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역사
1. 개요
동해시의 역사는 1980년 이전에는 강릉과 삼척의 역사였다. 그리고 본 문서는 현재 동해시 지역의 역사를 설명한다.
2. 구석기 시대
구미동과 발한동에서 유적이 발견되었다.
3. 신석기 시대
4.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지석묘, 유물산포지 등이 있다. 지석묘는 송정동·부곡동·삼화동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무문토기인들의 무덤이다. 동해시 북부의 마상천과 남부의 전천 유역에 분포한다.
5. 삼한
실직국 소속이었다.
6. 삼국 시대
102년, 실직국의 항복으로 신라에 병합되었다.
468년, 고구려에 점령되었다.
505년, 이사부가 수복해 실직주를 설치했다.
642년, 삼화사가 지어졌다.
이 지역은 고구려의 남하정책과 신라의 북진정책이 충돌했던 곳이며 선돌은 이 지역을 두고 싸웠던 고구려와 신라의 정계비이다.[1]
7. 남북국 시대
통일신라의 명주에 속했으며 삼화사의 철조노사나불좌상이 이때 세워졌다.
685년, 하서주에 편입되었다.
757년, 삼척군으로 개칭했다. [2][3]
864년, 삼화사가 삼공암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8. 고려시대
삭방도에 속하다가 이후 동계에 속했다. 어달산봉수대가 이때 지어졌다.
918년, 관음암이 창건되었다.
995년, 척주에 속했다.
1361년, 해암정이 지어졌다.
1369년, 삼화사가 크게 확장되었다.
9. 조선시대
1393년, 삼화사가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출처
1457년, 삼척도호부에 속했다.
임진왜란 당시 두타산성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 당시 수많은 전사자의 유혈과 화살들이 강을 가득 채워 흘렀다고 하여 '화살 전(箭)' 자를 써, 전천강이라고 부른다.[4]
1705년, 용산서원이 세워졌다.
1796년, 북평오일장이 처음 열렸다.[5]
1907년, 왜적에 의해 삼화사가 소실되었다.
삼화동의 보호수가 조선시대에 생겼다.
괴란동의 보호수도 조선시대에 생겼다.
10. 일제강점기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일본 제국에 강제병합 되었다.
1913년 5월 4일, 북평제일교회가 설치되었다. 출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상·도하면과 견박면을 합하여 삼척읍 북쪽 3개 면이라는 뜻에서 북삼면(北三面)이라고 했다.
1918년 5월 10일, 북평초등학교가 개교했다.
1919년 4월 17일, 송정초등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했다.
1937년, DB메탈 사옥이 지어졌다. 출처
1940년대부터 구 정수시설이 사용되었다. 출처
1940년, 묵호항역이 지어졌다. [6]
1940년 8월 1일, 동해역 영동선이 개통되었다.
1941년, 묵호항이 개항했다.
1941년 7월 22일, 망상초등학교가 개교했다.
1942년, 부령 제104호로 강릉군 망상면이 묵호읍으로 승격했다.
1944년 06월 25일, 삼화초등학교 삼흥분교 개교
1945년, 부령 제149호로 삼척군 북삼면이 북평읍으로 승격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에서 독립하였다.
11. 미군정
1945년 9월 8일, 미군정이 되었다.
1946년 2월 7일, 북삼초등학교가 개교했다.
1946년 12월 10일, 북평고등학교가 개교했다.
1947년 8월, 묵호항이 개항했다.
1947년 9월 1일, 북평고등학교 초대 입학식 진행.
1948년 6월, 묵호성당이 본당으로 승격했다. 참고 출처
12. 대한민국
동해시/역사/대한민국 참조.
[1] 선돌길이라는 지명이 천곡동에 남아있다. [2] 부곡동의 북평읍은 삼척군의 직할지였다.[3] 옛 묵호읍 지역은 옥계면과 우계현에 속했다.[4] 북삼동, 북평동, 송정동, 삼화동 소재[5] 출처https://m.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16315[6] 출처https://m.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16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