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중의원 (와카야마 3구)'''
''선거제도 개편''

'''제41~48대
니카이 도시히로'''

''현직''

'''일본 경제산업대신'''
'''제3-5대'''
나카가와 쇼이치

'''제6대
니카이 도시히로'''

'''제7-8대'''
아마리 아키라
'''제7-8대'''
아마리 아키라

'''제9-10대
니카이 도시히로'''

'''제11-12대'''
나오시마 마사유키
'''일본 제6, 9~10대 경제산업대신'''
'''자유민주당 간사장
二階俊博(にかいとしひろ
니카이 도시히로
'''
'''출생'''
1939년 2월 17일 (85세)
[image] 와카야마현 고보시
'''국적'''
[image] 일본국
'''학력'''
고보시립 고보 소학교
고보시립 고보 중학교
와카야마현립 히다카 고등학교
주오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가족'''
아버지 니카이 슌타로[1]
배우자 니카이 레이코[2], 장남 니카이 도시키[3]
'''정당'''

'''의원 선수'''
'''12''' (중)
'''의원 대수'''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지역구'''
와카야마 3구
'''현직'''
중의원
자유민주당 간사장
자유민주당 와카야마현 연합회 회장
'''약력'''
엔도 사부로 중의원 의원 비서
와카야마현의회 의원
현의회 건설문교상임위원장
중의원
운수 정무차관
자유민주당 환경대책위원장
자유민주당 교통부 회장
신진당 와카야마현 연합회 회장
신진당 선거대책국장
중의원 건설상임위원장
자유당 국회대책위원장
자유당 농림수산부 회장
자유당 교통부 회장
운수대신
홋카이도개발청 장관
보수당 국회대책위원장
보수당 선거대책위원장
보수당 와카야마현 총지부 연합회 회장
보수당 간사장
보수신당 간사장
보수신당 선거대책위원장
보수신당 와카야마현 총지부 연합회 회장
자유민주당 총무국장
중의원 우정민영화 특별위원장
경제산업대신
자유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자유민주당 총무회장
자유민주당 선거대책국장
자유민주당 총무회장 대행
자유민주당 간사장
자유민주당 와카야마현 연합회 회장
중의원 예산위원장
1. 개요
2. 생애
3. 소속 정당
4. 여담
5. 둘러보기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現 자유민주당 간사장'''이며 운수대신, 경제산업대신을 역임했다. 지역구는 와카야마현 제3구. 전국여행업협회 회장이자 현재 일본에서 큰 논란을 부르고 있는 GoTo트래블 캠패인의 최종보스이기도 하다.

2. 생애


1939년 2월 17일, 와카야마현 고보시에서 와카야마현의회 의원인 니카이 슌타로의 아들로 태어났다. 주오대학 법학부 졸업 후 건설대신을 지낸 엔도 사부로 의원의 비서를 지냈으며, 1975년부터 고향인 와카야마현에서 현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1983년, 중의원 선거에서 구 와카야마 2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중앙 정계에 발을 들였다.
1993년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 불신임안에 찬성하고 자민당을 탈당해 오자와 이치로신생당 결성에 참여했다. 하타 쓰토무 정권 이후에는 신진당에 참여했다. 신진당 분당 이후에는 자유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오부치 게이조 내각에서 운수대신 겸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으로 입각했다.
2000년에는 오자와 계파와 이별을 고하면서 보수당을 결성하고 간사장을 맡았으며, 2003년 보수신당의 간사장을 맡았으나 보수신당의 총선 참패 이후 10년만에 자민당으로 복당했다. 2004년 자민당 총무국장에 취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을 역임했다. 고이즈미 내각 이후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 총무회장 등을 지내다가 후쿠다 야스오 내각, 아소 다로 내각에서 다시 경제산업대신을 역임했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이후 자민당의 선거대책국장을 맡았으나 비서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되면서 사임했다.
2016년 8월, 자전거 사고로 입원한 다니가키 사다카즈의 후임으로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했다.
2018년 3월 3일, '''자민당 역사상 처음으로''' 도쿄 도내에서 열린 제 75회 부라쿠민 해방동맹 전국대회에 참석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참석사에서 '국가와 지방 자치단체에서의 차별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자민당은 '부라쿠민 차별 해소 추진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역설하였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 국민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한 개헌을 앞두고 자민당 내 입단속을 통해 논란을 만들지 않게 하며, 자위대 명기 등의 사안을 담은 당 내 개헌 방침안을 만들고 있는데, 앞선 오사카 유신회와의 협력 뿐 아니라 일본 사회 내에서 차별과 소외를 받았던 부라쿠민과도 관계개선을 추구하여 개헌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성공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9년 3월, 고이케 유리코 도지사에 대해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게 되면 전면적으로 협력하겠다"라고 지지를 표명했으나 반발이 거셌다.
2020년에는 더 나은 대안이 없다는 이유 등을 들며 당 규정을 다시 바꿔 아베 총리가 임기 3년인 총재직을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그러나 아베의 지지율이 봐주기 힘들 정도로 떨어지자 6월 들어 이시바 시게루의 정치자금 모금회에 참여하여 찬조연설을 해주는 등 아베의 4선에 집착하지 않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 선출 이후 이시바파 모임에도 참석했다.#
2020년 9월 8일부로 간사장 임기 최장 기간 기록을 세웠다.# 스가 요시히데 총재에 의해 간사장 직이 유임되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75 - 1983
정계 입문

1983 - 1993
입당

1993
탈당

1993 - 1994
창당

1994 - 1997
합당

1997 - 1998
정당 해산

1998 - 2000
창당

2000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00 - 2002
창당

2002 - 2003
신설 창당

2003 -
합당으로 복당

4. 여담


  • 의외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매우 각별한 사이라고 한다. 1999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장관회의에서 박지원은 문화관광부장관, 니카이는 경제산업대신으로 참석한 것이 인연이 되어 친분을 쌓게 됐다고. # 서로의 경조사를 일일이 챙길 정도이며, 한일관계의 온도차와 상관 없이 공공연히 우애를 과시하고 있다.[4]
  • 김충선에 대한 추모비를 세울 정도로 대표적인 자민당내 친한파로 분류된다. # 사야가(沙也可, 1571~1642)라는 이름의 왜군장수였던 김충선은 임진왜란의 부당함을 깨닫고 조선에 귀화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추모비를 세웠다는 사실은 한일관계에 대한 니카이 도시히로의 매우 전향적(前向的)인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베와 스가를 떠받드냐는 것이 의문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당장 이시바 시게루와 친한파 시절 아베 역시 이러한 행동을 보인 적 있고 한국의 전 국회의원과 친한 스가 역시나 사례로서 있으므로 다테마에일 수도 있다. 개인 성향과 전혀 별개로 당 중책인 이상 스스로 다른 스탠스를 고수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적이 있다.
  • 10월부터 시작한 Go To 트래블 캠패인과 겨울이 맞물려 12월 12일에는 3,041명으로 일일 역대 최다 감염자수를 갱신했다. 오죽하면 내각 직속 신형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대책분과회에서조차 "최소한 일시적인 정지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으나 내각은 요지부동. 일본 여론은 정책 유지의 배후에 일본 여행업협회장인 니카이의 GoTo캠패인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일본 파벌 정치의 최종보스로 군림하고 있는 니카이는 실질적으로 아베에서 스가로 이어지는 수상 교체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한 굇수이며 스가 내각의 정책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12월 연말 회식 참석하여 논란을 일으켰으며, 자신은 회식이 아니라는 말만 하고 있다.#

5. 둘러보기



[1] 기업인이었으며, 와카야마현의원, 이나하라촌장을 역임했다.[2] 2018년 12월 26일 사망했다.[3] 아버지의 비서로 고보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똑같이 비서였던 가시와라 이쿠오에게 패배했다.[4] 이런 이유 때문에 일각에서는 2020년 한국 정부의 박지원 국정원장 임명이 얼어붙은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카드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리고 예상대로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새로 취임하자 박지원이 대사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니카이 간사장과 스가 총리를 차례로 예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