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 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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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京! 南京!'''
'''City Of Life And Death(삶과 죽음의 도시)'''
1. 소개
난징 전투와 난징 대학살을 다룬 2009년작 '''흑백영화'''이다. 중국어 원제는 '난징! 난징!'(南京!南京!)이고 영어 제목은 '삶과 죽음의 도시'(City Of Life and Death)이다. 감독과 각본은 가가서리(혹은 마운틴 패트롤)로 미국과 중국에서 명성을 얻은 적이 있는 루 추안(Lu Cuan, 陆川)이 맡았다.
국내 정식 개봉? 나온 지 11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정식개봉 소식조차 없다.''' 하지만 각종 영화제 등을 통한 제한적인 개봉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 탓에 한국어 제목이 일정치 않다.
2. 제작 과정
제작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스크립트 승인에 6개월이 기다려야 했고 완성된 필름의 승인에도 6개월을 기다려야했다. 그렇게 기다긴 시간이 흘러 2009년 4월 22일이 돼서야 개봉할 수 있는 승인을 받아낸다. 하지만 필름을 검열하는 과정에서 일부 작은 부분이나 일본군이 중국인 참수하는 장면, 몇몇 강간장면이나 심문 장면이 잘렸다고 한다.[1]
3. 영화전개
상술했듯이 흑백영화고 필기체로 쓰여진 영어편지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내용은 1937년 12월 13일 난징이 일본군에게 함락되는 내용이고 이어지는 장면은 난징성을 눈 앞에 두고 포격과 폭격을 가하며 대기하고 있는 주인공[2] 과 일본군이다.
난징성 북쪽에 있는 읍강문 앞에 중국 국민혁명군 측 주인공[3] 이 소속되어 있는 국민혁명군 독전대가 진주해 있다. 난징이 함락되던 날, 읍강문으로 국민혁명군 중앙군[4] 이 몰려왔고 이들은 사령관이 떠났으니 성에서 나가게 해달라며 독전대와 몸싸움을 벌인다.[5] 일본군이 반자이를 외치며 난징함락을 기념할 때 난징에선 도시를 떠나려는 피난민들로 가득 찼고 많은 숫자가 시내에 있는 외국인들이 세운 안전구역에 있었지만 중국군 패잔병을 솎아내라는 일본군 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일본군들이 속속들이 피난민 속에 숨은 중국 군인들을 찾아내 끌고 간다.
일본측 주인공, 카토카와는 소속 부대원과 같이 중국 패잔병들을 찾고 있던 와중 중국측 주인공이 있던 중국군의 기습에 당하게 된다. 주인공과 직속상관만이 살아남을 정도로 완벽히 전멸당했지만 이내 탱크와 박격포를 동반한 지원을 받아 중국군 잔당을 박살내고 그들을 줄에 묶어 끌고 간다. 잡힌 포로들은 그 날에만 500명이 넘었고 중국 측 주인공과 이들은 생매장, 기관총, 수류탄, 총검실습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학살당한다.
피난민들을 위한 안전지구를 세운 독일인 욘 라베의 비서 탕은 일본어도 어느정도 하기에 일본군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군의 안전구로의 잦은 침입과 위협으로 마냥 안전하진 않았고 끝내 일본군이 쳐들어와 집단강간을 벌이게 된다. 이모습을 목격한 탕은 불상사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아내와 처제의 머리를 깎고 남장을 하게 한다. 그런데 라베가 본국으로 소환 될것이라 탕에게 알려주게 되고, 더이상 라베의 보호를 못 받게 될 것이라 여긴 탕은 실의에 빠진다. 결국 그는 안전지대의 숨은 패잔병들을 전부 일본군에게 밀고하고 안전을 보장 받으려 하지만, 일본군은 더욱 안하무인이 돼 결국엔 여자, 일본군 위안부를 요구하게 된다.[6] 탕의 처제 그리고 백 명이 넘는 여자들이 일본군 진영의 위안소[7] 에 들어가 능욕당하고 탕의 처제는 결국 미치게 되는데 나중에 일본군 장교에게 사살된다.[8][9]
주인공은 순진한 신학생으로 동정이었고 위안부로 온 일본 창녀와 첫경험을 하게 되고 곧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갈수록 미쳐가는 일본군들이 일본 여자라고 그녀를 곱게 다루지 않았기에 그녀도 미쳐가게 되고 결국 시체로 위안소를 빠져나가게 된다. 라베가 본국의 소환으로 귀국하게 되자 안전구에 있던 피난민들이 애원하며 라베를 붙잡는다. 하지만 라베는 힘이 없었기에 오직 단 둘, 비서인 탕과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그의 아내만 독일로 데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탕은 거부하고 잔류를 택해[10] 결국 일본군을 그동안 엿먹인 죄로 총살당한다.
탕과 함께 외국인들과 안전지구를 결성한 중국 여자가 있었다.[11] 그녀는 일본군 앞에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고 모든 중국 여자를 창녀 취급하는 일본군 장교에게 용감히 반박을 하는 등 패잔병과 피난민들을 살렸지만 라베가 떠난 후 일본군에게 패잔병을 보호하려던 게 들켜 연행되었다.[12] 그녀는 주인공과 어느정도 안면이 있었고 주인공이 다른 일본군처럼 야만적이지 않은 걸 알았기에 끌려가며 주인공에게 자신을 쏘라고 부탁했고 주인공은 그녀가 위안소로 끌려가 능욕당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부탁대로 그녀를 쏘게 된다.[13]
영화의 결말은 이런 학살과 잔학무도한 짓거리의 반복으로 완전히 미쳐버린 주인공 카토카와가 중국군 포로 둘(그 중 하나는 소년병)을 시외로 끌고 가 석방시키고 자신은 자살하며 끝이 난다.
4. 평가 및 논란
4.1. 중국
중국에서는 굉장한 흥행을 하며 호평을 받았지만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작중 일본군들이 제대로 인간처럼 그려졌기 때문이라고 하며 나카이즈미 히데오(中泉英雄)라는 배우가 맡은 일본군 캐릭터는 죄의식이나 난징 사람들에 공감하는 모습을 갖고 있어서 비난을 받았다. 그냥 죄의식을 느낀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욕을 먹는 정도면 현실에서 있었던 일은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체로 중국에선 호평이었다. 실제로 많은 중국인 네티즌들은 일본군을 맡은 일본 배우들이 일본에서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까지 했을 정도다. 하지만 한 영화 사이트에선 같은 중국 네티즌들에게 별점 테러를 당했다. 테러현장 그래도 여전히 7.3으로 평점을 높지만 1점 테러가 아니었으면 훨신 높았다. 이들의 논리는 영화가 객관적인 척을 한다든가 위선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죄책감 갖는 일본군이 나오는 거 가지고 모욕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해당 영화에서 묘사된 일본군 수준은, 홀로코스트 영화에 나오는 독일군 묘사에서도 흔히 나오는 수준이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 이 영화는 중국 정부에 따라 검열 과정에서 강간 장면이나 심문, 중국인 참수 장면이 잘렸다. 이는 선정적이거나 지나친 폭력 장면을 금지하는 중국 심의 기준 때문으로서 정치적 문제와는 별 상관없다. 오히려 일본군의 만행을 강조하려면 이런 장면을 넣는 게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정치적 이유라면 굳이 중국 당국이 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 일제 치하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나 비슷한 풍의 대체 역사 작품에서 일본인도 인간이라는 점을 표현하는 일이 있으면 이건 일본의 피해자 행세네 뭐네 하면서 비난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 물론 정말로 미화나 물타기의 목적이 있다면 비판해야겠지만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악마화[14] 하는 것도 결코 객관적이거나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이므로 적절한 수준의 연출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4.2. 일본
당연하겠지만 일본에서는 '''아예 개봉되지 않았다.''' 학살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중국인을 풀어주는 일본군 병사를 개연성 있게 그렸는데도 일본 극우들은 이 정도 조차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작중 비중 있는 일본군 캐릭터를 맡은 나카이즈미 히데오와 코하타 류(木幡竜)는 일본 활동에 지장을 받았다. 특히 나카이즈미의 경우 극우의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고 한다.
2011년에 도쿄의 어느 영화제에서 감독과의 대화와 함께 딱 하루 상영하기는 했지만 몹시 삼엄한 경비에서 상영되었다.(일본어)
5. 여담
- 영화의 메인 포커스는 단지 일본군이 중국인에게 행한 악행에 맞춰진 것만이 아니라 전쟁과 비인간적인 학살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해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비중이 있는 일본군인들[15] 이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주인공은 끝에 자살을 하니까.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에선 주조연 포함 비중있는 역할들의 인생에 대해 짧게 나온다.[16][17]
- 영화 후반부에 일본군이 난징을 함락시키고 나서 추는 아와오도리는 전사자 추모를 위한 것이다. 영상
- 산 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조개상을,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에선 감독상과 촬영상을 받았으며 LA 비평가 협회시상식에선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 이 영화의 제작자들과 투자자들이 단역으로 나왔다. 비록 단역이라 해도 카메라에 잡히고 임팩트가 큰 몇몇이 있었는데 메이킹필름에 보면 제작자들과 투자자들이었다.
- 이 영화와 비슷한 영화로 1942(一九四二, 영어 제목 Back to 1942 Henan)라는 중국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중일전쟁시기에 겹친 허난 대기근을 다루고 있다. 전쟁의 참화 아래서 일본군의 총칼을 피해 피난가는 중국인민들이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쟁의 참상도 참상이지만 천재지변, 그리고 정부의 막장 행정으로 3백만이 굶어죽은 재앙에 초점을 맞췄다. 이 영화에 나오는 장제스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지만 대기근에 대해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군의 수괴인 오카무라 야스지가 대민구호에 힘썼다.[18] 그렇지만 중국영화답게 일본군이 무조건 착하게 나올 리는 없고, 나중에 일본군 장교가 중국인을 살해하고 일본 병사가 중국 부역자를 짐승처럼 칼로 음식을 찍은 뒤 받아먹게 하는 장면도 나온다. 여담으로 난징 난징에서 나온 일본군 장교인 코하타 류가 이 영화에도 나온다. 그 중국인 죽인 장교로 말이다. 이 장면만 대충 설명하자면 피난길에 원래 결혼하기로 한 여자를 팔려가게 놔둘 수 없던 남자가 아이 딸린 같은 미망인 피난민과 혼인하는데 그 여자도 결국 팔려갔고 아이들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지만 남자는 피난길에 아이들을 잃어버렸다. 남자는 아이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 하나만 들고 아이들을 찾다 일본군 진영까지 흘러들어 오게 되고 거기서 같은 마을 출신을 만나 그 진영에서 일하면서 지낼 수 있었지만 일본군의 호의를 가차없이 거절해 결국 장교 코하타 류의 칼에 찔려 죽는다. 사실 허난성은 전쟁 끝날 때까지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었고, 일본군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허난성에서 괴뢰정부를 내세워 구호작업을 실시했다.
6. 관련자료
루 추안 감독은 이 영화가 일본에도 개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미국에서 극찬을 받았다.(영어) 톰 롱, 콜린 코버트, 케네스 터런, 스티븐 휘티, 웨슬리 모리스 같은 많은 기자나 평론가들이 대호평을 하였다.
[1] 그래서인지 주인공 중 하나인 중국 군인의 역할이 축소되고 아예 새롭게 짜여졌다. 메이킹 필름에서는 장교였다 참수당하는데 실제 영화에선 그냥 병사에 대사 몇마디 하지 않는데다 집단 기관총 처형으로 죽는다.[2] 나카이즈미 히데오, 일본군 사병이자 후에 부사관으로 진급하는 신학생 출신 카토가와 역을 맡았다. 카토가와는 일본군 측 주인공이다.[3] 배우의 이름은 유엽(류예), 중국의 탑스타이다. 2010년대부터는 중국에서 마오쩌둥 전담배역을 맡고 있다. 마오쩌둥역을 맡기 위해 10kg을 찌워서 후덕(...)해졌다. 배역의 이름은 육건웅이고 카토카와와 다르게 별 의미없는 졸병이어서 이름이 엔딩 크레딧에서야 밝혀진다.[4] 나치군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중일전쟁 이전 중국과 독일은 몹시 가까운 사이였고 중국은 여러 부문에서 독일의 지원을 받았는데 그 중 장제스 직속의 중앙군은 독일식으로 리모델링을 해 군복부터 무기, 제식까지 전부 독일군과 같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장제스 직속군만 아니라 군벌군도 나오고, 이런 군벌군은 우리가 아는 그 당시 중국군 복장을 하고 있다. [5] 이때 독전대 대장이 탈주하는 군인들 발에 밟혀죽고 막는 자들과 뚫는 자들의 몸싸움으로 엄청나게 처절하다. 하지만 이것도 실제 역사에 비하면 미화된 거고 실제론 총격전을 벌이거나 양쯔강 강가에서 기관총 진지 치고 기다리던 독전대한테 탈영병과 피난민 상당수가 죽었다고 한다.[6] 여자를 당당히 요구하는 일본군 앞에서 탕이 미약하게나마 저항하자 일본군은 탕의 딸을 창 밖으로 집어던져 죽인다.[7] 이곳에는 끌려온 중국 여자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끌려온 위안부와 일본에서 건너온 창녀들도 있었다.[8] 이때 장교가 하는 말이 ''예뻤지... 그러니 저런게 나아''였다. 예전부터 인외마경 속에 있으며 회의감을 갖던 카토카와는 이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멘붕[9] 이 일은 피난민 구역에서 여자들을 '''빌려와''' 쓰기로 약속한 한달 후 그들을 안전구역에 돌려보내기 직전에 있었다. 처음 백 명 정도의 여자들이 일본군 진영으로 끌려갔지만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열 명도 채 안됐다.[10] 라베의 운전수는 같이 가지 못해 일본군에게 처형당할 운명이었다. 이미 딸도 잃은데다 피난민의 안위를 위하는 일환이었지만 어쨌든 패잔병을 넘겨주어 다 살해당하게 만든, 어찌 보면 매국행위도 저질렀고 자기가 앞장서서 보호하던 피난민들을 버리고 떠나는 행동도 탕에게 내키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11] 배우는 고원원이고 배역의 이름은 강 선생이다. 영어에 능통하고 피난민들을 통솔하는 걸 보았을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라 추측된다.[12] 피난민촌에서 군인들을 솎아내 학살하려던 일본군 장교에게 외국인들이 나서서 군인이 아닌 남자들은 피난민의 가족이기에 살려달라고 요청한다. 외국인들과 굳이 마찰을 빚고 싶지 않았던 일본군 장교는 가족이 딱 한사람 씩만 데려올 수 있게라도 마지못해 허락하는데 강 선생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여러번 왔다갔다하며 남자들을 구했다가 그녀가 그러는 걸 알아본 일본군에게 걸리게 된다. 참고로 강 선생의 가족은 그 남자들 사이에선 없었다.[13] 영어로 부탁했기 때문에 다른 일본군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카토카와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끌려가는 그녀의 뒤에 총을 쏴 끝내준다. 깜짝 놀라 총을 들며 뒤돌아보지만 카토카와가 왜 이러는지 어리둥절하는 다른 병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14] 일제강점기 한국에 살던 일본인이라 해서 우위에 있는 조선인에게 치이거나, 조선인 범죄자에게 당하는 일이 없던 것은 아니고, 정의롭고 인간적인 사람이 없었을 리도 없다. 다 마찬가지.[15] 주인공 나카이즈미 히데오를 비롯 그의 직속상관도 처음에는 학살과 강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지만 후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16] 예를 들면 주인공인 일본군인과 중국군인은 각각 1938년, 1937년에 죽고 학살에 살아남은 중국 여자는 1989년에 죽고, 학살에 참여했지만 후에 죄책감에 시달린 일본군인은 1974년에 죽고 그리고 마지막에 살아남은 소년병은 아직도 살아있다고 한다.[17] 참고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소년병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때인 1937년에 겨우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1927년 생이라 가정하면 영화가 개봉한 2009년 기점으로 82세고 중일전쟁, 국공내전, 한국전쟁,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까지 겪어도 마흔 조금 넘는 셈이다. 특히 국공내전과 한국전쟁 때 청년이었으니 전장에 끌려갔겠고... 만약 실존 인물이라면 중국사 및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이벤트는 다 겪어본 파란만장한 인생이라 할 수 있겠다. [18] 물론 순수한 의도라기 보다는 중국인들을 포섭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오카무라 야스지는 부관이 "과연 중국인들이 우리가 주는 지원을 받겠습니까?"라고 의아해 하자 아니. 그들은 중국인 이전에 인간이다.라고 답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