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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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Horn (또는 French Horn)
독일어: Horn[1] (또는 Das Waldhorn)
프랑스어: Le cor d'harmonie
이탈리아어: Il Corno [2]
스페인어 : La Trompa, corno francés
에스페란토: Korno
바그너의 "지크프리트"(Siegfried) 중 호른 콜(Horn Call).
1. 개요
2. 명칭
3. 악기의 발전
3.1. 바로크 이전의 호른
3.2. 내추럴 호른
3.3. 밸브 호른 (벤틸호른)
3.4. F조-B♭조 논쟁
3.5. 로터리식과 피스톤식
3.6. 더블 호른
3.7. 데스칸트 호른
3.8. 트리플 호른
4. 특성
5. 연주법
6. 종류
7. 파생악기
7.1. 바그너 튜바
7.2. 기타
8. 사용 영역
9. 여성 연주자
10. 주요 제작업체
11. 국가별 특징
11.1. 독일
11.2. 오스트리아
11.2.1. 빈 호른
11.3. 영국
11.4. 미국
11.4.1. 크루스페(Kruspe) 스타일[3]
11.4.2. 가이어(Geyer) 스타일 및 크높(Knopf) 스타일
11.5. 프랑스
11.6. 이탈리아
11.7. 러시아


1. 개요


"호른은 오케스트라의 영혼이다!"

-로베르트 슈만

서양음악의 대표적인 금관악기.[4] 금관임에도 기본적인 소리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고, 관현악이든 취주악이든 실내악이건 거의 모든 다른 악기들과 조화로운 소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애지중지되는 악기다.
오보에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관악기로 손꼽힌다. 오보에와 마찬가지로 음정이 불안한 악기이기에 음감이 뛰어나야 한다.[5] 특히 마우스피스가 금관악기들 중에서 가장 작기 때문에 소리내는 것부터가 매우 어렵다.[6]
한국의 음대에선 콘이나 홀튼 같은 미국제 호른보다는 알렉산더나 슈미트같은 독일제 호른이 더 인기가 있다.
플루겔혼은 이름만 호른(Horn)이 들어갈 뿐 실제론 다른 악기이다.


2. 명칭


영어권에서는 대중적으로 '프렌치 호른(French Horn)' 이라는 표기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사실 호른의 발전은 거의 대부분 독일에서 이루어졌다. 독일제 호른은 물론이고 현재 미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크루스페 스타일과 가이어 스타일 호른도 독일에서 유래된 것이다.
왜 프렌치 호른이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나 유래도 불분명한데 아마도 호른이 프랑스를 통해 영국으로 전래되었기 때문에 영국사람들이 붙인 명칭으로 추정되거나 프랑스에서 사냥에서 신호용으로만 쓰이던 호른을 연주용으로 처음 사용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정작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상당히 호른의 발전과 보급이 뒤쳐진 나라였다. 20세기가 다 되도록 내추럴 호른을 사용했고, 밸브 호른으로는 피스톤 호른을 받아들여, 1970년대까지 대부분의 프랑스 오케스트라에서 피스톤 호른을 사용할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영미권 호른연주자들 조차도 '프렌치 호른' 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제 호른협회(International horn Society, IHS) 에서는 프렌치 호른이라는 명칭이 악기와 실제로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프렌치 호른이라는 표현을 지양하고 '호른'이라고 표기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호른'이라고 표기한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혼'이라는 발음이 일반적이다. 영어뿐만 아니라 독일어 발음도 '혼:'에 가깝다.[7] 한국에서는 악기는 '호른', 철자가 같은 뿔의 영단어는 '혼'으로 구분해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3. 악기의 발전



3.1. 바로크 이전의 호른


동음이의어 중 ''과 단어가 똑같은데, 실제로 옛날에는 산양 등의 뿔을 가지고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훗날 금속, 특히 구리를 가공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금속제 악기로 변이되었고, 특히 사냥 나팔로 많이 쓰였다.
잉글리시 호른도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쪽은 목관악기다. 또한 클라리넷 족으로 지금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쓰이지 않는 바셋호른도 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에 사용되었는데 한국에서는 금관악기 호른 보고 이거 불라고 부르더라....
기록상으로는 프랑스의 작곡가 쟝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가 사냥용 나팔인 파포르체호른(Parforcehorn, 프랑스어 Corno de chasse)을 오케스트라의 편성으로 편입한 것이 나와 있으며, 또한 루이 14세가 궁정음악단을 조직할 때 호른 연주자를 14명 고용한 바 있는 등, 초기의 악기를 관현악에 포함시키는 데에 프랑스에서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에서 프렌치 호른이라는 명칭의 유래가 왔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분리형 마우스피스의 발명, 벨에 넣고 연주하는 오른손을 이용한 핸드스톱 연주법, 크룩 교체를 통한 다양한 조성의 연주, 18세기에 시작된 밸브와 키의 발명 등 이후의 개량은 거의 대부분 독일어권 지역들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French Horn이라는 명명법이 틀렸다는 사람들도 영미권에서는 꽤 많이 있는 모양.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현재 대표적인 호른 제조업체 중 하나인 알렉산더의 경우 창업주는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개신교 박해를 피해 마인츠로 이주한 관악기 제조업자 프란츠 암브로스 알렉산더(Franz Ambros Alexander)라는 사실.

3.2. 내추럴 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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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베르트 슈미트 사의 내추럴 호른과 크룩들
고전 시대 혹은 초기 낭만 시대까지만 해도 호른은 지금 볼 수 있는 악기와 상당히 다른 형태였다. 악기를 이루는 관이 굉장히 간단한 구조였는데, 딱 그 관에 해당되는 자연배음열 음정들만을 연주할 수 있다.[8] 통칭 '내추럴 호른(영어: Natural Horn, 독어: Naturhorn)' 이었는데, 그래서 연주하는 곡들의 조성(key)에 맞추어 여러 개의 크룩(Crook), 즉 각 조성을 위한 교체관을 가지고 다니며 조가 바뀌면 맞는 조성의 것을 갈아끼우고 연주해야 했다. 만약 배음열에서 벗어나는 음을 필연적으로 연주해야 할 일이 생기면, 항상 나팔 속에 집어넣고 있는 오른손으로 나팔을 막아 음정을 변화시키는 핸드 스토핑 주법을 써야 했다
지금도 메이커에 따라, 내추럴 호른을 구입할 때 필요한 조성의 크룩을 추가 주문해야 하거나, 아예 전 조성 세트를 구입 가능하게 설정한 경우도 있다. 이런 식의 호른은 바로크 부터 낭만주의 시대까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베버,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같은 대가들의 작품에 쓰인 악기이고, 지금도 독일 음대에서는 악기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내추럴 호른을 필수로 가르치고 있다. 내추럴 호른 연주에 숙련된 헤르만 바우만이나 요하네스 힌터홀처 같은 대가 호르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핸드 스토핑 연주법을 써도 소리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9]
내추럴 호른으로 연주되는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 4번 KV.495
그리고 밸브 호른이 없었거나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내추럴 호른 식으로 기보하고 그 악보에 기보된 조의 크룩을 장착한뒤 그냥 불면 되었지만, 그 덕분에 오늘날의 호른 전공생들은 지옥의 이조(Transposition) 스킬을 익혀야 한다. 물론 현대에 나오는 악보들을 보면 현재 호른의 기본 조성인 F조로 미리 조옮김된 악보가 딸려 있기는 하지만, 아마추어 악단이 아닌 이상 이거 보고 연주하면 선배나 교수한테 갈굼 당하기 십상이다. 숙달된 전공생은 아무 조로 기보된 악보를 갖다줘도 즉석에서 머릿속으로, 혹은 감으로 이조해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고, 이러한 이조에 대한 지식은 지휘자와 작곡가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내추럴 호른 시대의 조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B♭ alto: 기보된 음(기음)보다 장2도 낮은 소리가 남. (C를 불면 그 아래의 B♭음이 나옴)
B♭ basso: 마찬가지로 기음보다 장2도 낮은 소리가 남. 다만 이 관은 낮은 음정에 특화되어 있음.
A: 기음보다 단3도 낮은 소리가 남. (C를 불면 그 아래의 A음이 나옴)
A♭: 기음보다 장3도 낮은 소리가 남. (C를 불면 그 아래의 A♭음이 나옴)
G: 기음보다 완전4도 낮은 소리가 남. (C를 불면 그 아래의 G음이 나옴)
F: 기음보다 완전5도 낮은 소리가 남. (C를 불면 그 아래의 F음이 나옴)
F♯:기음보다 증 5도 낮은 소리가 남. (C를 불면 그 아래의 F♯음이 나옴)
E: 기음보다 단6도 낮은 소리가 남. (C를 불면 그 아래의 E음이 나옴)
E♭: 기음보다 장6도 낮은 소리가 남. (C를 불면 그 아래의 E♭음이 나옴)
D: 기음보다 단7도 낮은 소리가 남. (C를 불면 그 아래의 D음이 나옴)
D♭:기음보다 장7도 낮은 소리가 남 (C를 불면 그 아래의 D♭음이 나옴)
C alto: 기음과 실음이 같음.
C basso: 기음보다 한 옥타브(완전8도) 낮은 소리가 남. (C를 불면 옥타브 아래의 C음이 나옴)

3.3. 밸브 호른 (벤틸호른)


내추럴 호른의 태생적 한계에 대해서 많은 기술적 시도가 이어졌다. 프랑스에서 나온 옴니토닉 호른(Omnitonic Horn)이라는 것이 시작인데, 모든 조성의 크룩을 악기에 이어붙이고 연주자가 마우스피스를 연주곡 조성에 따라 해당 크룩의 끝에 바꿔 달 수 있는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래봤자 관의 자연배음을 벗어나는 음은 찡찡거리고 뭉개지고, 어차피 연주 중에 지시된 조성이 바뀌면 마우스피스를 빼내어 다른 관에 옮겨 꽂아야 했다. 게다가 모든 크룩을 가져다 붙인 것이라서 엄청나게 무겁다. 사람이 들 물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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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의 대안으로 나온 것이, 독일의 음악가 프리드리히 블뤼멜(Friedrich Blühmel)이 고안하고 음악가 및 기계 발명가인 하인리히 슈퇼첼(Heinrich Stölzel)이 개량한 밸브 개폐 시스템이었다. 슈퇼첼은 하프, 바이올린, 호른, 트럼펫, 오보에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만능 음악가이자 유능한 기계 발명가였고,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블뤼멜의 고안을 그의 동의하에 개량하여 1818년에 피스톤 밸브 개폐장치를 이용하여 관의 길이를 바꾸는 효과를 내는 시스템을 선보이고 특허를 출원했다. 이미 1820년대 초에 빈에 밸브호른을 사용하는 연주자가 있었고, 베토벤이 자신의 교향곡 9번 3악장의 빅 솔로를 4번 호른이 불도록 한 이유가 이 사람을 위해서라는 가설이 큰 지지를 받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피스톤 방식의 밸브 호른은 벤틸호른(Ventilhorn)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블뤼멜-슈퇼첼의 초기 벤틸호른은 이후에도 개량이 이루어져, 이후 1840년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의 레오폴트 울만(Leopold Uhlmann)이 이중 피스톤 밸브 구조의 품펜벤틸(Pumpenventil)을 채용한 유명한 빈 호른(Vienna Horn, Wienerhorn)이 등장한다. 블뤼멜-슈퇼첼식 호른이 피스톤에 직결된 밸브를 누르는 방식인데 반해, 울만식 빈 호른은 잡기 편한 위치에 밸브가 설치되어 있고 그에 연결된 푸시로드를 피스톤을 구동시키는 방식이라 왼손의 손목이 덜 꺾여서 더욱 편리하다.
하지만 밸브식 호른에 대한 저항도 만만찮았다. 초기 피스톤 방식의 밸브 호른이 내추럴 호른보다 소리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아직 내추럴 호른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에 대해서는 어렵게 연주법을 터득한 내추럴 호른 연주자들이 밸브 호른 때문에 밥그릇에 위협을 느껴서 내추럴 호른을 고수했다는 견해도 있다.[10] 하지만 밸브 호른이 개량되면서 음질도 개선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밸브 호른(벤틸호른)의 도입에 기여한 작곡가가 로베르트 슈만리하르트 바그너였다. 최초의 벤틸호른을 위한 곡은 슈만이 작곡한 아다지오와 알레그로(Adagio und Allegro)'(1849년)로 기록되고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1840년대초에 작곡된 자신의 초기 작품에서 벤틸호른과 내추럴 호른의 장점을 모두 활용하기 위해 두 악기를 동시에 사용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략 1850년대에는 밸브 호른이 표준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브람스는 밸브 호른이 정착된 이후에도 내추럴 호른만을 위해 작곡했다. 또 프랑스에서는 밸브 호른의 도입이 한참 늦어 1870년대에도 여전히 내추럴 호른을 애용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로터리 방식의 호른의 도입도 늦어져서 1960년대에도 피스톤 방식의 호른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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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호른 협회(Wiener Waldhorn verein)의 1883년 창단 맴버들의 사진 두번째 줄 왼쪽 4번째에 요하네스 브람스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내추럴 호른의 조관에 대응하는 밸브 호른의 밸브 조합 표
밸브 호른은 내추럴 호른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여러 조관을 밸브를 통해 연결했기 때문에 각각의 밸브 조합을 이용하면 내추럴 호른의 각 조관에 대응 하는 자연 배음을 그대로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B♭ 조 호른에서
B♭-alto,Basso = 0
in A: 2. 밸브
in A♭: 1. 밸브
in G: 1+2 또는 3. 밸브
in F♯: 2+3 밸브
in F: 1+3 밸브
in E: 1+2+3 밸브
F 조 호른에서
in F = 0
in E: 2. 밸브
in E♭: 1. 밸브
in D: 1+2. 또는 3. 밸브
in D♭: 2+3. 밸브
in C: 1+3. 밸브

3.4. F조-B♭조 논쟁


밸브 호른이 등장하면서 호른의 기본 조성은 F조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F, E, E플랫 관이 가장 호른에서 풍부하고 아름다운 음색을 들려주었으며 그중에서 F조가 그 중간에 있어서 너무 저음도 고음도 아니며 음색에서 가장 음색에서 밸런스를 잘 유지해주기 때문이였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B♭ 호른이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B♭ 호른은 중저음에서 F호른 만큼의 풍부한 음색을 내지는 못하지만 고음에서 정확하고 화려한 연주가 가능했다. 특히 19세기 후반 당대 최고의 호르니스트로 군림했던 프란츠 슈트라우스(Franz Strauss,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버지)가 뮌헨 왕립 가극장에서 B♭조 악기를 사용했는데, 처음에는 뭥미?하는 분위기였지만 그의 명성이 퍼져나가면서 B♭조 악기도 퍼지기 시작했다.
이는 F조 호른과 B♭조 호른에 관한 논쟁을 야기했다. F관은 호른 특유의 깊고 중후한 음색을 연습하는 데에 훌륭하지만 관이 길어서 고음에는 약하다. 특히 바흐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1번 같이 현란한 고음역이 나오는 영역에는 심각하게 힘들다. 관이 기니까 그만큼 숨이 차고 무거운 건 당연. 반면에 B♭관은 가볍고 고음역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B♭관은 관이 짧기 때문에 F관의 초저음역은 당연히 연주하지 못하고, 중음역이 F관만큼 아름답지 못한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밸브 호른이 보편화되면서 작곡가들이 호른 주자들에게 더욱 난이도 있는 패시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바그너는 B♭호른을 사용했던 거장 프란츠 슈트라우스가 연주할 것을 상정하고[11] 지크프리트의 롱 콜 등 어려운 패시지를 작곡했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것이 바로 프란츠 슈트라우스의 아들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였다. 빈 필의 호른 수석이었던 볼프강 톰뵈크 2세에 따르면, 슈트라우스의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과 "영웅의 생애"가 결정적으로 독일에서 F조 싱글 호른에 사형을 선고한 곡이라고 말하고 있다. 때마침 독일에서 크루스페와 굼페르트에 의해 더블호른이 발명되면서 더블호른이나 B♭ 싱글 호른이 독일에서 표준이 되었고, F 싱글호른은 빈을 제외하고는 사멸했다.
보통 더블호른이 개발된 후 이것이 바로 대세가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 미국에 한정된 얘기다. 최초의 상용 더블호른인 쿠르스페의 안톤-호너 모델(1904년, 콘 8D의 원형)은 공동 개발자인 안톤 호너가 미국에 보급한 이래 빠르게 확산되어 순식간에 미국에서 대세가 되었다. 미국에서 더블 호른이 훨씬 빨리 확산된 이유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등 당시 미국의 공연장들은 유럽에 비해 훨씬 크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유럽 오케스트라보다 큰 음량이 필요했다. 때문에 유럽보다 빠르게 더블호른이 정착되었고, 더블호른 중에서도 크루스페, 콘 8D 처럼 벨이 크고 큰 음량을 낼 수 있는 악기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유럽(특히 독일, 네덜란드, 영국)에서는 B♭ 싱글 호른이 오랫 동안 더블 호른과 공존했다. 1960년대까지는 더블 호른보다 B♭ 싱글 호른을 사용하는 연주자가 더 많았다. 더블 호른은 음량이 너무 크기 때문에 2관 편성 작품에서는 밸런스를 깨뜨린다고 여겨졌고, 소리도 투박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때문에 더블 호른은 미국이나 저음 주자들이나 쓰는 악기라는 인식이 있었다. 사실 독일이나 네덜란드에서는 저음 연주자들도 F익스텐션이 달린 B♭ 싱글 호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 네덜란드, 영국 오케스트라에서는 1960년대까지도 싱글 호른 연주자가 더블 호른 연주자보다 흔했다. 우리가 오늘날 듣고 있는 카라얀, 뵘, 요훔, 하이팅크, 쿠벨릭, 클렘페러 등의 거장 지휘자들이 지휘한 60년대 베를린 필,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등의 명음반들은 싱글 호른이 주축이 된 사운드다. 데니스 브레인, 앨런 시빌 등 50~60년대의 명연주자들도 B♭ 싱글 호른으로 연주했다. 2010년대인 오늘날에도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인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는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브람스 등을 연주할 때 B♭ 싱글호른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3.5. 로터리식과 피스톤식


관의 길이를 바꾸는 밸브 형식에는 피스톤 구동식과 로터리 구동식이 있다. 1820년대에 처음에 호른에 적용된 밸브는 피스톤식이었으며, 얼마 후인 1835년 요제프 리들(Joseph Friedrich Riedl)이 로터리 방식의 밸브를 발명했다. 피스톤식이 먼저 개발된 만큼 처음에는 피스톤식 밸브 호른이 많았지만, 점차 로타리식 밸브를 장착한 악기가 많아져 19세기 말에는 독일에서 호른의 표준으로 정착되었고, 독일 호른을 주로 수입해서 사용하던 영국과 미국에도 로터리식 호른이 표준이 되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프랑스에서는 피스톤식 호른이 표준이 되어 1960년대까지 거의 모든 호른주자들이 피스톤식 호른을 사용했다. 게다가 프랑스 호른은 3번 키에서 어센딩 키를 사용하는 특징이 있어 운지법에도 차이가 있다.[12] 이런 프랑스식 피스톤 어센딩 호른으로는 셀마사의 악기가 유명하다. 1960년대 이전에 녹음된 프랑스 오케스트라 음반에서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어둡고 비브라토가 심하며 포르테에서는 완전히 버로우타는 호른 사운드가 프랑스식 피스톤 어센딩 호른의 특징적 사운드다. 이를 보다 못한 파리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바렌보임이 1977년 미국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수석으로 있던 저명한 호른 연주자 마이런 블룸(Myron Bloom)을 파리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으로 영입하였는데 이것이 프랑스 호른계에 일대의 충격을 불러 일으키면서 곧 파리 호른 주자들이 모두 현대식 로터리 더블 호른으로 악기를 교체했다고 한다. 프랑스 만큼은 아니지만 이탈리아에서도 피스톤식 호른이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빈에서는 19세기 중반에 레오폴트 울만에 의해 개발된 품펜밸브라 불리는 일종의 펌프식 피스톤 밸브를 장착한 형태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품펜밸브는 일반적인 피스톤과는 달라서 각각의 키를 위해 두 개의 피스톤이 동시에 움직인다.

3.6. 더블 호른


오늘날 프리츠 크루스페(Fritz Kruspe)와 에드문트 굼페르트(Edmund Gumpert)가 개발한 F관-B플랫관의 두 조성의 관을 조합한 풀 더블 호른이 표준으로 자리잡혔다.
사실 풀 더블 호른이 나오기 직전인 1897년 굼페르트가 F조와 B♭조를 결합한 컴펜세이팅 더블 호른(영:Compensating,독:Kompensating)을 처음 개발했다. 컴펜세이팅 더블 호른은 현행의 풀 더블 호른과는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컴펜세이팅 호른은 F조를 사용하더라도 일단 B♭관을 통과한 후 추가로 연장된 관을 지나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F조에서 이상적인 소리를 이끌어내는데 한계가 있었다.[13] 또 악기가 가볍기 때문에 풀 더블 호른에 비해서 음량에서 한계가 있다. 컴펜세이팅 호른은 풀 더블 호른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가볍게 소리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20세기 전반에 많이 사용되었다. 당시 컴펜세이팅 호른 중 크루스페 벤틀러(Kruspe Wendler) 모델이 아름다운 음색으로 유명하여 널리 사용되었다. 하지만 말러 등 대편성 작품이 널리 연주되면서 컴펜세이팅 호른은 큰 음량을 내는데 한계를 보였고, 미국에서 풀더블 호른이 본격적으로 대량생산되면서 악기값이 떨어지자 컴펜세이팅 호른은 곧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이 악기의 명맥이 오래 유지되어 히구치 데쓰오(NHK 심포니 수석), 야마구치 히로시(뉴 재팬 필 수석) 등 명인들이 크루스페 벤틀러의 야마하 카피 모델(YHR-841)을 즐겨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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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에 널리 사용된 컴펜세이팅 호른인 크루스페 벤틀러 모델
오늘날 통용되는 호른의 형태는 풀 더블 호른이다. 켐펜세이팅 더블 호른이 개발된 직후인 1897년 크루스페와 굼페르트는 F관과 B♭관 두 가지를 모두 독립적으로 갖춘 완전한 형태의 풀 더블 호른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1904년 크루스페는 호른 주자 안톤 호너(Anton Horner)와의 협력하여 크루스페-호너(Kruspe-Horner) 모델을 출시했는데 이 모델은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크루스페랩(Kruspe-Wrap)의 원형으로 지금도 콘(8D, 28D), 야마하(668, 868), 한스 호이어(6801, 7801), 앳킨슨을 비롯한 수많은 호른 메이커에서 꾸준히 카피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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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스페의 풀 더블 호른
KBS에서 방영된 "100년의 가게-뮤직알렉산더"편에서 알렉산더 103이 세계최초의 풀 더블 호른이라고 얘기하고 있어서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은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알렉산더 103은 1907년 밸브 특허를 취득했고, 1909년 상용화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잘못된 사실이 제법 나오는데, 또다른 예로는 바그너가 바그너 튜바 제작을 의뢰한 회사가 알렉산더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 바그너와 협력하여 바그너 튜바를 개발, 제작한 곳은 베를린의 C. W. Moritz사였다.
20세기초 더블호른이 발명되면서 미국에서는 일찍부터 더블호른이 표준으로 자리잡았지만 유럽, 특히 독일 오케스트라에서는 1960년대까지도 B♭ 싱글호른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1950년대를 기준으로 볼 때 당시 유럽에서 탑4로 평가받은 베를린 필, 빈 필,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14], 런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중 F 싱글을 사용하는 빈 필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개 악단에서 저음파트를 포함한 과반수의 단원들이 B♭ 싱글 호른을 사용하고 있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뮌헨 바이에른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독일의 다른 명문 오케스트라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들 오케스트라에서 B♭ 싱글을 사용하는 사람은 고음주자들 뿐만아니라 저음주자들도 포함되었다. 때때로 저음을 위해서 F조 연장관(F extension)을 장착한 악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70년을 전후로 독일에서 B♭ 싱글호른이 많이 사라지고 더블호른으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말러 등 대편성 레퍼토리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좀더 음량이 큰 더블호른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독일에서는 B♭키를 주로 사용하는 전통이 있어서 F키를 많이 사용하도록 교육받은 미국 연주자들이 독일에 오면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15]

3.7. 데스칸트 호른


고음을 내기 용이하도록 관을 더 짧게 만든 High F 데스칸트나, 이보다 더 높은 High B플랫 데스칸트 호른이 있다. 바흐로 대표되는 바로크 시대 곡들의 아주 높은 고음을 조금더 쉽고 편하게 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900년경 독일에서 데스칸트 호른이 등장했고, 1950년대 바흐가 재조명받던 시기에 데스칸트 호른의 필요성이 급증했다.
바흐의 부활 등과 맞물려 1950년대 후반 리처드 메어워더(Richard Merewether)와 로버트 팩스먼(Robert Paxman)이 하이 F와 B♭관을 결합한 데스칸트 더블 호른을 개발했다.
팩스먼의 데스칸트 더블 호른은 유럽과 미국의 고음 호른 연주자들에게 크게 각광을 받았다. 20세기 중반까지 유럽 오케스트라의 고음 호른 주자들은 B♭ 싱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데스칸트 더블 호른과 트리플 호른이 차례로 발전하면서 B♭ 싱글을 대체해 나갔다.
하지만 관이 짧은 하이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한다고 해서 고음이 자동적으로 쉽게 나는 것은 아니다. 우선 F 싱글호른,B 플랫 싱글호른,풀 더블호른으로 낼 수 있는 고음역을 수월하게 연주할 수 있어야 데스칸트 호른을 손에 쥐었을 때 좀 더 쉽게 고음을 낼 수 있다. 어디까지나 연주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개량된 도구일 뿐, 하이 데스칸트 호른 만으로 고음의 마스터가 될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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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데스칸트 더블 호른인 팩스먼 40 모델(구형) - 한때 데스칸트 더블 호른의 상징과도 같았던 모델. 현재 팩스만은 구형 40 모델을 단종하고 신형 모델을 생산하고 있지만, 이 구형 모델은 홀튼(H200), 콘(12D), 한스 호이어(RT92)를 비롯해 러슨, 패터슨 등 미국의 많은 커스텀 호른 제작사들에 의해 꾸준히 카피 모델이 생산되고 있다.

3.8. 트리플 호른


트리플 호른은 20세기 후반 들어 개발된 최종 개량된 형태의 호른으로 한 악기에 세 가지의 악기가 붙어있는 형태의 악기다. 이 악기에는 기존의 더블호른 구조에 F 데스칸트 호른이 덧붙여져 있다. 악기가 세개 붙어있는 복잡한 구조이니 만큼 악기 무게도 많이 무거워져서, 연주할 때 강한 힘을 요구한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모 시립교향악단 수석 주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연주하다가 나중에는 무거워서 몸이 앞으로 쏠릴 정도라고 한다(...). 현대 오케스트라에서 난이도가 높은 곡을 점점 더 많이 다루게 되면서 트리플 호른을 사용하는 오케스트라 주자들이 늘고 있다. 풀 더블 호른이 20세기 초에 완성된 형태(크루스페, 알렉산더 103, 가이어)에서 큰 변화가 없는 반면, 트리플 호른은 현재에도 새로운 형태의 악기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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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트 사의 트리플 호른

4. 특성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연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데니스 브레인 독주+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로 제작된 EMI 녹음에서, 브레인은 알렉산더 90 B♭ 싱글호른으로 연주했다.[16] 마찬가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앨런 시빌 독주+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오토 클렘페러 지휘의 EMI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역시 알렉산더 90 B♭ 싱글호른으로 연주되었다. 이 두 사람의 영향으로 영국에서 알렉산더 90 B♭ 호른이 유행하기도 했고 지금도 몇몇 영국 오케스트라의 수석단원들은 알렉산더 90 B♭ 싱글호른을 사용하고 있다.
그 외에 시대연주 붐으로 현대악기를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악단에서도 바로크~초기 낭만 작품에 한해 지휘자의 재량으로 내추럴 호른으로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원전악기만으로 꾸려지는 시대연주 악단의 경우, 튜닝도 이후 정해진 라(A)=442Hz가 아닌 당대 튜닝음에 근접한 412Hz 등 다른 음고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개량을 거쳐 음역대도 약 4옥타브 가량으로 확장되었는데, 단 낮은음자리표로 표기되는 저음역에서는 다소 민첩성이 떨어지고 고음역에서는 다소 막힌 듯 답답한 느낌을 준다. 입에 대고 연주하는 마우스피스 크기는 트럼펫 다음으로 작고, 복잡하게 꼬아놓은 것에서 보듯이 관이 아주 길기 때문에 연주할 때 삑사리의 위험성이 가장 큰 악기로도 악명높다.
특히 고음역을 피아니시모로 부드럽게 연주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주법과 호흡의 컨트롤이 잘 갖추어진 연주자들의 경우 문제가 없지만,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1악장에 나오는 하이 C를 넘나드는 솔로 부분이나 쇼스타코비치의 5번 교향곡 1악장 후반 솔로에서의 피아니시모 B 라던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과 같은 솔로 페시지들은 정말 거대한 장벽 같은 것이 아닐수 없다.
이런 여리고 작게 소리내기 힘든 부담감에서 착안했는지,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치아키 신이치가 틸 오일렌슈피겔 리허설 도중 해당 솔로 악구에서 호른 수석 주자에게 소리를 줄이라고 지시하자 주자가 빡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작가가 너무 과잉 해석한 감이 없잖아 있는데, 애초에 셈여림이라는 게 그렇게 기계적으로 계산해서 곧이 곧대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 악보에서도 무조건 작게 연주하는 게 아니라 피아노(p)로 시작하지만 점점 크게(크레센도) 하도록 되어 있고, 두 번째로 반복되는 소절에서는 메조포르테(mf)에서 포르티시모(ff)까지 점점 크게 연주하라고 지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난곡들은 전세계 오케스트라에서 하이 포지션 호른을 뽑는 오디션에 빠지지 않는 곡들이기 때문에 오늘도 호르니스트 들은 오디션에 대비해 열심히 열심히 이 곡들을 연습하고 있다.
실제로 관현악단 연주회에 가보면, 호른의 삑사리가 자주 들린다. 아마추어 악단들 뿐 아니라 프로 악단의 수석 호른 연주자들마저도 종종 삑사리를 낼 정도 빈필도 칼 뵘과 녹음한 브루크너 7번 교향곡에서 무지하게 삑사리를 낸다. . 주된 원인으로는 음을 내는데 필요이상 또는 그보다 적은 호흡을 내보내거나 입술 근육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 특히 모자란 호흡에서 목표한 음을 내려고 하는 경우를 꼽을 수 있다. 또한 호른은 관이 긴데다가 관에 비해 유난히(?) 작은 마우스피스를 쓰는데, 관이 길다는 것은 그 만큼 악기가 낼 수 있는 배음이 풍부하다는 것, 즉 중간에 걸리는 음이 많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트럼펫, 트롬본, 튜바 등 대부분의 금관악기들은 보통 2번째 배음에서 시작하지만, 호른만은 4번째 배음에서 시작한다. 호른이 다른 금관악기들과 마찬가지로 2번째 배음에서 시작한다면 그 실제음은 F조 튜바의 보편적인 시작점인 F2다. 다시말해 F조 튜바의 2번째~3번째 옥타브대의 음역이 호른의 보편적으로 교육되는 1번째~2번째 옥타브대의 음역이며, '다른 금관악기와는 달리 아래로 용이하게 확장되는 1옥타브'가 사실 2번째 배음~ 4번째 배음 사이의 음역이다. 그런 점에서 호른이 내는 삑사리(미스톤)의 주된 원인은 풍부한 배음이라는 최대의 장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연주자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악기고, 그것 때문에도 연주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악기라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개량이 되어 가면서 음역 내의 모든 음정을 연주할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내추럴 호른이 가지고 있던 따스하고 푸근한 포용력 있는 소리 대신 벨이 커지면서 거대해진 관현악 편성에 걸맞게 좀 더 직설적이고 큰 음량을 가지는 쪽으로 개량되었다.
밸브 호른들은 모두 이조악기인데, 통상적으로 악보에 적힌 음보다 완전5도 낮은 음이 나오는 F조 악기다.[17] 하지만 이 기보법은 20세기 들어 규격화된 것이고, 예전에는 오히려 완전4도 낮춘 기보법을 썼다. 예로 도(C)음을 표기할 때 그 밑의 완전4도 파(F)음으로 표기하는 식.

5. 연주법



호흡과 입술의 떠는 정도로만 음정을 조절하는 내추럴 호른 시대의 기본적인 스킬 외에 키를 이용한 트릴도 가능하고, 소리가 나오는 벨의 구멍을 손바닥으로 막아 넣어서 폐쇄음(stopped tone)을 낼 수도 있다. 일종의 메아리 효과를 내고자 할 때 자주 쓰이는데, 쓰고자 할 때는 악보의 콩나물 위에 '+' 표시를 해주거나 막는다는 단어(독: gestopft, 프: bouché, 이: chiuso)를 기재한다. (폐쇄음에서 일반 음정으로 다시 전환할 때는 콩나물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주거나, 반대되는 단어들인 offen/ouvert/aperto를 써준다.) 가온다(C) 이하의 저음역에서 이 폐쇄음을 낼경우 음정이 심각하게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금속으로 된 방망이 수류탄 모양의 스톱뮤트(Stop Mute,독:게슈톱트 뎀퍼 Gestopft Dämpfer)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깔때기 모양으로 생긴 목제 약음기(Mute)를 벨 속에 넣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바이올린족 악기들의 이탈리아어 약음기 지시인 con sordino(독: mit Dämpfer, 프: sourdine)를 써서 표시한다. 해제할 때는 senza sordino/ohne Dämpfter/sans sourdine를 표시해준다.
손으로 막는 폐쇄음과 약음기로 막는 약음(muted tone)에는 분명한 음색 차가 있기 때문에, 작/편곡자들이 반드시 구별해야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호흡압력을 강하게 주어 불면 호른 특유의 따뜻하고 푸근한 호른의 소리가 아닌 날카롭고 금속성의 소리를 낼 수 있다. 다만 악기 내의 공기압이 강해야 하기 때문에 폐쇄음이나 포르테(f) 이상의 강음에서만 쓸 수 있으며, 이 스킬을 쓸 때는 악보에 프랑스어로 '퀴브레(cuivré)' 라고 써준다.
종종 악기의 나팔을 치켜들고 연주하라는 지시도 있는데, '나팔을 위로!' 라는 뜻의 지시어를 별도로 써준다(영: Bell up/이: campana in aria/독: Schalltrichter auf/프: pavillon en l'air). 특히 호른의 소리가 다른 악기보다 도드라지게 강조되어야 하는 대목에서 사용하며, 이 경우 소리가 좀 더 직접적으로 청중들에게 전해진다. 이 스킬은 호른만이 아닌, 트럼펫이나 오보에, 클라리넷 같은 세로로 부는 관악기에서도 사용된다. 구스타프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에서 이 연주법을 자주 썼다. 정말 힘든 일이다. 다른 악기들은 벨이 앞을 향해있는 반면 호른은 옆을 향해있기 때문에 옆에 있는 연주자에게 귀가 찢어지는 고통을 주기도 한다.
심지어 말러의 경우 교향곡 제1번 4악장 끄트머리에서 호른 주자들을 일으켜 세워서 연주하도록 지시하기까지 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상징적인 행위다. 호른은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이후로 독어권 국가에서 영웅을 상징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마지막 대단원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시각적 연출로 사용된 지시다. 퀴브레나 벨업도 하지 않고 일어서기만 한다고 해서 실제로 음량의 강화 효과를 얻기는 힘들지만,[18] 시각적 효과만큼은 발군이다. 번쩍번쩍거리는 호른을 지닌 주자들이 모두 일어서서 연주하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음을 위아래로 미끄러뜨리는 글리산도(glissando) 지시도 자주 나온다. 그리고 혀를 요이요이요이 발음으로 재빨리 움직이면서 호흡의 압력을 실어서 또이~또이~또이이이이이 하고 위아래 음을 빠르게 내는 립트릴도 오랜 연습과 경험을 거치면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오버블로잉이라고 해서 기도의 호흡과 성대의 울림을 조화시킨 특수 주법도 있는데, 악기의 특정음을 연주하면서 성대를 진동시켜 아아하고 소리를 내며 화음을 낼 수도 있다(노래할 때 입을 벌리지 않고 흥얼거리듯 가창하는 허밍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보통 실내악 계통의 현대음악에 종종 등장하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에 베버의 호른 소협주곡에서 이 지시가 나오기도 했다.

6. 종류


호른은 밸브가 없이 크룩만 있는 내추럴 호른, 피스톤을 사용하는 호른, 로터리를 사용하는 로터리 호른 세 가지로 크게 나뉜다. 오늘날 사용되는 악기는 거의 전적으로 로터리 방식의 호른이다. 내추럴 호른은 원전악기를 연주될 때 제한적으로 사용되며, 빈 호른 역시 빈 필 이외에서는 취미 수준으로 연주되고 있다. 빈 호른이나 내추럴 호른은 연주해 보고 싶어도 당장 악기를 구매하는 일부터 엄청난 난관에 휩싸인다. 관의 조성과 조합방식에 따라서는 싱글 호른, 데스칸트 호른, 더블 호른, 트리플 호른으로 분류된다. 또한 더블 호른과 트리플 호른에는 각 관이 서로 부품을 공유하지 않는 풀 더블 방식과, 각 관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F관과 B플랫관을 일부 공유하는 방식인 컴펜제이팅 호른(compensating,독:Kompensating 콤펜자팅)이 있다.

7. 파생악기


호른의 파생악기는 다른 금관악기들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7.1. 바그너 튜바


베를린 필의 호른 단원들이 브루크너교향곡 제7번 위주로 브루크너 교향곡의 호른/바그너 튜바 파트를 연습/시연하며 설명하는 영상. 초반과 후반에서 바그너 튜바 4중주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자신의 대작 니벨룽의 반지에서 쓰기 위해 호른의 구조를 튜바식으로 응용한 '바그너 튜바(Wagner Tuba,Wagner Tuben-복수)' 라는 악기를 만들었다. 바그너는 1853년 처음으로 이 악기를 구상했으나 바그너가 만족할만한 수준의 악기가 실제로 완성된 것은 1877년에 이르러서였다. 1869년과 이듬해에 각각 초연된 라인의 황금발퀴레의 공연에서는 바그너 튜바가 사용되지 않았다. 사실 이 두 작품의 초연은 바그너가 아직 4부작 전곡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연을 원치 않은 상황에서, 작품을 간절히 보고 싶어했던 후원자 루트비히 2세의 명령으로 강행된 것이었다. 이후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전곡 초연을 위한 루트비히 2세의 후원금으로 바그너 튜바의 개발도 진척되었다. 1874년 뮌헨의 장인 게오르크 오텐슈타이너(Georg Ottensteiner)에게 의뢰하여 개발된 악기가 1876년 니벨룽겐의 반지 역사적인 초연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바그너는 이 악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니벨룽의 반지 초연 이듬해인 1877년 베를린의 C. W. 모리츠(C. W. Moritz)사에서 제작한 바그너 튜바가 바그너를 만족시켰고, 바그너는 모리츠사의 바그너 튜바를 최초의 바그너 튜바로 인정했다. 모리츠사 바그너 튜바는 바그너 생전에 독점적으로 사용되었다. KBS에서 방영된 "100년의 가게-뮤직알렉산더"편에서는 바그너가 직접 알렉산더사를 찾아와 바그너 튜바 제작을 의뢰하여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악기를 완성했다고 말하면서 알렉산더사가 처음으로 바그너 튜바를 완성했다는 듯한 뉘앙스로 얘기하고 있는데, 적어도 바그너가 생전에 알렉산더제 바그너 튜바가 연주에 사용된 적은 없다.[19] 알렉산더사의 바그너 튜바가 바이로이트에 처음 납품된 것은 1890년으로 바그너 사후 7년 후였다.
바그너는 5~8번 호른 주자가 호른과 바그너 튜바를 번갈아 가면서 연주하도록 지시했다. 때문에 호른 마우스피스를 사용하도록 설계되었고,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키를 조작하도록 설계되었다. 또 호른과 같은 B-flat과 F조로 제작되었다. 네 대의 바그너 튜바 중 두대는 테너 바그너 튜바로 B♭조고, 다른 두대는 베이스 바그너 튜바로 F조이다. 바그너는 원래 베토벤 이래 호른의 전통을 살려 1-2, 3-4, 5-6, 7-8번 호른(또는 바그너 튜바)가 한조를 이루어 연주하길 희망했다. 그래서 5번, 7번 호른 주자가 테너 바그너 튜바를, 그리고 6번, 8번 호른 주자가 베이스 바그너 튜바를 연주하길 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곡이 작곡된지 훨씬 후에 악기가 완성되었고, 이 과정에서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의 초연이 먼저 이루어지면서 군용 악기가 초연에 사용되기도 했고, 또 악기 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컨셉의 변화를 겪으면서 현재 보통 테너 바그너 튜바는 5, 6번 주자가, 베이스 바그너 튜바는 7, 8번 연주자가 연주하게 되었다.
바그너는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 후에 완성된 파르지팔에서는 바그너 튜바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후 바그너 튜바는 사장될 수도 있었지만, 바그너 음악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브루크너가 자신의 7~9번 교향곡에서 바그너 튜바를 사용했다. 브루크너는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사용된 바그너 튜바의 음색에 매료되어 자신의 교향곡에 직접 이 악기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이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몇몇 오페라나 '알프스 교향곡' 같은 대규모 관현악 작품 및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불새'와 '봄의 제전'에서도 이 악기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 외에 바그너 튜바를 사용한 작곡가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급율은 안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장되거나 무시당하는 악기는 아니다. 일단 바그너, 브루크너, 슈트라우스, 스트라빈스키가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고하기 때문에 이 작곡가들 때문에라도 바그너 튜바는 사라질 수 없는 악기가 되어버렸다. 호른 주자들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오페라극장 관현악단에 입단하기 위해서는 바그너 튜바를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 연주회 관현악단에서도 위의 작품들을 자주는 아니더라도 한 시즌에 두세 번 정도는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라, 대부분의 호른 주자들은 바그너 튜바의 연주법을 숙지한다. 그렇다고 바그너 튜바를 특별히 연습해야할 정도는 아니다. 왠만한 호른 주자들은 별다른 연습 없이도 바그너 튜바를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적응 문제가 완전히 필요없는 것은 아닌데, 악기 자체의 특성 차이도 있지만 바그너 튜바의 음역대 자체가 상당한 저음까지도 빈번하게 내려가기 때문에 음역대에 따른 난점이 크게 작용하는 편이다.
사실 20세기 중반까지도 바그너 튜바의 보급률이 안습해서 미국에서는 유포늄 등으로 대체해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언급된 것 처럼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는 초연시에는 바그너 튜바가 사용되지 않았고 유포늄(독일식 카이저 바리톤)으로 추정되는 군악대용 악기가 사용되었다. 브루크너 역시 자신의 교향곡들을 공연할 때 오케스트라들이 바그너 튜바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브루크너는 바그너 튜바를 구하지 못할 경우 유포늄(독일식 카이저 바리톤)으로 대체해서 연주하는 것을 허락했다. 브루크너가 처음으로 바그너 튜바를 도입한 교향곡 7번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초연했을 때 바그너 튜바가 사용되지 못했고, 나중에 바이로이트 페이스티벌 전담 오케스트라였던 뮌헨 왕립 가극장 오케스트라가 연주했을 때 처음 바그너 튜바를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 독일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였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나 만하임 궁정 오케스트라도 바그너 튜바를 구하지 못하여 유포늄으로 대체해서 바그너나 브루크너를 연주해야 했다.
국내에서는 KBS 교향악단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각각 4대가 구비되어 있고 최근 서울시립교향악단도 바그너 시리즈를 무대에 올리면서 독일 알렉산더제 바그너튜바를 구입하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급율이 안습이기 때문에 타 악단에서는 대체악기로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20] 유포늄이나 호른으로 대체해서 연주하는 것이 가능하다. 브루크너는 바그너 튜바를 구하기 어려운 경우 유포늄(카이저 바리톤) 등 으로 대체해서 연주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독일이나 동구권 유럽에서 사용하는 유포늄은 미국이나 영국의 유포늄과는 다른 악기로, 영미식 유포늄과 구별하기 위해 카이저 바리톤(Kaiserbariton)이라고도 부른다. 이 독일식 유포늄은 타원형 감기(wrap)로 되어 있어 바그너튜바와 아주 흡사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마우스피스 사이즈와 기본 조성을 제외하면 바그너 튜바와 카이저 바리톤 간의 차이가 별로 없다. 때문에 마우스피스를 가리면 독일형 유포늄인지 바그너튜바인지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브루크너가 말한 유포늄은 바로 이 독일형 유포늄을 의미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에서 사용하는 유포늄은 튜바를 축소한 형태의 악기로 독일의 유포늄과는 족보가 다른 악기다.

7.2. 기타


영국이나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는 알토호른(영국식 영어로는 테너호른)이라는 악기도 볼 수 있는데, 이 악기는 호른과는 다른 악기이며 유포늄과 같은 계열의 악기로 취급된다. 대개 금관악기 위주로 구성되는 브라스 밴드에 주로 쓰인다. 오케스트라에서는 거의 사용되는 예가 없지만, 라벨이 편곡한 모데스트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홀스트의 행성, 말러의 교향곡 7번에서 사용되었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되는 경우 주로 트롬본 연주자들이 연주한다.
행진하면서 연주하는 마칭 밴드 경우 호른 대신에 멜러폰(Mellophone)이나, 이것과 비슷하지만 조성이 B플랫으로 된 마칭 호른(Marching Horn)이라는 악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8. 사용 영역


주로 클래식 음악에서 필수요소로 사용한다. 맨 위 문단에도 써놨지만, 다른 악기들과 쉽게 어울리는 강한 친화력 때문에 관현악에서 독주까지 다양한 편성과 장르에 투입된다. 특히 음이 직접 앞으로 향하지 않고 뒤로 퍼지는 악기 구조상 실내악에도 적합하다. 목관과 금관을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역할로도 많이 활용된다.
관현악에서는 대규모 편성을 취할 경우 호른을 최대 여덟 대(혹은 그 이상)로 증배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는 두 대에서 네 대까지가 기본 스펙이다. 어시스트라고 해서 수석 연주자를 보좌하며 음량을 강화하거나 수석 주자의 역할을 나눠 맡아 부담을 덜어주는 보조주자를 옆에 둬서 연주하기도 한다.
관현악단의 호른 파트는 고음호른과 저음호른으로 나뉘게 되는데, 1,3번 홀수 주자들이 고음역을, 2,4번 짝수 주자들이 저음을 담당하게 된다. 이러한 홀짝수 분업 방식은 호른에만 고유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홀짝수 분업 체계를 확립한 사람은 베토벤이다.
고전 시대까지도 호른은 악단에서 두 대가 기본이었지만, 베토벤은 보다 풍부한 음향을 내기 위해 더욱 많은 호른을 사용하여 후기에는 네 대의 호른 사용이 정착되었다. 교향곡 제3번 '영웅'에서 세 대의 호른을 사용했던 베토벤은 이후 오페라 피델리오, 극부수음악 에그몬트 등에서 네대의 호른을 사용했으며, 교향곡 제9번 이후 네 대의 호른은 서구 음악계의 표준이 되었다. 베토벤은 당시 이조악기였던 호른의 한계점을 극복하려는 방법의 일환으로 호른의 기본조를 다르게 하여 사용할 수 있는 음표의 개수를 늘리려 하였다. 즉 1,2번 호른이 한 쌍으로 같은 조를 연주하고 3,4번 호른이 한쌍으로 다른 조를 연주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이에 따라 1번이 고음, 2번이 저음, 다른 조에서 3번이 고음, 4번이 저음을 맡게 되었다.[21]
베토벤 이후로 호른에 밸브가 도입되면서 이러한 분업이 의미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베토벤 이래로 홀짝수 분업의 전통은 후세대 작곡가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다만 일부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에서는 홀짝수 관계없이 1번부터 아래로 내려갈수록 차례로 저음파트로 할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이 때문에 호른 섹션의 부수석은 3번 주자가 맡는다. 입단 오디션을 볼 때도 포지션이 홀수인지 짝수인지에 따라 요구하는 음역이나 과제곡을 다르게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른이 8대로 늘어날 경우 6번 이하에서는 홀짝수 분업의 역할이 다소 애매해진다. 호른이 8대인 경우 5번~8번 호른은 바그너튜바를 겸하는 경우가 많은데 바그너튜바를 사용할 경우 5, 6번이 고음용 B♭악기, 7, 8번이 저음용 F악기로 지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다 저음이기 때문에 파트의 분배는 단원들의 선호도에 따라 분배되는 경우가 많다. 규모가 큰 교향악단에서는 두 명의 수석이 각각 1번과 5번을 맡는 경우가 많다. 이는 5번 호른이 바그너튜바 파트의 수석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그너튜바를 연주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베를린 필이나 빈 필에서도 짬되는 단원들이 5번~8번 파트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고, 1번~4번에 오히려 젊은 단원이나 객원단원이 포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짝수 파트를 연주하는 주자라 할지라도 고음을 연주 못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연주하다보면 1번과 같은 높이의 고음을 유니즌으로 연주해야할 때가 많다. 게다가 이조악기 시절의 작품으로 가면 옥타브를 넘나드는 도약이 빈번하기 때문에 연주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그렇다면 고음도 잘 내고, 저음도 잘 내야 하는 짝수번호 연주자들이 더 뛰어나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저음과 고음을 번갈아 연주하는 것이 도약이 심하여 기술적으로는 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고음만을 연주하는 것보다는 피로도가 훨씬 덜하기 때문이다.
악보상 명시된 파트는 아니지만 수석을 보조하는 어시스턴트를 따로 두는 경우가 많다. 별도의 단원을 한명 더 고용하는 것인 만큼 대형 오케스트라, 명문 오케스트라, 재정이 풍부한 오케스트라일수록 어시스턴트가 있는 경우가 많으며, 반대로 지방의 규모가 작은 오케스트라일수록 어시스턴트가 없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 오케스트라에서 어시스턴트 파트를 따로 뽑는 경우가 많다. 어시스턴트는 수석과 같은 파트를 분담해서 연주하기 때문에 그 위상과 비중이 높다. 수석이 두명인 명문 오케스트라인 경우 다른 한명의 수석이 어시스턴트를 맡는 경우가 많다. 미국과 영국에 비해서 독일은 상대적으로 어시스턴트를 적게 사용하는 편이다. 독일 오케스트라는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아서 연주회 부담이 과중하기 때문에 어시스턴트를 하기보다 두명의 수석이 각각 교대로 연주회를 하면서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 오케스트라는 같은 콘서트에서 1, 2부에서 다른 수석이 교대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명문 교향악단일수록 필수적으로 어시스턴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트렌드를 선도하는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에서 어시스턴트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다른 오케스트라도 어시스턴트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베를린 필의 경우 1980년대까지 더블링은 기본이고 베토벤 5번의 경우 심지어 네배로 증원해서 8명의 호른 주자가 연주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기 때문에 한무대에 자이페르트, 하우프트만 두명의 수석이 동시에 무대에 올라와서 수석 파트를 나눠서 부는 경우가 많았지만, 하지만 90년대 아바도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명의 수석만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아바도가 시대연주의 영향을 받아서 더블링을 하지 않는 컴팩트한 사이즈의 인원으로 깔끔한 연주를 추구했고, 동시에 지속적으로 베를린 필의 금관 밸런스를 줄일 것을 요구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여전히 빈필, 런던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보스턴 심포니, 뉴욕 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 명문 오케스트라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곡에서 어시스턴트가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악기의 음색과 테크닉 문제 때문에 클래식 이외 다른 영역에서는 사용 빈도가 대단히 낮은 편이다. 하지만 영화음악에서는 여타 금관악기들과 함께 두드러지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간혹 재즈에서 이 악기를 쓰기도 하는데, 아직 빅 밴드 등의 상비 악기 자리를 얻지는 못하고 있고 솔로 아니면 스트링 앙상블을 동원하는 세션이나 특별한 음색을 얻기 위한 보조적인 역할 정도에 그치고 있는 정도다.
Two Steps From Hell의 음악이나 한스 치머의 음악 같이 웅장한 음악에서 꼭 등장한다. 보통 '웅장하다' 라는 느낌을 줄려면 오케스트라 혹은 오케스트라의 일부가 꼭 들어가야한다. 당연히 클래식 과 같은 경우에는 오케스트라가 다 쓰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앞써 말한 Two Steps From Hell 과 같이 오케스트라의 일부만 사용하여 오케스트라 '풍'만 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 호른은 꼭 들어가기 마련이다. 다른 악기가 잘 쓰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트럼펫은 자칫 잘못 사용하면 뽕짝 느낌이 날 수도 있고 호른 특유의 후웅 띄어주는 연출이 힘들다. 또한 목관악기 전체도 거의 안쓰이는데 그 이유는 쿵쿵펑짝 하는 에픽 뮤직에서 강하기보단 섬세한 느낌을 전달하긴 힘들기 때문. 그래서 주로 현악기 와 호른을 넣어서 오케스트라 느낌을 따라한다.
한국에서는 여성적인 악기라는 이미지를 얻고 있는 모양인데, 예전 유럽이나 미국 오케스트라에는 다른 악기와 마찬가지로 남자 단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오늘날 서구 오케스트라에서 여성 호른 주자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남성 단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9. 여성 연주자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서구 오케스트라 단원은 대부분 남자였다. 남자들이 대거 징집된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오케스트라에서 여성 단원이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유럽(특히 독일)과 달리 장인-숙련공의 개념이 없었던 미국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두드러졌다.
헬렌 코터스(Helen Kotas)는 여성 오케스트라 호른 주자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였다. 이미 10대 시절부터 시카고 일대의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수석을 역임한 코터스는 1941년 25세의 나이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호른 수석으로 발탁되어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에서 최초로 여성 호른 수석이 되었다. 그러나 1947년 그녀의 전임자이자 미국 호른계의 대부격인 필립 파커스(Philip Farkas)가 시카고 심포니로 복귀하게 되자 그녀는 수석에서 평단원으로 강등되었고 결국 그녀는 그 시즌이 끝나자 시카고 심포니를 떠났고 이후 시카고 리릭 오페라 수석 등을 역임했다. 코터스 이후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에서 다시 여성 호른 수석이 나타낼까지는 의외로 상당히 오랜시간이 걸렸는데 그 주인공은 2006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이 된 Jennifer Montone이다. 앞서 언급한 시카고 심포니 호른 파트는 코터스 이후에도 몇 명의 여성 단원들이 입단하여 평단원으로 활동했는데, 20세기 당시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에서 여성 호른 주자들이 활동하는 거의 유일한 오케스트라였다. 1978년에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입단한 게일 윌리엄스(Gail Williams)는 데일 클레빈저가 좀 더 일찍 은퇴했다면 지금 대학교수가 아니라 시카고 심포니에서 호른 수석으로 활동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오래지 않아 시카고 심포니를 떠났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최강의 금관파트를 가졌다는 시카고 심포니가 미국에서 여성을 호른 주자들을 유독 적극적으로 기용했다는 사실은 다소 이채롭다.
미국 출신의 줄리아 스터드베이커(Julia Studebaker)[22]는 유럽에서 여성 호른 연주자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였다. 그녀는 1973년 대학을 갓 졸업한 어린 나이에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수석으로 발탁되어 당시 남성 단원 일색이었던 독일 음악계에 충격을 주었다. 독일 메이저 오케스트라에서 여성이 호른 수석이 된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이듬해인 1974년 그녀는 세계 정상급 명문 오케스트라인 네덜란드의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의 수석으로 발탁되었다.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는 유럽 메이저 오케스트라 중에서 여성 호른 단원들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오케스트라였다. 줄리아 스터드베이커 이외에도 몇 명의 여성 호른 단원들이 1970년대부터 콘서트헤보에서 활동했다. 스터드베이커는 2002년까지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다. 그녀의 연주 모습은 필립스와 유니텔 등이 녹화한 여러 영상물 자료에 남아있다.[23] 그녀가 유럽 음악계에 미친 파장은 컸으며 그녀의 성공적인 커리어 이후 유럽 오케스트라에서도 많은 여성 호른 단원들이 활약하기 시작한다.
독일에서는 호른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하는 마리 루이제 노이네커(Marie Luise Neunecker)가 있다.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평단원으로 시작해 수석으로 올라왔고,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수석을 거쳐 이후 솔로 활동과 후학 양성을 하고 있다.
현재 세계구급 본좌 악단인 베를린 필에도 유일한 여성 호르니스트 사라 윌리스가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 필의 저음 호른주자 퍼거스 맥윌리엄의 제자였던 사라 윌리스는 베를린 국립 가극장을 거쳐 베를린 필 최초의 여성 호른단원이 되었다. 사실 윌리스 이전에 베를린 필에서 활동한 여성 호르니스트가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누리 과르나셸리(Nury Guarnaschelli)는 베를린 필 카라얀 아카데미에서 베를린 필 호른수석 게르트 자이페르트(Gerd Seigert)에게 사사받으면서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베를린 필에서 객원단원 신분으로 연주했다. 그녀가 처음 베를린 필에서 연주하기 시작한 1984년 베를린 필은 최초의 여성 정단원 선발문제와 관련해 자비네 마이어 사건이 터지는 등 홍역을 거치던 시기였다. 마이어 사건 이전에도 1974년 여성 플루트 주자 기용과 관련해 갈등이 발생하는 등 베를린 필에서 특히 목관악기 단원들은 여성 연주자 기용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이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과르나셸리는 스승이자 호른 수석인 자이페르트의 신임 하에서 베를린 필에서 고음[24], 저음을 가리지 않고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카라얀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1988년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이 되면서 베를린 필 객원단원을 그만두었다. 이후 빈 방송교향악단 수석 및 솔로 활동을 겸하다가 2018년 베를린 필의 고음 호른 자리에 공석이 생기면서 약 30년만에 다시 베를린 필 객원단원으로 초빙되고 있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여성적인 악기라는 이미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악기를 전공하는 여학생들도 많은 편인데, 이화여자대학교숙명여자대학교 같은 여대 뿐 아니라 공학인 다른 대학들에서도 많은 여성 호른 전공자들이 배출되고 있다.

10. 주요 제작업체


가나다순으로 추가한다.
네덜란드
  • 페어 Klaus Fehr
노르웨이
  • 라욱 (Rauch) -- 미국 출신, 가이어의 제자
대만
  • 주피터 Jupiter
독일
  • 뒤르크 Dürk
  • (발터 뫼니히 Walter Mönnig)
  • 엥겔베르트 슈미트 Engelbert Schmid
  • 마르크 슈미트하우저 Marc Schmiedhäuser
  • 알렉산더 Gebr. Alexander
  • 디터 오토 Dieter Otto
  • 리코 퀸 Ricco Kühn
  • 코른포르트 Cornford
  • (크루스페 Ed. Kruspe)
  • 헤르베르트 프리츠 크노프 Herbert Fritz Knopf
  • 타인 Thein
  • 핑케 Finke
  • 마이스터 한스 호이어 Meister Hans Hoyer
미국
  • (가이어 (Geyer))
  • 로슨 (Lawson)
  • 루카스 (Lukas)
  • 루이스 (Lewis)
  • 매크래컨 (McCracken)
  • 메들린 (Medlin)
  • 소얼리 (Sorely)
  • 앳킨슨 (Atkinson)
  • 칸테사누 (Cantesanu)
  • 콘 C.G.Conn
  • 패터슨 (Patterson)
  • 해치 (Hatch)
  • 홀턴 Holton
  • 힐 (Hill)
스위스
  • 빌손 C.S. Willson
스페인
  • 스톰비 Stomvi
오스트리아
  • 안드레이스 융비르트 Andreas Jungwirth
영국
  • 팩스먼 Paxman
이탈리아
  • 칼리손 Kalison
일본
캐나다
  • 버그(Berg) --- 라욱의 제자
체코
  • 이라체크 Jiracek & Sons

11. 국가별 특징



11.1. 독일


요즘 독일어권 오케스트라에서는 알렉산더 103 모델이 대세를 차지하고 있어서 다른 악기를 사용하는 연주자들이 많지 않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 쾰른 서부독일 방송 교향악단, 베를린 국립 오페라,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네임드 오케스트라들에서 대다수의 단원이 알렉산더 103을 사용하고 종종 1103 등 다른 독일제 악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눈에 띌 정도다. 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서는 알렉산더 103도 쓰이지만 다른 악기를 사용하는 단원들이 더 많다. 구동독 지역이나 남서부 등에서는 오토나 과거 장인들이 만든 악기의 점유율도 조금 있는 편이다. 유럽에서 이례적으로 영국산 팩스먼 점유율이 매우 낮지만, 서쪽 접경 지역 오케스트라에서는 팩스먼을 사용하는 연주자들도 제법 있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독일에서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악기가 사용되었다. 뫼니히, 멜키어, 크노프, 야마하, 슈미트, 크루스페, 리코 퀸, 오토 등을 비롯해 지금은 사멸된 여러 장인들이 만든 악기가 사용되었다. 지역별로도 차이가 많았는데 인접한 지역에 있는 장인들의 악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구동독 지역의 작센주에 있는 마르크노이키르셴(Markneukirchen)에 유명한 악기 장인이 많았다. 냉전 시절 공산주의 특유의 기업 국영화에 의해 강제 통폐합 당하면서 어려움을 겪으며 쇠퇴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악기 제작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냉전 시절 서독과 동독의 물적 교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교류가 원활한 편은 아니어서 이 시기에 서독과 동독의 악기 트렌드가 다소 단절되었다. 특히 동독 지역에 유명한 악기 장인들이 많았던 관계로 서독의 마인츠에 자리잡은 알렉산더가 점유율을 크게 높여갈 수 있었다. 동독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독산 알렉산더를 사용하지 않았다.[25] 그렇다고 동독의 악기가 서방세계로 유통이 금지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많이 사용되는 가이어/크놉형 악기나 크루스페형 악기 모두 20세기 전반부터 1980년대까지 독일 전역에서 널리 사용됐다. 사실 가이어/크노프형이나 크루스페형 모두 원조는 독일이다. 그러나 악기 제작자들이 주로 동독에 있었기 때문에 서독 지역에서는 이용에 다소 제약이 있었다. 가이어/크노프형 악기는 저음 주자용 악기로 많이 사용되었고, 크루스페형 악기는 발터 뫼니히나 원조 크루스페의 호른이 널리 사용되었다. 크루스페형 악기는 동독지역 뿐만 아니라 서독 지역에서도 제법 사용되었다. 특히 발터 뫼니히의 악기가 많이 사용되었다. 가이어/크노프형 악기 역시 장인들이 주로 동독이나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서독에서는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지금은 단종되었지만 한때 알렉산더에서도 크노프형 악기를 생산하기도 했다.[26]
특히 베를린 필에서는 80년대까지 크높형 악기/가이어형 악기에 대한 선호도가 컸다. 원래 베를린 필은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Bb 싱글 호른을 주로 사용했으나, 63년 무대 뒤가 트인 베를린 필하모니 홀이 개관되고 나서 보다 큰 음량을 낼 수 있는 더블 호른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노베르트 하우프트만을 제외하면 알렉산더의 더블 호른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서독에서는 크높형 악기를 제작하는 곳이 마땅히 없었다. 한때 알렉산더에서 가이어 호른을 제작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 80년대 일본 야마하에서 가이어 호른과 크높 호른을 차례로 출시하자 베를린 필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80년대 후반 야마하에서 크높형 악기(667)을 출시하자 베를린 필에서 매우 좋은 반응을 얻으며 한때 하우프트만을 제외한 베를린 필의 거의 전 단원이 야마하 667을 사용하기도 했다. 예치어스키 등 젊은 단원들은 프로젝션이 더 좋은 알렉산더로 다시 갈아탔지만 하우프트만을 제외한 나머지 고참급 단원인 게르트 자이페르트, 만프레트 클리어, 귄터 쾹, 후베르트 붐퍼그라벤이 모두 야마하 크높/가이어 악기로 애용했다. 그러나 90년대에 이들이 차례로 은퇴하자 베를린 필에서 크높/가이어 호른의 명맥은 끊기게 되었다.
그밖의 서독 오케스트라에서도 80년대까지만 해도 가이어형이나 크노프형 사용하는 연주자들이 드물지 않았다. 또 미국 출신 연주자들이 독일에 많이 자리잡으면서 미국에서 쓰던 악기를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에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피스톤 호른을 사용하는 단원이 세 명이나 되었다. 바이에른의 독자적인 지역색이 영향을 미친 듯 하다.
독일어권 오케스트라에선 1960년대까지만 해도 B♭ 싱글 호른을 쓰는 연주자들이 아주 흔했다. 그 시절 베를린 필이나 옆나라인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동영상을 보면 고음주자는 물론 저음주자들 중에도 B♭ 싱글호른을 쓰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였다.
베를린 필은 60년대까지만 해도 당시 다른 독일 오케스트라들처럼 B♭ 싱글 악기를 쓰는 단원들이 많았다. 그러나 1963년 베를린 필이 새로운 상주홀인 현재의 베를린 필하모닉 홀을 건립하면서 호른 주자들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 베를린 필이 쓰던 상주홀인 구 필하모닉 홀이나 티타니아 팔라스트와 달리 새 필하모닉 홀은 무대가 개방된 형태였다. 무대 뒷편에 음향반사판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베를린 필하모닉 호른 주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큰 음량으로 소리를 내어야 했다. 때문에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단원들 대다수가 사용하던 B♭ 싱글호른이 사라지고 알렉산더나 멜키어 등의 더블호른으로 대체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한때 베를린 필 전 단원들이 야마하 667을 사용하기도 했다. 야마하 667의 밝으면서 유한 사운드는 피아노에서 극단적으로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밝은 톤을 추구했던 베를린 필의 수석 게르트 자이페르트의 성향에 잘 부합하는 악기였다. 하지만 베를린 필 호른 섹션은 야마하 667을 약 2년간 사용하다가 차차 알렉산더로 바꾸었는데, 결정적인 이유는 야마하 667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는 큰 음량으로 프로젝션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베를린 필하모닉 홀은 무대 뒤에 음향반사판이 없기 때문에 다른 홀보다 훨씬 큰 음량을 내어야했기 때문에 야마하 667을 포기하고 알렉산더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노장 단원인 게르트 자이페르트, 만프레트 클리어, 귄터 쾹은 야마하를 계속 사용했지만 90년대 후반에 그들이 모두 은퇴하고 나서 베를린 필 호른 섹션은 전원이 알렉산더를 사용하게 되었다. 베를린 필의 레전드 자이페르트[27]는 70년대까지는 멜키어를 사용하다가, 80년대 부터는 야마하 667과 667V을 메인으로 사용했다. 자이페르트는 가끔 야마하 662, 567, 대만의 주피터 같은 아마추어용 악기도 치부되는 악기도 사용했다.[28] 60~90년대 베를린 필에서 2nd 파트의 메인 주자였던 만프레트 클리어(Manfred Klier)는 60~70년대에는 알렉산더 103을 사용하다가, 80~90년대에는 가이어랩의 야마하 861를 주로 사용하면서 야마하 667V도 가끔 사용했다. 귄터 쾹은 70년대 3rd 포지션에서 연주할 때는 알렉산더 90이나 97같은 B♭ 싱글을 주로 사용하다가 80년대에 4번 포지션으로 내려가서는 야마하 667을 사용했다. 지금 베를린 필에 있는 현역 호른 단원들도 카라얀 시절에는 다른 악기를 사용한 경우가 많다. 스테판 예치어스키(Stefan Jezierski)는 입단 후 자이페르트가 쓰는 것과 같은 멜키어를 8년간 사용하다가 야마하 667을 2년간 쓰고 80년대 말에 알렉산더 103으로 바꾸었다. 클라우스 발렌도르프(Klaus Wallendorf)는 오랫동안 알렉산더 1103을 메인으로 사용했고 종종 알렉산더 200을 사용하기도 했다. 발렌도르프가 만년에 103으로 악기를 바꾸면서 베를린 필 호른 섹션 전원이 마침내 알렉산더 103을 사용하게 되었다. 저음주자 퍼거스 맥윌리엄(Fergus McWillam)은 80~90년대에 야마하 667, 667V, 알렉산더 103, 1103을 사용했다.
독일의 다른 명문 교향악단 역시 90년대 이전에는 다양한 악기를 사용했다. 특히 수석주자나 고음단원들은 B 싱글 악기나 데스칸트 악기를 사용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에서는 90년대 이전에는 다양한 악기를 사용했는데, 고음주자들은 데스칸트 악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밖에 크루스페랩 악기나 슈미트, 알렉산더 등을 사용했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는 80년대에 팩스만 20, 가이어 스타일 호른, 데스칸트, 트리플 호른 등 다양한 악기가 사용되었다. 프란츠 슈트라우스의 전통을 이어받은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에서는 다소 놀랍게도 1970년대에도 피스톤 호른을 사용하는 단원들이 몇 명 있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지금도 비교적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는 편으로 알렉산더, 한스 호이어, 야마하 등을 사용하고 있다. 이 악단에서 호른수석을 역임했고 솔로이스트로도 유명한 페터 담(Peter Damm)은 뫼니히 B♭ 싱글호른을 사용했다.
90년대 이전에 독일에서는 요즘과 달리 가이어(Geyer)/크노프(Knopf) 스타일 호른도 꽤 널리 사용되었다. 과거 자료를 보면 베를린 필을 필두로 독일과 네덜란드 메이저 오케스트라에서 저음주자들이 가이어/크높랩 호른을 쓰는 경우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사실 크노프와 가이어 모두 독일 출신이다.

11.2.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5개의 오케스트라 중 현재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빈 폴크스오퍼(Volksoper), 톤퀸스틀러 오케스트라(Tonkünstler-Orchester)에서는 빈 호른을 사용하고 있고, 빈 방송교향악단에서는 더블 호른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는 빈 필만이 빈 호른을 사용하고 나머지 오케스트라는 더블 호른을 사용했지만 빈 필의 국제적인 명성 및 빈 필 수석을 역임한 롤란트 베르거 등의 노력으로 인해 근래 빈에서는 다시 빈 호른을 쉽게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빈을 제외한 나머지 오스트리아 지역에서는 빈 호른 보다 더블 호른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11.2.1. 빈 호른


▲ 알렉산더 바겐드리슈텔이 12대의 빈 호른과 팀파니, 타악기를 위해 편곡한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테마곡 녹음 장면
빈 필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빈 지역 오케스트라에서는 F조 싱글인 빈 호른(Wiener Horn)을 사용하고 있는데, 내추럴 호른에 있던 크룩 모양이 남아있어 외관상으로 다른 호른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호흡과 함께 악기 내부에 입김 형태로 들어간 물을 뺄 때 크룩을 빼고 악기를 돌리는 식으로 빼도록 되어 있다. 또한 오늘날 대세인 로터리 방식이 아닌 듀얼 펌프식 피스톤 밸브로 되어있는 등 19세기 밸브호른에 가까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른 오케스트라들의 상용 악기인 B♭/F조 더블 호른에 비해 고음역 연주에 상당한 힘이 드는데, 악기의 기본조인 F조 관이 저음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고음에서는 손가락으로 밸브를 조작하는 운지법보다 입술의 움직임 만으로 음을 조절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반적인 더블 호른보다 삑사리가 많이 난다.
빈 호른은 19세기 빈의 금관악기 제작자인 레오폴트 울만이 개발한 악기에서 비롯되었다. 울만은 밸브 호른이 도입될 당시부터 다양한 형태의 밸브 호른을 개발해 시험해보았다. 울만의 실험과 함께 빈 호른도 진화해왔는데, 대략 19세기 후반에는 어느정도 형태가 갖추어졌다. 지금 빈 필에서 사용되는 빈 호른은 19세기 말에 거의 완성되었고, 이후로도 소소한 개량을 거쳐 대략 1910년대에 현재의 형태로 완전히 완성되었다. 하지만 19세기말에 크루스페 등에 의해 개발/진화된 더블호른이 뛰어난 성능을 보였기 때문에 빈 호른의 입지가 약해졌다. 원래부터도 빈 호른은 빈 이외의 지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20세기초 본격적으로 더블호른이 보급되자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조차도 빈 호른을 버리고 더블 호른을 썼기 때문에 빈 호른은 사실상 빈 필에서만 사용되고 거의 사멸했다.
빈 필에서는 20세기 전반기에 입단한 1900년생~1914년생[29]의 호른단원들이 모두 1960년대까지 빈 필에서 장기재직했기 때문에 현대까지 빈 호른의 전통이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빈 호른 사용자가 크게 줄면서 단원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고, 때문에 20세기 중반 빈 필 호른 파트에도 위기가 왔다. 1946년 한스 베르거(Hans Berger)[30]를 새로운 수석으로 영입할 때 빈 필은 처음으로 그에게 빈 호른이 아닌 일반호른을 사용하는 것을 허가했다. 베르거는 빈 필에서 레귤러하게 빈 호른을 사용하지 않은 유일한 단원이었다.[31]
결정적인 위기는 1957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빈 국립가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찾아왔다. 빈 필 호른의 삑사리를 참지못한 카라얀이 더블호른의 도입을 주장했던 것이다. 당시 빈 필 호른 섹션은 50~60대 단원들이 대거 은퇴를 앞두고 있던 때라 속수무책으로 카라얀의 주장이 먹힐뻔 했지만 당시 오케스트라 경영감독(Managing director)이자 트럼펫 수석이었던 전설적인 트럼페터 헬무트 보비슈(Helmut Wobisch)가 나서서 카라얀의 주장을 방어했고 오디션에서 아예 빈 호른만 사용하도록 규정을 바꾸었다. 결정적으로 당시 새로 수석이 된 20대 초반의 롤란트 베르거[32]가 앞장서서 빈 호른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호한 결과 빈 호른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롤란트 베르거는 빈 필 역사상 유일하게 빈 호른을 사용하지 않았던 한스 베르거의 아들이었다. 롤란트 베르거는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빈 호른만 쓰도록 강요해서 사라져가던 빈 호른의 전통이 오스트리아의 젊은 세대로 확산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33] 나중에 베르거의 제자들이 대거 빈의 오케스트라에 자리잡으면서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빈 폴크스오퍼, 톤퀸스틀러 오케스트라 등이 더블호른에서 다시 빈 호른으로 악기를 바꾸게 되었다.
빈 호른은 울만의 제자들이 계속 제작했지만 빈 외의 지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기 때문에 빈 호른을 만들 수 있는 장인들이 점차 사라져 버렸다. 1970년대 이후에는 빈에서 빈 호른을 제작하는 제작자가 사라졌고 빈 필은 결국 1971년 야마하에 빈 호른의 제작을 의뢰했다. 처음에는 타국에서 악기를 생산하는 것에 대해 악단 내부의 우려와 불만도 있었지만, 야마하에서 만든 호른과 트럼펫의 품질이 단원들에게 호평을 받자 나중에는 빈 필의 목관악기들도 야마하에서 제작되었다. 그리하여 70년대부터 90년대말까지 빈 호른이 일본의 야마하에서 독점적으로 생산되었다.[34] 하지만 빈 필의 명성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빈 호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더블호른을 쓰던 빈 심포니 등에서도 덩달아 빈 호른으로 악기를 바꾸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융비르트(Jungwirth), 알렉산더(Alexander), 하크슈톤(Haagston), 간터-피츠카(Ganter-Pizka) 등의 메이커에서 빈 호른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라첵, 슈미트 등도 가세하면서 빈 호른을 제작하는 제작사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빈 호른의 수요가 너무나 제한적이기 때문에 90년대 후반 생겨났던 빈 호른 메이커들 중에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곳도 있다. 1997년 빈 호른을 출시했던 알렉산더도 최근 빈 호른을 단종시켰다.
현재 빈 필에서는 야마하나 융비르트에서 제작한 빈 호른을 쓰고 있다. 그 밖에도 야마하에서 일했던 일본 장인 기무라[35]의 빈 호른도 사용된 적도 있다. 오스트리아 토종 관악기 제작 업체인 안드레아스 융비르트의 빈 호른은 레오폴트 울만이 19세기 후반에 개발했던 구식 악기를 복제했기 때문에 빈 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오던 모델과는 3번관의 모양이 다르다. 이 융비르트제 호른은 빈 필 수석주자를 역임했던 볼프강 톰뵈크 (jun)[36]가 개발에 참여하고 보급에 앞장섰다. 톰뵈크는 야마하 빈 호른 개발에도 크게 기여했지만 일본에 있는 야마하보다 빈 인근에 공방이 있는 융비르트에 소통의 편리함을 느낀 듯 하다. 2000년대 중반 한때 빈 필에서 융비르트의 점유율이 야마하를 넘어서는 듯 하다가 이후 주춤해져서, 현재는 야마하를 사용하는 단원들이 더 많다.
한편 E.슈미트에서 2014년에 새로 출시한 빈 호른은 울만과 그의 제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기존 빈 호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디자인으로 설계되었는데, 관의 배치가 완전히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각 관의 중간연결관을 빼면 B♭조 악기로도 변경이 가능한 엽기적인 작품이다. 기존의 빈 호른에는 없던 워터키도 장착되어 있다. 크룩(보겐)과 품펜밸브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 이외에는 빈 호른의 전통과는 동떨어진 악기이다. 관의 배치가 바뀌었기 때문에 크룩의 직경과 길이, 리드파이프의 길이와 테이퍼, 각 키의 튜닝관의 두께 등도 모두 달라졌다. 유튜브의 시연 동영상을 보면 기존 빈 호른보다 경질의 소리가 나는 듯 하다.
빈 호른이 고음에서는 연주하기가 무척 까다롭기 때문에 모차르트, 베토벤 등 고음이 많이 나오는 레퍼토리에서는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하기도 한다.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하는 경우 곡 전체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패시지에서는 빈 호른으로 연주하다가 필요한 부분에서만 부분적으로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빈 필에서 데스칸트 호른에 대해서는 정해진 룰은 없고 연주자마다 각자 다른 악기를 사용한다. 대체로 high F 싱글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하는데, 레히너 등에서 제작된 악기가 많다고 한다. 70~80년대 수석 주자들은 팩스만에 특별 의뢰하여 F/high F 더블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하기도 했다. 롤란트 베르거는 60년대에는 High F 싱글호른을 사용하다가 70년대에는 구형 팩스만 40에 기반하여 제작된 F/high F 더블 데스칸트 호른을 사용했고, 볼프강 톰뵈크 (jun)은 신형 팩스만 40에 기반한 F/high F 더블 데스칸트 호른 데스칸트를 사용했다. 현재 슈트란스키 이후 수석주자들은 다시 옛날처럼 싱글 high F 데스칸트 호른을 선호하고 있다. 60년대 빈 필 수석이었던 볼프강 톰뵈크 (sen)은 데스칸트 호른은 아니지만 베토벤 교향곡 7번 등에서 Bb조 빈 호른을 사용하기도 했다. 기본적은 형태는 빈 호른과 같지만 관이 짧기 때문에 크룩이 생략된 형태다. 빈 호른 제작 회사 중 하나인 하그스톤에서도 현재 Bb 빈 호른을 제작하고 있다. 역시 크룩이 없는 형태.

11.3. 영국


영국 호른은 대체로 80년대까지는 크루스페랩 악기가 크게 선호되었다. 80년대부터는 팩스만이 쿠르스페랩과 더불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알렉산더의 비중도 늘고 있다. 독일이 대체로 중간(medium) 크기의 벨스로트(bell throat)과 아주 좁은 보어(bore)를 가진 U컵의 마우스피스를 선호했던 반면에 영국 호른은 크루스페랩과 같은 큰 벨스로트를 가진 악기와 큰 보어를 가진 V컵의 마우스피스를 선호했기 때문에 매우 웅장한 사운드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역시 큰 벨스로트를 가진 크루스페랩 악기를 선호했던 미국은 자르디넬리 등으로 대표되는 작은 직경의 깊은 V자형 마우스피스를 선호했던 반면에 영국은 큰 직경과 중간 깊이를 가진 마우스피스를 선호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매우 웅장한 톤을 지녔다. 오늘날 영국 오케스트라는 비교적 다양한 모델의 악기를 두루 사용하고 있다. 요즘은 대체로 팩스만, 알렉산더, 야마하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상기했던 전통이 남아있어 팩스만을 쓰더라도 라지 벨 옵션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여전히 큰 보어의 마우스피스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알렉산더 같은 독일 악기를 사용하더라도 약음에서는 보다 어두우면서 부드럽고 포르테에서는 매우 웅장한 영국 특유의 사운드가 나타난다.
최근 독일이나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에서는 악단안에서 악기를 통일하는 경향이 강한데, 영국에서는 그딴거 없다. 그래도 과거에는 런던 심포니 등 메이저 오케스트라는 그래도 나름 악기를 통일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현재는 그런 경향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메이저 오케스트라가 몰려있는 런던[37] 은 단원들의 고용 안정성이 독일이나 미국에 비해 불안정한 편이고, 때문에 음악가들이 오케스트라를 자주 옮기고 겸직도 많이하는 특성과도 관련 있다.
영국에서는 제2차세계대전 후 반세기 이상 B♭ 싱글 호른과 쿠르스페 스타일 악기가 많이 사용되었다. 70년대 이후 야마하, 팩스먼, 알렉산더 호른의 비중이 차례로 높아져 지금은 이들 악기가 골고루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편이다. 현재 영국 메이저 악단에서는 팩스먼, 알렉산더, 야마하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영국 최고의 교향악단인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는 오랜동안 거의 크루스페 스타일 악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크루스페-호너, 콘 8D, 야마하 668이 널리 사용되었다. 50~60년대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호르니스트를 역임한 배리 터크웰도 크루스페(크루스페-호너) 애용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38] 런던 심포니가 연주한 스타워즈 OST의 웅장한 호른 사운드에서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속칭 헐리우드 호른 사운드와 유사성이 있는 데, 이 역시 크루스페형 악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콘8D 일색의 미국 사운드에 비해서 좀더 웅장하면서도 부드럽고 포용력 있는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크루스페-호너의 악기 특성과 영국산 마우스피스 스타일과도 연관있는 것으로 보인다. 80~90년대 런던 심포니에서는 팩스만 20을 애용했다. 근래에는 알렉산더 1103을 사용하는 단원들도 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역시 런던 심포니처럼 크루스페형 악기를 필두로 라지 벨(large bell) 악기를 많이 사용했다. 60년대에는 오리지널 쿠르스페를 많이 사용했고, 70년대에는 후기 크루스페형 악기를 많이 사용했다. 때문에 웅장하면서도 약음에서는 부드러운 사운드를 냈다. 이 악단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80년대 텐슈테트 시절[39]에는 수석 단원인 니컬러스 부시 등은 여전히 후기 크루스페형 악기를 썼으나 그밖의 단원들은 야마하, 특히 866을 많이 사용했다. 때문에 70년대보다 사운드가 좀 더 거칠고 파워풀해졌다. 텐슈테트와 런던 필의 말러 교향곡 전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른 사운드는 이런 큰 벨의 야마하가 주종이 된 사운드다. 90년대~2000년대에는 야마하 866 대신 전통적인 크루스페랩의 야마하 668을 많이 사용했다. 현재 런던 필에서는 팩스먼과 알렉산더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50~60년대에 세계 최정상급 악단으로 평가받았는데 당시 호른 멤버를 보면 데니스 브레인, 앨런 시빌, 니컬러스 부시가 연이어 수석과 부수석(3rd)을 맡았던 초호화진용이었다. 브레인과 시빌은 독주는 물론 오케스트라에서도 항상 알렉산더 90 B♭ 싱글 호른을 사용했다. 부시는 시빌 밑에 있던 시절에는 알렉산더 90[40]을 사용했으나 수석이 된 이후에는 후기 크루스페랩 악기로 바꾸었다. 당시 저음 주자들은 후기 크루스페형 악기[41]나 알렉산더 103을 사용했다. 50~6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64년 월터 레그가 악단 운영에서 손을 때면서 재정적으로 크게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면서 우수한 단원들이 많이 유출됐는데 호른파트 역시 시빌과 부시가 연이어 BBC 심포니와 런던 필로 떠나가면서 쇠락했다. 80~90년대에는 팩스만과 후기 쿠르스페형 악기를 많이 사용했다. 현재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에서는 알렉산더, 팩스먼, 야마하가 두루 사용되고 있다.

11.4. 미국


미국에서는 크루스페 스타일 호른과 가이어 스타일 호른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20세기 초에 독일에서 도입된 크루스페 스타일이 미국을 휩쓸면서 한때 미국 호른 사운드를 대표했으나 20세기 후반에는 가이어/크높 스타일의 악기도 널리 퍼지면서 현재 양대 진영을 구축하고 있다. 쿠르스페형, 가이어/크높형 모두 독일에서 유래된 악기지만, 알렉산더 악기의 점유율이 매우 낮은 것이 특징이다.
20세기 초중반에는 C.F. Schmidt[42]도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C.F. Schmidt가 단종된 후에 이 악기 유저들은 대부분 비교적 비슷한 특성을 지닌 가이어형 악기로 갈아탔다. 하지만 C.F. Schmidt 악기가 가진 밝으면서도 부드러운 음색 때문에 가이어랩의 악기보다 C.F. Schmidt를 낫다고 여기며 그리워하기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에 최근 Dürk 등에서 C.F. Schmidt를 카피 복원한 모델을 출시하였고, 최근 몇몇 오케스트라나 컨서바토리에서 C.F. Schmidt의 카피 모델을 사용하는 이들이 눈에 띄고 있다.
오만가지 메이커의 악기가 사용되는 미국 오케스트라지만 알렉산더 악기는 발견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43] 신기할 정도로 알렉산더를 찾아보기 힘든 미국이지만[44] 1930년대초 뉴욕 필 등의 멤버를 보면 알렉산더 103을 쓰는 사람이 몇명 보인다. 크루스페랩 악기가 본격으로 보급된 것은 1937년 콘 8D가 처음 출시된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11.4.1. 크루스페(Kruspe) 스타일[45]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호른연주자 안톤 호너(Anton Horner)가 1904년 크루스페와 자신이 개발한 크루스페-호너 호른을 미국에 소개한 이래 그가 근무하고 가르쳤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커티스 음악원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가 곧 미국에서 대세가 되었다. 안톤 호너의 제자들이 뉴욕 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피츠버그 심포니 등에 자리잡으면서 미국 동부 오케스트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937년에는 미국의 Conn사가 크루스페-호너 호른을 카피한 콘 8D(Conn 8D)를 출시했는데, 콘 8D는 크루스페보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크루스페 못지 않은 사운드를 지녀 대공황으로 어려웠던 미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때마침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더이상 독일에서 악기를 수입되기 어렵게 되자 Conn 8D는 곧 미국 호른의 대세가 되었다.
호너가 재직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인근 뉴욕에 있는 명문 오케스트라인 뉴욕 필, 토스카니니의 전설적인 NBC 교향악단,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도 Conn 8D를 애용하게 되었고, 동부에서 서부의 LA필까지 Conn 8D가 대세가 되었다. Conn 8D는 1980년대까지 미국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다. 뉴욕 필 수석 호른 주자인 필 마이어스(Phil Meyers)에 따르면 조사결과 1994년 당시 미국 오케스트라에서 콘 8D가 70%의 점유율을 차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가이어(Geyer)/크놉(Knopf) 스타일의 악기가 유행하면서 1990년대 이후에는 Conn 8D에서 가이어/크놉 스타일 악기로 갈아탄 악단도 제법 된다. 오랫동안 Conn 8D를 애용했던 뉴욕 필하모닉도 이제는 슈미트 등의 악기를 쓰는 연주자가 많아졌고,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도 Conn 8D에서 가이어/크놉 스타일로 갈아탔다. 그러나 지금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등 여러 악단에서 Conn 8D를 애용하고 있다.
LA 헐리우드 스튜디오에서도 Conn 8D 같은 크루스페형 호른을 애용한다. 요즘도 쿠르스페형 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문율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가이어 스타일 호른은 좁은 스튜디오에서 크루스페 스타일 호른 만큼 좋은 소리를 얻기 힘들고, 쿠르스페 스타일 호른은 좁은 스튜디오에서도 아름다운 음색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대규모 오케스트라에서도 웅장한 사운드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가이어랩을 사용하는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가 녹음한 영화음악 음반을 들어보면 LA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사운드트랙보다 호른 사운드가 가볍고 딱딱하게 들린다. 헐리우드에서는 주로 Conn 8D를 많이 쓰지만 야마하나 한스 호이어에서 나온 쿠르스페 스타일 악기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11.4.2. 가이어(Geyer) 스타일 및 크높(Knopf) 스타일


독일에서 금관악기 공방의 성지로 불리는 마르크노이키르셴(Markneukirchen)에서 크높(Knopf)의 도제(제자)로 악기 제작 및 수리를 배웠던 칼 가이어는 악기 수리 수요가 늘고 있던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 악기 수리점에서 일하다가 1920년부터 자신의 공방을 개업했다. 칼 가이어는 오늘날 가이어 스타일로 불리는 악기를 제작하여 시카고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사실 가이어의 호른은 그가 악기 제작을 배웠던 크높의 악기를 약간 개량한 것이었다. 가이어 스타일 호른은 크루스페 스타일보다 늦게 미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빠르게 보급되어 크루스페 스타일과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가이어 호른 역시 독일에서 유래된 악기지만 독일에서는 점유율이 높지 않은 반면 미국에서 훨씬 인기리에 사용되고 있다. 가이어 스타일의 호른을 사용하는 오케스트라로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대표적이다. 시카고 심포니는 가이어 외에도 C.F.슈미트(Schmidt)[46] 등을 많이 사용했는데, C.F.슈미트가 단종되어 더 이상 사용하기 힘들게 되자[47] 전부 가이어 호른으로 갈아탔다. 가이어랩의 대표적인 장인인 루이스의 공방이 시카고에 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친 듯 하다. 한편 보스턴 심포니는 지금은 가이어 호른의 대표적인 악단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크루스페랩, 가이어랩, 알렉산더103랩 등이 두루 사용되던 악단이었다. 미국에서도 가장 동쪽에 있는 도시기 때문에 유럽 이민자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크루스페 스타일 호른이 다소 어두우면서 유려한 음색을 지닌 반면, 가이어 스타일 악기는 밝지만 약간 거칠고 투박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크루스페 스타일보다 가이어 스타일 호른이 더 손쉽게 연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최근에 말러 등 고난이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레퍼토리가 확산된 것도 가이어 호른의 선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크루스페 스타일 악기로 Conn 8D 모델이 독보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반해, 가이어 스타일 호른은 비교적 다양한 메이커가 사용되고 있다.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에서는 가이어 스타일의 악기로 Lewis, Hill, Rauch, Atkinson, Geyer, Medlin, Peterson 등을 사용하고 있다. 지리적인 인접성이 악기의 선택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 시카고 심포니의 경우 시카고에 공방이 있는 루이스를 애용하고, LA필은 캘리포니아에 공방이 있는 앳킨슨을 많이 사용한다.
크높(Knopf) 스타일 호른은 가이어 스타일과 비슷하기 때문에 가이어 스타일에 포함해서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악기 특성도 비슷하기 때문에 가이어와 마찬가지로 크높 스타일 호른도 미국에서 많이 사용되는 편이다. 유럽에서는 가이어보다 크높 스타일이 선호되는 편이다. 아무래도 미국으로 이민간 가이어와 달리 크높이 독일에 계속 남아있었던 것도 영향을 미친 듯 하다. 미국에서는 Berg, Yamaha, E.Schmid, 유럽에서는 E.Schmid, Yamaha, Ricco-Kühn, Dieter otto 등이 사용되고 있다.

11.5. 프랑스


프랑스는 1970년대까지 피스톤 호른을 고수할 정도로 호른의 사용에서 보수적이면서 독특한 전통을 고수해 왔다. 셀마 피스톤 호른의 영향으로 60년대까지 매우 어둡고 비브라토가 심한 톤을 고수해왔으나 악기의 현대화를 이룬 오늘날에는 오히려 상당히 밝은 톤을 내는 연주자들이 많다. 악기는 서유럽에서 유명한 메이커들이 두루두루 쓰이고 있는 듯하다.

11.6. 이탈리아


이탈리아 역시 과거 프랑스처럼 어둡고 비브라토가 심한 톤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에 비해서는 그래도 약간 밝은 톤이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경우 대부분 팩스먼 20M을 쓰고 있다.

11.7. 러시아


러시아 호른 주자들은 피스톤 호른을 주로 쓰던 시기의 프랑스 연주자들과 비슷하게 비브라토가 매우 심한 주법을 고수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예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예브게니 므라빈스키의 지휘로 1960년 서유럽 순회 공연 중 도이체 그라모폰에 녹음한 차이콥스키교향곡 5번 2악장 초반에 등장하는 호른 솔로를 들어보면 꽤 빠르고 진폭이 큰 비브라토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서유럽 혹은 중부 유럽의 비교적 매끈한 연주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비단 호른 뿐 아니라 트럼펫도 직선적인 사운드 속에 상당히 강렬한 비브라토를 넣어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소련 붕괴 후에는 서방과 문화 교류가 확대되면서 서구 유학파 연주자도 나오면서 이러한 경향이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특히 수석 주자가 솔로 연주를 할 때는 여전히 그런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오케스트라 안에서는 악기를 통일하는 경향이 어느 정도 있다.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 필(알렉산더 403)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팩스먼 25)가 그렇다. 매우 독특한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악기는 놀랍게도 서방에서 쓰는 악기를 주로 쓰고 있다. 현재 러시아 메이저 오케스트라는 알렉산더와 팩스먼 호른의 점유율이 높다. 알렉산더의 경우 많이 쓰는 103이나 1103을 쓰는 경우가 적고 403이나 데스칸트 모델, 트리플을 쓰는 경우가 많다.

[1] 복수형은 Hörner[2] 복수형은 Corni[3] 미국에서는 크러스피 등으로 발음한다고 한다.[4] 하지만 목관 5중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일부 책은 목관악기로 설명한다. 그래서인지 오케스트라에서 앙상블을 할때 금관 앙상블 목관 앙상블을 둘 다 하는 경우가 많다.[5] 때문에 호른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에게 은근히 절대음감 소유자가 많다. 이는 오보에도 동일하다.[6] 오보에의 리드 또한 크기가 작아서 소리내는게 매우 어렵다.[7] 독일사람들에게 호른이라고 하면 못 알아 듣는다. 외래어 표기법 상으론 모든 r을 ㄹ로 적지만 실제 발음은 모음 앞의 r만 ㄹ처럼 들리고 Horn처럼 자음 앞에 r이 오면 '호언'이나 '호흔'처럼 들린다. 어떤 음대에서는 학생이 호른이라고 부르니까 교수가 무식한 놈이라고 쌍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8] 피타고라스의 배음 이론에 따른 법칙. 배음만으로는 모든 반음을 연주할 수 없다.[9] 보통 핸드 스토핑으로 음을 내면 음색이 크게 달라지는데, 이를 이용한 것이 폐쇄음 주법이다. 연주법 항목 참조.[10] 피스톤 트롬본을 거본을 거부한 트롬본의 경우도 비슷하다.[11] 슈트라우스는 뮌헨 왕립 가극장의 호른 수석이었는데, 당시 뮌헨 궁정의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고, 덕분에 라인의 황금 이후 바그너의 모든 작품은 뮌헨 왕립 가극장 오케스트라가 초연했다.[12] 알렉산더를 개조한 어센딩 호른을 사용하는 프랜시스 오벌(Francis Orval)에 따르면 어센딩 악기가 고음에서 더 안정성이 있다고 한다.[13] 물론 B♭조는 풀 관을 이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14] 현 로얄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15] 베를린 필의 스테판 예치어스키를 비롯한 여러 미국 출신 호른 연주자들이 이점을 언급했다.[16] 다만 시기가 2차대전 끝난지 10년도 채 안 된 탓에 영국인 대가가 과거 적국이었던 독일 악기를 쓴다는 것이 거시기했는지, 이후 영국 회사인 팩스먼에서 새로이 싱글호른을 제작해 브레인에게 증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브레인은 팩스먼의 증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알렉산더만 사용했다. 어쩌면 마음이 바뀌기 전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떳을지도..[17] 악보에 적힌 도(C)음을 불면 그 밑의 파(F)음이 나온다.[18] 그래서 이 대목 전까지는 7대였던 호른을 이 부분에서 세 대 늘려서 10대 쓰도록 했다. 이후 개정할 때는 호른을 증편하는 대신 트럼펫과 트롬본을 한 대씩 붙여서 해당 악구를 강화시키라는 지시를 첨가했다.[19]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최초의 더블호른을 알렉산더가 개발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최초의 풀더블호른은 알렉산더보다 10년 먼저 크루스페가 개발했다.[20] 한국 최초로 브루크너 교향곡 전 11곡을 완주한 제주도립교향악단도 바그너 튜바가 사용되는 7~9번을 공연했을 때 서울 공연을 제외하면 테너 바그너 튜바 대신 호른을, 베이스 바그너 튜바 대신 트롬본을 사용했다.[21] 교향곡 제3번에서 세 대의 호른이 모든 같은 조로 사용되었는데 이때도 호른 중 1,3번에 고음을, 2번에 저음을 할당했다.[22] 미국 일리노이 출신이다. 인근 시카고 심포니 단원들로부터 호른 레슨을 받았다.[23] 평소에는 해맑은 미소를 짓는 얼굴이지만, 수석 자리에서는 중압감에 짓눌린 듯 항상 미간을 찌푸린 표정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24] 1984년 베를린 필 세컨드가 공석이 되었을 때 그 자리를 채우기도 했고, 이후에는 게르트 자이페르트의 어시스턴트 등 고음으로 기용되기도 했다.[25] 독일이 통일된 이후인 90년대초 한 서독 출신의 연주자가 구 동독 지역인 드레스덴의 오케스트라를 방문하자 드레스덴의 단원들이 무슨 악기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서독 출신 연주자는 "알렉산더 103이라는 악기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26] 현재 알렉산더에서는 가이어/크노프형에서 유래된 1103, 503 모델만 나오고 있다.[27] 뮌헨 ARD콩쿨의 초대 우승자로 1964년부터 1993년까지 베를린 필의 호른 수석을 역임했다.[28] 현재 베를린 필 디지털 콘서트 홀에 올라와 있는 몇몇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브람스 교향곡 3번에서 야마하 662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에서 야마하 567을 사용하고 있다.[29] 1914년생 요제프 펠레바(Josef Veleba) 이후 1937년생 롤란트 베르거(Roland Berger)가 입단하기 전까지 신입단원이 없었다.[30] 베를린 국립오페라 수석이었던 미국 오케스트라들로부터 베르거에게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가 이어지자 괴벨스의 보고를 받은 히틀러가 그를 미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의 출국을 금지시키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르거가 오스트리아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히틀러의 지시는 이행되지 못했다.[31] 베르거는 빈 필에서도 B♭ 싱글호른이나 더블호른을 사용했다.[32] 롤란트 베르거가 공식적으로 빈 필의 수석이 된 것은 노장 단원들이 모두 은퇴한 196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50년대 말부터 베르거는 녹음세션에서 비공식으로 수석파트를 전담했으며, 정기연주회가 아닌 공연이나 해외순회공연에서 거의 항상 수석자리에서 연주했다. 이런 경우 '정식 수석'인 아버지 한스 베르거가 어시스턴트로 롤란트 옆에서 연주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다.[33] 반면 또 다른 수석이었던 귄터 회그너는 빈 호른으로는 취업해서 밥벌어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더블호른을 가르쳤다고 한다.[34] 사실 간터 등에서 계속 빈 호른이 생산되긴 했지만 빈 필에서는 야마하제 호른만 사용했다. 야마하 빈 호른의 개발과 생산에는 빈 필 단원들이 깊이 참여했다.[35] 기무라 빈 호른은 특히 수석주자 슈트란스키가 한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슈트란스키가 DG에서 녹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호른협주곡 1번도 기무라 빈호른으로 연주되었다. 기무라가 불미스러운 일로 악기 제작을 중단하였기 때문에 현재는 생산되고 있지 않다.[36] 80년대부터 수석단원으로 재직하다가 현재는 4번으로 내려왔다. 동명의 아버지도 빈 필 호른 수석을 역임했으며 둘을 구별하기 위해 아버지 이름 뒤에 sen, 아들 이름 뒤에 jun을 붙인다.[37] 이게 다 토머스 비첨 탓이다. 갑붓집 아들인 비첨은 런던 심포니와 사이가 틀어지자 스스로 런던 필을 창단한 후, 런던 필과도 사이가 틀어지자 월터 레그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창단에 관여해서 날로 먹으려 했는데, 레그가 오케스트라를 카라얀에게 넘기자 이번에는 로열 필을 창단했다. 런던 한 도시에 지나치게 많은 오케스트라가 난립하는 바람에 런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처우는 독일이나 미국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런던 오케스트라들은 만성적으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고 일부는 주기적으로 해체설이 반복되고 있다.[38] 만년에는 크루스페랩을 약간 개량한 홀튼도 사용했다.[39] 1980년대[40] 그러나 니컬러스 부쉬가 사용하던 알렉산더 90은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브레인과 시빌의 악기와는 근본적으로 관의 레이아웃이 다른 형태의 악기였다. 오늘날에는 단종된 악기다.[41] B♭ 튜닝관이 달린 후기형 크루스페 악기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뫼니히, 홀튼H104 등과 동일한 형태[42] B♭/F 체인지 밸브가 피스톤인 걸로 유명하다.[43] 최근 LA필 수석 앤드류 베인이 베를린 필 객원연주자로 갔다온 후 가이어랩의 Atkinson에서 알렉산더 103으로 악기를 바꾸었다. 현재 미국의 20대 오케스트라 선에서 유일하게 알렉산더를 사용하는 연주자다.[44] 최근 개인 악기로 알렉산더를 사용하는 사람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오케스트라에서 알렉산더를 사용하는 연주는 정말 찾아보기가 어렵다.[45] 미국에서는 크러스피 등으로 발음한다고 한다.[46] Engelbert Schmid와는 전혀 별개의 메이커다.[47] C.F.슈미트는 몇몇 메이커에서 카피되었지만 별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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