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그랑프리
1. 개요
'''일본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닌을 가리는 대회'''
일본의 코미디 전문 기획사 요시모토 흥업이 주최하는 만자이 선수권 대회.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12월에 총 10회 개최되었다. 심사 기준은 아무튼 재미있는 만자이.
2010년 12월에 개최된 10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가 돌연 부활이 발표되었다. 5년의 충전 기간을 거쳐 2015년 여름에 개최. 8월부터 1회전이 시작되며 종전처럼 결승전은 12월에 방영할 예정이다. 특이사항으로는 공백을 고려하여 출전자격이 결성 10년 이내에서 15년 이내로 늘어났고 전회 준결승 진출자가 1회전을 면제받는 시드 시스템도 건재하다.
M-1 그랑프리가 2010년에 종료된 후에 일본 최고의 만자이 대회라는 아이덴티티는 THE MANZAI가 이어받았었다. 하지만 M-1 그랑프리의 부활과 더불어 THE MANZAI는 만자이 대회가 아닌, 만자이 실력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만자이를 펼치는 개그 특방으로 돌아왔다.
2. 상세
대회명은 '만자이(MANZAI)'의 영문 이니셜을 따온 것으로, K-1 그랑프리 등에 빗대어 M-1 그랑프리로 명명되었다.[1][2] 매년 8월 혹은 9월 초순부터 12월에 걸쳐 예선과 준준결승, 준결승전이 치뤄졌으며 결승전은 12월 하순에 개최, 결승전은 TV로 생방송되었다. 또한 결승 진출에 실패한 팀에게는 패자부활전 출장 기회가 주어졌다.참가조건은 결성 10년차 이내의 콤비 및 그룹이면 프로와 아마추어, 심지어 국적도 불문하고 누구나 참가 가능했다.
대회 집행위원장은 인기 개그맨으로 활동하다 탤런트로 전향한 시마다 신스케[3] . 그는 자신이 탤런트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은 데뷔 초기부터 8년 동안 계속했던 만자이 콤비 '신스케·류노스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또한 탤런트 활동을 위해 중간에 만자이를 그만둔 데 대한 죄책감으로 '지금의 인기와 활동을 누릴 수 있게 해준 데 대한 보은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 왔다고 한다. 거기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마츠모토 히토시[4] 와 '제일 웃기는 놈 뽑는 콘테스트 한번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콘테스트'의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 2001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10년간 수많은 인기 개그맨들의 등용문이나 다름없는 대회로 자리잡았다.
규모로 따지자면 'NHK 신인 연예대상'이나 '폭소 온에어 배틀 챔피언 대회'와 맞먹는 대규모 행사였다.[5] 역사로 따지면 기존의 신인 만자이 대회들에 비해서는 짧지만, '만자이의 정점을 가른다'는 대회의 이념 덕분인지 특히 젊은 개그맨들 사이에서는 이 무대에 서는 것이 가장 큰 영광으로 인식되었다. 게다가 M-1 그랑프리의 당시 심사위원진도 일본 개그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탓에 기존 신인 선발대회보다 이 쪽을 중요시하는 연예인이나 연예 관계자들도 적지 않았다.
우승자들은 거의 모두 스타덤에 오르며 순식간에 인생역전. 우승자 뿐만 아니라 결승 진출만으로도 화제가 되어 탑 클래스 개그맨의 자리에 오른 경우도 많다. 그만큼 많은 화제를 불러모으며 지난 10년간 무명 개그맨들의 꿈이 되어온 무대. 그리고 아깝게 우승을 놓친 콤비들도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례가 오도리, 나이츠, 와규.
2014년, 주관 방송사인 아사히 방송이 2015년 부터 M-1 그랑프리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발표를 했다. 참가자격은 '''프로, 아마, 소속사 상관없이 2000년 1월 1일 이후 결성되어 활동기간이 15년 이내인 2인 이상의 팀'''이라고 하며, 2015년 연내로 참가자 모집 상세를 발표할 것이라고 공표되었고 2015년 9월 9일 현재 1차전이 진행중이다. 그리고 11월, 참가팀이 결정되었고 12월 심사위원이 결정됐다. 심사위원은 언터쳐블을 제외한 M-1 우승팀에서 주로 네타를 만드는 사람이 참가했다. 언터쳐블은 스케쥴 때문이라고.
2019년의 M-1 그랑프리는 '''부활 이후 역대급으로 훌륭한 무대였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입모아 말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단 2018년 시모후리묘죠의 예상치 못한 우승으로 인해 불을 지핀 와카테들이 다수 참가했고,[6] 베테랑들의 스테이지였던 생방송 결승 무대에 첫 진출자가 7팀이나 등장했다. 2번째 타자로 나온 카마이타치가 우승급의 득점을 얻으며 많은 사람들이 카마이타치의 우승을 예상했지만, 7번째로 나온 밀크보이가 네타의 참신함과 재미로 현장을 휩쓸며 M-1 그랑프리 사상 최고 점수인 681점을 기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페코파의 상식을 뒤집은 네타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3위였던 와규를 역전해 최종 결전에 진출하는, 말 그대로 반전에 반전이 계속되는 무대였다. 한 편의 인생역전 드라마를 보는 듯 했고,[7] '이런게 바로 M-1그랑프리다'라는 압도적인 호평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최종 결전에 진출한 세 팀은 2020년에 제대로 브레이크하게 되었다.
2020년에는 우승자 마지카루라브리(マヂカルラブリー)가 선보인 네타 때문에 시청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R-1그랑프리 우승 경력도 있는 보케 노다 크리스탈이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몸개그를 하면 그에 맞추어 무라카미가 츳코미를 한 것인데, '한쪽은 거의 말을 하지 않은 것을 만자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라는 식으로 시청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게 갈린 것. 하지만 정작 동업자인 게닌들은 대부분 '2020년의 M-1그랑프리에서 가장 재밌었던 것은 마지카루라브리이기 때문에 우승에 이견은 전혀 없다'라는 입장이라 정말 시청자들 사이에서'''만'''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곧바로 게닌들의 네타감이 되고야 말았다.
3. 역대 우승자
2001년 나카가와가(中川家) - 오사카 요시모토 흥업 소속
2002년 마스다오카다(ますだおかだ) - 쇼치쿠 예능 소속
2003년 풋볼아워(フットボールアワー) - 오사카 요시모토 흥업 소속
2004년 언터쳐블(アンタッチャブル) - 프로덕션 진리키샤 소속
2005년 블랙 마요네즈(ブラックマヨネーズ) - 오사카 요시모토 흥업 소속
2006년 츄토리얼(チュートリアル) - 오사카 요시모토 흥업 소속[8]
2007년 샌드위치맨(サンドウィッチマン) - 플랫파이브 소속(현재는 그레이프컴퍼니라는 회사를 세워 독립)[9]
2008년 논 스타일(NON STYLE)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도쿄 소속[10]
2009년 펑크부부(パンクブーブー) -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도쿄 소속[11]
2010년 와라이메시(笑い飯) -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도쿄 소속[12]
2015년 트렌디 엔젤(トレンディエンジェル) -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도쿄 소속[13]
2016년 긴샤리(銀シャリ) -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오사카 소속
2017년 토로사몬(とろサーモン) -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도쿄 소속
2018년 시모후리묘죠(霜降り明星) -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소속[14]
2019년 밀크보이(ミルクボーイ) - 요시모토흥업 오사카
2020년 매지컬러블리(マジカルラブリー) - 요시모토흥업 도쿄
4. 문제점
개그맨 지망생들에게는 최고의 영예로 인식된 M-1 그랑프리였지만,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예선 심사 과정에서의 불투명성이 종종 손꼽혔으며, 참가 조건 중 '팀이 결성된 지 10년 이내'라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다[15] 결성 시기를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제도였다. 또한 과거에 콤비나 그룹이 해체했다가 재결성한 일이 있는 경우 해체부터 재결합까지의 기간을 포함하지 않았다.[16] 이런 참가 조건의 허술함을 이용, 결성 10년차를 훌쩍 넘는 콤비가 결성 시기를 속이고 출장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 예로 2008년도 대회에서는 결성된 지 11년이 넘은 콤비가 콤비명을 바꾸고 참가신청을 했는데, ''''변경된 콤비명으로 활동한 기간이 10년 이하'라는 이유로 참가 자격을 인정받은''' 사례가 있었다.
또한 '요시모토 흥업 소속 이외에는 우승이 거의 불가능한 대회'라는 주장도 나왔고 이것이 M-1 최대의 병폐라는 의견도 있었다. 사실 이런 의견은 처음부터 쭉 있어왔다. 제 1회 대회에서는 일반 심사위원 제도로 요시모토가 운영하는 극장(삿포로, 오사카, 후쿠오카)에서 익명의 일반인 100명을 모아놓고 심사하도록 했었는데 요시모토와 비요시모토 참가자의 점수 격차가 노골적으로 많이 났다. 게다가 같은 요시모토라도 지역별 차이도 눈에 띄게 심각했다. 진리키샤 출신 오기야하기[17] 에 대한 평가로 오사카 극장의 일반 심사 점수가 '''100점 만점에서 9점'''이 나와 출연진을 곤혹케 했고,[18][19] 도쿄 요시모토 출신의 DonDokoDon의 오사카 일반 심사 점수는 18점이었다. 이렇게 도쿄 출신이나 비 요시모토 출연진의 점수가 눈에 띄게 낮게 나오자, 특별 심사위원이었던 마츠모토 히토시는 생방송중에 오사카의 심사위원은 머리가 이상한 게 아니냐고 대놓고 비판했다. 또한 마스다오카다는 특별 심사위원 점수에서 최고점을 받았으나 일반 심사위원 점수에서 훨씬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아 최종결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 상황을 두고 시마다 신스케는 "요시모토 극장이라서 어쩔 수 없다. 점수를 높이려면 요시모토로 오면 된다"라고 반 농담조로 말했다. 자기들도 이런 주장에 대해 처음부터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 결국 일반 심사위원 제도는 이듬해인 2002년부터 철폐되었다.
아무래도 요시모토 흥업에서 주관하는 대회인 만큼 요시모토와 그 계열에 소속된 개그맨들이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사실 요시모토 소속 개그맨들의 머릿수가 압도적으로 많기는 해도, 결승 진출 그룹들의 소속사 비율만 놓고 보면 그렇게 심하게 편중되지는 않은 편이다. 다만 역대 수상자 목록을 보면 마스다 오카다(쇼치쿠 예능), 언터처블(프로덕션 진리키샤), 샌드위치맨(플랫파이브, 현 그레이프 컴퍼니)를 제외한 전원이 요시모토 흥업 계열에 소속된 팀이다보니 대놓고 소속사 개그맨들 푸시하는 대회 아니냐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요시모토 내에서도 칸사이 출신들의 강세가 지나치게 두드러진다는 점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20] .
그래도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결승에 진출한 요시모토 게닌들 가운데 '실력으로 논란이 된 경우'는 거의 없다. 머릿수가 많으니 그 중에 실력자도 많을 수밖에 없다는 사고방식으로 볼 수도 있는 것. 칸사이 출신자가 많은 것에 대해서는 애초에 만자이=칸사이, 콩트=칸토라는 이미지가 있을 정도로 만자이 자체가 칸사이에서 만들어지고 발달된 오와라이 형식이기도 한지라 칸사이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유구한 일이기도 하다.
또한 2007년 샌드위치맨의 패자부활전 우승을 놓고 준결승 심사위원들의 자질이 지적되기도 했고[21] ,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연속으로 준우승한 와규[22] 에 대해 불쌍하다는 의견도 올라오고 있다. [23][24]
2018년에는 전년도 우승자 토로사몬의 쿠보타가 슈퍼마라도나 타케치[25] 와 함께 술 먹고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심사위원인 카미누마 에미코[26] 에게 폭언을 내뱉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게다가 예력도 훨씬 긴 카미누마에게 여성비하적인 뉘앙스가 강한 '갱년기장애'라는 표현을 써서 전방위로 까이는 중. 결국 이 사건의 여파로 카미누마는 심사위원에서 사퇴하였고 둘은 사죄하였다.[27]
부활한 이후 2015년 11회 대회부터의 패자부활전 집계 방식이 '''100% 인터넷 투표'''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논란도 적잖게 있는 편이다. 원래는 선발된 일반인 심사위원 100명과 전문 심사위원 5명이 패자부활자를 선정하는 방식이었지만, 패자부활전을 생중계로 본 시청자들의 인터넷 투표로 전환되면서 논란이 생겨난 것.[28] 만자이 무대를 보지도 않고, 혹은 무대를 봤음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닌에게 투표해 결승 무대에 진출하도록 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즉, '''인기투표'''가 아닌가 하는 논란. 당연하게도 방송을 많이 타지 않은 와카테 게닌들에게 매우 불리하고, M-1의 '가장 재미있는 게닌을 선정하는 무대'라는 취지에서도 벗어난다. 패자부활전 현장에서 직접 본 관객들의 반응과 시청자 투표의 순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도 논란에 한 몫 한다. 2019년의 패자부활자인 와규도 인기투표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29] 2020년의 패자부활전에서는 페코파의 우케가 그렇게까지 좋지 않았던 것에 반해 시청자 투표에서 탑3에 들었다는 것이 발표되며 오와라이 팬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다.[30] '페코파의 팬들은 정말 페코파를 생각한다면 페코파에게 투표하지 말았어야 한다'등의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고, 투표수 1위를 차지한 게닌은 페코파가 아닌 인디언스임이 밝혀진 뒤에야 염상위기에서는 벗어났다.
5. 기타
동방 M-1 그랑프리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2019년 7월 12일 유명 성우 하야미 쇼가 같은 소속사 후배인 노즈야마 유키히로와 콤비로 참가한다고 발표하여 화제가 되었으며, 9월 1일에 열린 1차전을 통과하지만 2차전에서 탈락하였다. 같은 시기 쟈니스 사무소 소속 아이돌 포유 멤버들이 출전하여 3차전까지 진출했으나 3차전에서 탈락. 포유 멤버들은 개그에 욕심이 있는지 그 다음 해에 또 나왔다(...). 작년에 나온 멤버들과는 다른 멤버들이 출전하였는데 이번에는 2차전에서 탈락.
[1] 다만 종목은 정통 만자이에 국한되지 않고, 콩트부터 토크, 노래까지 선보일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단 노래를 부를 경우 핀마이크는 사용 불가능)[2] 킥복싱 이벤트인 K-1그랑프리를 흉내내어 명명한 M-1그랑프리였으나, 일본의 최대 무에타이 이벤트인 M-1무에타이챌린지가 출범하면서, 해당 이벤트에 출장하는 선수들이 'M-1 나가지만 개그맨 아닙니다'라는 농담을 간간히 하기도 한다.[3] 2011년 야쿠자와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은퇴한 그 사람 맞다.[4] 개그콤비 '다운타운'의 보케 담당[5] 다만 최근 임팩트로 따지면 NHK는 M-1보다 약한 편이다.[6] 실제로 우승자인 밀크보이 역시 시모후리묘죠의 우승에 자극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7] 결승에 몇 번이고 진출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게닌 와규와 카마이타치를 일컬어 '밀크보이가 넘어서야 하는 벽'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실행해 드라마틱함을 더해 주었다는 분석도 많다.[8] 최초의 최종결선 만장일치 우승[9] 역대 우승자 중 처음으로 패자부활전에서 와일드카드로 올라와 바로 우승. 이후 2015년 트렌디 엔절이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승했다.[10] 요시모토 흥업의 새로운 사명.[11] 최종결선 만장일치 우승[12] 2002년부터 한해도 거르지않고 결승진출을 한 무관의 제왕이였다.[13] 탈모관련 네타가 주 레퍼토리인 게닌 콤비. 2014년 THE MANZAI에서 준우승을 한후 나름 돋보이다가, 패자부활전에서 나이츠 등을 꺾고 와일드카드로 올라온 후,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하고 우승을 하였다. 다만 파이널에 진출한 게닌 세 그룹 전부 요시모토 소속이어서 역시 잡음이 끊기지 않았다.[14] 최연소 우승 기록. 우승 당시 둘 다 26세였다. 츳코미의 소시나는 고등학생 시절 한국유학 경험이 있다. 또 소시나가 동방 프로젝트의 등장 캐릭터 코메이지 사토리를 연상시키는 티셔츠를 입은 사진이 찍혀서 일본 내 동방 팬들에게 소소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소시나는 본인이 진성 동방 프로젝트 덕후임을 밝히며, 1년 전에는 천공의 그리니치를 등장곡으로 쓰기도 했다고 트윗하였다.[15] "이 바닥(개그계)에서 10년동안 열심히 활동해도 결과를 못내고 사라지는 콤비가 많다. 그래서 10년째를 맞는 애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싶다"라는게 처음 10년 제한을 걸었던 이유라고 한다. 이 말의 진위는 결과도 못내는데 "언젠가는 뜨겠지"하면서 꿈을 포기 못하고 질질끄다가, 나이만 먹어서 인생을 버려버리는 선배 개그맨들을 봐온걸로, 꿈을 포기할수 있는 마침표를 준비하는 걸로, 너무 늦기 전에 다음 인생에 나아갈수 있는 기회를 줘, 뜨지 못하는 개그맨들을 구제해야한다는 사명감이다.[16] 실제로 이런 경향이 일반적이다 보니, 콤비를 해채한 후에도 경력이 꼬이는 걸 막기 위해 홀로 활동하면서도 콤비명 그대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고, 현 콤비의 경력만 보고 후배인줄 알고 막 대했는데 알고보니 이전에 다른 콤비로 활동했던 적이 있는 선배라는 걸 알고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는 사례도 꽤 있다고 한다.[17] 관동출신콤비로서 처음으로 결승에 올랐다.[18] 단, 오기야하기의 경우 특유의 슈르한 개그가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이었고, 관서식의 떠들썩한 개그에 익숙해진 일반 심사위원들에겐 "저게 뭐가 웃긴거지?"라고 느끼게 할 요소(특유의 느긋한 템포와 한박자 늦게 치고 들어오는 츳코미 등)가 있긴 했다. 심사위원들이야 단순히 재미만이 아니라 개그맨 각각의 스킬이나 템포와 리듬, 숙련도 등도 보기에 오기야하기의 실력을 높게 평가하고 TV로 보는 전국의 시청자들에겐 이런 개그가 맞는 경우도 있기에 호평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관서출신이 많은 당시의 일반 심사위원들에게 그정도 채점안을 바라는 것은 조금 무리인 면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즉, 프로의 시선과 아마추어의 시선의 차이인 셈.[19] 반대의 경우로, 관서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도쿄 진출을 이룬 개그맨들이 전국방송에서 별 족적도 못남기고 관서로 돌아가는 경우도 상당히 많은 편이며, 그 외에도 특정 지역에서 팍 뜬 개그맨이 다른 지방에선 별 호응을 못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만큼 같은 나라라도 지역별로 취향차이란 것이 꽤 큰 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20] 논 스타일과 와라이메시는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요시모토 흥업 계열) 도쿄 소속으로 우승했지만, 도쿄로 진출하면서 소속사를 옮긴 경우라 실질적으로는 오사카게닌으로 취급되며 도쿄와 오사카 요시모토도 회사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르다. 따라서 요시모토 흥업에 소속된 개그맨 중 비 칸사이 출신 우승자는 펑크부부 (큐슈 출신), 트렌디 엔젤 (간토 출신) 두 팀 뿐이다. 비 요시모토 우승자 중에는 칸사이 출신이 마스다오카다 단 한 팀밖에 없는 것이 특징.[21] 이 이후 2014년 부활을 이룬 후로는 샌드위치맨 토미자와 타케시, 나카가와가의 레이지, 블랙 마요네즈의 요시다 타카시, 와라이메시 테츠오, 논스타일 이시다 아키라, 풋볼아워 이와오 노조무, 마스다오카다의 오카다 히데히코, 나이츠 하나와 노부유키 등 이전 대회의 우승자 등 실력을 인정받은 신진세력에게 심사위원을 맡기는 비율이 늘고 있다. 특히 2018년의 하나와 노부유키는 업계인은 물론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가장 정확한 평론과 지적을 한다"라며 호평을 받기도 했다.[22] 와규는 2017년 아키나, 아인슈타인과 같이 내한하여 홍대입구역 근처 윤형빈소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23] 이전에 이와 비슷한 취급을 당했던 것이 와라이메시. 무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9회 연속 결승진출에 총 5회 최종결선 진출(2001년 1회 대회는 2회전 탈락. 결국 참가 자체는 10년 전부 다 했다)이라는 기록을 세우는 바람에 매년 M-1에서 보지만 결과는 못 내는 팀으로 유명했고 본인들도 이걸 개그소재로 써먹기도 했다. 결국 2010년 마지막 M-1에서 우승을 달성하며 염원 달성에 성공한다.[24] 그런데 당시 2위였던 슬림클럽이나 전년도 우승자 펑크부부가 상당히 막강했고, 특히 최종결선에선 슬림클럽과 동수의 투표를 받기도 해서 꽤 위험한 상황이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마츠모토 히토시가 와라이메시의 손을 들어주며 우승을 하게 되는데, 슬림클럽이 네타와 호응으로만 보면 절대 밀리지 않았기 때문에(게다가 와라이메시의 네타는 어느정도 전년도에 했던 소재를 재탕한 것이라 신선도가 조금 떨어졌다) 당시에는 "마츠모토가 M-1에 한이 맺힌 와라이메시에게 마지막을 장식하게 해 준 배려", 즉 밀어주기를 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25] 쿠보타와 슈퍼마라도나는 NSC 22기생 동기라 친한 편이다. 쿠보타의 파트너는 21기로 1년 선배.[26] 간사이에서 활동하는 유명 여성 코미디언, MC이며 홍백가합전의 사회를 보기도 했다.[27] 그러나 주간신쵸 가십기사에 의하면 방송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카미누마의 평판이 심각하게 안 좋은 편이라 고소하게 보는 의견도 있었고 한다.[28] 패자부활전 방식은 준결승 탈락 게닌들이 결승 무대 직전에 만자이를 펼치고, 그것을 생중계로 본 시청자들이 인터넷으로 재밌었던 게닌 콤비 세 명에게 투표해 가장 표수가 많았던 콤비가 생방송 결승때 실시간으로 발표되면 무대 위로 올라가는 시스템이다.[29] 와규는 2016년의 M-1그랑프리부터 3년 연속으로 준우승을 한 만큼 실력은 입증되어 있지만, 이 과정에서 팬을 어마어마하게 끌어모아 팬수로는 타 게닌들을 압도할 정도였기 때문.[30] 페코파 역시 2019년의 M-1그랑프리로 인해 트위터를 중심으로 엄청난 팬몰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