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컴 원더러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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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버킹엄셔 주의 하이위컴를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 클럽이다. 현재는 EFL 챔피언십, 즉 2부 리그에 속해 있다. 아데바요 아킨펜와의 현 소속팀이기도 하다.
2. 역사
위컴 원더러스의 초창기 역사는 상당 부분 소실되었다. 다만 창단 당시의 짤막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팀명을 정할 때 노스타운 원더러스(North Town Wanderers)로 할지 위컴 원더러스(Wycombe Wanderers)로 할지에 대한 논쟁이 펼쳐졌고 결국 후자로 정해졌다는 이야기. 흥미로운 것은, 1887년, 그러니까 위컴이 창단된 그 해의 12월에 해체된 아마추어 축구팀 '원더러스 FC'가 있었다는 것. 이 원더러스 FC는 FA컵 초대 우승팀으로서, FA컵을 다섯 번이나 들어올렸으나 주축 선수들의 이탈을 막지 못하고 1880년 이후 제대로 FA컵에 참가하지 못했었는데, 그 원더러스가 1877년 12월 15일 하이위컴을 방문해 9대 0으로 하이위컴 축구팀을 떡실신시켰던 적이 있었다. 그 사건(?)에서 이름을 따왔을지도...
1895년 Loakes Park로 홈구장을 옮긴 후 1896년부터 서던 리그(7, 8부 리그) 2부 팀으로 참가하였으나, 이게 웬걸. '''잉글랜드 축구 협회'''가 창설되고 경쟁팀들이 죄다 세미프로 축구팀으로 전환하는 통에 위컴은 1904년에 이미 서던 리그에 참가하는 유일한 아마추어 축구팀이 되어버렸다(...). 이에 비아마추어 팀들에 비해 대내외적으로 열악한 상황이 되어, 1908년에 이르러서는 승점자판기가 되어버린다.
결국, 위컴은 그 해 2부 꼴찌를 기록하고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레이트 웨스트 서버반 리그에 참가, 호성적을 기록한다. 후에는 스파르탄 리그[2] (9~11부)에도 참가. 이후 1921년 3월 이스미언 리그(7, 8부)로 승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7년 프랭크 애덤스가 회장이 되었고, 이는 위컴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52년부터 시드 캔이 이끄는 위컴은 1955-56 시즌과 1956-57 시즌 이스미언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동시에 FA 아마추어 컵 결승까지 올랐으나 웸블리에서 펼쳐진 비숍 오클랜드와의 결승에서 3대 1로 패배하고 만다.
1968년 브라이언 리가 컨벤셔널 매니저가 된 후 위컴은 한층 더 진보해서, 1974년 아마추어 팀에서 세미프로 팀이 된 직후인 1974-75 시즌 FA컵 1라운드 첼트넘 타운 FC 전에서 3:1로 이겨서 2라운드로 진출하더니, '''AFC 본머스'''와 만나서 1차전 0:0, 2차전 2:1로 승리하고 '''3라운드까지 진출했다!''' 3라운드에서는 '''미들즈브러 FC'''를 상대로 분전했지만 1차전 0:0, 2차전 0:1로 패배하고 만다.
마침내 1985년 골라 리그(5, 6부 리그, 現 내셔널리그)[3] 에 진출하였으나, 1986년 강등당했다가 1987년 승격하여 다시 컨퍼런스(前 골라 리그, 現 내셔널리그)로 복귀했다.
1990년, 홈구장을 지금의 애덤스 파크로 옮긴다. 1992-93 시즌에 드디어 컨퍼런스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Div 3(現 EFL 리그 2)로 승격했는데, 바로 다음 시즌 Div 2(現 EFL 리그 1)에 승격했다!
그러나 1993-94 시즌 4위, 1994-95 시즌 6위를 한 이후에는 3부 리그에서도 10위권에도 못 오르고 설설 기고 있다가, '''2000-01 시즌 FA컵에서 밀월 FC,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윔블던 FC, 레스터 시티 FC를 연달아 격파하고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충격과 공포의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준결승전에서 '''리버풀 FC'''를 만나 2:1로 석패했다. 이와는 별개로 리그에서는 부진을 못 벗어나고 2003년 EFL 리그 2(4부)로 강등당했다. 폴 램버트 감독이 이끌었던 2006-07 시즌에는 칼링컵에서 당시 EPL 팀인 풀럼과 찰튼을 꺾고 준결승까지 올라가는 돌풍을 일으켰고, 전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첼시와의 준결승 1차전에서 1:1로 비기기도 했다. 아쉽게 2차전에서 4:0 대패를 당하며 결승에는 올라가지 못했다. 이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시즌동안 승격과 강등을 반복했다.
2014년부터 가레스 에인스워스 감독이 부임하며 14-15 시즌 EFL 리그 2에서 4위를 차지하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던 2016년, '''FA컵 4라운드(32강전)에서 1.5군[4] 을 출전시킨 토트넘 홋스퍼 FC를 상대로 패배 직전까지 몰아가는 충격적인 이변을 연출한다.''' 위컴은 폴 헤이즈가 전반전에만 2골을 넣으며 앞서갔고, 후반에 교체 카드 3장을 쏟아부은 토트넘이 손흥민의 골과 빈센트 얀선의 페널티킥 골로 균형을 맞추긴 했지만 위컴이 다시 골을 넣었다. 이렇게 3:2로 앞서가던 중 토트넘의 수비수 키어런 트리피어가 부상으로 이탈하며 머릿수로도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그러나 '''89분''' 델레 알리의 동점골과 '''90+7분(!!!)[5] ''' 손흥민의 라스트 미닛 골을 내주면서 토트넘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때 여담으로 골키퍼 코치였던 베리 리처드슨은 감독인 가레스 에인스워스보다 4살 위의 형님이셨다.
다 잡은 승리를 놓친 위컴 입장에서는 통한의 패배였던 셈이다.[6] 그래도 이 충격적인 경기를 SBS Sports가 중계해줬으니 국내에서 위컴의 인지도가 조금은 올랐을 수도?[7]
결국 2017-18 시즌부터 EFL 리그 1(3부 리그)로 승격, 7년만에 3부 리그로 복귀했다.
3. 최근 시즌
3.1. 2019-20 시즌
19-20시즌에는 리그 1위를 기록하며 좋은기세를 펼쳤지만 원정에서의 성적이 홈에서의 성적에 비해 매우 나빠 승점을 많이 잃어 3월30일 현재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리그가 조기 종료되어 종료 당시의 성적인 3위로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이 성적은 여러 모로 운이 따른 결과였는데 3위팀인 위컴의 성적이 승점 59점으로 4~6위 팀들의 승점 60점보다 승점이 적었다! 게다가 7~8위 팀들은 승점 59점을 기록하고 있으면서 득실차가 각각 11골(8위 선더랜드)과 23골(7위 피터보로)이나 앞섰다. 하지만 위컴이 이들 팀들보다 한 경기를 덜 하여 경기당 승점이 앞섰기 때문에 3위로 랭크되었던 것이다. 한 경기를 더 해 그 경기에서 무승부만 기록했어도 위컴은 플레이오프 진출도 불가능했다.
플레이오프 4강에서 플리트우드 타운을 총합 6-3으로 손쉽게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해 7월 6일 옥스포드 유나이티드 FC와 결승전을 가졌고, 2-1로 승리하며 챔피언십 진출이 확정되었다. 이는 구단의 133년 역사상 처음으로 일궈낸 2부 리그 진출이다.
3.2. 2020-21 시즌
9라운드 기준 승점 4점으로 최하위권에서 고전하고 있다.
계속되는 연패행진으로 고전하고 있다가 셰필드 웬즈데이 상대로 시즌 첫승을 거두고 다음경기인 버밍엄 원정에서 2연승을 거둔상태.
17라운드 현재 승점 11점으로 23위에 있다.
23라운드 현재 승점 15점으로 최하위에 있는데 FA컵 3라운드에서 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4-1로 잡고 4라운드(32강전)에 진출했는데 상대는 4년만에 32강전에서 다시 만난 토트넘. 선제골을 넣긴 했으나 결과적으론 4대1로 패했다.
[1] EFL 리그 1 19-20 플레이오프 우승.[2] 현재는 스파르탄 리그와 사우스 미들랜즈 리그가 통합되어 스파르탄 사우스 미들랜즈 리그가 되었다.[3] 위컴이 골라 리그에 선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GM Vauxhall Conference(약칭 컨퍼런스)로 개칭, 이후 컨퍼런스 프리미어로 개편한 후, 내셔널리그로 개칭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4] 선발 명단에 포함된 11인 중 에릭 다이어, 케빈 비머, 당시 리그에서 주춤했던 손흥민 정도를 제외하고는 로테이션 멤버들이었고, 벤 데이비스나 무사 시소코는 훗날에야 주전급으로 올라서게 된다.[5] 주어진 추가시간은 6분이었으나 토트넘이 마지막 기회를 만들어냈을 때는 이미 6분을 넘어가고 있었다.[6] 얀선의 동점골은 페널티킥이었고, 손흥민의 두 골 모두 수비수 굴절이었다.[7] 여담으로, 위컴을 이긴 토트넘은 16강전에서 케인의 해트트릭으로 풀럼 FC를 침몰시켰고, 8강전에서는 손흥민의 해트트릭으로 밀월 FC를 골로 보내버렸다. 만약 32강전에서 위컴이 토트넘을 이겼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