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야마 야스히데

 

'''일본 중의원 (오사카 4구)'''
'''제43대'''
요시다 오사무

'''제44대
나카야마 야스히데'''

'''제45대'''
요시다 오사무
'''제46대'''
무라카미 마사토시

'''제47~48대
나카야마 야스히데'''

''현직''
'''(なか(やま(やす(ひで
나카야마 야스히데
'''
'''출생'''
1970년 10월 14일 (53세)
오사카부 오사카시 키타구
'''국적'''
[image] 일본국
'''학력'''
세이조대학 법학부 법률학과 졸업
와세다대학 대학원 스포츠과학 석사과정 수료
'''가족'''
할아버지 나카야마 후쿠조[1]
할머니 나카야마 마사[2]
큰아버지 나카야마 다로[3]
아버지 나카야마 마사아키[4]
'''직업'''
정치인
'''소속 정당'''

'''의원 선수'''
'''5''' (중)
'''의원 대수'''
43, 44, 46, 47, 48
'''지역구'''
긴키 권역 비례대표 → 오사카 4구
'''현직'''
제48대 중의원 의원
방위부대신 겸 내각부 부대신
'''약력'''
덴츠 근무
고이케 유리코 정책 비서
긴키 권역 비례대표 중의원
오사카부 제4구 중의원
외무대신 정무관
외무부대신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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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정치인.

2. 생애


1970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오사카의 오테몬 가쿠인 소학교와 도쿄에 있는 치요다구립 구단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프랑스에 있는 알자스 세이조 학원[5]에 유학을 다녀온 뒤 세이조대학 법학부 법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덴츠에 입사했다.
이후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오사카부 제5구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이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지만 또 낙선한다. 아예 체급을 낮춰 2001년 오사카부의회 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지만 또 낙선하면서, 5년 간 고향에서 3번이나 낙선했다(...).
3차례의 낙선 후 고이케 유리코의 정책 비서로 근무하다가, 2003년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오사카부 제4구로 지역구를 바꿔 출마해 지역구 당선에는 실패하지만 석패율 비례대표로 구제되어 당선되면서 중의원 세 번째 도전 끝에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는 지역구에서 당선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 성공 후 아베 신조 1차 내각과 후쿠다 야스오 내각에서 외무대신 정무관을 지냈다. 그러다가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다시 낙선했으며, 원외에 있는 동안 한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와세다대학 대학원을 다녔다.
이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인 오사카부 제4구에 출마했으나 지역구 당선에는 실패하고 석패율 비례대표로 다시 당선되면서 원내에 복귀한다. 복귀 후 아베 신조 2차 내각에서 외무부대신을 맡았으며,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지역구 당선에 다시 성공했다.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당선에 성공하면서 5선을 기록했다.

3. 기타


  • 취미는 모터 스포츠로, 당내 모터 스포츠 관련 모임에서 주최한 이벤트 레이스에서 동료 의원인 후루야 게이지와 쓰쿠바 서킷에서 경주를 펼쳤다고 한다. 또한 ‘밥 3끼 먹는 것보다 자동차를 더 좋아한다’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자동차 애호가다. 독신 시절에는 차를 사려고 대출 받는데 돈을 쓸 정도였다고 한다.
  • 2008년에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자 읽기와 국가 위치 맞히기 문제들을 풀었는데, 총 12개의 문제 중 고작 2개밖에 못 맞혔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의 지도상 위치를 몰랐다고 한다. 이게 특히 심각한 이유는 그는 ‘외무대신 정무관’을 지냈기 때문이다.출처 참고로 해당 프로그램에서 가장 문제를 많이 맞힌 국회의원은 10개를 맞힌 민주당의 하라구치 가즈히로이며, 오무라 히데아키가 9개를 맞히면서 두번째로 문제를 많이 맞혔다.
  • 다모가미 도시오의 논문 사건 당시 논문 심사를 의뢰받은 심사 위원 중 한 명이었다. 본인이 국회 업무때문에 심사를 못 할 때는 비서를 대리로 보내기도 했다.
  • 2016년 오사카시에서 열린 국가 예산 관련 설명회에서 “전 시장(하시모토 도루)의 비서가 각성제 때문에 체포된 건 정말이냐”라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당시 하시모토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으며. 당시 오사카시장이었던 요시무라 히로후미는 오사카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나카야마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참고로 요시무라 히로후미는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 오사카부 제4구에 출마해 나카야마와 맞붙었던 적이 있다.
  • 대학원 동료 중 야구 선수 쿠와타 마스미가 있다.

4. 둘러보기



[1] 변호사이자 정치인. 중의원 의원 등 역임.[2] 일본 최초의 여성 각료(후생대신).[3] 의사 출신 정치인. 전 중의원 의원(오사카부 제18구), 참의원 의원, 외무대신 등 역임. 바바 노부유키가 그의 비서 출신이다.[4] 전 중의원 의원, 건설대신, 우정대신, 총무청 장관 등 역임.[5] 세이조대학 재단이 현지 일본인들을 위해 세운 학교로, 학생 수 감소로 인해 2003년 폐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