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영

 

1. 개요
2. 감영의 업무
3. 위치 변천
4. 관련 문서


감영의 복원이 가장 잘 된 원주시의 강원감영


1. 개요


조선왕조 때 각 의 행정사무를 관장하였던 기관. 오늘날의 도청(행정)에 해당된다.
임금이 임명한 종2품 관찰사(감사)가 수장으로 있으며, 1395년 태조 이성계개경에서 한양으로의 도읍지 이전 이후 전국 행정구역을 8도로 확정하면서 신설된 기관이다. 경기감영은 한성부 내에 있었으나, 한성부는 경기도와 별개의 행정구역이었기 때문에 한성부는 한성판윤(漢城判尹)[1]이 따로 관할했다.
1895년 기존 8도제가 23부제로 개편되면서 '부청(府廳)'으로 개칭됐다가, 이듬해(1896년) 13도제로 다시 개편되면서 '도관찰부'라고 개칭하였고 1910년 일제시대에 지금과 같은 '도청'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전라북도 박물관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감영 건축물 대다수가 훼손되거나 파괴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각 지자체에서 감영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감영의 옛 모습을 되찾고 있다. 가장 잘 복원된 곳은 원주시강원감영이고, 전주시전라감영은 복원완료, 상주시의 경상감영은 복원 추진 중에 있다. 공주시충청감영은 남아있던 건축물들을 다른 곳에 이전하여 '감영공원'을 만들었고 정문은 원 위치에 복원하여 공주사대부중고의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대구광역시경상감영은 원 위치에서 공원화가 이뤄졌다. 서북지역에서 가장 큰 감영이었던 평양평안감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어 현재 남아있지 않다. 함흥에 위치한 함경감영은 현재 선화당과 일부 부속건물이 남아있다. 황해도 해주에 있었던 황해감영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 조선시대 감영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며, 그림을 통해 건물들의 배치와 감영의 규모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종로구의 '경기감영'은 터만 남아있다.
조선후기 각 감영의 헌판의 모습

2. 감영의 업무


감영의 업무는 도내의 행정사무, 민생고충, 농어업 현안, 경제상업 현안, 치안문제, 민·형사재판 등 법무, 군무 등이 있었으며, 감영 내의 관리들과 각 도 산하의 군현 수령들은 관찰사의 명령과 지시하에 맡은 일을 수행하였다. 또한 각 도 산하의 군현 수령들을 관리감독하는 역할도 하면서 비위사실이 있거나 탐관오리 등으로 판단된 수령의 경우 임금 직무대리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참고로 각 도의 감사는 감영 소재지 고을의 수령도 겸했다(즉, 감영이 해당 고을의 관아 역할도 겸했다). 가령 전라감사가 전주부윤을, 경상감사가 대구도호부사를 겸직하는 식이다. 오늘날로 치면 경기도지사가 수원시장을 겸직하고, 경기도청이 수원시청 기능까지 하는 셈. 평안감사를 흔히 '평양감사'라 부르는 것도 이것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예외로 경기 감영은 감영이 한성(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은 없었으며 한성 자체의 행정은 한성부와 한성 판윤이 별도로 맡았다.

3. 위치 변천


아래는 1896년 남북도 개편 이전까지의 감영의 소재지 변천사이다. 1896년 이후는 도청(행정) 문서 참조.
감영 소재지
경기도
한성 → 수원(1886) → 한성(1890)
강원도
원주
충청도
충주 → 공주(1603)
전라도[2]
전주
경상도
경주 → 상주(1405) → 대구(1593)[3]
평안도
평양
함경도
함흥[4]
황해도
해주
※. →는 감영지 이전

4. 관련 문서



[1] 한성부판윤은 한성부를 다스리던 정2품의 관직이다.[2] 당시 제주도는 전라도에 속해 있어 전라감영의 통제를 받았다.[3] 1593년의 위치는 칠곡군~대구 북구(칠곡) 일대였고, 1596년 오늘날의 대구시의 영역으로 들어왔다.[4] 1470~1498에 잠시 영흥에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