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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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시다 후미오(岸田 文雄)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자유민주당 소속의 중의원이며, 외무대신, 기시당에 포함되어 있다. 내각부 특명담당대신[1] , 소비자 행정 추진 담당 대신, 우주 개발 담당 대신, 자유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제52대) 등을 역임했다.
한국에선 이시바 시게루 의원만 자민당내 대외 온건파인듯 보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기시다도 자민당에선 온건파격인 인물이다. 특히 기시다는 이시바와 달리 유력 총리 후보 중에선 아베와 사이가 좋아[2] 대중적 지지를 넘어[3] 계파간 이합집산도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내각제 특성상 온건파 중에선 가장 총리가 될 확률이 높은 인물일지도 모른다.
2. 생애
2.1. 출생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출생했으며, 본적지는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미나미구 히지야마초이다. 아버지인 기시다 후미타케는 히로시마현 출신의 통산 관료 출신이다.
2.2. 학창시절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통산성 관료였던 아버지가 뉴욕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던 관계로 뉴욕에 거주하며 퍼블릭 스쿨에 다녔다. 귀국 후 지요다구립 나가타쵸초등학교의 3학년에 편입, 지요다구립 고지마치중학교를 거쳐서 카이세이고등학교[4] 를 졸업했다. 1982년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 같은 해 주식회사 일본 장기신용은행에 입사하였다.
2.3. 정치권
1987년 아버지 중의원 기시다 후미타케의 비서가 된다.
1993년 제 40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구히로시마1구에서 자유민주당공인으로 출마했고, 첫 당선이 되었다. 또한 아버지와 같은 굉지회 소속이 되었다.
1996년 제 41회 중의원 총선거에서는 선거구 비례대표이고, 병립제도입에 따른 히로시마1구에서 출마했고 이후에 히로시마1구에서 연속 7번 선거했다.
2001년 제1차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문부과학성 부대신에 임명되었다.
2007년 제1차 아베 신조 개조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대신[5] 에 임명되어 계속 입각하였고, 아울러 소비자 행정 추진 담당 대신, 우주 개발 담당 장관에도 임명되고 한때는 최대 6개의 장관 자리를 겸임했다.
2009년 제 45회 중의원 총선거에서는 히로시마1구에서 민주당의 스게카와 히로시를 꺾고 선출되었다.
2011년 9월 자민당 총재 다니가키 사다카즈는 국회 대책 위원장에 취임(2012년 9월 퇴임).
2012년 10월 정계 은퇴를 표명한 고가 마코토부터 기시파를 계승하고 제8대 기시파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 해 12월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히로시마 1구에서 7선거했고 선출되었다.
아베 신조 내각에서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더불어 핵심 내각의 한 축을 담당한다.
2017년 8월 3일 아베 총리는 개각 및 당직개편을 단행했는데, 기시다는 자민당 정조회장에 임명되어 기존의 외무대신에서 물러나 자민당의 핵심 당직을 맡게 되었다.
아베가 밀어주는 포스트 아베의 대표주자로 2017년 들어 이시바 시게루를 제치고 사실상 차기 자민당 총재로 유력시 되고 있다. 내각이나 당직에 기시다파가 포진해있다.
기시다와 같이 차기주자로 불리우는 이시바 시게루나 노다 세이코는 아베 총리와 매우 심한 대립각을 세우지만 기시다 후미오와 기시다파 의원들은 아베 정권과 아베 총리에 매우 협력적인 태도를 보인다. 다만 위 두 인물에 비해 대중의 지지가 부족한건 약점. 그러나 의원내각제와 자유민주당 일당우위제가 결합된 일본의 정당정치에서는 대중의 지지보다 자유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중요하므로, 자신의 파벌을 기본으로 한 상태에서 호소다파(사실상 아베의 파벌)의 지지까지 끌어모을 경우 상당히 큰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
2.4. 외무대신
선거 후에 출범한 제2차 내각에서 외무대신으로 입각하면서 제2차 아베 개조 내각에서 유임했다. 2014년 12월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8선거 후에 제3차 아베 내각에서도 연임 자민당 총재 선거 후의 2015년 10월에 출범한 제3차 아베 제1차 개조 내각에서도 외상을 유임했다.
2015년 12월 28일 서울에서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회담을 갖고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10억엔[6] 지급하기로 하고 20여년을 끌어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 해결됐다"고 선언했다.
2016년 4월 현지 히로시마에서 열린 G7장관 회의의 의장을 맡아 다른 G7장관과 함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 히로시마 평화 기념 자료관을 찾은 뒤 원폭 사망자 위령비에 헌화하였다. 그 해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 방문을 했다. 참의원 선거 후 그 해 8월에 출범한 제3차 아베 제2차 개조 내각에서도 유임한다.
2017년 8월 3일 외무대신에서 물러났다.
2.4.1. 방위대신
2017년 7월 29일에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남수단에 파견된 육상자위대의 교전기록을 은폐한 것이 들통나 자진 사퇴하면서 외무상과 함께 방위상 직책도 임시로 겸직하게 되었다. 이후 방위대신에서 물러나고 그의 뒤는 오노데라 이쓰노리가 맡는다.
2.4.2. 이후
2019년 12월 19일 자기 파벌의 모치즈키 요시오 의원이 병사하자 기시다 후미오 정무조사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오랫동안 행동을 같이한 동료 파벌의 사무 총장으로, 저를 지지해 준 정치 동지이자 둘도 없는 존재였다. 슬픈 심정이다. 높은 뜻을 제대로 이어 받아 노력해 공적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2020년 8월 28일, 아베 신조가 총리 사임 의사를 밝힌 이후 곧 치러질 총재 선거에 나설 의욕을 보였고, 이후에 정식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이에따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 이어서 정식으로 출마를 선언한 두번째 인물이 되었다.
9월에는 책 출판을 가짐으로 총리 포석을 다지는 중이다.# 9월 1일에 공식 출마 선언했다.# 그리고 2위로 낙선되었다.
다음 총재 선거에도 나갈 것을 밝혔다.# 타니가키파 지지 협조를 가졌다.# 또, 자신의 파벌인 굉지회, 아소파, 타니가키파의 3파벌이 합류하는 "대굉지회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기시다파의 옛 주인이던 고가 마코토 전 간사장이 아소파와 함께 하는 것은 절대 불가하다며 파벌을 탈퇴하며 만만치 않은 차질이 예상된다. 그리고 이시바 시게루가 계파 수장에서 물러나자 이시바파 일부 끌어들이기 시도 중이다.#
학술회의 6명 임명 보류에 대해 설명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하였다.#
3. 정책
- "자민당이 우경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보수 온건파가 나타나기 위해서라도 동료의 응원에 날아다니고 싶다."라며 당내 온건파를 과시하고 있다.
- "지금 일본 정치에서 궁금한 게 있습니다. 강한 리더십, 미국 중심 외교, 매파적 체질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각각의 의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점은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 헌법 개정에 찬성
-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금지한 정부의 헌법 해석을 수정하는 것에 찬성
- 일본의 핵 무장에 대해서는 "검토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원자력 규제 위원회의 새로운 기준을 충족시킨 원전은 재개해야 할 것으로 본다.
- 여성 궁가(여성 미야케#s-3, 여성 덴노) 창설에 반대.[7]
-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의 도입에 반대.
4. 소속 정당
5. 직책 경력
'''※ 내각'''
- 제2차 아베 내각, 제2차 아베 개조내각, 제3차 아베 내각, 제3차 아베 제1차 개조내각, 제3차 아베 제2차 개조내각
- 외무대신
- 후쿠다 야스오 내각
- 국무 대신(소비자 행정을 통일적·일원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기획 입안 및 행정 각부의 관할 업무의 조정 담당)
- 국무 대신(우주 개발 이용에 관한 시책을 종합적이고 계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기획 입안 및 행정 각부의 관할 업무의 조정 담당)
-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규제 개혁 담당 국민 생활 담당 과학 기술 정책 담당)
- 제 1차 아베 개조내각
-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규제 개혁 담당 국민 생활 담당·재도전 담당 과학 기술 정책 담당)
- 제1차 고이즈미 내각
- 문부 과학성 부대신
- 제2차 오부치 내각· 제1차 모리 내각
- 건설 정무 차관
'''※ 중의원'''
- 후생 노동 위원장
- 국가 기본 정책 위원회 여당 최대 이사
- 국토 교통위 여당 이사
- 소비 문제 위원회 여당 최대 이사
- 문부 과학 위원회 여당 최대 이사
- 의원 운영 위원회 이사
- 경제 산업 위원회 이사
- 중의원 의사 진행계
'''※ 자민당'''
- 국회 대책 위원장
- 선거 대책 국장 대리
- 부간사장
- 소비자 문제 조사 회장
- 단체 총국장
- 경리 국장
- 상공 회의장
- 법무부회장 대리
- 상공 회의장 대리
- 내각·상공의 부회장
- 재정부 회의장
- 청년 국장
6. 소속 단체 의원 연맹
- 일본 회의 국회 의원 간담회
- 신도 정치 연맹 국회 의원 간담회
-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
- 공립 학교 시설 내진화 회장 대행
- 항공 의원 연맹 부회장
- 소프트 볼 진흥 의원 연맹 간사장
- 아이의 체력 향상 추진 간사장
- 창조·가축·에너지 절약 추진 코커스 간사장
- 임상 심리직 국가 자격화 사무국장
- 도시 세 법 개정 작업 WT주사
- 공공 공사 품질 확보 코커스 간사(제도 검토 부회장)
- 저작권에 관한 WT좌장
- 소비자 문제 PT좌장
- 핵 연료세 등 PT주사
- 지적 재산 소위 원장
- 증권 시장 육성 코커스 사무국장
- 보험 제도 개선 코커스 사무국장
- 일본과 베트남 우호 코커스 사무국장
- 국보·중문을 지키기회 사무국장
- 콘텐츠 산업 진흥 코커스 간사장
- 소규모 기업 세제 코커스 간사장
- 학교 영양사 의원 연맹 사무국장
- 외교를 배우회 사무국장
- 일 상처 원호 의원 협의회 간사
- 라이프 사이언스 코커스 사무국장
- 아이슬란드 우호 코커스 부회장
- 소규모 기업 세제 확립 의원 연맹
- 일본 리듬 체조 연맹 명예 고문
7. 둘러보기
[1]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규제 개혁·국민 생활·재도전·과학 기술 정책.[2] 다만 2010년대 후반 아베파의 적극적 지지를 받던 때에 비해 2020년 기준으론 좀 서먹서먹해지긴 했다. 반대로 이런 아베파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라 본인의 온건성과 별개로 강경 노선에 휘둘릴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3] 이게 기시다의 약점이긴 하다.[4] 히라이 신지, 이노우에 신지의 출신 고교.[5] 오키나와 및 북방대책·규제개혁·국민 생활·과학 기술 정책[6] 배상금이 아니라 치유금[7]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아들이 없고 무남독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만 있어서 여자 덴노 허용이 검토되었으나, 황태자의 남동생 후미히토 친왕이 2006년 늦둥이 아들 히사히토 친왕을 낳아, 여자 덴노 허용론은 잠잠해졌다. 그러나 일본 황실의 자녀들 중 남자는 히사히토 친왕뿐이고, 직계와 방계를 통틀어 공주들만 있으며, 현행 황실전범에 따르면 공주들은 평민 남자에게 시집가면 평민이 된다. 그래서 공주가 결혼하더라도 황족의 신분을 유지해 주자는, '여성 미야케#s-3' 허용론이 나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