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동(남양주)

 


<colcolor=#fff><colbgcolor=#6fb711> '''금곡동'''
金谷洞 / Geumgok-dong

'''광역자치단체'''
경기도
'''기초자치단체'''
남양주시
'''인구'''
18,981명[1]
'''면적'''
6.927㎢
'''하위 통'''
30통
'''자치센터
소재지'''
석실로 724
금곡동 주민자치센터
1. 개요
2.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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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동이다.

2. 설명


남양주시청[2]이 있는 곳이며, 과거 미금시[3]의 중심지였다. 통합 남양주시가 출범한 이후로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도심의 지위를 누렸으나[4] 주변의 호평동, 평내동, 다산동(구 도농동, 지금동), 덕소(와부읍) 등이 크게 발전하면서 힘을 크게 잃었다. 발전을 더 해보려 해도 문화재[5]와 이웃한 일패동[6]의 군부대가 가로막고 있는 현실. 그래도 남양주에서 금곡동 정도면 교통이 도농보다는 조금 떨어지지만 괜찮은 수준이다.
시청을 이전한다는 소리가 있지만 돈이 없는지 떡밥만 무성하고 별 얘기가 오가지 않고 있다. 불도저 스타일로 이름난 현 이석우 시장 체제에서도 전 시장에 비해 대규모 사업을 벌였으나 시청은 잘만 있다. 다만 다산신도시 계획이 구체화되고 공사가 진행되어가면서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시청은 다산신도시로 가는게 확정되었으나 2028년 이후로 보류되어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미 금곡이 슬럼화된 상황에서(동곡초 쪽은 제외) 인구 감소 등의 침체를 피하기 힘든 상황. 시청마저 옮겨갈 경우 남양주시에서 제일 발전이 더딘 곳이 될 것이다. 슬럼화의 경우 금곡초등학교 일대 주택들이 상당히 낙후되었는데, 정문(4-5년 전만 해도 후문이었다)으로 나가거나 파출소 뒤로 올라가다보면 정말 구룡마을, 재건마을, 백사마을 같은 분위기 나는 달동네가 작게 존재하고[7], 더 위에 있는 빌라들 앞도 낙후됨을 면치 못하고 있다. 큰 도로(금곡사거리) 하나를 두고 차이가 엄청나다. 가뜩이나 홍유릉 때문에 개발 가능성도 희박한데, 먹고 살 기반마저 떨어지게 된 위태로운 상황이다. 결국 인근 신규 택지들의 입주 일정과 맞물려 2019년 8월 한달동안만 170명이 감소해 2만명 선이 붕괴되어 버렸다. 그나마 도시재생사업에 1차로 선정된 걸 희망의 끈으로 붙잡을 순 있다. 마침 슬럼화된 북쪽 지역이 경춘선 전철과 가까워서 재건축이 찔끔 이뤄지고 있고 청년주택도 건립될 예정이다.
문화재로는 고종명성황후 민씨, 순종순정효황후 윤씨가 합장된 홍유릉이 유일하다.[8] 금곡동의 이름을 따 '금곡릉'이라고도 불린다. 역대 조선왕릉이 제후국의 예로 조성되었으나,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이기 때문에 이곳은 '''황제릉의 격식으로 조성된 유일한 능역'''이다. 시/도의원과 지역구 국회의원이 선거때마다 고도제한, 범위 규제 완화를 내세우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있어 그런 시도는 더욱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사실 많은 지역 주민들이 문화재가 있어 발전이 힘든 데 힘들어하기도 하고 나라를 망친 임금들의 무덤이라고 깔 정도이나, 문화재는 마땅히 보전해야 한다.
대중교통버스의 경우 KD 운송그룹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1990년대 후반부터 KD의 영향력이 커져가더니 2010년대 들어서는 거의 대부분의 노선들을 쥐고 있다. 수많은 노선들 중 165번의 인지도가 가장 높은데, 1970년대부터 금곡에 종점을 두고 장사를 한 역사가 깊은 시내버스이기 때문이다. KD그룹에 속한 서울 시내버스 업체 대원교통의 시초였던 금성교통은 금곡의 '금(金)'을 따와 '성(城)'을 붙여 이름지어졌다. 지금 종점은 2000~2001년 즈음 호평동으로 이사갔고 금곡 종점은 구종점으로 남으면서 지금까지도 금곡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시내(?)를 '종점'이라고 부르는 일이 많다. 버스 정류장 이름도 '금곡동구종점'이고... 이 구종점의 위치는 센타프라자 상가 자리였으며, 건너편 국민은행 옆 중앙의원 건물이 원래는 버스 회사 사무실이었다.
철도의 경우 경춘선 광역철도역인 금곡역이 이 동네에 있다. 다만 배차간격 안습에 상봉에서 끊어지는데다 결정적으로 동네 외곽에 있다. 얼마나 외딴 곳에 있냐면, 거기서 조금만 더 걸어나가면 진건읍이며, 조선왕릉 사릉을 가려면 사릉역보다 금곡역을 이용하는 게 더 편리할 정도이다.[9] 전철 개통 전에는 46번 국도변에 있어서 구리, 도농 등지에서 경춘선 무궁화호를 이용하러 많이 오다보니 남양주의 경춘선 역들 중 가장 승객이 많았는데 전철 개통 이후 남양주에서 가장 승객수가 적은 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급행 전철이 서지 않아 어쩔 때는 '''40분'''을 기다려야 하는 시절도 있었지만 ITX-청춘이 생기고 나서는 25~30분 간격으로 조금 좁혀졌다. 뭐, 무궁화호 다녔던 시절에는 1시간 간격이었지만... 그러나 일정하게 30분 가량의 텀이 있는 것도 불편한데 종착지 또한 대부분 상봉이라 금곡역을 두고 도농역까지 가는 주민들이 많다. 실제로 거기서 금곡, 특히 73동원사단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를 탄다면 동곡초 앞 택지지구에서 내리는 승객들을 제법 볼 수 있다.
학교는 금곡초등학교, 동곡초등학교, 금곡중학교와 금곡고등학교가 위치해있다. 금곡고등학교의 질이 좋지 않다는 평이 있지만, 그래도 구리 남양주에서 몇 안 되는 특성화고등학교여서 타지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사실 동네 자체가 남양주 다른 곳과 비교해봐도 학구적인 분위기와 매우 거리가 멀어서, 몇몇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평내, 도농, 덕소에 있는 중학교를 가려고 할 정도이다.
여담으로 같은 남양주 진접읍에도 금곡리가 있다.[10] 원래 아무것도 없는 동네였는데 진접택지지구 개발로 많이 변화했다.[11] 참고로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이 둘을 꽤나 헷갈려하거나 금곡리가 있다는 걸 모른다(…)[12] 다만 금곡리 아파트 단지 구역에 지어진 학교들에는 인근 옛 자연부락 '주리골'에서 따와서 주곡초등학교/주곡중학교라고 이름이 붙어있다. 행정구역을 바꾼다면 여기는 주곡동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
동곡초 방면 주민용 도로는 홍릉천이 복개돼 있다.


[1] 2021년 1월 주민등록인구[2] 1989년부터 1994년까지는 미금시청. 지금동에 있는 남양주시청 2청사는 1980년부터 1994년까지 남양주군청이었다. 다만 미금시 출범 당시 미금시청은 현재 1청사가 아니었다. 금곡구사거리에 위치했던 미금읍사무소를 잠깐 임시로 시청으로 쓰다 보니, 간혹 주민들 사이에서 (구) 미금시청앞이라는 말이 쓰이기도 한다.[3] 남양주시의 동 지역(별내동 제외)으로 미금읍이었던 게 승격한 것이다.[4] 다만 구리시의 존재 때문인지 서쪽의 도농, 지금동에서는 잘 찾지 않았다.[5] 500m 반경 범위 내에서 20층 이하 고도 제한이 있다.[6] 양정동이 관할하는 법정동 중 하나[7] 밤에 가로등도 꺼져서 위험하다[8] 영친왕이방자 여사가 합장된 '영원'과 덕혜옹주의 묘도 여기에 있다.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구성원들이 모두 여기에 묻혔다.[9] 애초에 사릉역에서 사릉이라고 불리우는 동네를 가는 버스들은 많아도 '사릉'을 가는 버스는 없다(…)[10] 두 지역 한자가 완전히 똑같다. 한자로 金谷里이며, 이 지역이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였을 때, 양주군 진접면 금곡리도 있었고 현재도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로 있는 지역이다.[11] 재미있는 사실은 금곡리가 금곡동보다 인구수가 많다.(!)[12] 실제로 KB국민은행 남양주(과거에는 금곡)지점과 KB국민은행 진접금곡지점이 실제로 따로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헷갈려하니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