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1968)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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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사무총장
직무대행
김명연

제6대
김용태


제7대
한선교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양천구 을)
제17대
김낙순

제18-20대
김용태


제21대
이용선

대한민국 국회 정무위원장
제20대 전반기
이진복

제20대 전반기
김용태


제20대 후반기
민병두

대한민국 제18 - 20대 국회의원
김용태
金容兌 | Kim Yongtae

<colbgcolor=#e61e2b> 출생
1968년 3월 26일 (55세)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
학력
대전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정치학 / 학사)
병역
육군 상병 소집해제
혈액형
B형
종교
개신교[1]
본관
광산 김씨[2]
지역구
서울 양천구 을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8, 19, 20
가족관계
배우자 김혜경, 슬하 1남 1녀
소속 정당

현직
국민의힘 구로구 을 당협위원장
약력
알티캐스트 이사
중앙일보 전략기획실 기획위원
제18~20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보수혁신특위 위원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대한민국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자유한국당 조강특위 위원장
외부 링크
공식 홈페이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1. 개요
2. 생애
3. 정치 활동
3.1. 2016년 이전
3.2. 2016년
3.4. 혈액암 투병?
4. 저서
5. 여담
6. 소속 정당
7. 선거 이력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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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이다. 1968년 3월 26일생. 예전 새누리당과 현재 자유한국당 안에서 대표적인 비박(非朴) 소장파 정치인으로 분류됐다. 특별히 특정 정치인의 그룹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2. 생애


1968년 충청남도 대전시 선화동에서 태어났다. 대전중앙국민학교, 대전한밭중학교, 대전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를 졸업(5수 끝에 합격)[3]하였다.[4]
디지털방송 소프트웨어 기술회사인 (주)알티캐스트 이사[5],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기획위원,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 중앙일보 전략기획실 기획위원을 거쳤다.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대통령 선거 직후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을 거쳤다.

3. 정치 활동



3.1. 2016년 이전


김용태 최초의 정치적 이력은 민중당이다. 대학 입학 후 본인이 직접 민중당 사무실로 찾아갔고, 이때 김문수, 이재오, 차명진, 김성식 등과 만나게 된다.[6] 1992년 제14대 총선 때는 동작구 갑 지역구에 민중당 후보로 출마했던 장기표의 선거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민중당이 해산된 뒤에는 딱히 정치 활동을 하지 않다가, 2004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기획위원으로 위촉되면서 다시 정치권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양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합민주당 김낙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7] 당선 국회 입성 당시만 해도 친이계로 알려져있었으나,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등 여러 차례 각을 세워 이후 남경필, 원희룡 등을 잇는 당내 소장파의 대표 의원으로 손꼽히게 된다. 이 시기 한나라당에서 원내부대표, 기획위원장, 국민소통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하였다. 흔히 비박계로 분류되는데 더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반대하는 반박(反朴)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이후에도 유승민, 정두언, 이재오와 같이 여당 정치인이면서 쓴소리를 많이 했었다.
이엔 소장파인 그의 성향과 함께, 서울특별시가 지역구인 새누리당 의원 중 상대적으로 친박은 강남권 등 유리한 지역구에 분포한 반면[8] 비박은 강서, 강북권 등 불리한 지역구에 분포하여서라는 평도 있다. 게다가 언론에 구설수가 오르고 지지율을 깎아먹도록 만드는 것은 비교적 당선되기 쉬운 지역에 분포해있는 친박들이 많은데, 정작 그 후폭풍은 강북이나 수도권 비박들이 맞으니 아무래도 비박계들 입장에선 친박계에 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9]
2015년 7월 새누리당 서울특별시당 위원장에 선출되었고, 이 시기에 강용석 전 의원이 복당을 시도했으나 시당위원장 권한으로 이를 저지하기도 했다.

3.2. 2016년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자당 서울 지역구 현역 의원 및 후보자들과 자당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이 무더기로 낙선하는 대참사[10] 속에서, 심지어 본인 지역구보다 더 유리하다고 평가받던 옆동네 양천갑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더민주 후보에게 10% 넘게 차이나며 낙선하는 상황에서도 본인의 경쟁력으로 3선에 성공했다.
[image]
김용태의 지역구 민원의 날 사무실 사진. 앉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서 있는 사람이 김용태 의원이다. 실제로 매월 2회씩 개최하는 지역구 민원의 날은 다녀간 민원인만 2014년 8천 명 이상일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 선거가 있기 전 선관위가 공개한 후보자 전과기록 공개에서 김용태의 음주운전 전과가 드러났는데, 당시 양천구 을 지역구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이용선 후보와 국민의당 김현배[11] 후보 3명 모두 음주운전 전과를 지니고 있어서 큰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이용선 후보는 음주운전 전과만 2회였다.
2016년 5월 15일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에 내정되었다. 그러나 17일 친박계가 강성 비박인 김용태 혁신위원장 인선에 반대하였고,[12] 이를 막기 위해 친박계가 혁신위원장 추인을 하기 위한 상임전국위원회 소집을 무산시켰다. 회의가 무산되자 김용태는 혁신위원장직에서 사퇴하였다.
2016년 6월 27일,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새누리당 의원들 중 처음으로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했다. 하지만 혁신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정병국 후보와 단일화를 시도했고 정병국 후보가 이겼다. 이후 정병국 후보와 주호영 후보의 단일화에서는 주호영 후보가 이겼다.

3.3.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2016년 10월 박근혜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즉각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과 친박계 지도부 전원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친박 지도부가 지지부진 시간을 끌며 내려오지 않자, 11월 22일 망가진 새누리당을 떠나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세우겠다며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함께 새누리당을 전격 탈당했다.#
12월 3일 오전 4시 10분 발의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법안을 무소속 의원으로서 야 3당 및 다른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발의했다. 이후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함께 바른정당에 합류했다.
2017년 5월 2일에 13명의 의원들이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대거 복귀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본인은 잔류를 선언했다.
2017년 5월 24일~25일 있었던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에서 신상적인 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정책 비전과 국정 운영 방향등을 질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큰 호평을 얻었다. 강효상, 정태옥 등 다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신상 문제와 색깔론에만 매달렸다는 점을 본다면 더더욱 비교되는 점이다.
6월에 치러진 바른정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나설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이외에도 유승민, 이혜훈 등도 거론되고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출마한 인원은 하태경, 이혜훈, 김영우, 정운천 등 4명이었고,[13] 결과적으로 김용태는 출마하지 않았다.[14]
이후 바른정당 통합파에 속하고 있으며 "탈원전,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등 유승민 후보의 공약이 문재인 후보의 공약과 비슷했기 때문에 유승민은 문재인 포퓰리즘을 막지 못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에 자유한국당에 복당했고, 12월 28일엔 류석춘 연세대 교수에 이어 자유한국당 혁신 위원장이 되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에서 도저히 서울시장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없는 와중에서, 김용태는 나경원과 함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었다. 물론 최종적으로 본인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없었던 일이 되었지만.[16]
2018년 7월 25일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김병준 비대위 체제에서 사무총장이 당연직으로 겸하는 조강특위 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그해 12월 15일 발표된 당협위원장 재신임 탈락자 명단에 이름을 올랐다. 즉 자기 자신을 셀프 청산한 셈. 한 조강특위 위원은 "김 의원 자진 사퇴는 조강특위가 구성된 지난 10월 김 의원이 스스로 결심한 것"이라며 "김 의원이 '내가 직을 유지하면서 동료에게 칼을 대면 누가 진정성을 믿겠나. 그건 염치없는 짓'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증언했다. 조강특위 위원들이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김 의원은 완강했다고. 기사 그런데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지역구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라 김용태 말고 마땅히 출마해서 당선될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문희상처럼 나중에 당에서 사람이 없다며 전략공천을 할 가능성도 제기되나 현 자유한국당 내 세력분포상 가능성이 희박한 시나리오다. 본인 역시 그럴 가능성을 절대 부정하고 있는 상황.
21대 총선에 불출마하게 된다면 이전부터 유력하게 거론되왔던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당 내의 다른 경쟁자인 나경원이나 김문수가 당내 입지나 대외적인 측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데다가 현직인 박원순 시장이 이미 3선에 성공해서 다음 선거에 출마할 수 없기 때문에 김 의원 입장에서 해볼만 한 게임이다. 그리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고향인 대전광역시장 출마도 고려해볼 만한데 현직인 허태정 시장의 계속된 실정으로 민주당에 대한 비토 여론이 생각보다 심한 편이라 오히려 경쟁이 심하고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서울보다 유리하다. 한국당 입장에서도 스윙보터 지역인 대전에서 현역 의원을 차출하는 것은 꽤 껄끄럽기 때문에 차라리 김용태를 내려보내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고 원희룡이라는 비슷한 사례도 존재한다.[17] 하지만 대전은 한국당 소속 현역 의원이 3명이나 되는 데다 그중에는 재선 의원인 정용기, 이장우 의원도 속해있다. 특히 정용기 의원의 경우 정책위의장까지 맡고 있어서 당내 입지 면에서도 김 의원에게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원외 인사 가운데에도 박성효 전 대전시장 등이 출마를 준비할 가능성도 있어서 경선을 뚫을 수가 있을지 미지수다.
이렇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불출마 선언을 했으나, 2020년 2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에 맞서 자객 공천으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의 지역구인 구로구 을에 배치되었다. 문제는 구로구 을이 호남, 세종을 제외하고 민주당세가 가장 큰 지역이라는 것. 더불어민주당으로 따지자면, 강남구 병 같은 지역구다. 따라서 험지이다. [18] 실제로 투표일을 10일 앞두고 발표된 KBS 여론조사에서 27%를 얻었는데, 상대 후보가 과반인 50%를 넘어서면서 당선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지고 말았다. 실제 선거에서도 19.38%의 차이로 대패하고 말았다. 무소속 강요식 후보와의 단일화가 무산되었다지만 강요식도 고작 4.63% 득표에 그쳤다.
이후 구로에 정식으로 개인 사무소를 열 예정이고, 원외위원장으로 남겠다는 뜻을 밝혀 양천구 을로 돌아가지 않고 다음 총선에도 구로구 을에서 재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자살하면서 궐위가 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진보 성향이 강한 지역구에서 훌륭한 지역구 관리를 바탕으로 3선을 했고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크게 논란을 일으키면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없기 때문에 본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3.4. 혈액암 투병?


[image]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서울시장 출마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분류되던 A의원이 혈액암에 걸려 출마 의사를 접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에 따르면 A의원은 서울시장 후보군 물망에 올랐고 3선 출신의 국회의원이며 21대 총선에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으로 분류되는 지역구에 출마하였고 이 선거에서 청와대 출신의 후보에게 낙선하였다.
그런데 현재 국민의힘에서 이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은 김용태뿐이다. 3선 국회의원이면서 여당의 텃밭인 험지에 자객 공천되었고[19] 청와대 출신의 후보[20]에게 밀려나 낙선하고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분류되었던 정치인이라는 조건이 부합하는 사람은 오직 김용태뿐이다. 이 기사가 오보가 아니라면 김용태는 당분간 정계와는 거리를 두면서 혈액암 치료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4. 저서


<문재인 포퓰리즘> #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관, 경제관, 안보관, 역사관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책을 내놓았다.
이에 앞서 2008년에는 정부 효율화, 규제 완화, 법질서 확립, 인프라 확충, 시장개방과 FTA, 과학기술 육성 등 대한민국 성공의 6개 키워드를 제시한 <대한민국 성공의 조건>을, 2011년에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열린 '민원의 날'에 접수된 민원들과 그 해결과정을 담은 에세이집 <팔도강산 사거리>를 냈다. 2013년에도 <팩트>를, 2015년에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청춘>을 내기도 했다. 하여간 부지런하다는 평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5. 여담


  • MB 정권 초기 자신의 홈페이지에 어떤 고교생이 실제 이름과 학교까지 내걸고 정부 여당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자, 그 학생을 지역구 사무실로 초청해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답글을 본인이 직접 남겼으며, 실제로 만나기까지 했다. 이는 김 의원이 여타 정치인들과는 달리 꽤 개방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 나이가 현재 52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동안이다. 직접 들은 사람의 말로는 "아들이 어렸을 때 매주 함께 한 '부자 목욕' 덕분"이라고 한다.
  • 50대 여성이 최저임금 때문에 자살했다는 기사를 가지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였다. 추가로, 기사가 삭제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으나 기사 자체가 오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 이후 해당 사건 자체는 오보가 아니라고 한국경제신문 측이 해명을 하기도 했다.
  • 같은 당의 한선교 의원이 기자에게 걸레질한다고 발언하여 구설수에 오르면서, 기자들을 배려할 줄 알았던 김용태 의원과 비교되기도 했다. 김용태 당시 사무총장은 백브리핑을 기다리기 위해 바닥에 앉아 있는 기자들이 추워보인다며 '1인용 바닥 깔개'를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21] 이후 한국당 공보실에서 깔개를 기자들에게 하나씩 나눠서 앉게 하고, 백브리핑이 끝나면 다시 수거해갔다. #
  • 의외로 20대 국회 본회의에서는 출석율이 낮기로 2위를 기록했다. 총 84회 중 38회(45%)의 서청원 의원 뒤를 잇는 45회 (64.5%)였다. 본인은 “탈당과 복당 등 당내 이슈가 많고 당직을 맡았기 때문”이라며 “본회의 출석 부족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라고 해명했다. #
  • 2019년 12월 19일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있는 카페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촬영돼 홍역을 치렀다. 카페는 금연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변 손님들이 항의를 하는 바람에 가게를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6.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0 - 1992
입당

1992 - 2004
정당 해산

2004 - 2012
정계 입문

2012 - 2016
당명 변경

2017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노선 갈등으로 인한 탈당

2017
창당

2017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17 - 2020
복당

2020
합당[22]

2020 -
당명 변경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양천 을

38,092 (50.47%)
당선 (1위)
초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48,811 (49.39%)
재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45,628 (41.97%)
3선[23]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구로 을

37,018 (37.66%)
낙선 (2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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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솔라하고 같은 항렬이다(容자 항렬). 김영인김영철은 그의 할아버지 뻘이 된다.[3] 정확히는 3수에 실패하고 방위 복무 이후 5수째에 합격, 87학번이 아닌 91학번으로 입학했다.[4] 대전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왔기때문에 서울시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대전광역시장 후보 차출론이 간간이 나오는 편이다. 이와 비슷하게 원희룡 제주지사도 서울시에서 3선 의원을 지내고 제주도에는 정치적 기반이 없었으나 제주특별자치도지사 후보로 차출된 바가 있다.[5] 서울특별시 행정1부시장과 삼성자동차 회장, 중앙일보 사장을 지낸 이필곤 전 삼성카드 회장이 현재 회장으로 있다.[6] 민중당에서의 인연 때문에 한때 김용태는 잠시 김문수계로 분류되기도 했다.[7] 해당 지역구 내에서 보수정당 소속 후보로서 정식 총선에서 당선된건 그가 최초였다. 재보궐까지 포함하면 2003년 재보궐에서 당선된 오경훈도 있다.[8] 근데 사실 이런 현상은 19대 국회되면서 생긴 것이다. 18대 국회에서는 서울 지역 한나라당 의원은 거의 다 친이었다.[9] 19대 국회를 기준으로 보자면 대표적으로는 위에도 언급된 정두언이나 친이의 좌장인 이재오, 김무성의 측근인 김성태, 관악 을의 오신환, 성북 갑의 정태근 등이 있다.[10] 49석 중 겨우 12석만 건졌다. 대표적인 비박계 중진인 이재오, 정두언 의원도 나가리되었고 강남 3구에서도 더민주 소속 당선인이 나왔다. 심지어 12석은 탄핵 정국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 때 얻은 16석보다도 적다. 경기, 인천 지역 당선인들과 자당 성향의 무소속 당선인을 합쳐도 수도권은 37석밖에 안 된다. 역대 보수 정당의 수도권 선거 중 최악의 결과. 그 4년 후에는 더 최악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11] 현재 나무위키에 등록된 김현배김수민 국민의당 비례대표 의원의 부친 하나뿐인데, 이 사람과는 동명이인이다.[12] 이때 김용태 의원은 당 쇄신방안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 조치까지 고려하고 있었다고 한다.[13] 지상욱은 개인 사정으로 하차.[14] 최종적으로 이혜훈 의원이 당대표가 되었다.[15] 그런데 의외로 후임 자유한국당 김천지역구 후보로 출마한 인사가 무소속 후보와 접전 끝에 겨우 한국당이 지켰다. 물론 그 무소속 후보가 자유한국당 공천을 못 받아서 탈당한 사람이라 큰 의미는 없었다.[16] 알다시피 현역 의원이 정당의 광역단체장후보가 되면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특히 원내 1당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민주당과 한국당 입장에서는 이 때문에 어떻게든 골머리를 앓는다. 거기다가 현역 의원으로 경북도지사에 도전했던 이철우김광림, 박명재는 그나마 지역구가 TK라 후임자 또한 한국당에서 나올 가능성이 99.9%라지만,[15] 김용태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구인지라 본인의 후계자는 십중팔구 민주당원이 될 것이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에서도 적극 만류했던 것으로 보인다.[17] 흥미롭게도 국회의원 재직 당시 원희룡의 지역구 역시 양천구였다.(원희룡의 지역구는 양천구 갑.)단 원희룡은 어릴 때부터 제주도에서 수재로 이름이 높았었지만 김용태는 그 정도까지 고향에서 인지도가 높진 않다.[18] 앞서 공관위가 홍준표 전 대표에게 구로구 을에 출마를 권유하기도 했다.[19] 실제로 이 지역은 더불어민주당의 중진인 박영선이 국회의원을 3번이나 지냈을 정도로 민주당의 세가 강한 곳이다. 또한 기사에서 '자객 공천'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공교롭게도 김용태가 기존 지역구를 떠나 해당 지역구에 공천될 때 미래통합당의 공천 관리 위원회가 사용하였던 말이 바로 자객 공천이다. 기사[20] 문재인 정부의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바가 있다.[21] 깔개는 집회에 자주 사용되는 물건이기 때문에 기자 개인이 국회에 반입하는 건 금지된다.[22]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23] 2016년 11월 22일 새누리당을 탈당했으나 2017년 11월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24] 4번의 선거 중 첫 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