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럼 W. 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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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럼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1] , 1851년 2월 1일 ~ 1908년 3월 25일)는 미국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이다.
일본에서 외무성 고문으로 활동하던 중에 대한제국으로 파견되어 '수지분(須知芬)'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대한제국 외교 고문을 지냈고,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친일파로서 미국 외교가에서 일본이 을사 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통감 정치를 지지하고 일본의 한국 지배를 찬양하는 망언을 해 한인들의 공분을 샀다. 1908년 샌프란시스코 기차역에서 재미(在美) 한국인 교포였던 전명운, 장인환의 저격으로 피살되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침략 정책을 지지한 반한(反韓) 성향의 친일파 미국인으로 두고두고 비판받는 인물. 일본 제국에서는 사후 훈장을 추서하는 등 자신들의 한반도 병합을 편들어준 그를 후하게 대접했다.
1851년 미국 오하이오 주(州)에서 태어났으며 19세 때 오버린 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 컬럼비아 대학 법리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 미국 국무부에 외교관으로 입사하여 1882년 일본으로 건너가 주일(駐日) 미국 공사관에서 파견 근무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일본과 인연을 맺는다. 후에 미국에 있는 일본 외무성의 고문으로 임명되어 이 때부터 일제의 외교책을 위임받게 된다.
이후 스티븐스는 일본의 외교가 이노우에 가오루와 동행하여 대한제국으로 건너가서, 한국 이름 '수지분(須知芬)' 이라는 이름하에 대한 제국에서 일본을 대변하는 역할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벌인 외교 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스티븐스는 미국의 외교가에서 일본의 한국 침탈과 을사조약 체결을 강력히 지지하는 의사를 밝혔으며 1908년에는 기자들과 한 인터뷰에서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한 것은 당연한 결과로 일본은 헐벗고 굶주려 사는 대한제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일본이야말로 고마운 존재라는 망언을 했다.
이에 격노한 재미(在美) 한국인들이 스티븐스 앞에 나타나 망발을 취소하라고 요청했지만 스티븐스는 한국인들 앞에서도 일본이 대한제국과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도록 돕겠다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왜 일본한테 화살을 돌리느냐는 주장을 끝까지 하면서 한국인들에게 비난과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일부 도서나 영화 등에서는 스티븐스의 저격 과정이 경우에 따라 다르게 그려졌거나 해석되기도 하였는데 일각에서는 전명운이 스티븐스를 향해 쇠망치로 때렸고 장인환이 후방에서 저격을 했다는 일화를 내놨으나 다른 쪽에서는 스티븐스를 향해 쌍방으로 동시 저격하였다는 일화 등을 내놓으면서 해석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다른 쪽에서는 반대로 장인환이 쇠망치로 때리고 전명운이 저격을 했다는 일설도 있다. 또 일부에서는 둘 중 1명이 스티븐스를 저격해야 할 총탄이 다른 사람에게 날아가 부상을 입혔다는 설도 있었다. 1990년대 한국사 관련 책자에선 전명운이 총을 준비했지만 워낙에 낡은 총이라 작동이 되지 않았고 만일을 위해 준비한 쇠망치를 쓰게 된 것이라고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관련 설명이 엇갈리는 데에는 사건 자체가 급박하게 진행되어서 목격자들의 증언들이 제각각인 것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세원의 영화 도마 안중근에서도 스티븐스의 저격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특이하게도 기차역이 아닌 다리 위에서 장인환과 전명운이 스티븐스를 쌍방으로 저격하고 돌아갔던 장면이 나오기도 하여서 기차역에서 스티븐스를 저격했다는 지금까지의 고증을 뒤집어 놓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참고로 이 때의 스티븐스는 기차역이 아닌 다리 위를 건너다가 다리 위에서 자동차가 지나가고 난 후에 전명운, 장인환이 쌍방으로 저격한 총탄에 맞아 즉사하였다. 하지만 영화가 워낙 망작(...)인 관계로 크게 반향을 일으키진 않았다. 애초에 이 영화는 감독이 서세원에, 안중근이 오우삼 식 액션을 하는 영화라서 그냥 그림 되는 것만 고려한 판타지라고 생각하는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맹꽁이 서당 극후반에서도 구한말 역사를 다룰 때 언급된다. 이를 왜곡한 어느 만화에선 그가 친일 발언을 하고 길을 가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가던 흑인 꼬마 엑스트라가 먹고있던 아이스크림(...)으로 그를 찔러서 살해하는(...) 장면으로 왜곡되기도 했다.
1. 소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1] , 1851년 2월 1일 ~ 1908년 3월 25일)는 미국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이다.
일본에서 외무성 고문으로 활동하던 중에 대한제국으로 파견되어 '수지분(須知芬)'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대한제국 외교 고문을 지냈고,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친일파로서 미국 외교가에서 일본이 을사 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통감 정치를 지지하고 일본의 한국 지배를 찬양하는 망언을 해 한인들의 공분을 샀다. 1908년 샌프란시스코 기차역에서 재미(在美) 한국인 교포였던 전명운, 장인환의 저격으로 피살되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침략 정책을 지지한 반한(反韓) 성향의 친일파 미국인으로 두고두고 비판받는 인물. 일본 제국에서는 사후 훈장을 추서하는 등 자신들의 한반도 병합을 편들어준 그를 후하게 대접했다.
2. 생애
1851년 미국 오하이오 주(州)에서 태어났으며 19세 때 오버린 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 컬럼비아 대학 법리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 후 미국 국무부에 외교관으로 입사하여 1882년 일본으로 건너가 주일(駐日) 미국 공사관에서 파견 근무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일본과 인연을 맺는다. 후에 미국에 있는 일본 외무성의 고문으로 임명되어 이 때부터 일제의 외교책을 위임받게 된다.
2.1. 제1차 한일협약과 대한제국 외교 고문
이후 스티븐스는 일본의 외교가 이노우에 가오루와 동행하여 대한제국으로 건너가서, 한국 이름 '수지분(須知芬)' 이라는 이름하에 대한 제국에서 일본을 대변하는 역할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1904년 제1차 한일협약으로 일본은 대한 제국에 1명의 서양인 외교 고문과 1명의 일본인 재정 고문을 둘 것을 강제하였다. 당연히 서양인 외교 고문은 스티븐스를 의미하는 것이었고[2] , 고종으로부터 대한제국 외부 고문관 자리를 얻어낸다. 이 당시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이듬해 일본이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 스티븐스는 을사조약 체결과 한일병합의 진로를 트게 되는 소통자 역할을 하게 된다.2. 대한 정부는 '''대일본 정부가 추천하는 외국인''' 한명을 외무 고문으로 하여 외부에 용빙하고, '''외교에 관한 요무는 일체 그 의견을 물어 실시'''할 것.
-제1차 한일협약 중에서.
2.2. 미국인 친일파
일본은 조선과 조선 사람들을 잘 먹고 잘 살수있도록 유도하고 노력하였던 고마운 나라이다. 그러므로 조선인들은 이러한 일본에게 감사를 표해야할 것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이토 히로부미의 설득에 따라 미국 외교가와 정가(政家)에서 일본에 대한 지지 발언과 찬양을 하며 바야흐로 친일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조선은 원래부터 못 사는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도움없이는 살아가기가 힘들다. 모든 한국인들은 일본과의 조약 체결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벌인 외교 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스티븐스는 미국의 외교가에서 일본의 한국 침탈과 을사조약 체결을 강력히 지지하는 의사를 밝혔으며 1908년에는 기자들과 한 인터뷰에서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한 것은 당연한 결과로 일본은 헐벗고 굶주려 사는 대한제국을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일본이야말로 고마운 존재라는 망언을 했다.
이에 격노한 재미(在美) 한국인들이 스티븐스 앞에 나타나 망발을 취소하라고 요청했지만 스티븐스는 한국인들 앞에서도 일본이 대한제국과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도록 돕겠다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왜 일본한테 화살을 돌리느냐는 주장을 끝까지 하면서 한국인들에게 비난과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2.3. 처참한 말로
3. 저격 과정의 이점들
일부 도서나 영화 등에서는 스티븐스의 저격 과정이 경우에 따라 다르게 그려졌거나 해석되기도 하였는데 일각에서는 전명운이 스티븐스를 향해 쇠망치로 때렸고 장인환이 후방에서 저격을 했다는 일화를 내놨으나 다른 쪽에서는 스티븐스를 향해 쌍방으로 동시 저격하였다는 일화 등을 내놓으면서 해석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다른 쪽에서는 반대로 장인환이 쇠망치로 때리고 전명운이 저격을 했다는 일설도 있다. 또 일부에서는 둘 중 1명이 스티븐스를 저격해야 할 총탄이 다른 사람에게 날아가 부상을 입혔다는 설도 있었다. 1990년대 한국사 관련 책자에선 전명운이 총을 준비했지만 워낙에 낡은 총이라 작동이 되지 않았고 만일을 위해 준비한 쇠망치를 쓰게 된 것이라고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관련 설명이 엇갈리는 데에는 사건 자체가 급박하게 진행되어서 목격자들의 증언들이 제각각인 것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세원의 영화 도마 안중근에서도 스티븐스의 저격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특이하게도 기차역이 아닌 다리 위에서 장인환과 전명운이 스티븐스를 쌍방으로 저격하고 돌아갔던 장면이 나오기도 하여서 기차역에서 스티븐스를 저격했다는 지금까지의 고증을 뒤집어 놓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참고로 이 때의 스티븐스는 기차역이 아닌 다리 위를 건너다가 다리 위에서 자동차가 지나가고 난 후에 전명운, 장인환이 쌍방으로 저격한 총탄에 맞아 즉사하였다. 하지만 영화가 워낙 망작(...)인 관계로 크게 반향을 일으키진 않았다. 애초에 이 영화는 감독이 서세원에, 안중근이 오우삼 식 액션을 하는 영화라서 그냥 그림 되는 것만 고려한 판타지라고 생각하는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맹꽁이 서당 극후반에서도 구한말 역사를 다룰 때 언급된다. 이를 왜곡한 어느 만화에선 그가 친일 발언을 하고 길을 가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가던 흑인 꼬마 엑스트라가 먹고있던 아이스크림(...)으로 그를 찔러서 살해하는(...) 장면으로 왜곡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