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이 가쓰유키

 

'''일본 중의원 (히로시마 3구)'''
''선거제도 개편''

'''제41대
가와이 가쓰유키'''

'''제42~43대'''
마스하라 요시타케
'''제42~43대'''
마스하라 요시타케

'''제44대
가와이 가쓰유키'''

'''제45대'''
하시모토 히로아키
'''제45대'''
하시모토 히로아키

'''제46~48대
가와이 가쓰유키'''

''현직''
'''일본 법무대신'''
'''제100대'''
야마시타 다카시

'''제101대
가와이 가쓰유키'''

'''제102대'''
모리 마사코
'''일본 제101대 법무대신
(かわ((かつ(ゆき
가와이 가쓰유키
'''
'''출생'''
1963년 3월 11일 (61세)
히로시마현 미하라시
'''거주지'''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아사미나미구 오오마치(大町) 히가시 3초메
'''학력'''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졸업
'''배우자'''
가와이 안리[1]
'''정당'''
[2]
'''의원 선수'''
'''7''' (중)
'''의원 대수'''
41, 43, 44, 45, 46, 47, 48
'''지역구'''
히로시마 3구
'''현직'''
중의원
'''약력'''
히로시마현의회 의원
히로시마현 제3구 중의원
외무대신 정무관
법무부대신
중의원 외무위원장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법무대신 
1. 개요
2. 생애 및 정치 활동
2.1. 아내 가와이 안리의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
3. 소속 정당
4. 선거 이력
5. 기타
6. 둘러보기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2. 생애 및 정치 활동


히로시마현 미하라시에서 태어나 유치원 시절 때까지 미하라시에서 살았다. 이후 히로시마시로 이주해 학창시절을 보냈다. 히로시마현립 야스 소학교, 히로시마 가쿠인 중, 고등학교를 거쳐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전공은 동남아시아 국제정치였다.
대학 졸업 후 마쓰시타 정경숙에 입학했으며,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시 행정관리예산국 국제행정연수생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마쓰시타 정경숙을 졸업한 이후에는 고향인 히로시마로 귀향해 1991년 히로시마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다. 이후 기세를 몰아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자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다. 당시 선거까지는 중선거구제였기 때문에 가와이와 같이 자민당 공천을 받은 또 한 명의 후보로 기시다 후미오도 있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 기시다는 1위로 당선되었으나 가와이는 6위로 낙선했다. 이후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히로시마현 제3구에 자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신진당 마스하라 요시타케를 꺾고 당선되면서 원내에 진출했다. 하지만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마스하라에게 밀려 낙선했다. 게다가 마스하라가 당선 이후 가와이가 속한 자민당으로 입당하면서 지역구를 완전히 빼앗겼다.
낙선 당시 지지자들은 가와이의 최대 선거 패인으로 그가 독신인 점을 지적했다. 가와이는 독신이 최대 선거 패인이라는 지적에 낙담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 지인으로부터 과학기술진흥사업단[3]에서 근무하던 마에다 안리를 소개받았다. 처음 소개받았을 당시 도쿄에서 저녁 식사를 한 이후 2차로 아카사카의 술집을 갔는데, 이때 <아마기고에(天城越え)>[4]를 부르는 안리의 모습에 반해 그 날 바로 교제를 결심했다고 한다.[5]그 후 2001년 안리와 결혼한다.
독신이 선거 최대 패인이라는 지지자들의 지적이 맞았었는지 결혼 이후 2003년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원내에 복귀했으며[6], 2005년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원래 자신의 지역구였던 히로시마현 제3구에 자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해 당선되어 지역구 탈환에 성공하는 등 결혼 이후 정치 운이 잘 풀렸다. 또한 이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과 아베 신조 1차 내각에서 각각 외무대신 정무관과 법무부대신을 역임한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코스타리카 방식’[7]에 따라 다시 비례대표로 자리를 옮겨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리고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다시 지역구로 자리를 옮겨 당선되었다. 사실 이 ‘코스타리카 방식’이 가와이에게 굉장히 유리했던 것이 가와이가 지역구에 출마했던 44, 46회 총선거는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했으며, 실제로 자민당이 압승했던 선거였다. 반대로 자민당이 압승하지 못했거나 오히려 참패했던 43, 45회 총선거 때는 가와이가 비례대표로 출마할 차례였기 때문에 낙선의 위험에서 벗어나 비례대표로 생환할 수 있었다. 46회 총선거 당선 이후 중의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했다.
이후에는 자민당이 히로시마현 제3구에 코스타리카 방식 공천을 끝내고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도 가와이를 계속 공천했으며, 공천을 받은 가와이는 두 차례의 선거 모두 지역구인 히로시마현 제3구에서 당선되었다.[8] 47회 총선거 당선 이후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을 역임했으며, 48회 총선거 당선 이후 2019년 9월에는 법무대신에 임명되었다. 이렇게 법무대신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나 싶었으나... 후술할 아내의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에 발목잡혀 약 2달 만에 낙마했다.
2020년 6월 16일, 부인인 가와이 안리와 함께 자민당을 탈당하겠다는 의향을 보였다는 기사가 나왔다.# 다음날인 17일, 자민당은 가와이 부부의 탈당서를 수리했다.#

2.1. 아내 가와이 안리의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


2019년 10월 31일 가와이 가쓰유키 법무상이 부인의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진 후 단 하루 만에 사퇴했다. "나도 아내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법령에 근거한 정치·선거 활동을 했다고 믿고 있다"고 하면서도 "확인·조사를 하는 사이 국민의 법무행정에 대한 신뢰가 그치고 만다", "1분 1초도 법무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아내와 상담한 끝에 오늘 아침 결단했다"고 주장했다.#
가와이 가쓰유키의 아내 가와이 안리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자민당 소속으로 히로시마현 선거구 참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런데 안리가 선거 운동 당시 법정 상한을 넘는 보수를 선거 운동원들에게 지급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이 불거졌고, 가쓰유키는 논란이 불거지자 바로 법무대신직에서 사퇴했다. 가쓰유키는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나도 아내도 (해당 보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법무성과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사임했다.”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한편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는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무대신이 아내인 가와이 안리를 참의원에 당선시키기 위해 불법 선거 운동을 공모했다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고, 히로시마 지검은 가와이 부부의 자택과 지역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그러던 중 가와이 전 법무대신이 아내의 참의원 당선을 위해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방 의원 등 100여명에게 2000만엔 이상의 현금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해 히로시마지검에서 수사에 나섰다. 보도에 따르면 가와이 부부는 참의원 선거 3개월 전에 실시된 통일지방선거 당시 지방 의원들의 사무실과 자택을 방문해 격려나 당선 축하의 명목으로 수십 만엔씩의 현금을 건넸다고 한다. 가와이 부부는 이에 대해 부인하고 있으나, 검찰은 정기 국회 종료 이후 가와이 부부를 입건할 방침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그의 전 비서가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하면서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잃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6월 18일, 검찰은 가와이 부부를 체포할 방침이라고 밝혔고# 오후에 체포되었다.#
현금 살포할 때, 비밀이라는 발언을 하였다는 증언을 하였다.# 돈 살포할 때는 아베 신조 총리의 이름으로라는 증언도 나왔다.# 그 중에 히로시마현 미하라시장이 150만엔 받은 것에 인정하여 시장직을 물러난다고 했다가 갑자기 삭발쇼를 통해 연임 선언했다.#
현금 뿌린 사람은 94명 지방의원과 단체장 40명으로 밝혀졌다.# 히로시마현의회 전 의장에게도 현금 살포했다.#
그 중에서 히로시마의 한 정장은 사임하였다.# 점점 히로시마 정치 스캔들로 번지고 있다.# 그 중 현의원 6명이 연루된 상태이다.#
아베 총리의 이름으로 현금 살포 증언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가와이 부부가 각각 지부장 정당에 당 본부에서 지출 된 총 1억 5000만엔 중 1억 2000만엔이 정당 교부금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총리를 위한 자료 제공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7월 8일. 구속기소가 되어 재판 넘겨진다.# 현금 뿌린 사람 중에 가메이 시즈카 전 의원의 비서도 포함되어 있다.# 도쿄 지방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대법원에 항고하였다.# 항고 기각되었다.#
당 자체 조사도 어려움을 표했다.# 8월 25일. 첫 공판을 가졌다.# 공판에서 히로시마현의원이 돈 받은 것을 인정하였다.# 가와이 가쓰유키 변호인들이 전부 사퇴하면서 재판이 지연된다.#
전 비서 재판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정당 보조금 총 1억 2000만엔을 자민당 본부에서 받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히로시마현의원이 50만엔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와이 안리 참의원이 보석금 1,200만엔을 냈다.#
요시카와 다카모리 전 농림수산대신이 가와이 사건에 연관된 것으로 밝혀졌다.#
2021년 1월 21일. 가와이 안리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4월(검찰 구형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2월 3일. 가와이 안리 참의원직에서 사퇴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1 - 2020
정계 입문

2020 -
탈당[9]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3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구 히로시마 1구)
자유민주당
'''59,817 (9.8%)'''
낙선 (6위)

1996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히로시마 3구)
자유민주당
'''65,928 (38.3%)'''
'''당선 (1위)'''
초선
2000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히로시마 3구)
자유민주당
65,805 (33.0%)
낙선 (2위)

2003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주고쿠 비례대표)
자유민주당
'''없음'''
'''당선 (3위)'''
재선
2005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히로시마 3구)
자유민주당
'''94,017 (42.1%)'''
'''당선 (1위)'''
3선
2009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주고쿠 비례대표)
자유민주당
'''없음'''
'''당선 (7위)'''
4선
2012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히로시마 3구)
자유민주당
'''87,993 (46.2%)'''
'''당선 (1위)'''
5선
2014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히로시마 3구)
자유민주당
'''85,311 (50.7%)'''
'''당선 (1위)'''
6선
2017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히로시마 3구)
자유민주당
'''82,998 (47.4%)'''
'''당선 (1위)'''
7선

5. 기타


  • 법무대신 발탁 당시에도 그의 갑질횡포 이력 등으로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자신보다 스무 살 많은 운전기사를 구둣발로 걷어차 다치게 하고, 선거 기간 중 자신의 직원에게 상대 후보의 포스터를 찢어버리라고 지시하는 등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다 그만 둔 직원이 100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한다. # 결국 아내의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에 연루되면서 사법 처리를 받게 될 위기에 놓였으니, 인과응보인 셈이다.
  • 하토야마 구니오의 최측근 중 한 명이었다. 하토야마가 생전에 만든 정책 모임의 간사장을 맡기도 했다.

6. 둘러보기



[1] 전 히로시마현의회 의원, 전 자민당 소속 히로시마현 선거구 일본 참의원. 후술할 본인의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남편이 법무대신직에서 사퇴하게 되었다. 결혼 전 성은 마에다.[2] 원래는 자유민주당 소속이었으나, 아내의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에 연루되면서 탈당했다.[3] 현재의 과학기술진흥기구.[4] 엔카 가수 이시카와 사유리의 노래다.[5] 중매인이 하시모토 류타로였다. 안리의 대학 시절 친구가 아들 하시모토 가쿠여서 그 친분으로 중매인을 서준 듯.[6] 상술했듯이 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가와이를 낙선시켰던 마스하라가 당선 후 자민당에 입당하면서 지역구를 사실상 빼앗겼기 때문이다.[7] 한 정당이 특정 지역구에 두 명의 후보를 선거 때마다 한 명씩 번갈아가면서 공천하는 방식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홀수번째 선거에서 지역구에 A후보, 비례대표에 B후보를 공천하면, 짝수번째 선거에서는 반대로 지역구에 B후보를 공천하고, A후보를 비례대표로 공천하고 이를 선거 때마다 계속 반복하는 방식이다.[8] 여담으로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 그의 상대가 훗날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참의원으로 당선되는 시오무라 아야카였다.[9]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의 피의자로 긴급체포된 것에 책임을 지고 자진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