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제6번(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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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스타프 말러의 6번째 교향곡.
말러의 여섯번째 교향곡은 "비극적"이라는 제목 때문에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많은 이들은 이 "비극적"이라는 단어가 말러의 개인적 비극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비극적"이 작곡된 시기는 말러의 비극적 터닝포인트였던 1907년이 아니라, 그보다 이전인 1903년이기 때문이다.[1]
말러 교향곡 중에서 고전적 형식미와 혁신적인 요소들을 함께 잘 조화시킨 작품으로 그의 교향곡 가운데서도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2. 작곡 과정
그가 이 교향곡을 쓰던 당시는 말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 이전해인 1902년 11월에 장녀인 마리아 안나 말러가 태어났고, 1904년에는 알마가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비극적" 교향곡이 작곡을 시작한 시점도 1903년 6월, 말러의 여름 휴가때부터였다. 알마의 회고에 의하면 이해 여름에 두개의 악장을 작곡했고 두개의 악장을 구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알마는 남편의 작곡과정을 세심하게 살피는 타입은 아니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1903년에 무슨 악장을 작곡했는지는 알수없다. 하지만 알마의 회고를 토대로 해보면, 의외로 작곡과정은 꽤 순조로웠던 모양이다.
작곡은 이듬해인 1904년 여름에도 이어졌다. 여름철마다 가족이 마이에르니히의 별장으로 가는게 연례행사이긴 했지만, 이 해에는 알마가 둘째 아이를 임신중인 탓에 말러 혼자만 마이에르니히로 떠났다. 그해 7월 15일에 둘째 딸 안나 유스티나가 출생했고, 출산후 그녀는 곧장 마이에르니히로 왔다. 나머지 두개의 악장도 이 여름에 작곡 되었고, 그해 가을에 말러는 친구들에게 곡을 완성했다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총보가 완성된 시점은 이듬해인 1905년 5월이었다.
3. 초연과 출판
의외로 작곡과정 자체는 순조로웠지만 말러의 전통은 이번에는 몇가지 문제에서 결국 이어졌다. 총보를 완성한 이듬해인 1906년 5월 27일, 말러 자신의 지휘로 에센의 알케마이너 도이치 무지크페라인 페스티벌 기간중에 초연이 이루어졌지만 그다지 썩 좋은 연주는 아니었다. 알마의 회고에 의하면 말러는 5월 16일부터 리허설을 시작했는데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연습과 동시에 관현악을 다듬었고, 말러 자신이 이 곡의 격정적 감정에 휩쓸린듯 했다. 그걸 억지로 숨기려고 한탓에 곡의 연주는 훌륭하지 못했다. 말러의 팬으로서 초연에 참석했던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오십 가브릴로비치는 (미래에 마크 트웨인의 사위가 된다) "말러는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졌지만, 자아 아래에 예술이 놓인 사람으로서 참을성이 없다"고 평가했고, 빌렘 멩겔베르크는 말러의 건강에 대해 염려했을 정도였다.
4. 곡의 특징
말러 교향곡 중에서 여러 면에서 특기할 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고전적인 4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말러의 다른 교향곡 중에서도 4악장인 곡인 있지만, 6번 교향곡은 전작품 중 유일하게 고전주의 형식의 틀에 부합되는 곡이다. 확장된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진 1악장과 4악장, 느린 안단테와 스케르초의 4악장 구성은 고전주의 형식에 부합한다. 반면 6번 교향곡은 말러 교향곡 중 가장 혁신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곡이다. 여러 혁신적인 요소를 고전주의 형식 안에 잘 조합시킨 것이 이 교향곡이 말러 교향곡 가운데서도 가장 걸작이라 평가의 바탕이 되고 있다.
또한 악기편성에 있어서도 관현악 편성만으로 볼때 사상 최대라고 할 수 있는데, 4악장에서 유래없는 5관편성을 취하고 있다. 말러 교향곡 뿐만 아니라 현재 어느 정도 반복적으로 연주될 만큼 알려진 교향곡 중에서 무대 위의 정규편성이 5관편성인 순수 관현악 교향곡은 이곡 말고는 없다.
플루트 5 (3, 4는 피콜로 2, 3으로 겸함), 피콜로 (4악장에서만 사용), 오보에 4 (3, 4는 잉글리시 호른 2, 3으로 겸함) (잉글리시 호른 2는 2악장에서만 사용됨), 잉글리시 호른(4악장에서만 사용됨), 클라리넷 E♭조와 D조 (4번주자로 A조 클라리넷을 겸함), 클라리넷 3 B♭조와 A조, 베이스 클라리넷 B♭조와 A조, 파곳 4 (파곳 4는 4악장에서만 사용), 콘트라파곳,
호른 8, 트럼펫 6 B♭조와 F조 (트럼펫 5, 6은 4악장에서만 사용), 트롬본 4 (트롬본 4는 4악장에서만 사용), 튜바,
팀파니 2, 조율되지 않은 종 (4악장에서만 무대 밖에서 사용), 큰북, 작은북, 글로켄슈필, 실로폰, 트라이앵글, 심벌즈, 탬버린, 탐탐, 방울, 루테, 카우벨 (1악장과 4악장에서만 무대밖에서 사용되고 3악장에서만 무대 위에서 사용됨), 목제 해머 (4악장에서만 사용됨), 첼레스타 2 [2] , 하프 2, 현 5부로 구성되는 이 교향곡에서 제일 주목되는 부분은 바로 많은 숫자의 타악기들이다. [3]
보통 교향곡에서 필수적인 타악기는 팀파니이고, 일부 효과를 위해 심벌즈나 탬버린, 탐탐을 쓰기도 한다. 교향곡보단 오페라에서 많은 숫자의 타악기를 동원하는게 보통이지만, 말러는 6번 교향곡에서 당대의 기준으로서는 상당히 많은 타악기를 사용하고 있다.[4] 바로 전의 교향곡이었던 5번에서 알마의 충고로 타악기부분을 상당히 삭제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말러는 많은 타악기의 사용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타악기를 사용한 것은 소음을 만들고자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모여 단 하나의 타악기처럼 들릴 것이다. 나는 여러 타악기들을 이용해 음색의 다양함을 이용하고자 했다"라고 말한바 있다.
타악기들은 적재적소에서 훌륭한 효과를 내는데, 특히 1악장에서 나오는 카우벨(소의 목에 다는 딸랑거리는 방울)의 울림은 정말 멀리서 딸랑딸랑거리는 방울 소리를 내는 소가 보이는듯한 느낌을 준다. 말러는 1906년의 악보에서 "정말 소방울의 소리처럼 들리도록 신중하게 연주되어야 한다. 가축들이 들에서 풀을 뜯는 것처럼 들려야하며, 그 어떤 프로그램의 해석도 허락되지 않는다."라고 적고 있다. 말러의 의도는 멀리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였던것 같다.
어쨌든, 당시 사람들에게 순수 관현악의 교향곡에서 이렇게나 많은(15종의) 타악기 사용은 인상이 깊었던지, 초연에 참석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에센의 음대에 타악기과 교수를 증원할것을 제안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현대음악의 관현악곡에서는 말러보다 더 많은 타악기를 동원하는 곡을 쓰는 작곡가도 있고, 심지어는 수많은 타악기들만을 모아서 연주하는 곡도 있다. 이런걸 생각해보면 현대음악에서의 관악과 타악의 중시는 말러가 시대를 앞서갔다는걸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말러의 교향곡이 1960년대에 르네상스를 맞은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말러 교향곡 중에서도 형식적으로 가장 완결성이 높으면서도 여러 혁신적인 요소들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교향곡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는 이들이 많다. 연주상의 난이도도 지랄맞을 정도로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곡으로 꼽히는 경우도 많다. 음악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던 카라얀은 이 작품을 지휘할 때 직접 심박측정기를 몸에 달고 지휘를 했는데, 지휘 도중 생명이 위험할 정도 수준까지 심박수가 올라갔다고 한다.
5. 곡의 구성
5.1. 1악장
1악장:Allegro energico, ma non troppo.(알레그로 에네르지코, 마 논 트로포) A단조 4/4박자 소나타 형식.
이전의 말러가 교향곡에서 소나타 형식을 엄격하게 지키지는 않았던 것과는 달리, 6번의 1악장은 그야말로 소나타 형식의 정석을 보여주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정석적인 소나타 형식은 제시부에서 두개의 주제가 제시되고 한번 다시 반복된 다음, 전개부로 넘어가서 두개의 주제가 결합,발전한다. 그리고 재현부에서 제시부의 주제가 발전된 형태로 다시 제시되면서 마무리되는 형태인데, 말러의 이전 교향곡들에서는 전개부가 대단히 크고 복잡하게 확대되어 있었는가 하면, 어디까지가 제시부고 재현부인가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어려운 곡도 있었다.(특히 3번) 그러나 6번의 1악장은 아주 명료한 고전적 소나타 형식을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그 고전적 형식과는 달리 음악의 언어는 상당히 새로운 것이다.
마치 군대가 돌진하는듯한 격렬한 행진곡풍의 제1주제로 곡이 시작된다. 이 격렬한 제1주제 뒤에 잠시 숨을 돌리려는 듯한 목관악기의 코랄이 연주되고 이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제2주제가 연결된다. 이 제2주제는 '알마의 주제'라 불리는 것이며, 알마를 음악적으로 승화시켰다고 한다. 이런 순서로 한번 더 반복된 다음(지휘자에 따라선 연주시간이나 러닝타임을 줄이기 위해 이 반복을 삭제하기도 한다) 전개부로 넘어간다. 전개부에서는 제시부에서 나타난 주제들이 발전하며, 그 사이에 카우벨이 울리는 전원풍의 주제가 나오기도 한다. 재현부로 들어가서는 제시부의 순서대로 주제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2주제는 제시부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이후 짧지는 않은 코다로 진입하는데, 1주제와 2주제가 섞인 듯란 격렬한 음정들이 나온 이후, 화려한 울림(클라이맥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곡이 마무리된다.
5.2. 2악장
2악장:(또는 3악장) Scherzo A단조 3/8박자 Wuchtig (묵직하게). Trio 4/8박자, 3/8박자, 3/4박자를 교대로 Altväterisch (고풍스럽게)
곡의 전개는 스케르초와 트리오의 반복으로 이어지는데, 스케로초-트리오-스케르초1-트리오1-스케르초 2-코다의 순으로 이어진다. 스케르초와 트리오의 주제는 반복될때 마다 많은 변형을 거친다. 스케르초와 트리오의 주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인데, 스케르초의 주제는 흔히 '죽음의 춤' 이라 불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느낌이라면 트리오는 가볍고 장난스러운 느낌이 든다. 스케르초의 주제는 1악장의 주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알마는 트리오 주제에 대해서 '모래위에서 뒤뚱거리며 노는 아이들을 묘사한'것이라 회고하고 있는데, 아마 알마는 이 악장에 전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장난을 묘사한 트리오가 결국 악장의 끝에 가서는 폭력적인 스케르초의 결말로 치닫기 때문이다.
트리오의 주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정교향곡"의 스케르초의 주제와 흡사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황적으로 볼때, "가정교향곡"의 출판전에 말러가 2악장을 작곡하지 않았었다는건 거의 분명해 보임으로 말러가 "가정교향곡" 스케르초의 주제를 인용(혹은 패러디?)했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물론 알마의 회고는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말러의 진의가 어떤지는 알 도리가 없다.
5.3. 3악장
3악장:(혹은 2악장) Andante moderato (안단테 모데라토) E♭장조 4/4박자. 3부 형식.
많은 이들이 말러의 느린 악장들 중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5번의 아다지에토를 꼽겠지만, 아마 안단테 모데라토가 그걸 능가할는지도 모른다. 5번의 그것은 피상적이고 한 번 들어 주제를 캐치하기에 쉽지 않지만 6번의 그것은 웅변적이며 가요와 닭았기 때문이다. 곡의 구조는 두개의 주제가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형태로 파트 A - 파트 B - 파트 A1 - 파트 B1 - 파트 A2의 순으로 나타난다. 4번의 3악장과 같은 형식이긴 하지만, 4번이 두개의 독립된 주제가 번갈아가며 나타난것과는 달리, 6번의 경우는 B주제가 A주제의 발전형태에서 나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4악장에서 나타나게될 처절한 투쟁을 염두에 두고 안단테 모데라토 악장을 듣는다면 안단테 모데라토는 태풍의 전조 일런지도 모른다.(그래서 스케르초-안단테 노선을 지지하는 것일지도)
5.4. 4악장
4악장: 피날레. 서주부 Sostenuto(소스테누토) C단조 2/2박자 - Allegro moderato(알레그로 모데라토) - 주부(소나타 형식)
말러의 교향곡중에서 아마 가장 처절함을 표현한 악장을 찾으라면 6번의 4악장이 꼽힐수 있을것이다. 이전의 교향곡의 승리에 찬 피날레나 정화를 연상시키는 피날레와는 달리 6번의 피날레는 처절한 투쟁과 패배로 끝을 맺는다. 소스테누토의 서주부에 이어 공격적이며 전투적인 제1주제와 영웅적인 기상의 제2주제가 차례로 제시된다. 엄청난 분량으로 확장된 발전부에 이르러서는 두개의 주제는 물론 코랄의 주제도 등장하며, 두번의 해머 타격으로 전투는 극한까지 치닫는다. 재현부의 시작으로서 다시 소스테누토의 서주가 등장하며 1주제가 나오나 싶지만, 이번에는 제1주제와 제2주제의 순서가 뒤바뀌어 등장한다. 이 때의 2주제는 앞선 제시부 때의 빠르고 호전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에 점점 상승하며, 결국 5번 5악장 코다와 닮은 말러 특유의 강렬한 환희의 클라이맥스로 발전한다. 하지만 이내 다시 처절한 1주제가 재현되며, 이후 코다에서 앞서 2번 나온 망치 타격 전의 주제가 다시 나오는데, 격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마치 최후의 단말마를 연상시키는 듯한 고통스러운 음악의 증폭으로 표현된다. (이 대목에서 최후의 세번째 해머 타격이 가해질 때도 있지만 생략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심연으로 추락하다 최후의 단말마를 내뱉으며 결국 피치카토로 마무리된다. 이로써 40분 간의 격렬한 투쟁은 막을 내린다.
곡은 엄청 격렬하지만 마지막은 죽듯이 끝나기에 대부분의 실황 레코딩이나 영상에서 관객들의 박수는 20초~1분 정도 이후에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 논란거리
6번 교향곡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두가지였다.
6.1. 스케르초-안단테 인가, 안단테-스케르초 인가?
첫번째는 느린 악장인 안단테와 스케르초 악장의 순서 문제였다. 말러는 스케르초를 2악장에, 느린 안단테 악장을 3악장에 배치하고 리허설도 그렇게 진행했다. 하지만 말러는 리허설 중에도 스케르초와 안단테의 순서를 놓고 고민에 휩싸였다. 사실 고전적 교향곡의 형식을 따른다면 2악장에 느린 악장이 오고, 3악장에 스케르초가 오는게 정석이긴 하지만 말러는 아마도 1악장의 스케일과 분위기 때문에 그 뒤에 올 악장이 뭐가 좋을 것인가를 계속 고민한것 같다.
에센에서의 초연은 2악장에 스케르초가, 3악장에 안단테가 배치된 형태로 초연되었지만, 말러는 계속 두 악장의 배치로 고민을 거듭한다. 결국 말러는 이후의 6번 연주에서는 2악장 안단테-3악장스케르초의 순서로 배열을 바꾸게 된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말러가 생전에 2악장 안단테-3악장 스케르초의 배열을 바꾸지 않았던것 같다.적어도 말러 사후 1919년까지의 연주는 말러의 이 수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말러가 다시 작곡되었을때와 초연때로의 순서로 돌아가려고 했는가이다.
알마 말러와 절친한 사이였고, 또한 이 교향곡의 초연때도 참석한바 있는 멩겔베르크는 초연때처럼 2악장 스케르초-3악장 안단테로 가야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아마 멩겔베르크가 그런 주장을 한 배경은 초연때의 순서가 말러의 진정한 의도라고 보았기 때문인듯 하다. 하지만 이 때만 하더라도 멩겔베르크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말러 자신이 생전에 2악장 안단테-3악장 스케르초의 순서로 6번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르빈 라츠가 1963년, 말러 교향곡의 교정 전집판을 내면서 문제가 복잡해져버렸다. 라츠는 1919년 알마가 멩겔베르크에게 보낸 전보를 바탕으로 초연때의 2악장 스케르초- 3악장 안단테 노선이 말러의 본래 의도였다고 보았고, 교정 전집판에 그것을 반영했다.
하지만 알마가 멩겔베르크에게 보낸 전보 내용의 역사적 신빙성은 라츠 자신도 반신반의 했다는게 드러나면서 문제는 복잡해졌다. 1960년대 말러 르네상스를 이끈 지휘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지금까지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각 노선에 선 사람들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 안단테-스케르초 노선 지지자들 : 드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존 바비롤리 경[5] ,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마리스 얀손스, 로린 마젤,이반 피셔,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
- 스케르초-안단테 노선 지지자들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게오르그 솔티 경, 야사 호렌슈타인, 피에르 불레즈, 레너드 번스타인,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오자와 세이지, 정명훈, 클라우스 텐슈테트, 주빈 메타, 라파엘 쿠벨릭 , 테오도르 쿠렌치스 등.
하지만 말러의 이전 교향곡을 볼때, 스케르초-안단테 노선도 만만찮은 논리를 지니고 있다. 말러 자신이 정석적인 교향곡의 형식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근거다. 5번 교향곡을 살펴보면 사실상의 1악장이라 할수있는 2악장 다음에 3악장에 스케르초가 오고, 4악장에 아다지에토가 온다. 이런 말러적인 특성을 살펴볼때 스케르초-안단테 노선이 말러의 개성에 들어맞아 보인다.게다가 말러의 진의가 설령 안단테-스케르초 노선 이었다고 할지라도 교향곡의 분위기와 형식적인 미학을 기준[6] 으로 보면 스케르초-안단테 노선이 합당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어느쪽이 정답인지는 계속 논쟁될 문제일것 같다.
6.2. '해머'의 문제
또 한가지 골치 아픈 문제는 바로 해머다. 4악장에서 영웅에 대한 타격을 묘사한 것이 소위 말하는 '운명의 타격'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 해머는 (아마도) 니벨룽의 반지의 프롤로그 격인 "라인의 황금"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싶다. 알마는 이 해머에 대해서 "영웅은 적으로부터 세 번 공격을 받으며 세 번째는 나무처럼 넘어져 버린다" 라고 자신의 회고록에서 언급하고 있다. 말러는 이 해머 타격을 놓고도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알마의 회고를 다 믿을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적어도 말러가 대략적으로 생각한 해머의 개념은 짐작이 된다. 실제로 4악장의 자필 악보에는 '금속성이 아닌' 소리를 낸다는 언급이 나와 있기도 하다.
말러는 모든 악기를 다 뒤졌지만 원하는 소리를 내는 악기를 찾을수는 없었다. 하는수 없이 말러는 알마의 회고에 따르면 '이상하게 가죽을 덧댄 듯한' 거대한 북 비슷한 걸 만들었다고 한다.[7] 그렇지만 3번을 연주했던가는 알 수가 없다. 초연에 참석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알마도 해머 타격이 2번이었다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두 번은 명확하게 들리고 한 번은 묻혔을 수도 있다.
말러의 자필 서명이 담겨있는 자필 원고에는 푸른색 연필로 해머를 타격할 5군데를 지목하고 있다. 바로 9번째, 336번째, 479번째, 530번째, 783번째 소절에 이다. 학자들마다 과연 초연때 어느 부분에 해머를 타격했지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336, 479, 783번 소절이 그 대목이라고 본다. 또한, 말러가 해머 타격 다섯 군데중에서 결국 세 군데를 삭제하고 두 군데만 타격하는 걸로 남겨두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긴 하다. 그리고 에센에서 진행한 초연에서는 336, 479번 소절의 해머 타격만 남겨두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죽기 직전 말러가 다시 783번 소절의 해머 타격을 살렸다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 와서는 4악장의 해머 타격은 지휘자의 재량에 맡겨진 느낌이 강하다. 지휘자에 따라서 두 번을 치기도 하고 세 번을 치기도 한다. 또한 무엇을 가지고 해머 소리를 낼 것인가도 지휘자의 재량에 맡겨지는데, 대체로 알마의 회고를 근거로 해서 나무토막을 경첩처럼 만들어서 땅바닥에 떨어뜨리거나, 나무로 된 절구공이 같은 걸 내려치는 등 대체로 나무를 이용한 소리를 낸다.[8]
해머의 의미에 대해서도 논란이 인다. 알마는 해머 타격의 수에 대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회고를 하고 있는데, 해석에 대해서도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알마는 세 번의 타격이 첫째 딸 안나 마리아 말러가 죽은 일, 심장병을 진단받은 일, 빈 국립 오페라극장 음악감독직을 사임하면서 빈을 떠난 일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알마의 생각처럼 말러의 개인적인 세 번의 비극을 의도한 건지는 불분명하다. 물론 말러가 말년에 세 번째 해머 타격을 부활시킨 것이 맞다면 개인적 비극을 상징한다는 걸 의도하려고 수정했을 수도 있지만, 수정 여부 자체가 불확실하다. 그러나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한 본래적 의도가 말러 자신의 개인적 비극을 묘사하기보다는 세익스피어나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같은 순수한 비극의 세계를 묘사한 것이라면 해머의 의미 또한 인간을 좌절시키는 운명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해머 문제는 또 다른 데서도 드러난다. 원래 말러의 의도대로라면 해머는 운명적인 타격을 의미하는 소리일 것이다. 즉, 말하자면 결정적 순간의 효과음이랄까. 그러나 해머에만 집중하면 4악장은 묻혀버리고 해머만 부각되는 역효과가 일어나 버린다. 6번 교향곡 연주회에 간 한 어린이가 지루하게 연주를 보다가, 4악장에서 타악기 주자가 해머 타격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끼더니 해머 타격을 하니까 좋아하더라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이는 해머만이 부각될 때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휘자 중에는 해머 타격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도 한다.[9] 어쨌든, 해머를 적절하게 다루는 방법은 말러의 구상을 이해해서 해머만이 부각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일수 밖에 없는 듯하다.
근래에는 두 번의 해머 타격 중 첫 번째 해머 타격은 해머 그 자체만을 치는 것으로 처리하지만, 두 번째 타격에서는 파괴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해머 외에 팀파니, 베이스드럼, 심벌즈, 탐탐을 같이 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2013년 1월에 있었던 최희준 지휘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도 비슷하게 처리했는데, 이 때는 첫 번째 타격에서도 베이스드럼과 팀파니의 강타를 더했다.
[1] 이게 비극적으로 불린 이유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초연 당시에 붙은 비극적라는 별명.. 이후에 계속 비극적이라고 불렸다는 것, 다른 하나는 부르노 발터가 말러 제자였던 시절에 말러가 평소에 이 곡을 비극적이라고 언급했다는 카더라 통신이다. 공식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어느 쪽이 사실이다 라고 말하긴 어렵다. 카라얀은 이 점을 노렸는지 그의 말러 교향곡 6번을 들어보면 정말 미묘하다고 한다.[2] 2대를 사용하거나 가능하면 몇 배로 사용[3] 처음 작곡되었을 때는 슬랩스틱과 탬버린이 사용되었지만 개작을 거치며 빠지게 되었다.[4] 당시 비평가들은 이제부터 음대에서 타악기 교수직을 늘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거나 이렇게 풍자하는 만평을 그리기도 했다. 경적을 든 말러가 '이런, 이 악기를 빼먹었잖아! 교향곡을 하나 더 써야겠어.'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다.[5] 옛날 EMI음반에서는 스케르초 안단테 순으로 발매가 되었다. 바비롤리는 안단테-스케르초 노선을 지지했지만 에르빈 라츠의 압력으로 인해서 2,3악장이 뒤바뀐채로 발매가 되었다. 현재에는 지휘자의 의도대로 나와있는 상태. 테스타먼트에서 나온 베를린필 실황에서도 안단테-스케르초로 되어있다. [6] 좀더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스케르초는 1악장과 같은 a단조로 시작하며 안단테의 시작조성인 E♭장조는 1악장의 종결조성인 A장조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조성이다. 또한 안단테의 종결조성인 E♭장조와 4악장의 시작조성인 c단조는 같은 임시표를 쓰는(플랫3개)조성으로 전체적으로 스케르초-안단테 노선이 훨씬 조성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7] 초연 리허설때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타악기 주자에게 치라고 했으나 말러가 생각했던 음향이 나지 않자 빡친 말러가 본인이 직접 달려가 이 악기를 엄청 세게 내리쳤지만 마찬가지로 둔탁한 음향만이 나자 단원들 사이에서는 폭소가 터져나왔다고, 말러는 끝까지 이 악기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나무 해머로 바꿨다고 한다. [8] 보통은 나무를 이용해 큰 망치를 제작하여 떡메 치듯이 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식으로[9]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가 클리블랜드 심포니와 연주한 6번이 예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도흐나니의 6번을 들어보면 해머 타격의 강도가 다른 지휘자들의 강도보단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