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규(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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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현재 계급은 소장이며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이다.
2. 생애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으로 대천고등학교를 졸업 후 1987년에 육군사관학교 47기로 입교(독일어 전공)하여 1991년 졸업과 함께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역임 보직으로 이라크 파병 복귀 이후 제2보병사단 포병연대 작전과장(소령), 제3포병여단 922포병대대장(중령), 제3보병사단 포병연대장, 3군단 화력참모(이상 대령), 제2포병여단장, 지상작전사령부 화력처장, 육군본부 비서실장(이상 준장)이 있으며 2020년 하반기 장성급 인사에서 소장으로 진급하여 통상적인 소장 1차 직위인 사단장에 보임되는 대신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1] 에 보임됐다.
3. 여담
- 남영신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과 인연이 깊다. 제3보병사단장 당시 포병연대장(대령), 지상작전사령관 당시 화력처장(준장),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부임 후 육군본부 비서실장(준장)으로 기용했다가 소장으로 진급하여 인사참모부장에 임명되었다.[2]
- 2016년 3사단 포병연대장 시절 통일컵 풋살대회 우승상금을 인근 지역 6.25 전쟁 참전용사에게 전달했다.
- 특이사항으로 포병병과로는 드물게 이라크 파병[3] 을 다녀온 경력이 있으나 그로 인해 포병 작전직능에서 필요한 보직을 제 때 이수하지 못해 육사 출신 + 포병 작전 직능 임에도 중령 진급을 1차에 하지 못해 제2보병사단 포병연대 작전과장[4] 으로 근무중 2차로 진급하여 인근 제3포병여단 922포병대대장으로 부임하였다.
- 포병연대 작전과장 임무수행간의 일화로 항시 과중한 업무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도 단 한 번도 부하들에게 화내거나 짜증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지휘통제실에서 야근으로 늘 고생하는 작전과 소속 작전장교, 연락장교, 정훈장교, 화학장교 등의 후배 장교들은 물론이고 작전상황병 병사들에게까지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상급자가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고 있고,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는구나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기에 부하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으며, 그 당시(2008년경)의 군대에서는 찾아보기 드물 정도의 훌륭한 인성을 소유한 덕장이었다.
- 훈련 및 작전간에는 포병 작전 및 화력운용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통해 상급부대 및 지휘관의 인정을 받은 능력자이기도 하다.
- 보병 작전직능인 현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남영신 대장이 제3보병사단 사단장 시절 예하 포병연대장(대령), 지상작전사령관 시절 화력처장(준장)으로 지휘관의 화력참모 역할을 지속적으로 맡겨왔고, 육군참모총장 부임 후에도 비서실장(준장)에 이어 인사참모부장(소장)으로 계속 중용하고 있다.
- 포병 병과에서 김태영 전 국방장관 이후 11년만에 나온 포병출신 4성장군인 군내 포병 및 화력분야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김병주 현 21대 국회의원(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대장))의 3군단장 보임중에 군단 화력참모(대령)로 보좌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5] , 이 후 장군으로 진급하여 김병주 장군이 준장시절 재임했던 제2포병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 포병 병과에서 김태영 전 국방장관 이후 11년만에 나온 포병출신 4성장군인 군내 포병 및 화력분야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김병주 현 21대 국회의원(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대장))의 3군단장 보임중에 군단 화력참모(대령)로 보좌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5] , 이 후 장군으로 진급하여 김병주 장군이 준장시절 재임했던 제2포병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 학군사관 59기로 2021년 3월 임관예정인 아들이 있다.
[1] 육본 내에서 정보작전참모부장과 함께 군단장 진급 0순위로 꼽혀 통상 사단장을 마친 인사직능 소장의 2차 직위로 주로 보임된다. 장군은 General이라는 뜻에 걸맞게 군내 모든 분야에 능통해야 하기에 충분히 가능한 인사라고도 볼 수 있으나 지금까지의 전례를 볼 때 포병 출신의 작전직능 소장 진급자의 1차 직위로 사단장이 아닌 육군 장교 인사를 총괄하는 인사참모부장을 맡기는 건 이례적이라는 의견도 있다.[2] 육군 내 인사를 총괄하는 요직이니 만큼 육군참모총장의 측근이 주로 부임하는 보직으로 알려져있다.[3] 이라크 파병 당시 포병부대 자체가 파병되지 않았다. 즉, 포병장교가 이라크에 파병되었다는 것은 병과를 초월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4] 포병연대 작전과장은 중령(진)으로 보아도 무방한 요직중의 요직이기에 야전에서 진급을 앞둔 모든 포병병과 소령들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보직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야근과 격무의 연속이라 어마어마한 직무 스트레스를 받는 보직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당시 2사단 포병은 예비사단 소속으로 군단 전 작계지역을 커버하다보니 사단 직접지원, 일반지원에 추가적으로 군단 포병들과 함께 전방 사단 포병의 화력 증원 임무도 함께 수행하는 특성상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과중한 업무량이 작전과에 부여되었다. [5] 김병주 장군은 전역이후 국방TV 유튜브에서 손자병법 강의를 할 정도로 병법에 해박했고, 대령시절 함참 합동화력과장을 지내는 등 한미연합작전 경력과 더불어 걸프전을 비롯한 현대 미국 전쟁사에도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소장 시절 미사일사령관으로 재임했을 정도로 포병과 화력을 사랑하는 덕후이다. 그런 김병주 장군이 자신의 주 전공인 화력참모로 중용했다는 것은 그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국방일보 기고문(『손자병법』에서 전투수행방법을 찾다). 참고로, 김병주 장군이 미사일사령관 시절 강인규 장군의 육사 포병병과 동기인 양태봉 소장에게 작전처장(당시 대령)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