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피해자 행세

 


1. 개요
2. 상세
3. 실제 사례
3.1. 일본은 조선을 근대화했다
3.3. 일본은 테러를 당한 피해자다
3.3.3. 일본인은 전후 한국인에게 피해를 입었다
3.4. 번외: 독도에서 강치가 멸종한 원인
3.5. 전쟁범죄의 부정 및 미화와 전쟁범죄자들에 대한 신격화
3.6. 일본은 연합군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다
3.6.1.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의 전반적인 내용들을 은폐
3.6.2. 일본이 받은 피해 과장, 강조
3.6.2.1. 원자폭탄의 피해 책임 회피및 과장, 강조
3.6.3. 일본은 지지 않았다!
3.7. 선택적인 국제법 인용
3.8. 나치 독일, 나치스가 제일 나쁜 놈들이다!
3.9. 나치 독일, 나치스도 피해자다!
4. 일본이 피해자 행세를 하게 되는 까닭
4.1. 원인
4.1.1. 중앙정부에 대한 약한 소속감
4.1.2. 피해국의 낮은 국력과, 서구권과 낮은 동맹관계
4.1.3. 일본 민주주의의 특성
4.2. 비판
4.2.1. 부실한 역사인식
5. 일본의 피해자 행세가 위험한 이유
6. 일본의 피해자 행세를 바라보는 외국의 시각
6.1. 서방 측의 시각
6.1.1. 미국에 살고 있는 일본계의 시각
6.1.2. 현재의 경향
6.1.3. 개별 사례
6.1.3.1. 스티븐 스필버그의 선택
6.1.3.2. 미국 하원의 위안부 문제 결의안 통과
6.2. 아시아 국가들의 시각
6.3. 대중매체
6.3.1. 일본이 피해자라는 입장의 작품들
6.3.1.1. 만화
6.3.1.2. 애니메이션
6.3.1.3. 영화
6.3.1.4. 소설
6.3.1.5. 게임
6.3.2. 일본이 피해자라는 입장의 작품이라고 오해받은 작품들
6.3.3. 일본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묘사한 작품
6.3.3.1. 소설
6.3.3.2. 만화
6.3.3.3. 게임
6.3.3.4. 애니메이션
7. 클리셰
7.1. 가해자 옹호와 피해자 비하
8. 관련 문서

...한 군의관이 어린 딸에게 보낸 편지였다.

이 군의관은 딸에게 앞으로 살아가면서 살생을 하지 않도록 잠자리 같은 미물일지라도 잡으면 바로 놓아주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이 군의관은 연합군 포로들을 학대한 죄로 결국 사형 판결을 받아 처형되었다.'''

패배를 껴안고 p.682. 존 다우어 저, 최은석 옮김


1. 개요


일본이 아시아 국가를 침공, 병합하거나 불평등 조약을 강요하고 위임통치했던 제국주의 시절의 역사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 범죄을 일으킨 가해자였던 사실을 끝끝내 망각, 부정하고 본토 공습 및 핵무기의 일방적인 피해자였던 척 행동하는, '''현재진행형의 역사 왜곡'''의 일종이다.

2. 상세


언론에서 사설, 대중 매체에 이르기까지 자국이 입은 피해를 중점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여느 전후 시대에나 있는 모습이었으나, 일본의 경우 21세기, 더 자세하게는 2010년대 이후 일본인 국민 전체의 우경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전후 연합국에 의해 강요되었던 (그들 기준으로는) 잘못된 역사관을 폐지하고, 올바른 일본 역사관을 세우자!'는 명목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일본은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범죄국이 아니라, 아시아 인종을 대표하여 서구 백인들에게 맞서 싸웠던 침략 피해자이다." 라고 가해관계를 역전시키거나, "전쟁 자체가 원래 나쁜 일이고, 각자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충성하여 싸웠으므로, 일본도 미국도 다른 나라도 따지고 보면 전부 피해자일 뿐이다." 는 식으로 양비론적 물타기를 시도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비극적인 점은 이걸 실행하는 나쁜 녀석들은 자기들이 애국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외부에 입힌 마닐라 대학살, 난징대학살 같은 피해 자체를 부정하고, 731 부대 ,치치지마 식인 사건 같은 규모가 컸던 전쟁범죄는 축소하며, 피해자 드립만 치면서 미국을 포함한 우방국들 전체까지 이를 갈도록 만들고 있다. 결국 세계화 시대에 나라 망신을 넘어 위신이 땅에 처박히고 있는 매국을 하고 있는거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의 위키 사이트까지 넘어들어와서 자신들의 과거사에 대해서 집요하게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과거 인조이 재팬에서도 365일 상주하며 혐한 날조 자료를 한국인들에게 제시하며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켜 왔었고 한국 위키러들의 분노를 끊임없이 폭발시켰다.
단순히 독도 문제 등으로 한국만 자극하면 그나마 한국과의 사이만 나빠지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본이 독도 문제만 걸고넘어진다고 해도 일본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랑 쿠릴 열도 분쟁으로 중국, 러시아와도 영토 분쟁 중이다.~~트리 따라서 한국만 고립시키려면 중국,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한데 이들과의 영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렵다. 게다가 중국은 일본에 대해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조금 더 나아가서 보면 당시 연합군 측의 국가들이 거의 죄다 일본의 전쟁범죄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이나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일본의 각종 매체에는 과거 일제의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받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것 자체만으로는 반전 사상을 강조하는 순기능적인 면도 있으나 문제는 이러한 묘사를 통해 일제의 전범행위를 희석시키게 된다는 결과이다. 일본의 현대사에서 공습, 원폭 등의 피해'''만'''을 부각시켜 전범으로서의 행위를 덮어씌움으로써 작가의 의도야 어쨌건 독자로 하여금 '''역사관의 왜곡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공습이나 원폭을 당했음을 묘사하는 것'은 그 원인을 감추거나 엉뚱한 쪽으로 돌리지 않는 한은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가령 원폭에 의해 피해를 입은 어떤 일가의 모습을 그린다고 해서 "원폭 맞았으니 일본은 불쌍하고 전쟁을 일으킨 것에도 책임이 면제된다!"라는 주장이라고 무조건 간주할 수 없다. 만화 맨발의 겐에서는 원폭 피해자를 중심에 두면서도 그 원인이 전쟁 도발이라는 자국의 책임에서 기인함을 분명하게 시인하고 있다. 맨발의 겐은 일본의 원폭 피해와 미국의 흑심을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오히려 그것보다 더 강조하는 게 '''일본 군부의 막장성에 대한 성토다.''' 대놓고 전쟁 책임을 천황에게 묻고 있는 몇 안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된 원인을 애써 도외시하여 피해자로서의 모습만 강조하는 일본 창작물이 매우 많은 것이 사실이며 중일전쟁태평양 전쟁에서 침략자, '''가해자로서의 책임은 등한시하여 균형을 잃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는 노골적인 책임회피는 아니더라도 피해 결과를 유발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외면과 방조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이는 침략자, 가해자로서의 모습을 묘사하면 우익 세력의 테러를 받고 국가 권력은 이를 방조하는 일본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에도 크게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외압에 굴해 휘둘리는 이들 작가들이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극우 미디어물처럼 극단적이고 분명하게 일본 우익사관역사왜곡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잠재적으로 우익사관의 영향을 받은 이데올로기를 퍼트리기 때문에 이러한 피해자 행세 역시 경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범죄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약소민족 행세는 침략자, 가해자로서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중화기술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을 전쟁의 피해자로 생각하여 '''책임을 부정'''하고, 구한말 및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또는 동남아 여러 나라에 이바지하였다고 하여 '''가해를 부정'''하고, 가난하고 못 사는 나라를 자기들이 다스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 또는 위안부는 자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여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나치 독일의 만행만 강조 또는 미국과 중국과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국에게 입은 피해만 강조하여 '''비판자를 비난'''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을 중심으로 서양 열강의 식민 지배를 몰아내고 서로 번영과 평화를 누리자'고 하는 이러한 일련의 주장들과 같이 자신들의 죄의식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을 사용하여 '''더 높은 충성심(가치)에의 호소'''를 한다.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있다면 태평양 전쟁에서 만큼은 미국 역시 피해자라는 점이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곤 하나 일본에 의하여 약 10만 여명의 미군장병들이 전사했고 참전으로 인한 경제력 소모 역시 상당한 수준이다. 일본의 중일전쟁과 동남아 침략에 대한 미국의 자원을 통한 제재는 정당한것이었고, 이것 때문에 일어난 진주만 공습 역시 미국은 피해자일 뿐이다. 미국이 전쟁을 유도한적도 없고,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선빵을 때린건 당연히 일본 잘못이다.
물론,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나 도쿄 대공습 같은 경우 미국의 잘못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이것보다 더 현명한 방법은 없었다고 단정 지을수는 없다. 문제는 전쟁을 일으킨 본인들이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일련의 사건들은 전쟁 종식을 앞당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실행한 일들이다. 도쿄 대공습은 군수 공장의 파괴 및 가내 수공업의 파괴/확산 방지가 목적이었다. 당시 일본은 군수물자의 상당부분을 가내 수공업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파괴하지 않으면 전쟁은 필연적으로 장기화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미국의 피해 역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전을 입안했다. 원폭 투하 역시 전쟁의 단기 종식을 위해 실행한 것으로 미국의 잘잘못을 따지기힘들다.
'''최종적으로 만약 전쟁이 장기화 됐을 경우 피해가 가장 큰건 다름아닌 일본인 자신들이다.'''
그 외에도 일본의 동남아 침략에 대해 미국 역시 동남아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화를 했었으니 오십보백보라고 반론할 수 있다. 확실히 미국 및 서방국 들이 동남아에서 각종 문제를 일으킨건 사실이지만 미국이 그랬다고해서 일본도 그럴 수 있다는 건 피장파장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은 동남아 국가에 대해 훨씬 심한 수탈과 침략을 자행했으며 이 점은 태평양 전쟁, 특히 필리핀 탈환전 당시 일본군의 폭정을 견디지 못한 현지 주민들이 미국이나 영연방 등의 연합군들에게 각종 정보를 주거나 게릴라 작전으로 협력[1]했다는 점에서 증명이 된다.
주의할 점은 '''일본의 피해자 행세'''라는 용어는 리그베다 위키와 그것을 계승한 나무위키 등의 엔하계 위키에서만 쓰이는 용어라는 점이다. 일본인이 피해자인 척 한다는 비판 자체는 흔하지만 일본의 피해자 행세라는 용어 자체는 학술적인 용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용어를 반복적으로 쓰는 경우는 십중팔구 엔하계 위키를 하는 사람들이다. 문서명이 이렇게 되어있다 보니 이것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용어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위키의 문서명은 인명, 지명 등 고유명사이거나, 사물을 설명하는 일반명사, 그리고 기존에 학계나 일상에 자리잡은 개념명사들이다. 그러나 문서명은 일반적인 스타일과 위화감이 있게 느껴질 텐데, 이렇게 된 이유는 엔하위키 시절에 문서가 생성될 때는 "일본의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다분히 서브컬처적인 제목이었고,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 토론을 통해 "코스프레"라는 단어를 순화하면서 "행세"라는 표현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서명은 특정 개념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집단연구에서 출발한 개념에 대한 지칭에 가깝다. 다소 거리감이 있는 표현이지만 웬만하면 표현에 등장하는 의도는 추론할 듯.

3. 실제 사례


일본은 연합국의 연합군으로 부터는 피해자 행세를, 침략한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일종의 조력자 행세를 하고 있다. 후자는 대동아 공영권 문서 참조. 같은 추축국이었던 독일에게는 나치 독일을 강조하여 일본의 침략행위를 희석시키려는, 일종의 물타기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3.1. 일본은 조선을 근대화했다


http://www.wayto1945.sakura.ne.jp/KOR10.html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일본을 침략자로 여기고 그들을 자신들에게 위해와 고통을 준 적대세력이라고 평가를 내렸다. 이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인데 자신의 국가를 멸망시켜서 식민지로 만들고 그 식민지에서 한국인을 수탈한 자가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일각에서는 식민지 시혜론이라는 주장을 한다. 대강 요약하자면 우리는 가난하고 못 사는 나라인 조선을 발전시켜주고 먹여 살리는데 총력을 기울였는데 조선인들은 배은망덕하게도 이러한 은덕을 베풀어 준 일본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일본에게 독립운동과 같은 저항으로 일본과 일본인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것인데, 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개소리인데 애초에 도와달라는 요구 자체를 하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은 이웃 국가를 무단으로 침략해서 점령한 침략자라는 입장을 망각한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말해 '''침략을 수혜로 바꾼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마치 깡패가 때리고 맷집 좋아졌으니 감사하라는 꼴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가면 알 카에다가 미국보고 9.11 테러 덕에 테러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해서 우리가 피해를 봤다는 이야기가 다를 것이 없다.
물론 일본은 학교, 철도, 공장 등 근대화 시설을 한반도에 지어줬지만, 학교는 한국 어린이들을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철도는 병력을 운송하거나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공장은 중국이랑 맞짱뜨려고 무기만드려고 지어준 거니 모두 자신들의 이득과 수탈만을 위한 것이었다.
일부 극우들은 한국이 합병을 애원했다는 말도 안되는 망상에 빠져있기도 하다. 물론 그랬던 멍청이들이 없었던건 아니다. 문제는 이들은 정상적인 인간들이 아닌 또라이로 논할 가치도 없고, 애당초 일본과 합병하면 자신에게 이득이 돌아오니 당연히 찬성했던 것이다. 그 대가로 많은 민중이 끔찍하게 겪어야 할 피해는 관심도 없었다.
아쉽게도 이런 논리 같지도 않은 논리는 확대되어서 구한말 때도 철도, 전기 등을 한국에 공급해 줘서 광명천지(光明天地)를 준 것도 일본의 은덕이라며 힘없고 무능한 조선인들은 이러한 일본의 은덕에 감사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이러한 은덕을 모른 채 일본인을 침략자라고 무시한다며 조선인들은 일본의 이러한 감사에 보답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도 애초에 구한말 때 일본이 만든 시설 자체가 한국 정부로부터 받을 돈은 다 받고 시설 근방에 있는 조선 백성을 강제로 잡아다가 무보수로 강제노동해서 만든 시설이며 그 목적도 쌀이나 물자를 일본으로 실고 나르는 등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것이니 조선 핑계를 대기도 힘든 몰상식의 극치다.
이런 주장을 따르는 작품의 경우 선량하고 기술이 발전된 일본이 무지몽매한 이웃 국가인 한국에 대해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접근한다는 스토리를 주로 내세우는데 실제 상황을 생각하면 역사왜곡의 극치라고 보면 딱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모르는 제3자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자원봉사자처럼 보이게 될 수 있다. 실제로 유튜브 등지에서 일본 우익들의 프로파간다 영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조잡한 것들이 많으나 상당히 절묘하여 당시 상황을 알 리 없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도 낚일 정도의 선동 영상들도 꽤 보이며, 작정하고 한국인들을 낚으려고 한글 자막까지 넣은 영상도 많다. 이러한 영상들이 더욱 더 양성되면 많은 외국인들을 낚을 가능성이 크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논리로 무장한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다만 이는 국가를 주체적인 입장으로 삼았을 때나 가능한 논리인데, 근대국가는 기본적으로 기업을 성립시키기 위한 조건에 맞춰서 움직이게 되어 있다. 돈으로 정치인이 만들어지고 돈으로 정치가 가능하기 때문인데, 특히 19세기나 20세기에는 참정권 자체가 일정 재산 수준 이상이 되지 않으면 투표권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했기 돈을 가진 사람들을 위주로 해서 형성이 되어 있었다. 식민지라는 것도 그 과정의 연장선에 있었던 것이었다.
무엇보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대한제국이 외세의 간섭 없이도 충분한 근대화를 할 수 있다는 뜻과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수도를 중심으로 근대화를 추진했다. 대표적으로 전기사업과 일본보다 빠르게 도입한 전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다만 전철의 경우 대부분의 일본 지역보단 빠르지만 실제로는 교토가 더 먼저 개통되었다. 시범운용 때도 교토에서 운전사를 데려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은 일본의 야욕과 기울어지는 국세에 의해 그 세를 길게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일본이 주장하는 대로 조선을 자신들이 근대화를 시켜줬다고 최대한 가정한다고 해도 그럼 그걸로 조선인들의 삶이 더 나아졌을까? 물론 이것조차 아니다. 조선말보다도 더 안 좋아졌다. 일제 강점기시기 나온 소설에서도 조선말과 일제를 비교했을때 일제 강점기가 더 안좋은것으로 나온다. 자발적이든 강압적이든 소위 자기네들이 말하는 근대화를 이루어서 조선인들의 삶이 더 개선되었다면 모르겠는데 오히려 더 안좋아졌다. 이유는 길게 설명할것도 없다. 애당초 조선인을 위한게 아닌 자기네 일본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동기도 과정도 엉망인데 결과마저 개판이었으니 도저히 옹호할 건덕지가 없다. 그나마 있는 근대화의 부산물들도 일반 대다수는 누릴 수 없었다. 선거도 국세를 5원 이상 낼 수 있는 이들만 참여할 수 있었다.[2]
몇몇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한강의 기적까지 연결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당시의 철도 및 전기 등의 인프라와 더불어 민중들의 전근대적인 마인드까지 뜯어고쳐져 있었기 때문에 폭발적인 산업화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태국, 에티오피아 등과 같이 20세기 전후로 식민지 지배를 당하지 않았음에도 한국보다 못사는 국가들을 예를 드는데, 문제는 식민 지배를 당해서 한국보다 못 살뿐 아니라 상기 두 국가보다 못사는 前식민 지배 국가들이 더 넘쳐난다는 점이다.(...) 게다가 더욱이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철도, 전기와 같은 인프라가 독립 이후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인프라를 이용할 여지는 남아 있었지만 독립 이후 얼마 안 되어 6.25 전쟁이 터졌고, 이 과정에서 격렬한 전투 및 인천 상륙 작전 이후 북한군의 고의적인 대대적 파괴로 인해 이러한 인프라는 전쟁 전과 대비해 약 2%를 남기고 몽땅 파괴되었다. 한 마디로 남한테 뺏긴 물건을 되찾아와 이제 막 써보려고 하는데 형제가 와서 다 부시고 간 셈. 따라서 일본이 미리 건설한 인프라가 20세기 후반 한국의 경제적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는 소리는 완벽한 억지 주장이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와도 별개로, 당장 독립 직후 한반도의 산업 인프라는 북한 지방에 훨씬 더 많이 분포 되어있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고, 거기다 6.25 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어 일본이 남긴 인프라라는 의미가 무색한 상황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접점과 괴리가 크다. 원래 일본은 2차대전이 끝난 이후로 농업국가로 바뀔 예정이였지만 6.25 때문에 기적적으로 부활했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도 없다.
이러한 논란에 대한 걸 딱 한 줄로 정리하자면 '''"도살장 설비를 최신식으로 해준다고 동물이 감사해줘야 할 이유는 없다."'''고 정리할 수 있다.
한편 이런 시혜론과는 별개로, '일제강점기 때 과연 근대화 자체가 이뤄지긴 했는가?'라는 주장 자체는 생각보다 복잡한 논란이다. 이 부분은 식민지 근대화론 문서에 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중국공산당 치하 티베트,위구르에도 적용할 수 있다. 티베트와 위구르의 GDP는 중국의 지배 이전보다 훨씬 발전했으며# 중국 공산당 치하에서 칭짱 철도 등의 인프라가 건설되었고 교육 상황 또한 통계적으로 향상되었다. # 그러나 일본은 티베트와 위구르 독립운동을 지지한다. 한국 독립운동을 반일로 매도하는 일본의 주장대로라면 일본도 "반중 운동"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자신들의 조선 통치는 찬양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통치는 비판하는 매우 이중적인 태도이다.

3.2. 일본은 을사조약을 통해 조선과 조선인들을 보호 하려고 했다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주장이 일본인 일각에서 전개된 주장인 것과는 달리 을사조약경술국치는 '''일본 정부에서 직접 공식적으로 공표한 주장'''이라는 것에서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 주장을 그대로 따라하는 작품은 일본의 피해자 행세를 하는 작품을 넘어서 당당히 극우 미디어물에 속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서 그 당시의 일본 정부의 주장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 1905년에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것이 아니고 조선을 일본이 서구 열강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 보호차원 하에 평화적으로 체결한 것인데 이를 모르는 어리석은 조선인들은 을사조약을 가지고 잘못된 조약이라느니 강제로 체결한 조약이라고 왜곡하며 일본인들을 공격하였다는데 이것 때문에 일본인들이 억울한 피해를 입었다.
  • 1910년 경술국치에 대해서는 '한일병합'은 일본의 국역(國域) 확장과 조선과 일본은 평화적으로 한 국가임을 알려주는 정당하고 축하할 일인데 이 역시 무능하고 어리석은 조선인들은 그게 다 일본인의 잘못이라며 억지로 일본과 일본인에게 화살을 돌리고 어리석고 포악한 조선인들 때문에 일본인들이 억울하게 죽거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애초에 멀쩡하게 잘 있는 이웃 국가를 강제로 식민지로 만들면 당연히 해당 국가는 격렬하게 저항하며 전쟁할 권리가 있다는 상식을 씹어 먹는 것부터가 문제며[3] 을사조약에서 경술국치까지 연이은 조약 체결과정에서 당사자에 대한 협박, 문서위조, 인장위조 등의 행위가 발생하여 국제법상 조약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싹 잊어버린 어이없는 주장이다.
그리고 을사조약도 당시 고종 황제가 헤이그 특사까지 2차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하며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려 했던 건 뭐가 되느냐는 문제도 있는데, 이 문제만 놓고 논해도 을사조약이 정상적으로 채결된 조약이 아닌, 강압적이며 일방적으로 맺어진 늑약이란 사실이 증명된다. 무엇보다도 당시 헤이그에서 열린 2차 만국평화희의에 대한제국은 참석할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따라서 특사들이 참석하지 못한 건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경술국치와 관련되어서도 참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 일본은 절대 평화적으로 조선을 집어삼키지 않았다.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을미사변, 러일전쟁, 남한 대토벌 작전등 무력이란 무력은 마음껏 써댔으며 오히려 야만적이고 잔혹한 일도 많았다. 자국민도 아닌 타국민을 마구 죽이고 타국 땅을 전쟁터로 삼고 심지어는 남의 나라 궁궐에 군대로 밀고들어간 것은 물론, 칼잡이들을 시켜 왕비까지 시해한 걸 평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게다가 평화적 운운도 어이를 상실할 일인데 이걸 또 정당하고 축하할 일이라고 해놓고 있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야 국역이 확장된 거니 지네들끼리 축하할 일이라 여긴다면 몰라도 그걸 또 정당하다고 하며 그걸 또 자기네들만 축하할 일이라 한 것도 아닌 모두가 축하해야 할 일이라고 떠벌리고 있다. 반면에 같은 식민제국을 건설한 영국, 프랑스 등도 식민지를 얻은 걸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변명할 지언정 차마 정당하다고 말하고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폭력적인 사건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항일운동, 독립운동을 한 조선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결국 이건 온갖 폭력과 불법 부당한 행위로 한 나라를 집어삼키고는 그걸 평화라고 내세우고 있으며 그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조선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일절의 언급이 없다. 당장 을사조약 이후 경술국치까지의 시기는 가히 의병 전쟁이라 할 만큼 조선에서의 저항이 대단했다. 그러나 일본은 남한 대토벌 작전이라는 학살 계획을 세워 조선의 의병들을 짓밟아버렸다. 이 과정에서 일반인에 대한 학살은 '''당연히''' 일어났다. 국내 의병 활동은 경술국치 이후에도 얼마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1915년 7월 사실상 마지막 의병장이었던 채응언 장군이 포로로 잡힌 이후로는 이러한 무장 투쟁 활동은 국내가 아닌 해외로 옮겨지게 된다. 이런 것은 싹 지우면서도 일본인의 피해는 끈질기게 언급해대며 일본과 일본인이 상처를 입게 된 것은 모두 무능하고 어리석은 조선인들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였다. 이 주장부터 문제다. 을사조약 이후도 그렇지만, 당장 조선 중기에 일어난 임진왜란정유재란만 봐도 이런 주장은 개소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관동대지진 때는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선인이 지진을 틈타 일본인을 해치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하거나 유언비어가 퍼지는 것을 알면서도 방조했다. 이런 유언비어는 일본인인 아키야마 요시후루조차 헛소리로 치부했으며 일부 극우 인사들조차 믿지 않았을 정도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수많은 무고한 조선인들이 최소 6,000여 명이나 살해당했다. 이승만 정부 당시 국가기록원의 작성에 따르면 290명이긴 하다. 이 시기 보면 '''야쿠자를 비롯한 범죄집단들이 더 조선인 보호에 앞장섰다(...)'''
이때 죽은 사람들이 과연 조선인만 있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소위 자경단이라 하는 이들은 일본인이 아닌거 같으면 일단 다 죽이고 봤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일본인이라 해도 일본인으로 보이지 않으면 죽였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 중에는 중국인, 류큐인은 물론 '''일본인도 있었다(...)''' 일본인의 경우 돈 벌려고 타 지방에서 온 이들이 이곳 말에 익숙치 않아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지방민이 돈벌려고 경기도로 왔는데 그만 경기도에서 대지진이 일어났고 자경단이 일어났는데 이 자경단이 경기도 말씨를 못쓰는 사람은 다 죽여버려서 같은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경기도 말씨를 못써서 죽임을 당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건 피해자가 명백히 밝혀진 경우고 여기에 일본에서 지내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광복 이후에도 일본에 잔류했음을 고려해야 한다. 즉 이들의 존재까지 다 고려하면 피해자 수가 6,000명이라는 것도 100% 틀렸다고 단정할 수 없다.#, # 조선인들이 살해당할 때도 일본 정부나 몰라라 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응? '''조선인들을 보호했다면서?'''
물론 나중에는 경고문도 뿌리는 등 대책에 나서긴 했다. 그런데 이것도 주변국의 압력이 심해지고 참상이 조선에도 전해지면서 조선인들의 분위기가 매우 나빠지자 마지못해 한 것이다.
사실 간혹 이런 식의 주장으로 조선을 독일이 병합 및 보호(?)한 오스트리아와 동치시키기도 하나 오스트리아의 경우와는 다르다. 오스트리아는 본래 독일 민족이 살던 국가로 중국의 주나라처럼 독일 지역의 황제국 노릇을 하던 나라이며 독일 제국의 황제조차 북독일의 황제보다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고 싶다고 비스마르크[4]에게 말할 정도에 오스트리아인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해 전쟁을 일으킬 만큼 조선과는 크게 달랐다. 그래서 2차 대전이 끝나고 나니까 영구 분리가 결정되었지만, 유럽 통합 정서가 흔들리는 지금 다시 대독일 건설을 해보자는 주장이 일어날 정도로 양자의 차이는 크지 않다(이 부분 참조).

3.3. 일본은 테러를 당한 피해자다



3.3.1. 안중근암살자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어났던 안중근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 "이토 의장은 당연히 피해자이며 어리석고 무례한 한국인 괴한에 의해서 억울하게 암살당했다" '''고 주장한다. 당시 매국노이자 초악질 친일반민족행위자이완용, 송병준 등도 "안중근이라는 놈은 대일본제국에 반역한 역적이자 대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요절하게 만든 괴한"이라며 그자가 이토를 죽였다고 주장한다.
물론 당시 일본은 안중근이 일본의 정치가를 저격한 살해범이자 괴한으로 보였던 것이 당연하였다. 오늘날 한국에서 이를 의거라고 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당연히 암살, 저격, 테러라고 규정지었고 한국에서는 안중근을 구국의 영웅, 애국자로 칭송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우익 시각으로 일국의 정치가이자 원수를 저격하고 살해한 괴한, 정치 테러리스트로 여긴다. 다만 일본에서도 옛날과 비교하면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평이 낮아지고 안중근에 대한 평이 올라가기는 했다. 물론 역전됐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 합병을 반대했던 인물인데 그런 자를 조선인이 죽였으니 일본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라고 본다.
일본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1905년부터는 사실상의 전쟁 상태[5]에 들어선 셈인데, '''요인에 대한 암살이 행해지는 것은 당연한 전쟁 수행'''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이에 더해서 이토 히로부미는 단순한 일본의 정치가가 아니라 한국을 침략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수행하는 인물이라 당연한 제거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사라예보 사건과 결정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다. 사라예보 사건의 범인인 프린치프의 애국 대상은 병합된 보스니아가 아닌 주권국가이자 제정 러시아와 손을 잡고 오스트리아 제국에 대립하는 세르비아였다. 안중근 의사의 경우에는 민족주의와 별개로 본인의 조국이 침략을 당한 것이라 당연한 대응을 한 것이고 프린치프는 본인의 조국이 침략당한 것도 아니고 국익(ex : 보스니아 병합을 못한 것)챙기는데 방해된다고 죽인 셈이다. 참고로 보스니아는 한국과 달리 세르비아계 이외에 여러 민족들도 섞여있었으므로 세르비아의 합병도 원하지 않았다. 유고슬라비아 연방 붕괴 후 즉시 독립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일본이 항일의병장과 독립군 지휘관들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고 끊임없이 사냥을 한 것만 봐도 일본도 열심히 한국의 주요 인물에 대한 암살 및 테러를 수행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으며, 이미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를 살해하여 먼저 일을 벌인 것도 일본이다. 시작도 일본이 했고 피해도 일본이 더 많이 주었는데 반격하면 안 된다는 건 그야말로 엉터리 논리다. 간단히 말하자면 당신은 남에게 두들겨 맞고 있다. 살아남으려면 그 사람에게 반격을 날려야 한다. 그런데 반격했더니만 그 상대방이 당신에게 "왜 내게 폭력을 쓰냐?" 라고 항의하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을미사변을 주도한 것이 흥선대원군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 부분은 을미사변의 주동자로 의심되는 유길준 한 명이 주장하는 바에 근거한 것으로 그 진위 여부는 말이 많다. 을미사변 당시 흥선대원군은 주도가 아니라 얼굴마담 비슷하게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설도 있어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라는 이야기.
안중근 본인이 이토를 살해한 까닭이라는 이토의 죄목을 보더라도 최소한 조선에서는 명백한 범죄자다. 다음은 안중근 본인이 주장한 이토 히로부미의 죄목이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가 이런 죄를 지어서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1. 한국의 명성황후(明星皇后)를 죽인 죄
  2. 고종 황제(高宗皇帝)를 제위에서 내친 죄
  3. 을사조약(5조약)과 한일신협약(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
  4. 독립을 요구하는 죄 없는 한국인들을 마구 죽인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아 통감 정치 체제로 바꾼 죄
  6. 철도, 광산, 농림, 산지를 강제로 빼앗은 죄
  7. 일본 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여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죄
  8.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
  9. 민족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키고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죄
  11. 한국사를 없애고 교과서를 모두 빼앗아 불태워 버린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한국이 아무 탈 없이 편안한 것처럼 위로 일본 천황을 속인 죄
  14. 대륙(중국)을 침략하여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15. 일본 천황아버지를 죽인 죄
지폐 이전에 사용된 동전의 경우, 한국 황실이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등의 폐해가 컸다는 점과 휴대가 용이한 지폐가 보급되자 민중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는 점, 안중근이 과거 집필한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 삼국의 화폐 통합을 주장한 점을 근거로, 일본 은행권 강제사용을 문제삼은 안중근이 이상하다고 주장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와 일본 학자들이 소수 존재한다.
일단 화폐정리사업의 경우 황실이 마구잡이로 돈을 찍어낸 바람에 이를 할 필요성은 있었다. 물론 필요성은 단지 구실이었을 뿐이었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삼국 화폐통합은 어디까지나 한중일 삼국의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며(이를테면 유로와 비슷한 것) 화폐정리사업을 진행할 당시 일본의 행보는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태였다.
분명히 의무교육의 도입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크게 개입하였으나 이 교육이 '민족 교육'이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안중근은 이것을 이유로 제시한 것.
안중근이 근거로 제시한 '''천황을 속인 죄'''는 물론 메이지 덴노의 실권은 실권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지만, 메이지 덴노가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 리가 없다. 게다가 일본군/인물 항목에도 알다시피 일본군의 전략을 결정하는 자리는 '''천황이 임석한 어전회의였다.''' 게다가 이를 빌미로 '''"흑흑, 우리 천황께서는 나쁜 군부 놈들 거짓말에 속으셨스무니다. 흑흑흑."'''이라는 일본 측의 변명을 정당화시킬 수도 있다.
'''일본 천황의 아버지를 죽인 죄'''는 메이지 덴노의 아버지 고메이 덴노는 1867년 급사하였는데, 공식상으로는 천연두로 인한 병사지만 막부 측의 독살 혹은 토막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존왕파가 독살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즉 위에서는 존왕파의 이와쿠라 토모미가 고메이 덴노를 독살했다는 설을 취한 것이다. 이 부분은 지금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 메이지 덴노 대역설 참조.
추가로 안중근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토를 살해한 까닭을 밝혔다.

내가 이토를 살해한 것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이 이상 멀어지게 하는 것을 막고자 하여 대한제국 의병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이토를 처단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 그의 개인적 원한이 아니라 그가 살아있음으로 인해서 대한제국과 일본이 끝없이 반목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살해한 것이다

그러니까 안타깝게도 '''안중근은 죽을 때까지 일본 정부의 의도는 선하다고 믿었다.''' 그랬으니 천황을 이토 히로부미가 속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안중근은 살인자는 맞으나 그저 무고한 일본인을 죽인 것이 아닌 독립 투쟁의 일환으로 한국 침략의 선봉장을 처단한 것이다. 안중근 의사도 이런 이유로 잡히면 사형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망치거나 자결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된 것이다. 목표가 이토의 처단을 통한 독립 의지 표현이었기에 도망칠 수 없었고, 그가 믿었던 종교인 가톨릭은 자살을 어떤 이유로도 허락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자살할 수도 없었다.
만약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단순한 살인이었으면 오늘날 안중근이 독립투사로 대우받겠는가? 이판능이 그냥 묻지마 살인범이지 독립운동가 대우를 못 받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다만 시대가 시대였는만큼 당시에는 동정은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암살자 논리를 펴는 일본의 작품도 상황을 잘 모르는 제3자가 보기에는 '무고한 정치가가 흉악한 테러리스트에게 당했다'라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충분히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포함된다.

3.3.2. 강우규, 나석주, 이봉창, 윤봉길 등은 폭탄 테러리스트


이것도 모자라 1932년에 일어난 이봉창의 도쿄 의거와 윤봉길의 훙커우 의거를 가지고도 말이 많았는데 일본의 입장에서는 그 두 놈은 대일본제국 폭파를 강행했던 '''사악한 테러리스트들'''이며 '''이봉창이라는 놈 때문에 하마터면 천황 폐하께서 서거하실 뻔 하셨다. 윤봉길이라는 놈 때문에 무고한 대일본 고위인사들과 일본 신민들이 폭탄 테러로 피해를 봤다'''는 무지막지하고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참고로 국내에서도 어떤 역사교과서에서 이 주장을 고스란히 실으려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추축국으로서의 일본제국의 입장을 아무런 비판 없이 서술하는 것은 현대 민주시민사회로서의 일본국이 일본제국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안중근 의거에서처럼 이봉창, 윤봉길 이 두 의사는 천황과 침략을 주도하였던 일본 정치인과 군 인사들을 향해 응징을 하였던 것뿐이었으며 이들 이외에 '''민간인들에게는 아무런 폭해(爆害)를 가하지도 않았고 살상(殺傷) 또한 했던 적이 없다.''' 물론 당시 상황이 상황인 만큼 민간인 피해자도 한 두명 있었을지 모르나 정말 민간인을 노렸다면 폭탄을 던졌던 방향이 정반대라 말이 안 된다. 특히 이봉창 의사는 주변의 일본인들이 용의자로 몰려 두들겨 맞자 사형당할 게 분명함에도 내가 했다고 당당히 밝히기까지 했다.
또한 일본은 1930년대 들어서 침략의 마수를 개시하였고 이봉창 의거를 핑계로 중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상해사변을 일으키고 중일전쟁을 벌이며 난징 대학살까지 주도한 만행을 저질러왔다.
한인애국단, 의열단 그 외 여러 열사들의 의거를 보면 조선 총독부, 사이토 마코토, 동양척식주식회사, 식산은행 등 조선을 식민지화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거나 조선을 통치하고 있는 이들을 노린거다. 엉뚱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노린게 아니다.
참고로 전 세계 어느 국가를 보아도, 자국 역사에서 자국의 영웅을 죽인 적국 병사, 혹은 의거인들을 이렇게 의도적으로 비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냥 영웅이 죽어서 아쉽다 정도일 뿐이지. 미국에서는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한 존 윌크스 부스도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어리석은 저격범" 정도로만 여기지 인격적으로 모독하지는 않는다.

3.3.3. 일본인은 전후 한국인에게 피해를 입었다


전쟁 중에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볼 꼴 못 볼 꼴 다 당한 건 싹 입 닦고 전쟁 이후의 혼란기에 한국인일본인에게 감정적으로 보복한 소수의 사례만을 강조하여 한국인을 악당으로 몰아간다. 요코 이야기김완섭이 어느 소설 가지고 날조한 카즈오 이야기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전반적으로 남한 지역에서는 미군정의 통제 때문에 심각한 폭력은 자행되지 않았고, 잔류 일본인들의 철수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심지어 미군정이 들어오기 전에도 이랬는데 이는 조선총독부와 여운형간에 협의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여운형은 정무총감이었던 엔도 류사쿠(遠藤柳作)와의 협상을 통해 정치범 석방과 서울에 3개월 치 식량 확보, 건준활동에 필요한 여러 집회나, 조직에 대한 불간섭 보장을 조건으로 일본인들의 안전한 귀국을 보장하기로 했다.
황당한 건 그나마 패전과 한국의 독립이 이루어졌다는 상황판단은 가능했던 엔도 류사쿠와 달리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는 여운형의 요구조건에 대해 '감히 조센징 따위가' 라는 사리분별 못하는 개소리를 했고, 일본으로의 안전한 귀국을 위해서는 여운형과의 협상이라는 선택밖에 없다는 엔도의 말에 마지못해 승낙하는 추태를 부렸다.
물론 부동산과 사업체는 모두 몰수되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한반도에서 획득한 재산을 최대한 일본으로 가져가려 했으나, 미군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부동산과 사업체를 현금재산으로 전환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남겨놓고 간 재산들은 한국전쟁 때 다시 한 번 싸그리 잿더미로 바뀐다.
한편 어처구니없게도 북한 지역에서는 이런 조선인의 난동을 막는답시고 일본군의 발포로 죽은 조선인도 많았다(...) 물론 이때 일본인도 죽었었다. 당시에 얼마나 불쌍해보였는지 북한사람이 도망치던 일본인을 숨겨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실제로 전후 일본인들이 한국인에게 피해를 입었더라도, "'''애초에 누가 먼저 35년간 누구를 괴롭혔는지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 문제다."''' 마치 소련군이 독일을 점령한 뒤 독일에서 각종 전쟁범죄를 저질렀어도, 그것이 "'''더 심하고 국가차원의 묵인과 체계적인 계획에 의해 저질러진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를 묻어주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당시 소련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한 짓이 심할 수도 있지, 하지만 먼저 우리 조국을 침략해서 우리 가족들을 죽이고 고문하고 고향을 쑥대밭으로 만든 게 누군데? 그거 생각하면 다 죽이고 불태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감사해야 할 걸?” 정도였다. 이는 조선에게도 마찬가지의 문제다. 만화 '맨발의 겐'에서는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곤란을 겪는 걸 보면서 등장인물이 분개하자, 주인공이 “저 사람들은 우리에게 35년간 지배받으며 괴롭힘 당한 거 생각하면 저러는 것도 당연하다. 이건 우리의 인과응보다.” 라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당시 잔류 일본인들의 수기를 보면 패망한 시점에서도 한국인에게 우월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경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서, 피신하면서 한국인의 집에 묵게 되었을 때 한국인이 밥을 주면서 "김치는 영양가가 좋다."고 자랑을 하자 '''"그렇게 영양이 좋으면 너나 먹어라."''', '''"자랑할 게 김치 밖에 없냐?"'''고 지껄였다는 수기가 존재한다. 도망치다가 밥 얻어먹는 주제에 말이다.
당연하지만 패배감에 열폭한 일본인들의 난동이 일본 본토에서는 훨씬 더 심했다. 이 열폭감에 저지른 꼴사납고 창피한 짓들을 한국인들에게 덮어 씌우고자 이런 날조가 행해진 감도 있다. 일본인들의 이러한 난동은 일본 본토에 있는 한국인만 대상으로 하지 않았고 같은 일본인 역시 그 대상 중 하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히키아게샤로 이들은 단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전후 일본에서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오히려 제2차 세계 대전태평양 전쟁기에 벌어진 '''공출'''이란 미명하에 저지른 약탈, 지금도 지지부진하여 떠들썩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과''' 등의 문제만 봐도... 물론 보상 문제는 한일기본조약으로 청산되었으나 사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사과를 했으면 더는 그걸 갖고 두 번 다시 망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도 붙는다. 그러나 일본의 극우 인사들은 그걸 잊어버린 듯 망언쇼를 하니 문제.
오죽하면 히키아게샤인 할아버지 한 분은 일본으로 올때 고향을 잃어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그 고향이란 것도 조선인들의 땅과 재산을 부당하게 뜯어낸 결과물이었다는데서 착잡함을 느꼈다고 한다(...)
아래는 일제 때 유행했던 신고산타령이라는 제목의 노랫말이다.

신고산이 우르르 화물차 가는 소리에

지원병 보낸 어머니 가슴만 쥐어뜯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양곡배급 적어서 콩깻묵만 먹고 사누나

신고산이 우르르 화물차 가는 소리에

정신대 보낸 어머니 딸이 가엾어 울고요

어라어랑 어허야

풀만 씹는 어미소 배가 고파서 우누나

신고산이 우르르 화물차 가는 소리에

금붙이 쇠붙이 밥그릇마저 모조리 긁어 갔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이름 석자 잃고서 족보만 들고 우누나

이 노랫글 중 마지막은 '''공출'''이란 미명하에 벌어진 약탈창씨개명에 대한 것이다.

3.4. 번외: 독도에서 강치가 멸종한 원인


한국 호랑이, 한국표범을 멸종시킨 해수구제사업과 함께 일제가 저지른 만행으로 손꼽히는 사례인데, 특히 해당문제는 일본이 자국의 독도 영유권 문제에 이용하고 있는지라 한국 대중들을 더욱 더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강치 문서의 3번 단락에도 나오는 스기하라 유미코의 동화인 '강치가 있던 섬'(メチのいた島)으로 해당 동화는 '다케시마'(독도)를 강치와 '''일본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섬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줌으로서 해당 생물의 멸종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은폐하고 나아가 일본이 과거부터 '다케시마'(독도)에 지속적으로 활동함을 강조하면서 해당 섬을 한국정부에게 강탈당한 일본인의 생활권이라고 주장하고있다. 물론 현실은 당연히 일본의 거짓말이며 오히려 공도정책으로 인해 수만단위로 번성하고 있었던 강치 개체군을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힌것은 독도 강탈후 이 지역에 무단으로 들어온 일본인의 남획 때문이였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강치 항목에도 알 수 있듯이 한국 또한 이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는 없겠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당시 극단적인 가난에 시달리고 야생동물의 보호의식이 희박하였다는 점 등 시대상을 고려하면 어느정도 참착될 여지가 있으며 비록 실패하기는 하였지만 정부부처 차원으로 해당 생물종의 복원사업을 진행하려고 했던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해당종의 남획사실에 대해 별다른 코맨트가 없는 상태이다. 오히려 남획사실을 감춘채 해당 종의 멸종원인을 독도 요새화로 인한 한국의 남획탓[6]으로 변명하고 있는 상태이다.

3.5. 전쟁범죄의 부정 및 미화와 전쟁범죄자들에 대한 신격화


야스쿠니 신사순국7사묘만 봐도 답이 나오는데 이 시설들은 전부 전쟁범죄자들을 신으로 받들어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의 경우 살아있는 사람에 심지어 일본의 전쟁범죄의 피해자들조차 강제로 합사하고 그 당사자들이 빼달라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제대로 된 민주국가라면 이런 상황에서 본인이 거부했을때 받아들여져야 정상이다. 신격화가 되든 우상이 되든 당사자에게 그 권리가 있지 떠받들려는 자들에게 그런 권리는 없다.
정작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수 있는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이라는 '''국립'''[7] 전몰자 추모지가 이미 있음에도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만 전몰자 묘원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어 좀 하는 일본 극우가 있다면,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알려주면 된다.
애초 야스쿠니 신사와 치도리가후치 묘원은 시설의 성격과 봉납의도, 추모객의 성향 자체가 다른 별개의 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성향의 정치인이 봉하 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러 가지 않거나, 진보 정치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하러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신토라는 보수성향의 종교시설이다.
그리고 치도리가후치 묘원은 정치적 성향이 배제된 순수 참배장소이다.[8] 실제로 일본의 야당 인사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러 가지 않지만 반대로 여당인 자민당 인사들은 가급적 야스쿠니 신사를 우선적으로 참배하며 치도리가후치 묘원은 야스쿠니 신사의 방문 횟수에 비하면 참배 횟수가 손을 꼽을 정도로 적다.
게다가 순국7사묘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그렇지 위험도는 야스쿠니 신사보다 '''더하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식의, 전범들을 섬기는 신사나 사묘들이 일본 내 각지에 퍼져 있어서 이런 곳에서 참배를 하면서도 참배 받는 대상이 누군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대표적으로 일본 각지에는 호국신사란 곳이 있는데, 특히 에히메 현의 호국신사에서 받들어 섬기는 대상 중 하나는 치치지마 식인 사건의 주동자 다치바나 요시오다.
게다가 전쟁범죄자들을 신격화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전쟁범죄의 부정이다. 일본 내 극우 인사들이 심심하면 동아시아 국가들을 격노하게 만드는, 전쟁범죄를 부정 내지는 비호, 미화하는 망언들 역시 피해자 행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가 담긴 도시전설로, 포로 감시를 맡은 일본군 장병이 연합군 포로에게 식량으로 우엉이나 등을 줬는데 전범 재판 때 포로들이 검은 종이와 나무 뿌리를 강제로 먹였다고 증언해서 억울하게 전범으로 처벌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이런 일로 전범 처벌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김은 당시엔 일본군 내에서도 상당히 귀한 식재료여서 포로에게 줄 여유도 처음부터 없었다. 상당히 유명한 도시전설로, 심지어는 아래에 언급할 맨발의 겐에서도 이 내용을 사실로 착각하고 묘사했을 정도이다. 물론 작품의 특성상 전쟁범죄를 부정한 것은 절대 아니고, '단순한 개개인의 선행이 문화의 차이로 인해 폄하를 당했을 수 있다' 정도의 주장이다.

3.6. 일본은 연합군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다



3.6.1.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의 전반적인 내용들을 은폐


전쟁을 다루는 작품에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공세를 벌이던 시기는 쏙 빼놓고''' 일본이 참패를 거듭하여 패망 직전에 몰린 상황만을 중점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이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남방작전의 쾌진격 같은 건 또 '''서구 열강들에게 고통 받던 동남 아시아인들을 해방시켜준 작전'''으로 포장하며 찬양한다.
이 와중에 나온 바탄 죽음의 행진은 절대로 인정 안하면서 한중의 날조라고 박박 우기는 것은 기본. 그런데 바탄에서 죽은 사람은 중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이다.''' 그것도 단순한 미국의 민간인도 아닌 연합군의 미국 측 포로들이다. 당연히 미국 측에 객관적인 기록이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해서는 가급적이면 말을 안 꺼내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가끔씩 말이 나오면 위에 언급한대로 날조라면서 덮으려든다 다만 덮으려고만 들 뿐이지 대놓고 날조라고 우길 수가 없다. 당장 미 해군의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5번함의 함명이 바탄인데, 이 함명이 붙은 이유가 바로 '''바탄 죽음의 행진에서 희생당한 미군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치치지마 식인 사건도 마찬가지로 덮으려고만 들 뿐 날조라고 우길 수가 없다. 그 피해자가 될 뻔한 사람이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이기 때문. 걸프 전쟁을 치렀으며, 이라크 전쟁으로 유명한 미국의 제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아버지가 맞다.
이러한 방법으로 일본이 먼저 미국, 필리핀, 파푸아뉴기니 등에 공격을 퍼붓고 점령지에서 잔학 행위를 한 역사적 사실을 흐지부지 얼버무리거나 감추고 일본이 공격당하고 있는 상황만을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특히나 상대가 어느 정도 전력을 갖추고 있었던 연합군에 대한 공격보다 전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중국, 인도를 멋대로 침략하고 조선,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멋대로 점령하고 한참 수탈하던 시절에 대한 일은 거의 다 생략된다. 전쟁물로써 제대로 된 전투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도 있고 '''연합군에게 시원하게 얻어터지는 일본'''의 모습은 서양 측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어필하는 것도 있으니 이에 대한 표현은 어떻게 하는지는 넘어가더라도 일본이 동남아시아를 합병하는 과정을 세세히 묘사한 일본 작품은 미디어의 종류를 통틀어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로서 마치 '''"일본은 침략을 당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일본이 공격받는 것이 먼저 전쟁을 일으킨 탓에 생겨난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 무고하고 평화로운 일본이 일방적으로 미국 등 연합국에게 공격받는 것으로 왜곡한다.
그리고 일본군을 과대망상과 침략 욕구에 물들어 일방적으로 침략한 끝에 패배하고 밀려난 꼴사나운 침략자가 아니라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싸우는 수호자들로 왜곡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들은 일본 내에서만 통하는 '''내수용''' 주장이고, 해외에서는 이미 역사책에도 기록되어 있고 영화화까지 몇 번 씩 된 바 있는 진주만 공습난징 대학살이 매우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인터넷 와패니즈들 말고는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 상식적으로 일본의 영토는 기본적으로 일본 열도였다는 걸 세계인들이 아는데,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영토가 어째서 그렇게 불어났는지는 외국인들의 입장에선 도서관 가서 역사책 한번만 들춰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이 주장하는 헛소리들이 단 한 글자도 없는 '''진짜''' 역사책 말이다.

3.6.2. 일본이 받은 피해'''만''' 과장, 강조


이렇게 위에 언급한 것처럼 태평양 전쟁의 전반부를 짤라내더라도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은 엄청나게 많지만, 도쿄 대공습 같이 일본의 민간인들이 미국수뇌부들의 결정으로 학살을 당했다고 강조하며 일방적으로 미국만 비난하고 있다.. 물론 자신들이 당한 피해를 지적하고 지나쳤다고 비난하기도 하는 건 독일도 마찬가지지만[9][10], 독일은 최소한 자기가 먼저 잘못했다는 사실은 떳떳하게 인정하고 중립적으로 취급한다.
이런 것을 통해 마치 연합군만 만행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보이게 만든다. 또한 그 당시의 전투를 묘사한다는 핑계를 잡아서 일본 본토에서 벌어지는 방어전을 언급하면서 일본군이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만 중점적으로 언급함으로서 일본군의 침략자 이미지를 자국수호자 이미지로 바꾼다.[11]
그리고 마침내 2013년 5월에 이르러서는 아베 정권이 대놓고 도쿄 대공습이 '''인도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미국을 에둘러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공습 자체가 인도주의에 위배될 소지가 충분한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국제적으로도 비판이 많지만 그 이전에 자기들이 잘못한 것은 왜 언급하지 않는가? 참조 기사. 마치 북한이 자신이 먼저 대한민국 정부를 침략한 건 언급하지 않고 원산 공습에서의 민간인 피해만 강조하는 꼴이다.
일본으로서도 이건 '''극우들 내부에서조차도 잘했니 못했니 의견이 엇갈릴 만한 도박에 가까운 발언'''이다. 그러나 이건 도쿄 대공습을 진두지휘한 커티스 르메이의 명언 하나로 간단히 반박할 수 있다.

사실 저 밑에 스즈키 네는 군용 볼트를, 옆집 하루노보 네는 군용 너트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이런 걸 가내수공업이라고 하지.

솔직히 도쿄 대공습 당시 일본의 내부 실상을 보면 커티스 르메이의 이 말은 사실에 가깝다. 자원 부족에 시달리다 못해 '''공출'''이란 명목으로 식민지이던 한반도에서 약탈해간 물자들만 계산해도 답이 나올 정도니... 당시 한반도에서 유행했던 식민지 판 신고산 타령의 마지막 절에는 "금붙이 쇠붙이 밥그릇까지 모조리 긁어 갔다"는 가사가 있는데, 그게 이 때문에 붙은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다른 식민지에서도 모조리 긁어갔다.
게다가 일본군의 무기체계를 보면 묘하게 아귀가 안 맞는 점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의 원인이 이것이다. 항공기, 함선, 전차 등등은 기업체 공장에서 만든다 해도 거기 들어가는 볼트, 너트, 리벳 같은 기계요소들은 죄다 일반 가정에서 만들고 있었기 때문. 당연히 품질과 부품 호환성이 좋을 리가 없다.
쉽게 말해 커티스 르메이는 당시 일본의 산업구조가 '''전쟁의, 전쟁에 의한, 전쟁을 위한''' 군수산업 최우선으로 굴러가고 있었으며, 일반 가정에서조차 이를 보조하고 있는, 이른바 '''간접적인 전범'''이란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커티스 르메이의 또 다른 명언(?)인 "무고한 민간인 따위는 없다." 역시 같은 맥락. 게다가 도쿄 대공습 전에 커티스 르메이가 참고한 것이 연합군이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한 드레스덴 폭격과 일본이 중국에서 한 충칭 대공습을 포함한 중국 대륙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드레스덴은 당시 추축국 중 하나인 독일 제3제국의 군수시설 밀집 구역 중 하나였고 연합군의 목표도 이 군수시설이었으나[12], 충칭은 국민당 정부가 임시수도로 정하면서 시의 중심부에 군수 시설이 있었는데 일본이 폭격한 곳은 민간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시의 외곽 지대였다. 그러니까 군수시설을 파괴할 목적이었던 드레스덴 폭격과 달리 충칭 대공습은 당시 국민당 정부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기 위해 '''일부러 민간인 거주 지역에 폭격'''을 한 것이다.
추가로 웃기는 사실 하나가 더 있는데, 일본은 중국 대륙의 각지에 민간인이 있든 없든 무차별로 폭격은 물론 중국인들을 보이는 대로 즉결 사살까지 한, 작전 같지도 않은 민간인에 대한 대량 학살을 정식으로 한 바 있다. 두 명의 미치광이들이 포로와 민간인들을 목 베어 죽이면서 누가 더 많이 죽이는가 경쟁(?)하는 것을 신문기사랍시고 쓴 적도 있고 말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동격의 생체실험을 한 부대가 만주에 있었다는 사실도 있다.
특히 충칭 대공습의 경우 일본군이 이 공습에서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소이탄을 쓰면서 도쿄 대공습에서 커티스 르메이가 네이팜탄을 사용하는데 결정적인 모티브가 된다. 즉 일본군은 자기가 쓴 방법에 자기가 그대로 보복당했다는 거다. 참고로 일본은 '''아직도''' 충칭 대공습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다가 엄밀하게 도쿄 대공습의 책임론을 따지면 오히려 일본 제국이 자국의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웠다는 판단도 가능해진다. 추가로 그 당시 일본의 도시 구역을 보면 공장과 주거지의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훌륭한 뒷받침이 된다. 구분이 되어있지 않은 이유는 그 당시 민가랑 공장을 구분 못하게 해서 제대로 폭격을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13] 한마디로 민간인을 군사 시설 보호를 위해 방패로 쓴 셈.
일례로 도쿄 대공습을 하기 전에 일본이 수도 도쿄의 민간인은 물론이고 문화적으로도 일본과는 거리가 있던 오키나와 주민들까지 포함한 자국의 민간인들에게 신주불멸이라면서 귀축영미 따위는 그냥 이긴다고 언론을 이용한 세뇌공작을 썼다. 히로히토에 의해 떨어진 옥쇄 명령으로 오키나와 전투 때 벌어진 참극만 봐도 세뇌의 결과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오키나와 전투보다 시기적으로 더 앞선 사이판 전투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이미 있었다.
앞서 언급한 사실이지만 미국이 '''"바탄"''' 한 단어만 말해줘도 단박에 일본이 깨갱하게 만들 수 있다. 당장 미 해군와스프급 강습상륙함에 이 이름을 가진 함선이 있다.
또한 굳이 바탄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이 '''태평양 전쟁'''의 서막을 연 '''진주만 공습'''만 언급해도 끝난다. 애당초 먼로 독트린에 의거, "무의미한 전쟁은 할 필요가 없다."며 고립주의를 고수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초반만 해도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던 미국이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대통령의 유명한 '치욕의 날 연설'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한 결정적인 원인이 이 진주만 공습이다.[14]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현대 국가 간의 기본적인 전쟁 수행 방식을 생각해 봤을 때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공격을 한 진주만 공습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도 당장 대중국 최우선 동맹인 일본을 거둬들이고 있어야 해서 일본과의 직접적인 역사충돌을 잘 안하는 것 뿐이지 일본 쪽에서 먼저 덤벼온다면, 위안부 개정 법안 통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얄짤 없다. 미국은 단박에 일본을 침묵시킬 수 있는 무수한 일본군 전쟁범죄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 이를테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이 해군 조종사로 있을 때 일본 근해에서 미군 잠수함에게 구조받지 못했으면 당할 뻔 했던 치치지마섬 식인 사건 같은 거.
게다가 똑같이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일본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또는 무시하려고 애쓰는 중국과는 달리 미국은 현재도 일본의 혈맹이다. 그래서 일본이 중국에는 대들어도 미국에는 좀처럼 대들 수가 없다. 더욱이 미국도 이런 일에서는 일본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아 한 예로 일본 극우에서 2차대전기의 미국을 비난하자 분노한 네오콘들이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힘을 보태주었고(...) 이를 로비로 저지하려던 일본계 미국인들은 김영옥 대령을 비롯한 2차대전 참전 군인들이 "우리가 유럽에서 싸운건 뭘 위해서였습니까?" 라고 하자 다들 물러났다. 네오콘은 부모 세대가 2차대전 참전자들 일본계 미국인들은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개고생을 겪던 이들이었다. 이런 이들에게 일본의 피해자 행세는 통할 리가 없다.

3.6.2.1. 원자폭탄의 피해 책임 회피및 과장, 강조

이것 말고도 일본은 원자폭탄 공격의 피해만 강조하기도 한다. 원자폭탄 자체는 실전에서 사용된 것은 일본에 투하된 2발 외에는 없으며 그리고 냉전의 영향으로 핵공격=세계멸망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이런 반전적인 측면에서 민간인들한테 가져올 피해를 생각하는 의미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일어난 일을 꾸준히 기억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은 민간인들을 인간 방패로 삼아 책임을 돌렸던 자기정부의 잘못을 언급안하고 이걸 이용해서 자신들을 '''민간인이 핵공격을 받은 불쌍한 나라'''로 포장해 자기만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이 이 사태를 일으켰던 원인이라며 역사적인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극우 정치인들도 있다. 물론 전쟁을 원치않는 사람들도 도쿄 대공습 등 공습을 피해 온 사람들까지도 죽기도 했으니 분명 비극은 맞다. 문제는 자기 나라도 그 비극을 몇년 전까지만 해도 쉼없이 미국에 만행을 저질렸으면서 책임을 민간인한테 떠넘겨 자기나라가 피해자라고 모르쇠하는것이다. 또한 실제로는 원자폭탄을 맞은 히로시마나가사키 보다 대규모 소이탄 폭격이 이루어진 도쿄 대공습 때의 민간인 피해가 더 심했다.[15]
이런 주장은 알게 모르게 일본의 저명한 정치가나 노벨상을 받은 석학들도 자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일본 극우주의자들만 주장하는 지엽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화자에 따른 그 차이들은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적어도 좌익이 주장하는 원폭 피해는 '''최소한 자기가 먼저 잘못했다는 사실은 떳떳하게 인정한 뒤''', 원자폭탄의 피해도 주장하는 것이다. 즉, 적어도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인정을 한 뒤에 비로소 자신들의 받은 피해를 주장하는 것이다. 극우들이 씨부리는 '''자기나라가 피해국이 라고 하는 것과 180도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국이 입은 원폭의 피해를 강조하고 선전하면서 강제로 끌려와서 노예나 다름없이 일하다 불벼락을 맞은 사람들은 감추고 피폭자의 1할에 달하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철저히 무시하고 그리고 결국 25년이 지난 1970년에 들어서야 재일거류민단에 의해 위령비가 세워졌다. 여러 소송끝에 2011년이 와서야 지원을 했었으나 다시 끊겨졌다(...) 정작 참전했던 군인들을 추모하는 야스쿠니 신사는 관리를 많이 하지만 정작 민간인들을 위한 추모소는 거의 방치가 되고 있는 모순도 드러나는 것도 덤. 당장 국가 신토의 극우들 집성지인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 정부가 무명의 참전 병사들을 위해 '''공식적으로 만든''' 추모지인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비교해보자.
재일거류민단에 의해 만들어진 위령비는 그나마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외진 구석에 자리잡고 있으며 무관심으로 그대로 냅둬지고 있다. 거기에 모자라 이 위령비를 강제 철거하려 하고 있는 안습한 상황이다.
일본정부가 원폭의 피해를 강조해온 것은 안보투쟁이 끝났다고 판단되는 1970년대부터다. 안보 투쟁 이전에는 미국과의 안보동맹으로 인하여 오히려 쉬쉬하고 보도하려는 관련매체가 있으면 압력을 넣어왔고 오히려 좌익 쪽에서 일본정부와 미국정부 양쪽에서 버림받은 피해자들을 구제 하기 위해 피해자를 무시하는 일본, 미국 양국 정부를 비난소재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원폭을 맞을 짓을 해놓고 일반 국민들의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미국에 따까리짓을 하는 구 일제 잔존세력 + 원폭을 떨어트려놓고 피해 진상을 완전히 무시하는 미군 VS 일반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참혹한 실상을 무시하는 미국, 일본 극우의 대척점에 있는 좌익이라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이들의 좌익은 움직임은 향후에는 한국인 피해자 구제라는 부분도 이 구도에 끌어들였다. 결과적으로 일본인 피해자만 들어서 일제의 선량함을 증명(?) 하려는 극우 VS 일본인 피해자 뿐만아니라 구 식민지 피해자도 구제함으로서 극우의 실상을 까발리고 극우를 제제하려는 좌익이라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문서에 어쩔수없었다는 항목에 있지만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일본제국이 민간인들을 끌여모아서 군수공장에 일했던점에서 당시 폭정을 저지르던 해당 정부에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은 한에는 좀처럼 협력자의 위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관점이 있다. 커티스 르메이의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가 바로 이것. 간혹 전쟁광으로 오해하는경우가 있는데 무기만능주의에 가깝다. 민간인들을 학살 자체를 즐기는게 아닌 군부세력들을 없애면서 민간인들이 죽어 나가는건 어쩔수없다는 의미로 발언한것이다. 물론 위에서도 몇 번 언급됐지만 중간에 일하던 강제노동 중이던 한국인들은 얘기가 달라진다.
일본 제국 정부가 전쟁을 일으켰지만 우리 군수공장에는 민간인들이 있으니 폭격하는 건 나쁘다는 건 모순이 있으며 무엇보다 일본제국시절 정부가 저지른 전쟁행위의 피해자들을 망각하는 행위이다. 가해 행위에 동참해놓고서 나중에 손실을 보게 되자 자신은 국가에게 희생당했다느니 하면서 민간인들을 지옥길로 내몬걸 자기정부가 피해자인 척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 비슷하게 가미카제 관련해서 일본인 기자가 가미카제로 죽은 일본인 조종사들이 불쌍하다고 말하자 [16] 중국인 기자가 "애초에 전쟁을 일으키지 말았으면 누구도 안 죽었을 텐데?"라고 반문하여 침묵하게 만든 바 있다.
원자폭탄은 1개의 폭탄으로 많은 피해를 냈다는 점이 임팩트가 있을 뿐이지, 수천 개의 폭탄으로 도시를 폭격한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2차 세계대전 당시는 지금처럼 정확히 공장만 날릴 수도 없었다.
물론 이들 중 원자폭탄을 맞은 나라는 일본 제국 뿐인 것은 맞다. 원폭은 당시로서는 만든 당사자들도 경악할 만한 무기였다. 당사자뿐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 원폭 날린 사람들까지도 자신이 뭔 짓을 한거냐며 자괴감을 느낀적있다고 한다. 당시에 원자폭탄을 맞은 사람들도 방사능 때문에 세대를 걸러서 고통 받고 있기 때문에 원폭 투하에 대한 도덕적 논쟁은 떡밥으로 남아 있긴 하지만 이는 일본에게 전쟁책임이 있는가 없는가와는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고로 일본이 본인들의 만행에 대해선 상기하지 않은채 오로지 원폭 맞은 것만 되뇌이며 피해자 행세를 하는 행동은 잘못되었다는 것.
한 예로 일본 네티즌이 미국은 일본에 터뜨린 원폭을 사죄해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가 다국적 네티즌들에게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 물론 원폭으로 비무장 민간인들까지 죽인 것 자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기에 공감하는 이도 있긴 하나 전반적인 책임은 일본정부가 크다는 의견이 보통이다.
2005년 아우슈비츠에서 홀로코스트 추모 관 야드 바셈 박물관의 개막식이 열렸는데, 이때 일본 외교관이 원폭을 운운하며 피해자 그룹에 참가하려다가 박물관 측에서 나치즘에 물들었다며 비난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한국 웹에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이스라엘 현지 신문에 나온 외교부 대표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국가원수가 초대되지 않은 것은 사실며나 주 이스라엘 일본대사관의 직원들만 초청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원폭을 홀로코스트에 비견하려 할까봐' 초대되지 않았다는 것은 루머이며, 단지 일본은 홀로코스트 해방에 기여한 국가도 아니고 홀로코스트에 딱히 관심이 있는 나라도 아니기 때문에 초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자폭탄 이야기가 나온 마당에 한 가지 더 소개하면 당시 일본 제국은 뒤로는 강화 협상을 하자면서도 정작 민중들에게는 1억 총 옥쇄 같은 터무니없이 인간방페로 구성하였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사용하기로 한 이유는 기존 추축국들 중 이탈리아나치 독일은 이미 항복했는데 일본은 내부적으로 '''1억 총옥쇄'''를 외치며, 끝까지 버티고 있어서다. 참고로 이탈리아는 1945년 4월27일 항복문서에 서명하여 5월 2일자로 발효됐고 나치 독일은 1945년 5월 7일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5월 23일자로 군이 해체되면서 발효된 상태였다.
결국 미국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 원자폭탄을 사용한 것이며 만에 하나 그래도 계속 버텼으면 소련도 끼어들면서 윌리엄 홀시 제독이 진주만 공습으로 박살난 해군기지를 보고 한 말대로 일본어라는 언어는 정말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언어가 됐을지도 모른다. 1945년 8월이면 소련도 만주 작전과 함께 정식으로 대일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직후긴 하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당시 일본도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렸다'''. 물론 독일도 개발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기술미비로 아주 기초 단계에서 끝났다. 기술미비도 기술미비지만 육군과 해군이 정보 공유도 하지 않은 채 각각 개발코드를 부여하고 따로 만들고 있었다. 거의 애국을 떠나 자기들 밥그릇 싸움에 불과했다.
교황이 원폭현장을 방문하면서 피해자 모두 추모하고 애도하면서 정작 일본 정부는 비핵화 서명을 안한점에서 날카로운 지적을 한바가 있었다.##
만약 일본이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였으면 일본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하와이나 괌 혹은 미국 본토에 망설임없이 사용했을 것이고 실제로도 그런 계획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도 이럴 목적의 폭격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G10N 후가쿠 문서로.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진실을 숨긴채 미국의 핵무기 사용만 비판하고 있다.

3.6.3. 일본은 지지 않았다!


일본은 내부로부터의 중상과 비슷하게 패배를 패배로 인식하지 않는, 인지부조화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일본은 '''미국에게는 졌지만 중국과 영국과 프랑스 등 다른 연합국에게는 지지 않았으므로 진 게 진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런 식이면 나치 독일미국소련에게만 졌을 뿐 영국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에게는 진 적이 없으니 패배가 아니라는 게 된다. 사실 유럽과 태평양의 사정이 좀 다르기는 한게 영국이 대전 초반 프랑스에서 졸전을 하기는 했으나 영국 본토 항공전을 통해서 처음으로 무적이라고 생각되던 독일군을 꺾었고 이후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국을 축출하고 노르망디 상륙 이후에도 미국과 더불어 양대 주력이었다. 반면에 태평양의 경우 영국은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에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17]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주장은 억지인 건 변함이 없다. 독일은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고 있다. 더욱이 그때 일본의 국가원수 겸 대원수무어라 했는지 읽어봐라. 수락한다는 공동선언을 내세운 게 던가?
이런 부분은 중일전쟁의 묘사에서도 드러나는데, 사실 중일전쟁은 중국이 피로스의 승리를 거두었고 일본도 완벽히 패하지는 않았다, 일본은 중국의 대부분의 도시와 인구를 점령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의 원자폭탄에 항복한 후 전부 철수했다. 자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게 "중일전쟁은 중국이 이긴 전쟁이 아니라 일본이 이긴 전쟁입니다."라고 역사 왜곡을 시전해서 지금까지도 중일전쟁을 일본이 이긴 전쟁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18][19]
그나마 중국이 장쩌민 주석이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 장쩌민이 대대적으로 전세계에 일본의 역사 왜곡을 강하게 비판하고 올바르고 중립적인 역사 인식을 전세계 시민들에게 심어준 노력을 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아져 중일전쟁을 중국이 이긴 전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침략전의 경우 방어 측에서 잃은 영토가 없으면 원칙적으로 무승부가 아닌 '''침략 측의 패배'''다.
한편 소련군의 만주 작전은 '''은근슬쩍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거나 '''관동군의 감투정신'''만을 강조해서 패배감을 희석시키고 있다. 그러나 만주 작전은 문서만 봐도 알겠지만 일본이 다 패망하고 항복하기 직전에 처들어왔던데다가 관동군의 주력도 동남아시아나 오키나와로 빠진 뒤에 쳐 들어오긴 했다.

3.7. 선택적인 국제법 인용


전후 일본은 과거 2차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당시의 국제법에 대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연합국들의 국제법 미준수를 사소한 것 까지도 물고 늘어지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국제법을 어기거나 위반한 것에 대해선 입을 싹 씻는다.
NHK에서는 태평양 전쟁 다큐멘터리를 내보내면서 미군에서 비무장 상선이라도 경고없이 공격해도 된다고 한 지침을 언급하며, 이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나 마찬가지라고 힐난하며 이는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될 수 있기 때문에 당시 국제법상 금지된 것이였다고 주장하였다. NHK스페셜 : 도큐먼트 "태평양 전쟁" (1)
하지만 이는 일본군도 똑같이 했던 짓이며 일본군, 민간선박 격침 '잔인한' 영상물 공개 애초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나 전후 일본군의 만행을 부정하는 측에게 있어 태평양 전쟁 당시 국제법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고 달면 삼키고 입에 쓰면 뱉아버릴, 일본 자신에게 필요할 때만 선택적으로 써먹는 법일 뿐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선전포고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저지른 진주만 공습 하나로 받아칠 수 있다.

3.8. 나치 독일, 나치스가 제일 나쁜 놈들이다!


일본 미디어들은 나치 독일, 나치스의 만행, 특히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의외로 강조한다. 8월이 되면 홀로코스트 다큐멘터리 하나 정도는 틀면서 감성 자극을 꽤나 해댈 정도이다. 예전에는 특히 쉰들러 리스트를 주야장천 방송에서 틀어 댔다. 하지만 이러한 미디어 선전에서 "일본'''도''' 나치스와 한 편을 먹고 세계를 위협한 사악한 국가"라는 진실은 찾아보기 어렵고 일본의 전쟁범죄 등 일본이 벌인 만행은 조금도 알리지 않는다.
군대 지휘관이 식인을 주도한 사건의 경우 독일군과 소련군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독일군과 소련군의 경우, 식량부족이 워낙 심해서 어쩔 수 없이, 이미 죽은 시체를 대상으로 한 식인이라는 점에서 정상참작의 여지라도 주어지지, 치치지마 식인 사건에서 일본군은 식량이 풍족한데도 술자리에서 안주가 떨어졌다며 특별한 술안주라는 명목으로 산 사람을 죽여서 저지른 식인이라 옹호할 건덕지도 없다. 물론 저 사건은 일본군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짓이었기에 저 사건을 저지른 것은 다른 일본군 장성에게도 미친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얻어터졌다고 한다.
또한 전쟁 도중 일본이 자행한 민간인과 포로 살해도 동맹인 독일의 요청이었다며 자신들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전범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내용상 독일의 요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실행한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이고 애초에 그게 '''싫었다면 동의하지 않고 거부했으면 그만'''인 일이다. 이러한 해명은 일본이 독일의 식민지나 속국이 아닌 이상 성립할 수가 없는 내용이다.
이렇게 독일'''만''' 나쁜 놈으로 만들어서 2차 대전의 정세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 2차 대전 때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이 했던 짓을 모두 인정하고 무한한 사과를 하는 독일이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을 지도 모르는 일인데, 일본의 이런 태도를 독일이 실제로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물론 독일의 태도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마냥 꺠끗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주로 사과한 대상도 유대인 학살에 집중된 편이다. 그래도 정부 수장이 나서서 헛소리를 하는 일본에 비하면 독일은 그래도 양호한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독일은 일본의 이러한 행태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2014년 중국시진핑 주석이 독일을 예방한 이후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대한 문제점을 논의했었고 일본의 만행을 널리 알리는데 성공한 후 현재의 독일인들은 일본이 자국'''만''' 나쁜 놈으로 만든 모습에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핵심만 요약하면, 일본의 행동은 독일 등 뒤에 숨는 행동이자 모든 덤터기를 독일에게'''만''' 씌우려는 짓이다. 앞서 소개한 치치지마 식인 사건은 독일이 봐도 충격적인 것이, 제2차 세계대전바르바로사 작전을 시작으로 소련을 침공하여 대학살을 자행했던 그 악랄하던 독일군조차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그것도 '''술안주 삼아''' 죽여서 잡아먹은 적은 없다.
각종 일본 창작물에서 나치를 주된 악역으로 자주 설정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게임 리뷰어로 유명한 Zero Punctuation의 얏지가 전장의 발큐리아 리뷰 할 때, 게임 자체는 고평가하면서도 노골적으로 독일을 모티브로 한 악역 국가는 일본의 가식이며 "너희들이 2차 대전 때 누구 소시지 빨아댔는지 세상이 다 알아"라며 대차게 일침을 가했다.
급기야 2014년 4월 30일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과거사에 관해 독일과의 비교 불허를 선언하셨다. 그 근거랍시고 들이대는 노랫가락을 한 번 들어보자. 실제로 독일은 아프리카 나미비아 헤레로족 6만 8천명 학살에 대해서 사과는 하겠지만, 식민지 지배는 정당했기 때문에 배상은 할 수 없다고 아예 못 박았다. 이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사실상 배상금인 8억 달러(1965년 당시 환율로)의 금전을 1965년에 한국에게 지불했다는 점에서는 일본이 독일보다 더 바람직한 모습처럼 보이기는 했다. 다만 독일은 이스라엘과 유럽 국가들[20]에게는 수십 년 동안 사과와 배상을 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21] 독일의 경우에는 이스라엘과 유럽 국가들 한정으로는 퍼포먼스적으로도 꽤나 뛰어나다.
일본이 말하는 사과는 항상 그렇듯이 주체가 명확하게 서술되지 않거나, 죄송하다나 미안하다가 아니라 유감이라고 하는 등, 직접적으로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는 발언을 사용한 적은 단 1번도 없다.[22] 물론 국제적으로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표현이 직접 들어간 사과를 받아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대부분은 유감표명을 사과로 인정해주기는 한다. 당장 우리나라와 미국도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해서 유감표명을 사과한것으로 받아줘왔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 그랬고, 연평해전 때도 그랬으며 서부전선 포격 사건 때도 그랬다.
진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런 발언을 하고나서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정말로 반성을 한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총리라는 자가 앞장서서 고노 담화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야스쿠니 참배등의 각종 망언 및 행동등을 예전부터 일삼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인 입장에선 이걸 사과를 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리가 없으며, 국가원수가 미디어 매체 앞에서 무릎꿇고 직접적으로 사죄한 독일보다 낫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다.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한 정부차원에서의 공식적인 법적 보상[23]과 사과 자체는 했으나, 이후 아베 신조는 고이즈미나 아소같은 역대 일본의 극우성향 총리 중 하나로서 잊을만하면 극우적 언행으로 한국인들에게 어그로를 끌어왔다. 지금까지도 한국 내에서 반일감정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극우 성향의 일본 정부'''다. 고노나 무라야마 같은 사람들이 진정성있는 사과를 해도, 얼마 안 가 그 후임자인 아베같은 일본 우익 세력이 집권해서 어그로를 끌어대니 한국인들 입장에서 이전 사과들의 진정성까지 의심하는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고노나 무라야마의 성향을 생각하면 저 사람들의 사과 자체는 진심이었을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후임자들이 저렇게 어그로를 끌어서 신뢰를 박살낸 것도 일본 정부이므로 결국 일본의 자업자득일 뿐이다.
물론 독일도 현대 와서 돈 많고 영향력 쎈 유대인, 주먹이 가까웠던 공산권 동유럽인들이 아닌 헤레로, 나마 학살은 똑같이 위선적이고 진정성 없는 발언만 있었으니 독일과 다를 바가 없기는 하다. 현대 한국인들이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부분은 2차 대전 당시의 전쟁범죄보다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그 과정에서 저지른 각종 만행들이고, 이것은 독일이 2차대전 중에 저지른 전쟁 범죄가 아니라 헤레로, 나마 학살과 같은 독일의 식민통치와 그 과정에서 벌어진 만행에 대응되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참회하는 독일'이란 긍정적 스테레오타입을 전면으로 반증하는 사례이고 우리가 일본에게 요구하는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 독일이 결코 모범사례가 될 수 없음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전후 독일은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유대인, 동유럽인들 상대로는 확실하게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자신들이 식민통치하고 학살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사과 비스무리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나마 2016년에 들어서야 이에 대한 사과를 논의하였지만 배상은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인게 현실이다. 둘의 차이를 개인 대 개인 간의 관계로 비유하면 일본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순간 순간에는 사과는 하지만 전반적인 태도에 있어 일관적인 자기 반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고 독일은 힘세고 무서운 상대한테는 일관되게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만만한 상대한테는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당연히 둘 다 면피성 위선으로 취급 받기 마련이다.
물론 독일이 저렇다고 해서 일본이 과거사 청산을 잘했다는 뜻은 당연히 될 수 없고, 독일도 알고 보면 일본만큼 과거사 청산을 그리 잘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점이 있더라도 일부라도 확실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독일이 하나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과 차이가 전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게 사실이다.
물론 현재 일본이 지속적으로 어그로를 끄는것이 일본의 잘못임은 명백하다. 일본을 비롯한 외국 내부의 정치적 담론, 이슈도 실시간으로 밀도 있게 알 수 있는 21세기에 한국, 중국 측이 마치 "유감을 느낀다" 운운한 이후 바로 돌아서서 그와 반대되는 망언을 지껄이는 것을 못 본 척 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여기에 부응하지 않으니 오히려 한국, 중국 측을 옹졸하다고 적반하장으로 비난하고 있다.
아이리스 장의 <난징의 강간>에 따르면 일본군이 나치 깃발을 불태우고 나치보다 더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 난징 대학살을 본 나치당 간부가 이건 좀 아닌듯 이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 간부는 나치당 내에서는 그래도 양심적인 축에 들어가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더 센 사실 하나 추가하면 난징 대학살 당시 일부 독일인들은 일본군에게 학살당하던 중국인들을 보호하려고 했다. 욘 라베가 중심이 되어서 설정한 난징 안전지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중일전쟁이 터지자 일본군은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이 독일에 신경 쓰느라 중국에 대한 관심이 덜 해졌다."라는 식으로 중국 내에 있는 외국 기업들 자산을 약탈하였고 일본군 점령지에 거주한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여성들을 위안부로 공출한 혐의가 있다.
전장의 발큐리아같은 사례를 보면, 이런 콘텐츠를 즐기는 게 '''우익 성향이 들어가 있는 미디어물을 접하는 거 보다도 더 위험한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마치 '''일본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하고 만드는 거 보니까 반성의 기미가 있나 보네?'''라고 착각하기가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3.9. 나치 독일, 나치스도 피해자다!


하지만 위에처럼 일본이 나치만 나쁜 놈으로 만들면 그러면 왜 너희는 나치랑 손잡았냐는 주장이 나오게 되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아예 나치까지 정당화 시켜버리는 주장도 많이 나온다. 밑에서도 이야기하는 마르코 폴로라는 극우지의 나치 옹호 주장을 봐도 이런 논리이다. 이 마르코 폴로라는 잡지는 별별 극우적 논평은 있는대로 다 갖다 싣다가 '''사실 나치의 유대인 학살도 조작된 거다''' 라는 핵폭탄급 어그로를 끌어서 미국의 유대인 단체들이 일본에 압력을 넣어 폐간시켜 버렸다! 자업자득인 셈. 물론 반유대주의 음모론자들은 이걸 가지고 '유대인들이 언론을 지배한다' 따위의 음모론을 펴기도 한다.
이들의 요지를 정리하면, "나치가 착한 놈들은 아니지만, 필요 이상으로 욕먹는다. 유태인 학살도 너무 과장되었다. 그런 학살은 미국, 소련, 영국, 중국, 프랑스를을 비롯한 연합군들도 많이 저질렀으니까 나치도 결국 피해자다."라는 것이다. 미리 결론부터 내리자면 이 따위 소리를 하는 건 그냥 일본 내의 우익을 넘어 그냥 보편적인 의미에서 네오파시스트라는 걸 스스로 인증 하는 꼴이다.
이런 물귀신 논리에 대한 미국이나 영국 및 연합군 측 반응은 '''말이 필요없다.''' 물론 연합군 열강 또한 식민지인이나 소수민족 억압을 해서 그것대로 비판받고 있기는 하지만. 추축국 전체가 전쟁의 피해자라고 옹호하는 짓은. 말 그대로 완벽한 자폭인 것이다. 애초에 서양권을 상대로 극우 미디어물을 통한 일본 우익측의 PR 자체가 방구석 인터넷 폐인 집합소에서 조금만 나가면 여전히 사회 전반에서 나치에 대한 금기가 강력한 서구권을 상대로 "나치와 일본은 달랐다! 대동아공영권레벤스라움과 달리 인종 절멸의 이데올로기가 아닌데 한국, 중국만 우리 욕한다!" 즉, 서양인들의 아시아 근대사에 대한 '''무지'''를 이용해서 억지로 '''나치와 일제를 분리시켜''' 팔아 먹는 전략이다. 이 구도에서 그냥 나치 독일도 똑같이 미화, 옹호하는건 그 서양인들 상대로 그냥 논리적으로 자폭하겠다는거나 마찬가지다.
이 자폭 성 주장은 현재 독일에서도 까고 있다.네오 나치같은 극히 일부만 제외하고 독일은 나치를 흑역사라고 여기는데 나치도 피해자라능 이러며 같이 옹호할 건덕지로 써먹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 치치지마 식인 사건 같은 사건들은 네오 나치라도 깐다. 애초에 그런건 당시 일본군 장성들도 미친짓이라고 말할 수준이었으니 당연한거다. 전쟁터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식량이 극한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피치 못하게 시체를 뜯어먹는 막장상황이었던 게 아니라, 단순히 특식으로 먹을 만한 안주감을 찾기 위해서, 그것도 '''전쟁 포로들을''' 잡아먹는 미친 짓은 아무리 포로를 우습게 여기는 일본군 내부에서도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행위였다. 당시 일본 전범들에 대한 무죄를 주장해서 현재까지 까이고 있는 라다비노드 팔 검사조차도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다.' 라며 다치바나 요시오에 대한 즉결처형을 주장했고, 이놈이 수감되자 같은 '''일본군을 포함한''' 전범들조차도 '니가 사람이냐' 라면서 사형 집행 당일까지 매일같이 죽도록 두들겨팼다

4. 일본이 피해자 행세를 하게 되는 까닭



4.1. 원인



4.1.1. 중앙정부에 대한 약한 소속감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봉건제도를 오래 유지한 나라이다. 가마쿠라 막부로 시작해서 에도 막부까지의, 메이지 유신 직전까지 있었던 약 700년 동안의 막부시대, 즉 무신정권 집권기의 영향이다. 이 시절에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의 다이묘만 신경 쓰면 중앙의 쇼군에 대해서는 사실상 신경 꺼도 됐기 때문.[24] 그리고 메이지 유신도 따지고 보면 결국 아래에서 일반 민중들로부터 시작된 혁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쇼군 쌩까고 자기들이 알아서 외국이랑 놀며 힘을 축적해 온 지방 유력자 세력들 그리고 지방 무사계급 출신자들이 다 주도했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이러한 풍조는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25]
그래서 연결고리로만 따지면 일본인들은 대개 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해당 지역의 유지 같은 지방 유력자들이 구심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제국 육군 문서만 보더라도 징병률을 매우나 낮았으며 탈영 비율이 높았으면 옥쇄 정책이나 귀축영미나 같은 가짜 뉴스에 가까운 수단으로 강제적인 동원 밖에 없었다. 즉 국가 - 개인보다 지방 - 개인의 연결고리가 더 강하다. 간단한 예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중앙에서 잡으려 해도 잡지 못하는 야쿠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분명히 전후, 일본 정부가 조선・대만의 전범들에 대해 냉정한 모습들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민족차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쇼와 21년(1946)년 2월에 GHQ와의 각서에 기반한 「칙령 제68조(勅令第六八条)」 [26]

가 공포되어 군인, 군속에게 주어지는 연금과 유족들에 대한 부조료 등의 모든 지급이 정지된 것의 영향이다.

たしかに戦後、日本政府は朝鮮・台湾の戦犯たちに対して冷たい対応をとったのは事実である。しかしそれは⺠族差別によるものではなく、昭和二十一年(一九四六)二月に G H Q との覚書に基づく「勅令第六八条」を公布したことで軍人、軍属への恩給と遺族に対する扶助料すべてを停止したことが影響している。

이로 인하여 전몰자의 유족들에게 주어지는 일체의 공적 처우들이 정지당했다. 이들은 금전적으로 고통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명예마저도 빼앗긴 것이다.

これにより戦没者の遺族は一切の公的処遇を停止された。人々は金銭的に苦しめられるのみならず、誇りさえも奪われたのである。

그리고 '''유족, 상이군인''', 전범 수형자들을 백안시하는 풍조가 사회에 만연하여, '''그들을 옹호하는 것 자체가 「군국주의 찬미다」 라고 비난당한 탓에''', 우리나라에서는 국적의 여하를 불문하고 전범들에게 차가운 태도를 보여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そして遺族、傷痍軍人、戦犯受刑者たちに対して白眼視する風潮が社会に蔓延し、彼らを擁護するということ自体が 「軍国主義の賛美だ」と批判されるため、わが国では国籍の如何を問わず戦犯者に冷たい態度をとってきたというのが実態である。

-겐코츠 타쿠후미(拳骨拓史) 저 "친일파 조선인 지워진 역사(「親日派」朝鮮人 消された歴史)"

중앙집권 전통이 근대화 이전부터 강했던 한국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일본인들은 개인과 가까운 영주(요즘이라면 시장이나 현지사, 도지사)와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줏대'란 가치관을 굉장히 중시하지만 일본인들은 이 경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패망 직후에 일본에서 유행하던 패션이 '''미군 점퍼에서 유래된 스카잔'''이였다. 얼마 전 까지 총옥쇄를 각오하며 싸우던 적의 복장을 멋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인 것이다. 애초에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勝てば官軍 負ければ賊軍)"'''이라는 속담이 널리 퍼진 곳이라 일본인이라는 공통의 의식은 작용하고 있지만 국가주의는 미국과 중국, 영연방 등 연합국의 점령 후 상당히 희석된 것이다.[27]
문제는 저 옛날부터 이어져 온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이라는 일본인들 특유의 풍조는, 까놓고 말하자면 '''"자기네들 집단들이 도움이 되면 존경해주는척 하다가, 해가 되거나 패배하면 곧바로 태세전환"''' 이다. 즉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의 여부 그리고 사유 같은 것들은 그냥 깡그리 무시한 채 그냥 무작정 "이긴 쪽"을 "우리편이자 새로운 지배자"로 인식하고 그 "새로운 지배자"에게 순응하며 시간이 지나면 마치 자신들이 그 "우리편의 일원" 쯤 되는 걸로 생각하는 정신승리와 합리화질의 극단화. 이런 풍조가 탄생하게 된 이유는 수시로 내전이 이어지는 길고 긴 전국시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일반 백성들의 입장에서 전국시대는 자기들을 다스리는 지역 영주님네들이 가문 내부의 권력투쟁이나 다른 지역에서 온 영주의 군세에 의해 영주가 수시로 갈아치워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높으신 분들이 이렇게 불규칙적으로 바뀔 때마다 눈치껏 신속하게 새로운 지배자에게 순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아비규환의 시대였다. 실재로 일본제국 당시 쌀소동 이후로 쌀을 해결한다고 기대하다가, 정작 일본이 패전한 후에는 새로운 지배자인 맥아더 장군한테 쌀 소동 이후로 쌀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아예 빌어 꿇는 적이 있다고한다.

1930년대 등장한 독일 나치즘과 일본 파시즘, 그리고 이들이 일으킨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다.

먼저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면, 첫째, 전전 일본에서 파시즘 등장과 군국주의적 전쟁의 원인을 특정 '악의 세력' 즉 전전 일본 군부의 비정상적인 '일탈행위'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러한 접근법에 따르면, 1930년대 이후 군부가 전체적인 국가이익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편협한 조직이익을 추구하여 쿠데타와 정치 테러로 정치권력을 장악하였고, 나아가 일본국민의 일반의사와 상관없이 무모한 전쟁들을 일으켜 일본 사회 전체를 패망의 길로 이끌고 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에서는 그 당시 일본 군부의 우월감, 독단주의, 비이성, 무모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본 군부에게 전쟁의 책임을 전적으로 돌림으로써, 전전 "대동아전쟁"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일본사회의 전체-천황, 민간 정치지도자, 여론형성 지도층, 재벌, 지식인,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책임을 매우 희석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강좌학파와 노농학파로 구성되어 있는 일본 내 좌파적 진보학자들은 전전 일본의 파시즘과 군국주의 전쟁의 원인을 일본 자본주의의 전개과정에 있어서 지배연합 세력들 -메이지 원로, 군부, 재벌-의 공모에서 찾고 있다. 이들의 논의에 따르면, 전전 일본 지배 엘리트들은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해외의 새로운 상품시장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대외팽창적 군국주의 전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좌파적 분석 역시 사회계급구조적 결정론에 빠져 전쟁에 책임이 있는 개인들, 그리고 일반 국민의 책임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셋째, 일본 파시즘의 군국주의 전쟁의 선택은 그 당시 주어진 국제정치 환경에 대한 대응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들은 당시 약육강식의 국제정치의 특성, 즉 노골적인 권력정치가 난무하는 제국주의적 국제구조 하에서 일본도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독립과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제국주의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1930년대 중국의 민족주의적 저항을 견제하고, 서구에 만연한 보호무역주의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새로운 아시아질서 창출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당시 약육강식의 현실주의적 국제정치 측면만을 강조한다면, 군국주의적 정책을 일으킨 일본의 책임은 전혀 없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열광의 정치: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박한규, 대한정치화회보 15집 3호.

하지만 일본의 부실한 역사인식을 단순히 봉건제도, 지방자치제 탓이라 보기도 힘들다. 독일도 역사적인 이유로 중앙에 대한 소속감이 약하고 일개 지방을 국가처럼 생각하는 정서가 강하며, 현대에는 아예 연방제를 채택중이다.[28] 그럼에도 현대 독일 정부는 동유럽 등 주변국에게 전쟁범죄 관련 문제를 분명하게 사과했으며, 학교 등에서도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는 독일 국민 전체가 책임져야 함을 확실히 교육시키고 있다. 일본 국민들이 자기 스스로를 당시의 일본 군부 및 정부에 의해 이용당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제국주의 반대자나 반전주의자, 징집거부자들이나 일본이라는 국가에서 내부적으로나 가능한 이야기이고. 당장 일본이 만주사변중일전쟁으로 아주 잘 나갈 때는 극우 성향의 민간인 지지자도 엄연한 일본 국민이기 때문에 일본 국민 자체가 피해자라는건 보기가 힘들다.[29]

4.1.2. 피해국의 낮은 국력과, 서구권과 낮은 동맹관계


가장 큰 원인으로 추정된다.[30]
피해국들이 한국, 중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을 제외하면 제대로 경제력을 포함한 국력이 있다고 할 만한 나라가 없다 보니 축소나 은폐를 한다고 비난해도 목소리가 필연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은 대서방 준적대국이라 일본에 압력을 행사하려고 과거사를 언급해도 서방에서 듣기는 할지언정 공감대를 형성하고 일본을 같이 압박할 생각은 별로 없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므로 사실상 의미가 없다. 그나마 서방권에 속한 나라 중에서 일본을 견제할 능력이 있는 건 한국 정도인데 한국 역시 경제 규모는 3분의 1. 인구 규모도 2.5분의 1에 불과한데다 북한이라는 리스크가 있어 독일을 상대로 최소한 대등한 관계를 요구할 수 있는 영국, 프랑스와 같은 입장이 아니라 영향력은 제한적이다.[31] 대만은 한국보다 사정이 더 열악하여 인구는 일본의 6분의 1. 경제 규모는 13분의 1에 불과하며 미승인국이라 더욱 사정이 열악하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이므로 애초에 영향력이 거의 없다. 그나마 목소리가 시끄러운 국가로 북한이 있긴 한데, 북한은 애초에 일본인 납치 등으로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명분만 주고 있을 뿐더러, 국력도 약하다.
아무래도 국제정치라는 것이 단순하게 도덕성에 기반해서 정치를 하는게 아니라 '국력'에 기반해서 흐르다 보니 일본 입장에서는 피해자 행세를 해도 경제/정치적으로 그다지 손해가 없으니 굳이 반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UN의 구적국조항 또한 언제까지나 군국주의로 회귀하여 침략전쟁을 일으켰을 때 적용되는 조항이지 혼자서 피해자 행세를 하건 전범을 찬양하건 학살을 부정하건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제재수단이 아예 없다.
이는 경제력, 군사력 뿐만 아니라 소프트파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와패니즈란 용어가 나올 정도로 일본은 그 동안 소프트파워를 상당히 축적했고, 이는 서구권 국가들이 현실 정치에서 일본에 대한 우호감을 쌓는데 영향을 주었다. 이로 인해 일본의 피해자 행세가 더욱 쉬워진 것.
이는 일본이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방 유럽 국가한테는 확실하게 사죄를 한다는 점이나 그나마 국력이 있는 한국중국 상대로는 유감표명이라도 한다는 점을 보면 확실하다. 한국과 중국이 사죄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게 맞지만, 그나마 각각 강대국의 최소 정도의 국력을 갖고 있는 친서방국가와 미국을 제외하고 인도, 러시아 등과 동급의 비서방 열강 중 하나라는 지위를 가진 국가라서 그 정도라도 한 것이다. 동남아나 태평양의 개도국들은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사실 일본은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 사과를 하기는 했고 배상 문제도 한일기본조약으로 법적인 배상 책임은 끝났다. 문제는 저렇게 말하고는 뒤돌아 서서 총리 등 정부 주요 인사들이 앞장서서 헛소리를 늘여놓으니 피해국들이 저 사과를 진심이라고 느낄 수 있겠는가. 남의 나라 뉴스도 인터넷과 외국어만 되면 현지인들 못지 않게 빠삭하게 볼 수 있는 세상에 도대체 왜 일본 우익은 한국, 중국 측이 자신들이 순간 순간에만 면피성으로 "통석의 염" 따위 소리나 하고 바로 뒤돌아서서는 일본은 잘못이 없다는 행동을 못 볼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를 따름이다.
이건 독일도 똑같아서 독일이 사죄한건 어디까지나 경제적으로 막대한 힘을 가진 유대인(이스라엘) 및 서방 유럽 국가들에게만 사죄하였을 뿐, 집시나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식민지배했었던 아프리카 국가들에게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엄밀히 말하면, 독일이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을 꺾은 나라들은 미국·소련·영국·프랑스다. 그리고 미국을 제외하면[32] 독일이 과거사 청산을 하지 않아도 적당히 넘길 나라는 없었다. 이들은 1945년부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어 세계 지배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니 독일이 국제사회에서 활동하자면 당연히 반성과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 약소국들이라 굳이 반성·사과를 하지 않아도 됐지만, 독일은 그런 '특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허리를 굽히는 것 외에 도리가 없었을 수 있다.
거기다가 독일의 박해를 받은 유대민족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유대민족은 경제력과 두뇌를 발판으로 서구 사회의 정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 실질적 지배층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청산과 사과를 요구하면서 독일은 전쟁범죄를 사과하지 않고서는 국제사회에서 버텨나갈 길이 없었다. 게다가 전쟁범죄로 물어줘야 할 배상금도 법적으로 철저하게 따지지 않고 자발적인 배상금 등으로 어물쩡 넘긴 게 많았기 때문에 사과와 자발적인 배상으로 넘길 수 있다면 하는 것이 누가 봐도 현명한 행동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독일이 사과·반성을 한 것을 두고 그들의 민족성까지 칭송할 이유는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그나마 최근에 과거 독일령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개선과 무역 교류 등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어서 독일 제국시절에 독일군이 식민지 흑인들에게 저지른 학살 만행에 대해 사과하려는 모습은 보이고는 있지만 배상은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등 식민지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보다 못하다고 볼 수 있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배상 사례로 볼 때 가해국들이 피해국의 요구에 응하는 것은 배상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된다고 판단할 때뿐임을 알 수 있다. 그마저도 투자, 저개발국 지원 등의 형태로 대충 넘어가려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려고 하고 있다.
사실 독일이 과거사 청산을 잘했다는건 서방국가들을 상대로 저지른 전쟁범죄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깔끔하게 사과했기 때문이고 이쪽도 식민지 문제나 비서방국가 상대로 저지른 범죄쪽으로 파고들면 떳떳하지가 못하다. 만약 일본이 독일처럼 아프리카 식민지들 대하듯이 "너네 피해국들끼리 알아서 사건을 조사를 하던지 말던지 알아서 해라 난 신경안씀" 이라고 방치했다간 중국, 한국의 국력이 일본에 비해 국제 사회에서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다보니 어떻게 해서든 끈질기게 잡아내서 국제사회 앞에서 강력하게 진상 규명을 요구할 것이 뻔하니 일본 입장에서는 최대한 정부와 민간차원에서 조직적인 방해, 은폐, 왜곡, 축소 시도를 하는 것이다.
반대로 독일은 어차피 아프리카의 식민지 피해국가들이 떠들어봐야 힘도 없는데 방해, 은폐, 왜곡, 축소시키는 비용이 더 들어가니 방치하는 쪽이 더 이득이다. 괜히 시도했다가 역풍을 맞을수도 있기 때문. 독일이 2016년이 돼서야 나미비아에게 사과한 이유도 독일이 터키에게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규탄하니 터키가 "나미비아에서 대학살을 벌여놓고서는 누가 누구를 규탄해? 유대인들에게만 사과하면 다냐? 국제사회 여러분, 강대국에게만 사과하는 저 뻔뻔함을 보십시오! 이것이 독일의 민낮입니다!" 라는 주장에 마지못해 경제력이 한참 못미치는 나라에게 사건이 발생한지 100년이 더 지나서야 사과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참고로 터키는 이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비난하는 국가들에게 이런 식의 일을 많이 했다. 가령 영국이 이 일을 비난했을때는 "아일랜드 대기근 때 너네가 뭐 했더라?", 벨기에가 비난하면 "너희들은 콩고에서 무슨 짓을 했을까?" 라면서 비난하는 국가들에게 물귀신 작전으로 데꿀멍 타게 만들고 있었는데, 어디나 최종보스는 있는지 덴마크 앞에서도 아이슬란드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났을 때의 일을 들먹였다가 제대로 역관광을 먹었다. 이 사건은 아일랜드 대기근과는 달리 자연적인 화산폭발이었는데다가 덴마크에서도 이를 방치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보면 어디 전 인류가 누가 더 막장인지 바닥을 향해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오스만 제국 말기 따블 트리플 제노사이드가 터진 것과 독일 제국이 몇년 앞서 아프리카에서 제노사이드 저지른 건 전혀 별개의 사건이지만, 국제 정치판에서 이런 역사적 이슈에 기원한 알력 싸움은 안타깝게도 논리는 어디 딱 디시 댓글 싸움 정도 이하로 중요하고 나머지는 주먹과 힘으로 찍어 누르는것으로 해결한다. 그리고 서로 주먹으로 해결하기 힘든 상술한 비슷비슷한 체급의 강대국끼린 저런 결론 안나는 병림픽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경제적인 면이나 사회 인프라 같은 내부적인 면으로 보면 터키는 독일보다 현격하게 낙후되어 있지만 군사력, 인구, 지정학적 위치 같은 통계적 체급은 비슷한 수준인 것이 맞다.
어쨌거나 일본 입장에서 남는 건 중국, 대한민국을 제외한 만만한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나라들이다. '''진정한 일본의 피해자는 이들'''인데도, 정작 중화인민공화국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국력으로는 일본에 못 미치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라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나라들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는 말 그대로 안하무인이다.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은 최근 들어 러시아와 관계 개선에 힘을 쏟았으나 러시아는 쿠릴 열도 분쟁이 해결되지 않아 실패로 돌아가고 되려 중러관계만 강화시켜 주는 결과를 낳았다. 애초에 쿠릴 열도 분쟁은 절대 해결이 안 되는 문제(...)로 일본이 러시아와는 관계개선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첫번째 이유다. 두번째 이유는 미일동맹 및 러시아와 서방의 극한 대립으로 일본은 엄연한 서방세계에 속한다는 점.
그러나 경제력이 대부분 약한 동남아시아 나라들에 대해서 공적개발기구(ODA)와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현재까지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역시 1965년 한일협정때 일본 외환보유의 60%가 넘는 8억달러의 유/무상 보상금을 받아[33] 경제개발에 보탠 적이 있다.[34] 실제로 많이 성장했다고는 해도 한국, 중국, 대만을 제외한 나머지 피해국가들의 GDP를 모두 합쳐도 일본의 GDP에 미치지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론적으로야 어쨌든 피해국들도 모두 힘을 합쳐서 일본에 대항하자고 하고싶어도 피해국들이 EU처럼 단결력이 높은 양상을 보이는것도 아니다 보니 대항하는게 힘들 수밖에 없다. 대략적으로 ASEAN에 한국과 대만까지 모두 합쳐야 겨우 일본을 앞서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들 중 대만도 친일 성향이 짙은 범록연맹이 득세하는게 현실이다. 대만을 지지하는 몇 안되는 세력들이 일본 우익이기 때문이다.
동맹관계의 수준 역시 서구기준에서 일본보다 더 동맹관계의 수준이 높은 나라가 없다보니 중국처럼 일본보다 경제력이 더 높아졌는데도 어째서 바뀌지가 않는지는 뻔하다. 위안부 협상때 미국이 개입했다는 것만 봐도 동맹관계가 얼마나 차이가 큰지 알 수 있다. 위안부 문제도 동맹국 버프 + 본격적인 민주화 + 고도의 경제성장이 이뤄진 90년대가 돼서 서구의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731부대처럼 로비 + 피해국이 못살면서 적대국인 중국, 러시아는 언급이 안되는 이유도 이런 이유이다. 서구입장에서도 조금이라도 자국에게 관계가 좋고 우호적으로 대해주는 나라에게 편들어주고 싶은게 당연한 현상이니 경제력까지 포함하면 더 말이 필요없다.
일제에 피해를 입은 국가들중 친서방이면서 동시에 높은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엄연히 정식국가인 나라인 한국 혼자서 일본에 대항해야 하는 수준이다. 중국은 반서방이고, 친서방 국가 중에서 필리핀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등은 낮은 경제력을 보이고, 홍콩대만은 정식국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피해국끼리 단합이라도 제대로 되는것도 아니니 서구 동맹국의 든든한 지원이 있는 일본에 대항하기 어려울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불리한 국제 정세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미국이 일본 편을 든다는 것도 한국 측 옆구리 가끔가다 찌르고, 오바마의 히로시마 연설 마냥 진부한 도덕적 발언 몇개 한 다음 "이제는 과거일"이라며 퉁치는 넘어가는 걸 종용하는 수준이다. 우리 입장에선 이 정도도 기분 나쁠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미국이 한국측의 감정을 무시하고 삼각 동맹 강화만 추구했으면 한국측 입장을 충분히 뭍어버리는게 가능한데도 저런 소극적인 입장만 취하는 이유는 국제 정치상 열강간의 이해 관계로 인한 비공식적 무시를 떠나 제대로 이 문제를 파고들면 수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35]
미국 하원에서 실제로 이루어졌던 것처럼 전문 학자, 연구자까지 동원해서 실제 '''역사학적 이슈'''로 파고 들기 시작하면 아무리 정치적 이해 관계가 걸렸어도 이스라엘(+자국 내 유대인들)처럼 경제력 격차가 수십 수백배나 나지 않는 이상에야 서방 정부들 입장에서도 최소한 대놓고 편을 들 수가 없다. 당장 자국 내 여성 유권자들의 정서에 여성 인권 문제인 위안부 문제 같은게 즉각적으로 부각되고, 피해국 출신의 서구 이주자들이 "아시아인들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저 새끼들 피해자 아니냐?'"라는 식의 여론이 조성되면 서방 정부들도 저런 '''정략적 중립(을 빙자한 일본을 대놓고 편들어주기) 스탠스'''를 취하는게 불가능해 진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현대 들어와서 담론 형성의 정치적 구도에 있어선 일본 측이 저렇게 유리하면서도 동맹국 내에서 한국 측이 일본보다 열세에 있는 국제정치와 환경에서도 편의를 상당히 많이 봐주고 있고 아예 우익 내에서도 먼저 나서서 손절하려고 하는 가두 파시스트 수준의 소수 극단주의자들을 빼곤 일본 우익 내에서도 "옛날에 사과한 일 아니냐?" 라는 식의 방어적 자세가 주류인 걸 보면 아무리 외부적 여건이 자신들이 방해, 은폐, 조작, 축소, 왜곡 하는것에 유리해도 그 시절 싸질러 놓은 짓거리의 스케일이 3배 정도의 경제력(국력) 정도로는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4.1.3. 일본 민주주의의 특성


일본의 근대화와 민주주의는 모두 국가주도로 위로부터 아래로 진행된 것이다. 시민혁명을 통해서 스스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이 아니라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천황신격화에 바탕을 둔 입헌군주제가 도입되었고, 2차대전 패전 이후 GHQ를 통해서 민주주의 제도가 단기간에 속성으로 이식된 것이다. 심지어는 현재의 일본 평화헌법은 GHQ의 실무자들이 열흘만에 만들어서 일본 정부에 권고한 것이다. 평범한 일본인 입장에선 어느 날 갑자기 황국신민에서 민주시민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안했는데. 제도는 몰라도 전체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갑자기 이렇게 바뀌지는 않는다.[36] 따라서 일본의 민주주의는 다른 자발적 민주주의 국가에 비해 많이 발달하지 못했다. 일본의 근대화 자체가 과거 명목상의 지위에 있었던 천황의 신격화를 포함한 전체주의민족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설계되고 이루어졌으며, 민주정은 연합국이 일본인의 '1억 총 옥쇄'로 대표되는 군국주의 세뇌를 탈피시키고자 주입했다.
일본은 근대화가 시민혁명 같은 대중들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이고 다카모리, 사카모토 료마 같은 소수 존왕양이파 등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약한 편이다. 또한 일본인들의 소위 튀기 싫어하는 성향으로 인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더해지고, 무라(村)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사회가 유지됨에 따라 지역구 의원과 토호들간의 유착으로 지역구 의원의 세습 등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일본의 민주주의는 지금의 미숙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긴 했으나, 위로부터의 근대화로 인해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약하고 군국주의의 잔재와 동아시아 국가 특유의 민족주의가 혼합되다보니, 일제가 패망한 후에도 형식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가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뭔가 애매한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비단 제국 시절의 일본이 아닌 현대의 일본만 봐도 그 잔재가 아직 남아있는 걸 알 수 있는데,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외국인이니까 그럴 수 있다 쳐도, 선주민인 아이누, 계급제가 있던 때의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을 봐도 이런 것들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부라쿠민의 경우 제도적인 차별은 껍데기만이라도 사라지긴 했으나 실제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부라쿠민은 부라쿠민 촌, 그러니까 피차별부락[37]에서 태어나기만 했는데도 그 가족까지 차별을 당한다. 게다가 부라쿠민이란 것이 피차별부락에 사는지 여부만을 따지는 것이기 때문에, 도와지구에서 살기만 하면 부라쿠민으로 자동 등록된다는 것도 문제.
일본인들을 욕할 때 쓰는 표현은 대개 japs 혹은 왜구 정도가 알려져 있는데 이건 대외적으로 알려진 욕이고, 일본 내에서 가장 센 부류에 속하는 욕은 바로 '''부라쿠민'''이다. 일본인 친구들에게 이거 쓰는 순간 그냥 절교도 아니고, 얻어 터지고 절교당한다. 절대 함부로 쓰면 안 되는 욕설이다. 이 부라쿠민'이라는 말이 욕설로 쓰일 때 어느 수위의 욕설인지는 문서를 참고하자. 이 부라쿠민과 비슷한 뜻으로 쓰는 욕설로 쓰는 말이 히닌(非人)이라는 말인데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의 가죽을 쓰고 있다라는 뜻이다. 실제로 일본의 정치인 중 한 명다른 파벌의 정치인에게 부라쿠민이라고 했다가 해당 정치인으로부터 '''나는 당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란 선전포고를 받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례도 있다.
일본에서 부라쿠민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 있다. 하나다 소년사로 알려진 잇시키 마코토의 만화 피아노의 숲. 물론 배경에 등장하는 마을은 가상의 마을인 숲의 가장자리라지만, 묘사를 보면 영락 없는 부라쿠민 촌이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도호쿠 지방 사람들에 대해 또 다른 차별이 암암리에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화족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일제 시절 귀족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 역시 법적으로는 폐지가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라진 게 아니라 세습 정치인 같은 개념으로 계속 명맥을 잇고 있다. 아베 신조, 아소 다로 같은 정치인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그에 대한 반동으로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에 민권운동이나 개혁운동,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긴 했다. 그러나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이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고 치안유지법이 발동하기 시작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 그 이후 일본은 국가의 통제가 한층 강화된 전체주의 국가가 되면서 이를 군부가 접수하면서 군국주의 테크트리가 완성되었다. 이후 일제가 패망하면서 미국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식받았으나 경제발전에 관심이 집중되던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이러한 담론은 많이 발달하지 못했다.
위에서도 이미 한 차례 언급한 내용이지만, 일반 시민들도 일본군이 중일전쟁에서 중국의 주요 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초롱을 들고 길거리에서 축하하는 행위를 거국적으로 벌였다. 이것도, 일본에서는 "그 때는 무조건 동원되어야 했고 동원에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어쩔 수 없지 않았냐?" 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100% 자발적인 것은 아니고 강요당한 부분도 존재한다'라는 주장은 가능해도 '강요당했을 뿐 일반 시민들은 실제로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4.2. 비판



4.2.1. 부실한 역사인식


일본 학교의 근현대사 교육이 워낙에 허술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답이 없던 당시의 일본 제국시대의 상황을 일반인들이 잘 모른다는 것도 문제다.
1980~90년대에는 '''너무 가까운 과거의 역사라서''' 잘 가르치지 않았고, 90년대 이후는 소위 말하는 유토리 교육 세대라서 최대한 간략하게 가르치는 풍조가 확산되는 바람에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것은 우익의 변명에 불과하다. 유토리 교육 훨씬 이전부터 이미 2차대전 패전 직후부터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1932년 대륙에 갔다. 1941년 대양에 갔다. 1945년 전쟁 끝났다. 근현대사 수업 끝''' 수준으로 가르치고 있다.이런 식으로 축약, 왜곡해서만 가르치니 정작 역사 논쟁을 해선 답이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 하면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서 벌인 전쟁이며, 그 세세한 내막까지 밝히자면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전쟁범죄들을 모조리 까발려야 해서다. 자손들의 입장에서 전쟁의 실체를 알게 되면 망신살이 뻗치게 되는 셈이다. 당장 아베 신조, 아소 다로 같은 세습정치인들의 선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1930~40년대 침략전쟁에 적극 참여한 과거가 수두룩하게 나온다. 아소 다로 가문은 조선인 강제징용노동자들을 착취하던 탄광재벌 가문이고,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는 군수공업을 책임지던 경제관료였다. 게다가 정치인뿐 아니라 지역유지, 기업인, 교육계 등 권력 계층 인사들의 선조 대부분이 이렇다는 것.
이것은 독일과도 다른데, 독일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가르치면 자신들이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전범국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두고 가르친다. 오히려 일본의 전공투 세대를 비롯한 60~70년대의 젊은 세대는, 이러한 "전범으로서의 구세대"에 대한 적개심과 세대의식으로 반전운동 및 평화운동으로 흘렀다는 해석도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비행기를 납치해서 북한에 가거나 미츠비시 중공업 등 일본 기업에 폭탄 테러를 하는 등 과격화의 바람이 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종의 역풍.
아버지의 깃발의 주인공 잭 브래들리는 전후 고향에서 장의사를 하던 중, 아들 중 하나가 일본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서 일본인들이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건 미국과 중국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서였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그들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내용을 편지로 보냈다. 그런데 잭의 또 다른 아들은 누구도 잭이 편지를 받은 후만큼 분노한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의 피해자 내지 약소민족 행세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것이었던 셈.
이러한 일본의 과거 미화정책으로 아베 신조를 지지하는 많은 일본인들이 예전 일제의 침략 행위를 어쩔 수 없는 세계적인 정세이거나 오히려 나라를 지키기 위한 행위로 '''진심으로''' 믿고 있다. 참고로 아베 신조 역시 전범 후손에 해당된다. 그래도 인터넷이 널리 퍼지고 한국과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피해 국가들이 침략 행위의 증거를 보여주면서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이 침략행위임을 알아채거나 침략전쟁이었음을 깨달은 일본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본의 현 자민당 정권의 수장인 아베 신조는 이상한 궤변을 꺼내는데...

일본의 태평양 전쟁중일전쟁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는 일본인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죄책감은 일본을 절망으로 이끄는 감정이다.

일본은 1929년 세계대공황으로 많은 실업자들이 발생하고 그들의 절망이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으로 번지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절망을 일으키는 죄책감은 현대 일본 사회에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일본은 죄책감을 강요하는 국제적인 요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 역사적 반성을 죄책감으로 보고 이를 극복해야 군국주의로의 회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확대하면 미국과 중국 등이 아량한 마음을 갖고 먼저 과거의 일은 그럴 수도 있지 뭐하고 쿨하게 용서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일본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평화주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반성과 절망을 혼동하는 것부터가 답이 없다.'''
독일도 사과하고 죄를 인정했는데 독일이 죄책감에 휩싸이면서 발전이 늦어졌는가? 물론 아니다! 오히려 그 힘들것 같던 동서로 나뉜 독일의 통일은 이웃 국가들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죄로 인해 이뤄낼 수 있었다. 만일 독일이 일본처럼 해댔다면 아직도 동서로 나뉘어 있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역사왜곡 교과서로 공부해 온 90년대생 이후의 일본인들이 외국으로 여행이나 이민을 간 경우, 외국에서 바라본 일본 역사에 대해 상당한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38]

5. 일본의 피해자 행세가 위험한 이유


우리의 위대한 독일 제국을 괴롭히는 것들 중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은 영국과 프랑스의 사악한 금융 자본가들이다. 그들은 독일의 모든 부를 전쟁 배상금으로 빨아들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우리는 끔찍한 부의 착취를 겪었다. 그러나 독일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 부의 착취는 금융가들이 조장한 것인데 모두에게 알려져 있듯이 금융업계는 사악한 쥐새끼들이 지배하고 있다. 독일 영토 내에 암약하는 이 해로운 독극물들은 영국과 프랑스에 사주받아 금융 업계를 지배하고 독일인들을 갈취한다. 그렇다! 그들은 '''유대인'''들이다. 이들이 착취하는 것은 우리의 부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정신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우리의 제국을 붕괴시키고 제1야당을 이루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보라. 영국 땅에 사는 사악한 유태인인 마르크스는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 독일을 뿌리까지 흔들고 있다. 그리고 독일 땅의 유태인들은 우리의 땅과 재산을 긁어모아 영국에 가져다 바치면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워먹어 비대하게 살이 쪄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참아야 할 것인가?

위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에 대한 입장이다. 나치 독일은 자신이 영국-프랑스에 의해 피해를 보았고, 그들이 독일민족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선동했다. 여기서 덤으로 악으로 묘사한 것이 바로 유대인이다. 여기서 '''영국-프랑스를 한국(북한)-중국으로, 유대인을 재일, 조선인으로 바꿔보면...'''

우리의 위대한 일본 제국을 괴롭히는 것들 중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은 한국과 중국의 사악한 금융 자본가들이다. 그들은 일본의 모든 부를 위안부, 강제노역, 전쟁 배상금으로 빨아들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우리는 끔찍한 부의 착취를 겪었다. 그러나 일본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 부의 착취는 금융가들이 조장한 것인데 모두에게 알려져 있듯이 금융업계는 사악한 쥐새끼들이 지배하고 있다. 일본 영토 내에 암약하는 이 해로운 독극물들은 한국과 중국에 사주받아 금융 업계를 지배하고 일본인들을 갈취한다. 그렇다! 그들은 '''재일 조선인'''들이다. 이들이 착취하는 것은 우리의 부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정신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우리의 제국을 붕괴시키고 제1야당을 이루고 있는 입헌민주당들을 보라. 한부 땅에 사는 사악한 재일들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 일본을 뿌리까지 흔들고 있다. 그리고 일본 땅의 재일 조선인들은 우리의 땅과 재산을 긁어모아 한국과 북한에 가져다 바치면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워먹어 비대하게 살이 쪄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참아야 할 것인가?

'''논리가 소름끼치도록 유사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한 발자국 더욱 나가면 재일에 대한 혐오는 '피해자가 표출하는 정당한 분노'와 '억압으로의 해방'으로 바뀌게 되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6. 일본의 피해자 행세를 바라보는 외국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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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_일본의_징징거림을_바라보는_시각.gif
제목부터가 '아이고 맙소사 또 일본 전범 행위 부인하는 스레드'다. 4chan움짤.[39] 2ch측 혐한·혐중 네티즌과 해외 와패니즈들이 대사를 되풀이하며 함께 춤추는(...) 엑스트라와 그들이 쓰는 재플리시가 포인트. 나오는 대사들이 죄다 "한국은 거짓말쟁이", "난징 대학살은 거짓", "위안부는 매춘부" 등 병맛이 철철(...) 넘친다. 웃음 포인트는 잠깐 초록으로 등장하는 "너네들은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의 중상모략에) 속아왔다(라고 주장)"→'''(증거를 대라고 하자) >네 다음 한국인 >일본어로 글 올리기'''부분.[40] 엄밀히 말하자면 대개는 극우적인 주장을 하는 일본 사이트를 링크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로도 극우적인 주장을 적어놓은 사이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이트가 훨씬 많다. 어차피 어느 쪽이건 개소리를 싸지른다는 건 변함없고.
잘 알려진 대로, 4chan은 와패니즈극우 성향이 매우 강하다. 애초에 트럼프 정권 이후 언론에서 한창 논란이 된 대안우파를 탄생시킨 인터넷 소굴이 바로 4챤의 정사갤, 즉 일본의 피해자 행세/pol/이다.[41] 일본인도 매우 자주 보이고. 한국인이 일본의 과오에 대한 자세에 대해 비판하면 아직도 열폭하냐는 사람이 대부분일 정도. 다만 이 부분은 와패니즈 성향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사건들로 인해 한국 네티즌들에 대한 이미지도 그리 좋지 못한 것 + 별 상관없거나 그들 관점에서 굳이 언급할 이유가 없는 쓰레드에 비판 글을 올리는 모습 때문에 이러는 면이 강하다. 제대로 일본의 전쟁범죄에 관해 언급되는 쓰레드에서는 4chan이라도 일본에 대해 엄청난 성토의 글이 쏟아진다. 심지어는 한국이나 중국에서나 나올 법한 '핵과 미사일을 덜 맞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 정말로 심각하다 할 만한 곳은 Sankaku Complex코타쿠 같은 애니, 망가 관련 사이트들이다. 문제는 헤타리아슈퍼 소니코 애니 같은 작품에서도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는 시각을 보인다는 것. 특히 후술할 두 사이트는 매우 심각한 편.
그런 4chan에서 이런 움짤이 나올 정도면 일본 유저들이 얼마나 어그로를 끌어 댔는지 말이 필요 없다. 일본의 넷우익들이 증거가 확실한 전쟁 범죄나 전범 추모 문제까지 실드를 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중국의 프로파간다로 위장하려고 해도 설득력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쟁 범죄로 죽어간 이들에서 미국군이나 중국군 등 연합군 같은 백인들과 흑인들도 많은데 이들 죽음을 프로파간다로 몰아가려고 해도 증거가 개판이고, 엉터리 이론이나 논리인데다가 도리어 일본 극우의 실체만 드러내는 효과만 거두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도 일본 넷 우익의 이미지는 한국으로 치면 일베충 수준으로까지 떨어져 있다.
다만 그렇다고 4chan 같은 곳에 가서 이 주제로 일본을 까는 스레드를 작성하면 막 같이 호응해줄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스레드를 올리면 스레드 참여자의 일본에 대한 선악 판단과는 별개로 작성자는 십중 팔구는 쳐 맞고 징징 우는 찐따 정도의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gook은 인터넷 상에서는 한국인을 비칭 하는 단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인터넷상으로나 그렇지, 실제로는 겉으로 도무지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한국인을 구별 못하여 그냥 일본인을 비하할 때 국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국이라는 말은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인을 까던 욕이기도 하고 이후 중국인이나 다른 동남아인까지 싸잡아 까던 욕설이다. 1950년대 재미 일본인들을 멸칭할 때도 이 말을 썼다. 자세한 것은 세계인 비하명칭 참고.
일본이 적으로 삼은 미국 같은 상대 국가의 국력을 논외로 해도 과연 정당한 전쟁이었는지, 전쟁 목적이 뭐였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해도 무방할 만큼 판단이 쉽다. 경제 발전과 1등 국민의 이득, 승전국 국민으로 누리는 자부심과 차별의식 등을 점철한 당시 일본 국민들의 모습을 본다면 결론은 뻔할 뻔 자.
거기에 수많은 국가들의 역사서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니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들만 나열해도 일본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 없다. 남의 돈을 빼앗아서 도박을 하다가 잃은 사람이 나도 피해자라고 징징거리면서, 나는 돈 못 갚겠고 나라에서 구제도 해달라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뻔할 뻔자요, 당장 돈 뺏긴 피해자(일본 침략의 피해국)에게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6.1. 서방 측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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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Knowing Better의 Playing the Victim - Historical Revisionism and Japan
일본의 이런저런 징징거림은 일본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큰 효과가 없다.''' 일본은 이런 짓 하지 않아도 이미 냉전 시기부터 서방에 매우 중요한 동맹국으로 떠오른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이런 징징거림이 오히려 이미지만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한국으로서도 홀로 일본 비판하기 어려워서인지 21세기 들어 급성장한 중국이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한국과 협력하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 이유는 아시다시피 중국도 일본에게서 당한 피해가 아주 막대한데, 만주국이라든지 731부대, 중일전쟁과 이 전쟁 도중에 벌어진 난징 대학살로 인한 피해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은 중국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정식 작전으로 집어넣은 일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멸작전 참고.
심지어,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대만에서도 이런 만행들을 절대로 부인하지 않는다. 사실 대만은 중화민국 국민정부시절, 이미 일본과 싸운 적이 있는 나라다. 만주국, 731부대, 중일전쟁, 난징 대학살, 충칭 대공습 등은 대만 정부가 중국 대륙을 통치하고 있을 때 벌어진 일들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세계 질서인 국제연합 체계는 전쟁 당시 추축국에 대항하여 연합을 결성했던 미국, 중국, 영국, 소련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국제연합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인류의 적'''인 추축국을 격파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과 영국과 소련이 친목하고 전쟁 이후의 세계 질서를 다지는 목적으로 만든 국제기관이다.(UN의 공식 중국어 명칭이 "联合国(연합국)"이다.) '''요점만 간추리면 기본적으로 이들 국가들 주축으로 재건 된 2차 대전 후 보편적 민주주의 이념의 사상적 배경에는 반파시즘이 원칙적으로 깔려 있다는 말이다.''' 원래 국제연합(UN)의 근원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제국주의에 대한 대책 겸 전쟁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된 국제연맹이다. 그러므로 반제국주의 이념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나치스나 일본 제국은 현재 세계 질서에서는 곧 '''인류의 적'''이고, 국제연합의 구 적국 조항이 이를 반영한다. 적국조항이 독일이나 일본을 전쟁 피해국들이 마음대로 쳐도 좋다는 보증수표는 아니지만, 그건 이 두 나라가 나치스나 일본 제국으로 복귀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전제가 붙는 아래서다.
그 일본과 싸우던 나라들이 미국, 중국과 당시 무시하기 힘든 세력을 가진 프랑스 그리고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같은 나라들이다. 현재도 국방과 정치력과 경제력에서 미국과 중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나라들 같은 이때 일본에 맞서던 유럽 쪽 나라들 역시 여전히 쉽게 무시 못하는 국가들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반일 감정이 아시아에서만 부각 돼서 유럽엔 반일 감정이 전혀 없는 것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엄청난 오해이다. 일례로 1960년대에 당시 천황인 히로히토가 아내 나가코 황후와 함께 미국, 중국, 영국, 네덜란드 방문을 떠났을 땐 그야말로 난리였다.
일단 중국의 경우는 히로히토가 원래는 중국도 방문을 하려고 했는데 중국에서 극렬히 반대했기 때문에 못 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히로히토가 중국을 방문한다면 그건 곧 '''엄청 분노한 중국 인민들에게 죽으러 가는 것'''이랑 똑같았기 때문.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 온갖 전쟁범죄를 중국에 저질렀고 게다가 일본은 중국에 사죄와 반성조차 전혀 하지 않았기에 중국 국민들이 히로히토를 용서할 리가 없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대만을 갔다. 다만 이후 히로히토가 죽은 이후 히로히토의 아들이자 그 뒤를 이어 천황이 된 아키히토가 1992년에 중국을 공식 방문하며 중국에 사죄와 반성을 하는 등 개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미국, 대만에서는 그나마 조용히 넘어갔는데 물론 반일 시위대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후술할 영국, 네덜란드에 비하면 그렇게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영국, 네덜란드에선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과 그 유족들로 구성된 반일 시위대가 몰려들어 쇼와 덴노나가코 황후에게 돌팔매와 화염병과 각종 오물을 거침없이 날려댔다. 이들은 하나 되어 히로히토 내외에게 "살인마는 우리나라에서 빨리 꺼져라!"와 "일본 왕을 즉시 전범 재판에 회부하여 사형을 선고하라!"와 "일본 왕이 죽인 우리 가족들을 살려내어 다시 우리들에게 돌려달라!" 등 피켓을 든 시위대가 히로히토 내외가 가는 곳마다 몰려들어서 히로히토 내외는 돌과 화염병과 오물을 맞으며 엄청난 수모를 당했다.
여기서 유럽, 아메리카 등 서양 권에서는 일본 천황이라고 안하고 일왕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서양 권에서는 황제의 개념을 상하관계가 아니라 동등관계로 바라본다. 동양권에서는 황제가 왕보다 1단계 높은 존재이지만 서양 권에서는 황제나 왕이나 똑같이 높은 존재로 여겨 일본 천황이 아니라 일본 왕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서양 제국들의 공식 표현은 일본 천황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나머지 국민들은 그냥 Emperor나 King이나 똑같으니까 구분 안 한다.
그리고 히로히토가 죽자 영국 신문들은 아돌프 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와 더불어 3대 전범이 이제야 죽었다, 지옥에서 축하할 잔칫날, 행복한 전범 히로히토 그는 44년이나 더 살았다라고 엄청나게 비판했다. 심지어 1990년대에 아키히토마저도 영국에 방문할 때 영국 노병들이 보상하라며 전범국가 일본이라고 휘파람을 불며 야유하고 콰이강의 다리 삽입곡으로 유명한 보기 대령 행진곡을 연주하며 비판했다. 당시 천황 내외를 태운 마차는 찍소리 못하고 피하기만 했고 상이군인, 노병들이 거리를 두고 비판하니 영국 경찰도 직접적으로 테러를 가하지 않는한 뭐라고 하지 못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미국에 큰 영향력을 가진 유대인이스라엘도 나치와 한 패거리인 일본의 저런 징징거림을 안 참아주는데, 그 이유는 나치에게 굽실거리며 무기 기술을 받고 같은 동맹국으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피해자라고 한다면 나치 독일이나 파시스트 이탈리아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의 침략전쟁 과정에서 적지 않은 유태인들도 직간접적으로 희생됐다. 그래놓곤 일본 극우들은 일본이 유태인 일부를 나치에게 지켜줬다는 등 개드립을 하며 정당화하지만, 오스카 쉰들러라든지 나치에 협력한 이들이나 나치 장군이나 알베르트 괴링 같은 간부들도 유태인들을 일부 살려주거나 숨겨줬다는 걸 잊지 말자.[42] 미국이나 이스라엘도 적어도 이렇게 한 나치 간부들은 관대하게 용서하거나 은혜를 입은 유태인들이 개별적으로 나중에 그들에게 보상하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도 유대인을 구해준 스기하라 지우네야스에 노리히로 등 일부 일본군 간부들은 용서해줬다지만 그래도 유태인들이 일본군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일본의 이런 징징거림에 오냐오냐 할 리가 없다.
일본군의 학살행위가 심각하던 때는 오히려 나치 독일인이 일본군으로부터 아시아 사람을 지켜준 예도 있다. 난징 대학살 때 난징에 있던 나치 측 인사들이 기겁하고 중국인들을 살려주고 일본군을 막게했다. 마오쩌둥도 이런 은혜를 잊지않고 이런 나치 측 일부 인사들을 따로 보상하며 고마워했다. 욘 라베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독일은 좀 무리수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전체적인 구심점보다는 자체적인 지방에 소속감이 컸고 반 파시즘적인 저항세력인 안티파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곳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1990년대를 분수기로 국내로는 렌조 디 펠리체, 죠반니 빠보네, 국외로는 스탠리 페인, 토니 주트 등의 현대 역사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은 비단 연합군의 상륙 같은 외부적 요소 뿐만 아니라 전쟁 이전부터 지하에 암약하여 지속적으로 반파시스트 저항 운동을 펼쳐오던 공산주의, 사회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왕실을 바지사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반발한 우파 내의 반파시스트적 인사들이 규합하여 터뜨린, 즉 이탈리아 내부의 반파시스트 요소들이 자체적으로 응집하여 터진 하나의 내전으로 보는 시각이 학계 내에서는 주류이다.
그리고 1944년 겨울 아직 파쇼의 지배가 굳건했던 살로 공화국 영토 내에 여러개의 동시다발적 무장 봉기를 일으켜 짦은 시간 해방구를 형성했다 추축군의 재침으로 진압 당했던 이탈리아 북부의 수 많은 임시 빨치산 공화국들의 존재는 이러한 이탈리아 반파쇼 빨치산들의 조직과 역량이 결코 연합군의 꼭두각시 수준이 아니라, 이탈리아 민중 내부의 자체적이고, 자발적인 지원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뒷바침한다.
이런 내부 정치를 제외한 외적인 군사적 측면에서도 최소한 이탈리아는 다른 두 추축국처럼 "인질은 없다!"를 대놓고 자행하진 않았다. 이런 행보 때문인지, 이탈리아는 독일과 일본과 달리 전후에도 전범국가 처우는 거의 받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이 피해자면 미국이 가해자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따위 주장은 네오콘을 필두로 한 미국 우익이 절대로 이걸 웃으면서 넘기지 않는다. 네오콘 상당수가 바로 2차 대전 참전 군인이거나 그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미국도 그런 게 있다' 운운하며 물귀신 작전으로 끌어들이려다가 네오콘들이 폭발하여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문제 결의안 통과에 기여한 적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노예와 군부대를 상대하는 성매매녀가 똑같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서다.
한편 이전 일본에 마르코 폴로라는 극우 잡지가 있었는데, 이 잡지는 한국과 중국 침략이나 학살도 부정하며 이것들이 모두 조작이라는 개드립을 일삼았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유태인 학살이 조작되었고 나치 독일의 행동은 정당방어이며 그 나치와 아군이던 일본도 마찬가지'''라는 궁극의 개드립을 쳤다가 나치전범 추적으로 유명한 시몬 비젠탈이 이걸 알고 격렬하게 분노하여 미국 내 유태인 단체와 같이 항의하며 나아가 일본 정부에 책임을 따지겠다고 하자 데꿀멍하여 얼른 스스로 잡지를 폐간한 적도 있다.
물론 이건 유대인의 영향력이 국제적으로 상당히 강하다는 점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해석하지만, 그 점을 고려해도 당연한 행동을 해서니 실드쳐 주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일본이 징징거려도 본격적으로 미국이나 유럽 쪽 나라들에게 사과하라고 대놓고 나서진 못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엄밀하게 따져 볼 경우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미국도 피해자다. 이것은 국제연합 헌장에 있는 '''구적국조항'''을 아직도 그대로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6.1.1. 미국에 살고 있는 일본계의 시각


미국에 사는 일본계 미국인들도 몇몇은 이런 피해자 행세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대부분 일본의 이런 위선을 좋게 바라보지 않는다. 미국에 사는 처지이기도 하고, 이외에도 여러 가지 까닭에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처럼 나서거나 반대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계 부하들을 이끌고 나치 독일에 맞서 최전선에서 맹활약한 김영옥 대령(1919~2005)의 활약이 컸다.
그가 살아있을 때 캘리포니아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결의를 하려고 하자 일본계들이 반대 로비를 했었다. 그러자 김영옥 대령이 부하이던 일본계 노병들을 찾아가 '''"우리가 유럽에서 싸운 게 뭘 위해서였냐?"'''면서 설득하자 이 노병들이 로비하던 일본계들에게 반대 로비를 그만두게 했다고 한다.
미국 내 일본계들에게도 2차 대전 참전자들은 '큰 어르신'이라서 존경과 같이 발언권이 컸기 때문인데 김영옥 대령이 별세하고 나서도 살아있는 일본계 노병들은 그의 뜻을 존중하여 혼다 하원의원을 비롯한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에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더구나 일본계 미국인들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1, 2세대들이 모조리 수용소로 직행한 적이 있어 이런 우익적인 망언을 경계하는 경향이 어느 정도 나온다.
이해가 안된다면 울펜슈타인 게임에 나오는 가상의 캐릭터인 시그룬 엥겔[43] 문서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6.1.2. 현재의 경향


최근에는 '''아베 신조 총리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우경화 행보''' 탓에 오히려 전 세계의 강대국들에게 안 좋은 의미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서양 권에 위안부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났다. 게다가 아베 정권의 우경화 행보는 기존 일본의 태도와는 '''급이 다를 만큼''' 미친 모습이라[44], 그 사이 일본에게 더 우호적이었거나 무관심했던 미국도 지속적인 경고를 주는 등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도 그럴것이 일본을 돕는 이유가 '''위치가 좋아서'''이지 일본의 막장행위를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다.[45]
중국과의 대결을 가정했을 때, 미국은 정 안되면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고 EU와 손잡아 잠시 서태평양에서 물러난 뒤 반격에 들어가도 괜찮지만, 일본은 도망갈 곳이 없다.
미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는다는 것이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전혀 황당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과거 공산권 동맹이었던 것은 맞지만, 둘은 이념적 계통이 완전히 달라 자주 마찰을 빚었고 중국의 팽창에 러시아가 두려움을 느낀 적도 많다.[46] 예를 들면 과거 중소 국경분쟁이나 러시아제 무기의 중국 수출제한 등이 있다. 확률적으로 낮아서 그렇지 미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는 상황도 가능성은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역사문제에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일본 편을 든다는게 문제.
그게 아니라도 미국은 필리핀-인도네시아-호주 등을 주축으로 서태평양 연안 방어선을 세우고 미군의 주둔 비중을 좀 더 늘린 뒤 러시아와 타협하는 것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어 일본의 존재가 절박하게 필요한 것도 아니다.
미국과 더불어 전 세계 대제국이 되는 꿈을 꾸며 이를 차근차근 이를 실행하고 있는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단순하게 완충지대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적당한 양보로도 별 어려움 없이 미국을 동맹으로 만들 수 있다. 러시아가 미국, 중국과 더불어 삼각형을 이루며 국제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미국의 병크에 대놓고 화를 내거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는 소련 몰락과 옐친 정부의 몰락 이후로는 천연가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체제와 내부갈등으로 인해서 중국처럼 미국을 상대로 패권을 도전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거기다 이미 러시아보다 더 광대한 영토와 더 풍족한 자원을 가졌던 소련 시절에도 미국과 패권을 겨루다가 져 본적이 있는 러시아로서는 괜히 중국처럼 미국과 다시 한 번 대립각을 세우는 것보다 중앙아시아의 구 소련 출신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패권 장악과 완충지대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일본은 대체적으로 쇠퇴 추세인 반면, 일본과 척을 졌던 나라들은 급상승 추세이다. 특히 중국은 상승추세인 국가 중에서 단연코 돋보인다.
2013년 동남아시아 지역 회의에 끼어든 아베가 싱가포르에게 중국 견제를 위한 요구를 하자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가 역정을 내었다. 싱가포르도 2차대전때 일본에게 심하게 두들겨 맞았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 별로 감정이 좋지 않다. 그리고 회의 의장이던 브루나이 술탄 하사날 볼키아가 굳은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반일성향이 그나마 적은 동남아에서 조차 정치적, 외교적으로 매도를 겪어도 그걸 못 느낀다. 중앙일보 기사 물론 반일 감정이 적기만 할 뿐 없지는 않다. 당장 일본의 전쟁범죄 피해자 국가들 중 상당수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다.
그러나 2015년 중국 주도로 이뤄진 AIIB에 영국과 여러 해외 나라들이 연이어 가입하면서 이걸 개 무시했던 미국과 더불어 일본도 초비상이다. 일본이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중국 주도로 금융 투자가 이뤄지면서 그동안 미국과 일본 주도로 이뤄진 ADB에 타격을 주면서 일본이 공들여서 이런 자본 투자로 아시아 여러 나라에 친일적인 시각을 주던 노력이 박살난다는 것인데 이게 아직 시작 초반임에도 상당수 들어맞고 있다. ADB가 이거저거 다 따지는 통에 반발하던 아시아 및 여러 대륙 나라들이 우르르 AIIB에 가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에 국가에서 약소국을 상대로 하는 사채업이자, 왼주머니에서 뺀 돈 오른쪽 주머니에 넣기에 불과했다는, 일대일로의 어두운 민낯이 드러나고 일대일로의 경제부문에 AIIB가 연관되어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AIIB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일단은 한숨을 덜긴 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 때문에라도 아시아에서 대중국견제에서 한국과 더불어 가장 앞서야 하는 일본이 같이 협력해야 할 동남아 국가들을 상대로 '''자기 잘못이 뭔지도 모르는 식의 발언을 하여 대중국포위망에 자꾸 구멍을 내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일본은 계속해서 미국의 강력한 눈초리를 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중국의 외교적 악수와 내부적 진통으로 인해 AIIB의 위협은 예전보다는 저평가되는 분위기도 있으나 안심할 정도의 단계는 아니었는데 2016년 미 대선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가 자국 내수화 활성을 방해한다며 TPP에 부정적인 입장이라 다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게 생겼다. 트럼프는 미국 내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 대일본무역 적자를 해결하가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지만, 트럼프 그룹의 오너라는 개인적인 이유로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좋지가 않다. 과거 버블경제 시절 일본 기업들에 의해 적잖게 손실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인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 사죄할 생각을 했는데 되려 일본이 그러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미국과 관계개선이 엉망이 된다는 것. 그리고 다음 대통령이 될 도널드 트럼프는 먼저 진주만을 공격한 게 누군데 누가 사죄하느냐며 오바마를 비난했고 원폭투하 희생을 빌미로 일본이 전쟁 희생자처럼 구는 것도 문제가 있다며 일본을 은근히 씹었다.

6.1.3. 개별 사례



6.1.3.1. 스티븐 스필버그의 선택

실제로 유대계 미국인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설립한 드림웍스 영화사의 아시아 지역 배급권 계약을 할 당시 나치 독일과 함께 전쟁한 일본 업체는 '''처음부터 배제했다.''' 당시 아시아 지역 엔터테인먼트 산업 규모는 일본이 압도적이고, 한국의 산업 규모는 일본의 1/10 정도였다. 그런데도 일본 기업을 쌩까기로 했다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다 보니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기업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는 한국 기업에 우선적으로 접근했다. 처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접근했는데 당시 스필버그 측 인사의 증언으로는 이건 뭐 반도체 얘기만 하고, 영화 산업의 이해가 없었다카더라. 물론 표면적인 까닭이며 실제로는 다른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끝내 이 정보를 입수한 범 삼성계 대기업인 CJ그룹이 접근, 드림웍스의 아시아 지역 배급권을 따냈다.
이런 CJ의 드림웍스 판권 계약에 충격을 받은 삼성그룹은 그제서야 부랴부랴 영화 산업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고. 그래서 부작용은 있었지만 1999년 이후 한국 영화가 대기업들의 집중 투자에 큰 성장을 하게 된다.

6.1.3.2. 미국 하원의 위안부 문제 결의안 통과

미 하원에서 이 결의안 통과를 묘하게도 '''일본계 미국인 3세인 민주당 소속의 마이클 혼다(Michael Makoto Honda, 애칭은 Mike) 하원의원이 지지'''했다. 그는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일본계로서 사죄하고 유엔 결의안을 비롯하여 더 강력하게 위안부 문제를 따지자고 주장한다. 당연히 일본 극우들은 마이크 혼다를 두고 매국노, 일본의 수치 등 비난하며 싫어하는데 구로다 가쓰히로는 혼다 의원이 한국 정부에게 매수를 당했다는 식의 개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사실 이것도 모자라 "미국도 성노리개 같은 게 있었다"는 투로 말한 일본 극우들의 자폭이 이 사태를 촉발시켰는데, 넷 우익들은 이런 건 생각치도 않고 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 일본 여성들을 상대로 매춘굴을 만들게 한 것을 말하는데 그야말로 개소리인게 강제로 성노리개로 끌어들인 게 아니라 당시 박살나서 먹고 살기 어려운 일본 여성들이 먹고 살고자 스스로 나선 것 뿐이었다. 일부 미군이 이런 일본 여성을 상대로 학대 및 살인도 저지르기도 했지만 이걸 성노예인 위안부랑 연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폭이다. 심지어 그 때도 다수의 미군들은 군대 내부에 매춘굴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한국군 주도의 매춘부 시설을 이용하기는 했다.
참고로 혼다 의원이 네오콘 내 일본 지지파 의원 설득에도 바로 이런 일본 극우들의 주장으로 어필했다. 일본의 이런 주장은 네오콘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네오콘의 상당수가 2차 대전 참전 군인이거나 참전 군인을 아버지로 두고 그걸 자부하는 이들인데, 일본의 주장은 자신들에게 위안부란 이름으로 성노리개가 있으며 미국이 자신보다 더 나쁘다느니 참전군인은 강간범이라는 개소리일 뿐이다.
당연히 네오콘들은 이에 분노해 결의안 통과를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무릇 상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으면 심기를 맞춰야 하는데 일본으로서는 가장 초보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셈이다. 딴에는 물귀신 작전이랍시고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은 그런 성적 모욕에 관대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게 미국은 각 주 별로 형법체계가 약간씩의 차이는 있어도 성범죄자에 대해서만큼은 살인범과 거의 맞먹는 형량을 때리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다. 심지어 감옥에서의 대우조차 살인보다도 인간취급 안 해주는 곳이 미국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전에 이주 온 일본계 미국인 2세들은 '''병적으로 조국인 일본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 정부에서 다른 추축국 출신들에 비해 일본계를 격리 수용하는 등 차별 받은 기억이 있는데 위에 언급된 혼다 의원도 수용소에서 유아기를 보냈다. 그리고 이 시절의 기억 때문에 자신들이 일본 출신임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일례로 미국인들이 일본계 미국인 2세들을 보고 "Are you Japanese?"라고 물으면 "I'm not Japanese. I'm Chinese."라고 해서 중국인이라고 거짓말을 치는 등 일본 출신이 아님을 명확히 강조한다. 대놓고 놀리려는 식으로 일본계냐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면 저정도로 거짓말을 쳐 가면서까지 과민반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인이 일본계임을 숨기려는 성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대부분은 Asian American 이라고 강조해주는 선에서 끝난다.
일본계 미국인들의 이러한 특징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그들은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미국인의 정체성이 훨씬 크면서 일본인 특유의 국가에 복종하는 경향이 들어가 그렇다는 연구가 있다. 확실한건 아니니 맹신하진 말자.(...)
물론 일본계라고 다 그런 건 아니라 일본 극우를 지지하며 위안부 결의안을 반대하던 일본계 정치인들도 있긴 하다. 대니얼 이노우에 연방 상원의원(1924~2012)이 대표적으로 2차대전 때 유럽전선에 참전하여 팔을 하나 잃었던 그는 일본 극우를 편들어 미국 하원 결의안을 반대했으나 네오콘들이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물타기를 하는 일본 극우들에 분노하여 반대하지 않았고, 결국 결의안이 통과되어야 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습게도 일본 극우 일부는 이노우에를 무능하다고 되려 적반하장으로 욕하기 이르렀고 이노우에도 분노하여 "자폭한 게 누군데 나에게 책임을 넘기느냐?"라고 대응하고 은거하다가 병사했다.

6.2. 아시아 국가들의 시각


[image]

일본볼: 그렇지 얘들아?

아시아 볼들: '''X까'''

폴란드볼에서 표현한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시각. 위 그림에 나온 볼들은 대한민국,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싱가포르, 동티모르 등 과거 제2차 대전 당시 일본 제국에게 피해를 입었거나 전쟁을 벌였던 아시아의 국가들이다.
태국, 인도, 몽골 등이 빠졌다. 태국은 일본 제국의 위협에 의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내내 일본군과 강제 동맹 조약을 맺고 전쟁에 반강제적으로 끌려가고 전쟁 당시 태국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징발되어 일본군에게 강간당한 이력이 있었고, 인도 역시 1944년 일본군의 임팔작전 당시 일본군에게 인도 동부 지역이 침공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몽골은 할힌골 전투때 소련군과 함께 일본군과 전쟁을 치른 적이 있었으나,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몽강연합자치정부로서 일본에 협력한 흑역사가 있어 못 끼는 게 당연하다.
유럽 쪽 국가들처럼, 다른 아시아나 오세아니아 나라도 일본의 저런 징징거림에 동참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일이 '''절대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가 일본에게 짓밟혀서다. 정말 일본에게 안 짓밟힌 나라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게 당시 일본은 태평양 전쟁중일전쟁 동안 그들이 거친 지역의 모든 주민들을 무참히 학대했다. 오죽하면 일본에게 박해받던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미군 등 연합군에 협력했을까?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다소 가혹하게 징병했다는 주장은 있으나 그렇다고 중국 주민들이 일본에 붙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답은 나온다. 침략자인 일본은 당시 국민당의 통합은 허울 뿐이고,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군벌들의 도움을 받을 걸 기대했으나, 오히려 일본의 침략은 원랜 아버지 시절 부터 일본과의 커넥션으로 힘을 쌓았던 장쉐량 부터 필두로 '''그 위세 높던 군벌들이 명목상이나마 장개석의 권위를 인정하고 숙여 들어가는 중국의 통합에 도움을 주었다.''' 군벌 출신 한간이 없는건 아니지만 바이충시, 리쭝런, 옌시산 같은 1930년대 기점으로도 끝발 날리던 군벌들은 거의 다 명목상으로나마 장개석 아래로 숙이고 들어갔다. 오히려 장개석이 평생 염원했던 사방에서 인정 받는, 명목상 국민당 내에서의 권력이 아니라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로서 통제력과 권위는 '''일본의 침략이 만들어주었다''' 봐도 될 만큼 중일전쟁 당시 국민당과 장개석의 권위는 그 전이나 그 이후나 꿈도 못 꿀 만큼 높아졌다. 당장 일제의 중국 침략 계획 중 큰 열쇠 중 하나였던 군벌로 인한 중국의 분열을 오히려 자기들이 막아주었다고 역설적인 평가도 가능할만큼 일본의 침략 행위는 정치 성향과 지역을 불문하고 중국인들의 전면적인 반발을 샀다.
그러니까 당시 일본은 자국 내 소수의 집권 세력 빼곤 모두 무참히 학대했다고 보면 된다. 사실 일본 자체의 영상물, 문학 등 관련 시대를 다룬 예술 작품을 봐도 일본인들 본인들도 다른 나라와의 역사 분쟁에 걸리기 전까지는(...) 쇼와 시대가 결코 서민들이 살기 행복했던 시대가 아니라는건 잘 알고 있다. 그것마저도 부족해서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 말기 일본이 한창 발악할 때에는 '''해외에 거주 중인 일본인 자국민도 비국민으로 몰아세우며 무참히 학대했다.''' 무슨 그나마 진짜 일본 서민 경제는 혜택을 보면서 다른 나라, 민족들을 그리 수탈했으면 지금와서 하는 역사 왜곡이 머릿속으로나마 이해는 가는데, 막상 전시 일본 군부 독재는 자국민을 딱히 잘 챙겨준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절의 남아 있는 사회적 자유, 문화적 개방성, 정치적 다양성마저 박살내면서 전 국민을 전쟁을 위한 도구로 만들었다. '''대공황의 위기에 구세자를 자처하며 전체주의 권력을 새우고 국위선양의 이름으로 침략 전쟁을 벌인 결과 오히려 전쟁 이전보다 훨씬 더 작아진 일본, 독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쇼와 시대 일본 군부와 나치스는 무서울만큼 서로 닮았다.''' 단순히 둘 다 추축국이였다는 사실을 넘어 이런 사실 관계의 구조, 대민 동원 방식, 정권의 논리 구조와 정당화 기제를 보면 단순히 우연이나 비슷한 환경의 산물이라 보기엔 깊은 연관성이 상당히 많기에 전문 학계 내에서도 '일본에서 튀어나온건 유럽의 그 파시즘과는 뭔가 다르다'라는 주장 못지 않게 '표현과 형태는 문화적으로 달랐어도 일본도 파시스트 체제가 맞았다'는 천황제 파시즘론도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당장 전쟁 시기 일본에 협력했던 자들조차도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모두 '''"마지못해 협력했다, 일제는 아주 나쁜 놈들이다."'''라고 변명하는 판이다. 당장에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지지(?)한다고 알려져 있는 동남아 국가들도 일제 침략 자체는 절대 옹호하지 않고 철저히 비판한다. 동남아시아의 국가들도 중국의 세력 팽창에 맞서 일본과의 군사협력이나 군사 재무장까지는 찬성,지지한다 해도 정작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이다. 여기에 자신들의 친일 경력을 덮고자 반일 이데올로기를 적극 사용한 때도 있었다.
한국의 경우, 반민특위가 열렸을 때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변명을 보면 하나같이 일제를 찬양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고 "당대에는 다 친일했다!"식의 물타기나 "광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실수로 일제하에서 민족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 친일했다!"는 식의 변명이 대부분이다. 특히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나 경찰, 관료 등을 맡았던 자들은 자신들의 친일행적을 "그 때의 경력을 살려서 민족을 위해 쓰겠다!"고 말하며 선처도 호소했고, 실제로 친일파(2번 항목)의 일부는 반공이 애국이라고 주장하며 공산세력 토벌에 앞장서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친일파를 포함해 구 일본제국의 파시즘 부역자들을 구원한 것은 마오쩌둥국공내전승리로 인한 극동 공산권 블럭의 위협이였다. 자세한 것은 트루먼 독트린의 역코스 정책 참조.
일본이 과거를 묻어버리려는 의도로 아시아 나라들에게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해줘도, 아시아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일본도 다른 식민지 제국주의 국가와 똑같다'''고 확실히 인식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못 가리는 법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지금 당장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에 마지못해 협력해도, 과연 일본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도 전적으로 일본을 돕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일본이 정말 과거 일본 제국 시절로 부활하려고 하려는 개막장의 수준으로까지 나아간다면 그 때는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과 척을 지고 오히려 중국과 손잡거나 혹은 중국과 일본 두 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고 들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아시아에서의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미국이 두려워하는 사태가 오게 된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도 일본을 암암리에 압박하고 있다. 하다못해 한국처럼 반일 친미로 갈 정도. 미국과 무려 전쟁까지 치뤘던 베트남도 반일 친미로 갈 정도면 말 다했다. 그래서인지 일본 또한 베트남에 상당히 투자를 해서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은 좋아하고 일본인은 존경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는 듯하다. 실제로 하롱베이에 위치한 썬 월드를 가보면 건물 디자인, 화장실 표가 일본어로 되어있다. 그리고 후지산이 떡하니 자리잡은 외부 조형물까지 여기가 일본인지 베트남인지 헷갈릴정도.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 편을 보면 일본이 2000년대 들어서 유로화를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이나 달러화 강세에 밀려 엔화의 국제 값어치가 사라지자, 엔화를 중심으로 아시아경제연합을 이루려다가 무시당하고 더불어 실패했다고 그린 바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에 동아시아 경제회의에서 일본 대표가 이런 제의를 하다가 한국, 중국은 물론 심지어 대만조차도 일절 지지하지 않고 무시했다.
거기다 그 자리에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대표가 "당신들은 아직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학살자, 침략자임을 부정하면서 무슨 염치로 아시아 나라들의 중심 노릇을 한다고 그러오? 아시아 나라들의 중심은 엄연히 중국이거늘!"이라며 대놓고 비웃은 바 있다. 이게 현실이지만 일본 극우는 현실을 부정하고 언제라도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각국들이 모두 일본을 추앙하며 따른다는 뜬구름 속 망상에 젖어 있다. 당연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 일본의 자업자득이다. 만약 일본군이 동남아에 진주한 뒤 일본군을 해방자로서 환영하던 동남아인들의 처우를 좋게 해주고 약탈도 안 저질렀다면 일본 제국은 적어도 동남아 교과서에서만큼은 '해방자'로 남았을 것이다. 연합국도 자신의 식민지 착취를 일본 못지않게 해댔으니. 하지만 일본은 그냥 본색을 드러내 있는 대로 마음껏 수탈하고 학살했다. 동남아인들이 그런 일본의 편을 든다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살인자를 옹호하는 것과 똑같다.
그럼에도 일본 극우들은 자기 잘못들을 조금도 안 말하고 동남아 나라들의 저런 일본 혐오가 왜곡이라며 동남아에 영향이 큰 중국이 왜곡시켰다든지 한국이 로비해서 그렇다는 찌질한 반응으로 열폭한다.
일본의 이런 개차반 왜곡은 답이 없는 악성 친일반민족행위자으로 매수한 이들만 지지함을 보면 대충 견적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고 젠카김완섭, 한승조 같은 이들이 좋은 예시가 된다. 황문웅 같이 대만계 작가 중에서도 그들도 비슷한 짓거리를 하다가 국적 박탈로 일본에 귀화한 경우도 있다. 황문웅은 공자식인설을 진짜 있었던 일인 마냥 책을 냈다. 이런 악성 친일파(2번 항목)들은 끝내 조국에서 비판과 무시를 받으며 잊혀지거나, 아니면 친일 성향이긴 하지만 대놓고 반민족행위는 하지 않는 사람으로 전향한다.

6.2.1. 현재의 경향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문제는 중국의 영향권 팽창 시도에 주요 각국의 공조가 제대로 안 되는 사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에게 있어서 중국에 대한 일본의 역할은 더 커지고 있고, 군비 확장 등을 용인하며 더 크게 부담을 시키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막장 행보 덕택에 동아시아의 대중국 포위망이 금이 가고 있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일단 중국 대처가 우선이니 일본에 일반적인 규탄만 한다고 쳐도, 이전처럼 협조하지 않으려고 한다. 멀리 갈 것 없이 한국만 해도 '''일단은''' 일본과 협력 관계이지만, 점점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단적인 증거로, 한국은 아베 신조의 막장 행보와 연관된 과거사 문제만큼은 중국과 협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한국이 중국과 협력 관계가 될 만한 드문 요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당장 그 미국과 소련도 정치적으로는 적국이지만 나치 문제만 나오면 바로 그런 반인륜 악질들은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고 위 아 더 월드를 외쳤는데, 일제 관련 문제가 그와 비슷하다.
좀 심하게 말해서 서독이 냉전 시절 나치드립 치면서 친 나치 인사를 총리로 앉히고 나치 계승 정당을 집권당으로 만들었다면 어땠을 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애초에 일본이 지금 내세우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롯하여 역사적 사실성보다는 죄의식의 희석이 주목적인 주장들은, 일본 외의 열강이 내세우던 주장을 끼워 맞춰 만들어졌다. 따라서 일본과 비슷한 역사적 오점을 지니는 나라들의 일각에도 저런 주장이 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 나라들에서 저런 주장은 헛소리 취급받는다. 즉 역사수정주의의 비판의식은 각자 구체적 형태가 달라도 세계적으로 공유한다. 비단 역사적 상처가 있는 피 침략국뿐만 아니라 강대국들 사이에서도.
프로파간다의 제작자들은 빈번하게 수용자를 백지에 가까운 이상적 청취자로 설정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나 실제의 인간은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새로운 것을 수용하기 마련이다. 제국주의식민지를 어떻게 약탈하고 피폐하게 만드는지는 자신들의 경험으로 잘 아는데, 세계에서 유독 일본만은 식민지에 헌신했다는 소리를 한다면?
실제로 비슷한 궤변이 종종 나온다. 인도를 영국 지배로 발전시켰다고 개소리하는 연구가들도 있다. 예컨데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교수는 저작 "제국"에서 일본의 조선탄압 사례를 들며 영국은 그나마 관대한 제국이었다고 주장했다(...). 영국도 인도 지배하면서 무수한 약탈과 학살을 벌였으며 그 여파가 지금도 남아있는데 일본 우익들이 자국은 영국보다 나았다고 변명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합리화를 지식인이라는 양반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피지배국가인 인도와 케냐 등 여러 나라들에선 미친 놈의 자기 합리화라고 엄청나게 분노하고 반발하며 영국 식민지배 당시 학살과 약탈로 죽어간 이들 기록과 증거를 보이며 반론하고 있다. 오죽하면 인도 관련 책자인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라는 책자에서도 일본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한국 역사가 일부가 정작 인도는 야만스러워 영국 지배를 받아 발전했다는 주장을 한다면서 해외에서 일본 식민지 지배를 찬양하는 짓과 같다고 깠다.
이원복가로세로 세계사 필리핀 편에서 미국의 지배가 다른 제국주의 식민지의 경우와 다르다는 그야말로 숭미주의자나 할 법한 주장을 했다. 개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이런 식민지 제국들이 자신들이 그래도 낫다느니 좋게 서술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스페인만 해도 수백여년 중남미 및 필리핀 식민 지배에 대하여 좋은 점으로 서술한 게 역사 교과서에 허다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정도의 차이가 다소 있을 뿐이지 사실 크게 다를 건 없다.
다른 예로 한국인이 영국에서 지내며 쓴 한 책자에선 한 저자의 영국인 친구의 아버지인 어떤 영국 노인이 엘리자베스 2세가 인도를 방문할 당시 인도에서 야유하고 식민지배 당시 저지른 학살을 보상하고 사죄하라는 시위를 TV로 보고 "영국이 인도를 얼마나 발전시켰는데 인도에서 영국을 학살자로서 매도하느냐?"라는 말을 하기에 저자가 "그런 말은 다른 식민지 제국들도 합니다. 그리고 일본도 같은 소리를 하고 2차대전 당시 영국인을 학살하던 것을 아시아를 위한 정당한 전쟁이라며 같은 소리하던데요?"라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그 노인은 기분나쁜 듯이 말없이 있었다고.

6.2.2. 개별 사례



6.2.2.1. 베트남

베트남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를 일시적으로 뭉개고 쳐들어온 일본군을 환영했으나, 국부인 호치민박헌영을 비롯한 한국인들을 만나 친하게 지내면서 일본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처음부터 일본도 프랑스 못지않은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견제했다. 호치민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일부 베트남 독립 세력이 그래도 같은 아시아인이라고 일본을 좋게 보자, 호치민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조선인들이 행복하다고 하던가? 프랑스나 일본이나 차이가 없음을 알라!"며 꾸짖은 것도 유명하다.
애초에 베트남은 반불 식민 투쟁 시기부터 중국, 소련 등지를 통해서 다른 아시아 각지의 혁명가들과 교류를 유지했고, 이 와중에는 많은 조선인 독립 운동가, 망명객들과도 비공식적인 친분이 있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식민지 초기부터 판 보이 쩌우가 조선인들의 처지와 자신들을 같이 비교하며 한탄하는 시를 쓰는 등, 독립 운동을 주도했던 초기의 유생들과 후기의 사회주의자들 모두 일제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뜻은 지금도 베트남 교과서에 남아 일본의 식민 지배를 비판한다. '''무엇보다 베트남 국부인 호치민도 2차 세계대전 당시 항일 무장투쟁하면서 공산당 세력을 키웠다. 더이상 설명이 필요한지?'''[47]
베트남 전쟁을 생각하면 믿기 어렵겠지만 호치민도 태평양 전쟁당시 중국 국민당과 미국의 보급을 받으며 일본군 상대로 게릴라 전을 벌였다. 심지어는 공산국가를 건국한 직후에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 이때 경험한 실전경험은 훗날 월맹이 프랑스, 미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에서 요긴하게 쓰였다.
이렇게 강력하게 규탄한 까닭은 태평양 전쟁 시절 베트남을 점령한 일본은 조선에게 그러했듯 베트남에게도 일본군의 각종 민폐세트와 더불어서 '''당연히''' 쌀을 강제로 수탈해서였다. 그러다가 1945년 수탈과 더불어 대기근이 일어났다. 당시 북베트남 인구는 1,000만 정도였는데, 일본군의 쌀 공출과 홍수-가뭄 크리로 온 흉년, 미군 잠수함 크리로 온 남부 베트남 쌀 수송의 난항은 기록적인 대기근으로 돌아왔다. 이 대기근에서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만 200여만 명. 이 당시 일본군의 쌀 공출을 명령한 작자는 다름아닌 '''기무라 헤이타로.''' 당시에 버마 방면군 사령관이었지만 실권이 어마어마한 관계로 이런 짓도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인들은 일본에게 증오만 넘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호치민은 세력을 크게 늘렸고 일본 항복 직후 일시적이나마 베트남 전토를 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인구 1/5이 굶어 죽었는데 강제적인 쌀 공출을 하면 당연히 분노할 것이다. 미국의 잠수함 작전으로 남부 베트남에서 북부로 쌀 수송이 마비된 것도 큰 원인이지만 그렇지 않고 쌀 수송이 원활했더라도 그만큼 더 삥 뜯었으리라고 본다.
참고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베트남인의 체험문학작품을 보면 쌀을 가져갈 때 "안 돼! 가져가지 마라!"라고 울부짖는 여인을 칼로 베어 죽이고 억지로 쌀을 공출하는 일본군의 모습이 보인다. 참으로 일본군 다운 행동일 따름이다. 출처 출처2
당연히 베트남 교과서에서는 이 시절의 일본을 신랄하게 깐다. 하긴 베트민을 비롯한 반 프랑스 저항군이 일본군에게도 맞서 싸웠을 정도이니. 본격적인 미국과의 악연일 때도 이때는 일단 추락한 미국 조종사들을 구해주거나, OSS가 전술 교육, 물자 지원을 해 주는 등 협력 관계로 시작했다. 이 시절에 OSS가 베트남에 파견했던 미군 지원단, 군사 고문 등이 미국인들 치고(...) 현지 문화에 빨리 적응하고, 베트민에게 좋은 인상을 주며 결국 1945년 8월 일제가 철수 할 때 터진 베트남 8월 독립 혁명 때 명예 국빈으로 참석 하는 등 좋은 무드를 형성했으나 냉전이 진행되고 미국의 정책이 바뀌면서 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베트남은 공산국가였음에도 미국의 동맹국으로써 남기를 원했는데 이유는 다름아닌 중국 견제. 한일관계 만큼이나 원수관계인 것이 바로 중월관계로 이 둘은 전근대 시대부터 현대까지도 중월전쟁을 치룬 적이 있다.
여하튼 이 시절 일본의 착취와 약탈로 죽어간 베트남인들에 대하여 베트남 교과서나 언론, 책자로 분명하게 기재하고 일본을 비판하며 침략자, 학살자로서 분노하고 있다. 이에 일본 극우들은 모른다는 변명과 부정만 하고 베트남 역사 교과서로 일본을 침략자로 비난하는게 한국과 중국 탓이라고 개드립을 하며 발광할 뿐이지만 밑에 아시아 나라 대부분의 반일적인 역사교육에 대하여 늘 이렇게만 억지부릴 뿐이다. 이러니 해당 나라 여론은 당연히 싸늘하다.

6.2.2.2. 필리핀

필리핀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맞서 싸우던 필리핀 군인들을 영웅시하며 지금도 기리고 존경하며 역사적으로 배운다. 예를 들어, 필리핀 독립 영웅이자 대통령인 라몬 막사이사이(1907~1957)만 해도 항일 저항군 지도자로 알아주는 영웅이다. 독재자인 마르코스도 비록 엉터리임이 정설이지만 대통령 시절 항일 저항군에 들어가 싸웠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일본 극우들의 '''미국의 식민 지배를 해방시키고자 도우려던 일본군'''이라는 소리는 필리핀에서도 모조리 깔끔하게 무시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필리핀은 물질적으로도 태평양 전선의 핵심 중 하나로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 지역은 2차 대전 때 태평양의 이탈리아 전선 소리 들으며 학계의 추산으로 70만~100만, 인구의 5~9%가 2차 대전으로 인한 파괴, 학살, 기아로 죽었으며, 수도인 마닐라만 하더라도 유서 깊은 스페인 식민 시절부터 보존 되었던 구시가지가 가루가 되어 버리는 마닐라 대학살을 당했다.
필리핀은 당장 바탄 죽음의 행진 같은 전범 행위가 대거 발생한 곳인 만큼, 정치적 상황이 혼잡해서 대립이 극심한 나라임에도 항일 투쟁만은 공산당이나 신인민군 같은 좌익, 막사이사이 같은 우익, 모로 해방 전선 같은 소수 민족 분리주의 계열마저도 협력하며 공유하는 역사이다. 이런 나라에서 일본이 영향력 발휘하겠다고 드는 시도 자체가 본인들이 얼마나 피해를 끼치고 갔는지 자각을 못한다는 반증이다.

6.2.2.3. 인도네시아

한편, 일본 극우들이 '''메르데카'''라는 극우 찬양 영화를 만들자 이 영화의 배경인 인도네시아도 반발하여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일제 불매 운동까지 벌였다. 인도네시아 교과서도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 지배를 일본이 해방시키려고 했다는 일본 극우의 주장은 무시하며 "2차 대전 당시 '''일본도 침략자 중 하나로 쳐들어왔다'''"고 언급한다. 원자탄 맞고 쫓겨났다고 꼴좋다고 적어놓은 건 덤.
사실 인도네시아는 일본군이 처음 들어오던 시절에는 정말로 일본군을 해방군으로 알고 대대적으로 환영하던 나라였다. 그동안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던 네덜란드 식민지군을 격파하고 동양인들을 위한 대동아 공영권을 실현하러 왔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다. 이 때문에 당시 인도네시아의 지도자 수카르노는 일본군에게 인도네시아의 자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인도네시아 청년들도 징병시켜 일본군에 합세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에서 온갖 깽판을 치면서 180도로 바뀌게 된다(...). "네덜란드가 차라리 나았다!"는 소리가 현지인 입에서 나올 정도. 사실 인도네시아 말고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러시아를 이긴 걸 두고 황인이 백인 이겼다며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무척 기뻐했으며 심지어 중국 일부에서도 좋아했다! 또한 베트남이나 여러 동남아시아 나라 및 오세아니아 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무척 일본군을 반가워했다. 그러나 죄다 오래가지 않아 치를 떨며 차라리 예전 식민지로 착취하던 백인이 낫다고 편들어줬다. 지금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일본 놈들이 다짜고짜 몰려와선 죽도록 사람들을 부려먹고 약탈하고 가서 무고한 인도네시아 인들만 엄청 죽었다고 일본에 이를 간다.
일본 극우들은 일부 일본군 패잔병이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들어갔다능 징징거리지만, 이건 극히 일부이고 이들에 대해서는 인도네시아 측이 우대를 해주지만 그거랑 일본군이 저지른 해악을 덮을게 있느냐는 비아냥에 묻혀버린다. 여담으로 조선인 양칠성(1919~1949)도 인도네시아 독립군으로 네덜란드군과 싸우다가 잡혀 총살당했다가 1970년대 들어서야 한국에 유골이 돌아오게 되었다.
1946년에 무장해제를 기다리던 일본군 패잔병에게 무기를 인수하러 갔던 인도네시아 독립군을 학살한 사실도 있다.렝꽁전투
일본 소설인 비탄의 아리아에서는 난데없이 이걸 거론하며 인도네시아 독립에 일본군 잔당이 기여했다고 발광을 하고 있다. 이들이 일부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주도했다는 말은 말 그대로 개소리이다. 인도네시아의 독립은 일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도네시아인들이 스스로 주도한 것이다.

6.2.2.4. 말레이시아라오스, 캄보디아

표절작이긴 하지만 일본은 없다를 보면 지은이 전여옥이 본 일화로 말레이시아 외교부 인사가 일본에 관하여 2차 대전 당시 동남아를 쳐들어와 학살과 약탈을 벌였다면서, 차라리 영국이 조금은 낫다는 말까지 대놓고 하여 일본인들을 무안하게 만든 일이 있으니 여기도 일본에 어떤 시각인지 알 만하다.
일본에게 직접적인 침략을 겪었던 라오스캄보디아에서 선생으로 봉사했었던 한국 봉사단체 KOICA 교사들 증언에 따르면 라오스 세계사 교과서도 '일본은 2차 대전 침략국가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쳐들어가 학살을 벌였다'고 집필 했다고 한다.

6.2.2.5.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중국계들이 워낙 기득권이라 그렇고 2차 대전 당시 일본에게 겨우 4년 지배당했음에도 무수한 중국계들이 일본군에게 학살을 겪고 말레이계와 이간질시켜 일본군이 물러나고 골머리를 앓아서인지 교과서가 꽤 반일적이다. 이 갈등 때문에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당했다.'''
싱가포르 중학교 세계사 교과서에선 당시 "일본군이 길을 지나는데 갑자기 당신의 배를 발로 찼다면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라고 고마워해야 한다. 일본도로 당신을 베지 않았으니까"라고 나올 정도다.(출처-아시아 역사교육. 동남아 편)
물론 일본 극우는 싱가포르는 중국의 꼭두각시 나라라 그렇다고 징징거리겠지만 중국계가 아닌 말레이계나 인도계도 일본을 옹호할 까닭은 전혀 없다. 그저 중국계보다 조금 덜 비판할 뿐.
참고로 싱가포르는 중국보다는 대만과 더 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교는 중국과 했지만 1992년까지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했고 이후 총리가 대만을 방문도 해서 중국이 항의했다. 지금도 미국에게 무기를 사오고 있고, 미국제 무기 좀 보자는 중국에게 '즐 쳐드삼'을 시전하며 미국 눈치를 보는 싱가포르다.

6.2.2.6. 태국

일본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는 않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강압적인 위협에 굴복해서 억지로 추축국에 가담한 태국 역시 일본에 대해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일부에서는 태국도 아예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들처럼 일제에 의한 피해국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상당수의 태국인들은 태국은 추축국의 수하가 아니었다라고 주장하는데 그에 반대로 당시 태국 왕이 일본과 협력, 무분별한 학살 등을 없앨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모순 또한 존재한다.
만일 당시 일본에게 대항해서 싸웠다면 태국 역시 이 문서의 다른 나라들처럼 일본의 점령지로 전락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일본군에 의해 수많은 태국인들이 학살당하고 물자 역시 닥치는 대로 약탈당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당장 태국처럼 같은 대륙의 다른 나라들이 열강들의 식민지가 되어가는 와중에도 주권을 유지하고 있었던 에티오피아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게 어떻게 짓밟혔는지를 보라.
실제로 교전을 개시한 지 12시간도 안 되어 휴전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태국 역시 엄연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일본군의 공격을 받은 국가이다. 그리고 이 때 휴전을 하고 일본의 요구대로 동맹을 맺은 덕에 겨우 주권국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군사 독재자였던 쁠랙 피분송크람의 친일 행각으로 인한 병크도 겹쳐서 이 시기에 대한 태국인들의 감정은 다른 아시아인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나중에는 일본에게서 돌아서서 연합국과 함께 일본에 대항해 싸운 역사도 있다.
물론, 태국 문서의 '일본과의 관계'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듯, 태국은 아시아에서 대만 다음가는 친일 국가이긴 하지만, 여기도 평상시에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는 관계없이 옛날의 흑역사를 부인하려고 하면 발끈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일본을 나쁘지 않게 보거나, 적어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없는 나라가 꽤 있긴 하지만, 일본 제국 시절의 역사 문제를 가져오면 한국이나 중국과 별 다를 바 없이 민감한 태도를 보인다.

6.2.2.7. 인도

인도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찬드라 보세 같은 인도 독립 운동가를 열심히 띄워주지만 정작 인도 세계사 교과서에도 일본은 침략 국가다.[48] '''위대한 영혼(마하트마)''''으로 일컬어지는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와 같이 국부로 존경받는 인도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1889~1964)가 영국이 교도소에 그를 가뒀을 때 딸인 인디라 간디(1917~1984)에게 보낸 편지를 봐도 3.1 운동유관순 열사를 극찬하며 조선을 억누르는 일본도 영국과 똑같은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비판했다.
그런 자와할랄 네루가 초대 인도 총리였으니 인도 세계사 교과서에선 일본은 영국과 똑같은 침략자로 비판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물론 네루는 1960년대 초반, 중국 견제를 위하여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는 국가원수로서 당연한 거다.
참고로 네루는 감옥에 갇혀 있는 3년동안 딸에게 세계사를 알려주기 위해서 수백통의 편지를 썼는데,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긴 편지로 오르기도 했다. 한국에선 세계사 편력이란 이름을 달아 책 3권짜리(!)로 나왔다.
일본 극우들은 반일파(?) 자와할랄 네루가 아니라 찬드라 보세가 인도 총리를 했더라면 일본인도는 사이가 더 좋아졌을 것이라는 헛소리를 하는데, 사실 찬드라 보세는 친일파라고 할 수 없는 인물로, 심지어는 나치에게까지 힘을 빌려 영국에게 맞섰던 것 뿐이다.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 때 자기에게 협력하면 독립을 약속했는데 도와주니 씹고 총칼로 판을 엎어버린 국가가 참 곱게도 보이겠다. 그래서 나치에게 협력을 요청했었지만 나치는 점점 인도에서 멀어지고 오히려 일본이 인도에 가까이 접근하자 나중에 일본에 협력을 요청한 것뿐이다.
즉, 나치에 대한 환상은 전무하고 오직 필요한 데 써먹기만 했으며 지킬 건 그럭저럭 지키려 노력한 칼 되니츠와 마찬가지로, 찬드라 보세 역시 '''일본에 환상은 전혀 없었고 그저 필요한 데 써 먹었을 뿐이다.'''
물론 인도의 입장에서는 영국이 인도에 한 짓이 일본과 비교해서도 만만치 않게 극악무도했다. 2차대전 승전국에 강대국이라 묻어가는 거지 연합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식민제국들도 추축국 못지 않게 잔혹하였다. 당장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연합국의 서방의 주요 국가들이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 시절 필리핀, 인도, 스리랑카, 아일랜드, 케냐, 마다가스카르, 나이지리아, 세네갈, 튀니지, 알제리, 시리아, 이라크,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등 식민지였던 국가들에서 자원 착취, 주권 박탈, 식민지 독립운동 탄압, 민족/종교 갈등 부추기기[49]와 같은 악행들을 얼마나 저질러댔는지를 생각해보자.
그러나 찬드라 보세도 그놈이 그놈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이니 이용하려 했을 뿐. 진짜로 보세가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면 오늘날 그를 인도 사회가 애국자로도 대우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네루의 후손들은 지금도 인도에서 영향력이 막대한 정계 인사이다. 그러니 "네루는 반일이지만 죽었으니 무시하자!"라는 이 따위 개드립을 공공연히 해 봐야 되려 일본에게 해롭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넷 우익들이나 인터넷에서 헛소리를 하는 것일뿐, 실제로는 과거사 망언 제조기로 악명높은 일본 정치인들이 인도를 방문할 때마다 네루의 무덤에 헌배하러 가는 수준이다.
일본은 라다비노드 팔이 일본에 무조건 무죄를 주장한 것을 근거로 인도가 일본의 무고함을 알고 있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라다비노드 팔 조차도 살면서 이런 미친 놈들은 처음 본다며 학을 떼고 사형을 선고한 작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치치지마섬 식인 사건타치바나 요시오다.
그리고 정작 현재의 인도는 일본을 전범국가로 분류하며 일본 또한 인도가 식민지 국가로 지배당하던 시절, 영프처럼 침략국이자 식민지 착취한 나라로 자국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에 나오듯이 네루 총리부터도 2차대전 당시 나치와 일본을 비난하면서도 영국도 비난하던 인물이다. 즉, 국부로 추앙받는 사람부터 이렇게 일본을 비판하고 있으니 일본 제국에 대한 인식이 마냥 좋을리가 없다.
게다가 일본은 영국군 소속으로 징병당한 수만여명 인도인 포로들을 학살했던 전과가 있다. 인도에서 그리 언급하지 않으나 가끔 이러한 학살로 죽은 유족들이 일본을 비난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인도 또한 일본의 전쟁범죄 피해국이다. 일본에선 영국 탓으로 하지만 인도에서도 그럼 인도인들을 봐주고 찬드라 보세가 주도하던 저항군에 보냈더라면 인도에서도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것을 스스로 뭉갠 것도 결국 일본이라고 비난한다.

6.2.2.8. 대만

심지어 친일국가라는 대만조차도 일본의 식민 지배를 좀 좋게 봐줄지언정, 2차 대전 및 난징 대학살 사건과 같은 만행에는 매수된 일부 친일파를 빼면 절대로 일본의 만행을 부정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현재 대만을 실효지배 중인 중화민국의 경우에는 일본의 침략을 받아 실제로 전쟁을 치렀던 국가였다. 난징 대학살의 경우를 봐도, 중화민국의 수도가 난징이었기 때문이다.''' 중일 전쟁은 바로 이 중화민국이 중국 대륙을 통치하던 시기의 일이고, 게다가 후계 국가 또는 그를 자처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은 현재 입장에선 중국 대륙을 통치하고 있다. 꼭 대륙 시절을 거론하지 않고 대만 얘기만 놓고 봐도, 우서 사건같은 참혹한 학살 사건이 있어서,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발목을 잡을 여지가 크다.
구체적으로 보면, 중국인 정체성을 강조하고, 일본과 실제로 전쟁을 수행했던 국민당이 포함된 범람연맹의 경우 위안부 문제, 댜오위타이 영토 분쟁 등에 강하게 대응하는 반면, 대만인 정체성을 강조하고, 대만일치시기 때부터 대만에서 거주해 이후 국민당 독재 정권에 피해를 받아 상대적으로 일본을 나쁘지 않게 본다는 시선이 있어 친일 성향이 강한 범록연맹의 경우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편이다.
핵심은 두 국가 모두 일본과 전쟁을 한 적국이었다는 것. 특히, 마잉주 정부부터 교과서에서 본격적으로 일본의 이런 전쟁범죄에 대하여 비판한다. 반면에, 리덩후이독립파들은 친일성향이 강해서 통하지도 않다.## 애초에, 대만은 청일전쟁 뒤에 일본으로 넘어갔으나 도로 중국에 돌아왔으니...

6.2.2.9. 오세아니아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크고 강대국인 호주도 1942년에 일본에게 당한 다윈 공습(Bombing of Darwin) 같은 여러 침략을 받아서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2차대전 동남아 전선에 연합군이자 영연방의 일원으로 파병하여 열심히 싸우다보니 일본의 이런 피해자 행세에 대하여 대단히 불쾌하게 반응한다. 일본의 전쟁범죄 문서에는 스파이 혐의로 붙잡힌 뒤 참수당한 호주군 군인 레나드 시플릿 중사의 처형 장면이 올라와 있다.
오세아니아에서 호주에 이어 큰 나라인 파푸아뉴기니만 해도 90년대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기미가요의 포트 모르즈비>를 보면 당시 일본의 지배를 받아서 기미가요를 부를 줄 아는 현지인 노인들이 나올 정도였다! 노래를 잘 안다고 하자 노인이 노려보듯이 쳐다보며 하는 대사가 살벌한데 '''"안 외우면 죽어라 얻어맞았고 여러 번에 걸쳐 못 부르면 죽여버린게 당신들 일본인이거든."'''[50] 이렇게 나올 정도라면 말이 더 이상 필요없다.
다른 오세아니아 작은 섬나라들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백인 양놈보다 저놈들이 더 낫겠지' 하면서 일본군을 환영했으나 가만 보니 학살에 약탈, 징용과 민족 문화 말살...더 악랄한 놈들이었다.끝내 분개한 원주민들이 그나마 나은 호주영국군, 미군 같은 백인 군대를 편들어준 일도 유명하다. 당연히 교과서 및 인식으로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굉장히 싫어한다.
권주혁이 쓴 책자인 핸더슨 비행장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세운 일본인 사망자 추모비에 지들이 억울하게 피해자로 학살당했다는 투로 새기자 현지인들이 '''우리야말로 피해자다'''라면서 격분하여 추모비에 테러를 감행했다고 한다. 이후 그냥 전쟁에서 죽은 피해자를 순수하게 추모한다는 뜻으로 세우고 나서야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고 한다.

6.3. 대중매체


아니메모에로 대표되는 오타쿠 문화는 21세기 이후 일본의 피해자 행세를 주입시키고, 관력 역사를 미화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아직 제대로 된 역사관이 발달하지 않은 미성년자 연령대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자연스레 교육하여 자신들의 신념을 주입할 수 있으며, 자칫 불리한 묘사도 연출이나 '창작물 상의 허용' 등으로 빠져나갈 구석을 만들기 매우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는 일본의 민간기업은 물론이고 일본 자위대 등 국가기관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6.3.1. 일본이 피해자라는 입장의 작품들


친일사상과 제국주의 합리화론을 강조해서 다룬 작품들의 목록. 이런 오해를 샀던 후술할 맨발의 겐같은 작품들은 예시화하지 말 것. 불행히도 21세기 이후 특히 아베 신조 정권 들어서 일본의 급속한 우경화의 촉진과 더불어 일본 서브컬쳐계의 자국 중심화와 찬양물, 한국이나 중국등에 대한 비하나 비방적인 표현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고 이제는 사실상 주류나 다름없을 정도이다. 일본 내의 인기 애니나 게임중 상당수가 적어도 몇번은 우익 논란이 터져나오는데 이것은 이전 90~2000년대에 제작된 창작물들에 비해 그 빈도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6.3.1.1. 만화

  • 고마니즘 선언: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1992년작. 90년대 이후 일본의 젊은 우익들을 결집시킨 만화로 유명하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아예 대놓고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를 이야기하고 있다(...).
  • 나츠코의 술: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일본의 국운을 살리고 대동아 공영권을 위한 바른 전쟁이며 나라에 충성한다고 묘사한다. 양조장을 하던 사람들도 피해를 본다고 나오지만 정부나 전쟁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냥 피상적인 형태의 피해만 그리고 있고 국외의 전쟁 피해자에 대해선 일언반구의 말이 없다.
  • 더 파이팅: 압천 관장의 회상씬에서 미국을 악의 집단처럼 묘사하고 본인들은 정당한 전쟁을 했는데 졌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고생하는 것처럼 묘사하였다. 한 장면에서는 캐릭터가 제로센을 찬양하는 대사가 나온다.
  • 니혼쨩:일본이 한국과 중국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묘사가 나온다.
  • 불꽃의 눈: 오시키리 렌스케의 만화. 숄골이라는 가상 적국에게 점령당한 일본인이 독립투쟁을 하는 모습을 그린 만화인데, 공습 장면이나 숄골 통치 하의 상황을 그린 걸 보면 영락없이 도쿄 대공습GHQ 통치 하의 일본. 이걸 과장되게 일본이 피해자인양 묘사하고 있다.
  • 안녕 절망선생: 일본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를 강요받는 피해자라는 입장을 강력히 견지하고 있다. 아예 그 입장을 형상화한 카가 아이가 메인 캐릭터에 들어가 있을 정도. 한술 더 떠서 단지 자기들이 피해자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일본의 침략에 보상을 요구한 나라들을 '피해자 행세하는 나라'라고 매도했다. 이 정도면 작가인 쿠메타 코지가 뼛속까지 극우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 용(만화): 굉장히 노골적인 극우 만화답게, 초반부터 일본의 중국 침략을 미화하다가 소련군이 만주로 진공하는 결말부에서는 포악한 소련군에게 짓밟힐 위기에 처한 일본 민중을 구해내는 주인공의 영웅적인 활약상이 그려진다. 작가의 미화 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일본 만화중에서는 드문 개념작이라는 평을 받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작품.
  • 블러디 먼데이: 고딩들이 성인들도 못하는 것을 단번에 해내고 테러리스트들과 무쌍을 찍는 것은 일본 만화의 고질적인 클리세니 넘어가더라도, 미국은 사소한 이유로 전쟁을 벌이며 이 나라(일본)에도 핵을 두번이나 날린 적이 있다고 미국의 원폭 투하를 비난하는 내용이 나온다.
  • 앙골모아 ~원구전투기~: 작품 내용은 몽골의 일본원정으로 인해 침공을 당한 대마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절 대마도 사람들은 그저 고려와 일본 사이에서 평화롭게 교역을 하다가, 몽골과 고려의 침략을 받아 참혹하게 희생 당하는 것으로 묘사를 하는데, 평화롭게 교역만 하긴 개뿔. 막상 고려사를 보면 왜구가 침략했거나, 침공 이전에 고려 정부가 일본에 왜구 단속 좀 하라항의 사신을 보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1263년에는 해적질을 한 대마도 왜구를 징벌했다는 내용도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려군의 학살을 상당히 부각 시켜 놓았다. 만화 보면 몽골군보다 그 앞잡이 노릇 하는 고려군이 더 악랄해 보일 정도.

6.3.1.2. 애니메이션

  • 바람의 검심 성상편: 원작에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주인공의 행동이 180도 달라져버렸으며, 청일전쟁의 원인을 중국에서의 불순한 움직임인 것으로 왜곡 표현한다.
  • 이 세상의 한 구석에 (드라마판 한정):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힘든 생활을 한 주인공을 부각한다. 역사의 과도기 속에 희생된 개인의 아픔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애기. 강조했듯, 드라마판과 달리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당시 일본 국민들 역시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폭력에 가담하고 동조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 콕피트 3부작: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 전반적으로 주축군 참전 군인들도 어쩔 수 없이 동참했고, 어려운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는 인식과 파시즘의 피해자들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특히 2부에서 자살제트기 큐슈 오카를 수송하는 폭격기의 엔진의 상태가 좋지 않자 파일럿이 여자 중 고등학생들이 숟가락, 솥단지 녹여서 만든 부품으로 만들어서 어쩔 수 없다고 농담조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완전히 피해자 코스프레. 단, 마츠모토 레이지의 경우는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는 사상이 콕피트와는 다른 경우가 많고 아예 정반대의 사상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논란이 많다. 이 작품은 원래는 마츠모토 레이지가 만든 전쟁 만화 시리즈 중 명작 에피소드로 불리는 몇 개를 뽑아서 만든 것이라 문제가 부각된 점이 있는데 이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일본제국을 더 강도높게 깐다. 이 경우는 일본도 나쁘고 미국도 나쁘다는 양비론이다.
  • 치비마루코: 애니메이션에서 태평양 전쟁과 관련한 피해자적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에피소드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6.3.1.3. 영화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8월의 광시곡" (八月の狂詩曲, Rhapsody in August)이 일본을 원폭 피해자로 묘사했다. 감독 문서 참고.
  • 승자는 없다 / None But the Brave (1965) 노골적이진 않지만 일본군도 전쟁에서 피해자일 뿐이라는 시각이 종종 보인다. 이 영화 감독과 주연이 바로 가수로 유명한 프랭크 시나트라다! 일단 제작사 및 제작진은 음악이 바로 존 윌리엄스로 미국이지만 일본에서도 제작비 투자를 한 합작영화라 그런지 일본군 비중도 많고 일본군이 가련하게 나오는 묘사가 많다. 물론 반전적인 메시지로서 미군에게도 해당되는 게 많기에 무조건 일본의 피해자 행세라고 욕할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개봉당시 싸늘한 평과 흥행에서 쫄딱 망해 시나트라의 처음이자 마지막 감독 영화가 되었다. 다만 지금은 좀 볼만하다는 평이 나오며 블루레이도 나왔다.

6.3.1.4. 소설

  • 감벽의 함대: 이 작품을 만든 아라마키 요시오(荒巻義雄)의 목을 따러 가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전범들을 미화하는 작품이다.
  • 꽃피는 에리얼포스: 작중에 나오는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아닌 가상의 전쟁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와 인명경시 사상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천황 국체 이론, 자살 특공, 야스쿠니 등을 대놓고 미화하고 있다. 게다가 작중에서 저런 짓들을 태연히 벌이는 '황국'은 '불의의 침공을 받은 피해자'로, 적국인 '민국'은 '의장국'의 사주를 받아 '선전포고 없이 침공을 개시한 비열한 가해자'로 묘사하는 것을 볼 때 빼도 박도 못 할 자위용 피해자 행세. 내용상으로 볼 때 이것은 진주만 공습을 뒤집어서 왜곡한 걸로 보인다. 이 불쏘시개와 작가의 과거 인터넷 찌질이 행각까지 발각되면서 작가의 한국에서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 형사의 아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작중 주요 등장인물의 회상 속에서 도쿄 대공습이 등장하는데, 공습에 휘말려 희생된 시민들의 참혹한 모습을 묘사하면서도 정작 전쟁의 원인에 대해선 그 어떠한 언급도 없다. 만약 세계사에 무지한 독자가 본다면 그야말로 일본인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고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6.3.1.5. 게임

  • 대제국: 여기 나오는 일본 제국은 현실의 일본 제국과는 이름만 같고 세부사항은 180도 다른 정의의 세력으로 나온다. 현실의 일본이 했던 온갖 잔악행위를 비틀고 비틀어서 미화시킨 악질적인 내용이 일품이다(...) 이 게임 내에서 휘장을 들고 설치는 CG가 있는데, 숫제 대일본제국을 뛰어넘어 초 일본제국이라 쓴 휘장을 들고 국호를 바꾼다고 자화자찬하는 CG도 있다. 게다가 이 게임에서는 어이없게도 이토 히로부미가 너무 착해서 테러리스트들에게 위협받는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는데 만약 정말 이토 히로부미가 너무 착했다면 안중근이 그를 죽일 필요가 없었다.
  • 슈퍼로봇대전 OG1, 슈퍼로봇대전 OG2: 하가네 부대가 DC의 본거지를 기습하는 작전에서 진주만 공습 당시의 구호인 도라도라도라가 나오거나 2차대전 일본이 활용한 자살병기인 오카에서 이름을 딴 캐릭터가 있으며, 군국주의 성향을 가진 캐릭터들을 극중에서 상당히 미화한 장면이 있다. 단 리메이크작인 OGS에선 이런 요소를 대부분 수정했고 이후 OG 시리즈에선 그런 요소가 크게 부각 되지거나 표현되지는 않는다. 더불어 OGS가 나오면서 문제점이 존재했던 GBA판 OG 프로젝트는 종결되었기에 OG 시리즈는 이 논란에서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정도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OGS에서 캐릭터가 크게 바뀐 인물과 새로 등장한 도 있고, 이들이 후속작에서 가진 비중이 크기에 종래의 OG1, OG2를 현재의 OG 시리즈 스토리 라인과 연결시키는 건 무리인 상황이 되었다.

6.3.2. 일본이 피해자라는 입장의 작품이라고 오해받은 작품들


  • 개구리 중사 케로로: 이런 주장 때문에 투니버스에 방영 중지를 요청하는 청원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작품에서 묘사된 여러 장면들을 보듯이 원작자는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에 가깝다. 작품 자체도 침략자 입장인 케로로 소대의 허당스럽고 용두사미스러운 면모와 케론별의 나사빠진 작태가 구 일본군을 비꼬는 느낌까지 준다. 대장이라는 놈은 건담에 빠져 침략에 뒷전이고 심지어 횡령까지 저지르는데다 기동보병사랑에 헬렐레해서 다된 죽에 코 빠뜨리는 일도 기꺼이 하고 작전통신참모는 아예 관심이 없으며 육탄돌격병도 작전통신참모보단 낫지만 중사에 대한 사랑 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데다 그 분께서 말씀 하신 것처럼 에게서 보급을 취하고 있기도 하고[51] 어쌔신은 아예 살생 자체에 반대하는 등 침략자 치고는 너무나도 어이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살짝 우익미화물로 가는 경향이 보이긴 한다.
  • 경계선상의 호라이즌: 현실과는 다르게 극동인(주인공 그룹)은 옛날에 2차 대전을 능가하는 사고를 쳐버려서 자신이 잘못한 걸 알고 있고 200여 년 동안 보상을 하며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피고 있어서 정당성을 부여하긴 하지만 현실(일본)은 잘못도 인정 않고 보상은 모르쇠 일관이니... 말 그대로 현실은 소설보다 더 시궁창인 거다. 또한 주인공의 아버지는 조선을 모티브로 한 사토미 출신이다. 즉 주인공인 아오이 토리는 출신성분으로 볼때 재일교포에 가까운데 동시에 상징하는 것은 도쿠가와 가문이다.
  • 길티 크라운: 방영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당시엔 일본이 피해자라는 설정(일본이 GHQ의 통치를 받고 있다.)과 다릴 얀이 일본인을 죽이는 모습이 나오는 등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이 애니를 제대로 보고 생각해본다면, GHQ가 일본을 통치하는 것은 일본에서 일어난 아포칼립스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국가가 제 기능을 못하고, 전 세계에게까지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어서 그걸 막기 위한 것이지 타국에게 공격을 당해 지배받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후반에는 GHQ의 산하소속이었던 Antibodies가 쿠데타를 일으킨 뒤에 세계를 도태시키려 하고, UN군과 주인공 일행이 그들을 막으려는 구조로 간다. Antibodies는 GHQ의 산하소속이긴 하지만, 지휘 계통부터 장비까지 독자적이고 총책임자부터 군인들까지 거의 다 일본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다릴 얀은 물론 아버지의 불륜과 무관심으로 인해 쌓였던 분노가 폭발해서이긴 하지만 스스로 자기의 아버지도 죽인 놈이며, 초반엔 학살을 정말 좋아했던 캐릭터 자체가 사이코패스이다. 다릴 얀이 시노미야 아야세의 엔드레이브를 찌르며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 낙제 기사의 영웅담: 작중 설정이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이겼으며, 그 외에 설정들이 극우스러운 느낌을 주자 한국에서는 굉장히 반발감을 일으키며 논란이 됐는데, 오히려 일본 정부가 제국주의의 부활을 획책하는 악역으로 나온다. 거기에는 주인공 쿠로가네 잇키의 할아버지도 포함. 그리고 주인공 일행은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가면서 극우 논란은 일단 잠잠해졌다. 허나 작가의 후속작이 제대로 우익 요소가 가득하면서 이 작품에 대한 시선도 다시금 변화가 생겼다.
  • 남자들의 야마토 :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우익단체들이 영화제작 비용의 일부를 책임졌고,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이 영화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야마토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군국주의에서 나타난 군부의 병크와 합리적 사고의 실종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희생을 가져오는지 잘 보여주기도 한다. 야마토가 마지막 출항하기 직전 밤에 승선한 군인들이 말다툼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쪽은 왜 우리가 개죽음을 당해야 하는지 울분을 토하고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외친다. 두 진영이 충돌하자마자, 부함장이 나타나 이들을 제지하며 말한다.

"일본은 정신주의만을 강조하여 진보와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무시해온 결과 이렇게 비참한 현실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어리석은 우리의 현실을 온 국민들에게 깨우치기 위해서는 한번 패배 당해 봐야한다. 그 대가로 우리가 대신 죽어가는 것이니 우리의 죽음은 결코 개죽음이 아니다."
사실 이런 장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무개념 군국주의 영화로 치부될 수도 있었다. 이 영화의 캐릭터 설정상 개념인으로 보이는 부함장은 그 외에도 사무라이 정신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요청하는 수병에게 전쟁의 목적에 따라 사무라이의 판단 또한 달라져야 함을 가르치거나 오키나와 특공을 앞두고 돌아올 수 없음을 알아챈 수병들에게 가족과 연인에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실컷 소리치고 울부짖게 허락한다.
그 외에도 극우 캐릭터로 설정된 일부 간부역할을 맡은 주연들이 일제 특유의 똥군기를 비판하면서 수병 대신 구타를 당하고 항명하거나 또는 죽을 자리임이 뻔한 곳으로 출항하라는 명령에 대해 장교회의에서 최종 명령권자는 왜 야마토에 탑승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장면, 마지막 출항직전에 심란해하는 수병들에게 간식을 만들어 나누어주면서 비상이함 훈련내용을 주지시키는 장면, 야마토가 최후를 맞이한 순간 이성을 잃고 퇴함명령을 거부하며 결사항전을 외치는 어린 수병에게 너는 살아남아 해야할 일이 있다고 함 밖으로 내던지는 장면들은 영화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선입견과는 달리 당시 1억 옥쇄를 외치던 군부의 무책임함에 대한 비판과 종전 이후를 생각하고 전후 복구인력을 최대한 살려내고자 애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동일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인간의 이중성을 통해 최소한의 자아비판은 실행한 셈...
그래도 반자이 돌격같은 주연들의 결말을 통해 이를 보고 희열을 느낄만한 우익들의 비위도 적당히 맞추는 설정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 내부에 과거사를 솔직히 살펴보려는 지성인들과 전쟁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온갖 문제들을 맹목적인 충성으로 합리화하려는 우익들의 의도가 모두 드러나는 형태로 보여진다.
  • 맨발의 겐: 전후 일본의 피해를 다뤄서 오해를 빚었는데, 이 책은 애초 기획부터가 반전, 반독재, 반핵을 다룬 작품이다.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주인공이 원폭 피해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해 천황을 찾아가겠다고 하는 등 오히려 일본 극우들에게는 반일 작품이라며 40년 넘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는 작품. 미국에 대한 비판이 있기는 하나 이는 점령 과정에서 GHQ레드 퍼지라든가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보도 통제, 표본수집 등 다분히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피해자 행세와는 질적으로 다른 반제국주의적 작품이다! 실제 내용을 보면 맨발의 겐은 원폭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에도 그 책임 소재를 전범인 조국에 돌린다. 심지어 10권에서는 '원자탄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일본은 1억 총옥쇄로 달려가 멸망했을 것'이라고 원폭 피해자가 하기 힘든 말까지 한다.
이 작품은 원폭 피해자인 작가 자신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그런데 주인공도 그렇고 주인공의 아버지도 애초부터 "평화를 이야기해야지 미국하고 싸우려면 못 쓴다"라거나 "비국민, 비국민 하면서 전쟁에 젊은이들을 내몰고 있는 정신 나간 것들"을 성토하다가 순사에게 붙잡혀서 치도곤을 당하는 등 전전 일본의 제국주의/군국주의에 상당히 비판적인 작품이다. 이 주인공의 아버지는 작가의 아버지가 모티브로 작가의 아버지는 실제로 히로시마에서 원폭으로 사망했다. 1970년대 작품임에도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는 등 여러 모로 뜻깊은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며 주인공의 가장 큰 조력자로 등장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 바람이 분다: 개봉 당시 한국에선 미야자키 하야오한테 실망을 드러내며 비난하는 여론이 불거진 바 있으나, 직접적으로 일제의 행위들을 미화하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으며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베 정권의 행각에 대해 여러 차례 비판하는 의사를 인터뷰에서 밝힌 적도 있다. 작중에 나온 전투 장면과 주조역들의 일부 발언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포함해, 포스터에선 제로센이 처참하게 부서져 있는 버전도 존재하는데 보통 일본의 피해자 의식을 강조하는 작품에서 제로센 같은 전투병기들이 미화되는 것을 비교해봤을 때, 이 작품이 일제에 대해 옹호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판단할 수 없는 대표적인 이유로도 꼽힌다.
  • 은혼: 원작의 캐릭터인 쇼요 선생의 모티브를 두고 이런 오해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선 쇼요 선생에 대한 묘사로 인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었다.
  • 제도성배기담 - 2차 대전을 묘사하는데다 히틀러에다 일본 제국 병사들까지 등장하고, 어쨌거나 '일단'은 일본군의 편에 서는 서번트가 존재하는데다 오다 노부나가가 나치 군복을 멋있다는 이유로 입고 있어[52] 연재 초창기와 페이트 그랜드 오더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할때 한국 한정으로 잠시 극우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정작 히틀러를 왜 가슴이 출렁이는 여자 서번트가 안 나오냐고 불평하는 변태(...)로 묘사하고 일본군은 무능한 전쟁범들로 풍자하는데다 결정적으로 코믹스판에서는 전쟁을 그만두길 원하는 눈치의 소년을 비국민이라며 매도하며 억압하는 일본군 상관들이 등장하며 극우 이미지는 사라졌다. 게다가 일본군의 얼굴이 양심 있는 소수나 그나마 결말에선 나름대로 갱생한 듯한 주연급의 인물이 아닌 이상 죄다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불쾌한 골짜기 수준으로 묘사된다.
  •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 프로듀서인 다케다 세이지의 일부 행보로 우익적인 의사가 녹아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는데, 이 사람과의 인터뷰로 미루어 보아 확실히 극단적인 피해자 행세를 하는 작품은 아니다.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기획의 방향성에 대해서 타케다씨는 어떤 발언을 합니까.

: 강대국의 지배에 대해서 테러를 그려도 좋지 않을까 라고 말합니다. 슈퍼파워가 한 나라뿐인 세계에서 일본이 유린당한다면 약자는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그리는 것이 알기 쉽지 않겠냐고.

- 결과적으로,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이 일본을 점령해서 일본은 에어리어 11, 일본인은 일레븐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세계관이 됩니다만, 그에 대한 인상은?

: 제가 대학에서 메이지부터 전후에 걸쳐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전공했습니다만, 브리타니아 제국이 일본에 대해서 한 것은, '''한편으로 일본이 한반도에 대해서 한 것과 공통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스쿠니 문제나 개헌논의가 적잖이 다루어지는 지금, 젊은이들이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를 보고, 동시에 일본이 해 온 것을 상상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 라고. 물론 엔터테인먼트 작품이니까 캐릭터의 드라마를 즐기고, 그 중에서 조금이라도 깊은 테마를 알아 차려주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다케다의 말에 의하자면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면서 일본인은 자국이 한반도에 저질렀던 만행을 다시 한 번 상기하라는 역지사지의 의미라는 것. 애초에 다케다가 우익이라는 거부터가 출처 불명의 루머다. 다케다는 일본 우익들에게 반일 매국노라고 공격받는 사람이다.
그리고 코드 기아스 내부에서는 명백히 일본이 군국주의-제국주의적 탄압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강조해주기 때문에, 이게 피해자 행세라면 일본 스스로 자기부정을 하는 셈이 된다. 피해자 행세를 하는 매체들은 군국주의나 제국주의적인 면모는 '''숨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레이야를 도쿄 조계에 떨어뜨리는 장면이 일본이 핵을 맞은 것에 대한 피해자 행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깨뜨리고, 프레이야를 발사한 '''장본인이 일본인(...)'''에 그걸로 죽은 3,500만 민간인도 '''몽땅 브리타니아인'''이라는 언급이 분명하게 나오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넘어서 가해자 과장 코스프레(...)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6.3.3. 일본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묘사한 작품


주로 전후 세대나 일본에서 진보주의 운동이 활발할 시기에 제작된 경우가 많다. 지금도 간간히 나오고는 있지만 위의 사례에 비하면 초 마이너 수준으로 전락해버렸다.

6.3.3.1. 소설

  • 태양의 아이: 하이타니 겐지로의 작품으로 오키나와 학살을 처절하게 묘사했다. 107~115쪽과 364~368쪽에 있는 묘사가 특히 처절하다. 참고로 작가는 이 소설을 지은 덕택에 혐한에게 죽을 뻔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 토끼의 눈(兎の眼): 한국에선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역시 하이타니 겐지로의 작품으로 위의 개념작을 초월한 최고의 명작. 전체 줄거리는 파리연구를 좋아하는 아이와 그 친구들, 그리고 쓰레기 소각장에서 일하는 빈민들의 일상을 그린 소설이다. 작중 주인공인 데쓰조의 할아버지와 데쓰조의 담임 선생님이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할아버지가 과거를 회상하는데, 일제가 자신의 친구였던 조선인 용생을 어떻게 고문하는지 상세하게 묘사한다. 다음은 이 책 내용 중 일부.
>"나는 그 회사의 측량과라는 곳에 배치되었어요. (중략) 나중에는 아예 조선 농민들을 속이는 일까지 도맡아서 했지요. 나는 그런 속임수를 알아차리자 오히려 그 회사에 들어가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중략)
>"저는 조선 사람 편에 서서, 몰수당하는 땅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건 안이한 생각이었죠. 3달 뒤 저는 헌병대로 끌려갔습니다. (중략) 헌병대의 고문은 경찰의 고문보다 몇 백배는 심했어요. (중략) 저는 끔찍할 뿐만 아니라 수치스런 고문도 받았죠. 몸보다 마음이 먼저 갈가리 찢기고 말았지요."
>바쿠 할아버지는 그때의 고통이 되살아나는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고다니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예요. 저는 사흘 만에 낱낱이 불어 버렸죠, 이틀쯤 뒤에 헌병이 저한테 그 결과를 보여 주었어요. 글쎄, 한 12~13채쯤 되었을까요? 집은 흔적도 없이 타 버리고, 시커멓게 탄 시체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더군요. 작은 시체도 있었으니까, 여자와 아이들까지 가차 없이 죽여 버린 모양이었어요. 아까 인간이란 쉽게 악마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건 제 자신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 시체를 보고 큰일을 저질렀다는 생각보다는 이젠 살았구나, 하고 기쁨이 솟구치더란 말입니다. 난 용생이한테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 용생이 어머님한테 뭐라고 사죄해야 할까요."
>바쿠 할아버지는 눈물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은 한번 못쓰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지요. 입 다물고 있으면 누가 알겠냐 싶더군요. 그 뒤로는 흔히들 그렇듯이 술과 여자에 빠져 버렸습니다. 이 배, 저 배를 타고 다니며 유랑자가 되고 말았지요." 143p
> (중략)
>"과거에 대한 죗값이 그렇게 돌아왔다고 생각하실 테지만, 선생님, 그건 달라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용생이나 용생이 어머님, 그리고 조선 사람들에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원한으로 따진다면, 저는 조선 사람의 원한을 사서 온몸이 구멍투성이가 되었을 겁니다. 용생이 어머님은 내 죄를 용서하신 대신 아들 몫까지 살아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서 살아나지 못한다면 김용생을 3번씩이나 배신하는 꼴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답니다."
>"선생님을 울려서 죄송합니다. 술내기를 하쟀다가 그만, 죄송합니다…"
>고다니 선생님은 “아뇨.” 하고 말했다.
>"할아버지 얼굴이 고우신 까닭을 알았어요. 눈매가 곱디고운 이유도 알았고요."
>바쿠 할아버지는 벽장에서 커다란 꾸러미를 꺼내 왔다. 종이로 꼼꼼하게 싼 꾸러미였다. 속에서 첼로가 나왔다.
>그러면서 바쿠 할아버지는 첼로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졌다.
>"할아버진 지금도 첼로를 켜시나요?"
>"아니오. 켜지 않습니다. 이제 곧 용생이하고 같이 켜야지요. 그때까지 이 첼로를 잘 보관해 둬야겠지요?"
>고다니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145p
  • Days of Infamy 시리즈[53]: 해리 터틀도브의 대체역사 소설로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군하와이 점령전을 다루고 있다. 식인생체실험을 제외한 일본의 모든 만행이 하와이에서 벌어진다. 여자 주인공은 일본군에게 강간당하고 위안부가 되었다가 분노한 미국이 하와이를 탈환하면서 자유가 된다.

6.3.3.2. 만화

  • 가스 이니스[54]의 배틀필드-'빌리에게'(Battlefields: Dear Billy): 주인공이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영국인 여성으로 일본군들의 학살에서 살아남아 군병원에서 낮에는 간호사로 활동하면서 밤에는 병원에 있는 일본군 포로들을 죽이는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인물의 이야기와 혼란스런 세계정세 사이에서 고통받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전후 연합군이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위해 일본을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진심으로 분노하며, 국제관계 속에서 뒷전으로 보내진 피해자들의 고통을 상당히 리얼하게 묘사했다.리뷰글[55]
  • : 미국 측에 전향하는 베트콩 간부의 회상에서 일본군도 프랑스나 다름없는 침략자로 설명한다지만 일본군에 의한 전쟁범죄는 묘사된 적이 없고 이것만 보면 일본군의 피해자 행세를 부정한건지 그냥 물타기를 해서 일본군의 전쟁범죄 책임을 축소한건지 불분명하다. 그리고 이 작가 만화 어디에서도 일본군의 전쟁범죄는 묘사된 경우를 볼 수가 없다 문제는 이 작가가 거하게 혐한 커밍아웃을 했다는 점이다. 위의 취소선은 그래서 쳐져 있는 것이다.
  • 나카자와 케이지의 맨발의 겐: 작중 초반 나오는 나카오카 겐의 아버지는 제국주의와 전쟁을 반대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비국민' 이라는 야유를 받으면서 살았다거나 일제 치하 조선인들이 처했던 문제, 패전 이후의 막장이 된 일본이나 여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와 미군의 횡포 등 여러 국면에서 당대 일본의 상황과 문제들을 철저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1화부터 극우주의를 비판하고 있고, 만화에선 대놓고 가장 큰 전쟁 범죄자는 천황인데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식의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즉, 단순히 일본 군부를 비판하는 수준이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에 동조하거나 침묵한 민간인들까지 얄짤없이 까대면서 비판한다.
  • 데즈카 오사무의 단편 만화 '종이요새':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미쳐가던 일본의 상황에 대해 데즈카 오사무 본인이 세세하게 표현해낸 장면들이 많다.
  • 미즈키 시게루의 '총원 옥쇄하라!', 위안부 문제 관련 만화: 후자의 경운 미즈키 시게루 본인이 동남아시아에서 직접 목격한 위안부의 피해 배상에 대해 그 풍경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기 때문에 꼭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미즈키 시게루는 태평양전쟁에서 현재 뉴 브리튼 섬인 라바울의 전선 증원부대로 참전한 참전자이고 연합군의 폭격으로 인해 심각하게 망가진 한쪽 팔을 절단해야 했다.
  • 아카츠카 후지오의 '일본국 헌법이다!': 나가이 켄이치와의 공동 저작으로 1983년에 출간되었으며, 아카츠카 후지오는 일본 정부의 헌법 해석과 자위대의 규모 확장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이 책에서 밝혔다. 아카츠카 후지오는 만주국에서 태어난 히키아게샤 중 1명으로, 귀향한 동네에서 적잖게 차별당했던 경험이 있었다.
  • 아라카와 히로무강철의 연금술사: 작가가 만화 내에 스크린 톤으로 욱일기 문양을 많이 사용해 비판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농촌 출신인 아라카와가 민속적인 의미인 풍어기를 쓴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으나, 풍어기로서 욱일기가 쓰인 역사는 거의 욱일기가 군기로 쓰인 역사만큼이나 짧아서 사실상 군기로서의 욱일기나 다름없다. 이와는 별개로 과거 세계대전 당시 벌어졌던 일본군의 인체실험, 민간인 학살같은 요소들을 많이 넣어 심지어는 일부 극우파들에게 연재를 중단하라는 협박까지 받았다고 한다.
  • 야스히코 요시카즈왕도의 개, 무지갯빛 트로츠키: 전자는 메이지 유신 당시 일본 제국이 향하던 패권주의와 그를 주장한 인물들을 맹렬히 비판하며, 후자는 작중에서 설정된 '트로츠키 계획'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와 그를 선동하는 수뇌부를 비판한다.
  • 카리야 테츠맛의 달인: 원작에서 일본의 과거사 날조를 비판하고 수상이 개인적으로 사과했을 뿐 국가가 사과한 적 없다고 표현하거나,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를 만나고 나서 주인공 일행에게 자신이 당한 피해를 설명해주고, 이를 들은 캐릭터들은 무척 부끄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 카리야 테츠일본인과 천황: 요리 만화인 위의 맛의 달인과는 다르게 자국의 과거사가 주된 주제여서인지, 좀더 노골적으로 극우를 씹는다. 심지어 이 작품은 천황제까지 덤으로 씹는 만화이다. 참고로 이 작품은 은연 중에 일본 사회에 만연한 전체주의적,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도 함께 까고 있다. 초반에 주인공이 부당한 대우에 항의했다가 축구계에서 매장당할 뻔했는데, 그걸 그의 소속 대학의 이사장이 두둔해주어서 간신히 선수 생활을 유지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화 자체도 반(反) 극우 성향인 이사장이 주인공 일행에게 자국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자국 사회의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인 경향을 자국의 전쟁범죄와 이에 대한 부인주의의 대두, 그리고 극우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천황의 존재에서 찾는 식으로 전개된다.
  • 와츠키 노부히로바람의 검심: 극중에서 캐릭터들의 행동들을 살펴보면, 간접적으로 메이지 정권이 일으킨 과오와 무능함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6.3.3.3. 게임

  • 사쿠라 대전 시리즈: RED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게임으로, 기본 설정에서 일본이 러일전쟁에 패해 일본 열도에 틀어박힌 세계관이 나온다. 또한 1편과 2편에 나온 주요 악역들을 보면 제국주의 망상을 가진 놈들이 대다수.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내용과 달리 작품 자체가 일본을 무대로 했고, 일본풍 분위기가 대놓고 나오는지라 정발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 제독의 결단 시리즈: 코에이 테크모의 시뮬레이션 게임. 1편에선 플레이할 시 일본군의 강제노동 장면과 위안부의 묘사가 연출되며,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상황도 여러 차례 나온다. 사실 코에이는 일본 게임 제작사 중에선 역사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는 몇 안되는 회사로 꼽힌다.
  • 194X 시리즈19421943: 본격 일본회사에서 만든 일본을 공격하는 게임. 애초에 주인공부터가 미군 항공기인 P-38태평양 전쟁 각 전장에서 일본군을 공격하는 스토리이며, 특히 1943의 경우 미드웨이 해전이 부제명을 달고 나온다. 물론 게임 내용은 실제 모티브가 된 해전과는 영 다르게 나온다. 또한 게임 오프닝에서 일본군 폭격기 편대 요크타운으로 보이는 아군 항공모함을 반파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일본군 폭격기 편대는 게임 내에서 다이히류(大飛龍)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히류를 패러디한 이름으로 보인다
  • 파워프로군 포켓2: 히든 석세스 전쟁 편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터무니없는 작전과 악랄한 모습을 미화 없이 묘사했다.

6.3.3.4. 애니메이션

  • 미즈시마 세이지 감독의 UN-GO: 카미카제는 일제에서 만들어진 거짓된 신앙심에 속아서 생겨났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천황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린의 날개: 직접 제2차 세계 대전을 겪고 그 시대의 문제를 알면서도 오히려 광기에 사로잡혀 일본을 과거로 바꾸려는 캐릭터의 행동을 미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캐릭터가 막는 전개가 연출된다. 이외에 토미노 요시유키는 기동전사 건담토미노 요시유키 4대비극 등의 애니메이션에서 전쟁에 대해 비판하는 연출을 삽입한 바 있었다. 점보트3와 V건담에선 캐릭터들이 특공과 자폭을 하는 묘사가 나온다. 하지만 전자는 메카가 파손되거나 전력 추세 약화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특공했으며, 종국에 주인공도 전투 결과에 대해 슬퍼하며 전투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후자에선 한 파일럿이 특공을 감행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으며, 성인 파일럿이 주인공 앞에서 충격과 공포를 느껴 자폭을 감행한 장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두 작품에서 해당 파일럿들이 대놓고 xx 만세 같은 대사를 하거나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미화하는 씬은 존재하지 않는다.
  • 잔향의 테러: 작중에서 제작진이 일본 우익의 행태에 대해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연출이 있다.
  • 조커 게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원작 소설가 이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원작과 애니메이션 모두 당시 군국주의와 파시즘으로 미쳐돌아가는 일본의 부조리와 광기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GATCHAMAN CROWDS insight: 직접적으로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대해 비판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10화에서 게르사드라 진영에 대해 일본의 몇몇 선동가들과 언론들이 대중을 부추겨 군중심리를 향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회적인 풍자 수준이 아니라 아예 대사로 군중심리의 폐해에 대해 언급할 정도. 각본가인 오오노 토시야는 아베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개정안 날치기 통과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의견을 트위터에 게재하기도 했다.
[56]

7. 클리셰



7.1. 가해자 옹호와 피해자 비하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가 모두 이런 종류라고는 볼 수 없지만, 가해자를 이상한 핑계를 대고 옹호하면서 가해자에게도 정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극적 관점에서 보면 어느 정도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기는 하지만, 유독 일본의 창작 작품에서 이러한 시추에이션이 상당히 자주, 그것도 밸런스가 무너져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의 과도한 가해자 옹호에 덧붙여서, 어떤 사죄도 배상도 없이 무조건적인 용서를 강요받는 피해자가 나타난다. 게다가 피해자가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다 참고. 대개 주인공중립적인 입장을 가장하여 가해자를 옹호하고, 이러한 피해자를 모욕하면서 '''용서를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위와 합쳐서 "가해자 = 일본, 피해자 = 한국, 미국, 중국, 동남아" 등으로 대체해서 보면 이러한 클리셰가 자주 나타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은 가해자의 입장에 서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극작가들 역시 가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내용을 쉽게 만들어내고, 피해자는 "한국, 미국, 중국, 동남아"으로 보고 '지겹게 사과와 배상을 강요하는 짜증나는 무리들'로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주로 극우 미디어물에서 이런 패턴들이 자주 보이는데,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일본은 일제강점기 이후로 대한민국식민지로 만들어 대한민국의 민간인들을 강제징집, 강제징용을 강요하고 위안부 창설 등의 만행, 중국을 침략하면서 민간인 학살을 벌인 전범 행위들이 있으나, 이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 정치적 인사들의 태도가 일본의 우경화서브컬처에까지 영향을 미쳤기에 이런 상황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들도 있다.

8. 관련 문서



[1] 게다가 이들은 소형 보트나 잠수함으로 일본군 점령지를 순회하며 사탕, 초콜릿, 담배 등 요긴한 것들을 주어 공포감을 주고 수탈하기만 하는 일본군으로부터 이반하게 만들었다.[2] 당시 소학교(초등학교) 교사월급이 '''20원'''이던 시절이다. 이 돈의 '''4분의 1을 내라는데''' 일반민중들의 반응이 어떨지는....[3] 영국이나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본인들의 식민 지배 과정에서 일어난 분쟁은 당시에도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때문에 대부분의 체포된 레지스탕스를 '''전범'''으로 취급했으며, '''테러범'''으로 취급한 레지스탕스는 거의 없었다.[4] 사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굳이 분리하려고 노력한 비스마르크가 이상한 인간 취급을 받았다. 물론 비스마르크는 나름대로 철저한 계산이 있었다.[5] 이 시기에 러일전쟁이 터졌다.[6] 실제로 독도의용수비대원이 식량조달 목적으로 강치를 사냥했다는 증언이 있었으며, 40년대 당시에 학술목적등으로 사냥하기도 하였다. 비록 일본의 상업적 남획만큼의 규모는 아니였으나 당시 멸종위기에 빠진 강치개체군에게는 이것도 큰 타격이였던 상태였다.[7] 소유/관리자가 일본 환경성이고, 묘원이 있는 공원 또한 국립 공원이다.[8] 전쟁 도중 죽은 민간인과 무명용사들의 유해가 묻혀있다.[9] 애초에 전쟁이라는 것에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정의의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쟁은 근본적으로 '''사람 죽이는 일'''이다.[10] 독일이 2차 대전을 개전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베르사유 조약의 경우는 연합국에서도 지나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혹했다.[11] GHQ가 반일 세뇌를 자행하고 있다고 헛소리를 하기도 한다.[12] 이 때도 민간인들의 피해가 어느 정도 있긴 했으나, 이건 당대 기술력의 한계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당시의 항공폭탄들은 정밀 유도 기능같은 건 없었으며, 정밀 유도 기능이란 개념이 만들어진 건 커티스 르메이의 전임자인 헤이우드 셰퍼드 핸셀의 폭격 이론을 더 발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13] 이때문에 핸셀은 고고도 정밀 폭격 전술을 쓸 수밖에 없었고, 이마저도 제트기류 탓에 죽을 쒔다.[14] 심지어 초반에는 개전에 반대하던 상,하원 의원들조차 FDR의 저 연설이 나온 이후, 압도적인 표차로 전쟁 참가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켜버렸다.[15] 여기서 도쿄 대공습에서 왜 민간인 피해가 더 심했는지에 대해 쓰면, 도쿄 대공습의 경우는 아예 한밤중에서 새벽 사이에 폭격을 했기 때문이다.[16] 카미카제 그자체가 강제가 아닌 자발적으로 한것으로 착각하는게 대다수다. 희생된 사람중에 강제로 징용당한 한국인 조종사도 있었다.[17] 이렇게 된 이유가 프랑스가 함락되면서 본토방위에 집중하느라 아시아 전력을 감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다시 돌아온 것도 나치 독일이 패망한 뒤였다.[18] 물론 일본은 현재 UN 질서로도 패전국이자 전범국이다. https://www.un.org/en/sections/un-charter/chapter-viii/index.html 심지어 지금도 '옛 추축국이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등의 불온한 움직임이 보일 경우 연합국이나 기타 국가가 선전포고 없이 바로 기습적으로 전쟁을 개시해도 무방하다.'는 조항이 남아있을 정도로 취급이 나쁘다. [19] 문화적으로 일뽕을 증가시켜서 자신들의 주장이 세계적으로도 정당하다고 강조하고 다니는 것과 대조적으로 현재 세계 체제에서는 일본을 매우 엿먹이고 있는 중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458632&cid=46625&categoryId=46625 [20] 사실 독일은 이스라엘과 유럽 국가들 한정으로는 돈 퍼주는 호구 이미지도 있다.[21] #, ## 심지어 독일은 법적으로도 이미 오래 전부터 나치와 관련된 것들(정당, 하켄크로이츠 등)을 금지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나치 관련해서 실수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22] 일본은 지금까지 한번도 '배상'이란 단어를 쓴적이 없다.[23] 배상이란 단어는 쓴적이 없다.[24] 막부 시대에도 천황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었다. 단, 쇼군의 힘이 너무 강해서 천황을 비롯한 황족이 전면에 나올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일반인들은 천황을 신경쓸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남북조 시대 이후 천황이 처음으로 정치에 공식적으로 입김을 넣기 시작한 메이지 유신 초기에는 천황이 행차한다는 공문이 내려가도 해당 지역민들이 관심 하나 주지 않았던 일도 있다고.[25] 간단히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만 봐도 알 수 있다. 군대도 해군과 육군의 기원부터 달랐을 뿐 아니라, 무기 체계도 완전히 달라서 사실상 '''일본과는 완전히 별개의 나라'''라는 별명을 붙였을 정도니. 거기다가 '''서로 총질까지 했다.'''[26] 정확한 명칭은 "쇼와 21년 칙령 제68호 - 연금법의 특례에 관한 건(昭和二十一年勅令第六十八号 - 恩給法の特例に関する件)" 으로 1946년 2월 1일에 공포되었다.[27] 이는 아베 신조의 안보법안 개헌에 따른 일본 시민들의 격한 반응에서도 잘 나타난다.[28] 이에 관해서는 대공위시대베스트팔렌 조약, 독일 통일 문서를 참조하자.[29] 전범 중에선 군인 이전엔 가게를 차리며 살거나 직장인들도 있었다.[30] 독일의 경우는 주 피해국이 열강에 속했던 영국, 프랑스, 소련을 비롯하여 중/동유럽과 미국의 서포터를 받던 유대계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전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크게 줄만한 나라들에 속했으나 일본의 경우는 주변국들이 막 독립한 가난한 신생국이었던 한국과 얼마 후 내전으로 혼란스러워지고 중공에 패퇴해 도망간 대만을 비롯해 아예 미국 등 서방진영과 적성관계인 중국 정도에 불과하므로 일본은 전범 처리도 미진하게 진행했고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청산할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는 미국이 일본의 청산작업을 미진하게 진행하는 것을 보고 알면서도 별 말을 안하니 과거로의 단절도 미흡했다.[31] 트럼프가 G7 가입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적극적인 환영 의사를 표한 것도 이런 점과 관련이 있다. 한국 자체적으로는 일본 견제에 한계가 있어 G7에 가입해서 영국, 프랑스와 공조하여 독일, 일본의 전쟁범죄를 묶어서 규탄하는 게 더 목소리가 커지기 때문이다.[32] 의외로 미국은 독일의 과거사 청산에 대해서도 전범처벌이 끝난 뒤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33] 엄밀히 말하자면 진짜 받아야 할 자들에게 가야 할 것을 국가가 가로챈거지만.[34] 8억달러 중 5억달러가 고리대라는건 안비밀(...)[35] 심지어 일본에 대한 한국의 반감이 극에 달해 반일이 일상이던 2010년대 내내 미국에서 한일관계 파탄의 책임소재는 한국 40% 일본 60%로 봤을 정도다. 일본이 더 중요한데다 대미 로비가 엄청났음에도 이렇게 봤다는 건 아무리 미국이라도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범죄를 실드를 쳐줄 수가 없었기 때문.[36] 한국을 보면 민주주의 제도는 1948년에 도입된 것이지만, 구성원 대다수가 확실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은 1987년 6월항쟁 이후라고 본다. 그럼에도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표현의 자유", "인권"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만큼 민주주의 가치가 사회 전체에 확고하게 자리잡는게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37] 도와(同和) 지구라고 한다.[38] 대표적 사례가 일본인 유튜버인 유이뿅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는 게 있었다. 거기에 일본에선 이런 거 안 알려주냐는 채팅글에 바로 '''안 알려준다고''' 말했다. 일본의 역사공부가 '''어떤지를''' 볼수 있는 부분.[39] 사실 Yet another X War Crimes Denial Thread라는 시리즈의 일환으로 미국, 소련, 독일, 이태리 등의 예시가 있다.[40] 가령 독일 전범 행위 부인하는 스레드 이미지에도 네오나치 사이트 링크한다는 것은 있지만, 일본판의 오른쪽 인물은 전부 모든 게 다 한국의 거짓말이다/네 다음 한국인이다라는 게 포인트.[41] 물론 대안우파하고 전혀 상관 없으면서도 포챤이나 디시 같은 인터넷 음지 특유의 독설, 신랄한 맛에 들어가는 사람도 많은지라, 다른 보드들은 /pol/보다는 정치적으로 훨씬 덜 편향된 편이며, 바로 그 인터넷 음지를 공중파 언론의 양지로 끌어내어버린 트럼프 당선 이후 오히려 다른 갤러들이 앞서서 "back to the containment board (느그 수용소로 다시 꺼져)"라 하면서 지나치게 대안우파스런 의견은 알아서 손절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42] 심지여 그 '''아돌프 히틀러도 유대인 에두아르드 블로흐와 에른스트 헤스를 보호하려 했다'''.[43] 나찌출신임에도 나찌의 진실을 알고 전향하여 반란군들한테 기밀정보를 모조리 내어주고 지휘까지 한다. 하지만 나찌 핵심세력중 하나였던 자기 어머니의 목은 차마 칠수가 없어서 BJ가 대신 쳐준다.[44] 이전에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전쟁때 온갖 고생을 한 인원들이 정권을 잡았다'''라는 현실때문에. 버블시기 정치인들은 전쟁이 못해먹을것 이란걸 직접 체감해서 아는 일선 '''병사'''들 이었기 때문이다.[45] 북한의 장난질로 언제든지 함대가 날아갈수 있는 대한민국, 마오쩌둥한테 먹힌 중국, 북한은 말할것도 없을것이며 동남아는 국력이 어중간해서 미국이 대만에 함대를 배치하는 형편이다. 만약 국공내전을 장개석이 이겼다면 세계 경제 2위는 일본이 아닌 중국이었다.[46] 당장 지금도 러시아가 중국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건 '''군사력''' 말고는 없다. it기기, 자동차, 경공업 등등 대부분의 방면에서 러시아가 밀리며, 사실상 러시아는 중국과 비교하면 '''무기 만드는 것 빼고 아무것도 못한다.''' 그 무기도 한끗차이라....[47] 오히려 이 점에서 베트남의 불제강점기의 경험과 조선인들의 일제에 대한 인식은 점점 관련 논문이나 학계의 관심도 높아지는, 탈식민지주의 학계에선 나름 핫한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구체적인 사료가 없을 시절에도 베트남 독립운동가들이 조선에 대해 지나가듯 언급하는 모습이 종종 있어서 뭔가 더 커넥션이 있었을거라는 학자들의 심증이 최근 갈수록 호치민이나 다른 인사들 파리 거주 시절 조선 독립 운동가 망명객들과 구체적으로 만나며 교류했다는 사료가 새로 발굴되며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48] 이 증거는 일본군의 유명한 흑역사인 임팔 작전 문서로 들어가서 임팔이 어디 붙어있는 도시인지 지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49] 특히 인도-파키스탄 문제의 경우 영국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 여파는 지금도 남아시아에 분쟁을 불러오고 있는 중이다.[50] 출처- 월간 키노[51] 사실 케로로 소대 구성원들 모두 적에게서 숙소 등의 보급을 어느 정도는 취하고 있긴 하지만(...), 타마마의 경우 인간 파트너인 니시자와 모모카가 워낙에 다이아수저인지라 태평양같은 집에 전용 훈련방과 하녀까지 마련하는 등 스케일도 그만큼 크다.[52] Fate/Grand Order에서는 그냥 군복이라고만 언급해 순화되었다.[53] 번역하자면 '치욕의 나날들'.[54] 퍼니셔 맥스와 퍼니셔, 더 보이즈의 작가로 유명한 가스 이니스다.[55] 중간중간에 일본군의 여러 전쟁 범죄들도 제법 리얼하게 묘사한다.[56] 거의 다 옛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