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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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山
1898년 10월 12일 ~ 1984년 08월 20일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8년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중국 난징 금릉대학(현 난징대학) 신학과를 졸업하였다.
한편, 동명의 인물처럼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여 1년 간 투옥되었다. 이후에도 혁명단체 한중동지사를 조직하는 한편, 중국 동방약소민족연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8.15 광복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중앙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이기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통합야당 민주당에 입당하여 서울특별시당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최규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게다가 이승만 독재정권에 의해 무리하게 구속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민정당에 몸담았다가 국민의당으로 옮겼다. 같은 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윤제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독립당#s-6 전국구 국회의원 제4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윤제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金山
1898년 10월 12일 ~ 1984년 08월 20일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8년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중국 난징 금릉대학(현 난징대학) 신학과를 졸업하였다.
한편, 동명의 인물처럼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여 1년 간 투옥되었다. 이후에도 혁명단체 한중동지사를 조직하는 한편, 중국 동방약소민족연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8.15 광복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중앙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이기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통합야당 민주당에 입당하여 서울특별시당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최규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게다가 이승만 독재정권에 의해 무리하게 구속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민정당에 몸담았다가 국민의당으로 옮겼다. 같은 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윤제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독립당#s-6 전국구 국회의원 제4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윤제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