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T48/역사

 


1. 개요
2. 2010년대
2.1. 2011년 : 결성
2.2. 2012년 : 어지러운 시작, 그리고 사시하라와 오오타의 이적
2.3. 2013년 : 삿시와 함께 날아오르다
2.4. 2014년 : 진격의 하카타
2.5. 2015년 : 성숙기
2.6. 2016년 : 졸업의 시작
2.7. 2017년 : 위기의 한해
2.8. 2018년 : 한국조 2인의 부재, 그리고 삿시의 졸업[1]
2.9. 2019년 : 변화의 갈림길, 위기인가 반등인가
3. 2020년대
3.1. 2020년 : 독립, 격동의 한 해


1. 개요


일본의 아이돌 그룹 HKT48의 역사를 소개하는 페이지.

2. 2010년대



2.1. 2011년 : 결성


2011년 5월 AKB48 싱글 악수회에서 HKT48 결성이 발표되었다. 당시 도쿄의 AKB48, 나고야의 SKE48, 오사카의 NMB48까지 해서 일본의 3대 도시인 '토메이한'(東名阪)('''도'''쿄, '''나'''고야, 오'''사카'''의 한자를 이어 음독으로 읽은 것)에 자매 그룹이 모두 들어섰기 때문에, 또 다른 자매 그룹이 생기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팬들이 많았다. 2011년 7월 10일 오디션을 개최하여 24명의 후보생을 선발하였는데, 레슨 도중 3명이 사퇴하여 데뷔한 것은 21명의 연구생이었다. 2011년 11월 26일부터 HKT48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데뷔 공연 세트리스트는 SKE48의 팀S 2nd 공연인 '손을 잡으며'를 사용하였다. 이 시기의 HKT48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1기 연구생 데뷔 때부터 야마모토 사야카, 와타나베 미유키라는 스타를 탄생시키며 대박을 터뜨렸던 NMB48과 많은 비교를 당했다.

HKT48 초기의 푸시 멤버였던 모리야스 마도카, 스가모토 유코, 미야와키 사쿠라, 코다마 하루카, 타니구치 아이리, 에토 사야카, 마츠오카 나츠미.
초기 HKT48은 코다마 하루카와 마츠오카 나츠미를 '하루나츠'라는 이름의 투톱 페어로, 스가모토 유코를 캡틴으로 밀어줄 예정이었지만 하루나츠에게 생각보다 인기가 붙지 않았고 스가모토는 캡틴 자리를 거절하였다.

2.2. 2012년 : 어지러운 시작, 그리고 사시하라와 오오타의 이적


3월 4일자로 첫 팀인 팀H가 발표되었다. 하필이면 일본어로 야릇한 뜻을 가진 'H'라서 개그 소재가 되었는데, 그 H는 엣찌(エッチ)고 HKT48의 H는 에이치(エイチ)라고 읽기 때문에 혼동되지는 않았다. 센터는 코다마 하루카마츠오카 나츠미가 맡았다. 한편 운영진 측은 당시 연장자였던 스가모토 유코를 캡틴으로 내세울 예정이었지만 스가모토가 거부하는 바람에 캡틴 자리는 아나이 치히로가 맡게 되었다.
따라서 팀H는 결성부터 많은 논란을 낳았다. 1기 연구생 데뷔 때부터 큰 인기를 모았던 연구생 에토 사야카가 팀H에 빠지면서 팬들이 반발한 것이다. 에토를 팀H에 넣지 않은 이유는 발표되지 않았고, 팬들 사이에서 여러 추측만 난무했다. 팀KⅢ를 위해서 비축해놓았다는 설, 에토의 극장 공연 능력이 떨어지고 레슨에도 자주 불참했기 때문이라는 설, 나이가 너무 많아서라는 설 등이 있었다. 물론 나이가 많아서라는 추측은 억측이다. 에토는 팀H의 주축인 96년생보다 어린 97년생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HKT48은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 일단 도쿄에서 멀고 지역 방송사도 약한 후쿠오카를 선택한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그 쪽 지역의 아이돌 그룹도 이미 있어서 HKT가 지역 아이돌을 뚫고 올라가는 것 부터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근데 가장 비교를 당한것은 NMB와의 비교였는데, 데뷔 초부터 춤, 노래는 물론 코미디언(게닌) 컨셉으로 MC까지 능숙하게 소화했던 NMB48과는 달리 HKT48은 내세울 게 없었던 것이다. AKS에서는 HKT48의 컨셉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그저 '평균 연령 13세의 젊은 아이돌'이라는 막연한 컨셉으로 승부하려 하였다.
멤버들 역시 이 때까지는 팬들에게 자신들의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며 헤매고 있었다. 특히 공연에서의 MC는 매우 재미가 없다는 악평을 들으며 고전해야 했다. 훗날 6주년 기념 공연에서 다나카 나츠미는 "MC가 썩게 재미없었다" 라고 자학할 정도로 최악의 토크였다.
어쨌거나 당면한 과제는 위에 언급한데로 후쿠오카 본토 문제였다. 당시 후쿠오카를 비롯한 규슈 지역은 로컬 아이돌의 활동이 매우 왕성했다. 이제는 전국구 아이돌로 데뷔한 LinQ를 비롯, HR, QunQun 등 다양한 아이돌이 저마다의 활동 기반을 갖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 그룹은 이미 지역의 다양한 기업과 연계하여 지역 밀착형 활동을 벌이고 있었고, 후쿠오카의 아이돌 오타쿠들 역시 이들 로컬 아이돌에 큰 성원을 보냈다. 후쿠오카 지역 아이돌이라는 컨셉을 선점당한 탓에, HKT48은 막대한 자본력에도 불구하고 후쿠오카의 아이돌 시장에서 고전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AKS에서는 지역의 다양한 행사에 HKT48을 참가시켰다. 소프트뱅크 호크스 야구단의 서포터즈를 맡고, 일본의 3대 봄 축제로 꼽히는 하카타 돈타쿠 축제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등 지역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TVQ, RKB 라디오, FBS후쿠오카 방송 등 지역 방송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전략도 세웠다.
이 시기에는 스가모토 유코가 그라비아를 통해 점점 얼굴을 알려나갔고, 코다마 하루카 역시 真夏のSounds good! 싱글 선발로 뽑히면서 AKB48 팬들에게 이름을 인지시켰다.
2012년 6월, AKB48 4회 총선거가 열렸다. HKT48에게는 단 한 명이라도 순위권에 올려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하지만 이 시기 HKT48 오타쿠들은 한 명에게 표를 몰아줄 정도로 조직력이 강하지 않았고, 저마다 의견이 갈렸다. 센터인 코다마를 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당시의 코다마는 센터임에도 불구하고 인기도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 외에도 지명도가 높은 스가모토를 밀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이 역시 큰 호응을 받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팀H에 못 들어가고 연구생으로 남아있던 에토 사야카의 팬들은 총선을 통해 에토의 이름을 알려야겠다며 이를 악물었고, 그 결과 속보에서 에토는 62위에 올라갔다. HKT48에서는 유일하게 속보에 올라간 것이었다. 그러나 최종 순위에서는 미야와키 사쿠라가 47위로 넥스트걸즈에 진입했다.
총선거 1주일 후, 일본의 대표적인 황색언론 주간문춘에서 사시하라 리노의 스캔들을 폭로하였다. 팬과 동침을 했다는, 상당히 큰 규모의 스캔들이었다. 사시하라는 라디오 방송에서 이를 인정했고, 아키모토 야스시는 사시하라를 HKT48로 보내버리겠다고 발표했다. AKB48 팬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사시하라에게 분노를 표하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사시하라를 동정하는 팬들도 있었다. 6월 16일 사시하라는 HKT48로 완전히 이적하였고, 7월 5일 팀H에 배속되었다. 팀H는 이 시기 동안 17인 체제로 공연을 올렸다.
사시하라의 이적은 후쿠오카가 역사적으로 좌천의 명당(…)이라서 그런 것도 있어서 초기에는 '좌천'이라고 표현되며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HKT48 팬들 역시 갑자기 들어온, 그것도 스캔들로 들어온 사시하라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동안 '젊고 싱싱한 여자 아이들'이라는 이미지로 승부하던 HKT48에 남자와의 동침 스캔들을 뿌린 사시하라가 들어오는 것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 사시하라 오타쿠와 기존 HKT48 오타쿠들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이후에는 사시하라의 이적이 HKT48에 도움이 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일단 아이돌로서 뿐만 아니라 버라이어티 탤런트로서도 이름을 알려가던 사시하라가 'HKT48'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게 되면서 HKT48이라는 그룹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극장 공연 경험은 물론 방송 경험도 많은 사시하라는 후배 아이돌들에게 조언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후배들의 캐릭터까지 스스로 만드는 등 반쯤 프로듀서에 가까운 역할을 하며 그룹을 이끌어나갔다. 특히 무라시게 안나는 사시하라와 찰떡궁합을 이루며 MC 캐릭터를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사시하라 리노의 모습은 HKT48의 첫 전국 레귤러 방송인 'HaKaTa백화점'에서 잘 드러난다.
사시하라가 들어온 2개월 후인 8월, 에이스였던 스가모토를 비롯하여 에토, 코모리, 타니구치, 나카니시 아야카 등 다섯 명의 멤버가 한꺼번에 해고당하였다. 명목상으로는 모두 아이돌 생활을 접고 새로운 길을 걷겠다며 자진 사퇴한 것이었다. 팬들과 일부 황색언론에서는 이들 다섯 명이 남성 팬과 메일 주소를 교환하는 등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해고당한 것이라는 보도를 냈지만, 사실로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다.
스가모토 유코는 탈퇴 이후 유튜브에 인사 영상을 올렸는데, 사퇴 이유에 대해서는 요리를 열심히 하고 싶어서 탈퇴했다고 밝혔다. 이후 '요리 아이돌'이라는 독특한 컨셉으로 활동하고 있다.블로그 트위터 나머지 네 명은 연예계를 은퇴한 줄 알았으나 코모리 유이는 시모노세키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아이돌그룹 10COLOR's로 복귀해서 현재는 GALETTe로 소속을 옮긴 상태이다.공식 홈페이지 블로그 트위터 에토 사야카도 지역방송국 라디오에 레귤러 게스트로 출연하거나 지역행사 MC를 하는 등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블로그 트위터 공식 홈페이지
문제는 이들의 탈퇴로 인해서 팀H는 엄청나게 고생을 하게된다. 유닛곡인 '초코의 행방'에서 멤버가 둘인 적도 있었다.[2] 멤버들이 유닛을 급하게 두탕 뛰는 경우도 있었다. 당장 인원 부족으로 공연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자 운영은 곧 2기생을 뽑기로 결정한다.
2012년 개최한 2기생 오디션이 끝나고 9월, 2기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가 '제2의 쥬리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타시마 메루, 그리고 성실한 대응으로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토모나가 미오 등 생각보다 인재가 많은 기수라는 평을 받았다. 한편 총선거의 여파인지 AKB48UZA 싱글에서는 미야와키 사쿠라코다마 하루카 대신 선발로 들어갔다. 코다마 하루카는 언더걸스로 격하.
8월 24일, AKB48 도쿄돔 콘서트 첫날 공연에서는 AKB48 3기생 출신이자 사시하라의 선배인 오오타 아이카가 HKT48으로 완적 이적할 것임을 발표했다. 오오타는 아키모토 야스시나 미네기시 미나미 등 선배와 절친한 후배였던 사시하라 등과 상담하면서, HKT 이적을 스스로 자원해 온 것이었다.
오오타의 이적 역시 HKT48을 빠르게 안정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데뷔년도로만 보자면 사시하라보다 1년 빠른 선배인데다가, 그 당시에도 48그룹 전체 선발이었던 사시하라가 부재중일때 팀을 통솔하고 경험이 미숙했던 1,2기생을 이끈 것이 오오타였기 때문이다. AKB48에선 막내뻘이었던 오오타가 이적후에는 사시하라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기에, 스스로 역시 책임감을 갖고 멤버들을 다잡고 팀을 지도해 나가는데에 공헌했다.
12월, HKT48 이름으로 된 첫 오리지널 곡인 <첫사랑 버터플라이>가 공개되었다. 그런데 센터가 코다마도 미야와키도 아닌 2기생 타시마 메루라서 말이 많았다.데뷔 싱글 <スキ! スキ! スキップ!>에서도 타시마가 센터를 맡았다. 코다마 하루카는 센터 자리에서 밀려났는데, 이 때문에 동정표를 얻기도 했고 점점 정변하는 모습이 보여서 코다마의 위상도 높아졌다. 데뷔 싱글은 25만 장이 넘는 초동 판매량을 올리며 그동안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2.3. 2013년 : 삿시와 함께 날아오르다


2013년 리퀘스트 아워 서프라이즈로, 사토 카즈야 지배인에서 방송계에서 활동하던 前 톤네루즈 프로듀서 오자키 아츠시로 지배인이 교체되었다. 사토의 경우, 팬들과의 소통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데다가, 운영의 미숙, 당시 에이스인 스가모토 유코를 포함한 5명의 멤버를 사퇴(HKT48 5인 사퇴 논란)시킨 문제, 2기생 등장 이후 1기생의 대우 문제 등등 여러 문제로 인해 교체 된듯 보인다. 이 후 지배인들의 신뢰도 투표를 거친 결과 오자키 아츠시는 높은 신뢰율을 보여 정식적으로 지배인에 취임하였다. 앞으로 HKT48의 방송 등장이 많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응들이다. 실제로 지배인 교체 이후 HKT48은 타 그룹 대비 다양한 TV 방송에 출연하고 있고, 이는 새롭게 바뀐 운영진의 적극적인 태도 때문이라는 평이 있다. 방송국에서 각 그룹에 방송 기획을 제안하면, 다른 그룹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일정이 안 맞아 거절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HKT48 운영진은 오히려 운영 측에서 달려들어 기획을 제안하고 도쿄까지 찾아간다고 할 정도.
5회 총선거에서 드디어 HKT48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2년차에 돌입한 막내 그룹으로서 총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사시하라 리노, 미야와키 사쿠라, 코다마 하루카, 오오타 아이카, 타시마 메루, 토모나가 미오 등 여섯 명의 HKT48 멤버가 순위권에 올랐다. 특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시하라의 1위 등극이 결정적이었다. 1위 발표 시 HKT48의 사시하라라는 이름이 알려지며 그룹의 인지도를 끌어올렸고, 삿시의 도약과 함께 그룹 역시 점차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2013년 10월에는 3기생 9명을 뽑았다. 또한 드래프트 멤버로 한 명을 선택. 서프라이즈로 HKT48 단독 투어인 'HKT48 큐슈 7현 투어, 귀여운 아이는 여행을 보내라~' 를 개최한다는 기쁜 소식도 받았다.

2.4. 2014년 : 진격의 하카타


2014년 1월 11일 처음 열린 HKT48 투어에서 팀 K4가 만들어지면서 기존 1,2기 멤버들 및 연구생들이 셔플을 통해 각자 배정받은 팀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캡틴은 사시하라와 마찬가지로 AKB48에서 이적해 온 고참 선배 오오타 아이카로 결정되었다. 영상
2014년 2월 24일 열린 대조각 축제에서 HKT48은 타 그룹에 비해 비교적 적은(?) 변화를 맞이했다. 이미 HKT는 2014년 1월 11일 HKT48 큐슈 투어에서 팀 셔플이 이루어졌기 때문. 그리하여 부캡틴 임명 외에는 내부적으로 변화는 거의 없었다.
우선 가장 큰 변화로는 나카니시 치요리타니 마리카가 각각 AKB48SKE48로 이적한 것. 극장 공연에서 MC를 맡았던 이들이 빠지게 됨으로써 앞으로의 극장 공연 진행이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쵸리 같은 경우에는 2번째 싱글 메론 쥬스에서 선발 탈락한 이후 다시 3번째 싱글에서 선발에 복귀했는데 앨범이 출시되기도 전에 이적 크리를 맞았다. 선발로 들어간 싱글이 나왔는데 활동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5회 총선에서 26위를 차지한 미야와키 사쿠라와 연구생 시절부터 상당한 팬층을 확보해 5회 총선에서 59위를 차지한 토모나가 미오가 AKB48 겸임이 되었다. 또한 어리지만 험한 입담과 큰 키의 보스 캐릭터로 입지를 굳힌 타나카 나츠미와 서구적인 혼혈 이미지와 상반되는 개그 캐릭터를 가진 무라시게 안나 역시 각각 SKE48NMB48의 겸임을 맡게 되었다. 또한 SKE에서 키모토 카논이 팀K4의 겸임으로 오게 되었다.
문제는 이들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2001년생 3기생''' 2명인 타나카 미쿠야부키 나코가 가입 3개월 만에 팀H로 승격되었다는 것이다. 야부키는 이미 커플링곡에서 센터를 맡아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고, 미쿠 역시 타 멤버들에 비해 빠른 성장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아직 어리고 연구생 생활도 얼마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 그렇기 때문에 HKT 팬덤 내에서도 과도한 겸임과 나코미쿠의 빠른 승격으로 인한 과도한 부담에 대한 우려가 발생하고 있다.
새로 생긴 부캡틴 제도에서는 마츠오카 나츠미미야와키 사쿠라가 각각 팀H와 팀K4의 부캡틴으로 임명되었다. 그 외에 팀H↔팀K4 간 셔플링은 없다. 그 외에 1기생인 후카가와 마이코, 2기생 쿠사바 마나미도 정규로 승격되었다.
이러한 기세에 힘입어 2014년 6월, AKB48 6회 총선거에서는 그야말로 진격의 하카타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전년도 1위 사시하라는 속보에서의 압도적 표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올해의 1위 자리를 와타나베 마유에게 내주었지만, 이 외 주요 멤버들이 대부분 랭크인에 성공한 데다가 그다지 푸쉬받지 못한 몇몇 멤버까지도 총선거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데에 성공하여 선배 그룹인 NMB48보다 권내 진입 멤버수와 합산 표수를 앞서는 성과를 거두었다.에이스 미야와키 사쿠라가 선발에 첫 입성했고, 토모나가 미오코다마 하루카가 언더걸스로 올라왔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주목받지 못했던 모리야스 마도카마저도 첫 진입에 언더걸스가 되었다. 게다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카구치 리코가 퓨쳐걸스에 진입하여 작년 총선거의 2배가 넘는 13명을 진입시켰다. 특히 모리야스는 첫 진입 멤버 중에서 이코마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다만 2기생 센터인 타시마 메루가 저조한 성과를 보인 것이 조금 아쉬운 부분으로 꼽힌다.
2014년 11월에는 총선거의 기세에 힘입어 미야와키가 AKB48의 싱글인 希望的リフレイン에서 더블 센터로 뽑히고, 모리야스가 처음으로 선발 멤버에 진입하는 좋은 소식을 맞이한다.
2014년에 접어들어 전체적으로 멤버들의 출연 및 인지도는 크게 올라갔지만, 정작 CD 판매량은 싱글을 2회 발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변화가 없는 것이 약점으로 꼽히고 있다. 초동 30만장의 벽을 깨는 것이 관건.

2.5. 2015년 : 성숙기


2015년 5월 10일 개최된 AKB48 그룹의 두 번째 드래프트 회의에서 삿시는 지배인 자격으로 참가해 리더십을 과시했다.[3]
2015년 6월 6일 실시된 AKB48 41st 싱글 선발 총선거 '순위 예상 불가능, 대파란의 하룻밤' 에서 HKT48은 이제 그룹의 막내가 아닌,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줬다.
1위를 탈환해, 이 분이 분밖에 차지하지 못했던 2관왕 에 오른 삿시를 선두로 카미7에 진입한 미야와키 사쿠라(7위), 언더걸스 센터를 차지한 코다마 하루카(17위), 넥스트걸스 센터를 차지한 아나이 치히로(33위), 유키링마유유와 동기로 팀의 맏언니격인 러브탄(41위) 등 무려 15명을 포진시켜 먼저 생긴 NMB48을 한 명 차이로 꺾었다. 삿시는 1위 소감에서 HKT48 멤버들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시했고 멤버 모두는 기립 박수로 화답하는 훈훈함을 연출했다. 이는 HKT48에서만큼은 사실상 총감독, 프로듀서 역할까지 대행하는 삿시의 리더십이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총선거에서의 선전과는 별개로, 아직까지 그룹 독자적으로 생명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특히 거점인 큐슈 지역에서 팬층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악수회 판매량으로 증명되어, 싱글 판매량이 30만장 초반대에서 머물고 있다. 악수회 판매량 등을 고려하여 메이저 데뷔 후 2년간 매년 2장의 싱글을 발매 중에 있고 약간씩 판매량이 상승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단번에 치고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중.
2014년 처음으로 졸업생이 나온 이후 한동안 졸업생이 나오지 않다가, 2015년 상반기를 시작으로 2기생을 중심으로 조금씩 졸업자가 나오고 있다.
쿠사바 마나미는 스캔들로 추정되는 사건이 밝혀진 이후 '학업'을 이유로 졸업하였으며, 이 외에 '''더블 이즈미'''로 통하는 고토 이즈미는 '학업'을 위해, 우메모토 이즈미는 꿈이었던 '싱어 송라이터'를 위해 졸업을 하였다.
2015년 12월 19일, 해바라기조 '지금은 연애중' 쇼니치에서 '''제4기생 오디션 개최'''[4] 및 '''전국 투어'''를 개최한다는 서프라이즈를 발표한다.
2015년 12월 23일, HKT48의 극장이었던 '''호크스 타운의 재개발 확정.''' 즉, '''폐관''' 한다는 기사가 나왔고, 찌라시가 아닌 신문에서 발표된 거기 때문에 폐관은 확실하다.
이로써, 새로운 극장을 어디로 하게 될지도 주목.

2.6. 2016년 : 졸업의 시작


'''그간에 노력했던 멤버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한 시기'''
2 월 6 일, 전국 투어 「HKT48 봄의 라이브 투어 ~ 자자 드 솔레 2016 ~」가 이날 나고야 공연을 시작으로 시작된다.
2 월 23 일, HKT48 극장의 폐쇄에 따른 새로운 거점으로 ​​후쿠오카시 주 오구 덴진 니시 테츠 홀 ( 솔라 리아 스테이지 6 층)을 '홈 시어터'와 같은 해 4 월 28 일 첫 공연을 할이 일 "자자 드 솔레 '도쿄 첫날 공연에서 발표 되었다.
또한 니시 테츠 홀은 "전용"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일반 이용도 열린다. 또한 이에 따른 극장 이용 불가 기간의 대응으로 자매 그룹 전용 극장에서의 출장 공연 실시도 함께 발표 되었다.
3월 30일, 3기생(7명)과 드래프트 2기생(3명)이 승격되면서 '''팀TⅡ가 결성'''되었다. 영상
7월 12일, HKT48 여름 라이브 홀 투어 In 후쿠오카 선 펠리스 홀 2일차 공연 중, 4기생 11명이 공개되었다. 그러나 2016년 7월 21일, 4기생 합격자 중 오토시마 리사가 전 소속사와의 계약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지 못한 것이 알려져 합격이 취소되었으며, 결국 4기생은 총 10명이 되었다.
2016년의 가장 큰 화두는 마츠오카 하나로 이 해의 초기 오데카케에서 고토 테루모토의 발언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팬덤내에서 핫해졌다. HKT선발->HKT센터-> AKB22인선발 까지 올라가면서 초고속 승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것은 2016년 성적이 정체기에 빠졌고, 나코미쿠를 제외하고 3기생에서 기대받았던 아라마키 미사키, 야마시타 에미리같은 멤버가 전혀 성적을 못올리면서 비인기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2기생도 악수회 완매율이 상당히 낮은편이라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꿈이라고 할 수 있는 홍백 출전은 요원해 보인다.
결국 11월에 발표된 홍백 출장자 명단에선 HKT의 이름은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노기자카46가 전국구 아이돌로 대성장한걸 감안하면 사시하라 리노, 미야와키 사쿠라를 제외하고 확실한 인기멤버를 만들지 못한것이 패착이라는 평가. 케야키자카46가 급성장 중이라서 내년에도 이런 상황이면 팬덤이 더 줄어들거라고 팬들은 걱정하고 있다.

2.7. 2017년 : 위기의 한해


사시하라 리노라는 스타의 파워와 AKS 차원의 푸쉬로 인해서 이들은 동세대 멤버들에 비해서 높은 인지도를 갖게 되었다. 유튜브 조회수도 자매그룹중에서 상위권, 많은 관객의 콘서트도 매번 개최했다. 그러나 항상 싱글 판매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것은 HKT48AKB48 전성기 마지막에 데뷔하여 다른 그룹보다 전성기 파워도 못받고, 신규 오타 유입도 적었다고 볼 수도 있다.
48그룹 중에서 가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위치라는점은 변명의 이유는 된다. 로컬 방송국도 약한 후쿠오카가 기반인점도 하락세에 영향을 주었다.[5] 어쨌거나 HKT는 4개의 초창기 48그룹중에서 가장 지역 밀착에 실패했다.
2월 15일 9 번째 싱글 「バグっていいじゃん」이 발매 되었다. 이례적으로 3기와 4기생 위주로된 어린 멤버 위주의 선발을 하면서 48그룹에선 보기 힘든 선택을 하였다. 애니 타이업이라는 점이 어필되었다. 그런데 초동이 210,070장 으로 작년 269,907장에서 무려 6만장 가까이 사라져버렸다. 합계 스코어도 271,997장으로 큰폭으로 떨어졌다. 한국팬들 사이에선 '''선발멤버가 그러니깐''' , '''큰 기대 안했음''' 이런 말들이 오갔다. 실제로 센터나 선발 멤버가 판매량과 관심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가위바위보 싱글과 같은 것이 그 예
4월 10일에 HKT48에서 사시하라 부재중일때 멤버들을 통솔하며 팀의 기틀을 다져온 오오타 아이카가 졸업했다. 꽤나 의미있는 졸업으로 HKT와 AKB 각각 거의 5년씩 하고 떠났다.
6월 17일에 있었던 AKB48 총선거에서 활약을 했다. 항상 그래왔듯이 총선거에선 강했다. 아쉬운 부분은 사시하라 리노미야와키 사쿠라를 제외하고 선발을 넘지 못한 것. 코다마 하루카가 부상 여파로 총선불출마했던게 아쉬웠다. 그래도 언더걸즈에 모리야스 마도카타나카 미쿠라는 멤버를 집어 넣은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고 어린 멤버들이 다수 권내에 진입했다.
총선거가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29일에 『HKT48의 오데카케』가 종료되었다. 팬들은 아쉬워했지만 아이돌 방송치고는 장수한 편이었다.솔직히 사시하라 리노고토 테루모토의 능력으로 이어진 방송이었다. HKT 입장에선 뼈아픈것이 관동에 유일한 칸무리가 사라져 버린것이 아쉬웠다. 이제 남은 것은 후쿠오카 로컬인 '''버라이어티48''' 하나 뿐이다.
이 칸무리의 종료는 하카타에게 심각한 위기를 가져다 주는데, 후쿠오카 지역 방송도 장악 못한 상황이라 미디어의 출연이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그 힘들었던 SKE48 조차도 지역로컬 레귤러는 2017년의 HKT보다는 많았다. 그만큼, HKT에게 있어서 오데카케가 중요했다. 향후 웹방송이나 레귤러를 어떤식으로도 늘려야 향후 판매량 감소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8월 2일 10번째 싱글 『キスは待つしかないのでしょうか?』가 발매되었다. 전작은 '제대로된 선발이 아니라서 그런걸꺼야' , '애니 타이업 노래가 구렸어' 이랬던 팬덤인지라 이번 작품은 초동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초동 199,504장으로 처음으로 20만장이 깨졌다. 전작보다 더 심각한 성적이었다. 총합은 더 처참한 211,388장이었다. 기대치에 훨씬 못미친 싱글이 되었다. 앞서 예상한대로 NGT48 , 팀8, 케야키자카46등 새로운 아이돌에게 팬들이 옮겨버렸다는 의견도 있다. 앨범 판매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HKT48에서 인기멤버는 아직 전혀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런것이다. 미야와키 사쿠라 , 코다마 하루카 투탑도 건재하고 1기 인기멤버도 캡틴 아나이 치히로말고 졸업은 없었는데 판매량은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름대로 잘 뽑았다는 드래프트 2기와 4기생이었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팬들도 다소 멘붕해버린 느낌이다. 엎친데 덮친격 오데카케까지 끝나버려서 외부에서 신규 팬 유입의 장소마저 끊겨버린 것이 매우 절실하게 느껴졌다. 전용극장도 없어지고 공연을 못할 때도 많아서 이미 극장체제가 작동이 잘 안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한 마디로,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버렸다.
팬덤 내에선 "원래 악수가 안 팔리는 키타 큐슈 지역에서 2일 연속으로 악수회를 넣었던게 컸다." 라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인게 후쿠오카 태생의 아이돌이 자신들의 지역인 큐슈에서 악수회가 안 팔리는것이 HKT48의 근본적 문제였다. 린큐 같은 지역아이돌도 확실히 제쳐버리지 못하고 지역 팬덤을 잡지 못한 것이 지금부터 크게 드러나는 것이다. '''관동 로컬'''이 없어진 현재 시점에서 뒤늦게 후쿠오카 로컬을 잡으려고 해도 너무 늦어버린 느낌이다.
HKT의 문제는 '''본점의 도핑'''으로 인한 지점의 일정이 꼬이는 문제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인 것이라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10월이 되어도 오데카케 방송종료 이후 4달이 지나도록 새로운 방송 소식은 없고, 지역 방송도 그나마 한 달에 한 번 하는게 고작이라 멤버들을 도통 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11월에는 HKT48에 첫 앨범이 드디어 나오게 된다는 소식이다. 최근 안 좋은 소식 중에서 유일한 좋은 소식이다. 사시하라 리노가 위기를 느끼고 STU와의 겸임을 해제하고 HKT에만 전념한다고 하였으나 이미 그것과 관계없이 HKT의 하락세는 걷잡을 수 없이 꽤 많이 진행되었다. 사시하라 리노라는 간판이 졸업하고 주축인 1기가 모두 떠나면 취약한 팬층이 급속도로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
12월 STU48의 2개 방송이 시작되었으나, HKT의 이름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연말 가요제에서도 HKT48의 출연이 많이 줄어들었다. 사카미치 그룹 2개에 AKB, NMB가 있어서 아키모토 사단으로 최대 4개 그룹이 한계인 듯 하다.

2.8. 2018년 : 한국조 2인의 부재, 그리고 삿시의 졸업[6]


이미 작년부터 시작된 문제이지만, 극장[7]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다. 당장 1월의 정초 공연도 5일에 겨우 시작했는데 휴관일도 너무 많아진데다 여러모로 극장공연 횟수를 늘리는 것이 절실하다.
게다가, 3월이 되도 칸무리 방송은 시작될 기미조차 전혀 안 보이고 있다. 현역 아이돌 최강자 사시하라 리노라는 멤버를 데리고도 신방송 론칭을 못 한다는 것은 뼈아프다. 당장 관동지역, 후쿠오카를 합쳐도 1달에 한번하는 버라이어티 48말곤 아무것도 없으니 팬덤은 즐길거리 수 있는 야리코미같은 부분이 너무 없다. SKE48NMB48와 비교해도 그룹내에서 칸무리가 이 시점에서 가장 적은편이다. 신생 그룹으로써 고전하는 STU48도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당장에 AKS 차원에서 큰 푸시는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2018년 기준 차세대 라인도 급변해서 초기 센터 토모나가 미오타시마 메루의 상황도 좋지 못하다. 당초 선발이 확실시된다고 여겨졌던 토모나가 미오는 2017년 35위로 순위가 급락했다. 토모나가 미오는 이후 악수회에서도 완매율이 크게 늘지 않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무릎 수술까지 했다.
타시마 메루 역시 완매율이 계속 떨어지는 중인데 총선거 40위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성장하지 못하고 한계를 맛보고 있는 중이다. 사실상 2012년 부터 광푸쉬를 했던 두 명은 기대치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나마 타시마 메루는 이 해 총선거에서 20위 후반의 순위를 받으며 HKT48 내에서 유일하게 언더걸스에 진입하면서 희망을 보여줬다.
이 시점에서 인기 구도는 타나카 미쿠야부키 나코의 악수 성적이 2기~4기중에서 제일 좋다. 타나카는 2017년 언더걸스에 이어 악수회에서도 쾌조의 성적을 보여주는 중이다. 그리고 푸쉬를 거의 못받던 모리야스 마도카는 2년전부터 코어의 악수완매율이 좋아졌는데 이는 HKT 5위 정도의 순위다. (다만 10회 총선거는 불출마했다.)
기대했었던 마츠오카 하나의 28부 수준으로 부수를 끌어올렸고 총선거도 어찌어찌 권내는 해냈지만 2회의 센터를 주면서 푸쉬를 해준 것을 감안한다면 다소 초라한 성적이다. 그리고, 토요나가 아키가 총선거 순위도 높아서 향후 차세대 라인에선 두 명의 치열한 경쟁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투어는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HKT의 최대장점은 사실 꾸준한 투어에 있다.
1)봄의 관동투어(春の関東ツア) 3월18일~4월14일 : 전체 7회 공연 (이바라키, 토치키, 사이타마, 치바, 카나가와, 도쿄)
2)봄의 아레나투어(HKT48 春のアリーナツアー) : 2월25일~5월27일 (10회)
  • 2월 25일 고베 월드 기념홀(神戸 ワールド記念ホール) : 낮밤 5000명씩, 약 1만명 동원
  • 3월 17일 센다이 제비오 아레나(仙台ゼビオアリーナ) : 낮밤 3500명씩, 약 7천명 동원
  • 3월 31일 사이타마 슈퍼아레나(さいたまスーパーアリーナ) : 약 1만 5000명 동원
  • 4월 29일 오키나와 컨벤션 센터(沖縄コンベンションセンター) : 낮밤 3000명씩, 약 6000명 동원
  • 5월 27일 마린 멧세 후쿠오카에서 봄의 아레나 투어 최종일을 맞이했다. 모든 멤버가 집결. 밤낮 합해 약 1만 4000 명의 팬이 관람했다.
5월 27일 콘서트에서 5기생 오디션 개최가 발표되었다. 6월 24일에 오디션에 대한 세미나를 후쿠오카에서 열릴 예정이며 "현역 멤버의 활동 내용 및 합격 비화 설명, 질의응답 멤버와 사진 촬영회, 참가자 중 일부 캐스팅해 1차 오디션 면제권 부여"의 혜택이 있다.
2018년 5월부터 일부 멤버들이 엠넷 프로듀스 48에 참여하기 위해서 투어, 악수회를 병행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고 있으며, 일본팬 들은 이들을 한국조(韓国組)로 부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상암동의 CJ E&M 스튜디오에서 엠카운트다운 녹화 스케줄이 잡히면 이들의 직찍 프리뷰가 웬만한 걸그룹 못지 않게 인터넷 웹상에 나올 정도며, 본 투표에 들어가자마자 한국에서 지하철 광고 및 서포트가 곳곳에서 뜨는 중이다. 특히 미야와키 사쿠라의 경우는 내꺼야 무대에서 일본 참가자들의 센터를 맡아서 주목도가 올라가는 중이다.
6월 19일 HKTBINGO! 방송 신설이 발표되었다.
7월 1일 부터 '''HKT48의 요카X요카''' 쇼룸 방송이 시작된다. 2명의 멤버들이 하는 보이는 라디오 형식의 방송이다.
8월 31일 미야와키 사쿠라, 야부키 나코IZ*ONE 데뷔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9월 24일 악수회에서 미야와키 사쿠라, 야부키 나코의 IZ*ONE 전임 활동이 확정되면서 2년 6개월간 전격적으로 HKT48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미야와키 사쿠라는 HKT에서 가장 현장 인기가 많은 멤버, 야부키 나코 역시 차세대의 중심격 멤버여서 매출에 큰 타격이 있을것으로 보인다.
물론 역으로 두 자리가 비게되면서 차세대와 중견 멤버에겐 큰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1기의 졸업도 슬슬 다가오는 시점이라 본격적 세대교체가 시작되었다.
2018년 11월 26일, HKT48의 7주년 기념 극장공연 '''「777んてったってHKT48 ~7周年は天神で大フィーバー~」''' 을 시작했다. 오프닝 무대에서 무라카와 비비안이 DJ를 진행하며 랩을 하는 모습을 선보여서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2018년 12월 15일, HKT48 7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사시하라 리노가 졸업을 발표했다. 이전에 5ch에서 먼저 나온 이야기이긴 하지만, 7주년 기념 콘서트에 삿시의 팬 들이 대거 당첨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며 혹시 졸업발표하는거 아니냐는 분위기가 흘렀는데 그게 적중한 셈. 많은 멤버들[8]이 눈물을 흘렸으며, 특히 이 날이 전임 전 진짜 마지막 콘서트였던 야부키 나코는 마지막으로 딱 한 곡만 더하면 안되겠냐며 호소했다고 한다. 졸업은 이미 몇년전부터 결정했다고 한다. 졸업 콘서트는 2019년 4월 28일 요코하마 스타디움[9]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HKT48 자체가 여러모로 사시하라의 영향력이 컸던 그룹. 사야네가 떠난 NMB 보다 더 큰 위기이다. IZ*ONE 2인방 역시도 팀 전력에 중요한 존재였는데 그들마저 2년반 동안 돌아올 수 없다. 결국엔 차세대를 더 강하게 푸쉬해야할 입장이 되어버렸다.[10]

2.9. 2019년 : 변화의 갈림길, 위기인가 반등인가


HKT48에게 2019년은 그야말로 갈림길에 서있는 상황인데, 우선팀의 인기멤버 코다마 하루카는 휴양 중이고, 오랫동안 팀을 지탱해주던 사시하라 리노는 졸업하고, 팀의 에이스 미야와키 사쿠라와 차세대로 상당히 푸쉬되던 야부키 나코가 IZ*ONE 전임으로 당분간 활동할 수 없는데다 아직 차세대 멤버들의 인지도가 많이 올라오지 못하다보니 메인 멤버들과 차세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멤버들이 늘어나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이러다보니 현재로서는 차세대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타나카 미쿠의 활약이 상당히 중요해졌다. 단지 총선거 성적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팀을 이끌어가야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NGT48 사건의 여파로 후쿠오카도 AKB48그룹의 스폰서를 내릴 검토를 하고 있는 기업이나 자치 단체가 있는 듯하다.#
6월 3일에 오랜 기간 활동을 쉬던 코다마 하루카가 결국 졸업을 발표했고 6월 9일에 졸업 공연도 없이 졸업했다.
게다가 독보적인 최장신 및 독설가 캐릭터로 큰 인기를 자랑하던 타나카 나츠미가 2019년 12월 15일에 졸업을 발표하였고 몇일후에는 무릎부상으로 인한 재활치료로 인해서 오랫동안 활발한 활동을 하지못했던 2기생의 에이스 멤버였던 토모나가 미오마저 12월 21일에 끝내 졸업을 발표하여 동료들은 물론 팬들에게 큰 충격과 아쉬움을 주었다.
최근들어 팬들이 가장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싱글 발매 텀.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1년 1싱글을 발매하여 팬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3. 2020년대



3.1. 2020년 : 독립, 격동의 한 해


1월 19일, 20일 열린 리퀘스트 아워 행사에서 HKT곡이 1위를 달성했다. HKT곡이 리퀘아워에서 1위한건 사상 최초이다.
1월 20일, HKT48을 매니지먼트하던 주식회사 AKS가 사명을 변경하고, HKT48을 매니지먼트할 자회사를 따로 설립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대부분의 오타들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이다.
2020년 3월 7일 SHOWROOM에서 HKT48 13th 싱글 선발멤버 발표 방송이 진행됐다. 운죠 히로나가 '''첫 단독센터'''를 맡는 것이 발표되었다.
2020년 5월 27일, HKT48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Mercury와 NGT48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Flora를 통괄하는 주식회사 SPROOT이 설립되었고 주식회사 Mercury는 그 산하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주식회사 SPROOT은 LINE이 자본을 투자하고 LINE 엔터테인먼트 컴퍼니의 대표이사가 사외이사를 겸하게 되는데, 그룹의 앞날에 상당한 격변이 일어날 듯 하다.
2020년 10월 18일 19시부터 진행된 1기생 긴급라이브방송에서 신 극장 오픈일이 11월 2일이라고 공개되었다.
원래는 2020년 4월에 오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의 영향과 멤버 건강관리 차원상 부득이하게 연기, HKT48의 신극장이 2020년 11월 2일에 오픈하였다.
호크스타운 시절 전용극장 이후 4년 7개월만에 전용극장으로 컴백홈인셈이며, 첫 공연은 관객입장하에 HKT전 멤버가 나오는 오픈 기념공연이였다.
2020년 11월 2일 서일본시티은행 HKT48 극장 오픈기념 공연 직후, 博多なないろ公演이 개최됨이 발표되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레드팀, 핑크팀, 오렌지팀, 옐로우팀, 그린팀, 블루팀, 퍼플팀의 일곱 개의 팀이 공연을 진행한다. 구성 멤버는 제비뽑기로 결정하였다.
이 일곱 개의 팀 구성원과 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자면 아래와 같다.
전 7팀 중 가장 밸런스가 잘 잡힌 멤버 구성이다. HKT의 MC 1인자이자 후배들이 가장 접근하기 쉽다는 시모노 유키가 사실상 리더이며, 시모노 유키가 공연의 세트리스트를 구성할 때도 다른 멤버 6명이 만장일치 예스맨으로 무한의 긍정과 신뢰를 보냈다고 한다. 세트리스트는 각 멤버들의 이미지에 맞는 곡으로 구성하였는데 팀 컬러인 레드와 걸맞게 오프닝 첫 곡이 HKT48 12th 싱글에 실린 5기생의 곡인 “새빨간 우산” 인게 특징.
팀 내 MC담당은 시모노 유키이며, 팀 마스코트는 이시바시 이부키 이다.[11]
손에 꼽히는 극악의 난이도인 곡으로만 꽉꽉 채운 세트리스트가 특징이다. HKT 내에서 안무소화력과 퍼포먼스가 1인자라 선생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우에노 하루카가 세트리스트를 구상해서 HKT 안무지도 선생님께 검토를 받으러 갔는데 안무가 선생님 조차 이건 절대 소화 못한다고 뜯어말릴 정도였다고 한다. 첫 오프닝곡에서 지토우에 네네의 솔로 센터 안무가 특징이다.
팀 내 MC담당은 와타나베 아카리, 팀 마스코트는 아라마키 미사키이다.[12]
원래는 5기 연구생였던 쿠도 하루카까지 포함 7명였지만 극장 오픈 전 2020년 10월 그룹을 졸업하는 관계로 6명이 되었다.[13]현 HKT의 센터인 운죠 히로나가 소속된게 특징이며 선배 멤버 5명 모두 5기생 타나카 이오리의 오시인것도 소소한 특징이다.전 7팀 중 유일하게 소품을 이용한 곡이 있다.[14]
팀 내 MC담당 사카구치 리코, 팀 마스코트는 타나카 이오리이다.[15]
5기생이 4명이나 포함 된 멤버 구성이 최고참급과 최고신참으로만 구성 된 극과 극의 팀이다. 다른 특징으로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멤버가 4명이며,[16] 5기 연구생들도 가장 나이가 많은 멤버 4명이 한데 뭉친것도 특징이다. 참고로 후배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멤버로 마츠오카 나츠미를 우선적으로 손꼽는데 제비뽑기로 그린팀에 나츠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5기생들이 모두 걱정과 두려움의 탄식을 했다고 한다.여담으로 녹색의 의상이 없어서 HKT의상팀이 의상 선택에 제일 고민을 했다고 한다.
팀 내 MC는 이치무라 아이리, 팀 마스코트는 마츠오카 나츠미[17]

HKT에서 통제불가능 멤버들, 마이페이스, 천연이 다 모였다. 전 팀에서 제일 놀자판으로 잘 놀고 토크 또한 무라시게 안나와 타시마 메루가 하드캐리한다. 이 2명의 희생양으로는 주로 모리야스 마도카, 쿠리하라 사에가 당한다.[18]유일한 5기생 카와히라 히지리 또한 미지의 멤버에서 슬슬 무라시게와 비슷한 노선을 밟을 정도로 무라시게 본인도 '''카와히라 히지리랑 있어보면 자기랑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하였다. 여담으로 너무 자유로운 영혼들이 모여 있어서 당장 공연 시작 2분전에 타시마 메루는 양치질하러 가거나, 토요나가 아키는 3분전에 옷 갈아입고, 쿠리하라 사에는 다른 팀이 공연 할 땐 멤버 대기실에서 의상을 벗고 속옷만 입고 편하게 대기한다고 한다.
팀 내 MC는 타시마 메루, 팀 마스코트는 무라시게 안나[19]
HKT내에서 손에 꼽히는 키가 큰 멤버들이 한데 모여있는것이 특징인데 이것보다 더 두드러지는 특징은 MC지옥, 4차원 멤버들의 집합소이다. 히나타, 소노, 세키 아이, 리노 4명 전부 그 무라시게 안나가 정말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져서 위험한 멤버들이라 인정할 정도이며, 10에 9은 MC타임에 사차원, 삼천포로 얘기가 흘러빠지고 자기가 뭔말을 하는지 자기도 모르는 그런 사태가 일어나서 팀 블루와는 또 다른 공연을 보는 재미가 있다. 여담으로 큰 키 덕분인지 가장 스타일이 좋다.
팀 내 MC는 마츠모토 히나타[20] 팀 마스코트 또한 마츠모토 히나타이다.
멤버 모두 키가 150cm~155cm 범위일 정도로 너무 평균적으로 균등하게 모인게 특징이다. 이점이 다른 팀한테 꼬꼬마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기도 한다.평소 정규 팀 극장공연 MC타임 때 뜻한대로 분량을 뽑지 못하고 사석에서는 말은 잘 하는데 무대공포증으로 스테이지에서는 MC타임 때 눈물까지 터트린 그 바바 사야카가 이 팀 안에서도 그 캐릭터를 살렸다. '''바바 사야카의 알아두면 언젠가 써먹을 잡지식 코너''' 라는걸 공연MC타임때 말하는데 그게 도쿄 야마노테선의 내부순환선 길이, 후쿠오카 오오호리 공원의 호수는 도쿄돔 4.6개분, 인간의 평생 눈깜빡이는 횟수 등 정말 잡지식인것이 특징. 바바 사야카 본인도 평소 잡지식 찾아보는게 취미라 할 정도로 은근한 재미를 선보이고 있다.
팀 내 MC는 무라카와 비비안, 팀 마스코트는 당연 바바 사야카이다.

[1] 사실, 사시하라 리노의 졸업은 총선거에 불출마한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알음알음 나온 이야기였다.[2] 원래는 4명의 유닛[3] 이 때 지배인은 참관인 자격이고 드래프트 멤버들은 각 팀 캡틴이 중심이 되어 뽑는 형태였지만 삿시의 경우 일반 지배인과 무게가 달랐으니...[4]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때문에 오디션이 잠시 정지되었었고 최종오디션은 6월 11일에 했다.[5] 서울→부산이 325km인데, 도쿄→후쿠오카는 1096km라는걸 감안하면 접근성의 취약함은 확실히 존재한다.[6] 사실, 사시하라 리노의 졸업은 총선거에 불출마한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알음알음 나온 이야기였다.[7] 니시테츠 홀. 접근성은 호크스타운 때보다 훨씬 좋아졌으나 휴관일수, 타 공연과의 스케줄조정이 문제가 된다.[8] 감자들이 가득한 HKT를 함께 이끌던 오오타 아이카나, 총감독 요코야마 유이, 미네기시 미나미 정도의 본점 고참 멤버들만 이 소식을 미리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9] 48그룹에서는 1대 총감독 타카하시 미나미가 이 곳에서 졸업 콘서트를 치룬 적이 있다.[10] 그나마 다행이라면 하카타 주축인 1기와 2기가 아직 졸업러쉬를 시작하지 않은 상태라서 시간을 벌 수는 있게 됐다.[11] 2020년 12월 기준 HKT 최연소 멤버로 막내이쁨 받고있다.[12] 천사 그 자체라고 미사키가 말 한마디만 꺼내도 환호성 지르고 난리이다.[13] 2020년 8월 진행했던 팀 제비뽑기 영상을 보면 뒤 화이트보드에 붙은 팀 편성표에 옐로팀에 쿠도 하루카가 속했음을 확인가능하다.[14] 치어리더들이 손에 들고 흔드는 제기 같은 모양의 도구를 양손에 들고 곡을 한다.[15] 이오리가 자기소개를 하거나 토크타임에 얘기를 하면 선배멤버 모두 딸내미보는 눈빛으로 된다.[16] 마츠오카 나츠미, 후치가미 마이, 쿠리야마 리나, 오가와 사나[17] HKT멤버들 사이 존재감이나 후배들의 이미지 투표를 생각하면..[18] 특히 무리시게 안나의 센터 곡인 하이텐션 때 , 무라시게가 좀 얌전하고 조용한 멤버를 네타로 써먹는데 모리야스 마도카가 주된 사냥감[19] HKT 안에서 최고의 네타,예능,재미,개그,미친자의 1인자에 위치하고 있다.[20] 제일 걱정되는 멤버가 어째서인지 MC포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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