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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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변호사이다. 민주당계 정당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안철수와 함께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2020년 이후로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 행적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연소마을에서 태어났다. 1978년 광주인성고등학교(2회)[5] 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1989년 사법연수원을 18기로 수료한 후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젊은 시절, 보통 남들이 잘하지 않는 일을 전담으로 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여성 인권 신장에 노력했던 편.
여성실업자 구직등록 운동 전개[6] , 여성노동자 권익 보호 `평등의 전화'[7] , '인천여성노동자회' 무료 법률상담/취업알선[8] 등 매년 여성의 인권이 합리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노력을 가하였다. 평등의 전화는 직장여성에게 무료 법률 상담을 해 주었다. 임금체불과 해고,차별정년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또 직장내 성폭력 추방과 평등한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지원활동을 하였다. 연간 5백건이상 상담이 들어왔지만 해결률은 80%에 육박하였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인천직할시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다.[9]
1999년 벌어진 옷로비 사건의 특별수사관이기도 했다.
2001년 1월 국민방송 설립을 위한 시민모임을 출범시켰다.#
2.1. 국회의원 시절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갑 지역구에 출마, 탄핵 역풍에 힘입어 당선됐다.
2006년 여당 제5정조위원장 자격으로 의약 분업이 부작용없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아닌 의회 차원의 평가를 시행하도록 했다. 시행 후 5년이 되도록 의사 협회와 약사회의 알력으로 갈등이 계속되던 시점이었다.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조진형에게 지역구를 내줬으나, 2012년 19대 총선에서 재선돼 원내부대표까지 지낸다.
2012년 18대 대선 때 댓글 조작 제보를 받고 국정원 여직원이 머무르는 오피스텔 호실 앞에 진을 쳤었던 민주당 의원중 한명이다.
2013년 12월 31일 국정원 개혁안 가결을 주도했다. 국회 국정원개혁특위를 통해 국정원 개혁을 위한 입법에 합의하고 마무리했다. 오전 11시께 열린 전체회의에서 여야는 국정원 정보관이 정당, 언론사, 정부기관을 드나들며 정보를 수집해온 데 대해 '상시 출입 금지'를 법에 명시하기로 했다. 사이버 심리전 활동 처벌문제도 국정원법 '정치관여금지 조항'에 포함해 명문화하기로 했고, 7년이하의 징역을 부과하도록 했다. 공무원 정치관여죄에 대한 공소시효도 10년으로 통일했다.#
2015년 12월 17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여 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했다.#
2016년 2월 23일에 시작된 이른바 테러방지법의 통과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의 두 번째 주자로 나섰다.[10] 문병호 의원이 발언을 시작한 것은 2016년 2월 24일 오전 12시 40분 경. 그리고 그날 2시 30분, 약 1시간 50분의 발언을 마쳤다.
2.2. 부평구 갑 , 인천광역시장 선거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부평구 갑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의 정유섭 후보를 상대로 불과 26표 차이로 낙선했다. 재검표 결과, 표차는 23표 차이로 줄어들었으나 최종적으로 낙선은 확정이었다.
2017년 1월 15일 국민의당 당대표 경선에서 2위를 하여 최고위원이 되었다.
2018년 2월,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에 찬성하여 바른미래당 창당(신설합당)에 합류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바른미래당의 인천시장 후보로 전략공천되었다. 당내 경쟁자였던 이학재 의원과 정대유 전 차장이 모두 불출마 선언을 했기 때문. 선거 결과 3위로 낙선했다. 득표수가 지난 총선 때 지역구에서 얻은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함정.
친안계로 분류되었으나, 2018년 6월 안철수가 추진하는 김문수와의 단일화 행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때문에 문병호마저 안철수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이학재 의원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한 후 공석이 된 바른미래당 인천시당위원장을 맡았으며, 2019년 5월에는 손학규 대표에 의하여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으로 지명되었다.
2.3. 보수정당으로의 전향 그리고 영등포구 갑
2019년 10월 27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
2020년 1월 29일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등이 구성한 보수통합 논의 기구인 혁신통합추진위원회에 합류했다. # 2020년 2월 17일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면서 미래통합당 소속이 되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평구 갑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하고, 당내 조정을 거쳐 서울 영등포구 갑 선거구에 공천을 받았다.# 선거 결과 현역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후보에게 18%p 차이로 패하여 낙선했다.[11]
3. 여담
4. 소속 정당
5. 선거 이력
6. 둘러보기
[1] 남평 문씨 집성촌이다.[2] #[3] 동수교회 권사#s-2이다.[4] 족보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5] 홍이식, 윤종기와 동기다.[6] #[7] #[8] #[9] 야권연대였다.[10] 첫 주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광진 의원.[11] 20대 총선서 접전 끝에 자신을 낙선시켰던 정유섭도 민주당 이성만 후보에게 대패해 낙선했다.[12] 다음은 이하 출처 사진이다. [image][13]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4]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15] 바른정당 과 신설 합당[16] 새로운보수당, 미래를 향한 전진 4.0과 신설 합당.[17] 효성1동,효성2동,청천1동[18] 야권단일후보[19] 재개표 결과 3표가 더 늘었다.[20] 20대 총선 전국 최소 표차 ('''23'''표)[21] 검찰의 1차 재개표가 있었고 대법원의 2차 재개표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