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비아니

 


[image]
'''너비아니 '''
1. 궁중식 불고기
3. 관련 문서

[clearfix]

1. 궁중식 불고기



쇠고기를 얇게 저미고 앞뒷면에 잔칼집을 낸 뒤 양념하여 얇게 구워낸 음식. 넓적한 모양이고 갈빗살이 아니라는 점에서 떡갈비와는 많이 다르다.
고대 만주 에서 활약한 우리 선조 (貊)족 고유 음식 맥적(貊炙)에서 기원했다고 추측한다. 궁중식 불고기였으나,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민간에 조리법이 공유되어 나가며 대중화되었고 돼지고기를 사용하거나 손질 과정을 줄여 만든, 섭산적(혹은 석적) 등의 번외 법방도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때 황실 수라간 소속 숙수들이 민간에 녹아들며 대중화되었다.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선 빈한한 인력거꾼들이 즐겨찾는 술집 안주거리 중 하나로 등장한다. 작품 배경인 단기 4250년대[1]조선총독부가 조선 씨소 반출을 목적으로 식용 육우 사육을 강제로 늘리던 시기였는데, 이에 따라 쇠고기 유통량이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곳곳에서 쇠고기 요리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함께 유행한 요리로는 이 작품을 보았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설렁탕'''이 있다.[2]
간혹 너비아니를 영어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순우리말이다. 너비아니 이름에 대해선 불에 구운 고기를 이르는 서울 사투리꼴이 특정 요리 명칭으로 퍼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학술지 '서울말 연구'에는 너비아니 혹은 '너비하니'가 서울 사투리 일례로 기록되고 있다. 다만 너비아니가 나오는 최초 문헌 기록인 시의전서에 '상주 지방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 많아 문제' 라 나오는 것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적어도 시의전서가 편찬된 조선 후기 무렵 '너비아니' 라는 명칭이 전국, 혹은 적어도 남부지방까지 퍼졌음을 보여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궁중에서 너비아니로 불렸는지는 좀 의문이다. '''왜냐하면 보통 조선시대 궁중요리 명칭은 거의 몽골어에서 기원한 말이나 문자가 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역시 궁중에서 쓰였다는 떡볶이에 대응하는 한자어로 병자(餠炙)라는 단어도 존재한다.
덧붙이면 한강 이북이나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는 '산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산적이라는 말은 수도권에서 고기 꼬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차례, 제사에 올리는 산적거리 고기가 바로 적당한 두께에 칼집이 들어간 것이다.[3] 그것을 양념하면 이 모양이 된다. 산적이든 일반 양념 불고기든 간에 제대로 맛을 내려면 프라이팬이나 불판을 써서는 안 되고 석쇠에 올려 구워야 하지만, 요즘은 편의상 양번철에 굽거나 조린다. 꼬치에 꿰는 산적도 산적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구별할 때는 고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 냉동식품


위의 궁중식 불고기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냉동식품의 한 가지. 어린이들은 좋아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꺼리게 된다. 그래도 군대 PX에서는 나름대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사실 모든 냉동식품들이 다 그렇지만...

3. 관련 문서



[1] 1917년 ~ 1926년[2]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 구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3] 산적살은 보통 우둔이나 설도살 같은, 돼지로 치면 뒷다리에 해당하는 살이지만 아무 살이든 간에 정육점에서 주문하며 '산적용으로 눌러달라.'라고 하면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