한 다큐멘터리가 있으며, 이는 서지훈의 특이한 경력이 되었다. 제목은 'World Cyber Games' 그리고 전 대회 우승자였던 서지훈은 이 대회에서 나도현에게 패배.(...)
- 선수 시절 마조작과의 팀플은 희대의 개그조합으로 유명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1:1:2 경기를 보는 느낌. 비슷한 시기 존재했던 박성준, 박지호 조합과 더불어[28] 개인전이 뛰어난 선수들이 모인다고 강한 팀플이 되지는 않는다는걸 증명하는 사례. 주로 마조작보다는 서지훈의 팀플레이에 문제가 많았으며 김정민 해설이 뒷담화에 나와서 "사람이 적성이라는게 있는데 너는 아니다. 하지 마."라고 무척 단호하게 끊어버렸을 정도에 '마나쌩' 특별회원으로 가입되어있다(...) 본인 왈, "난 항상 혼자 남을 때를 염두에 두고 플레이해."(...)
- 그러나 네오위즈 피망컵 프로리그 시절 강민과는 팀플 궁합이 제법 잘 맞았던 편. 당시 강민은 서지훈에게 팀플을 제안하면서 '내가 다 막을테니까 넌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약속대로 강민은 자기중심적인 서지훈의 플레이를 잘 보좌했고, 서지훈은 강민의 넥서스가 터지든 말든 정말로 하고 싶은 거 다 했다. 그 결과 4승 1패라는 성적을 올렸고, 강민은 '서지훈의 팀플레이를 유일하게 이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모종의 DDR 사건[29] 의 주범인 박태민과 팀이 갈린 뒤에도 친하며 원래는 같이 동기로 입대하려고 했는데, 입대를 위해 체력을 기르려고 운동 중에 늑골 부상을 당해 입영을 한 달 연기하여, 박태민의 후임이 되어버렸다. 안습. 서지훈은 DDR 사건 이후로 박태민을 증오한다고... 물론 이는 둘 사이가 친해서 나온 농담이다. 이후 강민의 개인방송에서 박태민과 함께 출연해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썰을 풀었다.
정확히는 한밤중에 박태민이 화장실을 가던중 GO의 사무실 안쪽에 서지훈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30] 그때 서지훈이 야동을 대놓고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서지훈의 해명에 따르면 당시 앉아있던 자리의 컴퓨터는 당시 숙소의 조규남 감독의 사무실 한켠에 있는 "철이형"이라는 인물의 컴퓨터였는데, 이 "철이형"이란 정황상 당시 GO팀의 매니저/코치 역할로 활동하며 KTF EVER CUP 프로리그 등에 조규남 대신 감독 역할로 간혹 나오기도 했던 모 인물로 추정된다. 서지훈은 다른 사람들이 뭐하나 궁금해 하는 성격이라 다른 사람들의 컴퓨터를 뒤지는 습관이 있었는데 서지훈이 컴퓨터를 뒤적거리다 그 안에 야동을 틀게 되었고 이걸 지나가던 박태민이 보게 된 것이라고 한다.영상 참고
- 은퇴 후, CJ 엔투스는 마스코트 '원스터'가 등장했는데, 스갤러 중 하나가 인형옷 입은 사람이 서지훈일 수도 있다며 개드립을 치는 바람에 '원스터=서지훈'이라는 기믹이 생겨버렸다.
- 이후 스팀팩에서 밝혀진 일화에 따르면 처음 GO 입단 당시에는 말도 짧고 상당히 버릇이 없었다고 한다. 본인 주장에 따르면 단체생활을 해 본적이 없어서라는데... 게임 실력은 좋았지만 버릇이 없다보니 팀 선배인 강민에게 자주 혼났다고 한다.
- 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10-10 클럽 달성 기록을 가지고 있다.[31]
- 복면스타왕에서 푼 썰에 따르면 선수 시절에 감독님에게 이기고도 무표정을 유지하도록 모종의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 공군 ACE에 들어갈 무렵 같은 팀이던 이재훈이 '박태민은 공군에서도 잘 할 것 같아서 걱정이 안되지만, 서지훈이 걱정된다'는 말을 남긴적이 있는데, 그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실제로 박태민은 공군에서도 여러차례 출전기회를 잡았고 중요한 경기에서 이긴 적도 많아서 팀에 기여를 많이 했지만 서지훈은 박태민에 비하면 출전기회도 제대로 잡지 못했고 경기에 나가서도 제대하기 직전을 제외하면 공군 생활 내내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
- 공군 ACE 시절 가장 말을 안 들었던 후임으로 민찬기를 뽑았다. 원래 후임들은 선임들과의 게임에서 패배하면 아무리 분하더라도 군대이기 때문에 분을 삭여야 할 필요가 있는데, 민찬기는 공군 막내인데도 선임에게 게임을 지고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 박태민, 강민과 아프리카 방송에서 나온 썰에 의하면 KTF 게임단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할 뻔했었다고 한다. [32] 헌데 숙소 분위기가 자기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달랐고[33] 정수영 감독의 용안을 보자마자 황급히 도망 나왔다고.(...) 그래서 서지훈이 사라져서 난리가 났고 정수영 감독이 GO 조규남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서 서지훈이 가출했다고 황급히 연락하고 조규남 감독이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하고 모른 척을 했는데, 통화하고 있을 때 서지훈은 조규남 감독 옆에 있었다고(...).
- 서지훈과 박태민의 경기에서, 서지훈의 팬으로 추정되는 여성 관객이 나중에 외모 덕분에 온겜녀로 알려지자, 2005년 웃대에 글을 올려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했다.
-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왼손잡이다. 위의 2004 스카이 프로리그 오프닝 때 왼발로 카메라를 밟는걸로도 알 수 있다.
6. 주요 선수들과의 전적(전체전적)
VS임요환 7:1
VS최연성 7:4
VS베르트랑 2:1
VS한동욱 3:3
VS전상욱 7:5
VS이병민 4:9
VS박성준 5:6
VS박정석 11:9
VS변은종 6:6
VS박태민 6:10
VS이윤열 6:15
VS조용호 11:8
VS이재훈 6:2
VS강민 7:14
VS변길섭 10:7
VS이학주 4:0
VS고인규 2:2
VS서경종 2:2
VS안기효 4:0 - 이 둘의 첫 맞대결은 안기효의 데뷔전이기도 했는데, 여기서 한 번 무승부가 난 뒤 재대결을 하였다. 결과는 서지훈 승.
VS나도현 5:4
VS오영종 4:2
VS윤용태 4:0
VS심소명 2:0
VS박지호 5:1
VS전태규 8:5
VS김현진 4:2
VS강도경 4:1
VS주진철 0:3
VS박경락 12:8
VS이제동 1:4
VS송병구 2:4
VS김택용 1:5
VS홍진호 14:9
VS박상익 9:2
VS도재욱 1:0
VS정명훈 1:0
VS허영무 2:2
VS고강민 1:0
VS김성대 1:0
서지훈은 각 종족전에 특별한 약점이 없어서 기량이 하락하기 전인 2006년까지 거의 모든 상대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34]
특히 그 중에서도 테테전이 매우 우수한데, T1의 테란들인 임요환, 최연성, 전상욱은 전부 서지훈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으며, 또한 주요 대회에서도 서지훈에게 가로막혀야 했다. 전적을 보아도 각각 7:1과 7:4로 스승과 제자 모두 서지훈에게 압도적으로 약한 편. 그 이유는 임과 최의 기본 스타일인 상대 선수와의 심리전을 통한 전략 및 빌드 싸움이 기본기가 매우 우수하고 상대가 뭘하든 나 할 것만 하면 이긴다는 서지훈의 무관심한 스타일과 완벽한 상성관계에 있었다는 것에 기인한다. 사실상 서지훈의 전성기에 강한 면모를 보이던 테란은 이윤열, 이병민 정도 밖에 없었으며, 나머지 선수들은 대다수가 서지훈에게 상대전적이 밀리거나 동등한 전적을 가졌다.
임요환은 2002 4th KPGA, 올림푸스 스타리그 4강의 셧아웃을 시작으로 '''6연패''' 후 프로리그에서 1승하고 또 다시 1패하여 최종전적이 7:1이 되었으며, 최연성 역시 서지훈에게 3:0으로 앞서 나가다가 당신은 골프왕 MSL 승자 8강에서 0:2으로 서지훈에게 패배하여 패자조로 떨어진 후 패자 4강에서 또 다시 서지훈에게 1:2로 패배하였고, EVER 스타리그 2005 8강에서도 0:2로 패배하여 2005년 초의 대회에서 서지훈에게 모두 패배하며 탈락하였다.[35] 제자 전상욱은 WCG 2004 결승전에서 패배하였지만 WCG 2006 예선에서는 서지훈을 잡고 올라가는 등 그나마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스타일이 비슷한 이병민과는 호각세였으나 2006 MBC Movies 서바이버 리그 3차전에서 2:0으로 패배한 후 2007 듀얼토너먼트 1Round에서도 2:0으로 패배하는 등 비공식전을 포함해 연패당하기 시작하면서 상대전적 또한 공식전 4:7, 비공식전까지 합치면 4:9로 밀린다.[36]
대표적인 천적으로는 이윤열이 있으며, 한때 상대전적이 0:10까지 밀렸을 정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윤열은 임요환과 동등한 상대전적을 가졌으나 간혹 가다 관광에 가까운 플레이에 많이 당한 바 있고, 최연성에게는 상당히 약했지만 그 둘을 압도하는 서지훈에게 강하였다. 그래서 최연성 > 이윤열 > 서지훈 > 최연성... 이라는 먹고 먹히는 관계로도 유명하다.[37] 후에 강민, 박태민과의[38] 합방에서 이윤열에게 10판 내리 연달아서 졌던 이유로 "그냥 나 할 것만 하면서 운영싸움을 준비한다는 마인드로 경기했는데 뭔가 자꾸 하다보면 빌드 가위바위보 싸움에서 자기가 항상 져 있었다"고 밝혔다.
위치 운도 안 따라주고 당시에 앞마당 먹은 이윤열은 그만큼 강한 포스를 내뿜었더라도 그래도 제일 자신있어 하던 테테전에서 전혀 밀릴 이유도 없고 물량도 이윤열 못지 않게 잘만 나왔는데 항상 정석적인 운영을 준비해도 이상하게 빌드가 자주 엇갈리면서 어느 순간부터 게임이 터져있었다고. 당시 같이 합방을 하던 박태민은 물량은 이윤열보다 너가 더 잘나오지 않았었냐고 본인의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물량도 운영도 전혀 이윤열에게 꿇릴 게 없었는데 방송 경기만 나가면 이상하게 안 풀렸다고 하며 오히려 같이 연습게임을 할 땐 서로 이기고 지고 했었다고 한다. 저 말이 또 일리가 있는게 이윤열에게 연패를 끊고 나서는 나름 5:5 비율의 동등한 전적을 보였으며 공식전에서도 징그러운 악연을 극복하게 된다.
강민에게는 MSL 8강에서 연속하여 패하는 등 약한 면모를 보였지만, 서지훈이 마지막 불꽃을 태운 곰TV MSL 시즌3 8강에서는 서지훈이 승리하였다.
또한 박태민에게도 약한 면모를 보였는데,[39] 당신은 골프왕 MSL 승자 4강에서 박태민이 2:1로 승리한 후 서지훈이 조용호를 3:0으로 이기고 올라오고, 박태민이 이윤열에게 패배하여 내려온 패자 결승에서 또 다시 박태민이 3:0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EVER 스타리그 2005 3위 결정전에서는 서지훈이 3:2로 승리했다.
7. 관련 항목
[1] 아버지는 중3때 타계하였다고 한다.[2] 은퇴 공시는 2012년 2월 10일[3] 같은 GO소속이었던 현 해설의원 김정민이 붙여준 별명. 얼굴이 잘 빨개져서 서딸기라고 한다. 남자들끼리 부르기에는 다소 무안한 별명으로 보이나 실제 김정민 해설은 선수시절 곧잘 "딸기야"라고 불렀다는 듯.[4] 비프로스트에서 한때 무패를 기록하며 미칠듯한 승률을 보여줬을 때 붙은 별명. 정석적인 운영의 대표격인 서지훈이 전략맵의 대표격인 비프로스트에서 강했다는 게 이채롭다.[5] 박태민#s-1이 썼던 '''서지훈 DDR 자제하면 우승'''이란 낙서 때문에 생긴 것으로, 이후에 방송을 통해 그 DDR이 아니라 춤추는 오락기 DDR이라고 여러 번 해명을 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아니, 오히려 해명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정말 서지훈이 정말 그런 짓을 하는 거 아니냐는 의혹을 남겼다. 더군다나 저 낙서는 당시 '''화장실 문'''에 써 있었다. 하지만 초기 GO멤버들은 김동준 최인규를 비롯 버추얼 파이터나 DDR등 오락실게임 등 넓은 범위로 게임을 즐기는 동호회 개념의 게이머들이 많았기에 영 근거없는 해명은 아니다.[6] 4강에서 전상욱에게 0:2 패배.[7] 에게 2번 패배.[8] 정작 그 둘은 이후 KTF로 이적했다.[9] 이로부터 1년 후 한게임 스타리그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나 챌린지리그 1위를 또 한 차례 차지하며 스타리그 복귀에 성공했다. 챌린지리그 1위를 두 번 차지한 게이머는 서지훈이 유일하다. 2004년 막바지에도 챌린지리그를 통과하긴 했지만 그때는 신예였던 송병구에게 조별 승자전에서 패하면서 듀얼 토너먼트를 거치고서야 스타리그에 복귀할 수 있었다.[10] 다만 이후 홍진호가 무대 뒤에서 준우승의 비통함 때문에 울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는 바람에... 참고로 홍진호의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리그였기도 한지라, 그러한 안타까움 때문에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 결승전은 '''홍진호의 마지막 스타리그 결승전'''이 되어버렸으니...[11] 스타리그가 막바지에는 정명훈이 이 타이틀을 가져갔다. 아이러니한 것은 서지훈이 꼽은 자신의 인생경기로 공군 시절 정명훈 마패관광을 꼽는다는 것.[12] 서지훈을 8강 이상의 무대에서 탈락시키고도 해당 시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게이머는 박정석, 홍진호(...), 이병민, 박지호, 김택용 정도다. 박정석과 김택용은 우승경력 자체야 있지만 해당 시즌에서는 서지훈을 아예 만난 적이 없다. 서지훈을 이기고 결승까지 간 적은 있으나 정작 결승전에서 졌다.[13] 이 이미지가 강한 건 아무래도 시대의 분기점이라고 평가받는 질레트 스타리그와 So1 스타리그 8강전 승부 때문일 것이다. 두 대회 모두 첫 진출이던 박성준과 오영종을 만나 1:2로 패했으며 이 2명은 4강에서 공통적으로 최연성을 꺾고 로열로더를 달성한다. 시대의 분기점이던 이런 대회에서 우승한 이런 거물급 신인들이 꺾은 강자들 중에 서지훈의 이름이 반드시 들어가기에 중간보스 이미지가 생긴것. 그 외에 박태민이 당골왕 MSL에서 우승할때도 2번 만나 1:2, 0:3으로 패했다. 이 3 시즌은 전부 우승자가 역대급으로 빡센 대진을 뚫고 우승한 경우로 유명한데 그런 빡센 대진 중 서지훈이 포함된 것이니 서지훈의 위상을 알수 있다.[14] 엄재경 해설이 언급했다[15] 이 문제는 같은 팀 후배인 변형태도 가지고 있었다. 마조작과 벌인 4강전 5세트에서도 그 많은 베슬을 다 잃어버리며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고 그 다음 시즌 결승전 5세트에서도 역시 베슬을 무리해서 쓰다가 다 잃어버리며 김준영에게 우승자 타이틀을 넘겨주게 된다. 이쯤 되면 CJ 테란의 고질병이 아닌가 싶을 정도.[16] 서로 처절함의 극치를 보여줬던 3경기에서 특히 심했다. 그 수많은 베슬 중에 한기만 제대로 살렸어도 엘리전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우승했기에 망정이지 준우승했었으면...[17] 본래는 (2009년) 2월 16일에 절친인 박태민과 동반 입대할 예정이었으나, 개인 운동 중에 늑골을 다치는 바람에(...) 한달 미뤄진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박태민의 후임이 되고 말았다(...).[18] 최초 대기업 정직원 취업 사례는 2006년 NC소프트에 입사한 여성 프로게이머 이지혜.[19] 원래는 도 STX 정직원 입사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하나 승부조작 크리로 무산. 아직도 팬들은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렸다며 비웃고 있다... 라는 소문이 많이 퍼져 있는데, 정작 당시 STX에 근무했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진영수 입사는 금시초문이었다고 한다.[20] 한 쪽은 콧물토스, 서지훈은 '''D'''ance '''D'''ance '''R'''evolution(실제 이날 경기 중 방청객 한 명의 피켓에 쓰여있던 문구).[21] 단,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 각종 게임관련 커뮤니티나 스갤에서는 실제로는 CJ측으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한 것이라는 썰이 끓이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CJ측이 스타1출신 프랜차이저들을 모조리 방출시키기도 했고...[22] 올림푸스 스타리그 4강에서 임요환에게 셧아웃을 선사[23] 세 번의 다전제에서 모두 승리.[24] 서지훈 본인도 강민의 아프리카방송에 출연해서는 자신의 인생경기로 바로 공군 시절 정명훈 마패관광을 꼽았다. 2020년에 흑운장의 유튜브에 출연해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1팩 1스타를 했는데 벌처로 입구를 때릴 때 아무것도 안오는걸 보고 정명훈이 2스타를 간걸 눈치채고 아머리와 아카데미, 추가 팩토리를 올리고 골리앗을 뽑아서 전술적으로 우위에 섰던걸 승리 요인으로 꼽았다.[25] 한 때는 전적이 10전 전패까지 밀린 적도 있을 정도였다. 이후에는 비등비등한 전적을 보였다.[26] 이윤열이 전성기 시절에도 최연성에게 유독 약했다는 건 이쪽방송들을 조금이라도 시청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프로생활을 접은 2015년 현재까지도 상대전적이 크게 밀려있다. 공식 호구(...)[27] 온게임넷에서 2007년 방영되었던 Do the G 26화 방영분 참조[28] 다만 이쪽은 막장조합은 아니고 중박은 치는 조합이었다. 다만 선수들의 이름값에 걸맞지 않는 성적을 낸 건 사실. 당시 POS의 전력상 이렇게 굴리지 않으면 중위권 성적조차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라고 봐야 한다.[29] 온게임넷의 G.피플+라는 프로그램에서 GO 숙소를 촬영했는데 화이트 보드에 "서지훈 ddr만 자제하면 온겜넷 우승"이라고 써있는 글이 그대로 방송을 타버렸다.[30] 당시 GO팀이 사용하던 숙소 겸 사무실은 벽산 디지털밸리 시절인데, 이때 인테리어는 사무실 벽과 통로 사이를 투명한 유리로 해놓아서 안쪽을 볼 수가 있었다. 문제의 G피플에서도 확인가능.[31] 스타리그 본선 10회, MSL 본선 12회 진출[32] 이 과정에서 네이트배 스타리그 예선전 참가가 취소되기도 했다.[33] 그보다 먼저 KTF에 들어 간 박신영과 친해서 들어간 것도 있는데 서지훈 왈 이 놈도 연습을 안해! 라는 말을 했었다.[34] 2005년까지의 서지훈의 승률은 63%이고 2004년까지의 승률은 65%였다. 승률이 서서히 하락하는 올드 게이머의 전형적인 케이스였다.[35] 그 당시 최연성은 이중계약 징계로 인해 프로리그를 못 나오는 상황이어서 스타리그 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박살났던 것이다.[36] 번외로 최연성과 이병민의 전적은 8:7이며 서로간의 호각세로 큰 차이가 없지만 스타리그 에서의 벌처+레이스 관광 경기가 너무 크게 부각돼서 그런지 최연성이 강세를 보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편.[37] 또한 이병민도 서지훈 못지않은 단단함과 운영싸움을 고수하는 타입이었는데 같이 팀 생활을 했던 탓인지 이윤열에게 상대전적이 2:7로 크게 밀린다. 대표적인 게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4강에서 당한 셧아웃.[38] 이 둘은 각각 빌드와 판짜기를 앞세워 이윤열과의 맞대결에서 팽팽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명경기도 다수 나왔다.[39]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박태민은 초반 견제나 날빌에 흔들리지 않고 일정 시점까지 자신이 준비해온대로 풀리면 매우 수월하게 승리를 챙겼는데, 견제도 잘 가지 않고 자기 할 것만 한다는 마인드의 서지훈은 이런 타입의 선수들에게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