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프리 해럴드 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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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석적 정수론 분야에서 전설적인 영국의 수학자.
리틀우드와의 공동연구를 활발히 하였다. 덴마크 수학자 해럴드 보어(닐스 보어의 동생)는 이 시대의 수학자 세 명을 뽑으면 하디, 리틀우드, 하디-리틀우드[1] 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한편, 정수론을 연구하던 독일의 수학자 에드문트 란다우(Edmund Landau)는 리틀우드라는 이름이 하디가 만들어낸 가명이라고 생각하여 영국을 방문해서 확인하기도 하였다. 리틀우드를 만난 란다우는 "저는 당신의 이름이, 하디가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기에 급이 떨어지는 논문들을 내기 위해 쓰이는 가명인 줄 알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디는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의 능력을 알아보고 영국으로 데려와서 그를 가르쳤으며, 이후에는 그와 함께 정수론 분야에서 수많은 공동 연구들을 남겼다. 특히 라마누잔과의 1729에 관련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누군가 그에게 "선생님이 남긴 업적 중에서 가장 대단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거야 당연히 라마누잔을 발견한 일이지."라고 답하기도 하였다.
2. 성격
2.1. 사진
하디는 평생 사진을 찍는 것을 싫어해서 남아있는 사진이 10장 정도밖에 없다. 또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게 싫어서 호텔 방에 머물 때마다 거울을 수건으로 가렸다고 한다. [2]
2.2. 생명 보험
하디는 굉장히 극단적인 무신론자였으며, 심지어는 그러한 생각이 신을 증오하고 조롱하는 것으로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하디는 신 개념 자체를 조롱하며, 언제나 '멍청한 신'을 이용한 개념적 장난들을 즐겨 했다. 일례로, 덴마크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던 하디는 폭풍우가 치는 날에 북해를 건너 영국으로 돌아와야 했었다. 그는 자신이 풍랑으로 사망할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전보를 이용하여 '리만 가설을 증명함'이라는 내용을 영국의 수학자 사회에 보냈다. 폭풍우를 뚫고 무사히 영국에 도착한 하디에게 다른 수학자들이 어찌 된 일이냐고 묻자, 하디는 "그건 생명 보험이었습니다. 페르마가 그의 이름을 지금까지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였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그는 사실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아무도 풀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를 놀라운 방법으로 해결한 사람으로 수학사에서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제가 덴마크를 출발했을 무렵에는 날씨가 무척 좋지 않아서, 여객선이 무사히 영국에 도착하리라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엽서로 리만 가설을 증명하였다는 내용을 써서 부쳤습니다. 만약 제가 사고로 북해 어딘가에서 실종된다면 저는 리만 가설을 해결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증명을 발표하기 직전에 실종된 인물로 영원히 기억되겠죠. 마치 페르마처럼요. 그러나 철저한 무신론자인 저를 싫어하는 신이 제게 그런 영광을 부여할 리가 없지요. 그 덕분에 여객선이 영국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죠." 라고 답하였다.
2.3. 신년 소원 리스트
1920년대, 그는 여섯 가지의 새해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 리만 가설을 풀기.
- 크리켓 경기에서 211점을 얻기.
- 신의 부재를 말하는 강력한 논증을 찾기.
- 첫 번째로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 영국과 독일로 이루어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 무솔리니 죽이기.(...)
이는 하디의 특유의 유머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흥미롭게도, 하디를 추모하는 글에서도 이 신년 소원 리스트가 언급되었는데, 소련의 모든 도서관에서는 '영국과 독일로 이루어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가 전부 검열되었다. 소련의 어떤 수학자는 이 검열된 문구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서 영국으로 찾아오기도 하였다.
2.4. 수학에 대한 관점
그는 자신이 연구하는 정수론이 실생활이나 응용 수학으로 전혀 쓰이지 않는 '순수 수학'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또한 '응용 수학'에 대한 증오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였는데, 하디의 표현의 실제 의미는 사실 수학 자체와 도구로서의 수학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화학이 전쟁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본 하디는 이와 같이 전쟁에 쓰일 수 없기에 실용적이지 못한 학문들이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하디는 이에 대해 '정수론이나 상대성 이론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전쟁에 활용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으나, 그가 죽기 직전에 있었던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원자폭탄과 컴퓨터를 활용한 전산학과 암호학이 전쟁에 사용되었다. 결국에는 하디가 사랑하던 정수론 역시 전쟁에 활용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게 된 것이다.
하디는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하며, 노년이 되자 자살을 기도하였다. 어느 수학자의 변명(A Mathematician’s Apology)이라는 하디의 자서전에 찰스 퍼시 스노가 쓴 서문에는 그가 자살시도에서 헤어나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사실 하디 같은 수학자들 외의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창의성이 줄어든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뇌의 노화는 둘째치고, 경험이 많아지면 뇌가 경험에 의존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실제로 하디는 나이가 들자 수학에 대한 연구보다는 저술 활동에 더 신경을 많이 썼다. 그렇다고 수학 연구를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니었겠지만...
2.5. 성소수자?
한편으로는 자기처럼 케임브리지의 '사도' 클럽에서 놀았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 미청년들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고 하며, 일부 수학사가들은 라마누잔마저도 하디의 연인이었다는 썰을 풀기도 한다.[3] 다만 유달리 연인들과의 성행위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고 스스로도 아무 욕구를 보이지 않다 보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료인 리틀우드한테 non-practicing 동성애자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 오늘날의 용어로 보면 무성애자에 해당했다고 볼 수 있다.
골드바흐 추측을 소재로 한 소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에서도 하디가 주인공과 동시기에 활동한 수학자들 중 하나로 잠시 등장하는데[4] , 골드바흐의 추측에만 매달리다 늘그막에 들어선 주인공이 조카인 화자 앞에서 "그놈들은 다 별 볼일 없었어, 진짜 의미있는 일을 한 건 나였다고" 하는 식으로 화를 낼 때 하디에 대해서 '그 자식은 동성애자였다'고 트집을 잡는 것이 나온다.
3. 업적
하디는 그 자체로도, 리틀우드와 라마누잔의 공동 연구로도 엄청나게 많은 수학적 업적들을 남겼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 중 일부만 소개한다.
- 리만 가설에서 나오는 리만 제타 함수의 자명하지 않은 해 중 실수부가 1/2 인 해가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물론 리만 가설이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최초의 증명이었다.
-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을 유도했다.[5]
- 해석적 정수론에서의 하디-리틀우드 원 방법을 만들었다.
-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을 발견했다.
- 하디-리틀우드 추측
4. 저서
- A Course of Pure Mathematics
하디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이자 그의 개성을 완전하게 보여주는 명작으로 평가되는 저서이다. 학부 미적분학 정도 수준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극단적으로 해석학을 추구하며 일체의 대수학이나 응용을 소개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 Divergent Series
발산하는 급수에 관련된 해석학 책이다.
- An Introduction to the Theory of Numbers
Wright와의 공저로, 정수론 입문서로 유명한 책이다.
- The General Theory of Dirichlet's Series
생성함수인 디리클레 급수에 관련된 책이다.
5. 어록
유클리드가 그토록 좋아했던 귀류법은 수학자들이 갖고 있는 가장 훌륭한 무기이다. 그것은 체스보다 훨씬 대담한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체스를 두는 사람은 폰 따위의 말을 희생시키면서 경기를 풀어나가지만, 귀류법의 논리를 펴는 수학자는 게임 자체를 담보로 잡기 때문이다.
젊은 수학자는 정리를 증명하고 늙은 수학자는 책을 쓴다.
나는 수학에 흥미를 갖지만, 그것은 창조적 예술로서의 수학이다.
만일 내가 당신이 5분 후에 죽을 것을 완벽히 증명할 수 있다면 매우 슬프겠지만, 증명의 기쁨으로 그 슬픔을 덜 수 있을 겁니다.[6]
[1] 리틀우드는 하디의 학문적 파트너로 하디와 함께 공동 연구를 많이 한 수학자이다. 그들은 공동 저자로 저자가 하디-리틀우드로 표현된 수많은 논문을 남겼다.(두 사람은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동문수학했는데 일종의 졸업시험이라 할 수 있는 트라이포스 시험에서 하디는 4등이었고 리틀우드는 1등이었다.) 여기서 파생된 유머.[2] 당연히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이발처럼 돈 주고 서비스를 받은 것이다.[3] 의외로 근현대 네임드 수학자들 사이에 이런 썰 도는 사람들이 꽤 있다. 게다가 일부 사례는 생각보다 많이 구체적이다. 소련의 안드레이 콜모고로프와 파벨 알렉산드로프라던가.(...)[4] 리틀우드, 라마누잔 역시 등장하며 주인공의 선배격인 관계. 여담으로 이 소설에선 앨런 튜링과 쿠르트 괴델도 주인공의 후배뻘로 등장한다.[5] 참고로 이건 수학이 아니라 생물학이다. 순수 수학으로만 볼 경우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못해서 수학적 귀납법과 곱셈공식만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법칙이기에 하디는 이 법칙의 논문 출판을 거절하려고 했으나, 친구인 퍼넷이 이런 좋은 논문을 발표하지 않는건 생물학의 낭비다!라면서 성화를 부려댄 터라 극도로 내용을 압축, 요약해서 A4 1장짜리 논문으로 발표했는데, 유전학의 F=ma. 즉 유전학의 기본법칙중 하나로 추앙받게 된다.[6] 버트런드 러셀에게 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