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근
1. 개요
1956년 1월 26일[1] 전라남도 광주시(현 광주광역시) 출생. 군산상고, 단국대를 졸업했으며, 전 해태 타이거즈,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MBC 청룡에서 뛴 외야수였다.
아마 때 좋은 성적을 보였으나 프로야구에서는 나이 탓인지 그다지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며 여러 번의 이적 끝에 은퇴했다.
2. 선수 생활
김우근이 재학 당시 군산상고는 김봉연, 김준환 등과 함께 레전드 성적을 찍던 시절로, 김우근 또한 주전 외야수로 좋은 활약을 펼치며 1972년 열린 한일 프로야구 친선전에 국가대표로도 출전할 정도였다. 대학교 때도 1977, 1978년 미국으로 원정가는 대학야구 팀에 뽑히는 등 좋은 성적을 보였으며 프로야구 출범 전에는 포스틸 야구단과 경리단 에서 뛰었다.
이렇듯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많은 기대를 받으며 해태 타이거즈 창단멤버로 시작해 올스타 멤버에 팬 투표로 베스트10 중견수 부문에 뽑히기도 했으나 그 해 결국 0.189의 타율로 마감했다.
1983년에는 출전 기회도 못잡아 전반기에 6타수만 뛰고 삼미에 1천2백만원의 현금트레이드로 이적된다. 이적 후에는 양승관을 제외하면 변변찮은 외야수가 없고 그 양승관은 부상으로 자주 빠지는 팀 사정(…)덕에 출전을 자주하게 된다. 1984년에는 타율은 0.262에 불과하지만 다시 한 번 올스타에 출전하는데 성공.
1985년엔 시즌 도중 팀이 청보 핀토스로 바뀌기도 했으나 드디어 아마 때의 기량을 찾는듯하며 타율 0.288에 이 해 도루 3위의 기록인 31개의 도루를 기록한다. 하지만 이 때도 에러 때문에 포수인 김진우와 말다툼을 한게 기사로 나오는 등 수비는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85년 시즌 후엔 0.226찍던 신언호를 중견수로 쓰던 MBC 청룡이 다음 년도 중견수&1번 타자감으로 김우근을 눈독들이고 투수 김봉근을 내어주며 1:1 트레이드로 김우근을 영입한다. 청보로서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는데 나이도 나이거니와 당시 김봉근은 방위 근무 중이라 1986년에는 서울지역 야간 경기에나 출전이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 결과를 보면 이 86년이 그나마 김봉근을 제대로 써먹었던 해였을 정도로 두 팀 다 lose-lose였던 트레이드였다.
나름 기대주인 김봉근을 보내고 1번타자 감을 트레이드해온 청룡이었기에 연봉에 인상상한폭인 25%까지 적용시키며 기대를 걸었으나... 그 해 김우근은 폭망. 타율 0.227을 기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룡의 연봉 10% 삭감에 불만을 품고 동결을 요구하며 연봉조정신청을 하나 실패. 1987년에는 타율만 보면 0.275로 괜찮은 편이나 출전 경기가 너무 적다. 거기다 리그 종반, 중요한 경기에 대주자로 나왔다가 안타 때 홈으로 쇄도 중 발이 엉켜 아웃당하며 웃음을 샀다. 그냥 넘어진 것도 아니고 일어났다가 또 넘어지고 또 다시 일어났다가 넘어지고 나서는 기어가다가 아웃된 것. 놀란 김용달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감기약 때문이라고 답 했다는 후문. # 1988년에는 또 연봉협상에 불만을 품고 팀과 다투다가 결국 은퇴.
1988년 시즌이 끝난 후에는 김성근 OB 베어스 감독이 3할을 친 송재박이 못 미덥다며(…) 김우근을 영입하려고 했다는 썰이 있었다.
군산상고 출신답게 2011년에는 레전드 리매치에도 출전했다. 현역 시절에도 별로였다는 수비평가 어디 안 가는지 평범한 뜬공을 놓치면서 그라운드에 넘어지는 개그짤을 기사로 남겼다(…)
3. 기타
마구마구에선 김조근이란 가명으로 등장. 스페밖에 없으나 엘테랑이나 레전드 같은 거 등장하기 전에는 도루가 많고 타율도 그럭저럭이라 중견수로 합격점. 삼미 올스타에서는 84가 청보 올스타에서는 85가 주전이었다.
4. 연도별 성적
[1] 6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