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01

 



1. 개요
2. 기구한 운명
3. 파생 및 계획 모델
4. 둘러보기
5. 참고 링크

[image]
'''Mcdonnell F-101B Voodoo'''
'''분류'''
쌍발 터보제트 전투기
'''전폭'''
12.09m
'''전장'''
20.55m
'''전고'''
5.49m
'''중량'''
자체중량 12,925kg
최대이륙중량 23,770kg

'''엔진'''
프랫&휘트니 J57-P-55 2기
'''최고 속도'''
마하 1.489 (35,000피트에서 1,825km/h)
'''항속거리'''
2450Km
'''상승 고도'''
17,800m
'''무장'''
AIM-4 팔콘 4발 또는 AIR-2 지니 2발과 AIM-4 팔콘 2발
'''승무원'''
2명

1. 개요


McDonnell[1] F-101 Voodoo미 공군전투기 이다. 1954년 첫 비행, 1957년 미 공군에서 운용되다가 1979년에 퇴역하고 주방위군에서는 1982년 퇴역했으며 캐나다 공군이 1961년 운용을 시작해 1984년 맥도넬 더글라스 CF-18로 대체되어 퇴역하였다.

2. 기구한 운명


1946년, 미 공군은 P-51 머스탱을 대체할 장거리 호위기 계획을 발표했고 맥도넬은 XF-88 부두를 제안했다. 하지만 미 공군은 록히드의 XF-90을 선정했고 결국 실험기 2기를 끝으로 개발이 종료되었다.[2] 그렇게 자연스래 잊혀지는 듯 했으나, 1949년에 소련이 핵개발에 성공하여 지난 대전중 자국 영토에 불시착한 B-29를 카피한 전략폭격기 Tu-4[3]를 배치하면서 국면이 전환되었다. 장거리 호위전투기 계획은 취소되었고 그 대신 장거리 요격전투기 계획이 시작된 것. 그 결과 1954년 맥도넬에 XF-88의 개량형이 선정되어 F-101로 명명되었다.
F-101은 XF-88에 비해 길이는 4m, 최대이륙중량은 기존 8,392kg에서 약 3배가량 늘어난 23,770kg까지 증가했으며 엔진도 웨스팅하우스 XJ34-WE-13에 비해 5배 강력한 P&W J57로 변경되어 최고 마하 1.72까지 가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군 내부에서 긴 항속거리, 8톤 가량의 여유중량에 주목해 차라리 호위전투기가 아니라 핵폭격 용도로 쓰자는 주장이 대두되어 막 인도되기 시작한 F-101에 MA-7 화기관제 레이더, LABS(Low Altitude Bombing System저고도 폭격 시스템) 등을 장착하는 개량을 거처 Mk 7, Mk 28, Mk 43, Mk 57 핵폭탄의 운용능력을 획득했으나 이미 주요 핵투발 수단이 핵폭격에서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과 같은 탄도 미사일로 옮겨갔기에 1956년 취소되었다.
결국 다시 직종을 변경하여 소련 폭격기를 요격하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와 소속도 SAC(전략공군사령부)에서 TAC(전술공군사령부)로 변경되었으나 이미 TAC에는 비슷한 임무를 가진 요격기가 여럿 있었으므로 다시 개량을 거처 전체 생산량 807기 중 절반에 가까운 약 390여기가 정찰기와 훈련기로 전용되어 사용되었다.
미군 이외의 운용국은 그나마 캐나다 공군에서 112기를, 대만 공군에서 RF-101A 8기를 운용한 것이 전부다.

3. 파생 및 계획 모델


YF-101A : 29대가 제작된 원형기 겸 초기 시험 생산형
F-101A : 초기 생산형으로 전략 공군의 장거리 호위 전투기로 계획되었으나 전술 공군의 단좌 전투폭격기(WS-105)로 실용화의 가닥을 잡아 생산되었다. J57-P-13 엔진을 쌍발로 장비하고 기수에는 M39 20mm 기관포 4문을 갖추었으며 Mark 28, B43 핵폭탄 1발과 AIM-4 팰컨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었다. 프로브 방식의 공중급유 설비가 있으며 48대가 생산되어 1957년부터 부대 배치가 시작되었다.
NF-101A : 엔진을 제네럴 일렉트릭 J79로 교체해본 시험기로 1대만 제작
RF-101A : 전술 공군의 초음속 정찰기(WS-105L)이다. 프로토타입에 해당되는 YRF-101A는 1956년 5월 10일 첫 비행. 기수와 동체에 고해상도 필름 카메라를 갖추고 35대가 만들어져 1957년부터 취역해 1971년에 모두 퇴역했다. 대만 공군은 1959년에 미국으로부터 이 정찰기를 공여받아 1960년대에 중국 대륙 본토 정찰 비행을 했으며, 그중 일부는 격추되는 일도 있었다. 대만 공군에서는 1973년에 일선에서 물러났다.
F-101B / CF-101B : 방공 부대와 캐나다 공군용 장거리 요격기로 원래 F-109라는 제식 번호를 부여하려고 했었다. A형과 달리 웨폰 시스템이 WS-217A로 교체되었고 1957년 3월 27일에 처음 비행했다. 항전 장비는 F-106 보다는 간소화된 대신 후방석에 레이더 관제사가 탑승한다. 후방석 좌측에는 야간 요격에서 목표 항공기 식별신호에 이용하는 스트로보 라이트가 설치되어 있으며 기관포와 급유 장치는 제거되었다. 동체 내부의 로터리식 미사일 베이에 공대공 미사일 4발을 탑재한다. AIM-4 팰콘 4발 또는 AIM-4 팰콘 2발과 AIR-2 지니 핵로켓 2발을 조합해 장비하는 것이 표준 무장 형태. 일부 기체는 AIM-26 미사일 운용 능력을 추가하기도 했다. 엔진은 J57-P-53 또는 P-55를 장비하며 방공 부대에서 1959년부터 1972년까지 운용되다가 그 후에는 주방위 공군으로 이관되어 1982년까지 사용되었다. 생산수는 480대로 최다 생산 모델이며 캐나다 공군은 CF-101B라는 명칭으로 채택해서 132대를 1961년부터 1984년까지 운용했다. 66대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2회에 항전 장비가 업그레이드되는 개수를 받아 쓰였다.
EF-101B : 캐나다 공군이 채택한 전자전 훈련기. '''일렉트릭 부우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훈련에서는 캐나다 상공을 침범하는 모의 적기 역할을 맡았다. 1대가 개조되어 1987년까지 운용되어 가장 마지막까지 일선에 머무른 부우두였다.
TF-101B / TF-101F / F-101F / CF-101F : 복좌 훈련기 형식으로 나중에는 F-101F형으로 명칭을 통일했다. 79대가 생산되었으나 그 외에도 152대의 부우두가 복조종 장치를 추가해 훈련에 이용되었다. 캐나다 공군에서는 CF-101F로 운영되었는데 이 기체들도 CF-101B 처럼 10대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2회 업그레이드 개조를 받았다.
RF-101B : 전투기 부대에서 일반 전투기들과 혼합 편성되어 운용된 전술 정찰기 형식이다. F-101B 중에서 1대가 이 사양으로 개조되었고 22대는 캐나다 공군에서 반납받은 CF-101B를 개조해 배치했다. 이 기체들은 1970년대 초에 현대화 개수를 받은 후 1975년까지 주방위 공군에서 계속 쓰였다.
F-101C : 1958년부터 전술 공군에 배치가 시작된 단좌 전투폭격기 형식이다. 1957년 8월 21일에 첫 비행을 했고 F-101A의 기체 구조를 보강해서 하중 제한이 완화되었으며 엔진 개량도 연구되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거의 A형과 같은 기체였다. 94대가 발주받았지만 47대만 생산된 후 RF-101C로 전환되었다.
RF-101C : RF-101A를 개량해 1957년 7월 12일에 첫 비행한 전술 공군의 단좌 정찰기 형식이다. 고정 무장은 없고, 6대의 정찰 카메라를 기수와 동체에 탑재시켜 166대가 생산되었다. 1957년부터 임무에 들어간 이 기체는 1962년의 쿠바 위기에서 정찰 임무를 했고 1961년부터 베트남태국에 파견되어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었다. 전쟁 도중 31대가 북베트남군의 SAM 미사일이나 대공화기, 그리고 미그기에 격추되었다.
F-101D / E : GE 엔진으로 교체한 형식으로 계획만 되었다.
RF-101G / H : F-101A / C를 주방위 공군의 정찰기로 개조한 형식으로, 구식화된 주방위 공군의 정찰기 전력을 일신하려는 방안에서 1966년 이후 개장을 시작해 1979년까지 이용된 후 모두 퇴역했다.

4. 둘러보기





5. 참고 링크



[1] 1967년 맥도넬 더글라스를 거쳐 1997년 보잉에 인수되었다.[2] 그리고 펜타곤에서 사업을 중지시켜 XF-90도 양산되지 못했다.[3] B-29의 카피였던 만큼 엔진을 제외하면 구별하기가 매우 힘들어 미 서부에 원자폭탄을 투발하고 돌아가거나 심지어 공중급유를 받고 자살공격으로 동부에 원자폭탄을 투발할 수도 있다는 공포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