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이 안리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원래 성은 마에다(前田).
2. 생애
미야자키현 노베오카시 출신으로, 건축가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의 차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도쿄에서 일하고있었지만, 바쁜 생활로 토혈하여 미야자키로 옮겨 설계 사무소를 열었다. 그러나 버블 경제 붕괴로 사무소 경영은 어려워져 요식업에 손을 대기도 했지만, 야키니쿠 가게를 했다가 실패하여 요식업에서도 손을 떼었다.
4살 때 미야자키시에 이주하여 미야자키대학 부속 유치원, 미야자키대학 부속 소학교, 미야자키대학 부속 중학교, 미야자키현립 미야자키오미야 고등학교를 거쳐 게이오기주쿠대학 종합정책학부를 졸업 후, 동 대학 대학원 정책미디어연구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생 시절 친구 중에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의 아들 하시모토 가쿠가 있었다. 대학원 수료 후, 해양연구개발기구, 과학기술진흥사업단에 근무했다가 2002년 4월부터 2003년 3월까지 히로시마문화단기대학 비상근 강사를 역임했다.
결혼 상대를 찾던 중 가와이 가쓰유키를 소개받았다. 처음 소개받았을 당시 도쿄에서 저녁 식사를 한 이후 2차로 아카사카의 술집을 갔는데, 이때 안리는 <아마기고에(天城越え)>를 불렀고, 그 모습에 반해 가쓰유키는 그 날 바로 교제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 후 2001년 가쓰유키와 결혼한다. 참고로 중매는 대학 시절 친구의 아버지로 인연을 맺은 하시모토 류타로.
결혼 후, 남편의 선거 지원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2003년 4월 히로시마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7년 재선 후 2009년 자유민주당을 탈당하여 히로시마현지사 선거에 가메이 시즈카와 일부 자민당 현의회의 지원을 받아 출마했으나 유자키 히데히코에게 패배했다. 2010년 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국민신당으로 출마를 타진하려 했으나 불발되었고 같은 해 12월 자민당에 복당했다. 2011년에 현의원 선거에 출마해 의원에 복귀했고, 2012년 3월에는 지역 정당 오사카 유신회가 주최하는 유신정치숙에 참가했었다.
2019년 2월 19일 기시다 후미오 정무조사회장과 아마리 아키라 선거대책위원장이 국회에서 회담, 이듬해 여름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가와이 안리를 출마시키기로 결정했다. 니카이 도시히로, 스가 요시히데 등이 응원하러 방문했고, 남편 가쓰유키는 아내의 당선을 위해 경쟁 후보[1] 에 대한 네거티브 공작을 실시했다.#] 그렇게 개표 결과 2위로 당선되었다.
2.1.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
가와이 가쓰유키 문서 참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021년 1월 21일 도쿄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4개월에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을 선고받았다.
2월 3일, 공선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 때문에 비서를 통해 산토 아키코 의장에게 참의원 의원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 날 본회의에서 사직이 허용되었다. 그렇게 히로시마현 선거구는 공석이 되었고, 보궐선거는 중의원 홋카이도 제2구, 나가노현 선거구와 동일하게 4월 25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