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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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2. 생애
강명구는 1977년 경상북도 선산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강명구의 부모님은 소를 키웠으며, 지금까지도 고향에서 소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그는 뚝심있고 부지런한 성격의 소유자인데,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황소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 사람들로부터 종종 '우직한 황소'에 비견되기도 한다. (출처: 젊어라 보수야 中 부록)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은 운동권 학생회가 계속해서 이어지던 시기였다. 안동대학교 총학생회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스스로 '비운동권'임을 선언한다. 이념이나 정치보다는 학생들의 복지 개선에 더 많이 신경쓰는 총학생회가 되겠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초기 학생회를 구성할 때는 운동권 성향의 학생들과 조화를 이루기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 복지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그의 진정성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경북 북부에서 가장 반골이 많기로 유명한 안동의 안동대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들 했다.
3. 정치 활동
총학생회 활동 중 권영진 現 대구광역시장, 권택기 前 대한민국 국회의원과 같은 고향 선배들로부터 정치 입문 권유를 받게 되어 보수정당의 길을 걸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진영의 2030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부단장을 역임하였다.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이 대거 합류해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김용태 의원과 함께 여러 번의 선거를 치르고 김용태 의원의 비서관으로 기용되었다. 보좌진으로서 김용태 의원실의 '민원의 날' 행사를 기획했다. 이는 국회의원 사무실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태 의원의 지역구인 양천구 을 지역에 인접한 탓에 발생한 소음 공해에 관한 민원에 대해 양천구민에게 보상을 제공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사무실에 한 아이가 찾아왔다고 한다. 그 아이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였고,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보좌관님), 저는 소외계층입니다." 강명구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데, 어린 아이가 입에서 쉽게 '소외계층'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 아이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순 없었지만, 바닥난 자존감 하나 만큼은 꼭 채워주고 싶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도 축복받은 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어머니 나라 방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렇게 중국을 다녀온 아이에게 강명구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중국어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한국어도 잘하는 축복받은 아이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밝게 웃음꽃을 피웠다고 한다.
강명구는 이러한 민원의 날 에피소드들을 겪으며 깨달았다. 어려운 사람에게 든든한 '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알고 보니 그가 잘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것만큼 보람찻고 뿌듯한 일이 없었음을 느꼈다. 민원을 해결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주민들의 만족감을 보며 "아, 정치가 이런 맛이 있구나!" 하는 것을 크게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정치의 영역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자유한국당 영등포구 갑 당협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 소속 예비후보로 영등포구 갑에서 활동을 했지만 문병호가 결국 공천되었다. 당에서는 동대문구 을 지역구에서 경선을 하라고 명했지만, 결국 본인은 동대문구 을 경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동대문 을은 이혜훈 의원이 공천됨.
(왜 영등포에서 당협위원장도 하면서 잘 하고 있는 사람 컷오프 시키고 동대문 경선명령 줬는지는 본인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도 다소 의아하다는 풍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