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수(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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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광복회 회장 김원웅의 부친이다. 그러나 최근 독립운동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 생애
김근수는 1912년 9월 27일 경상남도 진주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의성 김씨 이계공파 33세손으로, 일찍이 만주로 건너갔다. 김근수가 후에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공적서에 따르면, 그는 1931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 비서관을 역임했고, 1935년 중국 난징으로 이동하여 의열단에 입단해 연락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이후 1941년에는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에 가담해 선전 및 정보수집 활동을 벌였으며, 이준식이 이끄는 광복군 제1지대에 소속되어 산시성, 화베이성 등지에서 지하공작에 참여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중국 동북지역 총책이라는 지위를 숨기고 '왕석(王石)'이라는 중국인 엿장수로 살다가 일본 순사에게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그러다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소변을 본다는 핑계를 대고 기차에서 뛰어내려 탈출했고, 건강을 회복한 뒤 다시 임시정부에 복귀했다고 한다. 1942년 김구의 주선으로 19살의 나이로 광복군에서 활동하던 전월순과 결혼했다고 하며, 광복 직전인 1945년에는 한미연합작전의 한국측 대표로 미국 정보기관인 전략정보국(OSS)과 함께 광복군과 미군의 국내 상륙을 위한 OSS작전을 추진했다고 한다.
8.15 광복 후 국내로 귀환한 그는 성남에서 평범하게 지내다 1992년 1월 30일 경기도 성남시 궁내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김근수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92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그러나...'''
3. 논란
2020년 9월 7일, 의열단 창단에 앞장섰던 권준의 후손이자 광복회 대의원인 권영혁씨, 광복회 대의원 김기봉, 전영복씨는 김원웅 광복회장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그들은 "회장님의 선친이신 김근수 지사님의 1935년 의열단 입단 기록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국가보훈처 공훈 기록상에도 1939년 8월부터 1941년 3월까지 조선의용대 대적선전공작원으로 항일투쟁 활동을 하셨다고 기록되고 있다"면서 "김근수 지사의 의열단 입단 근거를 제시하고, 광복군 활동 기록에 김원웅 회장 부모의 기록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김근수가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공적서인 <독립운동사 6권> 373, 511, 512쪽 자료와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운동사 5>는 "독립유공자유족회라는 유령단체를 만든 김영근이 저술한 책(건국훈장수여자공훈록)으로, 광복군 측이 제작한 자체 자료로서 역사학계의 고증이나 검증을 거치지 않았기에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자료로 평가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역사학계에서는 광복군 측이 제작한 자료 명단에 포함된 상당수의 인물들이 가짜이며, 거짓 보증으로 가짜 광복군이 양산 되었다고 보고 있다고 한다.
광복회 대의원 3인은 “애국지사 김근수‧전월순 선생에 대한 독립 운동 자료가 전무한 데도 불구하고, 김근수 선생은 1977년 최초 건국 포장을 받은 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고, 전월순 선생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면서 “역사 정의와 광복회 명예회복 차원에서 우리 대의원들의 충정을 거절하지 마시고, 의혹이 불식될 수 있도록 이번 9월 중 회장님의 명백한 해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
2020년 10월 6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김원웅 광복회장 부(김근수),모(전월순) 가짜독립운동가 의혹 진상조사 청원>이 게재되었다.# 청원에 따르면, 김근수가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 비서관을 지냈다는 공적 조서기록은 거짓이라고 한다. 당시 임시정부에는 경무국이 없었고, 경무국비서관이란 직책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김근수가 의열단원이라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1919년에 출범한 의열단 명단에 그의 이름이 없을 뿐더러, 1932년 난징에서 조선혁명 간부학교가 출범했을 때 이 학교의 입학자, 졸업자 명단에도 없었고, 1935년 김원봉이 조선의열단원들을 모아 조선혁명당을 창당할 때 참여자 명단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독립기념관이 그동안 발간한 수많은 광복군 관련 자료집과 논문에도 김근수와 전월순 관련 기록이 전무하며, 심지어 자신이 활동했다는 광복군 1지대 등 그 어떤 곳에도 두 사람의 성명이나 사진 등 활동기록이 없으며, 광복군 연구에 있어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역사학자 단국대 한시준 명예교수의 ‘한국광복군’이라는 유명한 연구 책자에도 김근수, 전월순에 대한 자료는 전무하다고 한다. 그리고 김근수와 전월순이 김구의 주선으로 결혼했다는 것 역시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