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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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옛 본원으로, 새 본원에 본원 자리를 내줬다. 2차 종합병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216병상으로 운영되는 중이다.# 병원 건물[1] 옥상에는 거대한 시계가 있어 근처 주민과 상인,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모태를 따지고 들어가면 1899년 세워진 제중원[2] 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한때 대구.경북 지역 최고 수준의 병원, 한강이남 지역 의료의 중심지였지만, 현재는 서울의 빅5병원엔 턱없이 밀리고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경북대병원에 밀리게 되었다.[3] 이를 두고 병원 내부에서도 '잘 나갈때 병원 발전 대신 선교에만 힘썼다'(...)는 식의 불만이 있다고 한다.
2. 상세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서문시장과 함께 달성로의 교통을 마비시키는 주범이다.(...) 대구 중앙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접근성은 좋지만 동산병원 앞 도로는 눈, 비 등으로 도로 사정이 안 좋거나, 출퇴근 러시아워 시간일 땐 항상 혼잡한 곳 중 하나였다. 과거에도 대구 북부에서 대중교통으로 금호강을 건너 시내로 가려면 무조건 통과해야 하는 도로였으므로 어마어마하게 밀렸다. 병원 앞 도로를 빠져나가서 직진 후 바로 돌면 중앙로 시내가 코 앞인데도 체감상으로는 이 구간을 빠져나가는데 엄청 시간이 걸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 이는 대구 도시철도 3호선 완공 이후 전철역을 통한 접근성이 높아졌고 도로도 기존 4차선에서 6차선으로 확장되며 그나마 나아졌다지만 그래도 도로는 밀리긴 한다.
'''2020년 현재 코로나19의 대구광역시 치료 거점 병원으로 선정되었다.''' 사실상 '''출입금지구역'''이 되었다.[4][5] 6월 15일부로 다시 일반진료 재개한다.#
이때,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개원으로 216병상으로 허가병상이 줄어 들었지만 일시적으로 1,000병상이 추가로 가동되어 1,216병상을 가동 했었다.
3. 건물 및 구성
병원 건물이 매우 낡은 것으로 악명이 높다. 1950년대 초에 촬영한 병원 전경 사진이 지금과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만 봐도 말 다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실 뒷사정이 숨어있다. '''동산의료원 건물. 그 중 전면의 3층짜리 적벽돌 건물은 국가등록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어서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6] 보통 병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보수 및 증축을 반복하면서 발전하고 규모가 커지는데, 동산의료원은 문화재로 지정되어서 좋게 말하면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나쁘게 말하면 발전 없이 상대적인 낙후만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부분을 제외하고, 새롭게 짓는다면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참고로 원래는 정면의 포치 형태의 출입구가 있었지만, 대구 도시철도 3호선 건설로 인해서 철거된 점이 아쉽다. 여담으로 병원 근처의 계성중고교 건물도 대구시 지정 문화재(28호, 29호, 30호)로 지정되어 있어서, 학교가 이전하고 나서도 건물이 계속 남아있게 된다.[7]
대구지역 건축물들 중 일제시대 때부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던 곳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사람이 문을 직접 열고 닫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8] 이런 이유 때문인지 엘리베이터가 흔하지 않았던 1970년대 유년기를 보냈던 대구 지역 사람들은 당시 대구백화점과 함께 이곳을 엘리베이터 타러 가는 곳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 제조사도 다양해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LG산전, 금성기전[9] , 동양[10] 등이 고루 있었지만 중반 이후 오티스 엘리베이터로 싸그리 대차[11] 되어 동양엘리베이터는 별관 2대만 남아있으며, 예외적으로 응급실은 현대엘리베이터다.[12]
장례식장 건물은 본관과 별도로 분리되어 있으며, 천정이 돔 형식으로 건축되어 있다보니[13] 천정 위로 뜨거운 공기가 가득 차서 여름에 2층을 올라가면 상당히 덥다. 심지어 에어컨 냉방을 최대로 설정해도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
외래관 8층에는 원래 치과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8층이 비워짐과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8층 버튼 역시 테이프로 막혔다. 2020년 이후로는 대구동산병원 홈페이지를 조회한 결과 외래관이 5층까지만 안내되어 있다고 한다.
예전과 달리 내부가 많이 바꿔져있다. 예전까지만 해도 접수처에는 번호표와 번호판만 설치해 두어서 번호가 나오면 띵-동하고 깜빡깜빡하고 직접 요리조리 찾아가면서 접수를 했어야만 했다. 지금은 중간에 번호가 나오는 TV가 설치되어 몇번에 내 번호가 나왔는지 확인이 가능해 바로바로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엘리베이터 옆에는 방문자 기록이 있는데 평균 1만명 정도로 많다.[14]
[1] 정확히 말하면 교수연구동이다. 과거에는 간호대학 건물이었다.[2] 광혜원을 모태로 하는 서울 제중원이 아니다. 약전골목에 세워진 약국 '미국약방'을 전신으로 둔 대구 제중원이다. 당시 서양인 선교사들이 전국 곳곳에 제중원을 세웠다고 한다.[3] 다만 진료과에 따른 차이는 있다. 예를 들어 화상 처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수준.[4] 원래는 처분했어야 할 건물이였다. 처분이 안되어 동산병원 측에선 재정부담이 엄청났었던 골치덩어리였는데... 31번 확진자를 비롯한 신천지 집단감염의 여파로 '''계명대 동산병원을 비롯하여 대구의 핵심 병원 응급실들이 모두 폐쇄 당하고 파티마 병원과 이 건물만 살아 남았었다.''' 말 그대로 새옹지마. 이 건물 없었으면 밀라노와 같은 참사가 날 뻔 했다.[5] 다른 3차 병원들이 기능을 회복할 때까지 파티마 병원 혼자서 응급환자들을 처리해야 했고 '''코로나 환자를 전담할 대형 병원시설이 필요했다.''' 대구동산병원이 '''3차병원 역할을 했던 시설'''이어서, 이론상으론 본원 이전 후 놀고있던 700여 병상을 곧바로 코로나19 전담시설로 운영할 공간적 여력도 되었기에 병원 측이 '''구국의 결단을 내린 것'''. 말 그대로 코로나19로 부터 대구, 아니 대한민국을 지켜 낸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6] 물론 등록문화재는 중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조금 손질해서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7] 다만, 고등학교만 이전했고, 같이 있는 중학교는 그 자리에 남아있다.[8] 서울 명동 사보이호텔에 있는 1957년식 쉰들러 수동문 엘리베이터를 생각해보면 된다.[9] 대구 소재 대학병원 중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과 더불어서 금성기전(미쓰비시)이 강세였다. 경북대학교병원, 영남대학교병원은 금성산전(히타치)이 강세였다. 예외로 10호기 외래직원 오티스 대차전 1996년식 LG산전 LGP가 유일하게 히타치 비슷한 운전반을 적용했다.[10] 금성기전과 함께 동산병원 엘리베이터 양대산맥이었으며, 2010년대까지 대구지역 대형병원 중 파티마 병원과 더불어 병원용(침대용) 동양엘리베이터를 볼수 있었던 곳이었다.[11] 서관과 외래직원 2014년식은 희귀하게 ACD가 아닌 기존 시스템 Si1 모델이다.[12] 성서에 있는 동산병원은 준공 당시부터 모두 현대엘리베이터다.[13] 과거에는 체육관 건물이었다. 1층은 사무실, 빈소, 안치실, 영결식장이 있으며, 2층은 매점과 조리실, 빈소가 있다. 3층부터는 폐쇄되어있다.[14] 성서동산병원 개원전까지만 해도 번호표 1000은 기본, 의자가 모자라서 서있는 사람이 다반수였다. 몇몇 의사선생님들은 아직 동산의료원에 계시며, 요일과 시간에 따라 성서와 시내를 왔다갔다 하시는 분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