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공메달
Медаль "За боевые заслуги"
Medal "For Battle Merit"
군공메달
외형
1938년 10월 17일에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Президиум ВС СССР)의 법령에 따라 용맹메달과 함께 제정되었다. 소련의 메달 중에서는 노농적군 20주년기념메달 다음이자 두번째로 제정된 원로메달이다. 용맹메달과 쌍을 이루는 메달이지만 훈격은 용맹메달이 선행한다. 용맹메달이 말 그대로 '개인적으로 수행한 용기있는 행동'을 치하한다면 전공메달은 '군사작전에 대한 협력적인 공훈'을 치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개인보다는 부대원을 기준으로 수여되는 메달에 가까웠다. 다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에는 이런 구분도 사실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소련 해체 이후에 러시아 연방에서는 도입되지 않은 메달이다.
이 메달은 군사작전 성공의 적극적인 기여, 군사 준비태세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되었으며, 군인이 아니어도 수훈할 수 있었다. 또한 외국인에게도 수여되었다. 총 수여인원은 용맹메달보다 다소 많다.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는 1944년 6월 4일 법령을 통해 10년을 근속한 소련군 장병에게도 이 메달을 수여하도록 결정하였는데, 1958년에 근정메달이 제정되자 중단되었다. 이 메달은 정장/약장 모두 우샤코프메달 다음에 패용한다. 소련 해체시까지 대략 5,210,078회 수여되었다.
메달의 지름은 31밀리미터에서 32.5밀리미터까지 부침이 있으며 메달 전체를 순도 925‰의 은으로 만든다. 따라서 메달은 전체적으로 은색이다. 사용되는 은의 총량은 18.22그램이고, 메달의 총 무게는 대략 20그램이다. 메달의 상부에는 메달 테두리를 따라서 붉은색 에나멜로 채색된 '소련(СССР)' 이라는 글자가 있었고, 가운데에는 '전투 위훈을 치하하여(ЗА БОЕВЫЕ ЗАСЛУГИ)'라는 문구가 3줄로 나뉘어 부조되었다. 그리고 글귀 아래에는 모신나강 M1891 소총과 기병도(Шашка)가 X자로 교차된 그림이 있었다.
1938년의 제정 당시에는 다른 소련의 훈장들과 마찬가지로 군공메달도 붉은색 리본이 달린 지지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1943년의 규정 변경으로 새로운 리본이 도입되었다. 메달의 리본은 배경색을 회색으로 하여, 2밀리미터 두께의 노란색 줄이 리본의 양 끝단에 배치되었다.
같이 제정된 메달인 용맹메달과는 달리, 이 메달의 개념을 유지하는 국가는 아르메니아 뿐이다.
Medal "For Battle Merit"
군공메달
외형
1. 개요
1938년 10월 17일에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Президиум ВС СССР)의 법령에 따라 용맹메달과 함께 제정되었다. 소련의 메달 중에서는 노농적군 20주년기념메달 다음이자 두번째로 제정된 원로메달이다. 용맹메달과 쌍을 이루는 메달이지만 훈격은 용맹메달이 선행한다. 용맹메달이 말 그대로 '개인적으로 수행한 용기있는 행동'을 치하한다면 전공메달은 '군사작전에 대한 협력적인 공훈'을 치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개인보다는 부대원을 기준으로 수여되는 메달에 가까웠다. 다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에는 이런 구분도 사실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소련 해체 이후에 러시아 연방에서는 도입되지 않은 메달이다.
2. 수훈 대상과 사유
이 메달은 군사작전 성공의 적극적인 기여, 군사 준비태세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되었으며, 군인이 아니어도 수훈할 수 있었다. 또한 외국인에게도 수여되었다. 총 수여인원은 용맹메달보다 다소 많다.
'''수훈 대상'''
* 일반 소련인
이 메달은 1938년 10월 19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의 포고령에 따라 186명의 노농적군 장교 및 병사들에게 최초로 수여되었다. 그리고 하산 호 전투가 발생하자 참전한 장병들에게 대대적으로 수여되었는데, 1938년 10월 25일에 하산 호(Озер Хасан) 지역 방위의 공훈을 치하하여 1,158회가 수여되었다. 그리고 동년 11월 13일에도 248명의 군인에게 수여되었으며, 1939년 1월 19일에도 극동 지역에서의 군사목표 달성을 치하하여 39명에게 수여되었다. 하산 호 전투 이후에 다시 대대적인 수여가 있었던 때는 바로 할힌골 전투 시기였으며, 총 2842명에게 이 메달이 수여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대략 21,000명이 이 메달을 받았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이 메달은 병사, 부사관, 초급장교, 그리고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위훈이 있는 자에게 대대적으로 수여되었다. 전후 1956년에 헝가리 혁명[1] 진압을 위해 투입된 소련군 장병들에게도 수여되었으며 '제7 근위 항공강습사단(7-я Гвардейская воздушно-десантная дивизия)'에서만 196명의 수훈자가 나왔다.'''수훈 사유'''
* 전투에서 용맹, 주도적, 기민한 행동으로 각 부대단위의 전투목표에 기여
* 소련 국경 수호시 발휘한 용기
* 전투 혹은 정훈 준비태세의 탁월한 성공 혹은 새로운 군사기술 도입
* 높은 전투준비태세 유지, 기타 군 복무 중의 공훈
* 전선에서 독일 침략자와의 전투에서 군사 지휘임무의 모범적 완수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는 1944년 6월 4일 법령을 통해 10년을 근속한 소련군 장병에게도 이 메달을 수여하도록 결정하였는데, 1958년에 근정메달이 제정되자 중단되었다. 이 메달은 정장/약장 모두 우샤코프메달 다음에 패용한다. 소련 해체시까지 대략 5,210,078회 수여되었다.
3. 형태
메달의 지름은 31밀리미터에서 32.5밀리미터까지 부침이 있으며 메달 전체를 순도 925‰의 은으로 만든다. 따라서 메달은 전체적으로 은색이다. 사용되는 은의 총량은 18.22그램이고, 메달의 총 무게는 대략 20그램이다. 메달의 상부에는 메달 테두리를 따라서 붉은색 에나멜로 채색된 '소련(СССР)' 이라는 글자가 있었고, 가운데에는 '전투 위훈을 치하하여(ЗА БОЕВЫЕ ЗАСЛУГИ)'라는 문구가 3줄로 나뉘어 부조되었다. 그리고 글귀 아래에는 모신나강 M1891 소총과 기병도(Шашка)가 X자로 교차된 그림이 있었다.
1938년의 제정 당시에는 다른 소련의 훈장들과 마찬가지로 군공메달도 붉은색 리본이 달린 지지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1943년의 규정 변경으로 새로운 리본이 도입되었다. 메달의 리본은 배경색을 회색으로 하여, 2밀리미터 두께의 노란색 줄이 리본의 양 끝단에 배치되었다.
4. 여담
같이 제정된 메달인 용맹메달과는 달리, 이 메달의 개념을 유지하는 국가는 아르메니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