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노벨문학상
Nobel Prize in Literature'''
[image]
'''주최 및 장소'''
스웨덴 한림원
스웨덴 [image]
'''상금'''
900만 SEK
100만 달러[1]
(2018년 기준)
'''첫 시상년도'''
1901년
'''최근 수상자'''
루이즈 글릭 [image] (2020년 기준)
'''링크'''

1. 개요
2. 비판
3. 한국인 수상 가능성
4. 누가 받는가
5. 어디에서 많이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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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어: Nobelpriset i litteratur
노벨상의 한 분야.
역사학자인 2대 수상자 몸젠이나 철학자인 베르그송러셀이 받은 적도 있어 인문학상 요소도 가지고 있다. 1953년 윈스턴 처칠 이후 소설가, 시인들이 독점하다[2] 2015년 벨라루스의 논픽션 작가 알렉시예비치가 수상하면서 반세기만에 다른 장르의 수상자가 나왔다. 2016년에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깜짝 수상하여 오랜만에 비 작가가 수상하게 되었다. 밥 딜런의 수상을 계기로 초창기처럼 스펙트럼이 넓어지지 않겠냐는 예상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노벨문학상은 작품성도 고려되지만 당시 시대 상황 등 작품 외적 요소도 많이 고려된다. 좀 거칠게 표현해서 2차 대전 이후로는 문학성 이전에 자국 정부에 비판적 성향인 작가들에게 유리한 상인데, 반대로 해석하면 보수성향 작가들은 아무리 글 잘쓰고 세계적으로 유명해도 받기 힘들다는 소리다. 일례로 수상을 거부한 바 있는 사르트르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었고, 94년 수상자인 오에는 핵무기 반대 운동을 펼쳤었다. 반면 아르헨티나의 중도우파 작가이자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를 두둔한 보르헤스, 베트남전을 옹호한 반공주의자 나보코프는 끝내 타지 못하고 죽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노벨문학상은 작가에게 주는 상[3]이지 '''절대 특정 작품에 주는 상이 아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심사평마다 수상 작가의 문학적 업적을 논하는 과정에서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작품들이 있긴 하다. 예를 들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과학분야와는 달리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고도 자의적으로 수상을 받지 않은 사르트르 같은 케이스도 있다. 이는 문예가 수치화할 수 있는 과학 분야와 달라 공로를 판가름하고 서열을 세울 수 없기 때문.

2. 비판


평화상만큼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논란이 꽤 많이 제기되는 상이다. 문학적 성취 이전에 20세기 중반 이후 정부를 비판하는 인사들에게 상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며 이로 인해 해당 작가의 문학 이전에 정치적 문제와 얽혀있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1958년 파스테르나크소련 정부와의 관계 때문에 수상을 거부하려 하는 걸 강제로 수상시킨 사례나 2012년 수상자인 모옌의 친정부적 행보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4] 20세기 영향력있는 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노벨문학상은 문학적 가치보다 다른 요인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알다시피, 국적이나 인종 같은 정치적인 요인이다.”라고 말했다.
작가의 국적이나 정치적 성향을 문제삼아 상을 안 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1회의 최유력후보였던 톨스토이는 스웨덴과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인 러시아인에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를 표방했다는 이유로 외면받았고, 남미의 대문호 보르헤스는 파시스트와 독재 정권을 지지했다는 논란 때문에 수상하지 못했다. 반면 1920년 수상자인 함순나치에 부역했는데도 상이 박탈되지 않았고, 사르트르는 한국전쟁 북침설, 소련 굴라그, 문화대혁명 등 공산주의의 3개 악행을 지지했음에도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9년 수상자 페터 한트케유고 내전에서 인종청소를 저지른 독재자 밀로셰비치와 세르비아 정부를 옹호하고, 그의 장례식에서 참여해 옹호하는 연설하고, 같은 논조를 담은 책까지 써냈다. 이쯤되면 완벽한 고무줄이다.
초창기에는 '낙천적인 작품'이라는 모호한 기준 때문에 많은 문학가들이 수상에서 제외되었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현대 희극의 창시자인 입센이나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주자였던 졸라 둘 다 작품이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하고 있다는 이유로 문학사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지 못했다. 흔히 근대 희곡의 아버지하면 노르웨이의 헨리크 입센, 스웨덴의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 3명을 꼽는데 3명을 모두 제껴버리는 놀라운 안목을 보여줬다. 특히 스트린드베리는 노벨을 죽음의 상인이라고 비난했다는 이유로 노벨이 직접 후보에서 제외할 것을 지시했다. 졸라도 생전의 노벨이 싫어해서 일찌감치 배제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거 보면 상을 만든 노벨 본인부터 문학적 성취가 아니라 사감으로 상을 줘서 논란을 양산했다.
스웨덴이나 북유럽 출신들을 암암리에 밀어주는 경향이 있다. 트웨인라게를뢰프에게 물 먹었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산파라 할 수 있는 나보코프는 스웨덴인이며 노벨위원회 위원이었던 에위빈드 욘손과 하뤼 마르틴손[5]에게 밀려 수상하지 못했고 프루스트는 노르웨이 출신 함순에게 밀려 수상하지 못했다. 더욱이 함순은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덕에 노벨문학상 최고의 흑역사로 자리매김했다.[6] 정 북유럽 작가에게 상을 주고 싶더라도 입센, 스트린드베리 등 받을 만한 사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도 이들을 제외함으로써 스스로의 권위에 흠집을 내버렸다. 이런 북유럽, 스웨덴 우대의 레전설은 퓰리처상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영국의 시인 위스턴 휴 오든의 사례. 누가봐도 받을 만한 사람이었음에도 못받았는데 가장 유력한 이유가 '스웨덴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 함마르셸드의 책을 번역할 때 일부 오역을 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은 상당히 대놓고 박대받는다. 트웨인은 후보에 열 번 가량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했고 로버트 프로스트와 로스도 못받았으며 핀천매카시, 드릴로, 조이스 캐럴 오츠도 모두 이미 80을 넘겨 못받을 분위기다. 그래도 13명으로 영국과 같이 2위니까 제법 받은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허수가 많다. 1948년 수상자인 엘리엇은 영국문학과 문화에 매료되어 본격적으로 활동한 곳도 유럽이고, 상받기 한참 전인 1927년 영국에 귀화했는데 성인 때까지 미국인이라고 위키피디아 등에서 미국작가으로 끼어넣어 계산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론 12명인데 1978년 수상자인 폴란드계 유대인 작가 싱어는 망명와서 미국인이 되었을 뿐 이디시어로 글을 썼다. 1980년 수상자인 미워시는 수상 당시 미국/폴란드 이중국적자로 폴란드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 1987년 수상자인 브로드스키는 소련 망명작가로 그의 대표시들은 모두 러시아어[7]로 쓰여졌다. 정작 작품의 절반 이상이 영어고 러시아어 작품들의 영어 번역도 직접했던 나보코프 같은 작가는 빠졌다. 1993년 토니 모리슨 이후 23년간 미국문단을 외면하다 받은 사람이 2016년 가수밥 딜런.
즉, 이 허수들을 모두 빼고나면[8] 그 방대한 미국 문학에서 겨우 '''9명''' 줬으며 토니 모리슨 이후 26년간 미국작가는 수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27년째 되는 해인 2020년에 되어서야 시인 루이즈 글릭이 미국인 작가로서 노벨상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짜게줘서 좋은 점이 있다면 수상자 중에 논란이 된 사람은 없다는거 정도. 싱클레어 루이스부터 토니 모리슨까지 8명은 아무 논란없이 받을만한 사람이 받았다는 평을 듣는다. 참고로 유럽문학에서 주류였던 적이 한 번도 없는 스웨덴이 독일계 유대인으로 독일어로 집필한 1966년 수상자 넬리 작스를 제외하고 '''7명'''이다. 그리고 심지어 사용자 몇십만명에 불과한 아이슬란드어로 집필한 하를도르 락스네스도 스칸디나비아인이라고 1955년 수상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저런 이유로 후대의 기준으로는 왜 노벨상을 타지 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전설적인 작가들이 많아졌다. 밀란 쿤데라, 레프 톨스토이, 마크 트웨인, 프란츠 카프카, 조지프 콘래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니코스 카잔차키스, 제임스 조이스, E.M.포스터, 카렐 차펙, 미하일 불가코프, 막심 고리키, 헨리크 입센, 에밀 졸라, 올더스 헉슬리,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안톤 체호프, 시어도어 드라이저, 토마스 베른하르트 등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고배를 마셨다. 이들이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은, 이들의 수치가 아니라, 그들의 역사적 평가를 당대인으로써 미리 내다보지도 못하고 제대로 평가해내지도 못한, 노벨문학상의 수치라고 말해야 맞을 것이다. 하기야 '''위상과 업적으로 보면 무조건 초대 수상자여야 했던''' 톨스토이는 러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초대 수상자가 되지 못했으니 말이다.[9] 상기 목록에서 20세기 초에 사망한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제치고 받았던 초창기 수상자들[10] 중에 후대까지 잊히지 않고 거론되는 작가가 시엔키비치와 키플링, 타고르 등 손에 겨우 몇 명이나 꼽을 정도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11] 10년 가까이 후보에 오른 마크 트웨인이나, 노벨문학상 제정 이후 사망하기 까지 20년 이상 시간이 있었던 콘래드 부터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스웨덴 한림원이 눈뜬 장님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2018년에는 심사를 담당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종신 위원 중 한 명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의 남편이자 한림원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던 장클로드 아르노가 여성 18명을 성폭행한 의혹을 받은 것으로 한림원 파문이 시작되었으며,[12] 한림원의 미온적 대응에 항의한 종신위원들이 여럿 사퇴했다. 이로 인해 한림원이 내부 심사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되어 '''문학상 시상이 취소'''되는 대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관련 기사 시상 취소는 제2차 세계 대전 같은 전 인류의 위기상황에서나 일어나던 일인데, 이를 성추문 때문에 일으켜버리는 극심한 추태를 보여주는 바람에 노벨 문학상의 위상이 땅으로 수직낙하하는 중. 다만 수상자 선정은 해뒀는지 2019년에 공동 수상하는 식으로 공란은 면했다.

3. 한국인 수상 가능성


한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한림원의 요청을 받아 몇 차례 작가들을 추천한 바 있는데, 특히 1982년 김동리의 <을화>가 실제로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동리 외에도 서정주가 1990년과 1994년, 최인훈이 1992년 추천되었으며, 그 밖에도 황순원, 박경리, 황석영, 김지하, 이문열, 신경숙 등의 작가가 언론 등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곤 했다. 북한에서는 이기영이 <두만강>으로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고 한다.
한 때는 시인 고은이 꾸준히 후보로 언급되었다가, 2018년 성폭력 사실이 폭로된 이후에는 누구도 그를 거론하지 않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고은노벨상의 한국인의 수상 가능성 참조.
그 다음으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맨부커상을 2016년에 수상한 한강이 있긴 하나,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상은 2005년에 생겼으며 역사도 매우 짧고 권위도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노벨 문학상에 비할 바가 아니다.

4. 누가 받는가


20세기 후반부터의 수상자 트렌드를 잘 살펴보면, 자신의 나라나 정부의 정책등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작가들이 수상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노벨상을 받자 정작 본국의 정부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제법 있다. 파무크[13]오에, 그라스, 가오싱젠[14], 옐리네크[15], 알렉시예비치[16] 등이 좋은 예이며, 노벨문학상 소문이 간간이 도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일본의 과거사나 원전문제 등에 대해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친정부적이라고 평가되면서 상을 받은 사람이 중국의 모옌인데, 사실 그는 친정부적인 작품을 쓴 적도 없고, 발언도 상식적인 선에 머무른다. 그럼에도 모옌을 친정부 인사라고 하는건 그저 대놓고 중국정부를 비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노벨상 분야와 마찬가지로 뽑을 만한 인물이 없으면 뽑지 않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수상자를 뽑을 수 없었던 해도 있었기 때문에 그 해 수상자가 없는 경우가 있다.

5. 어디에서 많이 받는가


노벨문학상이라는 명칭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노벨세계문학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단순히 한 나라에서만 유명한 작품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 국제적인 영향을 주고 독자를 획득해야 받을 수 있는 상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사용자가 많은 언어를 쓰는 작가가 유리하다. 그렇지 못한 한국같은 경우는 번역이 많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 번역으로 타국의 독자에게 일정 이상의 주목을 얻어야 한다. 그동안 고은, 서정주등 시인들을 많이 후보로 생각해왔지만, 그건 단견에 가깝고, 오히려 받는다면 소설쪽이 훨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시가 번역을 한번 거치면 외국독자의 공감을 얻기 힘든 것은 이미 수많은 논문으로 입증된 주지의 사실이다. 재미와 작품성을 겸비한 소설가가 나와준다면, 우리가 딱히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해외의 팬들이 알아서 노벨상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지역적으로는 유럽에서 시작된 상이다보니 유럽을 상당히 우대하며 그 와중에 북유럽권 작가들을 암암리에 밀어주는 경향이 있다. 스웨덴어는 수상지 홈그라운드 빨로 7명이나 받았다. 그러면서 진짜 받아야 할 작가였던 스트린드베리는 제껴버린 게 코미디. 그리고 같은 북구권인 노르웨이, 덴마크는 물론, 엄밀히 말하면 북유럽도 아닌 핀란드와 심지어 인구 몇십만의 아이슬란드까지 적어도 하나씩은 가져갔다.
폴란드 문학은 국가 규모에 비해 저력을 발휘해 5명이나 배출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러시아 문학은 역사적으로 스웨덴 등 북유럽과 사이 최악이라는 점, 스탈린의 숙청으로 작가 떼죽음, 냉전, 소련 패망 이후 몰락 등이 작용해 20세기의 찬란한 성취에 비해 많이 못받았다. 그리고 러시아어 노벨 문학상 수상자 5명 가운데 러시아에서 우대해준건 숄로호프 한 명 뿐이다. 미하일 숄로호프는 카자크 출신 작가로 공산당원 신분으로 당시 소련공산당대회 중앙위원에다 스탈린상까지 수상한 거물이었다. 대표작인 고요한 돈 강은 러시아 공산혁명 시기를 다룬 대하소설로 정치적으로 입지가 대단한 친정부 작가를 소련 당국에서 억압하거나 반대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반면 당시에 솔제니친을 비롯한 반정부 망명작가들은 숄로호프를 맹비난했다. 이반 부닌은 볼세비키가 싫어 망명해 무국적자로 상을 받았고, 파스테르나크는 당국의 압력으로 수상을 거부하는 쇼를 해야 했으며, 솔제니친은 아예 수용소에 끌려갔었다. 미국으로 망명해서 상을 받은 브로도스키는 문학적 스승 안나 아흐마토바 부터가 스탈린에게 탄압받았던 사람으로 소련의 폭압적 체제가 싫어 떠났다.
가장 수상자가 많이 나온 언어는 2019년 기준으로 28명이 해당하는 영어다. 국적으로는 프랑스가 16명으로 가장 많으며 언어로 따져도 프랑스어는 14명을 배출해 똑같이 14명을 배출한 독일어와 함께 영어 다음이다. 그 뒤는 11명을 배출한 스페인어. 모어 화자수가 적은 소수 언어중에선 아이슬란드어, 오크어이디시어가 1명씩을 배출한바 있다[17].

6. 역대 수상자




[1] 한화 기준 약 10억 6,680만 원.[2] 사실 원어를 따져보면 '문학'이라는 범위보다는 더 넓게 전반적인 '글'의 범위에 가깝다. 초기의 문학상이 그래서 인문학적인 글에도 수상했다.[3] 대부분 문학적 기예에 엄청나게 뛰어난 작가들이 받는다. 작품들을 읽어보면 문장력에서 분명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자들이다.[4] 다만, 모옌 역시 어용작가라고 보기엔 친정부 성향의 중국인들이 보기에 충공깽한 내용의 글을 꽤 쓴 사람이다. 일각에서 모옌을 친정부작가라고 몰아가는 이유는 그저 그가 문단에서 공식적인 직함달고 활동하며, 옐리네크나 알렉시예비치처럼 대놓고 정부에 날을 세우지 않기 때문이다.[5] 노벨문학상계의 닐로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자로, 스웨덴 대표가 그의 시를 낭송한 게 골든 레코드에 실렸지만, 정작 이걸 만든 칼 세이건 등은 이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 사람에게 밀린 작가만 해도 롤리타로 영미문학계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온 망명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세계 문학사에 남을 거장 중 하나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그리고 영국의 대문호 그레이엄 그린이라는 각국 국가대표급 수준의 쟁쟁한 작가들이었다. 결국 욘손과 마르틴손 모두 스웨덴 아카데미 회원으로 '셀프 추천'과 '셀프 수상'을 했다는 비평가들의 신랄한 비판과 냉대속에 잊혀져 욘손은 노벨문학상 수상 후 별다른 활동 없이 1976년 사망했고, 마르틴손은 심적인 고통과 평단의 냉대를 이기지 못하고 1978년 가위로 자살해 수상 후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은 작가로 노벨문학상 역사에 오명을 남겼다. [6] 죄로 따지자면 사형을 당해도 시원치 않았으나, 종전 당시 86세였던 덕분에 이렇다 할 처벌은 받지 않았다.[7] 산문은 영어로 쓰긴 했는데 이 사람은 파스테르나크, 만델스탐과 어깨를 나란히 한 명시인 안나 아흐마토바가 옆에두고 키운 후배작가로 시쪽이 본업이다.[8] 1976년 수상자 솔 벨로우도 퀘벡 출신의 귀화 캐나다인이지만, 9살때 미국으로 이주해서 쭉 미국에서 수학하고 활동했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 문단이 키운 작가다.[9] 늘그막에 회심에 접어들어 세속의 영예에 초탈해 있었던 그는, 후에 본인이 연락을 취해 거절했다. 그렇다 쳐도 본인이 고사하지 않았다면 어쨌든 받긴 받았으리라는 의견이 많다.[10] 대략 1910년대 수상자까지[11] 노벨문학상 초기 수상자는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외른손이나 베르네르 폰 헤이덴스탐처럼 세계 문학계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고, 사망한 뒤로는 아예 그 존재마저 잊혀 일반인들에게는 물론이고 문단이나 비평계에서 거론되지도 않는 작가들이 태반이다.[12]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를 성추행하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 명단을 외부로 유출했다는 의혹까지 있다.[13] 파무크가 터키의 아르메니아,쿠르드 학살 문제를 계속 끄집어내기 때문에 터키 정부는 그를 굉장히 싫어한다. 그래서 신변문제상 타지에서 십수년째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국민들도 찬반이 나뉠 정도.[14] 반체제 인사로 프랑스에 망명했다. 중국에서 그의 작품은 금서로 지정되어 있다.[15] 오스트리아에서는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자국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가이다.[16] 벨라루스의 반체제 작가로 정권의 탄압을 받아 10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알렉시예비치가 수상했을 때, 루카셴카 벨라루스 대통령은 그녀의 수상에 대해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 축하를 보냈다.[17] 다만, 오크어 수상자 프레데릭 미스트랄은 초창기 수상자고 거의 모든 시가 프랑스어로 소개되었으며, 이디시어 수상자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도 역시 모든 작품이 영어로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