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역사
1. 삼한 및 삼국시대
원삼국시대에는 실직국이란 작은 나라가 있었고 북쪽 강릉시의 동예나 남쪽 울진군 파조국이나 경주 음즙벌국, 신라 등과 열심히 투닥거리다가 105년 신라 파사 이사금의 침공을 받아 합병당했다. 고구려 세력권에 들기도 했다가 신라 지증왕 때 실직주가 되었다. 울릉도 정복으로 유명한 이사부가 실직의 군주이기도 했다. 신라 9주 5소경 중 명주에 속했으며, 통일신라 경덕왕 때 지금까지 사용하는 이름인 삼척군으로 바꾸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실직을 '사직'(史直)이라고도 했다. 지금도 오분동 옆에 사직동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실직→사직→삼척'의 음운 변화를 통해 실직의 옛 이름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2. 고려시대
고려 성종 때 척주가 되었다. 현종 때 삼척현이 되었다.
3.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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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때 삼척부로 승격되었다. 태종 때 삼척도호부가 되었다. 1895년 23부제가 시행됨과 동시에 삼척군이 되었다.
4. 일제강점기 및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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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해 산하 몇개의 면이 통합되었으며, 1938년 삼척면이 삼척읍으로, 1945년 북삼면이 북평읍으로 승격하였다. 1961년 상장면이 장성읍으로, 1963년 소달면이 도계읍으로, 1973년 황지출장소가 황지읍으로 승격하였고, 1980년 북평읍이 명주군 묵호읍과 통합되어 동해시로 승격하였다. 같은해 원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 장성읍과 황지읍이 태백시로 분할 승격되었다.
1986년 삼척읍이 삼척시로 승격되어 삼척군에서 분리되었으며, 원덕읍에서 가곡면이 분리되었다. 1989년에는 도계읍 신기출장소가 신기면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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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지방자치제 개편을 맞아 이곳에도 도농통합 논의가 있었는데, 똑같이 삼척군에서 분리된 태백시, 동해시는 제외하고 삼척시-삼척군만 통합되어 도농복합형의 통합시가 되었다.[5]
1960년대~70년대의 석탄 산업의 호황기에는 인구가 20만을 넘을 정도로 인구가 많은 군이었으나[6] 이후 강원도가 산업단지 유치나 교통인프라 개선보다 주력산업인 광업에 대한 의존으로 인해, 1989년부터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의 영향을 받으면서, 석탄산업의 쇠퇴로 이어졌으며, 태백, 정선 등과 함께 급속히 쇠퇴하였다. 그 점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급속하게 발전했다가 가장 빠르게 추락한 도시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시임에도 불구하고 2016년 4월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로 홍천군(70,045명)에게 추월당했다. 이런 역사 덕분에 한 때 읍이 5개(삼척, 도계, 황지, 장성, 북평)에 이를 정도였으나 황지읍, 장성읍은 태백시로 분리되었고, 북평읍은 동해시의 일부가 되었으며, 삼척읍은 1986년 삼척시로 떨어져 나간 뒤, 1995년 도농복합시 제도로 舊 삼척군과 통합되었고, 하장면 4개 리(원동리, 상사미리, 하사미리, 조탄리)는 태백시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도계읍은 지금도 읍으로 남아 있다.
[1] 노란색(삼척군)=(1. 도상면)(2. 견박면)(3. 도하면)(4. 하장면)(5. 미로면)(6. 말곡면)(7. 부내면)(8. 소달면)(9. 노곡면)(10. 근덕면)(11. 상장면)(12.원덕면)[2] 노란색(삼척군)=(1. 북삼면)(2. 하장면)(3. 미로면)(4. 부내면)(5. 소달면)(6. 노곡면)(7. 근덕면)(8. 상장면)(9. 원덕면)[3] 하얀색=(1. 동해시)(2. 삼척시)(3. 태백시)[4] 노란색(삼척군)=(1. 하장면)(2. 미로면)(3. 신기면)(4. 도계읍)(5. 노곡면)(6. 근덕면)(7. 가곡면)(8. 원덕읍)[5] 사실 동해시는 삼척 쪽 지역만 있는 게 아니라 강릉 쪽 지역인 묵호 일대도 포함하기 때문에 통합이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묵호 일대를 제외한다면 통합이 가능할 수도 있다. 태백시는 오래 전부터 시로 분리 승격되었고 삼척 시내와 너무 먼 관계로 통합이 상정되지 않았다고 추정된다.[6] 한때 30만에 육박하기도 하였다. 강원도의 나름 규모있는 도시인 춘천시와 강릉시는 인구 30만을 넘은 적이 없으며, 현재 강원도에서 인구가 제일 많다는 원주시도 2007년이 되어서야 넘은 30만의 인구를 1979년에 일개 군이 찍은 것이다. 다만 하나의 시가지에 인구가 집중된 춘천, 강릉, 원주와는 달리, 삼척은 삼척·황지·장성·북평·도계 등 여러 읍규모 시가지에 인구가 분산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단순히 인구가 많다고 삼척이 춘천, 강릉, 원주보다 '큰 도시'였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1979년 당시에는 태백시와 동해시(북평)가 아직 분리되지 않았을 때. 사실 지금도 태백시와 북평 일대 합하면 인구 19만 정도로 그럭저럭 규모가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