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레넌
1. 개요
영국(북아일랜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9년부터 셀틱 FC 감독을 맡고 있다.
현역 시절에는 셀틱의 레전드로, 엄청난 투지로 유명했다. 이 덕분에 주장직도 여러번 한 것은 덤. 셀틱 감독 시절 기성용, 차두리를 지도했었고 볼턴에서는 이청용을 지도해 한국 선수들과 관계가 많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어린 시절 게일릭 풋볼을 즐겼고 지역의 루간 셀틱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글레나본에 입단해 리그 데뷔골을 터트렸고 1987년 맨체스터 시티와의 트라이얼에 합격,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했다. 1987-88 시즌이 끝나갈 무렵, 레넌은 버밍엄 시티를 상대로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데뷔전을 가졌다. 그러나 이후 레넌은 팀에서 뛰지 못했고 방출되었다.
그는 크루 알렉산드라와 계약을 맺었고, 레딩을 상대로 데뷔했다. 1991-92을 시즌 허리 부상으로 통째로 날렸음에도 레넌은 팀의 핵심 선수가 되었고 크루에서의 활약을 밑바탕 삼아 국가대표팀에도 데뷔했다. 크루에서의 5년 반 동안 레넌은 187경기에 출장했고 18골을 득점했다.
1996년 2월 레넌은 동향 출신의 마틴 오닐의 눈에 띄어 2부리그의 레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그해, 레스터 시티는 프리미어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크리스탈 팰리스와 경기를 치렀다. 레넌은 이 경기에 출장했고, 팀은 2-1로 승리,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다. 몇년 전만해도 3부리그에서 뛰던 레넌은 프리미어리거가 된 것이다. 1996-97 시즌, 레넌은 첫번째 우승컵으로 리그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레넌은 이후 레스터 소속으로 2차례의 리그컵 결승전에 더 나섰고 1차례 우승을 추가했다. 21세기의 첫 해, 마틴 오닐은 스코틀랜드의 셀틱 FC로 이직했고, 레넌은 그를 따라 셀틱으로 이적했다. 셀틱은 90년대 연거푸 리그 우승에 실패하며 레인저스에게 밀린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두 북아일랜드인의 합류로 리그 우승에 성공함과 동시에 스코틀랜드 컵과 리그 컵을 들어올리는 자국리그 트레블을 달성했다. 레넌은 셀틱의 핵심 선수로 맹활약했고 2회의 리그 우승과 컵 대회 우승, 그리고 2003년 UEFA 컵 준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2005년 고든 스트라칸이 셀틱의 신임 감독이 되자 레넌은 주장에 임명되었다. 2006년 1월, 레스터 시티의 감독이었던 크레이그 르바인이 경질되자 레넌은 플레잉-코치의 형식으로 레스터의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는 주장으로 4번째 리그 우승을 맛보았다. 2006년 여름,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선수겸 감독 제의를 받았으나 레넌은 셀틱과의 계약을 1년 연장했다. 여름 이적 시장 막판, 로이 킨이 그를 선덜랜드 AFC에 영입하려 했으나 셀틱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레넌은 리그와 컵 더블에 기여했다.
시즌 종료 후 셀틱을 떠날 것임을 발표한 레넌은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했다. 초반 그는 주장으로 임명되며 팀에 순조롭게 적응했으나 가족 문제로 훈련에 한 번 불참한 이후 페이스를 잃어버렸고 팀 내 입지마저 좁아졌다. 반 시즌만에 레넌은 위컴 원더러스로 이적했고, 셀틱에서 코치직을 제의 받자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크루 시절인 1994년 6월 멕시코를 상대로 대표팀에 데뷔했다. 2번째 출장은 거의 1년을 기다려 칠레를 상대로 가졌으며 유로 1996 예선에 출장했다. 아일랜드 연합팀[1] 으로 출전하고 싶다고 발언해 2002년 키프러스와의 친선 경기 전 살해 위협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3. 감독 경력
3.1. 셀틱 FC 1기
하이버니안 FC의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설도 있었으나 하이버니안은 핀란드 출신의 파탈라이넨을 선임했고, 레넌은 2008년 셀틱의 코치로 선임되어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9년 토니 모브레이가 셀틱의 감독으로 선임되자 레넌은 셀틱 리저브 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0년 3월 모브레이가 경질당하자 레넌은 09-10 시즌 셀틱 감독 대행직을 수행했는데, 그가 부임하자마자 셀틱은 레인저스전을 포함한 잔여 리그 경기에서 전승을 거두었다.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레넌은 10-11 시즌을 앞두고 셀틱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고 개혁을 단행했다.
에이든 맥기디를 리그 최고 이적료를 받으며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로 이적시켰고 주장인 맥마누스, 주전 골키퍼 보루치를 위시한 13명의 선수들이 셀틱의 유니폼을 벗게되었다. 그러면서도 전세계의 숨은 재능들을 싼 가격에 영입했다. 이때 영입된 선수들이 에밀리오 이사기레, 조 레들리, 찰리 멀그루, 게리 후퍼, 프레이저 포스터 등 2010년대 셀틱의 성공을 이끈 선수들이다.
셀틱에서의 첫 공식전, 레넌은 SC 브라가와의 챔피언스리그 예선전에서 0-3으로 탈탈 털렸다.(...) 그러면서도 리그에서는 8연승을 달렸고 11월에는 애버딘 FC를 상대로 기록적인 9-0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에버딘전 이후 하츠전에서는 조 레들리가 비신사적인 파울로 퇴장당했는데, 레넌은 인터뷰에서 주심이었던 크레이그 톰슨이 터무니 없는 판정을 내렸다면 비난했다가 6경기 퇴장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이후 레넌은 4경기 징계를 또 받았는데, 올드펌 더비에서 레인저스의 코치로 있었던 알리 맥코이스트와의 언쟁 때문이었다.
레넌은 팀을 리그컵 결승전에 올려놓았으나 레인저스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1-2로 석패했다. 이후 마더웰을 4-0으로 잡으며 리그를 끝마쳤으나 레인저스에게 승점 1점이 뒤진 준우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1주일 뒤 마더웰을 3-0으로 완파하며 스코틀랜드 컵에서 우승, 감독으로서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1-12 시즌에는 부진한 초반기를 보냈으나 결국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겼고 레넌은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었다. 시즌 종료 후 라이벌 레인저스 FC가 파산함에 따라 4부리그로 강등된 것은 덤. 12-13 시즌에는 리그 1강으로 당연히 우승을 차지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선전이 돋보였는데, 조별리그에서 빅터 완야마와 토니 와트의 연속골, 그리고 프레이저 포스터의 엄청난 선방으로 홈에서 FC 바르셀로나를 잡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3승 1무 2패로 16강에 진출했고 상대는 유벤투스 FC가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이변은 없었고 유벤투스에게 1,2차전 합계 0-5로 패배했다. 컵 대회에서는 하이버니안을 3-0으로 꺾으며 커리어에 우승컵을 추가했다.
13-14 시즌에도 당연히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에서 아약스, 바르셀로나, 밀란이라는 강적들을 만나 조 최하위로 탈락, 2개의 컵 대회에서도 부진했다. 시즌이 끝나고 셀틱의 감독에서 물러날 것임을 발표했다.
3.2. 볼턴 원더러스
기성용, 차두리와의 인연 덕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직 물망에 올랐으나 2014년 10월 또다른 한국인 선수인 이청용이 있는 볼턴 원더러스와 4년 계약을 맺었다. 첫 경기인 버밍엄 시티 FC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다. 레넌은 볼턴을 잘 이끌었고 처음 3개월간 10계단을 끌어올려 14위를 마크했다. 그러나 이후 11경기에서 1승만을 거두는 등 부진했고 베난, 단스와 불화도 있었다. 결국 시즌을 18위로 마무리했다.
15-16 시즌 볼턴의 재정 상태는 점점 악회되었고 새해가 되기 전 겨우 1승을 거두는 등 부진한 상태에 빠져있다.
결국 2016년 3월 16일자로 상호 합의 하에 계약해지를 하였다.
3.3. 하이버니안 FC
볼턴과의 계약이 해지 된 이후 2016-17 시즌을 앞두고 스코틀랜드 2부리그의 하이버니언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첫 시즌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하이버니안을 다시 1부 리그로 이끌었다.
3.4. 셀틱 FC 2기
2019년 2월 27일, 브렌던 로저스 감독이 시즌 도중 레스터 시티 감독직으로 옮기면서 공석이 되자 친정팀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일단 잔여 시즌 동안 감독직을 수행한다.
이후 도매스틱 트레블 트레블(3년 연속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한뒤, 셀틱 FC는 정식 감독직을 제안했다.
2019-20 시즌에도 팀을 잘 이끌고 코로나로 인한 리그 조기종료라는 행운도 있어서 다시 한번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하였지만, 2020-21시즌은 레인저스에게 압도적으로 밀린 2위를 하고 있다. 경기력자체가 문제가 많으며 특히 수비부분은 로저스와 비교해서 떨어진다.
결국 2월 24일 감독직을 사임했다.
4. 여담
출신지는 영국(북아일랜드)이지만 아일랜드 전통 스포츠인 게일릭 풋볼을 즐겼을 정도로 집안과 정체성은 뿌리깊은 아일랜드 인이다. 아일랜드계 클럽인 셀틱에서 선수 생활을 한 이유도 그런 배경에서 비롯 된 것. 때문에 친영파 조직에게 살해 위협을 많이 받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2002년 국가대표팀을 은퇴하게 만든 협박을 비롯해, 2008년 8월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은 사건, 맥코이스트와의 설전이 중계되면서 소포 폭탄을 받은 사건 등이 있다.관련 기사
고향팀인 루간 셀틱의 열렬한 서포터이다.
5. 경력
5.1. 선수 시절
- 레스터 시티 FC (1996/97 - 1999/00)
- 풋볼 리그 컵 (2) : 1996/97, 1999/00
- 셀틱 FC (2000/01 - 2006/07)
-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5) : 2000/01, 2001/02, 2003/04, 2005/06, 2006/07
- 스코티시 컵 (4) : 2000/01, 2003/04, 2004/05, 2006/07
- 스코티시 리그 컵 (2) : 2000/01, 2005/06
- UEFA 컵 준우승 (1) : 2002/03
5.2. 감독 시절
- 셀틱 FC (2010/11 - 2013/14)
-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3) : 2011/12, 2012/13, 2013/14
- 스코티시 컵 (2) : 2010/11, 2012/13
- 하이버니안 FC
- 스코티시 챔피언십[2] (1): 2016/17
1위 레인저스와 엄청난 차이로 2위를 하고 있으며 수비가 전 시즌보다 붕괴된 모습을 보여준다.
셀틱FC는 스코틀랜드의 바이에른 뮌헨 그 이상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독보적으로 압도적인 팀이었고 스쿼드도 타 팀에 비해 압도적이다. 웬만한 감독이와서 헛짓만 하지 않으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었으나 그 어려운걸 닐 레넌이 부임한 뒤로 레인저스에게 일방적으로 밀릴뿐더러 일반적인 팀이되었다.
2019시즌 로저스가 중도하차한 다음 급속도로 팀이 망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