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벨라스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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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스페인의 화가. 펠리페 4세 시절 궁정 화가가 된 이후 평생 궁정 화가로 지냈다. 바로크 시기 최고의 화가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사실적인 초상화로 유명하며, 특히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화는 '''역대 최고의 초상화'''로 자주 거론되는 작품. 또한 대표작 '시녀들'은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후대의 화가들에게 까지 큰 영감을 주었다.
1. 생애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재능은 그의 고향 세비야에서 연마되었다. 그는 프란시스코 에레라의 공방을 거쳐, 12살에는 화가 프란시스 파체코의 작업실과 아카데미에서 실력을 쌓았다. 벨라스케스는 1617년에 독립 화가로서 일할 세비야 길드의 면허증을 얻었다. 그는 이론가와 인문주의자로서 유력한 친구들을 둔 스승으로부터 문화적 교육을 받았고 지적인 르네상스 사상들을 소개받았다.
또한, 그는 스승의 학술적인 동료들로 구성된 영향력 있는 모임에 소개되었다. 1618년에 파체코의 딸인 후안나와 결혼하여 그와 파체코의 끈끈한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벨라스케스의 초기 작품들로는 솜씨 있게 그린 종교화와 풍속화가 있다. 스페인은 풍속화의 역사가 짧았고, 벨라스케스는 <세비야의 물장수>와 같은 작품들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불어넣으며 새롭고 정직한 사실주의를 추구했다. 1622년에는 젊은 화가 된 벨라스케스는 스페인의 새로운 왕 펠리페 4세의 후원을 얻고자 마드리드로 향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망을 안은 채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1년 후에 왕의 초상화를 그려 궁정 화가로 공직에 임명되었다. 곧바로 마드리드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평생 궁정 화가로 지냈다. 펠리페 4세는 자신의 초상화를 벨라스케스 외에는 아무도 그리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2. 대표 작품
캔버스에 그린 유화로 크기는 316 x 276cm이며, 프라도 미술관에 있다. 이 <시녀들>이라는 작품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품으로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들어본 작품이기도 하다. 1656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최초에 마드리드 알카사르 왕궁에 있는 왕의 개인 집무실에 소장되었다가, 왕궁의 다른 공간으로 몇 번 이전된 후 19세기 초에 프라도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왕실 가족과 그 측근, 고위 성직자 등 소수의 인물들만이 볼 수 있었던 <시녀들>은 미술관에서 일반 대중에게 공개 되면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 그림의 명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1650년에 제작. 벨라스케스의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역대 초상화 가운데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초상화를 그릴 때 대상을 미화시키거나 정형화시키지 않고 사실적이고 생생한 모습을 그대로 캔버스로 옮겼는데, 이 작품에서도 특유의 화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소장.
1647년에서 1651년경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되며 캔버스에 유화로 크기는 177 x 122.5cm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1906년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
2.1. 작품목록
- 시녀들
-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
- 후안 데 파레하
- 무염시태
- 계란을 부치는 노파
- 펠리페 4세의 입상
- 펠리페 4세의 기마상
- 천상모후의 관을 쓰는 성모