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야마 부시코

 

''' 역대 칸 영화제 '''
[image]
'''황금종려상'''
'''제35회
(1982년)'''

'''제36회
(1983년)'''

'''제37회
(1984년)'''

의문의 실종

'''나라야마 부시코'''

파리, 텍사스

'''역대 일본 아카데미상'''
[image]
'''최우수 작품상'''
'''제6회
(1983년)'''

'''제7회
(1984년)'''

'''제8회
(1985년)'''
카마타 행진곡

'''나라야마 부시코'''

장례식
[image]
'''楢山節考'''
1. 개요
2. 줄거리
3. 등장인물
4. 여담


1. 개요


일본영화. 1983년작.
이마무라 쇼헤이가 1983년에 감독한 작품이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명작이다. 오가타 켄[1], 사카모토 스미코, 바이쇼 미츠코 등의 배우들이 출연하였다. 후카자와 시치로(深澤七郞)의 소설인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동북의 신무들(東北の神武たち)》 등을 원작으로 한다.[2]
19세기 경 일본의 한 척박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이마무라 쇼헤이가 늘 그러했듯이 하층민들의 고단한 삶과 인간의 원초적 욕망 등을 강렬하면서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덕분에 의외로 수위가 쎈 편이다.#1#2 제목인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에서 나라야마[楢山]는 극중에 등장하는 산의 이름이며, 부시코[節考]는 노래를 말한다. 따라소 직역하자면 "나라산의 노래" 정도가 될 것이다.[3]
감독인 이마무라 쇼헤이는 1968년에 감독한 《신들의 깊은 욕망》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한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냈으나, 1979년에는 《복수는 나의 것》을 감독하여 재기에 성공하였고, 이후 이 영화 덕분에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가 감독한 영화 중에서도 특히 수작으로 뽑힌다.

2. 줄거리


영화의 배경은 19세기 에도 시대 말기의 동북지역에 위치한 어느 산골 마을이다. 이 곳의 주민들은 비록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하며 살아가지만, 척박한 환경 때문에 수확량이 적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궁핍하게 살고 있는 데다가 깊은 오지에 있어서 정부의 통제도 거의 받지 않는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나름대로의 룰을 정해놓고 사는데, 특히 식량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에 도둑질을 한 이들은 엄벌에 처한다. 또한 먹는 입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일가족 중 오로지 첫째 아들만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고, 그나마도 갓난 아기들을 버려서 죽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4] 또한 아들들은 부모가 70세가 넘으면 그들을 등에 업고 나라야마라는 산의 꼭대기에 올라서 부모를 버려두고 와야 하는 무서운 전통이 있었다.
주인공인 타츠헤이의 어머니인 오린은 69세가 되자 나라야마에 올라갈 준비를 하기 시작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타츠헤이는 무척 괴로워한다. 그 해에 타츠헤이 가족은 사계절에 따라 농사를 짓고, 새로운 부인을 맞아들이거나, 타츠헤이의 아들 케사키치가 결혼하는 등 여러가지 일을 겪게 된다. 결국 초겨울에 오린이 70세가 되자, 다츠헤이는 어머니를 지게에 싣고는 나라야마의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3. 등장인물


  • 타츠헤이
주인공. 산골마을의 주민으로, 한 집안의 가장이다. 슬하에는 케사키치를 포함한 두 아들이 있으나, 아내와는 사별했다. 그가 사는 마을 주민 대다수는 일반적으로 거친 환경에서 자라난 탓에 비정한 성격을 지녔지만, 타츠헤이는 그들과 달리 따뜻하고 인간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매우 깊다.
  • 오린
타츠헤이의 어머니. 집안의 가장 큰 어른으로, 매우 지혜롭고 현명한 노파이다. 남편이 자신의 어머니를 나라야마에 버려야 한다는 전통을 어기고는 도망치는 바람에[스포일러] 혼자서 자식들을 키워왔다. 70세가 가까워지자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한편, 타츠헤이를 위해 새로운 며느리를 들여오기도 한다. 자애로운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한편으로는 마을의 안위를 위해 손자며느리이자 임신한 마츠야를 사지로 몰아넣는 등 냉정한 면모도 있다.
  • 타마얀
이웃마을의 과부. 오린이 곧 나라야마로 떠날 자신을 대신해서 집안일을 돌보기 위해 새로 들여온 며느리이다. 마음씨가 착하고 성실하며 부지런하며 인정도 많은 편이다.
  • 케사키치
타츠헤이의 큰아들. 줄여서 '케사'라고 불린다. 착한 성품의 아버지와는 달리 거칠고 게으른 성격에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얼굴이 잘생긴 탓에 마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삼촌인 리스케를 바보 취급하며 매일 투닥거린다. 마을 처녀인 마츠야와 사귀다가 마침내 아이까지 얻었다가 마츠야네 가족이 생매장당해서 잃고 큰 실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금세 털고 일어나서 다른 여자를 사귀는 모습을 보여준다.
  • 리스케
타츠헤이의 동생. 집안의 천덕꾸러기이자 감초같은 개그 캐릭터. 장자가 아니기에 마을의 규칙에 따라 결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늘 불만이 많다.[5]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거지도 변변치 않고 철이 덜 든 듯한 인상을 준다. 또한 이상한 병에 걸려서 몸에서 심한 악취가 나는 바람에 마을 여자들은 모두 그를 기피한다.[6] 형과 어머니는 익숙해서 별 신경쓰지 않는 듯 하지만, 다른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와 이야기할 때에는 코를 쥐어막을 지경이다. 심지어 저주를 엑땜하기 위해 마을 남정네들과 하룻밤씩 성관계하라는 남편의 유언을 들은 오에이마저도 리스케만큼은 거부한다. 다행히 이후 어머니 오린의 도움으로 후각이 마비되어 냄새를 맡지 못하는 마을 과부와 동침하며 소원을 성취하게 된다.
  • 마츠야
케사키치와 사귀는 동네 처녀. 이후 케사키치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서 타츠헤이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된다. 그러나 케사키치처럼 게으르고 놀고먹기만 좋아할 뿐, 집안일에는 영 서툴다. 게다가 마츠야의 아버지는 마을의 룰을 깨고 너무 많은 아이들을 낳아 죽이지 않고 키웠다가, 식구들을 부양하기 어려워지자 이웃들의 농작물을 도둑질까지 하다가 발각당해 식량을 모두 몰수당하는 벌을 받는다.[7] 결국 마츠야도 가족들을 위해 도둑질을 하기 시작하고, 이를 알게 된 오린은 마을과 집안의 안녕을 위해 그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결국 마츠야와 그 식구들은 뱃속에 있는 아이와 함께 생매장당해 죽는다.

4. 여담


  • 1998년, 일본 문화 1차 개방 당시에 한국에 수입되어 극장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중 하나이다.[8] 즉, 한국 극장에서 정식개봉한 일본영화 중에서도 1세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최초로 수입된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 겸 주연의 영화 하나비였는데, 바로 직전해인 1997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1차 문화개방이 1998년 10월이었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문화개방 10일만에 개봉했던 하나비를 제외하면, 1차 개방의 대상이었던 이 영화를 포함해서, 카게무샤, 우나기 등은 1999년에 개봉하게 된다. 그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당시에도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왔으나 흥행은 못했다. 영화제, 그것도 유럽쪽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제약과 함께 하나비 정도를 제외하면 개봉한지 시간이 너무 지난 영화였기 때문이다.[9] 한국에서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최초의 일본 영화는 2차 문화개방에 포함되어 있었던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였다[10].
  • 작중에서 오린을 연기한 배우 사카모토 스미코는 [11] 영화 촬영을 위해 스스로 멀쩡한 이까지 뽑는 열의를 보였다. 타츠헤이를 연기한 오가타 켄 또한 오린을 등에 업고 산을 오르는 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40kg의 짐을 메고 등산을 하며 훈련했다. 그 결과 오가타 켄은 해외에서 주목받아 헐리우드에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 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당시 일본 영화계에선 같이 칸 영화제 경쟁 부분에 진출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에 기대를 걸었고 관련 영화계 인사 20여 명이 수상을 점치며 칸으로 향했다. 나라야마 부시코 같은 경우에는 이마무라 쇼헤이 본인 조차 전혀 기대를 걸지 않았는데[12] 영화가 너무나도 동양적이라서 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13] 여주인공 사카모토 스미코와 제작사 대표 2명만이 칸 영화제에 참석했다.[14] 한편 이마무라 쇼헤이는 스태프들이랑 후쿠시마 시골에 농활을 갔다가 도쿄에서 마작을 즐기고 있었다.
정작 칸 영화제에서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아>가 큰 주목을 받았고 황금종려상이 유력해 보였다. 그런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영화 감독 세르게이 본다르추크[15]는 소련 당국의 미움을 받고 있는 안드레이에게 황금종려상을 수상시키면 프랑스와 소련의 외교적 마찰이 있을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고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에게는 감독상이 돌아갔다. 호평이었던 <돈>의 감독 로베르 브레송에게도 감독상이 공동 수여됐는데 수여식 단상에서 수여 증서를 패대기치는 패기를 보였다.
결국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나라야마 부시코에게 황금종려상이 수여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이마무라 쇼헤이는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떠올랐다. 나라야마 부시코 또한 현재 IMDB 평점 7.9점의 고득점으로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16] 이 와중에 황금종려상을 들고 귀국하던 사카모토 스미코는 대마 혐의로 언론에 시달려야만 했다.
  • 만화가 강풀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했었는데 특이하게 여승 두분이 앞줄에서 관람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 그 여승 둘이 오열을 하는데 속세를 떠난 이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느낌이 들었길래 저리 슬프게 우는가하는 경험담을 남긴 적 있다.

[1] 배우 오가타 나오토의 아버지로, 풍림화산의 우사미 사다미츠, 태합기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모리 모토나리의 아마고 츠네히사 역으로 유명하다.[2] 정확히 말하자면 두 작품의 내용을 적절히 버무렸다. 참고로 나라야마 부시코는 이미 키노시타 케이스케의 손에 1950년대에 영화화 되었는데, 이것도 상당한 걸작으로 뽑힌다. 동북의 신무들 역시 1957년 이치카와 곤 감독 손에 영화화되었다.[3] 영어판의 제목도 "Ballad Of Narayama"이다.[4] 딸은 자식 낳을 몇몇만 빼면 가끔 외지에서 찾아오는 소금장수에게 팔아넘길 수라도 있지만 아들은 최소한의 일할 일꾼들만 빼면 다 죽인다. 작중에 케사키치가 '딸을 낳으면 안 죽여도 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스포일러] 사실 남편은 마을의 법을 어기려 한다는 이유로 장남인 타츠헤이가 총으로 쏴죽였다.[5] 리스케처럼 결혼을 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마을 남자들은 욕정을 풀 대상이 없어서 동네 개들을 수간하기까지 한다.[6] 이 때문에 잠자리도 방이 아닌 헛간에서 잔다.[7] 마츠야의 아버지는 이 때에 케사키치에게 "나는 자네의 장인이니 좀 도와주게"라고 하소연하지만, 케사키치는 장인의 뺨을 후려치며(…)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윽박지른다. 마을 사람들이 식량을 훔치는 것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알 수 있는 모습.[8] 당시 일본영화 수입 기준은 공동투자로 제작된 영화, 한국 영화에 일본인 배우가 참여한 영화, 소위 4대 외국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 아카데미) 수상작이었고, 나라야마 부시코는 칸 영화제 수상작이었기 때문에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9] 그나마도 일본 문화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기껏 본 사람들도 적지 않은 수가 부모는 내다 버리고 총각들은 개와 수간 못해 안달난 이상한 영화 정도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소문이 나버렸다.[10] 러브레터는 1995년작이지만 일본 내 영화제에서만 수상했기 때문에 1차 문화개방 대상이 아니었고, 이 때문에 정식 개봉 이전에 이미 한국에서 해적판 불법복제 비디오가 돌았음에도 흥행에 성공해서 일본영화 수입붐을 일으켰다. 실제로 일본 실사 영화중에서 러브레터 보다 흥행에 성공한 것은 주온, 일본침몰, 데스노트밖에 없고, 애니메이션을 포함해도 10위 안에 들어간다.[11] 연기 당시 40대 후반였다. 분장의 힘이 컸던 편. 원래 진짜 60대 배우가 내정되어 있었으나 리허설 도중 본인이 힘들어한데다 감독도 뭔가 아닌듯 해서 하차했다. 아들 역의 오가타 켄보다 1살 연상.[12] 이마무라는 베를린 영화제랑 연이 깊었던 감독이며, 나라야마 부시코는 첫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었다. 이전에 에에쟈나이카로 칸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긴 했지만 이마무라도 실패작이라 단정했던 영화라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13] 출품도 토에이 쪽에서 했지, 이마무라 프로덕션과는 연계가 없었다.[14] 아들 덴간 다이스케가 밝히길, 전장의 크리스마스 팀이 주최한 상영 후 파티에서는 데이비드 보위사카모토 류이치가 등장해 북적북적거렸는데, 나라야마 부시코 팀의 상영 후 파티는 조촐하게 사카모토 스미코가 노래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15] 세르게이 본다르추크는 소위 말하는 소련 주류파였던지라, 타르코프스키를 상당히 아니꼽게 보고 있었다. 공산당 기관지에다 대놓고 '부르주아 인텔리겐차'라고 비판했을 정도. 아이러니한 게, 이 사람 딸인 나탈리아 본다르추크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솔라리스>에 주연으로 출연한 바 있다. 정황상 나탈리아의 어머니랑 이혼한걸로 아버지와 사이가 소원해져서 이런 문제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웠던걸로 추정된다. 나탈리아와 타르코프스키는 서로에게 우호적이었다고 한다.[16] 물론 평점이 영화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