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국

 


'''우산'''
'''于山 | Usan'''

'''기원전 2세기경(?) ~ 서기 1022년'''
<colbgcolor=#3d8d68>'''위치'''
<colbgcolor=#ffffff> 울릉도
(현 경상북도 울릉군)
'''정치 체제'''
군주제
'''국가 원수'''

'''수도'''
현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 일대(추정[1])
'''종족'''
우산인(于山人)[2][3]
'''종교'''
토착 신앙불교
'''주요 군주'''
우해왕[4]
'''주요 사건'''
512년 신라-우산국 전투, 신라에 복속[5][6]
930년 고려에 조공・복속[7]
'''멸망 이후'''
고려
'''현재 국가'''
대한민국(울릉군)
1. 개요
2. 역사
3. 역대 왕
4. 문화재
5. 관련서적
6.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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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산국'''(于山國)은 6세기 초까지 울릉도를 지배했던 고대의 왕국이다.
건국 시기는 알 수 없으며, 우산국을 구성했던 주민들은 우산국에 정착해있던 우산 토착민과 동예 또는 옥저에서 건너온 예맥유민이나 삼한계 유민들로 추정되며, 512년 6월 하슬라주 군주 이사부의 개척으로 신라에 복속되었다. 그 후에도 신라와 고려에 종속된 속국으로 느슨한 자치를 유지하다가 1018년 여진족 해적들의 약탈로 궤멸적인 타격을 받은 후 1022년 남아있던 주민들이 모두 고려로 귀부하며 완전히 멸망했고, 조선 대에는 쇄환 정책을 펼쳐 무인도인 상태로 있다가 20세기대한제국이 주민을 재식민하였다.
조선 시대 때 공도 정책을 펼친 이유는 울릉도에 관리를 보내 관리하는 것보다는 그냥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섬을 비우는게 낫다고 판단하였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거주민을 없앤 것 뿐이지 섬에 대한 관리를 완전히 손 뗀 것은 아니고, 숨어들어간 백성이 없는지 확인하거나 왜구들을 토벌하기 위해 몇년 마다 섬의 상태를 확인할 관리를 파견하였다고 한다. 점차 느슨해져 중종이후로는 파견 기록이 없으며, 때문에 한동안 거주하는 백성들이 늘어났다. 그러다 안용복과 일본의 외교적 충돌로 인해 장한상이 울릉도에 파견되고, 이후 다시 정기적 사찰을 하다 고종 때 개척정책이 실시된다.
그래서 그런지 한반도 남부에 영향력을 어느정도 준 가야한반도 여러국가들의 속국으로 살아남아 인지도가 있는 탐라국에 비해 인지도는 물론 기록 조차 거의 없다시피한 실정이다. 그나마 언급되는 기록은 신라 지증왕 대 펼쳐진 이사부의 공격과 여진족 해적들의 침탈로 인해 멸망한 후 우산국의 유민들이 고려에 귀화한 것뿐이며 그 외에 약간의 고고학적 단서만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2. 역사


울릉도의 역사와 우산국의 역사를 따로 나눠 분류하였으니 각각 문서를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3. 역대 왕


섬나라라는 동일한 특성을 가진 탐라국과 비교해봐도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 탐라국은 일본 음악에 영향을 주는 등 주변국과의 문화적 교류나 풍습이 기록과 흔적으로 남아있지만 이에 비하면 우산국은 역사적 자료가 없다시피 하다. 우산국의 왕은 설화로 전해지는 우해왕(于海王) 하나 정도 밖에 없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사서에 기록되어 남아있는 인물은 아니고 지역 설화로 구전되오던 인물이기 때문에 실존한 왕이라 말하기도 곤란하다. 그 때문인지 투구바위 같은 자연물에서 문헌사료까지 우해왕 관련 사료가 많다.[8] 일단 설화 내용상으로는 우해왕 시대에 우산국이 신라의 공격에 의해 망하고 말았다고 하므로, 이사부가 나무 사자를 이용한 위협으로 우산국을 정복한 당시에 울릉도를 다스리던 임금으로 비정되는 듯 하다.
그 밖에 조선 인조 임금 시절에 조여적이란 사람이 쓴 책인 청학집에 의하면,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되고 나서 우산국 왕자인 하발은 7명의 동생과 함께 고구려로 달아나서 계루부 대형의 벼슬을 받았다가, 나중에 하발의 형제 중 7명은 중국의 북위로 도망쳤고 그들 중 1명인 현우는 지금의 함경남도 비백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우의 자손들이 각각 현씨와 우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9]

4. 문화재


주인을 알수없는 고분군으로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의 고분군이다. 그 중에서 삼국시대의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일본 도굴꾼이 많이 도굴을 해서 부장품이 온전히 남은 고분이 거의 없다.
  • 저동리 고분군
  • 사동리 고분군
  • 천부리 고분군[10] #
  • 나리 고분군
  • 현포리 고분군
  • 태하리 고분군
  • 당양리 고분군
  • 남서리 고분군

5. 관련서적


  • <우산국> - 이규복 저서 [11]

6. 같이보기



[1] 현포리 일대에 고분군이 밀집되어 있어 수도로 추정된다. 다만 너무 작은 국가라 수도를 따로 지정해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2]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13년조 "伊湌異斯夫爲何瑟羅州軍主謂, '于山人愚悍, 難以威來, 可以計服.'"[3] 예맥, 삼한 계통으로 추정.[4] 우해왕은 우산국의 전성기를 이끈 왕으로 리즈시절 때는 자꾸 우산국에서 집적대는 왜구를 정벌하기 위해 본기지인 쓰시마 섬을 정벌했다고도 전한다! 어쨌든 그때 대마도주의 셋째 딸 풍미녀를 왕후로 삼은 이후 풍미녀의 사치로 인해 나라가 망하기 시작했고 신라의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게 되면서 우산국은 망하게 되었다고 울릉도 설화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5]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지증마립간 13년조.[6] 《삼국사기》 권44, 열전(列傳)4, 이사부전(異斯夫傳).[7] 《고려사》 권1, 세가(世家)1, 930년 8월 15일(음) 병오(丙午) "丙午 芋陵島遣白吉·土豆, 貢方物, 拜白吉爲正位, 土豆爲正朝."[8] 더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조할 것.[9] 출처: 한국기인전/ 이석호 지음/ 명문당/ 2010년 09월[10] 2고분에서 남북국시대의 87기의 문화재가 발굴 되었다. 주로 토기고 그 외 유리 목걸이, 금동 제품, 철기 제품 등이 있다.[11] 정사가 아닌 우산국을 배경으로한 창작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