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3D 스카이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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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영상
1. 개요
2. 개발 배경
3. 스카이나이트의 눈
4. 배치와 동시에 실전 투입
5. 파생형
6. 기본 스펙
7. 둘러보기


1. 개요


미국의 거대 항공기 메이커였던 더글라스 사에서 미 해군을 위해 개발한 함상 전투기다.
정식 명칭은 '''Douglas F3D Skyknight'''였으나, 훗날 새롭게 제정된 미군기 명명법에 따라 '''Douglas F-10 Skyknight'''로 개명된다. 항공업계의 전설적인 엔지니어인 '''에드 하이네만'''이 디자인한 스카이 시리즈[1] 중에 하나로 6.25 전쟁에도 미 해병대 소속으로 참전해 미그기를 격추한 전투기이다.

2. 개발 배경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자, 명실공히 세계최강의 해군으로 발돋움한 미 해군은 항공모함 갑판 위에서 발착함하는 함상 전천후 전투기를 새롭게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미 해군 항공국은 이 소요제기에 근거하여 3개사[2]에 이 전투기에 대한 설계 조건을 보냈고, 1946년 4월 3일에 더글라스 사의 XF3D-1이 채택되었다. 더글라스 사는 젊지만 이미 SBDA-20, A-26, A-1 같은 우수한 군용기를 설계하면서 뛰어난 재능을 빛내기 시작하던 에드 하이네만(Edward Henry Heinemann : 1908~1991)에게 이 중요한 사업을 일임하였고, 개발진들은 그를 중심으로 뭉쳐 레이더가 탑재된 상태에서 항모에서 작전이 가능한 제트 전투기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항공기 연구를 시작했다.
중간에서 위로 접히는 중익 배치된 직선 날개를 가지며, 엔진은 날개죽지 아래쪽에 동체에 붙여 쌍발로 낮게 배치된 덕분에 지상 요원들은 발판이나 사다리 없이 엔진을 점검하거나 교체할 수 있었다. 당시의 전천후 전투기란 큼지막한 레이다와 이것을 다루기 위한 조작수도 태워야만 했기 때문에, 병렬 복좌기로 만들어졌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사출좌석은 아직 개념이 정립되지 않던 시기여서, 이 전투기는 비상시에 조종석 아래쪽에 마련된 터널을 통해 탈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무장은 20mm 기관포 4문를 기수 하부에 장착했고 각각 200발 탄창으로 포탄을 공급했다. 스카이나이트의 프로토타입 XF3D-1은 1948년 3월 28일에 저명한 테스트 파일럿 러셀 토우(Russell William Thaw : 1910~1984)에 의해 처녀 비행에 성공했다.

3. 스카이나이트의 눈


이 야간 전투기가 장비하게 될 레이더웨스팅하우스 AN/APQ-35였다. 전천후 전투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이 레이더는 스카이나이트의 기수에 자리잡고 있는 레이돔 내부에 탑재되며, 수색 / 조준 시스템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다. 즉, 32 km 떨어진 적기를 탐지하는 수색 시스템은 AN/APS-21 탐색 레이더이며 조준은 AN/APS-26 타겟팅 레이더로 실시하게 되는데, 이것은 기관포의 유효사거리 보다 훨씬 먼 3.2 km 떨어진 목표물을 정확히 조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말하자면 스카이나이트의 레이더는 APS-21로 목표물을 포착하여 APS-26으로 계속하여 추적하고 APS-21은 다시 새로운 목표물을 찾을 수 있는 이른바 헌터-킬러 방식이었다.

4. 배치와 동시에 실전 투입


미 해군은 이 전투기를 제식으로 채용하면서 스카이나이트라는 애칭을 부여해주었고, 첫 생산형인 F3D-1는 J34-GE-24 엔진과 웨스팅하우스 AN/APQ-35 레이더를 장비한 상태로 1950년부터 부대 배치를 시작했다. 초기형의 스카이나이트인 F3D-1은 캘리포니아주 모펫 기지에 주둔한 VC-3에 배치되었으나, 실전 배치 후에 많은 문제점이 밝혀져 대부분의 기체가 기종 전환이나 레이다 조작 교육을 위한 훈련기로 돌려지고 말았다. 개발진들은 부랴부랴 추가 개량에 달라붙게 되고 지적된 문제점 중에서 많은 부분은 해결되었으나 여전히 완전한 상태라곤 할 수 없었다. 이 개량에서 특히 언급할 만한 부분은 기체 후미에 후방 경계 레이더인 AN/APS-28이 추가된 점이다. 이 장치를 통해 스카이나이트는 후방 144도 방위 안에서 6.5 km나 떨어져 접근 중인 적기를 탐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밖에 자동조종 장치도 추가하고 방풍창은 방탄 글래스를 덧붙였으며, 캐빈 공조장치도 손을 보았다.
스카이나이트는 기동함대에 배치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극동에서 벌어진 한국 전쟁에 투입되었고, 1952년 11월 2일의 칠흑같은 밤에 평양 상공에서 북한 공군이 보유한 최신예 전투기인 MiG-15를 처음 격추했다. 이것은 항공전사를 통틀어 야간에 제트전투기를 레이더로 포착해 격추한 첫 사례이다. 해군 사상 첫 전천후 제트전투기는 한반도에서 모두 6대의 적기를 격추시켰다.
하지만 스카이나이트는 초기형 제트 전투기들이 흔히 그랬던 것처럼, 여러 문제점이 남아있는 기종이었고 당시의 비좁은 비행갑판에서 작전하기에는 쉽지 않아서, 전투기로서의 수명은 매우 짧았다. 항모 운용요원들은 스카이나이트를 가리켜 "고래 윌리"[3]라고 부르면서 다루기 어렵고 손이 많이 가는 기종으로 불평했었다. 특히 전자장비는 끊임없이 정비 점검이 필요했고 높이가 4.9m나 되는 수직 미익 탓에 격납고에서 이동할 때 아주 불편했다고 한다.
그 대신, 동체 내부의 용적이 커서 연료는 5,116리터나 주입되고 각종 에비오닉스를 싣기가 좋았던 덕택에 전자전 전용기로 개조되어 베트남 전쟁까지도 실전에서 사용되다가 1970년에야 모든 임무에서 물러나 퇴역했다. 스카이나이트는 내부 공간에 여유가 있기도 했지만 비행 안정성도 좋아 일선에서 은퇴한 뒤에도 1980년대까지 몇몇 실험 용도로 활용되기도 했다.
1962년펜타곤은 육해공 3군, 해병대까지 4개군에서 중구난방식으로 불리며 복잡하던 기체 명명법을 바꾸면서 3군 통합 군용기 명명법을 새로 제정했다. 이에 따라 스카이나이트 또한 F-10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이미 이때는 전투기로서의 수명은 끝난 후였다.

5. 파생형


XF3D : 프로토타입.
F3D-1 : 1차 양산형으로 1962년부터는 F-10A로 개칭된다. 추력 3,000파운드의 웨스팅하우스 J34-GE-24 터보제트 엔진을 쌍발로 장비하고 웨스팅하우스 AN/APQ-35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었다.
F3D-1M : 초기형 공대공 미사일스패로우 I 미사일 4발 탑재한 형식.
F3D-2 : 엔진을 보강한 형식으로 237대 생산. 새로운 호칭 F-10B.
F3D-2M : 스패로우 I 미사일 4발 탑재. F3D-2에서 16대를 골라 개조. 새로운 호칭 MF-10B.
F3D-2Q : 전자전기 형식으로 F3D-2 중에서 30대를 개조해서 조달. 새로운 호칭 EF-10B.
F3D-2T : 전자전 훈련기로 TF-10B로 개칭.
F3D-3 : 주날개에 후퇴각을 준 형식으로 계획 도중 취소.
F6D : 함대 방공 전투기인 Douglas F6D Missileer 계획안. 사정거리 200 km의 AAM-N-10 이글 미사일 6발 장비.

6. 기본 스펙


승무원 : 2명
전장 : 13.9 m / 전폭 : 15.24 m / 전고 : 4.9 m
동력 : 웨스팅하우스 J46-WE-3 터보제트 엔진 2기
중량 : 8.2톤
최대 속도 : 900 km/h
무장 : 20mm 기관포 4문(각 200발) / 타이니팀 로켓 런처 2기 / AIM-7 스패로우 I 미사일 4발(F3D-2M) / 900 kg 폭탄 2발
초도 비행 : 1948년 3월 28일

7. 둘러보기





[1] A-1 스카이레이더, A-3 스카이워리어, 스카이나이트, A-4 스카이호크, F-6 스카이레이를 가리키며 스카이로켓이나 스카이스트릭 같은 실험기도 포함된다.[2] Douglas, Grumman, Curtiss[3] 범고래를 의미하는 속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