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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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대신동지점[1] (계성빌딩) 옆에 있는 입간판. 계성중학교[2] 는 입간판에서 좌측에, 동산상가와 서문시장역은 입간판 우측에 있다.
西門市場(한자)
Seomun Market(영어)
서문시장 홈페이지.
서문시장 야시장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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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 위치한 '''대구 최대의 전통시장'''. 대구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손꼽힐 만한 대규모의 재래시장이다. 대구읍성 서문 밖에 위치한 시장이라고 하여 서문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2016년 6월부터는 '''서문시장 야시장'''도 영업을하고 있다.
대구 도시철도 3호선 서문시장역과 가까우며 총 6개 지구(1지구, 2지구, 4지구, 5지구, 동산상가, 건해산물상가)에 4,000여 개의 점포가 입주해 있다. 시장의 북쪽과 서쪽(큰장네거리)에 대신지하상가도 위치하고 있으며, 서구 비산4동까지 지하상가가 뻗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지하상가 문서의 3.3.4번 문단 참조.
참고로 청주나 수원에도 같은 이름의 서문시장이 있지만, 인지도 및 규모는 대구 쪽이 넘사벽이다. 수원시의 경우 서문시장 말고 팔달문 근처에 있는 남문시장이 경기도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을 자랑하고 있다.
2. 역사
조선 중기에 현재의 북성로에서 태평로를 통하는 미창골목 언저리로 추정되는 대구읍성 북문 밖에 시장이 형성되면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동산파출소와 오토바이 골목 일대에 있었으며 이름은 대구읍내장이었는데, 당시엔 강경시장, 평양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서울 남대문시장은 구한말 또는 일제강점기에 생성된 관제(?)시장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3대 시장에는 끼지 못한다. 물론 지금의 서문시장 역시 방대한 규모와 전국구 인지도를 자랑하는 시장이다.
1920년대 초 대구 시가지가 개발되고 확장되면서 서남쪽에 있는 천황당지라는 큰 못을 매립해서 장을 옮긴 것이 현재 서문시장이며, 1922년 공설시장 개설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당시 천황당지를 매립할 때 비산동과 대신동에 있던 달성 고분군의 봉토를 파서 매립했다. 당시 일제가 문화재를 파괴해가며 부지를 만든 셈인데, 그림이 안그려져서 실감이 안나면 경주 신라왕릉들의 봉토를 파서 못을 매립했다고 생각해보자.
이 후에도 대구시 각 지역에 각종 주택과 시설이 들어서면서 달성고분군, 비산동고분군, 대명동고분군 등 시가지에 있는 고분군들은 거의 사라지고 현재는 공원이 조성된 불로동 고분군만 남게 된다. 달성고분군은 1923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했는데 금관, 토기, 장구 등 갖가지 귀중한 부장품이 나왔다고 한다.[3] 당시 조선총독부의 실측도와 현재 지적도를 보면 현재 비산4동과 대신동 일대에 고분군 유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3. 잦은 화재 사고
광복 후 화재가 되풀이되는 안습 행보를 내달리고 있다. 주된 이유는 재래시장의 고질병 중 하나인, 오래 된 '''전기시설''' 때문이다. 아래의 내용은 지금까지 서문시장에서 일어난 화재 목록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서문시장 화재 항목 참조.
게다가 문제는 상인들 중 화재보험 미가입자가 많다는 것. 이는 상인들이 미가입한 측면도 있지만, 애초 서문시장의 잦은 화재로 인해 보험료가 높다보니 보험사들이 가입을 꺼린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 1967년 1월 1일 : 첫 화재 발생
- 1975년 11월 20일 : 4지구, 1지구 2층 큰 화재로 전소
- 1976년 12월 17일 : 3지구가 큰 화재로 전소. 이 때문에 서문시장에는 3지구가 없다. 구, 3지구 상인들은 보상을 받아서 현재 서문시장역 바로 앞에 있는 동산상가로 이동했다.
- 2005년 12월 30일 : 2지구가 큰 화재로 전소. 2지구는 주로 원단을 취급하던 곳이었는데, 한강 이남에선 가장 많은 원단이 모이는 곳이었다.
- 2012년 8월 : 2지구 재건축 완공. 2012년에 촬영된 막바지 공사 중인 2지구 상가.
- 2012년 10월 18일 : 2지구 맞은편 건어물 상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관련 기사
- 2014년 2월 11일 : 아진상가 북편 건물의 지하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관련 기사
- 2016년 11월 30일 : 오전 2시경 1지구와 4지구 사이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가 집중 확산된 4지구는 커튼, 이불 등 면직물을 취급하는 상점이 밀집되어 있어 점포 500여 개가 불에 타는 등 피해가 커졌다. 결국 4지구는 전소되다시피했고 일부가 붕괴되기까지 해서 안전검사 결과 E등급을 찍어 2지구와 마찬가지로 빼도박도 못하고 철거 후 재건축이 불가피해 보이며, 2017년 1월 말에 철거가 확정됐다.
- 11.30 09:30 기준, 4지구 상가 건물 붕괴
- 11.30 10:00 기준, 소방관 2명 부상으로 인명피해 집계됨
- 2020년 9월 11일 오전 7시 30분 쯤 서문시장 2지구 1층 가방가게에서 이유모를 화재가 일어났으나, 화재 이후 새로 신축한 건물이니 만큼 소방시설이 완비가 되어있어 지하1층에서 음식점을 영업하는 한 상인이 119신고 후 상가 내 소화기를 들고 진화를 벌이던 도중 상가 스프링클러가 작동되어 5분만에 불이 진화되었다. 따라서 가게 일부가 소실되고 스프링클러 작동으로 인한 수손 피해가 일부 발생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 화재는 소방시설의 배치와 작동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기사
4.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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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이용 편의를 위하여 서문시장 주차빌딩에서 매시 15분과 45분에 출발하는 셔틀버스가 있다. 서문시장 건너편에는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워낙 큰 재래시장이고 도심 지역이라서 엄청 많은 대구광역시 시내버스가 다닌다.[4] 거기에 경산시 시내버스의 990번, 991번, 칠곡군, 성주군 농어촌버스의 250번, 고령군 농어촌버스의 606번까지 들어올 정도다.
시장 바로 앞에 대구 도시철도 3호선 서문시장역이 있고 인근 신남네거리에는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청라언덕역도 있다.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이 개통한 이후 전철을 이용해 서문시장을 방문하는 고객이 늘었다고 한다. 상인들의 매출이 늘어났으며, 서문시장도 손님들의 수요에 맞춰 대응하고 있다. 2016년 6월엔 서문시장야시장도 개장해 야간 방문객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참고로 서문시장과 동산의료원 사이에 있는 달성로는 과거부터 상습 정체구간으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2010년대 이 일대에 대구 도시철도 3호선 선로 공사가 한창 진행될 당시엔 가히 헬게이트라 할만한 정체 상황까지 갔었으나,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이 개통되면서 기존 왕복 4차선의 달성로가 왕복 6차선으로 확장되어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5. 기타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이 휴무일이었다가 2012년 6월부터 첫째, 셋째 일요일로 휴무일이 바뀌었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형마트 강제휴무일이 둘째, 넷째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서문시장의 유명세 덕인지 과거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농촌 위주로 취재를 해 예전만큼 자주 등장하진 않는다.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가 도보 20분 정도 거리에 있기 때문인지 외국인 관광객들도 종종 보인다.
계성중학교 건너편 대구동산병원 옆에 보면 높은 빌딩인데도 텅 빈 건물이 있는데 개점 1년만에 망한 패션 쇼핑몰 베네시움 건물이다. 상술했듯이 서문시장 2지구 화재 때 일부 상인들이 이 곳에 임시로 입점하기도 했는데 건물은 서문시장 주변에서 상당히 높지만 내부는 텅 비어있어 흉물이다.
대구 최대의 전통 시장답게 중노년층이 애용하다보니, 과거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보수 정치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장소였다. 보수 주자들은 왜 서문시장에 집착하나? 특히 이 빈도는 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 대선을 앞두고 급격히 늘어(...) 출마를 선언한 보수 정치인들의 잇따른 방문이 이어지기도 했다.[5]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정치인들이 자꾸 서문시장을 방문하면 일부 눈치없는 지지자들까지 겹쳐 장사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정치인의 방문을 싫어하는 상인도 있다.#
2016년 6월 3일부터 상설 야시장이 개장되었다. 야시장은 매일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 건어물상가 앞 도로 350m 구간에 80여 개의 점포가 있다. 개장 첫날 연인, 가족 등 시민들이 무려 10만 여명이나 몰려와 관심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개장 반 년 만인 2016년 말 서문시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3개월 가량 야시장 영업이 중단되었다가, 2017년 3월 3일 다시 야시장을 재개장하였다.# 보통은 저녁 7시쯤부터 점포를 배치하고 영업을 준비하여, 7시반~8시쯤부터 음식을 파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6. 먹거리 가게
규모가 규모인지라 시장 내에 많은 먹거리 가게들이 존재한다. 특히 수제비와 칼국수, (둘을 합한 메뉴인) 칼제비, 잔치국수와 가락국수, 보리밥, 돼지국밥 가게가 많이 있으며, 납작만두와 호떡 가게도 유명하다. 납작만두와 유사한 삼각만두도 이곳에서 맛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돈가스, 떡볶이 등 각종 분식이나 일반적인 음식점 음식도 꽤 있는 편.
이곳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시장을 돌아다니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릴 정도로 먹거리 가게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또한 특이하게도 시장 내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몇 군데 있었으나, 해당 카페의 상당수는 2016년 말 발생한 화재로 문을 닫았다. 그래도 앤제리너스, 봄봄커피, 마시그레이 같은 일부 카페는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많진 않지만 찾아보면 인근에 술집도 있다.
야시장이 개장한 이후부턴 밤에도 서문시장에서 수많은 먹거리 가게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각종 외국요리들부터 한식, 퓨전요리 등 종류가 다양하다. 다만 가격은 낮보단 좀 비싼 편이다. 야시장 거리에 위치한 수제비 가게 같은 경우는 밤에도 일부는 한다.
7. 자매품(?)
대구광역시에는 북문시장과 남문시장도 있다. 북문시장은 대구읍성 서문 밖에 있던 서문시장에 대응하여 대구읍성 북문 쪽에 1946년에 개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칠성원시장으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무엇보다 칠성시장 생활권 안에 있어서 그냥 칠성시장이라고 부른다. 여담으로 칠성시장의 어원은 북두칠성에서 연유하며 북쪽을 칠성으로 많이 부른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칠성시장과 서문시장을 라이벌로 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사실 칠성시장은 서문시장에 비하면 역사, 규모, 전국구 인지도 면에서 밀리는 편이다. 그리고 애초부터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물품도 차이가 있는데, 서문시장은 의류 및 생필품 소매업이 주요업이라면 칠성시장은 전기전자 및 청과 도매업이 주요업이라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구읍성 남문 인근에 조성되어 있는 남문시장도 애초부터 상권이 약해서 서문시장에 비할 바는 아니다. 동문시장은 옛 읍성동문앞 현 노보텔 뒤쪽 기업은행 중앙지점 앞 제일주차장자리에 있었으나, 1960년대 이후 폐장되어 사라졌다. 동문시장은 사라진지 오래돼서 있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6]
[1] 원래는 조흥은행 지점이었다. 조흥은행이 신한은행에 합병되면서 신한은행 지점으로 바뀐 것이다.[2] 계성고등학교는 2016년 3월 1일에 서구 상리동으로 이전.[3] 부연하자면 달성고분군을 비롯해서 위의 고분군들은 원삼국시대~삼국시대의 대구 지역 토착세력들의 무덤이다. "옛날 무덤이 뭐?"라고 의미없이 볼 수도 있겠지만 고분군이 있다는 것은 당연히 그 고분군을 만들도록 명령할 부족장 또는 군장급 지배층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분군 옆에는 고분군을 만든 지배층의 성이 있었으며, 동물원 겸 산책 코스로 전락한 달성공원 역시 원래는 토성으로 이 지역 지배층의 거주지였다. 이런 지역 지배층의 고분은 경주의 왕릉급 고분에는 못 미치나 적어도 높이가 3~4m가 넘어가며, 이런 고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백에서 수천호의 인구가 필요하다. 즉 대구가 고대부터 여러 곳에 고분을 만들 정도로 인구가 많았던 지역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고분군들이 소수를 제외하고 남아나질 않았으니 학술적으로 보나 관광 측면으로 보나 애석한 일이다.[4] 급행1번, 급행3번, 급행5번, 급행6번, 156번, 240번, 300번, 309번, 323번, 405번, 425번, 523번 동산네거리행, 524번, 623번, 651번, 653번, 724번, 808번, 836번, 840번, 909번, 939번, 동구2번, 북구2번, 성서2번 서문시장행 노선[5] 참고로 빈도가 적다 뿐이지 반대쪽 진영 정치인들도 당연히 방문한다. 애초 대구 유세하는 정치인들의 주요 코스 중 하나가 서문시장과 동성로, 경대 북문 같은 곳이다.[6] 다만, 대구역 옆에 위치한 번개시장은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