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반응

 


1. 개요
2. 긍정론
2.1. 성곽 터 보존에는 성공
2.2. 건축물을 정치적 맥락에서만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가?
2.3. 패션 중심지로서의 동대문 발전
2.4. 주변 상권 발전
3. 부정론
3.1. 행정적 관점
3.1.1. 해외담론에 좌우되는 공공건축
3.1.2. 불공정한 심사
3.1.3. DDP의 당위성 논란
3.1.4. 한계마저 초월한 예산낭비는 어쩔 건가?
3.2. 역사적 관점
3.2.1. 유물의 훼손
3.2.2. 역사성 계승 실패
3.3. 건물 자체의 문제점
3.3.1. 공간 활용 문제
3.3.2. 외관상의 문제


1. 개요


DDP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알려주는 문서다. 일반인의 반응은 외계 건축물이 연상된다는 의견들이 대부분. 무한도전 지구를 지켜라 특집에서 대놓고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러 온 UFO로 묘사해버리기도 했다.

2. 긍정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DDP로 진입하는 지하 입구에서 받는 느낌은 특별하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지하로 진입하는 에스컬레이터나 대영박물관대영도서관 천장을 거대하게 둘러싸 만든 내부 광장 만큼이나 현대적이다.
DDP에 대한 건축가의 변을 직접 들어보자 자하 하디드 인터뷰. 수석 디자이너인 패트릭 슈마허의 인터뷰. 건축 전문지인 공간에서 진행한 인터뷰이다 보니 업계용어가 난무하지만, 이 건물에 대한 작가들의 개략적인 생각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시공 운운하는 것을 보면 건축가 본인들도 완공된 건물의 완성도에 만족하는 것 같다. 자하 하디드 본인은 주변 경관과 이질적이란 지적에 '''“건축 자체가 지형이 됐다”''' 고 반박했다.
DDP의 건축과정에서 막대한 재정이 소모된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DDP는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수많은 유리궁전식의 문화센터와 대비해서 가장 활발하게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만한 컨텐츠 소비도 따라주고있다.
DDP가 가장 공격 받는 이유는, 서울의 랜드마크급 건물을 짓는데 있어서, 국내의 훌륭한 건축가들을 배제하고,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이 적용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기존 동대문의 상징적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데에 있어 그들이 배제된 까닭에, 한국 건축계가 손발벗고 나서 비난하기 바쁘다. 그 배경에는 해외유명건축가를 높게 평가하고, 무조건 네임밸류만 쫓는 윗분들의 의도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 자체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나쁘지 않으며, 하이테크 건물은 언제나 큰 자본력이 뒷받침 되어야하기에, 건축계를 막론하고 비판받을 요소가 넘쳐난다. 재정문제는 재정으로서만 비판받아야 마땅하지, 몇몇 평론가와 한국 건축계의 말만 듣고, 디자인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설득력이 사실 떨어진다. 그것은 비판이 아닌 '''열폭에 가까운 비난에''' 가깝다. 또한 하이테크 건축물의 특징은 언제나 주변환경과의 조화에 대해 비판을 많이 받지만, 언제나 건축물이 지어지는 배경이 보수적일 필요는 없으며, 하이테크 건축물이 들어서고, 환경까지 영향을 주어 변화시키는 사례도 충분히 존재한다. 훼손과는 다르다.
'''디자인이 비정형이건, 기형이건, 주변과 어울리지 않건, 그것의 대한 평가는 결국 그곳을 이용하는 대중의 몫이지 전문가와 평론가의 평가는 절대적이지 못하다.'''

2.1. 성곽 터 보존에는 성공


DDP의 역사성에 대한 비판은 크게 2개의 층위로 나누어 진다.
1. 한성 성곽과 하도감 터 등 조선시대 유물 복원 미비
2. 동대문 운동장 역사성 승계 실패
문제는 이 두개의 비판이 서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우선, 동대문 운동장터를 복원하고자 한다면 하도감 터는 발견도 못했을 것이고, 한성 성곽 부지를 땅밖으로 끄집어 내는 것도 실패했을 것이다. 동대문 운동장 중 축구장은 한성 성곽을, 야구장은 하도감 터라는 두개의 유적지 위를 덮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대문 운동장의 역사성을 승계하기 위해서 동대문 운동장 부지와 건물을 살리고 리모델링하는 방향으로 잡았다면 한성 성곽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한성 성곽을 땅에 묻힌 상태로 그대로 놔두고 동대문 운동장을 리모델링 해야했기 때문.
반면, 한성 성곽을 살린다면 동대문 운동장을 완전히 살리는 것은 불가능 하다. 야구장은 어떻게 살릴 수 있어도 하도감 터는 아예 발견도 못했을 것이다. 아예 땅이 묻혀있는 것과 그래도 주춧돌이라도 전시되고 있는 현상황 중 어느 쪽이 더 나은가를 생각해 본다면 주춧돌이라도 발견한 현상황이 낫다고 볼 수도 있다.
서울 성곽 복원에 실패하고 수문을 마치 DDP뒷 문 처럼 사용했다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으나 이러한 상황이라도 과거 동대문 운동장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다. DDP건물이 성곽 위를 덮어버리지 않아 성곽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하며 실제로 수문과 성곽 하단부는 잘 관리되고 있다.
당시 시장으로서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건물을 남기고 싶다는 욕구와 한성 성곽길 복원이라는 당초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성공한 건물인 셈이다.

2.2. 건축물을 정치적 맥락에서만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가?


DDP에 대한 평가는 DDP 건축을 결정한 전임 시장인 오세훈에 대한 평가와 항상 함께한다. 대다수의 평가를 보아도 자하 하디드의 신작이라기 보다는 오세훈 전 시장의 오점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크다. 전임 시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건물도 칭송하는 반면 전임 시장을 비판하는 이들은 건물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가 이미 지어져서 기능하고 있는 건물에 대한 냉정한 접근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이미 5,000억이라는 경악스러운 비용이 들어간 건축이고[1] 다양한 공간과 '''디자인'''과 '''예술'''을 위해 기능해야 한다는 목적을 가진 건물이 도심에 위치한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그저 전임시장에 대한 비판 일색으로 건물을 무시한다면, 이는 동대문운동장 역사성 담론을 도외시 해서 DDP를 잉태한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2.3. 패션 중심지로서의 동대문 발전


일각에서는 '그 자리는 터가 좋아 뭘 세워도 잘 될 것이다' 라거나 'DDP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쏟아부은 건축물'이라고 혹평하는 이들이 많지만, 오세훈 시장은 취임 직후부터 서울을 패션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서울 패션위크같은 패션쇼 행사도 적극적으로 지원한 바 있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와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으며, 패션산업에 수반되는 섬유산업도 덩달아 지원하고, 유럽 순방에는 파리 섬유협회장 등 관계자를 만나는 둥 나름대로 동대문을 패션관련 메카로 육성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2.4. 주변 상권 발전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상권에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착공되기 이전부터 동대문 운동장은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2] 서울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구단 중 동대문운동장을 연고로 하는 팀은 하나도 없고 청룡기, 대통령기 같은 고교 야구 대회 정도가 동대문운동장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야구장은 가끔 텅 빈 관중석에서 아마야구 경기라도 했지, 주경기장은 아예 주차장으로 활용하다, 청계천 철거 이후에는 황학동 벼룩시장이 옮겨와 벼룩시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3] 사실상 운동장으로써의 수명은 다 한 상태. 사실 야구팬들에게 동대문운동장은 골동품에 가까운 구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그나마 야구장은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쓰려는 사람도 없는 그냥 장소만 차지하는 흉물스런 존재에 불과했다. 오히려 동대문 시장의 어마어마한 유동인구가 거대한 운동장에 갇혀서 분산되어 있고 상권을 죽이는 요소로 작용했다. 2000년대 이후에 동대문운동장을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두타와 밀리오레 쪽이 아닌 동대문운동장 뒷쪽에 거대한 동대문시장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오히려 DDP를 통해 배후 상점으로 젊은 유동인구가 유입되는 형태. 애당초 고령인구가 찾는다는 이유로 변화를 거부하는 상권이 종국에 어떻게 되는지는 뻔한 결과.

3. 부정론



3.1. 행정적 관점



3.1.1. 해외담론에 좌우되는 공공건축


일제시대에 준공된 건축을 정부주도로 리모델링한 예는 구 서울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다만, DDP가 엄청난 비판에 직면한 것과는 달리 문화역서울284는 한국 예술가들을 위해 공헌하고 있고 서울시민의 삶과 주변 경관에 잘 녹아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오르세 미술관이라는 성공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능을 상실한 기차역, 고전적인 외관,[4] 도시의 중심부에 있다는 위치. 모두 철도역으로 기능했던 오르세 미술관과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높으신 분들이 구 서울역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지 해외의 예를 찾아보면 바로 찾아볼 수밖에 없는 성공사례였던 것. 오르세의 예를 참고하여 미술관으로 꾸미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게다가 이미 많은 작품을 보유해 기존 미술을 전시하는 역할을 하는 오르세와는 달리 문화역서울284는 적극적으로 전시를 바꾸어가며 새로운 예술가들에게 전시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가지 아쉬운 상황이 발생한다. 첫번째는 한국의 높으신 분들이 건축의 환경을 제대로 평가할 안목이 부족하다는 것. 두번째는 한국 건축계가 자체적으로 생명력있는 담론을 생성해 정치/행정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햇다는 것이다.

3.1.2. 불공정한 심사


한국 건축계의 위기를 보여주는 건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거대한 건축물은 외국 유명 건축가에게 맡기고 중소규모의 건축물은 그냥 복붙을 해버리는 식이니 한국 건축가들이 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
당연히 한국 건축가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한 상황이다. 공모전에 한국 건축가들도 다수 참가했으나 외국인의 작품이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해외 건축 디자인 트렌드의 최전선에 선 자하 하디드의 작품인 만큼 디자인의 혁신성은 인정할 만 하나, 한양도성이나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성에 대해 한국인 만큼의 이해도나 애정이 있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지나치게 급진적인 디자인으로 세계적으로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건축가의 작품을 별다른 비판 없이 행정가의 직권으로 수입하지 않았느냐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는 이미 청계천 광장에 클래스 올덴버그의 소라 모양 조형물을 설치할 때도 비슷한 비판을 받은 전적이 있다. 결국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해방 이후 최악의 건물들 20위 중 DDP를 랭킹 5위에 선정하기에 이른다.
현상설계 당시 참가작들을 모아놓은 사이트. 직접보고 판단해 보자. 참고로 해당 현상설계는 지명초청 방식으로 주최측에서 선정한 건축가만 참여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국내 건축가 4인과 외국 건축가 4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3.1.3. DDP의 당위성 논란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하나의 성공신화였다. 별볼일 없는 도시(?)가 건축물 하나로 유명해졌다더라! 라는 이야기는 자신의 업적을 물질적인 형태로로 남기고 싶은 정치인들에게는 구미가 돋는 이야기였다. 이른바 '''빌바오 효과!'''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야! 사실은 구겐하임 미술관 디자인이 한국에 지어질 수 있었는데, 한국 높으신 분들이 보는 눈이 없어서 빌바오로 갔대!'''라는 소문은 여러 모로 아쉬움을 낳았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성공담은 이러한 공식을 머리 속에 남겼던 것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기괴한 건물=세계적인 명소=높으신 분의 업적'''
이러한 생각이 지배적으로 머리속에 박혀있으니 경쟁입찰은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계적인 건축가는 그분들이 보기에는 세계적인 명성으로 통하는 보증 수표로 보였으니까.
다음으로 '''빌바오 효과'''를 보자. 분명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라는 도시에서는 훌륭히 그 역할을 다해냈다고 볼 수 있다. 거대한 전시공간과 특히한 건물이 주는 충격은 쇠퇴한 산업도시를 미술관으로 가득찬 예술 중심지로 바꿔냈으니까. 하지만 서울은 쇠퇴한 산업도시도 아니고 이미 한국 예술의 중심지이다. 수많은 갤러리와 훌륭한 미술관을 도심에 품고 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 건축이 즐비하다. '''빌바오 효과'''를 기대하기는 여로모로 무리인 것이다. 이미 활성화된 도시니까. 스페인의 쇠퇴한 산업도시였던 빌바오와는 달리 서울은 이미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였고, 건물 하나로 이미지를 뒤집어 버리기에는 너무 담고있는 무게가 큰 도시였다.[5]
게다가 프랭크 게리자하 하디드의 비정형 건축은 기괴한 모습이 자극적인 만큼 자극이 주는 휘발성도 굉장히 큰 건축이었다. 이미 유행도 지나버린 것.
차라리 한국 건축가에게 기회를 주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자하 하디드는 이미 대형 건축물에 대한 기회를 많이 가졌지만, 한국 건축가들이 이 정도 프로젝트를 이 정도 권한을 받고 주도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건축가의 주도로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마무리 한다면 이는 한국 건축계에 경험으로 축적되겠지만, 이미 명성이 많은 자하 하디드 에게는 그녀가 겪어 왔던 많은 프로젝트 들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한국 내에서 봐도 아쉽고, 더 넓게 봐도 이미 많은 경험을 가진 건축가에게 그저 덤을 안겨주었을 뿐이니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준급의 완성도를 가지고도 DDP와 자하 하디드는 욕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3.1.4. 한계마저 초월한 예산낭비는 어쩔 건가?


최초 사업계획 시 800억으로 책정되었던 예산이 완공 후 5,000억대로 늘어난 점도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공사비가 6배로 불어나는 와중에도 '''여전히 이 건물의 용도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까지 포함해 여러모로 비상식적인 과정을 거쳐 완공된 건물인 것.
완공된 DDP의 연면적은 86,574㎡. 평으로 환산하면 26,189평 정도 된다. 전체 공사비 5,000억을 면적으로 나눠서 나오는 이 건물의 평당 공사비는 1,909만원 정도이다. 보통 건축계에서 디자인 좀 한다하는 작가가 설계하고, 돈을 좀 썼다싶게 지은 건물의 평당 공사비가 개략적으로 600~700만원 사이이다. 물론 건물의 퀄리티는 한도 끝도 없는 것이라 더 비싸게 지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저 정도 금액 사이에서 공사비가 책정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그러니까 DDP는 단순히 면적이 넓어서 돈이 많이 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같은 한 평을 짓는데 일반적인 작가 건물보다 3배 가까이 많은 공사비가 투입된 것이다. 이렇게 공사비가 증가한 요인은 전술한 비정형 형태에 기인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막 태동하고 있는 시공방식이다 보니 몹시 특수한 장비와 특수한 기술을 필요로 하고 이런 부분이 막대한 비용 증가로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공비가 많이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최초 사업계획 당시에는 시공비가 800억, 현상설계 당시에는 3배 가까이 증액된 2,270억으로 책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현상설계에 참여하는 건축가가 고민하는 사항은 흔히 말하는 기능, 구조, 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실현 가능한 계획안을 제시하는 것도 건축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하디드의 초기 설계 안은 2,270억, 다시 말해 평당 860만원(이것도 적은 공사비는 아니다.)으로 지어질 수 있는 건물이 애초에 아니었다. 물론 현상설계에 참여하는 건축가는 보통 어느 정도 공사비 증액을 예상하고 디자인을 하는 경향이 있고 DDP 현상설계에 참여한 다른 건축가들의 안 중 예산이 빠듯해 보이는 디자인도 몇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디드가 제출한 초기 디자인은 일반적인 공사비 증액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안이었다. DDP와 같은 관공서 발주 사업의 공사비 증액은 10% 정도가 보통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당선작은 현상설계 당시의 국내 기술로 짓기가 가능한지조차 불투명할 정도였다. 하디드야 항상 그러듯이 자기 하고 싶은데로 설계를 했다 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자신들이 작성한 응모요강 중 하나인 공사비 제한을 스스로가 완전히 무시한 채, 예산과 관련하여 무책임하다고도 볼 수 있는 하디드의 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예산이 초과할 줄 몰랐다면 무식한 것이고, 알고도 뽑았다면 불공정한 것이다. 자하 하디드의 당선작에 대해 국내 건축계가 보내는 불편한 시선은 이렇듯 이해하기 힘든 서울시의 심사과정에 일부 기인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참가자 중 한명이었던 승효상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 부분을 맹렬히 비난하기도 했다.
비정형 설계상 규격이 호환되는 자재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 유지보수시 비용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좋은 예시로 도쿄도청은 지어진 당시인 버블경제 때는 돈이 썩어넘쳐서 쿨하게 지었지만 짓고나니 유지비가 연간 400억씩 들어가고 있다.
설령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흑자로 돌아선다 해도, 이러한 긍정적인 결과가 비합리적인 계획설계 및 불투명한 공사비 증액과 관련한 이해할 수 없는 행정처리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자하 하디드의 최후 작품이 될 뻔 했던 2020 도쿄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설계안은 DDP 뺨치는 공사 난이도와 천문학적인 공사비 때문에 일본 정부에서 선정을 번복 백지화 시키고 말았다.

3.2. 역사적 관점



3.2.1. 유물의 훼손


'''기억의 장소에 기억을 지워버리는 건축의 폭력''' - 월간SPACE 2013년 3월호

DDP 자리에는 동대문운동장동대문야구장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어졌는데, 이것들은 한양도성을 부수고 지어졌다는 점에서 역사성에 치명적인 오점이 있던 건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현대사적 가치를 지니는 건축물이므로 스포츠계를 중심으로 보존하자는 여론이 존재했다. 허나 이미 리모델링도 여의치 않을 만큼 시설이 상당히 노후화되어 프로경기를 할 수 없는 지경인데다, 일제잔재 청산과 한양도성 복원이라는 명분에 묻혀버렸다.[6]
그러나 '''DDP는 이런 명분조차 만족시키지 못한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보니 조선시대 최대 군사 훈련시설이었던 하도감 터가 발견된 것인데, 하도감과 민가, 가마터 등 성곽 밖에서 발견된 유구들을 모조리 떠서 성 안에다 복원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유구와 유적은 원래 자리에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유구를 옮겨 전시하는 것은 역사를 훼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양윤식 한얼문화유산연구원장은 “일본 오사카에 있는 엔에이치케이(NHK) 건물 지하에는 천년 전 배수로 유적을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면서, “시골집을 뜯어 서울로 옮기면 그건 더이상 시골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지하에도 옛 성채의 유적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라고 서울시의 행태를 비판하였다. 실제로 NHK 건물과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 배수로 유적지가 있던 곳에 그대로 세웠던 지라, 건설 당시에 일본이 이 걸 발견하곤 '''통째로''' 보존해버렸고, 루브르 박물관 또한 통째로 보존해버렸다.
그렇다면 일본과 프랑스만 저러하느냐? 우리나라의 경우도 있다! 바로 경춘선 가평역. 역사를 짓기 위한 토목공사 도중에 유물이 대거 출토가 되자, '''아예 공사 자체를 중단시키고''' 유적 보존 공사만 1년을 가까이 하더니, 아예 역사의 일부에다 달전리 유적지 전시관을 만들어서 '''완전히 통째로 보존해버렸다.''' 출토된 유물은 보존처리를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가평역에 전시된 유물들은 모조품. 이래서 경춘선 개통 자체가 미루어져 버렸던 것이다. 수안역 또한 동래성 전투의 흔적이 대거 발견되다 보니, 동래읍성 역사관을 아예 만들어버려서 보존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보다 못한 행정력으로 까이고 또 까여도 할 말 없는 수준.
게다가 과거 성곽 지하로 물길이 흐르던 수문이 발견되었는데, 현재는 완전히 DDP의 뒷문처럼 되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역사적 가치를 전부 훼손해버리는 그야말로 매국노적인 행태를 만들어버린 셈. 오세훈은 이전에도 서울시 신청사를 짓겠답시고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구 서울특별시청을 기습 철거하려는 짓거리를 한 적도 있으니.. 일본판 시청 사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프레시안에서는 "우리는 로마의 콜로세움까진 아니어도 그 정도 느낌이 나는 장소를 보유하게 될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라며 과연 그 자리에 DDP가 들어서야 했느냐라는 반성을 촉구했다. 그리하여 DDP는 역사성 훼손이라는 영구까임권을 받아버렸으며, 이 이미지를 어떻게든 희석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3.2.2. 역사성 계승 실패


당시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대한 담론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건축이 지어질 때마다 맥락의 문제를 얘기했지만, 서울시가 지향해야할 맥락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먼저, 동대문 운동장의 역사성을 계승하고자 한다면 한성 성곽 복원을 포기하거나 혹은 축구장을 포기해 성곽은 살리고 야구장은 살려서 리모델링하는 방향으로 담론을 발전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동대문 운동장은 결코 적지 않은 시간동안 운동장 기능을 하지 못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 못해 흉물이 되어가는 상황이었다.
다음으로 조선시대의 역사성을 계승하고자 한다면 동대문 운동장을 완전히 밀어버리고 성곽 하단부만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성곽 상단부 까지 제대로 복원해 동대문과 근처 한성성곽길과 연결하고 철저한 발굴을 통해 하도감 터등 조선시대 건물 터를 제대로 발견해서 복원했어야 했다. 하지만 관련 담론도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고, 그저 성곽 정도 복원해서 한성 성곽길을 제대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 라는 서울시의 계획만 있을 뿐이었다.
만약에 하도감 터를 복원하고자 했다면 하도감 터만 복원할지 아니면 건물을 복원할지, 건물을 복원한다면 이미 조선시대의 훈련소로 기능을 할 수는 없을 터인데 어떻게 박재화된 구경거리 신세를 면할지,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관한 담론이 성숙해 있었어야 했다. 하도감 터의 상태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적어도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 조선시대 훈련소가 있었다더라,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테니까. 헌데 하도감에 대한 의견이 하도감을 발굴한 소감 정도로 한정되는 것을 보면 동대문 운동장이 있을 당시에 하도감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심이 없었으니 관련된 담론이 형성되지 못했고 담론이 형성되지 못했기에 막상 하도감 터가 발견되어도 제대로 된 비판이 어려웠다.
DDP는 양측의 빈틈을 치고들어와 당시 시장의 욕구가 발현된 것이다. 양쪽 모두 제대로된 담론과 대안을 형성하지 못했고, 동대문 운동장과 부지는 방치되어 있었다. 방치되어 있는 부지에 대한 계획과 욕심을 가지고 치고 들어오니 제대로된 비판이 불가능 했고 양측의 역사성 계승을 실패하고 당시 시장의 계획만 구현된 것이다.

3.3. 건물 자체의 문제점



3.3.1. 공간 활용 문제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사실상 건물 용도를 생각하지 않고 '지어놓고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같이 되어버려서 문제가 심각하다.
우선 건물 특성상의 문제가 있는데, 내부구조가 복잡해 전시관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내부 공간이 상당히 협소하고 개성이 너무 강해 행사를 치룰때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예로 개관식 이후 서울 패션위크를 열었을 때, 판매부스 행사에 참가한 디자이너들이 통로에 부스를 세워야 했다.
운영 면에서는 현재 간송미술관과 협력해 전시를 열고 있는데, 이게 DDP의 아킬레스건인 역사성 해결 측면에서는 굉장한 버프, 신의 한 수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상업 디자인 전시장에 가까운 DDP와 맥락이 맞는지 의문이란 의견도 만만치 않다. DDP 측은 이런 것도 디자인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는 중.
하지만 이는 상당히 구색맞추기 변명에 가까운 감이 없지 않고, 실제로 2014년에 DDP는 상업성 전시를 주력으로 내세웠다. '트랜스포머 30주년 기념 오리지날 아트워크전',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DDP 초대형 아트콜라보 페스티발', '문화 샤넬전', 'SBS드라마 특별기획전 <별에서 온 그대>', '웨타 워크숍 판타지제왕의 귀환', 'BMW i3 신차 발표회' 등의 행사가 그러한 예이다. 덕분에 간송전 혼자 이질감이 굉장히 심하게 동떨어진 편. [7]
전시와 업무공간의 크기와 균형 문제도 자주 거론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너무 애매한 크기가 문제.
공간에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작은 크기 부스도 필요하지만, 확실하게 많은 사람을 동시에 받아서 보여줄 수 있는 전시실의 크기도 필요하다. 그런데 컨셉을 잡아 작품을 배열하려 하면 양쪽 다 확실하게 할당하는 배치가 힘든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작은 전시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박물관처럼 구획이 딱딱 나눠지며 큰 공간도 아닌지라 이도저도 아닌 중간에 낀 상태. 더구나 건물이 괴상한(?) 모양이라 구획문제가 있어 확실하게 가르고 컨셉을 잡아 관람객의 동선을 배열하는 것이 쉽지 않은 구조다. 큰 곳은 작품으로 다 채우기가 힘들 정도라 휑하지 않드록 세부적으로 구획을 나누기가 힘들고, 반대로 작은 곳은 작품을 두기가 힘들거나 어디 이상한 곳에 짱박혀 버리는 형태가 되기 십상.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작품전을 하면서 구획과 배치문제로 상당히 애를 먹는데, 설계 단계부터 작품전의 규모에 따라 구획을 나누기 쉽게 배려했으면 이런 문제는 많이 줄어들 수 있었다.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디자인 오피스나 회의시설, 창작활동을 위한 같은 업무 공간으로 활용할 공간이 매우 협소한 것도 문제다. 전시공간을 할당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맞추다 보니 업무와 신제품 개발구획의 크기가 작아져 버려 상당히 불편하다. 디자인 플라자에 전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전시공간을 채우는 디자인은 디자이너들의 기획과 제품개발, 디자인을 실제로 뽑아낼 수 있는 넉넉한 업무공간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한데 전시공간을 키우다 보니 업무공간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디자이너들이 제품을 개발할 수 있더록 지원해 주는 공간들까지 덩달아 협소해지거나 없어져 버린 것이다.
더구나 비싼 임대료를 물며 좁아터진 공간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코메디이고, 사회적 사업과 디자인 업계 지원책의 일환으로 동대문이나 다른 지역의 디자이너들이 언제든지 방문해서 쓸 수 있는 공간이나 장비, 시설도 제공해 줘야 하는데 그런 것도 굉장히 힘들다.

3.3.2. 외관상의 문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외부는 알루미늄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옆에 큰 도로가 지나가는 만큼 때가 심각하게 많이 탄다. 게다가 외부가 곡면이라서 청소하기가 매우 어렵다. 새로 지은 서울시청같이 곡면을 포함하는 다른 건물과 같은 문제이다. 때가 잔뜩 묻은 알루미늄 조각들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특유의 기괴한 모양은 시너지를 일으켜 매우 안 좋은 모습을 연출한다. 아예 불시착한 UFO냐는 비난도 있었으며 이후 무한도전 지구를 지켜라 특집에서는 지구인들과의 대결에서 연이은 패배로 우주선조차 버려두고 도주한 외계인들 이라는 설정으로 이를 돌려깠다.
[1] 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도 1억 달러, 1,000억원 근처다.[2] 야구장이라는 말만 듣고 야구 보러온 사람들을 쫓아냈다며 비판하는 일자무식의 사람들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3] DDP 신축이후 이 시장이 옮겨져서 만들어진 게 현재 신설동에 있는 서울풍물시장이다.[4] 문화역서울284는 네오 르네상스, 오르세는 바로크[5] 빌바오 효과만을 노렸다고는 할 수 없으며, 유명 건축가로 인한 인지도 상승을 노리는 것은 빌바오효과라고는 할 수 없다. 빌바오는 애초에 인지도 없는 소도시였으며, 서울은 위상 자체가 다른 한국의 수도다. 도시 자체보다는 건축물을 부각시키는 요소로서 건축가가 작용할 뿐이다.[6]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여기보다 살짝 북쪽에 있는 126년 역사의 동대문교회가 한양도성 위에 있어서 철거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다만 위치만 역사적 의미가 있었고, 건물은 70년대에 지어져 역사성이 없었다.[7] 단, 한해에 개장하는 기간이 길지 않아 간송 미술관에 갈 때마다 매번 헬게이트(...)를 겪어야 했던 관람객들 입장에서는 이질감이고 뭐고 아이고 감사합니다(..)란 평이 다수. 실제로도 미술관 측에서도 접근성을 높였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관람객들 중에서도 "이질감"을 "체감"하는 반응은 별로 없다. 간송미술관의 관람객 헬게이트에 대해서는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