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도
居道
생몰년 미상
신라 초기의 장군으로 지금의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 지역을 신라 영토로 편입시켰다.
탈해 이사금 재위기에 활약한 인물이나 국왕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본기'에는 안 나오고 거도 '열전'에만 행적이 써 있다.
그는 석탈해 때 '간(干)' 벼슬을 했었는데, 거칠산국(지금의 부산광역시)과 그 옆의 우시산국(지금의 울산광역시)은 초창기 신라(사로국, 즉 경주시)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국경지대에 위협이 되었는데 신라의 장군 거도가 변경[1] 의 지방관이 되어 두 나라를 병합할 계획을 짰다. 마침 이 당시 이 지역에는 매년 한 번씩 여러 말들을 들판에 모아놓고 군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 노는 정기적 행사 마숙(馬叔)이라는 게 있었는데, 거도는 이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위장해 군사를 동원했고 우시산국과 거칠산국 두 나라 사람들도 마숙 행사를 자주 보아 왔으므로 신라가 평소 하던 대로라고만 생각해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다. 이 틈을 타 거도는 이 기병을 이용해 두 나라를 기습 공격해 멸하였다.
사실 이는 병법 삼십육계 중 승전계의 제1계인 만천과해에 해당한다. 즉 병법의 기본. 중국에서는 삼국지의 태사자가 이 책략을 사용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삼국사기의 지명도가 삼국지에 비해서 낮은 때문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는 않다. 훗날 우산국 정복으로 유명한 이사부가 가야 공격 때 거도의 계략을 공부해 그대로 다시 한 번 써먹었다고 한다.
삼국사기 기록상에서 신라가 경주 바깥의 다른 나라를 병합한 첫 사례고, 이 때쯤부터 신라가 진한권 지역 안의 여러 나라 중에서 약간씩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주 코앞인 울산은 그렇다치고 경주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부산 지역은 고고학적으로는 석탈해(1세기)는 커녕 한참 뒤 4~5세기쯤 돼야 금관가야계 유물 대신 신라계 유물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므로 이 거도의 정복 기록과 맞지 않는 문제가 있다. 사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이것 말고도 앞에서 망한 나라가 나중에 멀쩡히 재등장(...)하는 사례가 종종 있기도 한데,[2] 연대가 잘못됐거나 완전한 멸망이 아니라 일시적인 정복이었던가 할 수도 있다.
생몰년 미상
1. 개요
신라 초기의 장군으로 지금의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 지역을 신라 영토로 편입시켰다.
2. 생애
탈해 이사금 재위기에 활약한 인물이나 국왕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본기'에는 안 나오고 거도 '열전'에만 행적이 써 있다.
그는 석탈해 때 '간(干)' 벼슬을 했었는데, 거칠산국(지금의 부산광역시)과 그 옆의 우시산국(지금의 울산광역시)은 초창기 신라(사로국, 즉 경주시)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국경지대에 위협이 되었는데 신라의 장군 거도가 변경[1] 의 지방관이 되어 두 나라를 병합할 계획을 짰다. 마침 이 당시 이 지역에는 매년 한 번씩 여러 말들을 들판에 모아놓고 군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 노는 정기적 행사 마숙(馬叔)이라는 게 있었는데, 거도는 이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위장해 군사를 동원했고 우시산국과 거칠산국 두 나라 사람들도 마숙 행사를 자주 보아 왔으므로 신라가 평소 하던 대로라고만 생각해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다. 이 틈을 타 거도는 이 기병을 이용해 두 나라를 기습 공격해 멸하였다.
사실 이는 병법 삼십육계 중 승전계의 제1계인 만천과해에 해당한다. 즉 병법의 기본. 중국에서는 삼국지의 태사자가 이 책략을 사용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삼국사기의 지명도가 삼국지에 비해서 낮은 때문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는 않다. 훗날 우산국 정복으로 유명한 이사부가 가야 공격 때 거도의 계략을 공부해 그대로 다시 한 번 써먹었다고 한다.
삼국사기 기록상에서 신라가 경주 바깥의 다른 나라를 병합한 첫 사례고, 이 때쯤부터 신라가 진한권 지역 안의 여러 나라 중에서 약간씩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주 코앞인 울산은 그렇다치고 경주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부산 지역은 고고학적으로는 석탈해(1세기)는 커녕 한참 뒤 4~5세기쯤 돼야 금관가야계 유물 대신 신라계 유물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므로 이 거도의 정복 기록과 맞지 않는 문제가 있다. 사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이것 말고도 앞에서 망한 나라가 나중에 멀쩡히 재등장(...)하는 사례가 종종 있기도 한데,[2] 연대가 잘못됐거나 완전한 멸망이 아니라 일시적인 정복이었던가 할 수도 있다.
[1] 경상남도 양산시로 추정한다. 울산과 부산 사이로 볼 만한 지역은 지리적으로 양산밖에 없고, 본기에는 석탈해 동시대 때 가야가 낙동강을 넘어 양산(물금)으로 쳐들어온 것을 격퇴한 황산진 전투도 나온다.[2] 예를 들어 온조왕 때 백제에게 항복한 마한이 있다. 김부식도 고구려 태조왕 본기에서 마한이 다시 등장하자 "아니 온조왕때 망했다면서 지금 나온건 뭐지?"라는 각주를 달았다. 삼국사기 내용은 김부식이 지어낸 게 아니라 김부식도 더 옛날 사서를 보고 취합해서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김부식조차도 앞뒤가 안 맞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그러나 다른 기록이 따로 없으니 일단 쓰긴 쓰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